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폄] 변산반도 겨울 나들이...

[바람꽃]

고풍의상으로 빛이 나는 절

눈을 찾아서 눈을 피해가다

▲ 섬진강 휴게소의 화합의 돌탑

겨울은 역시 눈이 있어야 겨울이다. 일기예보로는 내륙지방에 큰 눈이 올 것이란다. 지금 우리는 눈을 찾아서 관광버스로 남해안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다. 그런데 지금 부산에서 큰 눈이 오고 있단다. 차들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단다. 눈길이 걱정돼서 부산으로 되돌아오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변산반도. 내가 처음으로 변산반도를 간 것은 1970년쯤인 것 같다. 그때 원불교 청년 수련대회가 변산 해수욕장에서 있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변산에 갔다. 석두암이며 원광선원 하섬 앞바다 등 외변산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내변산은 내게 미지의 땅이었다.

지난 16일 향목 산악회에서 변산 등산을 간다고 했을 때 나는 서슴지 않고 따라 나섰다. 11시를 넘어서 내소사 주차장에 닿았다. 7시 반에 부산 시민회관 앞에서 출발해서 줄곧 네 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몇 번 다녀간 변산이지만 낯이 설다. 외변산만 돌아갔기 때문이다.

▲ 내소사로 가는 길, 일주문을 지나면 150년 묵은 전나무 숲길이 나타난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전나무 숲길이다. 150년생 전나무 500그루가 600m나 되는 거리를 열병하듯 줄을 서있다. 하늘 높이 죽죽 뻗은 전나무가 숲길이 시원하다. 전나무 숲을 지나면 단풍나무, 벚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봄에는 꽃길, 여름엔 녹음길, 가을엔 단풍길, 겨울엔 눈길로 길손을 맞는다. 여기 저기 눈의 흔적이 보인다. 양 교사는 눈길을 걸을 수 없음을 아쉬워한다. 이 길 위에 눈이 가득 쌓이고 그 눈을 밟으며 걷는다면 얼마나 좋으랴하고. 지금 부산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차들이 제대로 다니기가 힘이 든단다. 25년 만에 오는 눈이라고 한다.

눈을 찾아서 부산을 떠나 변산을 왔건만 부산엔 눈이 폭설로 내리고 이곳 변산의 하늘은 맑기만 하다. 눈을 찾아 나선 길이 눈을 피하고 만 셈이다. 하지만 눈이 오면 발이 묶여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늘은 우리 여행을 위하여 은혜를 베풀었나 보다.

▲ 내소사의 동종각, 고려 동종으로 보물277호다.

내소사

내소사(來蘇寺)는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소래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고찰(古刹)이다. 창건 당시에는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는데 지금의 내소사는 예전의 소소래사다. 성종 17년(1486)에 간행한<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이규보(李奎報)의 <남행일기(南行日記)>에도 소래사란 기록이 보인다.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도 고려 인종 때 정지상(鄭知常)이 지은〈제변산소래사(題邊山蘇來寺〉라는 시가 기록되어 있다. 당(唐)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절에 들러 시주했기 때문에 소래사가 내소사로 되었다는 말이 전하기도 하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다.

내소사.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유명한 절 이름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소사에 와 보니 그것은 내소사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다. 내소사는 삼보 사찰에 못지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내소사는 한 마디로 고풍의상으로 곱게 차려입은 그런 절집이었다.

▲ 내소사의 당산목, 이 나무가 내소사를 더욱 고풍스럽게 한다.

내소사 한 복판에 버티고 서있는 고목은 내소사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내소사 건축물들이 이 고목을 중심으로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 당산목은 나이가 950살이나 되는 상노인이다. 아니 고목중의 고목이라고 해야 하는가.

▲ 대웅보전, 꽃살 무늬가 일품이다.

내소사에는 국가지정 문화재 4점, 지방유형문화재 2점, 지방기념물 1개소가 있다. 국가 지정 문화재로는 고려동종, 법화경 절본 사본, 대웅보전, 영산회 괘불탱이 있고 지방유형문화재로는 3층 석탑, 설선당과 요사가 있고 내소사 일원 1만 6725평방미터는 전북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절집에는 꽃살 무늬를 볼 수 있다. 문살 하나하나도 예사로 만들지 않고 온갖 정성을 들여 연꽃무늬, 국화무늬로 수를 놓아 아름답게 꾸몄다. 그 가운데도 내소사 꽃살 무늬는 단연 으뜸이다. 단청이 벗겨져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꽃살이 더욱 아름답다. 내소사의 절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인가. 1633년 조선 인조 11년 청민이 지은 집으로 조선중기 사찰의 대표적 작품이라고 한다.

내소사는 MBC 드라마 ‘다모’와 ‘대장금’ 촬영지로 유명하기도 하다. 지금 부안엔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 세트트장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어 한 편의 드라마가 엄청난 관광객을 부르고 있음을 본다.

내소사 절을 나와 산을 오른다. 변산의 최고봉은 508m 밖에 안 되는 나지막한 산이긴 하지만 그 산세는 오히려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주름진 바윗돌은 수천 년 역사의 신비를 머금은 듯하다. 바윗돌 틈새마다 소나무며 각종 잡목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더욱 아름답다.

낮은 산이긴 하지만 눈길 돌길을 오르는 것은 쉽지 많은 않은 듯 힘든 모습이다. 초등학생들로서는 더욱 그런가 보다. 초등학교 4학년인 유진이의 손목을 꼭 잡고 올라가는 젊은이가 있다. 학생인가 여겼더니 컴퓨터 과학고 선생님이란다.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한 선생님인가. 아무튼 오늘 하루 부모보다 더 나은 선생님이다.

▲ 직소폭포, 그 아래로 옥수탕, 선녀탕 등 신선들의 목욕소가 많이 있다.

향목 산악회. 부산 컴퓨터 과학고등학교 선생님을 주축으로 그 주변의 가족들로 이루어졌다. 산과 가족을 사랑하는 모임이란다. 대부분 산악회는 산을 좋아 산을 사랑하는 이들로 모여지는 데 이 향목 산악회는 거기다 가족을 덧붙였다. 산과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들이 더욱 늘어날 적에 그 향기는 세상을 맑히리라. 인자는 요산하다고 했으니 어진 이들로 세상을 채우지 않겠는가.

변산의 정상은 세봉인가 보다. 눈길 바윗돌 길, 그 위험 때문에 정상 세봉을 눈앞에 두고 관음봉 고개를 넘어 직소폭포로 향했다. 관음봉은 능가산이라고도 해서 내소사는 ‘능가산 내소사’란 현판을 일주문 가슴팍에 달았다.

직소폭포에 닿았다. 20m높이의 물길에 직소가 파였다. 그 아래로 제2, 제3의 폭포가 줄을 이어서 옥수담, 선녀탕 들 줄줄이 신선들의 목욕소를 만들어 놓았다. 때는 겨울이라 물줄기가 약해 폭포의 진수를 보기는 어렵지만 여름날을 상상하면 폭포소리가 요란한 소리로 다가온다.

▲ 원불교 제법성지, 원불교 교조 박중빈이 이 곳에서 교법을 만들었다.

원불교와 새 하늘

직소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은 봉래 구곡 굽이굽이 돌아서 변산 앞바다로 흘러간다. 원불교 교조 소태산은 이 골짝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한 편의 시를 썼다.

변산구곡로(邊山九曲路)에

석립청수성(石立聽水聲)이라

무무역무무(無無亦無無)요

비비역비비(非非亦非非)라

이 뜻을 아는 사람은 도를 깨닫는 사람이라고 했다.

변산은 원불교와 인연이 많은 곳이다. 이 곳 변산에서 원불교의 교법이 싹이 텄다. 1916년 4월 28일에 대각을 이룬 소태산 박중빈은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 앞바다 개펄을 막아 3만평의 농토를 일궈냈다. 종교를 일으킨 이가 이처럼 경제적인 토대를 먼저 마련한 것은 이례적이다. 신도들의 시주에 기대는 것이 종교의 특성이 아닌가.

▲ 산과 식구를 사랑하는 향목 산악회. 따뜻한 어묵 국물같이 정이 넘친다.

그 뒤 백지에 손도장을 찍어 핏자국을 어리게 한 이적을 보인 소태산은 변산 아홉 구비 깊은 산골에 숨어서 원불교의 교법을 제정하였다. 따라서 이곳 변산을 원불교에서는 제법성지로 지정해 놓았다. 봉래정사가 복원되어 있어 당시의 소태산이 숨결을 느낀다.

▲ 변산의 하늘, 저 햇살을 타고 새 하늘은 열리는가.

변산 궁항이란 작은 마을, 지금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무엇이 이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있는가.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 세트장이 있기 때문이다. 변산은 새만금 간척공사, 핵폐기장 반대 데모 등으로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 세트장

[할미꽃]

04년 3월21일날 선운사.내소사를 다녀 왔는데 병풍처럼 둘러싸인 절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1월 중순에도 곰소에가서 넘넘 행복 했지요.아름다운곳에서 예쁘게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