삶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창세기
김종호 지음, 그돌 스튜디오, 2023, 361-363쪽.[발췌]
글을 마치며...
지난해 작업을 시작하여 어느새 해를 넘기고 새로운 시간의 장이 열렸다.
수 개월간의 땀방울과 수고, 힘겨운 호흡과 지리멸렬한 삶의 조각들이 이 책에 묻어와 새로운 시간의 흐름과 의식의 기록 속에 함께하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의식도 흘러가고 변화하지만,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날이 갈수록 선명하게 각인되어 나의 영혼에 타투처럼 새겨진다. 소란스러운 마음을 누르며 써 내려간 글들이 모이고 쌓여 하나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이제 내 손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갈 때 나의 냄새는 지워지고 하나님의 향취만 남길 기도한다.
성서 연구와 같이 한 분야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와 같이, 우물 크기의 세상밖에 보지 못한다거나, 성서라는 안경을 통해 보는 편협된 시각만 있을 것이란 오해를 받아, 한마디로 세상 물정모르는 숙맥 취급을 받기가 일쑤이다.
성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것이 담겨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신 최고의 피조물이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온 우주의 흥망성쇠의 열쇠를 품은 거대한 세계가 오직 말씀으로 함축되어 담겨있는 성서의 세계 속에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인류를 향해 품으신 계획이 세밀히 기록되어 있어 그 크기와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장대하고 위대한 책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통해 보는 세상은 넓고 깊고 헤아릴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세상 위의 세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연구하는 일은 세상을 넘어선 세상의 이야기이기에 결코 편협한 우물 안의 개구리의 삶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대한 성서에 기록된 인물들의 삶은 흠 없이 완벽하지도 않고, 그들의 인격이 존경스러울 만큼 훌륭하지도 않다. 그들의 삶의 모습이나 오늘날 우리의 삶의 모습이나 시대나 문명이 다를 뿐 그저 똑같은 날 것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이요, 혼란한 삶의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한 신앙의 완벽한 모델이란 없음을 새삼 느끼게 할 뿐이다. 성서의 인물들은 실수뿐 아니라 죄의 반복까지 하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그들의 부족함을 보며 동질감을 느껴 위로받고 그들의 신앙의 위대한 결단을 보며 감동 받으며, 그들의 선택들을 교훈 삼아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배우게 된다.
성서의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은 그들의 인생 속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죄와 함께 혼란한 삶을 살아갔다. 아담과 하와의 하나님에 대한 약속의 파괴, 가인의 형제 살인, 노아의 홍수, 바벨탑의 교만,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내를 누이라 속인 거짓, 사라와 여종 하갈의 애증, 리브가와 야곱이 공모하여 벌인 에서의 장자 축복권을 찬탈하기 위한 속임수, 야곱의 라헬을 향한 사랑, 야곱의 열두 아들, 형제들에게 버림받은 요셉 등... 속임수와 조작으로 얼룩진 창세기 인물들의 여정은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생사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러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땅을 개간하는 자의 사명을 감당했고 이삭은 그 땅에 우물을 팠으며 야곱은 그 땅에 씨를 뿌리고 요셉은 물주는 자의 사명을 감당했다. 이제 이스라엘은 수많은 열매를 맺어 다시금 온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될 것이다.
성서 읽기는 한세월 제멋대로 살다가 소멸하여 사라지는 먼지 같은 인생의 허무함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말씀으로 붙잡아 주시어 삶에 진지한 의미를 부여해 주심으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값없는 은혜를 발견하게 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죄를 끌어안고 하나님께 갈 수없다. 신명기 30장에는 '돌아가다'라는 뜻의 '슈브'(שׁוּב)라는 단어가 열 번 사용된다. '슈브'라는 동사에서 회개를 뜻하는 '테슈바'(תשובה)가 나왔다. '테슈바'는 돌아가다(욥22:23), 중단하다, 철수하다, 물러가다, 돌아오다(삼상 7:17), 대답하다(욥21:34), 회개하다의 의미를 가졌다.
성서는 '돌아감'(테슈바)의 이야기이다. 시간과 장소의 순환이요. 집으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옴이며, 다시한번 더 기회를 부여받고, 회복하고 되살아나는 이야기이다. 올바른 길로 돌아가는 것,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테슈바이다.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돌아가야 할 곳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이다. 자기 자신으로 꽉 차 있는 사람에겐 하나님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자신을 비워 하나님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은 끝없이 자기 자신을 비우는 과정 속에서 완성된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성서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