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작은 마을에 살 때였다. 밤새 퍼부은 장대비에 산이 무너져 마을을 덮쳤다.몇 십 년 만의 폭우라고 하였다. 마을의 집들은 흔적도 없이 물에 떠내려갔고 우리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졸지에 집과 살림살이를 잃은 이웃들은 면사무소에서 산비탈에 임시로 가설해 놓은 야전천막에서 생라면을 씹으며 구차하게 생활해야 했다. 천막생활은 가을 달밝은 밤에 귀뚜라미가 구성지게 울 때까지 이어졌다.
우리집은 천막생활을 시작하고 두 달쯤 지나서 동생의 도움으로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때 이미 서울의 집값은 정상이 아니었다. 하룻밤 자고 나면 몇 백 씩 껑충 뛰어서 불안한 나머지 우리는 무리를 해서 집을 사기로 했다. 그랬더니 복덕방 아저씨들이 드나들며 산 값에 얼마를 더 얹어 줄터이니 집을 되팔라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이 집을 팔아서 강남으로 가라는 말과 함께. 이삿짐도 풀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도 그렇고 해서 주저앉아 살은 것이 신촌에서만 25년을 산 셈이다.
문화센타에서 만난 노부인은 강남의 집값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나에게 사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어느 동네에 사는 것만 알면 모든 게 짐작이 간다는 듯이." 아들 딸 낳아 시집 장가 보내고 원 이사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우." 생김새와 옷차림에서 뿐아니라 억양에서도 교양과 인품이 느껴지는 노부인은 결혼해서 오늘까지 한 곳에 터잡고 사셨노라면서 진작에 강남으로 이사간 친지들이 조금은 부러운 눈치였다. " 한 집에 그렇게 오래 사는 것인 줄만 알았지요."평생 월급쟁이 부인으로 자식들 공부시켜 짝 찾아주면서 한 곳에서 살아온 게 아무래도 바보노릇을 한 것 같다는 푸념도 곁들였다.
노부인의 이야기는 바로 나 자신의 얘기였다. 하루가 다르게 골목안의 집주인들이 바뀌고 집값이 뛰는데도 부동산 투기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동창친구들이 애들 교육을 걱정하여 서둘러 강북의 집을 팔거나 전세놓고 8 학군으로 하나 둘 떠나고 있는데도 뒷짐을 지고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골목 안 맨 끝집 아주머니는 집을 산지 한 달도 못되어서 웃돈을 얹어 받고 강남으로 가면서 나에게도 그쪽으로 오라고 귀뜸까지 했다. 나는 시골에서 나물만 뜯다와서 그런지 사람들의 집 옮겨앉기 북새통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할부로 장만한 집을 어떻게 갚아 나갈지 거기에만 신경을 썼다. 한 두 차례 옮겨다니면 그 정도의 금액은 손쉽게 융통이 되는 이치를 알지 못했다.
요즘 일간지에는 강남 이야기가 빠지는 일이 별로 없다. 강남을 투기지역으로 묶어 높은 세금을 물게 한다든지, 강남의 상가 임대료가 세계 6위로 비싸다든지, 1996년 12월 부터 2003년 9월까지 약 6년 동안 물가는 27%오르고, 전국의 주택가격은 26% 올랐으며 서울 강북의 주택가격은 39% 오르는데 그쳤으나 강남은 아파트 값만 무려 106% 올랐다느니, 서룰시는 강남북의 균형발전 차원에서 강북에 '영어체험마을'을 만든다는 등 거의 단골 메뉴다.
00신문의 '지방 고3 강남 학원 유학 러시' 라는 기사는 논술과 면접고사 준비를 위해서 전라 경상 강원 경기 제주도 등지에서 고3 학생들이 서울 강남의 유명학원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강남학원의 수강료가 무려 40 만원에서 80 만원 선으로 아무리 줄잡아도 한 달 체류비용이 150 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전체 수강생 중에서 지방 학생들이 80%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학생들과 인솔교사는 여관이나 고시원에서 불편한 잠을 자면서 논술강의를 듣고 있다고 하였다. 강남의 학원 강사에게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는 인솔교사의 심정은 어떠할까? 교사로서의 자긍심 아니면 허탈감일까?
그 기사를 읽으며 아! 강남! 하고 부르짖었다. 탄식과 개탄의 의미였을까.놓쳐버린 행운, 이를테면 양질의 자녀교육과 재산 증식의 기회를 잡지 못한 억울함 때문인가.나는 강남 이야기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릴 때마다 쓴 웃음을 짓는다. 그렇다고 강남으로 이사간 친지들의 자녀가 반드시 일류대학에 진학한 것은 아니지만 교육이나 주거문제에 우둔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자괴감을 금할 수가 없다.
사교육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몇 배 더 들고 30 평대 아파트가 8 억 원을 홋가하는 강남은 대체 어떤 곳인가. 누가 살고 있는가. 과외시킬 돈이 없거나 강남에 주거지를 마련할 수 없다면 차라리 외국으로 이민이라도 가야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무리하게 구하지 않고 분수를 알아 만족할 줄 알며, 삿된 직업으로 생활하지 않고 다만 법답게 재물을 구하되 법답지 않은 것은 따르지 않는 것을 바른 생활이라고 말한다." -중아함경 제 7 분별사성제경-
부처님께서는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 비구들에게 正命-바른 생활 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무리하게 구하지 않고 분수를 알아 만족할 줄 아는 생활에 대하여 사는 곳이 강남이든 강북이든 우리 모두 깊이 성찰해야 하는 계절에 이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