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하 서산 마애삼존불)이 보고 싶어서 다녀왔습니다.
지난 5월 30일(화)에 답사했습니다.
1~2년에 한 번씩은 들르는 곳이지만, 언제나 새롭고 다정함이 느껴지는 마애불입니다.
1.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은 처음 발견 때부터 미소의 아름다움이 주목받은 마애불입니다.
고고학자 김원룡이 '백제의 미소'라는 표현을 쓴 뒤, 지금은 누구나 '백제의 미소'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로 삼국시대의 불상에서 나타나는 '미소'를 학자들은 '아르카익 스마일(archaic smile)'이라고 합니다.
영어 발음을 들어보면 '아르케익 스마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가까울 것으로 보이는데, 오래전부터 '아르카익 스마일'이라 표현해 왔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일본 학자들이 'アルカイック スマイル(아루카이ㅆ쿠 스마이루, 古拙の微笑)'라고 표현한 것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말 번역 역시 '고졸한 미소'라고 쓰고 있습니다.
아르카익 스마일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에서 보이는 공통된 표정 중의 하나입니다. 흔히 정적인 조각상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는 표현이라고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 미소가 인도, 중국을 거쳐 삼국시대의 불상에 표현되었고, 일본 불상에까지 전해지게 됩니다.
'아르카익 스마일'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입꼬리를 살짝 올려서 묘사하는 것입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림으로써 자연스럽게 미소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미소를 가진 서산 마애 삼존불은 우리나라 삼국 불상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미소를 지닌 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하나,
서산 마애 삼존불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행인(杏仁)'형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소와 함께 삼국 불상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로 언급되는 것이 행인형의 눈동자입니다.
'행인(杏仁)'이란 살구씨를 말합니다. 우리가 살구씨를 볼 일은 많지 않지만, 삼국시대 불상 조각에서 '행인형의 눈'이란 표현은 쉽게 접하고 있습니다. 눈동자의 위쪽 선과 아래쪽 선을 살구씨나 은행알처럼 호를 그리는 모습으로 둥글게 묘사하는 표현법입니다. '행인(杏仁)'이란 표현 역시 일본에서 가져온 용어인데 대체할 다른 표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졸한 미소', '행인형의 눈'... 어려운 용어이지만, 표현된 모습을 보고 나면 매우 단순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불상에서는 삼국시대의 불상에서 주로 묘사되는 표현법입니다.
이제 서산 마애삼존불을 사진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관리하는 건물 뒤편으로 오르면 산신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서산 마애 삼존불의 전경입니다.
위쪽 바위의 모습이 다소 위태롭게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바위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계측기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왼쪽 빨간 선이 측정을 위해 설치한 선입니다.
서산 마애 삼존불을 살피기 좋은 시간대는 여름철 기준 오전이라고 생각됩니다. 오후 시간대에는 마애불이 조각된 면에는 해가 비치지 않아서 오전보다는 자세히 살피기 어렵습니다. 이 사진은 오후 3시에 촬영했는데, 해가 좌측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의 위치와는 상관없이 언제든 미소는 살필 수 있습니다.
마애불 바로 앞에 있는 안내문을 살펴보다, 이 마애불의 미소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대로 옮겨 봅니다.
본존의 미소 : "장쾌하고 넉넉한 미소(rich benign smile)"
우협시의 미소 :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warm gentle smile)"
좌협시의 미소 : "천진난만한 소년의 미소(innocent smaile)"
미소를 표현하는 방법이 이처럼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친근하게 다가온 것은 좌협시의 '천진난만한 소년의 미소'라는 표현이었습니다.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에 대한 표현도 '미소를 머금은', '미소를 간직한', '미소를 품은' 등으로 각각 묘사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놀랐습니다. 우리말의 풍부한 표현법, 그리고 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안내판 작성자의 어휘 구사력 때문일 것입니다.
삼존불의 미소를 좀 더 근접한 사진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장쾌하고 넉넉한 미소(rich benign smile)"
다른 계절에 촬영한 본존 미소 사진 한장 더...
(11월 28일 오후 2시 30분)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warm gentle smile)"
"천진난만한 소년의 미소(innocent smaile)"
참고로,
본존 두광에 표현된 3기의 화불도 찾아보세요.
화불이 잘 보이지요?
덤으로, 여름철 해가 들어올 때의 사진 몇 장 추가합니다.(8월 6일 오전 11시 전후 사진)
햋빛이 강해 불상도 강렬한 인상이 느껴집니다.
2. 사라진 석불
서산 마애 삼존불을 답사할 때면 늘 들렀던 곳이 있습니다.
불이문을 통과하면 바로 보이는 이곳....
지금은 석등 대좌로 알려진 부재만 남아 있는 이곳에 예전에는 석불좌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마 모두 기억하실 것입니다.
1996년, 아직 둘째가 태어나기 전 이곳에 들렀던 사진이 있네요.
지금은 서른살이 넘어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이 녀석이 4살일 때입니다.
이 석불은 서산 마애 삼존불에 비하면 다소 거친 모습이어서 주목을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늘 빠뜨리지 않고 살펴보았던 불상입니다.
본래 근처의 서산 보원사지 금당 뒤편에 있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라 합니다.
2005년 무렵에 도난당했으니 벌써 20년이 되어가고 있네요. 지금은 어느 곳에 숨겨져 있는지 안타깝습니다.
석불에 뽀뽀하던 이 녀석은 이 석불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기억하지 못하겠지요.
도난 직전인 2003년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3. '사리안단'
늘 그렇듯 석불이 사라진 자리이지만 아쉬움에 또다시 이곳에 들렀습니다.
여전히 석등 대좌로 알려진 부재만 자리를 지키고 있고 불상이 놓여 있던 자리는 허전함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다 우연히 뒤편 바위에 새겨진 글자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있었지만 그다지 주목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살펴보게 된 것입니다.
바위에 새겨진 내용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巨師最賢生舍利安壇 (거사최현생사리안단)
法師守漢 (법사수한)
이 글씨를 읽다, '舍利安壇'이란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마애사리탑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舍利安壇'의 의미는 '사리를 안치한 단'이란 의미로 해석되었습니다.
'탑'이 아니라 '단'이란 표현을 쓴 것이 생소했습니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이란 흔히 제단이나 강단 등 평평한 곳에 살짝 높게 설치한 네모형의 시설물을 말하는데,
여기는 무슨 의미로 '단'이란 표현을 썼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곳이 사리를 봉안한 곳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입니다.
더구나 그냥 '舍利'가 아니고 '生舍利'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 사리를 안치했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혹시 하는 생각에 앞뒤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일반적인 마애사리탑에서 볼 수 있는 사리공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앞쪽의 표현도 이해가 쉽지 않았습니다.
'巨師最賢', 흔히 남성 재가신도를 뜻하는 '거사'와는 한자가 다릅니다. 보통 남성 재가신도는 '居士'라고 쓰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단어는 아니어서 직역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판단되어 '큰 스승' 정도로 해석해 봅니다.
그리고 '最賢'은 법명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巨師最賢生舍利安壇'은 '큰 스승 최현의 실제 사리를 안치한 단'으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法師守漢'은 이 단을 만든 수한이란 승려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法師인 守漢이 큰 스승이라고 표현했으니 最賢 역시 승려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제가 판단해낸 결론은, 이곳은 승려의 사리를 봉안한 장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봉안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니, 앞쪽에 놓인 석등 부재로 알려진 석물에 눈길이 갑니다.
그동안 석등 부재라는 것에 대해 이견을 가질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위에 쓰인 글귀를 보고서 고민해 보니, 석등 부재가 아닌 승탑의 부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갑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가운데 구멍 주변을 살짝 높여서 다듬은 흔적이 보입니다. 대부분 마모되었지만 일부가 남아 있는 모습입니다.
일반적인 석등 하대석은 촉을 꼽는 구멍이기 때문에 이처럼 주위를 높여서 다듬을 이유가 없고, 그런 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멍은 사리공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됩니다. 위쪽 탑신석의 아랫면에 사리공을 덮는 더 큰 구멍을 만들어 올려놓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즉, 석등 하대석으로 알려진 이 부재는 승탑의 기단 부재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더구나 새겨진 안상의 모양이 조선시대에 유행하던 모습이어서 그 가능성을 뒷받침해 줍니다.
즉, 법사 수한이 스승의 사리를 안치한 승탑을 만들고, 바위 면에 그 내용을 새겨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입니다.
그 시기가 언제인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안상의 모양으로 보아 조선 후기 이후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이 제가 간단히 살펴보고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이상으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을 둘러본 간단한 답사기를 마칩니다.
삼존불의 미소와 사라진 석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리안단'이란 각자를 살펴보고, 각자가 있는 곳이 승려의 사리를 봉안한 곳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 자세한 내용은 숙제가 될 것 같습니다.
사리 봉안의 시기가 조선 후기 이후일 것으로 생각되나, 자세한 내용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을 적었으니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내용이 있다면 의견을 교환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좋은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다녀온 곳이지만 한번 더 가서 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거 같습니다.
재 정독 합니다...^^
푸른바다님의 좋은 글과 사진 잘 보고 있습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
'巨師'를 고전종합DB에 검색해 보니 이의현(1669~1745)의 문집 도곡집 (陶谷集)에 단 한 차례 나오고, 각주에 이르기를 "불교에서 계를 받은 남자 신도에 대한 존칭어로, 속가에 머물고 있지만 도를 이룬 큰 선생님이란 의미이다. 여자 신도를 높여서 보살이라고 칭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니 '居士'와 같은 것으로 본 듯합니다. 세종아빠님 말씀대로 큰 스승으로 봐도 무방할 듯도 합니다.
그나저나 아이의 뽀뽀까지 받고 멀리 가신 불상은 언제 돌아올까요~
일반적인 단어는 아니니 '큰 선생님', '큰 스승'으로 보면 틀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승려인지 여부가 불확실하네요.
말씀하신 "도곡집'에서는, "승려가 없고 4명의 거사가 있다"고 하고 있어서, 巨師가 승려가 아닌 다른 뜻으로 쓰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글쓴 사람이 법사 수한으로 되어 있어서 저는 승려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고민이 필요해 보이네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세상에.. 글 읽고 당장 서산으로 달려가고 싶어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있습니다. 안간지 오래되었는데....작년 겨울.. 보원사지에서 첫눈을 만난 날도 여기엔 못 갔었거든요. 얼른 가보고 싶어집니다. 피가 뜨거워지고 있어요..ㅎㅎㅎ 감사합니다. 세종아빠님..^^
아란두님 오랫만입니다.
저도 다시 가고 싶은 곳은 많습니다만, 아란두님처럼 열정이 많지 않아서...
답사 때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늘 그렇듯 불상이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갈 때마다 삼존불 만날 생각에 아무생각도 못했습니다. 다시 갈 때는 꼼꼼하게 봐야겠습니다. 미소도 다시 보고 싶네요..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마애 삼존불입니다.
본문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안내판에 우협시보살을 제화갈라보살이라고 확정적으로 쓰고 있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남습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
도난당한 지도 모르고 습관처럼 찾았다가 허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분명 각자를 보았을 터이나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당연히 석등대좌로 생각했었는데, 사리공을 가정하니 부도일 가능성도 있겠군요.
세종아빠 님의 새로운 발견과 해석에 누구보다 '마애부도 마애탑'의 저자 선과님이 제일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저도 겨우 이제야 각자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능성을 고려해 추정해 본 것이고요.
선과님께는 연락드렸습니다.
무애님과 함께 하는 답사길은 배울 것이 많은데... 답사 때 자주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
저도 사라지기전 불상은 보았습니다 저도 사진을 찾아봐야겠네요
18년이 지났으니... 그전부터 답사하신 분들은 기억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말씀처럼 이제 귀한 사진이 되었네요. ^^
정독했습니다
다시가서 보면
더 잘보일듯 합니다
사라진 불상도 다시 돌아오고 싶을겁니다
좋은 시선으로 살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석불이 꼭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고 오기만 했네요
2번이나 갔어도....
사라진 석불이 있었다는 사실도
석등 대좌로 알려진 부재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좋은글
좋은사진
감사드립니다~~
마애님 반갑습니다.
늘 좋게 보아주시네요. 함께 답사할 날을 기다려봅니다. ^^
덕분에 사라진 석불도 처음봅니다.
그리고 뒷편의 글씨도 처음봅니다.
아름다운 석불님께서 이제 귀가하시길 발원합니다.
좋은글,설명 감사합니다.
산천초목님 말씀처럼 석불이 빨리 제자리를 찾기를 기원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개인적으로는인연 맻기가 참 어려운곳 임니다
가까이 갔는데도ㅡㅡㅡ
태풍 이 왔다가서
눈이 안 녹아서
얼음이 얼어서
보수 공사중 이라ㅡㅡ
통제와 인연이 있는 분
잘 보았습니다
아쉬운 경우가 많았네요.
이제는 별일없이 인연 맺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쇄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신 대좌가 걸렸기 때문입니다.
승탑을 앞에 안치하고 뒤에 있는 바위에 부도 주인공을 새긴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법사
스님을 이릅니다.
불교 단체, 불교학생회 등에서 활동하시는 스님을
지도 법사로 칭합니다.
개인적으로 명문은
법사 수한: 수한 스님
거사최현: 수한스님을 설명하는 문구로 큰 스승이며, 최고의 깨달음(득도)
생:몸에서 나온
사리단:사리를 안치한 단
법사 수한이 스승의 부도 조성기를 새긴 문구라면
글자를 아래쪽에 작게 기록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명문을 좌에서 우로 해석히였지만
조선후기
마애부도에서 한문을 좌에서 우로 새긴 사례가 안양에 몇 건 있습니다.
궁금해집니다
조만간 다여와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본문에서 언급했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단'의 의미도 그렇고, '법사'나 '거사'가 승려인지의 여부도 아직은 명확치 않은 것 같고...
그리고... 한문을 요즘처럼 좌에서 우로 쓴 경우를 저는 아직 보지 못해서 적응이 되지 않네요.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경우에는 그런 경우가 있을 것 같기는 한데요. 잘 모르지만, '법사 수한'부터 읽어 가면 일반적인 한문 어법에 맞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특히 승탑의 명문을 적는 방법으로는....
어쨌든 아직 정답은 없으니,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의견 교환하면 좋겠습니다.
@세종아빠
@선과 저도 이거 보았는데요.
이것도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거사 법홍과 현진당이 동일 인물인지도 불확실하고요.
날짜를 아래쪽까지 돌려쓴 것을 보면 일반적인 예로 보기 어렵지 않을까요?
옛 풍경과 요즘의 상태를 잘 보여줍니다.
저에게도 스태디셀러 부처님이지요.
언제 뵈도 좋고, 또 뵈러 가고싶은...
사진 고맙습니다.
늘 보고싶은 삼존불이라 자주 들르는 곳입니다.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
너무나 보고싶엇던 부처님 몇년전에 스쳐가듯 뵙고와서 항상 목마름이 잇엇는데
다시한번 짚어주시니 편하게 대리만족합니다
매의눈으로 놓친부분을 깨우쳐주시니
항상 존경의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마애삼존불에 눈이 멀어 그 주변을 미처 살펴보지 못하였습니다.
세종아빠님의 본문과 이에 대한 많은 덧글들이 모두 공부꺼리입니다.
세종아빠님의 설명과 선과님의 주장 모두, 개연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最賢"을 법명으로 보기에는 조금은 어색한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거사 최현 법사 수한, 생사리 안단"으로 읽고 싶습니다.
즉 '1. 거사 최현(우), 2. 법사 수한(좌), 3. 생사리 안단'으로 읽어 봅니다.
따라서 "큰 스승이며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법사 수한 스님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모신 단"으로 읽으면 될 듯 합니다.
명문 해석에 대해서는 아직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하겠습니다.
다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승탑에 당호를 새기는 일반적인 문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단순한 한문해석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의견 감사드립니다.
아드님이 부처님과 뽀뽀~하는 사진은
제가 찍는 문화재 사진보다 더 감동적이네요.
문화유산 촬영 때문에 자료 찾다가 보면 사진 기록은 남아 있으나 실물이 없어진
도난 문화유산 뉴스를 접합니다.
정말 그럴 땐 참 마음이 쓰디 쓰더군요.
좋은 시선으로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난문화재를 찾았다는 즐거운 뉴스의 주인공이 아이가 뽀뽀한 이 불상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