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가 그려진 창문
정선우
창문을 바라본다
아무 말이라도 좋았다
눈썹을 찡그리지 않으며 말했고 우리는 나무들 아래에서 바람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오줌색 같은 달이 달맞이꽃을 되돌려주지 않았지만
저녁은 대체로 평화로웠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냉담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어서 소모되는 것들이 아깝지 않았다
나무의 이파리 끝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을 보다가 뿌리의 견고함이 사라질까 걱정했다
낄낄거리는 아침엔 다짐이 필요했고
눈물이 이해되는 저녁에는 따뜻한 국물이 생각났다
만지작거리던 마리오네트 매듭을 끊어내었다, 밤은
더욱 서글펐다
그냥 여기에서
익숙함이 사소해지고 오월이 갔다
깨어나지 않은 잠처럼 아무렇지 않게
나를 부르는
웹진 『시인광장』 2019년 8월호 발표
정선우 시인
부산에서 출생. 2015년《시와 사람》으로 등단. 시집으로 『모두의 모과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