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주가를 부르다 / 강미숙
환갑의 나이를 맞이하여 낮에 하는 일들을 대폭 줄였다
어린이집 운영과 보습학원을 운영하며 지내 온 이십 여년의 세월을
호박잎에 돌돌 말아 쌈밥처럼 삼키고
이젠 건강관리와 마음수련을 하면서
작은 찻집을 혼자 운영하며 쉬어가기로 했다
백 세 시대라고 하니 향후 또 일을 벌일지는 나 자신도 의문이지만
아마도 내 삶의 텃밭을 줄여 소소하게 살아가리라는 예감이 든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하여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명목으로 삼 년간을 공중목욕탕과 헬스장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씻으며 산책이나 요가를 했다
지금은 거의 독감처럼 관리하며 마스크 착용에 대한 의무도
일부 기관을 제외하고는 해제되었기에
헬스 겸 목욕을 할 수 있는 동네헬스클럽에 일 년 치의 회비를 내고 등록하였다
석 달쯤 다니다 보니 처음에 낯설고 어색했던 회원 중 눈인사하거나
서로 안부를 물을 정도로 친해져 갔다
여탕에서는 얼굴에 마사지 하는 법도 배우고 반찬 만드는 방법들도 공유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어 좋다
한 달 전부터 세분의 팔십 대 어르신과 친하게 되었다
친하다는 말이 무례한 표현일진 모르겠지만 그만큼
웃음 코드와 감성 코드가 잘 맞기에 필자는 세월을 넘나드는
좋은 관계로 말하고 싶다
그 어르신들을 소개하자면
커트 머리를 하시고 귀골이 장대하신 분은
성격이 활달하시고. 다리가 안 좋으셔서 사우나실에서 온탕으로 오시는 데 한참 걸리시며
세 분 중 리더쉽이 있는 분이다
중간 키의 어르신은 허리가 꼿꼿하시며 건강해 보이시고
제일 작은 어르신은 두 팔을 허리 뒤쪽으로 뻗으시고 두 다리를 배보다 앞으로 뻗어
나무늘보처럼 느린 걸음이 상당히 불편해 보이는 분이다
며칠 전에는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았던 나는
그 팔십 대 어르신 삼총사께
때샤워를 뿌려 등을 밀어 드리면서 우스갯소리도 해드렸다
목욕을 마치고 탈의실 평상에 앉아서는
로션을 발라 드리고
향수도 뿌려 드렸다
헤어로션도 발라드리고
눈썹도 다듬어 드리는 등
살갑게 대해드렸다
어르신 삼총사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치 처자들처럼 깔깔대고 웃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난날
목욕탕에서 어르신 삼총사를 만났다
그 중 카리스마어르신이
갑자기 저녁 식사를
우리 화담에서 하신다고 하셨다
화담은 찻집 겸 주점식 운영이라 밑반찬도 없고 식사로는 비빔국수나 김치볶음밥 정도로만 된다며
겸손한 어투로 말씀드렸다
그래도 괜찮다시며 꼭 오시겠다고 하셨다
거절하면 연세 많은 노인이라 그렇게 대한다며 섭섭해하실까봐 얼른 대답하곤
대충 몸에 비눗물을 씻어내고 서둘러 나왔다
그리곤 걸어서 칠 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냅따 뛰었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을 꺼내어 상차림을 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도 며칠 전 담근 오이소박이랑
열무김치도 있고 무장아찌볶음,마늘장아찌,
봄에 담근 두릅장아지,아주까리장아찌들과 검은콩조림,마른반찬들이
있어서 위생팩에 조금씩 나누어 담고는 또
집에서 오 분 거리인
화담으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번개총알처럼 움직여 기본상차림을 하고 있었다
십오분이나 지났을까?
드디어 어르신들이 들어오셨다
나는 신기하고도 떨린 가슴으로
삼총사를 맞이하곤
둥근 테이블로 모시고 물과 과자들을 내놓았다
카리스마어르신이 우선
막걸리부터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나도 한잔 하라고 하셨다
나는 막걸리 두 병과 잔을 네 개 들고 가서
한잔씩 올리고
나도 반 잔 따루어 건배했다
동창회 때 정옥이란 친구가 불렀던 권주가 생각이 나서 권주가도 한 자락 올렸다
어르신 삼총사는 유난히 막걸리가 달다고 하시며
오이소박이 등 반찬들도 맛있다며 잘 드셨다
마치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오신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훈훈하면서도 짠했다
슬그머니 주방으로 온 나는 저녁 식사로 김치볶음밥과 달걀국을 맛있게 해서
어르신들께 드렸다
물렁한 황도와 달달한 배도 정성껏 깎아 드리고
최근에 산 뚜껑 있는 고급 다기 잔에
한방차도 내드리며 섬세한 서비스정신을 발휘하여
올드언니들을 모셨다
세 시간이 지나도록
이런저런 세상살이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
한 언니가 일어서야 할 시간이라고 하셨다
그 올드언니는 읍내에서 떨어진 사동이라는 마을에 사시는 분인데
버스가 저녁 일곱 시에 온다시며 지팡이를 짚고 나서셨다
일어서시는데 삼분
화담에서 나와 힘겹게 걸으시느라 남은 시간 십칠 분으론 무리였다
나는 같이 부축해 걷다가 도저히 안 될 거란 생각에 택시를 불렀다
그리곤 마트 앞에 있는 빈 의자에 올드언니를 앉게 해드리고 택시를 기다렸다
올드언니는 눈물을 흘리시며 택시 안 타도 되는데 하시며 고맙다고 하셨다
택시가 와서 카드 결재 팔천 원을 해드리고 사동이요~
하면서 태워 보내드렸다
화담으로 돌아오는 길에 속이 편안하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화담에 오니 어르신 두 분께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섰다
계산하려고 가격을 물으셔서 삼만 사천 원인데
그냥 삼만 원으로 마수걸이나 해주시라며 받았다
그때
단골손님인 남자소장이 왔다
나 보다 한 살 위인 소장이 그 어르신들을 안다며 인사를 하고 같이 앉았다
그리곤 그 테이블 계산을 하겠다고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카리스마 넘치시는 어르신이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자
소장은 택시비 만 원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기분이라며
막걸리 두 병을 드렸다
그렇게 세 시간 반이 지나서야
어르신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셧다
카리스마 어르신은 취기가 있어
오토바이를 못 타신다며
삼총사 중 가장 건장하신 어르신 집에 자고 간다고 하셨다
썰물이 지듯
오토바이를 화담에 맡겨둔 채 두 분이 가셨다
나는 소장을 다른 테이블로 안내하여
물과 메뉴판을 낸 다음
테이블 가득 쌓인 그릇들과 빈 병들을 치우고는
차분히 저녁 영업을 시작했다
아침에 뒤베란다에서 내다보니 빨간 오토바이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나는 두 가지의 마음이 교차했다
어젠 내가 센스 있게 참잘햇다는 마음과
다음에[ 또 할머니부대들이 오신다고 할까봐 은근 겁이났다
한 번은
잘해드릴 수 있지만
두 번은 잘할 자신 없을 것 같았다
오래간만에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었고 괜한 염려증이 유발되는 손님이었다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부대가 될 텐데
젊은 사장이 나와 친구들을 받아줄지 의문이생겼다
그 때 망설임 없이 받아 줄 수 있을 만큼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도록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어르신 삼총사처럼 좋은 벗 두 명을 꼭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상청에서 폭염주의보가 발령 된날,
팔 월의 들끓는 햇살 두 줌이
카리스마 넘치는 어르신의 낡은 오토바이 핸들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