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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안심입명’이 즉심즉불”
[기획/수행의 향기] 청주 관음사 이두스님
2006-07-25
“심심 산골짝 찾는 사람 없을 때 적막은 감미롭고/ 푸른 솔 구름 낀 산길을 걸으면 문득 느끼는 선보(仙步)/ 약 캐다 돌아오면 토굴 앞엔 낙엽이 쌓이고/ 집 뒤로 돌아가면 높은 산마루 먼 곳을 바라보던 마음은 무한(無限)/토방에 돌아오면 끝없이 깊어지는 고요로/ 오던 길도 가야할 길도 몰록 잊어지는 산거인(山居人).”
욕심.어리석음.성냄
녹여 없애
병들기 이전의
청정심 회복해야돼
사진설명: 화안애어(和顔愛語)를 실천하는 스님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신도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우암산(牛岩山)은 높이는 338m에 불과하지만 숲이 우거지고 유서 깊은 사찰이 많은 청주의 진산(鎭山)이다. 약수터와 잘 정비된 순환도로 등산로가 나있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인 이곳은 20여 년 전만 해도 도심 속의 산골이었다. 청주대학교 뒤편 산허리께 관음사가 있다. 관음사 회주 이두스님이 20여 년 전 세운 신생 사찰이다. 청주지역에서 발간되는 어느 월간지에 최근 실린 이두스님의 시조 ‘산거’(山居)는 관음사 초기 시절 스님이 우암산 어느 산길을 거닐었을 법한 광경을 떠올리게 한다.
약초를 캐러 산을 나섰지만 꼭 그 목적만은 아니다. 신선처럼 그냥 거닐 뿐이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새 낙엽이 잔뜩 쌓인 토방이나 산이나 적막강산은 매한가지. 그 속에 사는 주인의 마음도 똑같이 적적하다. 그래서 산거인은 오던 길도 가야할 길도 없다. 발길 닿는 어느 심심 골짝이 곧 토굴이요, 적막하기 그지없는 토굴이 곧 푸른 솔 구름 낀 산과 다름없으니 산 사람도 곧 산이 되었다.
이 글의 주인공 이두스님은 산을 무척 좋아했다. 제자 현진스님(관음사 주지)은 “몇날 며칠이고 산으로 가셨다 오시곤 했다”고 말했다. 사찰과 산이 한 몸이긴 하지만 스님의 산사랑은 유별나다. 그래서 그 많은 시들도 온통 산 이야기다. 스님은 어쩌면 산이 좋은 것이 아니라 산과 한 몸 한 마음이 되는 경지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스님은 그래서 ‘산속초막’에서 “세상을 잊고저 산속에 숨은 산인(山人)의 생애/ 전화 TV와 카렌다 모두 없는 산중세월에 몇 해가 지났는진 모르고/ 거울을 보니 내 인생 푸른 봄이 떠난지 오래구나/ 산골짝 초막에서 깊이 잠들고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 꿈을 꾸다가 문득 깨니/불타는 낙조 속에 새소리도 함께 탄다”고 노래했다. 산 속에서 세월을 다 보냈으니 스님은 산에 사는 도인이요 신선과 다름없다.
불현듯 ‘토굴’을 떠나 며칠이고 산을 거닐던 ‘산거인’이 안타깝게도 지금은 토굴 앞을 떠나지 못한다. 8년째 앓는 지병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진 탓이다. 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또렷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것이 서툴다.
서울 경기 북부가 폭우로 물난리를 겪던 지난 12일. 일부 도로가 물에 잠겨 외곽으로 나가는 길은 어느 곳 할 것 없이 차량으로 꽉 들어찼다. 오전부터 서두른 덕분에 간신히 서울을 빠져나가 청주에 이르자 이번에는 한여름 뙤약볕이다. 폭우로 인해 약속시간 보다 늦겠다고 미리 말했을 때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스님의 대답이 흔쾌하지 않다고 여긴 까닭이 이해 된다. 이젠 금방 떠나온 서울의 물난리가 꿈결처럼 아득하다. 사람이란 몸소 겪지 않으면 알지 못하나 보다.
영화 ‘짝패’ 촬영지라는 소개 사진이 걸린 관음사는 아래 일주문부터 가파른 경사로 이뤄졌다. 이두스님이 토굴이라고 했던 관음사는 스님의 노력 덕분에 청주를 대표하는 큰 사찰로 변모했다. 8년째 병환을 앓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스님은 정정했다. 거동이 불편하고 귀가 어두워지기는 했지만 예전과 다름없이 자세가 꼿꼿하고 표정도 밝다. 스님은 반갑게 맞이했다. “몸이 불편해 기자가 원하는 만큼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점이 미안하다”고 했다.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기자의 말에 스님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수행은 별다른 시간 별다른 곳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는 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번뇌망상 소멸하는 것
스님은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병”이라고 했다. “우리 중생은 모두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는데 다름 아닌 탐(貪)ㆍ진(嗔)ㆍ치(痴)다. 탐심이란 모든 것을 분수없이 자기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이고, 진심이란 지나친 욕심으로 서로 싸우고 시기하며 성내는 것이며, 치심은 어리석음을 말한다. 불교의 수행정신은 이런 세 가지 마음의 병을 녹여 없애고 병들기 이전의 청정한 마음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욕심을 버리고 만족하며 사물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이다.”
스님은 이처럼 평소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님은 “우리의 수행은 어떤 별다른 시간과 별다른 곳에서 부처님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번뇌 망상을 소멸하는 것이다. 자기 안에서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찾아야한다. 자기 밖에서 찾는 것 자체가 망상이다” 스님은 “이것이 바로 즉심즉불(卽心卽佛)의 원리”라고 설했다. 마조 도일(馬祖道一) 선사의 제자인 대매(大梅)가 스승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즉심즉불(卽心卽佛)이니라” 마음을 강조했던 마조에게는 남악회양이라는 기라성 같은 스승이 있었다. 마조가 선정을 닦는 것을 보고 회양이 물었다. “스님은 좌선하여 무얼하려오.”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회양스님은 암자 앞에서 벽돌 하나를 집어다 갈기 시작했다. 그러자 스님이 물었다.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거울을 만들려 하네.”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겠습니까.”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한다면 좌선을 한들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회양선사는 말했다. “선(禪)은 앉거나 눕는 데 있는지 않으며, 앉은 부처(坐佛)를 배운다고 하면 부처님은 어떤 모습도 아니다. 머뭄 없는 법에서는 응당 취하거나 버리지 않아야만 한다. 그대가 앉은 부처를 구한다면 부처를 죽이는 것이며, 앉은 모습에 집착한다면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두스님도 “마음 밖에 어떤 실존이 있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늙고 병드는 것은 태어난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문제는 그 이후의 행동과 마음가짐이다. ‘체로금풍’(體露金風). 가을바람에 둘러싸고 있던 나뭇잎이 다 떨어진 뒤 본래면목이 드러난다고 했다. 10여년을 괴롭히는 병고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얼굴과 따뜻한 말을 잃지 않는 스님의 모습은 백 마디 이상의 말을 들려주었다.
청주=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금오문도회 문장 역임…시민운동 후원 ‘詩人’
1929년 강원도 김화에서 태어난 스님은 한국전쟁 당시 가족들이 모두 남으로 내려왔다. 백형(伯兄)은 김구 선생을 따르는 민족주의자였다. 스님은 학도병으로 참가, 사선을 넘나들었다.
삶과 죽음이 찰나에 바뀌는 순간을 목도하면서 출가를 결심하게 됐다. 스님은 “삶과 죽음이 순간순간 빗겨가는 현장에서 모든 존재는 생(生)과 사(死)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쟁에서 돌아와 어느 비구니 스님을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출가의 길을 생각하게 된다. 스님은 “어느 이름 모를 비구니 스님이 ‘나는 18세인데, 18세 이전에는 어디 있었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라면서 ‘참선을 해보라’고 권유했는데 그 말이 생각나더라”고 말했다.
이두스님은 이후 공주 갑사를 찾았다가 탄성스님을 만났고, 이곳에서 탄성스님 권유로 금오(金烏)스님을 은사로 1950년 출가했다. 스님은 “‘수행하려면 화두를 들어야 된다’던 은사 금오스님을 처음 만난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스님은 금오스님을 은사로 모신 후 몇 해가 지난 뒤 법주사에서 은사를 만났다. 금오스님은 ‘이 뭐꼬’ 화두를 던졌다. “제대로 살려면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면서 용맹정진하고, 한시도 화두를 놓치면 안된다”던 은사스님을 모시고 직지사 천불선원에서 10일 동안 잠자지 않고 용맹정진하기도 했다.
사형인 탄성스님의 뒤를 이어 금오문도회 문장을 역임했으며 갑사ㆍ법주사 주지 등을 지냈다. 청주 경실련 대표로 시민운동을 뒤에서 후원했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스님은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자주 강조한다.
현재 조계종 원로의원인 스님은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시집 〈겨울 빗소리〉와 수상집 〈푸른산방〉 〈산속에서 산을 보는 법〉 〈향리에 이르는 길〉 등 다수 책을 펴냈다.
[불교신문 2248호/ 7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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