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India)는 어떤 나라인가?
인도(인디아 Republic of India)는 남부아시아 인도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계 7대국으로, 중국 다음가는 세계 제2 인구대국이다. 힌디어(語)로 바라트(Bharat)라고 한다. 서쪽으로 파키스탄, 북동쪽으로 중국, 네팔, 부탄, 동쪽으로 방글라데시, 미얀마와 국경을 접한다.
대규모 산지와 바다로 둘러 싸여 외부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인도의 지도를 보면 북쪽은 대규모 산지로 둘러 싸여있고, 동쪽, 서쪽, 남쪽은 바다로 둘러 싸여 지형적으로 외부세계와의 격리되어 있다.
인도의 지형
인도의 지형구
남북(좌우)방향으로 본 인도의 지형단면
북부 대산지는 파미르고원에서 시작한 대규모 산맥들이 여러 방향으로 달리는 험준한 산악지역이다. 파미르고원의 동쪽으로 히말라야(Himalaya)산맥과 카라코람(Karakoram)산맥이 달리고 있고, 서쪽으로 힌두쿠시(Hindukush), 술라이만(Sulaiman), 키타르(Kirthar) 등의 산맥들이 달리면서 인도를 외부지역으로 부터 고립 시키고 있다.
이들 산지는 약 7,000만 년 전부터 시작된 대규모의 습곡과 단층작용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중에서 ‘눈(Hima)의 집(Alaya)’이라 불리는 히말라야산맥은 6억년 전에 해저가 약 7,000만 년 전부터 대규모의 습곡운동과 단층운동으로 융기가 시작되어 대산지를 이루고 있는 신생대 조산대의 대산맥이다. 동서길이 약 2,500㎞, 너비 240㎞ 규모의 이 산맥에는 에베레스트산(8,848m)을 비롯한 다수의 고봉들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v6htegtoak
https://www.youtube.com/watch?v=e-GwA-hrd6U
북부의 대산지 지형
험준한 히말라야산맥
이 대산지의 중심인 히말라야산맥은 지질적으로 최근에 해당하는 신기 제3기 조산운동, 즉 유라시안판과 인도.호주판이 충돌하여 생긴 거대한 습곡산맥인 것이다. 지금도 인도.호주판이 유라시아판을 밀고 들어 오기 때문에 이 거대한 2개의 대륙판이 간헐적으로 충돌을 하고 있고 그럴 때 마다 이 근처에 있는 파키스탄, 인도, 네팔, 부탄 등에서 강력한 지진의 피해를 당하고 있다.
인도반도 주변의 판(Plate) 분포
인도.호주판의 이동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442087&cid=51641&categoryId=51641
인도반도 주변의 지진 발생지역.
회녹색 점이 지진 발생지역이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1922bbb&logNo=138159823
인도반도의 지형 분포를 보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대산지(大山地), 힌두스탄 대평원, 반도부 고원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북부 대규모 산지의 남쪽에는 대규모의 힌두스탄(Hindustan) 대평원이 전개되어 있다.
힌두스탄대평원은 갠지스, 브라마푸트라, 인더스 등의 3대 하천유역에 형성되어 있는 충적평야로, 동서길이 약 2,400㎞, 남북길이 240-320㎞, 면적 77만㎢에 달하여 국토의 약 20%를 차지하는 대규모의 평야이다. 동쪽 갠지스강 하구에서 서쪽으로 약 1,600㎞나 떨어진 델리 부근의 해발고도가 200m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저평하고, 퇴적층의 두께가 6,000m 이상인 지역도 있다 홍적세(洪積世) 무렵에 해저였으나 그 후 북쪽 히말라야산맥과 남쪽 데칸고원으로부터 운반된 대량의 토사가 충적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충적평야이기 때문에 토양이 비옥하여 인도의 곡창지대를 이루며, 인도 인구의 약 40%가 집중하여 세계적으로 높은 인구밀도를 보이는 지역 중의 하나이다.
https://namu.wiki/w/%EA%B0%A0%EC%A7%80%EC%8A%A4%20%EA%B0%95
힌두스탄(Hindustan) 대평원의 지형
갠지스 델타(삼각주)
인더스 델타(삼각주)
갠지스강 유역
힌두스탄 대평원의 남쪽에 있는 반도부 고원은 대규모의 고원지역으로 인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대한 지역이다. 넓게는 갠지스강 이남 반도부에 있는 고원과 산지가 모두 포함되며, 좁게는 마하라슈트라주, 카르나타카주, 안드라프라데시주 등을 포함하는 고원이 이에 해당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곤드와나 육괴(陸塊)로 해발고도 300-1,200m의 많은 산지와 잔구가 모자이크모양으로 파상지형을 이루고 있다. 반도부의 고원은 중부인도고지 및 고원, 사푸라(Satpura)구릉, 데칸(Deccan)고원 등으로 세분된다.
반도부 고원의 지형
중부인도고지 및 고원은 인도-갠지스평야와 데칸고원 간에 위치한다. 중앙에 말와(Malwa)고원, 남부에 빈다야(Vindhya)구릉, 서부에 아라바리(Aravalli)구릉과 타르(Thar)사막이 있고 이들 간에 삼발(Chambal)강이 북동류하여 잠나(Jumna)강과 갠지스강에 합류한다.
사푸라구릉은 북쪽의 나바다(Narbada)강과 남쪽의 탑티(Tapti)강 사이에 위치한다. 데칸고원의 일부이지만 분리되어 있다. 이 구릉이 고원의 중앙을 동서로 주행하여 아리아문화의 남쪽 확산을 차단함으로서 데칸고원에서 발생한 드라비다(Dravida)문화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사푸라구릉의 남쪽은 인종과 문화적으로 그 북쪽과 대조를 이루게 되었다.
데칸고원은 해발고도 1,200~1,300m, 면적 약 160만㎢에 달하는 광대한 개석대지로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곤드와나 육괴(陸塊)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지형은 백아기 이후 현무암분출과 그 후의 지괴운동에 의한 것이다. 현무암의 분출로 북서부에 광대한 용암대지(약 50만㎢)가 형성되었고 지괴운동으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경동지괴를 이룬다. 해발고도 300-1,200m의 많은 산지와 잔구가 모자이크모양으로 파상지형을 이루고, 데칸고원의 동단부와 서단부에 해발고도 500-600m의 동고츠(East Ghats, 500-600m)와 해발고도 1,000-1,500m의 서고츠(western ghats)가 남북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이들 산지또한 인도내부로의 진입을 방해하고 있다.
동고츠는 서고츠보다 고도가 낮고 동류하는 다수 하천에 의해 분리되어 있는 반면 서고츠는 동류하여 벵골만으로 유입하는 고바다리(Godavari), 키스트나(Kistna), 카우베리(Cauvery) 등의 하천 분수계를 이루며, 하계몬순의 진행에 영향을 미쳐 서부지역을 소우지역 내지 반건조지역을 이루게 하고 있다.
방대한 용암대지가 풍화작용을 받아 생성된 비옥한 흑색면화토(regul)로 덮혀 있어 면화 생산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http://blog.daum.net/kelim/15716954
데칸고원
데칸고원의 동쪽과 서쪽에 있는 산맥인 동고츠와 서고츠.
동쪽이 낮고 서쪽이 높은 경동지괴괴를 이룬다.
주민생활이 열대몬순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위도상으로 인도는 아열대내지 온대기후대에 위치하지만, 히말라야산맥의 영향으로 열대몬순(계절풍)기후를 나타내며 계절풍의 변화에 따라 계절이 한냉건조기(10-2월), 고온기(3-6월 중순), 우기(6월 중순-10월) 등 3개 시기로 구분된다
한냉건조기인 겨울에는 풍향이 육지에서 해양으로 향하기 때문에 건조하고 청명하며 소량의 강수가 있다.
고온기인 여름인 3월이 되면 고온기가 시작된다. 특히 데칸고원의 기온이 크게 상승하여 6월평균기온이 37˚C, 최고기온이 48˚C 혹은 그 이상이 된다. 하지와 우기 직전에 최고기온은 나타나며 해안 근처의 캘커타에서는 낮에도 그늘의 기온이 40℃를 넘는 경우가 가끔 있으며, 갠지스강 중류지역에서는 43℃ 정도로 오르는 것은 보통이다. 밤에도 실내는 더우므로 사람들은 노숙을 많이 한다.
우기인 6월이 되면 기온이 상승하여 인도 북서부에 저기압이 형성됨에 따라 남서몬순이 저기압부로 향하여 정기적으로 강하게 불기 시작한다. 6-9월간에 연강수량의 80-90%를 차지하는 다량의 강수를 동반하여 인도반도의 서해안, 특히 서고츠와 갠지스강유역의 저지대에 다량의 강수를 내린다.
http://news.zum.com/articles/24738245
인도반도의 풍향과 강수(1월, 7월)
몬순의 후퇴기인 가을이 되면 남서몬순의 세력이 약화되어 인도반도의 북서부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후퇴하는 몬순의 영향으로 인도반도의 남동해안지역에서 10-11월간에 소량의 겨울강수를 보인다.
11월에는 벵골만에서 가끔 열대성 사이클론이 발달하여 마드래스의 북서해안과 벵골만의 북동부를 횡단하면서 해안지역에 극심한 피해를 준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8/03/0200000000AKR20150803102500077.HTML?input=1179m
인도는 전체적으로 건조한 지역에 속하여 강수량이 적어 물이 부족한 곳이 많다. 몬순은 강수의 이용 시기, 수확의 성패, 농업의 리듬을 좌우하므로 인도의 식량생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하계몬순은 관개시설의 이용이 불가능한 지역의 농업에 중요한 활력소가 된다.
또 하계몬순의 인도반도에 내습시기와 동반하는 강수량이 작물의 파종시기를 결정한다. 또 내습한 몬순이 동반하는 강수량의 다소에 따라 농산물 수확량이 좌우되며, 심지어 기근이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관개시설 확대, 비료 사용, 고수확성품종의 개량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업생산이 몬순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kytaste&logNo=220382693547
인도의 한발과 황폐한 산지.
오랜동안 가정연료용으로 산지의 산림이 벌채되어 훼손되었다.
고대 문명이 발상한 나라로 여러 차례 이민족의 침입으로 국가의 흥망이 반복된 나라이다.
인도는 기원전 2500년경에 세계 4대 문명 중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이 발생한 나라이다.
그러나 기원전 1500년-1200년경에 북서쪽의 이란고원을 넘어 침입한 아리아인들에 의해서 인더스문명이 파괴되었다. 아리아인들은 갠지스 강 유역에 정착하여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의 델리 근처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해나갔다. 이 시기에 아리아인들의 베다 신앙에서 힌두교가 탄생되었고, 산스크리트어가 발전해 이후 2000여 년 동안 인도의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321년경 -185년에 인도 북부가 찬드라 굽타의 통치 아래 최초의 힌두 왕조인 마우리아 왕조로 통합되었고 그 손자인 아소카 대왕의 시대에는 인도반도의 대부분을 장악한 대제국으로 확장되었다.
마우리아 왕조의 붕괴 이후 수많은 소왕국이 난립하다가 굽타 왕조(320년 ~ 480년) 시대에 다시 통일되었다.
이슬람교도들의 침입은 1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 14세기 초에 모하마드 이븐 투글루크가 델리 술탄 왕조의 세력을 확장하는 등 인도 북부에서 이슬람 지배가 16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인도 남부에서도 이슬람계 바만 왕조가 성립(1347년)되어 1527년까지 명맥을 유지했으며 이와 함께 힌두 왕국인 비자야나가르 제국가 1336년-1556년에 걸쳐 인도의 남부 지방을 양분하며 통치했다.
16세기 초에는 이슬람계 왕조인 무굴 제국이 인도 전역을 지배했다. 1526년 바부르가 세운 이 제국은 악바르와 아우랑제브 치세 동안 세력을 확장하고 최고의 번영을 누렸으나 힌두왕국인 마라타왕국이 17세기말 세력을 뻗치면서 위협받기 시작했다.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여행(1498년)을 기점으로 포르투갈인들이 상륙하여 인도와 유럽 사이의 무역을 독점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들어서 포르투갈인, 영국인, 프랑스인, 네덜란드인들 간에 경쟁관계가 형성되었다. 그 동안 영향력을 키워온 영국 동인도 회사는 점차 경쟁관계에 있던 다른 식민세력들을 몰아내고 1757년에 무굴 제국을, 1818년에는 마라타 왕국을 굴복시킨 뒤 인도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영국 동인도 회사를 통한 영국의 통치는 세포이 항쟁(1857년) 이후인 1858년에 영국 정부가 인도를 직접 통치하는 형태로 바뀌어 200년간 인도를 식민지로 지배하였다.
영국의 인도 지배동안 인도 민족주의가 인도 국민회의(1885년)와 전 인도 이슬람 연맹(1906년)의 형태로 나타났다. 1857년의 세포이 항쟁 후 거의 60여 년 동안 대다수의 인도인들이 영국의 지배에 순응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가 모두 영국의 식민통치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1920년 간디가 이끄는 인도 국민회의가 영국의 식민통치에 대한 비협력운동을 전개하자 영국은 인도에 제한된 범위의 자치권을 허용하는 조치를 취했으나 간디를 비롯한 인도인들은 완전독립과 인도의 통일을 요구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47년 8월 15일에 인도가 독립을 하였다. 그러나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통합이 이루지 못해 인도반도가 힌두교도가 대다수인 인도 공화국과 이슬람교도가 대다수인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하게 되었다.
농업국가이지만 과다한 인구와 낙후된 농업으로 인해 만성적인 기근에 허덕이고 있다.
인도는 전 국토 면적의 약 절반이 경지로 이용되어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을 뿐만 아니라 국민생산에서 차지하는 농업의 비중이 20%이나 된다. 인구의 약 80%가 농촌에 거주하고,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 이상이나 된다. 세계적인 농산물 생산국가로서 다양한 농산물이 생산하고 있다. 쌀, 밀, 옥수수 등의 식량작물과 환금작물인 땅콩, 사탕수수, 면화, 황마 차, 커피 등이 생산되고 있으며 다양한 원예작물도 생산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 밀, 땅콩, 사탕수수, 면화, 황마 등이고 이중에서 쌀, 밀, 면화, 땅콩, 황마, 사탕수수, 담배 등은 그 생산량이 세계적으로 1-3위를 차지하는 주요 생산국이다.
그러나 농업국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인구가 식량부족으로 만성적인 영양실조상태에 허덕이고 있고 그 정도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식량부족현상은 삼림의 황폐, 몬순에 의한 강수의 계절적 편중, 부족한 관개시설, 척박한 토양, 필지의 분산, 농가경영규모의 영세성, 농지소유의 집중으로 인한 소작농, 낙후된 농법 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최근 녹색혁명을 통해 점차 현대적인 농업요소가 도입되었고 식량생산에 차질을 가져오는 몬순의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해 댐이 건설, 관개지역이 확대되었다. 1980년대에는 곡물의 자급을 성취했고 인구성장도 연 2.1%로 안정되었다. 그러나 인도인구의 ¾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극히 저조한 생산성을 보이고 있고 식량 부족으로 기근이 만연해 있다.
인도의 농촌. 멀리 보이는 산지에 수목이 거의 없다.
천연자원이 풍부하지만 산업이 낙후되어 있다.
인도는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철광석과 석탄 매장량은 세계에서 손꼽히며, 운모, 망간, 보크사이트도 풍부하다. 최근 뭄바이의 해안에서 유전이 발견되어 국내 석유 자급율을 높이고 있다. 인도는 공업성장을 위한 막대한 동력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석탄을 제외하고는 거의 개발되지 못했다. 석탄은 주요 동력원으로 연간 생산량이 1억톤 이상으로 세계 6위를 차지하며, 다모다르하곡과 마드야프라데시(Madhya Pradesh) 남부에서 주로 생산되며, 특히 다모다르하곡에서는 인도 생산량의 약90%가 생산되고 있다. 석유 생산의 잠재력도 커서 아삼과 구야라트(Gujarat)지역에서 국내수요의 ⅓을 충족시키고 있다. 더구나 대량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생산될 가능성이 큰 아라비아해저의 뭄바이 하이(High)와 바쎄인(Bassein)유전을 최근 다국적기업에게 그 개발을 개방함에 따라 수년 이내에 국내 석유 수요의 대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을 전망이다. 포장수력이 주로 서고츠, 동고츠, 다모다르하곡에서 개발되었지만 포장수력이 상당하며, 핵 원료도 풍부하여 이미 핵시설을 개발하였다.
영국 식민지시대에 인도의 공업생산은 주로 국내소비와 영국시장을 위한 것으로 농산물, 수공품, 광물이 수출된 반면 기계와 공업제품이 주로 수출되었다.
독립 후에는 공업이 크게 발달하여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그 구조도 크게 변화하였다. 독립 후 생산재 중심의 공업육성정책으로 독립당시 공업생산의 ⅔를 차지하던 식료품공업과 섬유공업의 비중이 약 30%로 감소한 반면 화학공업이 10%에서 20%, 금속, 기계공업이 10%에서 25%로 그 비중이 증가하였다. 특히 공작기계, 산업용기계, 산업용전기기기 등의 생산재공업의 급속히 증가하였다.
그 결과 광범하게 잔존해 있는 수공업과 함께 현대 공장제 공업이 발달하고 있고, 대도시지역에서는 공기업, 재벌, 외국기업 등의 대규모 공장들과 소규모 공장들이 혼재하여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 간에 하청관계가 발달하지 않고 있다.
광물자원과 공업지역분포
최근 인도의 경제성장의 성장동력은 세계적인 수준을 보유한 IT산업인데, 하드웨어기반이나 통신기반없이 소프트웨어 및 IT관련 서비스 부분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수준에까지 발전하였다. 풍부한 전문인력을 바탕으로 벵갈루루를 중심으로 하여 인도포시스테크놀로지(India Forsyth Technology), 위프로(Wipro), 타타컨설턴시(Tatar Consultancy)와 같은 일류기업들이 활동하고, 아이비엠(IBM), 지이(GE), 시스코(Cisco)와 같은 다국적 글로벌기업들이 투자하고 진출하여 급성장을 하고 있다.
IT 산업도시, 벵갈루루
벵갈루루 IT업체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ivazero&logNo=220517567866
그러나 인도의 공업 생산량이 독립 후 크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은 저조하고 농업에서 공업으로 유입된 인구의 비중도 크지 않았다. 이것은 국외적 요인 외에 국내 대중수요의 불확실성, 전력 부족, 급속한 인구증가에 따른 빈번한 식량부족으로 인한 곡물 수입, 석유제품 구입에 따른 기계류와 비료 구입량의 감축 등에 기인하였다.
인도산업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81186&cid=48561&categoryId=48561
높은 수준의 도시생활과 농촌지역의 빈곤으로 인도의 도시인구가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도시와 촌락간에 생활수준의 격차가 심화됨에 따라 농촌인구가 대도시로 이동하기 시작하여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소수였던 도시인구가 현재는 인간홍수를 이루고 있다.
인도의 대도시의 성장은 타개발도상국에 비해 그 속도가 완만했다. 대부분의 개도국에서 발생했던 이촌향도현상이 인도에서는 씨족, 카스트, 가족 등과의 결속으로 지연되어 왔다. 최근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이촌향도인구는 이러한 인도의 촌락문화가 크게 붕괴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비록 현재의 인도 도시인구의 비중이 낮지만 인도의 도시 인구증가율이 인도인구증가율의 2배나 된다.
인도의 도시성장은 구 도시로부터 시작되었다. 캘커타와 뭄바이(Mumbai 봄베이)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무역항에서 아시아의 금융 및 무역 중심지로 성장했다. 캘커타는 인도갠지스평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벵골주와 방글라데시의 황마, 아삼의 차, 초타 나그푸르(Chota Nagpur)의 공업제품을 집산하는 항구역할을 하였다. 인도 제2의 공업도시인 뭄바이(Mumbai 봄베이)도 데칸고원의 면화 생산과 서고츠의 수력발전의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 서쪽에 위치해 있어 동서간의 상업 및 금융 중심지가 되었다. 델리와 마드라스는 행정 및 서비스 중심도시 역할을 유지해 왔다. 정부가 도시문제를 유발하는 무계획적인 도시의 성장을 억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도시가 성장했다.
이와 같이 급속한 도시성장은 슬럼, 심각한 혼잡, 공공위생 및 교통문제를 발생시켰으며 심각한 취업, 주거, 서비스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농촌지역으로 부터 유입한 이주민들이 도시의 외연부에 집중, 상하수도시설과 의료시설이 없이 오두막집 지대를 이루고 있고 급속히 증가하는 도시인구에게 취업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심각한 빈곤은 인도의 모든 대도시가 지닌 공통문제로 되어 있다. 이들 인구에게 고용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면 실업, 열악한 생활조건, 극심한 빈곤이 인도 대도시의 고질병으로 남게될 것이다.
인도의 도시 식수공급
대도시(Mumbai) 빈민굴
인도의 빈민가
http://blog.naver.com/nanoteck/110020971695
http://cnn_bbc.blog.me/110147725098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644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1&aid=0002168143
복잡, 다양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도의 인종분포를 보면 6대 인종, 즉 니그리토족(Negrito族), 프로토-오스트랄로이드(Proto-Australoid), 몽골로이드(Mongoloid), 알파인(Alpine, 중앙아시아계), 드라비다족(Dravida族), 인도·아리아인(Indo-Arya人) 등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북방의 인도·아리아인이 70%를 차지하며 남방의 드라비다족이 25%를 차지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6대 인종의 순수 혈통은 현재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6대 인종의 다양한 혼혈인이다.
종교를 보면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시크교, 자이나교, 불교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힌두교가 3/4이상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식민지시대에는 이슬람교가 힌두교와 함께 주요 종교를 이루었으나 독립 후 국가의 분열과정에서 파키스탄으로 이슬람교도들의 이동으로 그 비중이 커지게 되었다. 1870년대 이후 발전한 인도의 민족운동을 힌두교의 중산계급이 주도하였다. 이슬람교도의 대부분은 독립 후 파키스탄으로 이동하였으나, 현재에도 인도에 약 1/3이 남아 있다.
인도의 종교분포
인도 내에는 14개의 주요 언어가 있고 1,652개의 방언이 사용되고 있다. 가장 큰 언어군은 힌디, 힌두스탄, 우르두어로 전체인구의 약 40%가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인도-유럽(Indo-Europe)언어의 사용인구가 주로 인도북부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교류와 국민단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어가 없었기 때문에 국지적인 언어가 인도의 결속에 지장을 주었다. 영국통치 시에는 의사교환 수단으로서 영어를 사용하도록 강요당했으나 인도정당의 하부조직인 지역위원회가 지역의 언어에 따라 조직되었고 주의 경계선도 언어에 따라 설정되기도 했다.
인도의 언어 분포
이와 같이 인도의 민족, 종교, 언어 등이 복잡, 다양하게 된 것은 오랜 역사적인 과정을 통하여 다양한 민족의 유입에 기인한다. 비록 인도가 대규모의 산지와 해양에 둘러 싸여 외부세계로 고립되어 있었지만 대규모 산지 간에 존재하는 북서쪽의 영((嶺, pass)을 일찍부터 아리아(Aryan)인, 시디아(Scythia)인, 아프가니스탄인, 무갈(Mogul)인 등의 침입과 15C 말부터 포르투갈, 네델란드, 프랑스의 침입으로 다양한 민족과 더불어 다양한 언어와 종교가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인도의 복잡한 사회구조의 원인과 결과 메카니즘
복잡, 다양한 사회구조로 국내외적으로 풀기 어려운 갈등과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타골(Tagore)의 말과 같이 힌두교가 인도반도의 공통분모‘이지만 인도인의 신분은 종교, 언어, 카스트, 그리고 민족에 의해 결정된다. 종교로 인해 인도반도가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단된 후에도 다양한 언어, 종교, 민족에 입각한 분리운동과 카스트제도가 국가 단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들 문제를 보면.....
첫째, 성우사상이다.
힌두교의 성우사상은 인간이 타 창조물과 동일하다는 힌두교의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간디(Mahatma Gandhi)는 소를 보호하는 것이 힌두교의 중심적 사상이라고 했다. 비록 비힌두교들이 소를 식용으로 하지만 수 많은 소의 도살과 식용을 금하는 힌두교의 금기로 다수 인도인들이 영양실조 상태에 있고 도시의 도로를 거닐면서 먹을 것을 찾고 있는 수 천마리의 소들은 교통장애가 되고 있다. 만약 이러한 힌두교의 금기가 철폐된다면 영양실조상태에 있는 인도 국민에게 충분한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축산물 수출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우사상(聖牛思想)은 시문스(F.J.Simoons)가 지적한 바와 같이 실용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종적인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지만 급증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전통문화의 변화을 시도하는 개발계획가들의 난제로 되어 있다.
성우에게 기도를 하는 힌두교인
거리에 돌아 다니는 성우들
해변에도 성우가 ...
종교의식장소(쉬발라 가트 Shivala Ghat)에도 성우들이...
둘째, 카스트제도이다.
인도사회 특유의 신분제도인 카스트제도도 인도의 현대화 과정에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카스트는 BC 1300년경 아리안의 일부가 인도를 침입, 선주민인 문다인, 드라비디아인이 아리안인의 지배들 받아 노예 위치에 놓이게 되면서 성립되었다. 사제(brahman), 무사(kshatrya), 서민(vaishya), 노예(sudra) 등 4개의 바르나(varna) 즉, 카스트가 나타나게 되었다. 노예를 제외한 3개 카스트는 종교적으로 재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재생족(再生族 dvishya)이라 했다. 상위의 카스트에 속한 자가 하위의 카스트에 속한 자의 곁에 가도 더럽혀 진다고 볼 정도로 하위 카스트에 속한 자를 부정시하며 각 카스트의 직업을 세습하고 카스트 상호간의 통혼을 금지시키고 있다. 비록 카스트를 부정하는 불교와 그리스인의 북서부 침입으로 바라문교의 서열관에 변화가 생겼으나 불교와 그리스의 쇠퇴로 바라문교의 카스트제가 확립되게 되었으며 힌두교와 바라문교의 결합으로 카스트가 뿌리내리게 되었다. 그 후 회교와 기독교가 전래되었으나 역시 카스트제도를 타파하지 못했다.
최근 직업분화와 토지부족으로 카스트제도가 동요되고 있으나 종교, 의례, 사교면에서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군대, 도시에 있는 공장, 대학, 공영기업체, 관청 등에서 카스트가 부분적으로 약화되고 있고 1950년에 공포된 헌법에서 인정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생활 전반에 깊이 잔존하고 있다. 특히 촌락에서는 종교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카스트제도가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또 4개 카스트 중 무사와 서민 간에 장벽이 실제로 붕괴되고 있으나 사제는 빈곤하거나 소득이 낮은 직종에 종사하더라도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인도에서 카스트가 붕괴되지 않는 것은 독립 전 영국이 종교 불개입이라는 구실 하에 카스트의 개혁을 시도하지 않고 오히려 인도인의 국민적 단합을 저해하기 위해 분할정책의 일환으로 이용하였기 때문이며 현재 인도 정치인의 대부분이 사제로서 카스트의 타파를 위해 적극 노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9368
셋째, 힌두교와 이슬람교간의 갈등으로 인한 종교분쟁이다.
인도반도의 사회문제는 주로 종교와 언어의 분열에서 기인하며, 특히 종교적 분열이 보다 심각하다. 이 중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분쟁이 사회문제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힌두교는 남부아시아의 토착종교로서 지배적이었고, 현재에도 다수의 신자를 지니고 있다. 반면에 이슬람교는 인도반도를 침입한 정복자의 종교로서 무갈제국이 인도반도를 지배하던 16-17C에 널리 확산되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대립은 종교적인 상반성 때문이다. 힌두교는 다신교적이며 종교의식이 인간의 특성과 사회적 역할에 따라 다양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슬람교는 철저한 일신교를 주장하고 신앙과 생활의 동일성을 주장한다. 힌두교는 타 종교에 대해 관대한 반면, 이슬람교는 타 종교를 배척한다. 힌두교가 전도의 필요성을 주장하지 않는 반면, 이슬람교는 모든 인간을 진실한 종교로 끌어들이는 것이 사명이라고 주장한다. 힌두교가 카스트제도의 불평등성에 입각한 사회체제를 주장하는 반면, 이슬람교는 모든 신자가 본질적으로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힌두교에서 소를 신성시하는 반면, 이슬람교에서는 소를 식품이나 제물로 사용한다. 힌두교의 축제가 소란스럽고 흥청거리는 반면, 이슬람교는 엄격하고 침묵적인 의식을 행한다.
양 종교집단간의 반목은 영국지배 하에서 힌두교도가 행정기관과 기업을 차지함으로서 발생했다. 이슬람교도들은 힌두교도가 다수인 단일국가로 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치적인 분리를 요구하여 1947년에 영국으로 부터 독립 직후 북부인도에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간에 폭동이 발생했다. 결국 인도반도는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영국령 북서부와 북동부가 파키스탄으로, 그 나머지가 인도로 분할되었다.
분단 후에도 대규모의 인구이동과 심한 사회적 경제적 혼란이 초래되었다. 분단 후 신정부가 수립되기까지 양 종교집단의 빈번한 충돌로 수 십만명이 사망했고, 마침내 힌두교도와 시크교도는 인도로, 이슬람교도는 파키스탄으로 각각 이동함에 따라 약 1,700만명의 인구이동이 있었다.
양국의 분할로 경제적인 피해도 막심했다. 인도반도의 주요 식량생산지역이 파키스탄에 귀속된 반면, 철광석과 석탄의 주요 생산지가 인도에 귀속 되었다. 주요 면화재배지역인 신드와 주요 황마생산지역인 뱅골지역이 파키스탄(현재 방글라데시)에 귀속된 반면 면방직공업과 황마공업지역은 인도에 귀속되었다. 주요 경제활동 중심지의 분할로 인해 양국은 급속한 인구증가, 저조한 자원개발, 빈곤, 지역적인 분리문제 등의 난제를 공유하게 되었다. 심지어 독립 당시 이슬람교도가 많은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을 파키스탄으로 귀속한 결과 분절국(exclave state)이 되었다가, 마침내 1971년에 인도의 개입으로 동파키스탄이 파키스탄으로 부터 분리, 방글라데시가 되었다.
힌두교축제 쿰브멜라(Kumbh Mela)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충돌
갠지스강에 목욕하는 힌두교도들.
넷째, 인도와 파키스탄간에 수자원분쟁과 영토분쟁이다.
힌두교와 이슬람교간의 종교적 분쟁은 인도반도를 분단 시켰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 영토분쟁을 포함하는 다수 문제를 유발시켜 양국 간에 긴장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펀자브(Punjab)의 수자원 분배에 관한 분쟁은 파키스탄의 주민생활에 중요한 대부분 하천(인더스강, 펀자브의 여러 하천)의 상류가 인도영토에 속한 결과 용수 사용문제에서 비롯되었다. 1960년에 양국의 협정결과 펀자브 동부에 있는 베아스(Beas), 수틀레지(Sutlej), 라비(Ravi) 등의 3개 하천 용수를 인도에, 세나브(Chenab), 제룸(Jhelum), 인더스 등의 하천 용수를 파키스탄에 할당함으로서 해결되었다.
또 다른 문제는 영토분쟁으로서 1948년과 1965년에 발발한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카슈미르(Kashmir)분쟁이 그것이다. 이 지역 주민의 77%가 이슬람교도이고, 자무(Jammu)근처에만 힌두교도가 집중해 있을 뿐이다. 1947년 독립 당시 이슬람교도가 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힌두교도인 번왕(潘王)이 인도 귀속을 표명한 반면, 이슬람교도들은 파키스탄 귀속을 주장함에 따라 폭동이 발생, 양국의 충돌로 발전했다. 1949년 1월에 UN의 조정으로 휴전되었고, 그해 7월에 정전선이 확정되어 비옥한 카시미르곡이 인도의 점령하에 들어갔다. UN에서는 주민의 투표에 의해 카시미르의 귀속을 정할 것을 권고했으나 인도는 거부했다. 파키스탄정부는 카시미르가 인더스강의 상류에 해당하기 때문에 하류지역의 관개용수와 상류에 수력발전 문제로 이 지역을 중시하고 있고, 카시미르지역의 이슬람교도 해방을 국가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양국 간의 분쟁이 계속되었다. 1956년 봄에 양국의 무력충돌을 시작으로 9월에는 본격적인 전투로 발전했다가 1966년 1월에 UN의 조정으로 정전협정이 이루어져 소련의 중재에 따라 타쉬켄트(Tashkent)에서 양국 수뇌회담, 잠정적인 화해 성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분쟁이 카시미르에서 시작되었으나 펀자브로 확산되어 격렬한 전쟁으로 발전했고, 1971년에는 인도-파키스탄의 전선에서 충돌이 재발했다. 그러나 여전히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는 양국 간의 분쟁은 난제로서 폭탄처럼 잔존해 있다.
http://blog.naver.com/azalean7/3003688834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0&aid=0000269449
다섯째, 공식언어인 국어 채택문제이다.
남부아시아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언어도 종교와 더불어 국가의 분열요인이 되고 있다. 인도반도에서 통용되고 있는 언어는 북부에 아리아어군와 남부에 드라비디아어군으로 크게 구분되지만, 전자에 속하는 4개 언어와 후자에 속하는 8개 언어가 있고 그 외에 소수 주민들이 사용하는 10여종의 언어와 방언이 있다.
이 때문에 민족주의자들이 공식언어를 국어로 채택하려 했고, 이것이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 1965년에 인도정부가 사용인구가 가장 많은 힌디(Hindi)어를 국어로 채택하였으나 남부에 주로 거주하는 드라비다인의 반발로 영어가 제2국어로 채택했다. 그러나 사용 언어군이 혼재된 지역에서는 상이한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 간에 유혈폭동이 발생하였고, 각 집단의 요구가 인도반도에 정치단위의 내부적인 경계를 이루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여섯째, 소수 민족의 분리 독립문제이다.
데칸고원과 북동부에 거주하는 약 3,000만 명이 민족의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에서 초타 낙푸르(Chota Nagpur)구릉지역에 거주하는 부족의 자치권을 승인했고 나가랜드(Nagaland)의 북동부의 경우 아삼-미얀마 국경선을 따라 있는 구릉지역을 주로 분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족 단위의 주를 요구하는 운동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인도여행에 필요한 지식
인도 여행을 하는데 적합한 시기는 가을-겨울(11월-2월)이다. 고온건조한 고온기(3-6월 중순)와 고온 습윤한 우기(6월 중순-10월)는 피하는 것이 좋다. 다량의 비가 내리는 우기는 특히 피하는 것이 좋다.
인도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열대성 전염병이 다양하고, 더구나 불결한 곳이 많기 때문에 여행중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인도는 외국인의 관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매력을 가진 나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연구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몇 번 들린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인도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인도는 초기의 고대문명이 발상한 이후 여러 번 상이한 문화를 가진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 많은 왕국들의 흥망이 계속된 나라로, 우리에게는 생소한 다양한 문화가 누적되어 혼합되어 있다. 특히 종교적으로 우리가 접해 보지 못한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이들 종교활동을 이해하지 않고 인도여행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뿐만아니라 위험성이 크다.
또 정치적, 사회적으로 복잡한 나라로, 안정되어 있지 않은 무질서한 사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안개같은 신비의 이면에 많은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여러 면으로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국가이다.
인도 여행을 하기 전에 여행경험자들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가능한 많이 수집,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반드시 현지사정에 밝은 가이드가 동반하는 여행방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인도여행을 하면서 목숨을 잃거나 어려움에 처한 배낭여행자들에 관한 소식을 많이 들어오고 있다.
인도가 중국에 비해 규모가 작은 나라이지만 분명히 대국(大國)에 해당한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동일한 문화를 가진 중국에 비해 훨씬 복잡 다양하고 낯선 문화와 사회환경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무계획적으로 인도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는 것은 인도를 이해하는데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따라서 관심지역을 선정해서 사전에 충분히 검토한 후에 계획성 있는 여행을 해야 시간과 경비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인도가 지닌 지역성을 충분히 숙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인도에는 수 많은 관광명소가 있고, 사람에 따라 관심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인도와 관련된 전문여행사나 여행카페를 방문하여 추천하고 있는 여행지를 탐색하여 자신에 맞는 여행코스를 설정한 후 전문여행사와 의논해야 할 것이다.
인도는 일본이나 중국처럼 절대로 준비없이 훌쩍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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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60091&cid=47307&categoryId=47307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96095&cid=42864&categoryId=42864
http://search.daum.net/search?nil_suggest=btn&w=tot&DA=SBC&q=%EC%9D%B8%EB%8F%84+%EC%97%AC%ED%96%89
첫댓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바라트...^^ 좋은 자료 감사히 잘 봤습니다. 꾸벅.
보라님께서 관심이 있으시군요. 오늘 날씨가 엄청나게 추워요, 따뜻하게 차리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