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자 화가 약력
1952 born in seoul(korea)
musashino art university in tokyo(japan)
education prize at the exhibition of o.a.c-ten atc.
kim sinza 7th solo exhibition (belgium)
http://kimsinza.com
아내가 상의 단추를 풀고
젖을 드러낸다 오디 같은 유두를
아기의 입에다 물린다
울던 아기 엄마의 유두를 빨며
비로소 평화로운 얼굴이 된다
배를 다 채운 아기가
아내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방그레 웃는다
아내는 아기의 눈을 들여다보며
빙그레 웃는다
아내가 가슴을 여미고
아기에게 말을 한다
“우리 아기 배가 많이 고팠구나.”
아기는 계속 미소만 짓는데
“그래 그래 이제 배가 잔뜩 부르다고?”
이 승 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학력/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인천재능대학 겸임교수. 1984년 중앙일보 <畵家 뭉크와 함께>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문학사상사),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시학)
[탐방]
젊은 열정의 논픽션 소설가
- 맹문재 회장
인터뷰 : 김금희 수필가
‘
<사진 2매 나란히 편집>
고은희 약력 go5752@hanmail.net
부산 출신. 월간 문학공간 수필부문 당선
울산문인협회 회원. 울산수필가협회 회원
울산공단문학회 사무국장. 울산여성신문 취재부 차장
[해설]
죽어서 살아야 할 그 길고 긴 적막강산
김 영 승
시의 그릇도 박봉준의 그 투명한 세계인식 만큼 다양해야 한다.
[특집]
그대 삶은 영웅적인가
고경숙
수퍼히어로를 갈망하는 시대에
소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도
그리 평탄하진 않아
쏟아지는 고지서 금액들과
날아드는 휴대폰 번호들이
곤두박질쳐 뜯겨지는 일력에 묻어
날마다 적자인 시간
만화 속 단단한 수퍼영웅들을 보면서
물컹물컹한 그대 빈주머니를 본다
폭락하는 주가처럼
푸른 넥타이 화살표가 자꾸 땅을 보더니
엘리베이터 대신 차근차근 계단을 밟고
그대 회사를 나설 때
하늘엔 가슴에 이니셜을 단 수많은 영웅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날아다니고 있었어
한동안 지구를 떠돌겠지
끈적끈적한 체액으로 애써 처놓았던 거미줄
발버둥치던 인맥의 역사도 별 수 없어
양복 안주머니에 이니셜 감추고
건널목에 정지해 있는 그대 앞에
제한속도 30은 일 저지르기 좋은 속력,
차문 박차고 대로를 가로질러 뛰는
영웅의 뒷모습에 호루라기 소리
강철처럼 무거운 저녁.
Super Natural *
고경숙
사막은 외부와 내통하기 좋은 장소다
능선마다 어둠을 기다리며
무리들이 한 곳을 바라본다
등허리 꼭꼭 기름을 채운 단봉낙타에서
한 여자가 내린다
여자는 머리에 긴 나뭇가지를 꽂고 있다
가까이 보니 뿔처럼 자라나고 있다
하체는 여러 개의 다리가 갈래갈래 뿌리를 대신하고 있다
밤하늘은 죽은 자들과의 접신을 원하는
붉고 푸른빛의 모래입자들이
수신채널을 바꿔가며 격렬한 춤을 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사막은 일어섰다 내려앉는다
교신은 지루하지도, 짧지도 않다
사막의 달이 건조하게 떠오르면 의식은 무르익어
여자의 몸은 춤을 타고 둥둥 떠오른다
낙타도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흥분한다
여자가 매일 밤 무엇을 보고 오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동굴 같은 그녀의 방 한구석에
암호처럼 그림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몇 천 년의 시간이 흘렀다
멀리 환각을 꿰뚫고 지나가는 자동차
혹은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발광체들이
숱한 암호로 고속도로를 성문화하고
해독하지 못하는 이시대의 바람과
구석기시대 바람의 충돌로
사막은 한 차례 회오리 바람언덕이
생겼다 사라졌다
여자가 낙타를 타고 서둘러 떠난다.
*Super Natural: 초자연적인 현상
고경숙 bezital@hanmail.net) 계간『시현실』2001년 등단. 서울 출생. 수주문학상 우수상. 하나 네띠앙 인터넷 문학상 대상. 부천예총 기획위원. 부천문화원 편집위원. 수주문학상 운영위원. 『난시』동인. 시집『모텔 캘리포니아』
[특집]
김혜영 시인&문학평론가. 경남 고성 출생. 부산대학교(1999) 영문학 박사. 1997년 [현대시] 등단. 계간 [시와 사상] 편집위원.
동의대, 부산대 출강. 시집: [거울은 천 개의 귀를 연다]
평론집: 메두사의 거울. 웹 월간詩 [젊은 시인들]발행인.
http://cafe.daum.net/youngpoets
[시단]
슬럼프에 빠진 친구에게
강 현옥
목적하는 게 있다면
우표처럼 되어야 해
끈기 있게 달라붙어야
원하는 길 갈 수 있지
무의미로 끝난 시간 속 서성이지만
끝없는 땀과 자신감은
놓쳐서는 안 될 친구들이지
교각처럼 짜여진 길은 없어
스스로 길 당기면서
승전보 알린 아테네 병사처럼
뛰다가 죽는다는 각오로 뛰다보면
신기루처럼 목표는 눈앞에서
휘날리고 있을 거야
당길수록 목표는
점점 다가오는 거야
바람이 촛불을 끄고
큰 불을 타오르게 하듯
궁색한 열정을 잠재우고
원대한 열정을 키우게 할 거야
인내 속에서 흘리는 눈물만큼
값진 위로가 되는 친구가 없을 것이고
마음을 맑게 하고
영혼을 다독이는 것은 없을 거야
실패한 과거에 오그라들었던 가슴에서
눈물이 와락 쏟아지는 그날까지
사나운 폭풍우에
미쳐 날뛰는 바다 앞에서도
조용하고 잔잔한 바다
어둡고 침울한 곳에서도
가던 길 더욱 뛰며 달려가는 거야
밤의 눈물을 먹고사는 새
강현옥
언제부터인지
얼마나 그리웠는지
빗물 얼룩진 창틈으로
작은 새 한 마리 날아들 때
밤도 눈물로 젖어 빛나고 있었네
그리운 듯 애절한 일성一聲
폐부에 파편처럼 박혀
핏물 든 강물로 흐르게 했었네
미풍에도 날개 펼 수 없는
허약한 새라서
아득히 세월 지난 지금도
훨훨 날아갈 수 없는 숲 향해
흠뻑 젖어버린 그리움이 엄습해 오면
차라리 눈물 지우고 돌아 서리
저 푸른 우주 속으로
마음껏 비행할 수 있을 때까지
비 내리는 범어사 아름드리 노송 사이로
산 옆구리 휘감은 아스팔트
쌓인 늦봄 포말로 튀어 오른다
운무 넘쳐 흐른 하얀 길
허리며 꼬리 뜯겨진 뱀 허물처럼
가슴으로 뚫린 또 다른 길을
머리 검은 짐승 하나 기어오른다
습한 잔등에서 찌든 알콜냄새가 난다
빨리 깨고 싶은 저급한 삶처럼
이제쯤 범종은
중후한 제 소리로 수천 가닥 실금 문신 할테고
미륵불 은은함 만 갈래 소름 되어 번져 올텐데
아직 몸뚱이 어떤 울림 느낄 수 없으니
걸음 멈춰 눈알 씻어내니
환하게 비춰지는 탁한 내부.
비는 끝없이 내리고.......
아침이 오면
권정욱
식칼 넣은 드럼 세탁기를 돌린다.
달구지 소리를 내면서 세재와 뒤섞인다.
거품들이 칼날에 베인다.
아니 거품이 날을 갉아 먹는다.
가스렌지 위의 냄비가 끓고 있다.
알람시계는 지금쯤 알맞게 익었을 것이다.
태엽 뜯어내고 씻어 앉힌 시간.
이빨에 저항 없이 씹힐 것이다.
코가 잘린 돼지가 날뛰던 지난 밤
꿈속에서 사용했던 칼.
금속성이 살 속으로 파고드는 쾌감과
가위눌림에 잘린 육즙 흐르던 시간들 모두
들켜버릴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
아침이 오면
비릿하게 솟구치는 내부의 살의는
완전한 범죄가 되는 것이다.
튿어진 잠의 옆구리로 서툰 알리바이
누설되지 않을 것이다.
권정욱 qhfltn@hanmail.net .1961년 마산출생. 『문학저널』등단.청파문학 동인.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지름신의 손
김현태
이 땅에 강림 하셨도다!
욕에 눈멀고
시선 금빛에 고정한 사람들 위하사
사구를 넘어 산 같은 몸 이끌고
폭우처럼 하강 하셨도다
질러라! 질러!
누수는 윗돌 빼서 막고
소리 내어 울던 영혼들
검은 살 속으로 앓는 소리 덮어도
미래는 자꾸만 흔들리는 것
하지만, 질러라!
금빛이 내 눈 찌르거든 과묵히 일어나
천둥벼락처럼
우선, 질러 보는 거야
함수관계
김 현 태
너의 일컬음과
나의 이끌림 사이
따름의 변수 있어
너의 부름과
나의 응답 사이
음정의 편차 있어
네 위치에 따라
내 일정 위치 결정되는
그 거리의 보폭에 대한
적정 보폭 때문에
부부가 부자가
우리가 있고 아니
지구가 도는가
김현태 ksw6718@hanmail.net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수료.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등단. 『구팡돌문학』 편집장.
『두레문학』회원.
아라비아 왕자를 꿈꾸는가
박동덕
햇빛이 뿌리는 저것은 금화다
허우적거리는 불황의 늪에 번쩍번쩍 쌓이는 것은
금궤가 확실하다
왕관을 눌러쓰고 길게 파고드는 햇살에 언뜻 비쳤다가
평복으로 갈아입고 이내 사라져 버린 얼굴
누가 볼세라
창문을 꼭 닫고 현관 열쇠를 잠그고
발소리 멀어진다 *사지포 앞 들판,
비닐하우스의 작물들은 밤마다 마셔야 할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 사막에 뿌리를 박고
꽃을 피울 수 있을지 협상 테이블에 귀를 곤두세운다
땅속 낡은 송유관으로 기름을 흘려보내는 늪에는
**흰 터번을 두른 왜가리가 試錐시추에 열중이다
흔들리는 왕버들 아래 일렁이는 초조한 그림자견딜 수 없이 애가 타는 것은 작물뿐이 아니다
협상장의 관리도 꽃잎으로 수를 놓으며 양탄자를 짜는 풀들도 끝내 양보할 수 없는 먹거리 앞에
쓰러지지 않으려고 야윈 다리에 꼿꼿이 힘을 준다
둔치에 서 있던 나무 한 그루
푸른 망토를 걸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우포에 따른 늪으로 모래가 많이 떠내려 온다고 이름 붙여짐
**인도인이나 이슬람교도의 남자가 머리에 감는 천
지긋지긋한 기억이 아름답다
박동덕
여름방학 끝나고 개학하던 그날 기성회비 봉투를 슬그머니 방문 앞에 밀어 놓고 학교로 갔
다 급식 빵을 훔쳐 먹다 꿇어앉은 생쥐 앞에 삿대질하는 회초리를 보았으니 넌더리 났다
내 욕망을 펴 보지도 못하고 쭈그러질 것 같았다
풀벌레가 유난히 칭얼대는 어스름 저녁 고추밭으로 갔다 풋풋한 손으로 붉은 고추를 따서
비료 포대에 담았다 흘린 밥풀에도 불호령을 하는 아버지 째진 눈썹 같은 달이 째려보고 있
었지만 두근거리는 땀을 훔치며 벗어나고 싶다는 꽉 찬 마음 꾹 꾹 눌러 담았다
별과 반딧불이 고추나무 사이를 헤집으며 비춰 주었다 한 포대 가득 칡넝쿨로 동여매고 다
시 오나 봐라 뒤돌아보지 않고 읍내로 내달렸다 어느새 저만치 떠오른 달이 어머니의 슬픈
눈빛처럼 어서 가라고 손을 저으며 길을 비춰 주었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세상을 두루 돌고 돌았다
허름한 양복의 선생님과 소작농으로 근근이 풀칠을 하던 아버지 그들보다 나이가 더 들어
버린 내가 돌아온 곳은 그때 그 자리 그 집 마당에 서 있다
소작의 설움으로 갈라 터진 손등 같은 감나무가 죽어 없어지고 쭈그러진 가계를 다림질하며 붉은 고추를 말리던 낡은 슬레이트 같은 손도 보이지 않는다
남새밭은 무성한 바랭이와 풀벌레들의 집이 되어 반쯤 기울어진 기둥에 며느리 밑씻개 사
위 질빵, 넝쿨이 그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 추억의 영화 테이프처럼 친친 감고 있다
참 이상도 하지 지긋지긋한 이곳에 그대 왜 돌아오고 싶었을까
욕망은 게걸스러운 것
부풀어 터지기 전에 뻗었던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이 집이 아름답다
빌렸던 것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고 빈손으로 돌아간 그대들이 아름답다
부스러져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 허무가 아름답다
종묘 앞 공원에서 어슬렁거리던 하루가
큰길을 건너 골목 안으로 몸을 숨긴다
이제 막 시작한 어둠을 가로질러 발길 닿는 곳은
빛과 소음이 뒤섞인 광장시장 순자네,
먹자골목에서는 늘 분위기로 먹기 때문에
솥뚜껑 밑바닥이 검게 타면서도
땅거미 기는 길목에 서서 밤으로 간다
가물가물 눈 흐려 놓는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다가
틈틈이 테두리에 기름 둘러 장식하고
숨 헐떡이며 뒤집는 사이사이
녹두빈대떡 한 접시와 막걸리 한 사발에
고맙다, 는 말 한마디 보태는 마음이 살갑다
먹자골목을 찾는 사람들, 말 못하는 속내
언제나 자식 빚더미 위에서 선잠 자는 신세
별 하나가 보고 싶고 소망 하나 이루고 싶은데
지친 몸 겨우 일으켜 세워 집으로 돌아갈 때면
언제나 혼자다
박세영 young04894@hanmail.net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월간『문학세계』시 등단. 문학넷회원. 세계시낭송협회. 『두레문학』회원.공저『향기나는 편지』.『청산호의 노래』.『두레문학』
엇갈린다는 것
성은경
좁은 후라이팬에
어깨 웅그린 고등어들이 누워있다
길이가 긴 놈은 가운데 눕고
양옆으로 조금 작은 것들로 차례차례
엇갈려 누워있다
머리가 이쪽인 놈 옆에 저쪽인 놈 눕고
또 저쪽이면 이쪽으로 눕고
그렇게 엇갈려 누워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다
13평 아파트 안방
차려진 젯상에 절하고
음복 상에서 왁자하게 웃어대던 날
여섯살 정현이 녀석 아빠 다리 밑에서
T자 모양으로 잠이 들었다
산다는 것은
후라리팬에 누운 생선처럼
견딜만한 엇갈림으로 누워
아귀를 맞추는 것이리라
이렇듯 헐렁한 곳 빈틈없이 채워
뜨겁다 한판 소리치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접시에 다정히 포개지는 것이리라
세 가정 열 네 식구 아귀 맞춰가며 누워
따끈한 이야기 노릇하게 굽는다
바닥 뜨거우면 적당히 돌아눕기도 하며
아름다운 공생
성은경
이른 아침 거실 방충망에 붙어
가만히 있는 잠자리 한 마리
오래된 망충망의 끈적거림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일까
얇은 종이 한 장으로 발을 살짝 들추었다
큰 눈 몇 번 주억거리더니
파르르 날아오른다
잠시 허공을 가르는가 했는데
사철나무 가지 사이
거미줄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순식간에 누에고치가 된 잠자리
파르르 떨던 날개 보쌈으로 변했다
감사 합장이라도 하는 건지 잠시
웅그려 있더니 보쌈을 덥썩 거머쥔다
잠자리, 거미에게 보시(布施)하고
나는 또 하나의 업보 쌓았다
거미의 늦은 아침밥상
환한 빛이다
성은경 http://myhome.naver.com/sedmsrud56
경남 창녕출생. 한국방송대학교 초등교육학과 졸업.『문학저널』등단. 대한문인협회 운영위원. 사랑의 연가(시사랑음악사랑)당선. 내 앞에 열린 아침(엠아이지).『두레문학』 공저.
폐가
엄 태 우
경로당 벚나무 그늘
삐딱하게 기울어진 집들 모여 앉아있다
누구 하나 드려다 보지 않는 폐가
지팡이에 의지하고 빠끔히 문을 열어놓고 있다
앙상하게 뼈대가 드러난 벽에서
툭툭 그리움 같은 것이 떨어지고
민들레 미용실 전화벨 소리에
문 한 짝이 조금 더 열린다
"아들네 오기로 했나"
그저 지나가는 말에 잔뜩 물 먹은 구름이 몰려든다
대충 못질하듯 붙여놓은 이음매들이 삐걱거린다
오래된 천식 같은 바람 소리
우기가 지나면 몇 채의 집은 쓰러져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끙 소리가 나게 힘을 주고 일어서야 어그적 거리고 움직이는
저 다 쓰러져가는 집이 종일 문을 열어놓고 기다린 사람
씹다 붙여놓은 껌들을 떼어내지 못하고 품고 있는 벽은
이제 그 가벼운 무게마저 견디지 못하고 있다
하나 둘 불이 켜지는 집들 사이에서
어두운 집
밤새 문은 닫히지 않을 것이다
멀리 지나가는 차 소리를 들으며
깜빡 졸다 골목을 지나는 발소리에 일어나
누구냐. 누가 왔냐.
괜히 흠흠 헛기침을 하면서 깨어 있을 것이다
오래된 의자
엄 태 우
경로당 앞을 지날 때였다 칠순 넘은 어르신들 서넛이
등을 방바닥에 대고 잘 들어지지도 않는 팔다리를 올려
자전거 바퀴를 굴리듯 역기를 들어 올리듯 하고 계셨다
" 이걸 하면 그렇게 몸에 좋탸 "
엎어놓은 의자들 같았다
다리가 뻐드러져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의자
몸을 앉히면 덜컥 한쪽으로 기울어지다
헉하고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을 것 같은
저 몸으로 누구에게 등을 내줄 요량인가
뻣뻣하게 굳은 오금을 당기고 있었다
어둡도록 귀가가 늦어지는 손녀를 어머님은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기다리고 계셨다
경첩 하나가 떨어져 나간 장롱 문짝에
삐딱하게 기대고 있는 오래된 의자 같았다
내 무게가 고스란히 찍힌 둥그런 등
떨어져 나간 등받이처럼 머리숱이 휑하였다
"그래도 아직 쓸만하다" 경로당에서 보았던 노인들 모습으로
역기를 들듯 팔을 움직이시는 어머님
쓸만하다에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고 돌아서
저기 어디 아이가 오고 있을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집을 생각하며 아이는 오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의 끝에 어머님이 앉아계시고
오늘 밤엔 별이 참 맑다
엄태우 mtewo@hanmail.net 청주 출생. 충주 칠금동 대학학원 경영.등단 『문학세계』 공저『두레문학』.『두레문학』충청지회장.
뜨락/ 이용일
내 *뜨락에는 잠자는 바다가 있소
첫눈 내리는 날
자벌레 걸음으로 다가 서는 어둠
함박눈 서서 숨죽여 울고 나면
뻐꾸기 눈 감은 백열등이
근근히 버텨 오다가
하얀 파도를 보듬어 쓰다듬고 있소
내 뜨락은 해뜨는 들녘
아직 멈추지 못한 주사위가 졸고 있소
자작나무 둥치 옆 얼지 못한 옹달샘
차가운 한숨 가지런히 내려놓으면
굴곡진 숲 비켜가는 바람
밤새 문풍지 잡고 신음하더니
물빛 고드름 서너 개 낳았소
가진 것, 가지려는 모든 것들이
내 뜨락 안에서
꽃이 되어 웃고
바람이 되어 울고
눈(雪)이 되어 삭이고 나면
어린 날 서슬 퍼렇게 울부짖던 바다는
물빛 고드름 되어
한 날 한 날을 지워 가고 있소
아직 맞이할 많은 날들보다
아름답게 기억할 여린 날들이 더 좋소
*뜨락; 뜰의 방언.
군불 / 이용일
살 오른 반달이 고개 넘어 이고 온 나뭇짐엔
갈퀴자국 선명한 노란 솔잎
가지런히 묶여 있었다
늦은 저녁밥 재촉하는 아이 눈물
아궁이 속 솔가지 끝에서 마르고 나면
부엌 가득 누룽지 긁는 소리
헛배 부른 밥상
그나마 모자라게 차려지고 있었다
마루 건너 사랑채 거친 가마솥엔
생 솔가지 타는 매콤한 눈물
이슥토록 펄펄 끓고 있었다
수건 두른 할머니 머리 위로
쇠여물 구수한 냄새 백발처럼 내리면
큰 눈망울 껌벅이는 누렁 소 울음 소리
긴 달빛 타고 논두렁 넘고 있었다
까맣게 그을린 장판 아랫목 이불 속엔
아버지의 늦은 귀가 기다리는 밥공기
언 발끝에서 부대끼고
윗목 질화로 안 뚝배기 된장국은
인두질에 지친 엄니 기다림 만큼 졸고 있었다.
참샘골 낡은 기와집 굴뚝 끝에는
오늘도 달빛 타는 냄새 맥놀이로 잠을 넘는다.
지리산을 오른다
말만 듣던 뱀사골 기슭을
지나가는데 꽃이 아닌 것이 없다
가슴에서 우러난 물빛은
살가운 언어가 되어 나에게 닿고자 손을 뻗는다
살과 살들이 부비며 밀어올린
가녀린 꽃대 깍지를 끼고
울컥거리는 바람 다독인다
속살 벗은 푸른 계곡이 단내를 내뱉으면
살아서 고마운 것들은 여울 빛을 감고
햇살의 파장 아래 몸을 씻는다
꺼지는 한숨보다 더 가벼운 정상을
숨 가쁘게 올라 온 함박꽃이
산자락을 잡고 느린 춤을 춘다
춤사위를 빠져나온 꽃말은
섬진강 물줄기로 울컥 밀어올린 밀어
꽃잎에 각도와 초점을 얼 맞추어
아름다운 얼굴 하나 음각으로 새긴다
단꿀을 내뱉는 하고초(夏枯艸)의 내막에 흔들린다
노고단 치마자락은 뱀꼬리에 칭칭 감겨
천 년을 허리 풀지 못한 달궁(達宮)을 감싼다
결국은 제각각 돌아가는 섬진강 얼굴들
말하지 않아도 말이 통하고
살을 비비지 않아도 꽃향은 산 그림자 되어
아득한 섬으로 남는다
*달궁/마한이 외부 침입으로 쫓겨 숨어든 마지막 왕궁
흔적/허양희
달빛이 달려온다
빛을 받아든 광 마우스는 발등을 찍고 간다
늙은 도둑고양이가 슬쩍
담을 스쳐 지나간다
불혹의 시대엔 어떤 그리움이
사각의 암벽을 타게 될까
기다리지 않아도 메일이 쌓인다
금방 도착한 시를 읽는다
입 꼭 다문 허기 두른 혀
메마른 입술 깨물어가며
시련의 시간 앞에 암각화로 피어난다
단단하게 베어 문 검은 꽃들이
어둠 속의 길를 열고
움푹 페인 환부를 핥고 간다
절망 속에서 피워 올린 꽃잎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그 꽃의 열매 단단히 여물어
암벽에 깊이 맺힌 사각 바다
내 들어간 환부가 환히 밝아오는 밤마다
몸에 선 쭉쭉 긋고 가는 달빛
허양희 silverbrain2004@hanmail.net 경남 지수 출생. 마산 거주. 교육학사. 월간『문학세계』신인상. 문학넷회원. 『두레문학』회원. 『시와사상』회원. 공저『두레문학』『젊은 시인들』
딱따구리
허 용
동작동 국립 현충원 뒷산
아침 여는 난타 공연
아담한 지휘자는 최신식 레이더로 악보를 읽는다
순간의 포착
삭풍 녹인 고요함을 밀어내며
경쾌한 울림소리 산 속을 날아다닌다
따라라락 따라락 따아악 딱
초대받은 객석 애벌레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딱따구리 소리가 내 가슴을 쫀다
신명나는 난타
지휘봉을 접는 시간
긴장하던 나뭇잎
푸른 박수소리 일품이다
[시작노트]
새벽 운동가는 길 국립 현충원 뒷산 딱다구리 소리 산 속을 유영한다.
즐거운 난타 공연 속, 군인 간 아들은 돌아오지 않고 현충원 고요한 풍경.
딱다구리 소리가 바람결에 푸른 나뭇잎을 스쳐 지나면 잠잠하던 마음을
한바탕 흔드는구나.
여성신문[0918]
[허용 프로필]
서울출생. 「시와 창작」 - 시, 수필등단 (2005년)
2006년 보훈문예전(일반부) 보훈처장관상
「시와비평」「두레문학」 공저 외 다수
B A N K / 허용
대출을 원하시나요
담보는 무엇으로 하실 건지
신용 대출은 요사이 좀 어려워요
모기지론도 한도가 꽉 차서
逆모기지론은 노후 생활 자금으로 적격인데
몇 평짜리 아파트인가요
담보 유지 비율을 산정 해 보고요
자, 이제
노란 은행잎에
싸인을 해 주세요
징코민은 혈액 순환에 좋습니다
거마비가 좀
결제를 맡으려면......
그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구린내 나는 은행을 드릴게요
오! 가을이네요
생굴 파는 아저씨 / 허용
동사무소 앞 대로변
충무, 거제도産 생굴을 판다
리어카에 쌓인 싱싱한 굴봉지들
비닐봉지에 묶인 탱탱한 바다 한 자락
굴 따는 구릿빛 아낙이 떠오른다
고향이 상주라 했던가
사십 대 초반의 중년의 사내
어느 회사에서 명퇴를 했는지
두터운 방한복에 짠물 얼룩지고
매운 찬바람에 손발이 얼었다
리어카 한 구석에
어린 딸에게 줄 과자가 놓여있다
어둑한 새벽 길
굴 한 봉지 사들고 가는데
남쪽 바다가 따라온다
코끝에 갯벌 비린내 스며든다
허 용 hbleh@hanmail.net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 근무.
『두레문학』회원. 『시와창작』시, 수필 등단. 시와창작작가회.
홈페이지 / cyworld(허용), 네이버 블러그(허용).
시집『삶의 노래와 향기』.공저『두레문학』외 다수.
[신작시]
[신작시]
[신작시]
경상일보☞김명숙/주인의 관광 070629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2
/김명숙
부산시 남구 용호동 산 몇 번지
고개 넘어 또 고개 넘어야했던
문둥이촌, 이제
성한 살들 총총 모여들
아파트 밑그림으로만 남았다
봄날 짚단 속 찾아들어가;
죽는 고양이처럼
그대
꾀꾀로 수밀의 울음 묻던
오륙도 안개 속으로 갔다지
회색 블록담장의 그림자로 살아낸
삼십 년 빛과 어둠의 부장품
길들여지지 않은 보상금의
몸 두려워
홑겹의 생으로
자릴 옮겼다지
오체투지의 입맞춤으로
동그랗게 자리잡은 그림자 버리고
몸 심었다지
아무 풍경도 남기지 않았다지
[신작시]
장생포의 밤
류 윤 모
포경금지가 언제 적 일인데도
살코기가 열두 가지 맛이라는 고래는
뜯어먹을 것이 많아서
아직까지도 온 장생포를 먹여 살린다.
해체해놓은 지 좀 오래된 밍크고래의 골조만
남아있는 듯한 장생포 골목으로 들어서면
위태롭게 걸려 빛바랜 구식간판들도
일이십 년은 거뜬히 버텨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나가 고래뱃속에서 살아 나왔듯이
아직도 이곳 장생포 사람들은
환한 고래뱃속에서 고래 살이나 뜯어먹으며
어영부영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나: 성경에 나오는 사람 이름.
[시작 노트]
장생포는 이름 그대로 오래 살아남는 포구인가.
포경금지조약으로 고래잡이는 이미 전설이 되고 말았건만 이곳은 그나마 고래고기 맛의 명맥만은 아직도 이어가고 있다.
물론 그물에 저절로 걸린 고래를 합법적으로 잡아 고기를 썰어 파는 원조 할매집이니 할매집이니 하는 고래고기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두엇 있다.
그러나 글쎄, 나로서는 어느 해인가 서울서 오는 손님 영접을 기다리면서 고래고기보다는 솔직히 식당주인 밥상의 구수한 된장 시래깃국 냄새에 더 식욕이 동했었으니. 아직 제대로 맛있는 고래 부위를 맛보지 못했음일까.
포경금지 이후 장생포는 오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시 고래잡이가 개시되는 날을 꿈꾸며 살아간다.
[신작시]
경상일보[0823]신작☞성자현/바람 아래 기호 찾기
율리못 앞 '바람아래'라는 기호를 가진 집의 하늘엔 늘 바람이 머뭇거린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빛나는 물방울. 그 긴 꼬리를 물어 나르는 해가 저수지에 당도하기도 전 나는 바람 아래 나무계단을 오른다. 좁은 틈을 비집고 올라오는 풀잎들의 향내는 풋풋하다. 꼿꼿한 풀들을 헤치고 터지는 팽팽한 웃음소리.
우리는 오래 전부터 분류작업을 해왔다. 모든 현상에 깃드는 내면의 질서를 기호화하고 정리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말이란 그저 공중으로 흩어져 돌아오지 않는 수증기 같은 것이므로 수많은 기호들 속에 감추어진 암호들의 규칙을 찾아내고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출구를 모르고 흘러가는 바람의 불안. 이런 기억들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영 고립될지도 모른다. 온갖 감정이라고 일컬어지는 암호들을 풀어내기 위해 사랑이라는 방정식을 대입 시켜야 한다. 터지는 웃음 노랫가락 모든 춤사위는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오래도록 우리 사이에 움직이지 못할 증거로 채택되어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바람아래에는 온갖 나무와 꽃들이 싱싱한 기호를 찾아 자라나고 깔깔대며 섞인 우리는 눈을 맞추며 바람의 출구를 찾는다.
☞시작노트
근원을 모르는 곳에서 불어와 기착지를 모르는 곳으로 흘러가는 오늘도 바람이 분다. 어쩔 수 없이 불안의 요소를 간직한 우리네 인생도 바람 따라 흘러간다. 그리고 무수한 관계와 관심 속에서 서로에게 기호를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꾸준히 진행된다.
이러한 기호는 절대적인 것일까? 내게는 'ㄱ'이라고 읽히는 기호가 누구에겐가 'ㄴ'이라고 읽히는 것은 아닐까? 무엇이라 읽히건 환영할 일이다. 한 가지를 바라보고,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로 인하여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면, 외롭고 불안한 우리네 삶도 살아볼만 하지 않겠는가.
나무의 생존법
성자현
지하와 지상계를 연결하는 푸른 신호
이끼 가득한 고목에게 묻는다
땅속 세상은 어떠하냐고
어떻게 결빙의 계절을 참을 수 있었느냐고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장소
강가에서 그가 보았던 것은 구름이었으나
뿌리는 지하 깊숙이 강물을 더듬고 있었다
키가 자랄수록 더 깊이 지층의 중심으로 파고 들었다
호흡을 멈추고 모든 신경을 차단한 흔적
식물성의 비밀을 검은 나이테로 갈무리한 채
굳은살 박힌 줄기의 어느 곳에
깊은 숨결 숨기고 있었나
맨살로 빙하를 건너온 수 백년
나무는 간직했던 수액을 풀어
푸르게 강을 적시고 있다
원시(遠視)
성자현
바다를 보다가
바다를 찍다가
우두커니 있는 섬 하나를 현상한다
섬을 거닐다가
섬이 되어있는 나를 본다
원거리에서 보면 더 잘 보이는 눈은
풍경을 축소시킨다
바다 위의 점 하나,
하늘과 바다 사이의
티끌로 날아가는 우주의 점 하나,
섬에서 점차 멀어지다가
바다 먼 끝에 가물거리는
넓고 깊은 것을 바라본다
성자현 seaofluv@hanmail.net 대전 출생. 『시와비평』등단. 산다촌문인회. 『두레문학』웹마스터. 울산문인협회. 공저『시와비평』.『두레문학』.
자두
신현숙
새콤달콤한 맛이 온 몸에 퍼져
늘어진 일상이 화들짝 깨어나
신맛에 몸을 비튼다
찌는 듯한 더위에 짓눌려
복제품처럼 누워있는 날
주황, 빨간색 자두가
흑백의 삶을 환기시킨다
[시작노트]
주말이다. 가까운 곳에 예약을 하고 출발지를 향해 가고 있다. 배도 고프고 갈증이 나서 과일을 꺼내보니 자두였다. 약간 시면서 얼마나 상큼하던지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똑 같은 일상이지만 주황, 빨강색 자두가 내 삶을 환하게 환기시켰다. 늘어진 일상이지만 자두처럼 상큼한 맛을 낼 수 있다면 지친 무더위를 시원하게 보낼 수 있으리라. 올 여름은 유난히 더울 거라 한다. 자두처럼 상큼한 맛을 잃지 않도록 휴가계획을 세워 보는 것은 어떨까? 여행은 자두처럼 새콤달콤한 맛을 준다.
신현숙 프로필
2004년 예술세계등단
현재 문협회원
곡괭이 한 자루
제인자
언양 자수정동굴을 다녀 온 뒤 내 몸에서 변종(變種)같은 굳은살이 만져졌다
군데군데 채석한 흔적의 폐갱도 광산을 돌아 나오며
글쟁이는 애당초 다른 종을 키우고 있었다고 열강 하던 어느 시인을 생각했다
번번이 박살나면서 벼리는 모나미볼펜.
달구어진 골방 불빛 아래 밀고 당기는 백지장 손풀무질.
쪼고 갈아낸 말(言)비늘 수북한 파지 뭉치들.
자코메티* <거대한 여인>의 슬픈 발처럼
더러 뼈와 힘줄만 살아 팔딱이는 밤을 견디는
그 적막한 굴곡에서 누굴 위해 갈무리한 원석을 캐는가
든든한 곡괭이 한 자루,
퉤퉤 침 뱉어 불끈 쥐고 정수리서 발바닥까지 피가 나도록
나를 캐는 일
텅 빈 내 안
비로소 돌고드름 끝에 맺히는 언어여
우묵한 절망에 고여 한 병의 수정빛깔 안약이 되라
곡괭이 한 자루 값 갚고 죽도록
(1901~0966) 스위스의 조각가이자 화가
[시작노트]
오래전에 자수정동굴에 다녀왔다.
폐갱도 광산의 구불구불한 지하에는 채석의 환부와 수정빛깔 웅덩이가 많았다.
어린 광부의 곡괭이질처럼
내 시의 밤은 멀고먼 지하에서 울려오는 소리뿐이다.
그 소리를 버무려 한 병의 안약이 고이기까지 기다리는 작업은 실로 행복하다.
서두르지 않고 끈질기게 쥐고 가고 싶은 곡괭이 한 자루.
경상일보[0907]
[등단 신작]
월간『한국수필』신인문학상
2007년 5월호 김대근 수필가
깊은, 아주 깊은 블루
청사진...靑寫眞...BLUEPRINT..
"뉴타운, 청사진은 나왔지만..."
"부시, 새로운 이라크 청사진 제시..."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청사진 마련..."
"~로 육성한다는 청사진을 세워놓고 있다"
"대안도시 건설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언제부터 청사진이 인간의 미래에 대한 설계도로 불리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어쨋던 사람들은 미래의 계획을 청사진이라 부르게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 언제부터였는지 확실 하지는 않지만 푸른 하늘색이다.
그것도 ‘그냥 푸른’이 아닌 아주 깊은 가을 하늘보다 더 푸른 하늘색을 좋아한다.
내가 처음으로 청사진을 만났던 날의 그 좋은 기분을 35년도 넘게 흘러간 세월임에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좋아하는 색깔이 조금 변하긴 했다. 나이를 먹은 탓인지 마흔을 넘어서 오십이 되어버린 지금은 이상하게 보라색이나 붉은 색이 좋다.
집안의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공고를 가기는 했지만 과연 내가 잘 한걸까? 라는 의아심이 교련복의 얼룩무늬처럼 마음의 반점으로 남아 있을 때였는데 그날 처음 본 짙은 블루 빛에 반해서 "아! 이곳에 잘 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청사진은 철(Ⅲ)염의 감광성을 이용하는 사진법의 하나이다.
일명 시아노타이프(cyanotype)라고도 한다. 1842년 영국의 F.W. 허셜이 발명하였다고 기계제도 책에 나와 있었다. 복사방법으로는 가장 오래된 방법으로 비용이 싸고 간단하여 토목·건축·기계 등의 도면 복사에 많이 쓰여 왔다.
감광재료로는 제 2 철염과 페리시안화칼륨이 쓰인다.
빛에 노출시키면 제 2 철염이 제 1 철염으로 변화하고 페리시안화칼륨과 결합하여 페리시안제 1 철염이 된다. 이것이 턴불 블루(Turnbull's blue)로 발색한다.
복사 방법으로는 트레이싱 페이퍼의 원그림을 감광지 위에 놓고 아크등(燈)이나 고압수은등 따위로 빛을 쏘인다. 페리시안제 1 철은 수용성이 아니므로 물로 씻으면 빛에 노출되지 않은 부분이 녹아서 푸른 바탕 속에 흰 선으로, 즉 음화(陰畵)로 나타난다.
이것을 건조시키면 청사진이 된다.
나는 이 푸른빛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
그래서 알아 낸 방법이 부산에서 제일 큰 시장인 국제시장의 화공약품상으로 제2철염과 페리시안화칼륨을 구하러 다녔다.
페리시안화칼륨을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화공약품 가게 주인 아저씨가 사정을 듣더니 대체 약품과 배합 비율까지 알려주었다.
제도용으로 사용하던 켄트지에 만들어진 감광약을 붓으로 발랐다.
A4 사이즈 몇 장을 어두운 곳에서 그렇게 만들어서 말리고 두터운 책위에 놓고 그 위에 트레이싱지에 먹물로 그려진 도면을 놓고 유리판을 놓은 후에 양쪽을 잘 잡고 햇볕에 노출을 시킨다.
하나..둘...셋...스물일곱..스물여덟...스물아홉...서른!
후다닥~~ 다시 어두운 곳으로 뛰어 들어와서 감광지를 물에 담가 살랑~살랑~흔들면.....
"이런~ 제길...실패다! 이번에는 1분으로 해볼까?"
"윽~~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내 손으로 만든 감광지로 청사진의 그 푸르고 깊은 색을 만들었
을 때의 그 기쁨은 하늘을 나를 것 같았다.
친구들은 늘 그 고생을 왜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건식의 암모니아 가스로 감광을 하던 청사진이 보편화되고 있던 때에 나는 책에 나와 있는 설명을 보고 물에 씻어내는 그것을 만들려 무진 애를 썼다.
새로 나온 건식의 청사진은 파란 바탕에 선이나 글씨들이 하얀색이 아니라 그 반대로 바탕은 연한 블루에 글씨나 그림은 진한 블루였기 때문에 그다지 멋이 없어 보였고 마음을 송두리째 뺏어버린 그 푸른색의 유혹을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이다.
"아!"
"으헉~"
"야..너 이거 때문에 그랬구나?"
사진관에서 떼를 써서 절대 주지 않는다는 반명함판 사진 원판을 겨우 얻어서 자작한
감광지로 멋진 깊은 블루 빛의 사진을 만들어 갔을 때 친구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인지 살아지는 것인지 한번 씩 자신에게 물음표를 던지며 하루를 시작하고 또 보내는 것 같다.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뜨고 어둠이 무르익을 때 쯤 그 날을 마감하는 사소한 일들이 무의미해지면서도 다들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안도를 하게 된다.
삼십 대만 해도 또래 집단의 만남에서 화두는 아이 자라는 이야기, 남편 흉보기, 시댁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는데 요즘 우리 사십대는 만나면 건강이야기로 모든 지식과 상식을 쏟아내느라 여념이 없다. 어제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돌연사해 주위를 놀라게 한 일 몸이 조금 이상해서 병원에 갔는데 암 선고를 받고 수술한 일 등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주고받는 말들은 무거운 하루를 더 무겁게 만들기만 한다.
지금 우리 부모 세대는 어려운 시대를 거쳐서인지 웬만한 일들을 견디는 힘들이 강해 몸과 정신이 대체로 건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장수하는 동네가 많이 생기기도 하고, 부지런한 모습을 잃지 않고 노후를 보내며, 토속적인 음식들을 선호하며, 우리 세대들보다 모든 면에서 강인하고 좋아 보인다.
나 같은 경우엔 병원을 나의 구세주라 생각하기보다 되도록 가지말자 주의였다. 무슨 사형선고를 받을지 모르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웬만해선 가지 않는 곳이 돼 버렸다. 의료보험공단에서 건강 검진하라고 안내문이 몇 차례 나왔지만 계속 그냥 지나쳐왔다. 하지만 나약한 사람인지라 몸 상태가 괜찮을 땐 안 가기 잘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막상 어느 한 곳이 아프면 왜 나는 이렇게 늦장을 부려서 더 큰 병을 키우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이 살며시 되기도 한다. 시집 안 가도 후회 가도 후회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왼쪽 아래 배가 아파서 힘들었다.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힘줄이 늘어났는지도 모른다는 자가 진단으로 집에서 간단한 처치를 해 보았다. 하지만 나을 기미도 없을 뿐더러 아파서 오른 쪽으로만 눕다보니, 목 쪽에 무리가 갔는지 움직일 때마다 당기기를 계속했다. 혼자서 민간요법을 다 동원해도 차도가 없어 큰마음 먹고 병원을 찾았다. 환자들이 참 많았다. 링거를 꽂고 병원 주변을 도는 사람 깁스를 하고 절룩거리는 사람 목을 고정하고 온몸을 돌려 시선을 맞추는 사람 난 평화로운 생활을 보내고 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내 몸을 분석해 보았다. 아마 대장에 용종이 생겼거나 암일 수도 있을 거야. 아니면 자궁에 염증이 생겨 아픈 걸 거야. 그것도 아니면 아주 작은 신체 부분이 탈이 난 걸 거야. 난 앉아서 잠시도 내 몸을 편안히 두지 않고 괴롭혔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허무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아픈 거만 생각하고 몸에 열나는 것은 못 느꼈는데 열도 꽤 많이 난다고 하셨다. 신장염이라는 병이 나를 침범한 것이다. 난 콩팥이 어디 있는지도 관심이 없었는데 위치를 확인하고 계속 엉뚱한 곳을 의심했던 게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많이 심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조금씩 아파왔던 게 꽤 오래 됐다는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내 몸을 소홀히 대했던 게 어쩌면 병을 더 악화시켜서 치유기간도 길어졌고 고통도 커졌다는 걸 뒤늦게 인식하게 되었다.
어떤 지인은 치통이 심해서 병원에서 치료하는 중에 귀찮다는 생각과 아픔 때문에 그냥 영원히 잠을 자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참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라고 못마땅해 했는데 약을 먹고 열과 함께 통증이 수반되고 잠을 못 이루자 그 사람이 했던 말이 떠오르며 고통은 정말 사람 마음을 약하게 만든다는 기분을 공유할 수 있었다.
식욕이 감퇴되어 음식 맛을 느끼지 못했지만 약을 먹기 위해선 억지로 먹어야 했기에 기분이 정말 낯설고 싫었다. 맛있게 먹었던 고구마의 맛도 못 느끼고 김치의 맵싸한 맛도 모른 체 입으로 받아 넘기는 것이 곤욕스러웠다. 어떤 진수성찬도 입맛을 찾아주지 못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복부의 통증이 느껴져 내 손을 기다리는 일들이 모두 휴식 상태로 널브려져 있었다. 마음만은 이것도 챙기고 저것도 챙겼지만 몸은 여전히 누워서 난 도저히 할 수가 없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내 몸이 고장이 나니 그동안 흘러들었던 말들이 영화 필름 돌아가며 뇌리를 스친다.
얼마 전에 위암 수술을 받은 사람이 치료 중에 너무 고통을 참을 수 없어 병실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아프지 않아서 그 고통을 몰랐기에 건성으로 그런 일이 있었냐고 반문하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그 고통에 비하면 내 아픔은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겠지만 사람은 이런 저런 육체적 고통을 겪으며 살다가 영원한 안식처로 가는 거라는 생각에 이르자 삶은 병마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동반자가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듯이 비슷한 처지가 되어야 그 사람을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매사에 의욕이 넘쳐 물러섬을 몰랐던 내가 해야 될 일을 자꾸 미루게 되고 몸이 아파서 못하겠다는 말을 자꾸 사용하게 된다.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하면 벌떡 일어나서 배를 채워줬는데 지금은 시켜먹으라는 말들이 자꾸 튀어나온다. 현관까지 나가서 학교 잘 갔다 오라고 배웅도 했는데 침대에 누운 채로 잘 갔다 오라는 말도 하게 된다. 엄마의 위치를 망각한 체 병의 노예가 된 내 모습이 몹시도 미워진다.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귀찮아지고 짜증스러워 뭐든지 대충하게 되었다.
식욕이 회복되지 않아 어떻게 할지 몰라 하다가 집 부근에 생긴 맛죽집이 생각이 나서 입맛이 돌 것 같은 죽을 시켜서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입맛을 회복시켜 주지 못했다. 맛있는 과일을 먹으면 입맛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봄의 향기를 담은 산딸기를 큰 맘 먹고 사 먹어 보기도 했다. 어릴 때 정말 좋은 군것질거리였던 추억의 맛을 살려 맛있게 먹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씹는 느낌은 얻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입맛이 회복되지 않아 안타깝기만 했다. 내 몸이 왜 이렇게 비싸게 노는 건지 용서가 되지 않고 가족에게 미안했다. 의지로 되는 것도 아님을 애통해 하기만 했다.
이 아픔이 지나고 나면, 나는 새로운 시선으로 삶을 껴안고 몸에 조금이라도 빨간 불이 켜지면 망설이지 않고 병원의 도움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자가진단으로 민간요법을 적용하다보면 벌써 버스는 떠나고 없을 것이다. 된장, 고추장처럼 묵히지 말고 갓 무친 나물의 고소한 참기름 맛이 남아있을 때 달리기 선수되어 뛰어가리라 다짐해 본다. 병에 저당 잡혀 사는 날이 누군가에게 생길 것인데 저당 잡히는 기간을 줄여야 후회를 하지 않을 것 같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 내 마음은 건강 검진하라는 통지서를 이제 반갑게 받고 싶다.*
박서정 sosunok@hanmal.net 등단 『육필문학』. 한국육필문학협회 회원. 울산문인협회 회원. 아동문학회원.『두레문학』회원.
공저『두레문학』
[등단 신작]
월간『아동문학평론』신인문학상
2007년 5월호 서순옥 시인
이연(異緣)
폭풍우에 빈 배일지라도
이어지는 끝을 오가며
하루도 멈출 줄 모르던 사공은
고집스런 노만 젖는다.
잠들기가 두려워진다
또 한바탕 꿈을 몰고 와서
붉게 물들여 놓으면
그리움에 사무쳐 울먹거릴
쥐어짜지 못할 가슴 아리면
죽을 것만 같아서
한밤에도 몸을 뉘이지 못하고
참선하듯 앉아 지새운다
핏발 서린 충혈 된
두 눈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허탈한 갈증이 두려워서이다
굳게 닫은 입술을 열어
아리아를 부르지 못할 바엔
차라리 은장도를 베어 물고
풀죽은 내 영혼을 기절시켜버리자
미친 듯이 일어나
살풀이라도 추지 못할 바엔
날카로운 작두의 입을 열어
영혼의 허리를 걸쳐놓고
바람 한 점에 운명을 맡겨버리자
한편에서는 탯줄을 자르고
한편에서는 병을 고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죽음을 연결해주는 중매쟁이 같이
생산하고 수리하고 폐차 처분하는
자동차 공장 같다
꺼져가는 불씨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간절한 희망을 안고
가슴 저리며 모으는 손
입원실에 웅크리고 앉아
하루에 몇 번이나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 뒤에 공허감을 생각해본다
마주 보고 있는 입원실 환자가
눈을 감고 영안실로 향한다
남의 일도 내일인냥
눈물을 훔쳐내며
울꺽거리며 미어지는 가슴
[초대시]
김연성(金淵星) 1961년 강원도 양양 출생. 2005년 계간『시작』등단. 웹월간 詩『젊은 사람들』동인. 서울시청 재무과 근무.
스트레스 증후군
김경선
꼭 물 풍선 같아요 누군가 조금만 충격을 줘도 곧 터질 것만 같지요 그래서 내 심장은 내 것이 아닐 때가 더 많아요 샌드백처럼 누구든 와서 치고 박고 해요 며칠 전엔 이 부장이 축구공처럼 걷어찼지요 반칙이었지만 아무 말도 못했어요 어제는 경리담당 미스 리가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렸어요 오늘은 아침부터 사장이 시말서를 쓰라고 어퍼컷을 날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지요 내일도 누군가 심장을 겨냥해 오겠죠 꿈속에서조차 울렁거리는 심장 박동소리에 내가 먼저 놀라 잠이 깨곤 해요 집에서는 마누라에게도 스파링 상대지요 마누라는 거침없이 잽을 날려오지요 날마다 링 위에서 진땀을 흘리다 그로기 상태로 돌아와서는 동네 문방구 구석에서 뿅망치로 뿅뿅뿅! 만만한 두더지나 때려잡지요
인천광역시 옹진군 출생. 2005년 <시인정신>신인상. '젊은시인들' 동인.
쌍살벌의 사랑
김미혜
햇빛은 쨍쨍
바람은 눈곱만큼.
엄마, 엄마, 더워요.
더우면 안 되지.
물을 뿌려 주마.
엄마가 분무기가 될게.
그래도 더워요.
더우면 안 되지.
바람을 불러 주마.
엄마가 선풍기가 될게.
엄마, 엄마, 배고파요.
배고프면 안 되지.
맛있는 빵을 빚어 주마.
재료는 초록빛 나비애벌레 한 마리
애벌레를 조금씩 떼어
동글동글 빵 하나
동글동글 빵 둘
동글동글 빵 셋.
우리 아기는 입이 작으니까
조그맣게 빚어야지.
엄마, 엄마,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요?
누구긴, 바로 너지.
반딧불이
김미혜
까만 밤하늘에
별들이 말똥말똥
잠 못 드는 밤
나도 깜빡깜빡
잠 못 듭니다.
나는 사랑을 기다리는 별빛.
초롱초롱 빛나는 별빛을 따라오세요.
그런데 눈을 너무 높이 두지 말아요.
높은 하늘에서 반짝 빛나는 것은
내가 아니랍니다.
저 먼 우주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별이랍니다.
김미혜
한국의 전통 문화를 좋아해서 숲과 절터, 박물관에서 놀고
공부하며 동시와 그림책 글을 쓰고 있습니다.
쓴 책으로는 동시집 <아기 까치의 우산>,
자연 이야기 <나비를 따라 갔어요>,
전통문화그림책 <그림 그리는 새>가 있습니다.
2006년 제5회 ‘오늘의 동시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더디디더딘 날의 그림
김태수
쭈그러든 양철냄비 아래 삭정이 불을 지피고
깨진 옹기그릇에다 쇠비름을 자꾸 으깨었다 풀물냄새가 역하였지만
찰흙 빚어 떠 넣던 수제비국도
그것도 사내라고 나무그늘에 비스듬히 앉아 짝지 끝순이가
차려온 소꿉상(床)을 받았다 옹기그릇 깨진 조각마다 가득했던
그 유월, 후여후여 가버린 더딘 어린 날
예쁜 짝지 끝순이가 차려 온 세상에서 제일 맛있던 식사의 기억
아직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는 이웃도 있다.
김태수 -49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78년 시집 「북소리」(詩人社-신경림 시인 발문)로 등단, 이후 ‘실천문학’ ‘창작과 비평’ 등지에 작품 발표. 시집으로는 ‘황토마당의 집’(실천문학의 시집-145, 2003년)외 ‘농아일기’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 ‘겨울 목포행’이 있으며 92년 ‘창작과 비평 제77호’에 ‘지역정예시인 12인’에 선정되기도 함. 현재 (사)민족문학작가회의 자문위원, 울산양사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 home : kimtaesoo.pe.kr
잠, 풍경
남주희
사내가 푹푹 졸고 있다
사선의 줄기가 때론 직각으로 꽂히는데도
주름 몇 개 지우며 빗속을 건너고 있다
옆 어깨에 비를 걸치며
빗소리를 씹는 지금
축축한 날개를 접은 산짐승처럼
구겨진 곡선을 자주 뒤적거리며
목을 꺾는다
기차는 흔들흔들 비를 뿌리고
촘촘한 생명에 부리를 걸쳐둔 채
습지를 빠져나간 그
불어난 강물을 마름질하는 모양이다
차창 밖을 뛰어가는 플라타너스가
가랑이를 걷는 사이
완행의 휴식에 편승하며
몸을 털어내고 있다
피곤한 열선 모두 끄고
오래 공유해도
오래 젖어도 좋을 경계, 그 사이에서
남주희 약력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졸업. 대구문화방송 아나운서. 현 사단법인 한국편지가족 회장. 정수문학회장, 현대수필 작가회, 시인정신 작가회. 한국문인협회, 영남수필 작가회. 시인정신 최우수상 등단. 현대수필 등단. 영호남 친선 편짓글 쓰기대회 대상, 정수문학 대상, 혜원 문학상. TBC 대구방송 창사기념 편짓글 쓰기대회 대상. 한국민족문학 본상 수상.
저서: 오래도록 늦고 싶다 (시집). 손으로 걷다(시집)
눈으로 못 다한 말이 있거든 14권 (편지글)
神魚야 놀자/ 유행두
이천 년 전 바람 불던 날 숨어들었다는
神魚찾아 은하사 오르네 휘파람 불며 연밥송이 출렁이는 연못 지날 때 바람이 비를 묻혀
내려오네 지난 비에 일그러진 일주문은 대웅전 마당에 옮겨 누웠네 비린내 한 토막 묻은
곳 없는 이곳
삶을 등기한 보살님께 신어행방 물어봤네
항아리는 뚜껑만 다독다독, 상사화는 놀란 척 꽃술만 껌뻑껌뻑, 뜰 배롱나무는 연분홍 입
술만 파르르
산비둘기 울음에 밤은 어둑어둑 묻어오는데.
<유행두 프로필>
경남 하동 출생
제16회 신라문학대상 시부문 수상
2007년 경남신문 신추문예 시부문 당선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
그믐 / 임동윤
흐린 달이 가까스로 매달린 버짐나무 아래
유리창이 깨진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낡고 허름한 사내가 수화기를 든다
빚더미에 쫒기는 몸, 불안한 눈초리
벌써 수화기를 몇 번 씩 들었는지 모른다
귀에 갖다 댈 때마다 떨려오는,
천근무게의 수화기, 마른침 삼키고
애써 동전 한 닢 조심스레 밀어 넣는다
바람에 휘날리는 버짐나무처럼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 간신히 버튼을 누른다
두두 울리는 신호음, 마치 사이렌 같다
순간 사내의 심장이 꽉 죄어든다
‘여보세요?’
딸아이의 음성이 팽팽하게 고막에 닿자
철컹, 수화기를 내려놓고 마는 사내
살을 에는 바람에도
이마에 흐르는 땀은 막을 수 없다
후들거리는 다리, 휘청휘청
다시 바람 많은 거리로 숨어드는 사내
발자국마다 그믐 달빛만 축축이 쌓여간다
[임동윤 약력]
1968년 강원일보(시), 1992년 문화일보(시조), 1996년 한국일보(시) 당선,. 시집「연어의 말」「나무아래서」「함박나무가지에 걸린 봄날」「아가리」 등. 2002년 수주문학상 대상 수상
킹밴자민
하봉채
모양 잡아주려 만지는 가지마다
말라 죽고도 부족해
사납게 비틀린다, 아파트 18층은
자라던 온실에서 너무 먼 걸까
머지않아 통째로 죽을 것 같아
베란다 구석에 슬그머니 내어놓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후하게 장례나 치러주려고
외면했던 화분을 살펴보니
비쩍 마른 가지 여기저기
두런두런 노란 열매가 달려있다
십 년 키워도 볼 수 없다는 밴자민 열매
꽃 피는 새도 모르게 열려있다
애써 모른 척 외면하였더니
서러움 먹고 살았나보다
억세게 살고 싶었나보다
하 봉 채 1963년 전남 진도 출생. 한양대학교 법과대학·대학원 졸. 현 (주)씨아이씨코리아 재직. 11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당선. 천리안 詩窓 동인.
천리안 문단작가. dawnmist@chol.com
[추천시]
여성신문[0815]추천시☞권기만/주남저수지
누가 벗어놓은 신발일까
신지 않으면서 다 신고 있다
달도 신고 구름도 신는다
무당벌레 장수하늘소도
발성법 연습하듯 또박또박
나뭇잎 떨군다
가창오리 날개에 돋아있던
천둥과 번개의 잔뿌리
구름운에 맞추어 물결 첨벙인다
발디딜 틈 없는 고요
물방개로 수놓은 신발코
개구리도 풍덩! 신어본다
갈대는 언제부터 신발 군락지가 되었나
풀로 자란 무성한 바람
우우- 떼지어 신어보고 있다
우우- 떼쓰듯 신어보고 있다
<시작노트>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이느냐도 중요하다. 내가 말을 걸기도 하지만 내가
바라보고 있던 대상이 문득 말을 걸기도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만나게 되는 풍경은 주체가
내가 아니라 말을 걸어오는 쪽이다. 철새가 날아왔다 날아가는 정거장 같은 주남저수지는
그 주인이 철새다. 철새가 날아오지 않는다면 몸만 있고 머리는 없는 죽은 자연일 것이다.
안개 속에서 몸체를 들어내던 주남저수지, 그가 살아 있어서 우리가 살아 있다. 우리가 있
기 전부터 당당하게 세상을 건너가는 모습을 그 날 나는 본 것이다.
지 함께 흔들려야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바람이 분다는 것은 꽃의 투정이 시작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권기만 약력]
0
컴퓨터에 단어를 뿌려놓고
배고프면 활자화하여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
250GB 밭엔 비주얼 자바 c++
변조된 웃음 소스가 무한대로
자판기 너머 미래로 번식한다
0과 1의 관계수로 사이로 음악이 폭주하고
복제된 야후의 달이 화면 밖의 달과 충돌한다
수천 개의 불꽃이 암흑을 가로질러 불발탄처럼
,,, 쉼표로 찍힐 때
키만 큰 잡초같이 흑흑거리는 감정그래프,
저축한 돈이 없어도 관계수로 사이로
발뒤꿈치를 들고 발레리나가 된 봄이 지나가고
반복반복 녹슨 목소리도 지나간다
마이크로 칩에 내장된 여자의 손톱,
250만 가지 입술이 채소처럼 차려진 식탁이다
메니큐어를 바르고 손톱으로 둔갑한 칩,
전립선에 꼽으면 사이버세상이 도래한다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던 이루어지는 세상
흙냄새 좀 나지 않으면 어떠리
쾌락도 썩으면 흙이 된다 바보처럼 중얼거릴 때
종자를 알 수 없는 무정자의 무리가
이브를 유혹한 뱀처럼
미라보다리 아래 유유히
야후의 달을 향해 몰려간다
도서관 2
햇살이 허벅지 드러내고 아지랑이와 논다는 풍문이 돌면 눈먼 개구리들이 달려와 울음을
푼다 그 소리에 귀가 트인 나무도 덩달아 몸을 푼다 파란 양수가 터지고 새파란 아우성에
놀라 알에서 깨어난 울음들, 미처 꼬리가 마르기도 전에 제 울음에 맞는 연못을 찾아 나선
다 잎에는 연못이 하나씩 들어 있다 연못을 제대로 찾아가기 위해 청개구리는 비가 올 것
같으면 미리 울음을 던진다 그 울음에 반응하는 조그만 몸 같은 연못에 이르면 그늘을 접
지르며 순식간에 울음 속으로 뛰어든다 온몸을 던진 개구리만이 얻는 득음으로 파랗게 출
렁이는 것을 여름은 지겹도록 듣는다 잎 속에 연못이 사는 것은 햇살에 속아 살며시 가랑
이를 벌렸기 때문이다 청개구리는 반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연못으로 간다 언어의 행간에
도 연못이 있고 개구리가 산다 경칩이 오면 행간에서 와글와글 깨어나 울음을 터트리는 개
구리들로 도서관은 커다란 연못으로 변한다 애초에 개구리와 한 종족이었음을 그제야 알
아보는 것이다 행간에서 꼬물거리는 올챙이들이 개구리가 되는 그때를 놓칠세라 카랑카
랑 글 읽다 캭!캭! 목이 터져 딱 한번 연못이 되는 때를 기다려 시도 때도 없이 꼬물딱 밤
을 센다
[추천시]
여성신문[1001]추천시☞김민성/친정 나들이
얇은 홑이불이
마당을 독차지 한다
삐걱거리며 열려진 대문 틈으로
바람이 들락거리고
빈 마루
쓸쓸한 햇살
한 줌 먼지 날린다.
가지런한 흰 고무신
언제나 한 켤레
속앓이 잠깐 동안
망설이다 부르지 못해
어머니
가슴이 울컥
시리는 줄 아십니까
왔구나, 훑어 내리는 손
싸리나무 마른 가지
서투른 듯 익숙한 듯
안겨보는 가슴이여
메아리
되돌아오고
여운만이 남는다.
<시작 노트>
햇살 가득 받고 있는 대추나무는 계절을 잊지 않고 조롱조롱 가을을 매달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가로 지른 빨랫줄에 하얀 옷가지가 눈부시고 , 그때서야 “어머니”라고 부르며 현관문을 연다. 예고 없이 불쑥 찾아 드는 나이 값 못하는 딸이 늘 안쓰럽기만 하고. 볼 때마다 야위었다는 말을 이어 놓으며 부지런히 장독대를 들락거리신다. 당신 몸으로 낳고 키운 자식이지만 어느새 손님이 되어 버린 듯 하다.
늦기 전에 어서 가 보라며 부추기는 그림자는 애써 태연한 척 먼 산을 향하고 거친 손에는 벌써 풋대추 한 오쿰이 들려있다.
김민성 650901us@hanmail.net 양산출생. 전국충의백일장 시조 입상. 『시와비평&시조와비평』 시조 부문 등단. 『두레문학』회원. 『삽량문학』 공저 『[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추천시]
여성신문[0727]추천시☞김정숙/꽃꽃이 강좌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아깝다고 무작정 다 꽂았다가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거든요
가장 간절한 사연 하나만 남기고는
모두 잘라 버리세요
1주지와 2주지 사이에는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터 주고
빈 공간에다
잘려 나간 꽃들의 노래를
흐르게 하세요
침묵하는 법을 알아야
좋은 詩를 쓸 수 있듯이
꽃으로 피고 싶은 언어들
잠재워야만 비로소
여백의 美까지도
수반 위에 꽂을 수 있답니다
마지막으로
천천히, 아주 조금씩 물 흐르게 하세요
그리고
사라진 꽃들의 향기를 불러다가
날카로운 침봉 아래로
다시 한 번
뿌리 내리게 하세요
<시작 노트>
꽃꽂이 실습을 하면서 잘라내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다.
꽃들의 얼굴을 마주보고 싹둑싹둑 가위질을 해 대는 일이, 툭툭 떨어지는 꽃송이들의 아우성을 외면하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과감하게 잘라내셔야 합니다' 추상같은 강사의 주문이었다.
눈 질끈 감고 잎 속에 깊이 자리한 가지 하나를 향해 가위 쥔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새로운 개화의 소리를 들었다.
잘려나간 꽃들의 노래가 빈 공간 위로 흐르며 날카로운 수반 위로 다시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은 주어의 농간에 이끌려 다니다
무고하게 당신의 오해를 사기도 하지요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니까
사실 막판 뒤집기는 예정된 음모였답니다
어쩐지 맘 놓고 날뛰는 언어들의 기세가 유별나지 않던가요?
그들이 남발하는 관용과 미소에 속아
당신이 속옷까지 훌훌 벗어 제끼는 걸 봤어요
반짝반짝 부사어의 요염한 입술에 가려
잠시 앞이 뵈지 않았다구요?
그러니 끝까지 긴장을 풀지 말았어야지요
오늘 잠을 엄청 잤습니다
잤다는 말은 지금은 깨어 있다는 말
그래서 당신이 그립다는 뜻입니다
보세요 내가 갖고 있는 보조어간 하나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는지를
잘겁니다로 바꿔 볼까요?
불면이 뙤리를 틀고 혀 날름거리는 밤,
이젠 당신을 잊겠다는 말이 돼 버리지요?
마무리 공정을 맡아야 한다는 부담은
캄캄하고 무거운 형벌입니다
끝내 불합격 판정을 받기라도 하는 날이면
내 여린 속살까지 다 풀어헤쳐야 하고
영영 미완으로 끝나는 절름발이 문장이 되고 마니까요
그리고 음모 속으로 발 헛디딘 당신의 슬픈 하중도
장막 뒤에서 숨가쁘게 품어야 하니까요
시작법(詩作法)
김정숙
너에게로 가는 길에 또다시 터널이다
앞지르기 금지구역
낯선 생각들 불쑥불쑥 끼어들지 않도록
창문 올리고 귀도 잠시 닫아둘 것
좋아 거기까진 속아준다고. 하지만
아무리 긴 터널이라도 출구는 늘 고지식하지
눈 한 번 감았다 뜨고 나니 딱 그만큼
내가 빠져나온 터널의 길이만큼 길을 잘라 먹었는데
감았다 다시 뜬 눈 사이로
천연덕스럽게 속도 지켜가는 차량들
즐비한 시어(詩語)들이 정제된 속도에 풀풀 날려간다
바람 술술 빠져나가 이젠 말캉해진 풍선처럼
더이상 위태롭지 않은 노을만 저쪽에서 미리 환하다
터널은 점점 적아져 빛이 묻히고 출구가 묻힌다
반대편 어딘가에 아직도 잠식하고 있을 입구만
혀 날름거리는 지금은 여름 불볕 더위
현재진행형으로 바쁜 초록이 목소리 높히고 있을 뿐,
너에게로 가는 길, 길은 홀로 심각하고
귀 무거운 차량 행렬은 자꾸만 길어진다
[추천시]
빈 궁
박봉준
어머니 모시고
진맥 잘 짚는다는 의원을 찾았다
늙은 영감님이 말씀하셨다
자궁이 없으시군요
고개를 끄덕이시는 어머니
자식들 모르게 자궁 들어내셨다
언제였을까
당신의 자궁에 씨 뿌리시고
그 씨 여물어
제 새끼 거느릴 때쯤이었을까
아쉬울 것 없어
더는 宮이 필요 없다 생각하신 어머니
들어낸 자궁의 무게만큼
가벼워지셨을까
꽃이 피고 늘 향기 가득하여
깊이를 알 수 없던
어머니의 宮은 이제 없다
어머니,
자궁 들어낸 자리에 무엇을 채우실까
바람 소리 덜컹거릴 때마다
빈 宮으로 달려오시는 내 어머니
[시작노트]
동창회에서 어느 친구가 어머니를 모시고 의원에 갔더니, 진맥으로 자기 어머니의 자궁이 없는 것을 알아맞혀 깜짝 놀랐다고 하였다. 큰일을 겪으면서도 우리 어머니들은 늘 말씀이 없다. 폐경을 맞거나 자궁을 들어내도, 어머니는 언제나 향기나는 여자가 되고 싶다. 생산을 끝낸 어머니의 자궁, 그 허전하고 고독한 빈자리를 생각해 보았다.[빈 宮]이라는 표현이 말장난으로 비칠까 고민을 하였다.
여성신문[0727]
박봉준 http://wolfeyes09.kll.co.kr/ 강원 고성 출생. 강원대학교 졸업. 『시와비평&시조와비평』등단. 두레문학회 부회장. 산다촌문인회원. 글벗문학회원. 다울문학회장. 공저/『글벗』『시와비평』『두레문학』. 2007년 두레문학상 수상.
별밭
별똥들은 휘파람 소리를 냈다. 마당에 둘러앉아 늦은 저녁을 먹고 나서 모깃불을
피우거나 뒷간에 빠진 어둠이 여우 울음을 낼 때도 수평선 너머 긴 사선으로 떨어
지던,
나는 지금도 그 별밭을 수소문하고 있지만 번번이 실패다.
별똥을 보고 소원을 말하라고 누군가 알려 주었지만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기억
은 없다. 어느 밤하늘에서나 여울물 소리가 들리던 메밀밭, 사라진 별처럼 나이 든
고향 사람들도 강을 건넜으리라.
내가 그 어른이 되어 고향에 가는 날이면 갯바위에서나 풀 냄새 훅훅 달아오르는
들녘에서 밤새 기다려 보아도 별밭은 보이지 않는다. 포구에도 어둠이 지워지면서
애기별들은 하나 둘 고향을 떠났다.
오늘도 부황 든 달이 노루목에 걸터앉는다.
감자
비 오는 날
십리 길을 걸어
학교에 갔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감자 썩는 냄새가 났다
강원도 감자들이
생채기를 터트리며 새살을 만들었다
항아리 안에서
살을 녹이며 부글부글 끓었다
땡볕은 연신 뜨거운 바람을 풀무질해 대고
감자들은
그렇게 우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월선 한 죄로
평생 입 다물고 사는 아저씨
맨살에서도 감자 썩는 냄새가 났다
비가 내리는 날
비를 맞는 것들은 가슴이 젖는다
장롱 여는 아내의 탄식에 곰팡내가 나고
골목길 어디선가
부침개 지지는 냄새가 난다
육골이 부서져 환생하는
감자 부침개
감자를 가시는 어머니
강판 같던 손
[추천시]
폐가 안에 사는 담쟁이
손상철
금간 벽을 잡고
잠긴 문을 두드리다
체온을 잃어버린
문고리 잡고 울고 있다
파리한 햇살 한 줌 속
떨고 있는 잎잎들
문에 귀를 붙이고
까치발로 서서 듣는
누구도 대답 없는
세상 밖 끊긴 소식들
문틈에 잠깐 머물던 바람 앞에 무너지는,
밖에 누구 없어요 여기 누가 있어요
밖에 누구 없어요 여기 누가 있어요
똑똑똑,
다시 어둠이 와요
여기 누가 있어요
(시작노트)
사람의 인내가 사라진 폐가에 용기로 들어간다.
무언가 와르르 쏟아지는, 담쟁이들이다.
문고리에 엉긴 손들이 많이도 밖이 보고 싶어서일까.
참 따뜻하다.
여성신문[0620]
손상철 약력
-제21회 샘터시조문학상. -96 시조문학 천료. -07 해양문학상 시 당선.
[추천시]
나비효과
신 혜 경
내가 먼저 말 걸면
그도 내게 답합니다
내가 웃어 보이면
그도 함께 웃습니다
내가 한번 참아주면
그도 내게 너그럽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유행성 독감 같은 것이어서
저 길 모퉁이 돌기도 전 누구나
감염되고 맙니다
* 나비효과 -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날씨를 변화시킨다는 이론으로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사건을 일으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는 의미
[시작노트]
듣기 좋은 말로 오늘을 시작하기로 한다.
나와 당신이 속한 이 곳이 이팝나무 꽃처럼 환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향해 활짝 웃는다.
내가 웃으면 슬픈 당신도 조금은 웃기 때문이다.
여성신문[0613]
신혜경 ka0288@hanmail.net
1963년 경남 거창 생. 2003년 문학수첩으로 등단. 울산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추천시]
시인1
엄덕이
아침마다
바람이란 바람은 다 불러왔던
시인은
허물 벗고 귀먹어버린 물잠자리 되어
접시안테나에 걸려서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아파트 바람이 되어버렸네
<시작노트>
시인이 설 곳이 어디이던가? 시인이 살 곳이 어디이던가? 시인이 자리 펼 곳이 어디이던가? 종종 어설픈 생각에 몸을 맡기면 아파트에 걸려 있는 파라볼라 안테나가 되어 있는 자신을 만난다.
물 건너 귀화한 식물처럼 뿌려지는 작품들의 표류. 조금은 설익은 생각도 짓뭉개어 없어지는 사상의 산실도 어디에도 없어져간다. 뚜렷이 세울 푯대 하나 가지고 바다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시인이 외롭고 추종 세력이 없다고 괴로워할 권리나 있나?
초라한 일상의 꽃밭에서서 홀로 선 여름날 땡볕 바라보는 맨드라미꽃. 아아 그것은 차라리 절규의 웃음. 가끔 시를 몸이 읽고 있는 언어를 빌려 쓸 때가 있다. 참으로 미안하다.
시여! 가끔 시를 배밀이처럼 유아 같은 몸짓으로 방글거리며 쓸 때가 있다. 참으로 미안하다. 시여! 너무나 처절한 과제로 밀어붙여 쓴 미소 짓는 날은 너무나 미안하고 고독하다. 시여! 아아 영원으로 부르는 sos!
여성신문[0620]
umyi0333@hanmir.com ----------
하동출생.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 『시와비평』신인상.
울산문인협회. 『두레문학』회원. 농소고등학교 교감.
시집『꽃의 미래』2003년. 『작동 가는 길』2003년.
공저『시와비평』『두레문학』.
[추천시]
앵두나무 방앗간
이경례
입방아 찧고 있네
작은 잎사귀 틈새 숨어
누가 들을까 소곤소곤 귀엣말하다
비어져 나오는 웃음 등쌀에
봉곳봉곳 부푸는 입술
참지 못해 토해내는 말의 덧니들
귓전에다 부리는
언어의 곳간
무ㆍ어ㆍ라ㆍ길ㆍ래
얼굴이 죄다 빨개지고 있네
<시작노트>
오랜만에 들른 시골 마당 한편에
앵두가 느지막이 익어가고 있다.
새콤달콤한 언어의 덧니들이 반짝이는 것 같다.
한 알의 앵두 속에는 한 그루 앵두나무가 자라고 있다.
한 톨 건강한 언어의 힘이
무성한 초록의 숲을 키워가는 것이다.
마음을 서로 물들이는 언어의 과실을 맛보는 날들이기를!
여성신문[0627]
이경례 sohorogaja@hanmail.net 월간『심상』(2006) 등단.울산문인협회 회원. 울산시인협회 회원. 공저『두레문학』.
장작을 팰 때
이경례
숲 속 누군가 장작을 팬다 살이 패일 때마다 한 나무가
간직한 기억들 향기에 업혀 달아난다 숙주를 찾아 몸
숨 기는 벌레들처럼 도끼로 내리찍는 죽음으로부터 가
장 멀 리 달아나고자 혼신을 다해 날아가는 향기 흥건
히 쏟아 내는 향기의 피 외마디 비명들 사방에 빽빽하
다 무성생 식하듯 자꾸 불어난다 넝쿨 째 뻗어가는 향
기의 손 가던 이의 발목을 낚아챈다 향기로운 욕망에
는살아있는 먹이 가 필요하다 빨판 가동한 나무의 혓
바닥 흡반처럼 달라 붙어 꼼짝달싹할 수 없다 제물을
향해 들러붙어 한 순간 기어오르기 시작하는 수 천 마
리 향기의 포자 내 안에서 향기로운 벌레들 우글거리
기 시작한다.
[추천시]
가을 언저리
이민화
여름이 끝날 무렵 화단에 잡초를 뽑으려다
보라색 꽃을 매단 재스민을 문득 봅니다
무던히도 뜨겁고 지루했는데 뭐가 아쉬워
때 아닌 옹이를 매달고 있는 것일까
푸른 잎이 조금씩 변색을 보여주는 일이
사람이나 재스민이나 비슷한 생각이 들어
나는 잠시 눈을 감습니다
눈 밑으로 흐르는 어제의 통증이
강을 건너온 새소리에 닦입니다
눈 위로 흐르는 오늘의 다짐이
강을 건너가 바람을 불러 옵니다
초가을 바람이 시옷 자음을 그리기 시작하면
사람의 마음도 여러 갈래의 무늬를 보여주듯
꽃나무도 엉뚱한 발상이 솟구쳐
자신의 겨드랑이를 건드리나 봅니다
<시작노트>
섬진강의 여름은 그야말로 제 나름대로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듯, 붉은 배롱나무 꽃을 한쪽 몸에 줄줄이 꽂고 노란 해바라기를 수없이 우려내고 있었다. 매년 여름만 되면 꼭 한번은 찾아가는 곳, 갈 때마다 살가운 눈매로 내 어깨를 지긋이 눌러주던 눈 깊은 아버지의 강,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마법에 걸려 투명안경을 쓴 어떤 피에로처럼 진종일 첨벙첨벙 아버지를 찾아 돌아다니게 했다. 결국, 나는 2도 화상이라는 아름다운 무늬를 내 등에 여럿 매달고 귀가하면서 또 하나의 계절이 오고 있음을 직시했다. 즐겁던 즐겁지 않았던,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뵙고 돌아온 후의 마음은 늘 쓸쓸하고 허전한 시옷 자음을 그리는 가을, 가을이다.
대마도에서 구입한 칼에
가운데 손가락을 스윽 베었다
울컥 솟은 피가 멜론에 꽃잎처럼 떨어진다
엄마 엄마, 피가 흘러요
어서 소독하자는 딸아이의 말끝에
자연스레 따라붙는 쯧쯧,
이 놈의 칼이 결국 일을 쳤네 쯧쯧
엄마 손이 이젠 물고기로 보이는감?
대마도 물고기가 보고 싶어
여태 어찌 참았을꼬 쯧쯧
지혈을 한답시고 거즈 위 반창고를
꾹 눌러주며 또 다시 쯧쯧,
언젠가 아버지가 흰 고무신을 신고
혀를 끌끌 차시는 모습을 내 딸이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 게 아닌가
내 나이 9살 되던 가을이었겠다
갓 시집 온 아리따운 올케가
가마니를 서툴게 잡아 하얀 쌀을
몽땅 바닥에 쏟을 때도 아버지는 쯧쯧
동네 사람들이 애먼 누명을 씌워도
너나나나 말년엔 조선의 흙이 될 뿐이여 쯧쯧
어릴 적부터 지금껏 내 달팽이관에
집을 짓고 살던 아버지가 쓰시던 쯧쯧!
지금은 통증 아닌 통증으로
달팽이관 밖을 사랑한다
장롱에 갇힌 어머니/이민화
어머니 장롱에 갇혀 사시네
아들 여섯 딸 둘 낳아
아랫배가 쭈그러진 여자
오동나무 지천인 뒷밭에 자식들 집 한 채
일으키려다 아랫도리 모래가 된 여자
나물 캐다 비탈길에 미끄러져 낙타 등이 된 여자
이젠 오동나무 안에 갇혀 사시네
눈 오는 날, 통나무 쪼갠다고
한 쪽 팔이 휘어진 여자 밤이면 밤대로
이불홑청 꿰맨다고 한 쪽 눈이 희미해져
세상이 반쪽만 보인다며 반쪽 말만 믿던 순진한 여자
어쩌다 아들이 온다는 기별이 오면
밤새 가래떡 썬다고 손바닥에 물집을 짓는 여자
이젠 오동나무에 젖을 물리고 계시네
어머니 모시적삼, 젖을 철철 흘리네
옷고름이 필요 없는 하얀 모시적삼 속
보랏빛 오동꽃이 거미줄처럼 피어나네
가없는 사랑, 장롱에 갇혀서도
쉬는 날을 모르네
냉장고 문을 여닫고 태화강 둔치로 나갔다.
생수 뚜껑이 열려 옷이 젖었다.
다리 밑에서 야근한 매일신문지도
노숙한 강물에 젖어 있었다.
토요일 시(詩)가 함께 젖었다.
눅눅하게 젖은 옷가지를 철망에 널어두고
크레인 팔 사이로 흘러가는 물줄기를 지켜보았다.
오월이 바다를 이끌고 성큼성큼 다가와
큰 손을 내밀었다.
초록이 물줄기 타고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강물이 출렁거리며 수출차를 줄 세우고
굴뚝 연기가 야적 크레인 팔을 들어 올렸다.
깃발 꼬리를 붙들고 있는 신문지에
뱃길이 열리고 있었다.
병영성 어둔 골목길
등 굽은 달팽이 간다
힘겨운 만큼 진액 내 놓으며
오르막길을 밀고 간다
성곽 지키는 달빛을 지팡이인양 짚고
한 골목을 더듬는다
허리가 굽으면 걸음걸이도 꺾이는지
굽은 등이 속도를 말아 들고 있다
느린 걸음으로 넘어가는 달의 등에도
달팽이 한 마리 착 달라붙어 있다
달팽이들끼리 교신을 하는지
끈끈한 진액이 골목으로 흘러간다
흘러가다 여기저기 달빛 붙여 놓는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할머니 발자국마다
달팽이들 몸 틀고 앉아 있다
리어카에 파지 싣고 고갯길 넘어가는 할머니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달
병영성에 수천의 등을 쏘아 올린다
[시작 노트]
주름살만큼이나 깊은 고뇌를 껴안고 운명같이 따라 다니는
어두운 여생의 고갯길을 힘겹게 올라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내 어머니께서 걸어가신 흔적이고
또 언젠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인지도 모른다.
신문지 한 장이라도 붙들려고 굽힌 허리가 결국 땅을 바라보고
걸어야 했고, 그 길이 생명의 고향인 땅으로 돌아가기가
더 가깝다는 걸 할미는 깨우쳤는지도 모른다
수레 뒤를 조용히 다가가 밀고 병영성 고갯길을 올라가면서
온갖 상념이 밀물처럼 손끝에 전해온다
긴 장마 끝에 배추 한 포기 사천 원
몇 달 지나 붉은 고추 한 근에 일만 사천 원
마늘이랑 생강이랑 젓갈은 예전 양의 절반
이제 본고장 맛 어디서 사고 싶어도 힘겹다
대식가의 입맛에는 시퍼런 배춧잎만이 유일한
연일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가
세계화 지면에 오르길 서로 눈치 보고 있다
진실 같은 포장 김치 열며
어느 누가 귀하지 않은 게 있을까?
목숨이야 최고의 보시인 것을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주의자
[시작노트]
그때 그랬다. 어느 농수산부장관이 자해했다. 자살인가 자해인가 연일 뉴스가 보도 되었다.
농민대표들은 타국의 땅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삼배를 하고 있었고 희귀한 광경인 듯 외국인들이 곁눈보고 있었다.
살아가는 현실이 굼틀거리며 역사는 담 넘어 가고 있다. 농림부에서 벌써 몇 번이나 농림수산부로 장관이 허물을?벗고 새 이름으로?바뀌었다. 얼굴엔 벗을 허물도 없었다.
두려움 없는, 분명 자해였다.
마주보고 서 있는 일이란 피가 한 쪽으로 몰리는 일
영원히 감기지 않을 것 같은 붉은 눈이 감길 때면
푸른 눈에 얼핏 초록의 아프리카가 보였다
붉은 눈과 모래언덕만을 기억하는 아프리카
검은 아프팔트를 건너가기 전에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땅 속 뿌리를 내리고 말겠다고
처음 내게 온 그 날부터 맹세했다
높다란 나무들이 여기저기 구름 떼처럼 울창하게 뻗어 있던
숲은 흘러간 계절들 건기의 도시를 지나면
오아시스를 만날 수 있을까
물의 냄새만을 희미하게 기억할 뿐,
슬며시 붉은 눈이 감긴다
초원을 달리는 무한질주의 광활함
죽은 듯이 잠든 도시의 하이에나들이 깨어난다
집중하지 않으면 먹이를 놓칠 수밖에 없는 붉은 눈
어디까지 보여줘야 안심 한단 말인가
상처 입은 그의 한 쪽 눈이 감길 때 마다
한 쪽 눈을 감았다
푸른 눈은 언제나 잠깐 동안 왔다가 간다
눈을 감고도 충분히 질주 할 수 있는 도로 밖
순간, 푸른 눈이 감기고 공중에서 번쩍 핏빛이 흩어진다
초원을 질주하는 그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나를 지켜보았다
라이스 NLL의 노래
황 말 남
평강공주 양공주 손을 잡아 줘 아름다운 나라 라이스
무궁화 꽃은 잠시 겨울이란 계절에게 맡겨버려
철모에 핀 꽃 한 송이 한 쪽으로 몰리는 눈길
끊어진 다리, 땅과 하늘에서 터졌던 불꽃놀이
관은 수송기에 실렸고 그들은 곧바로 기지로 돌아갔다
라이스 라이스 양공주 라이스 라이스 라이스
그렇지 잠시 잊어버려 담장을 넘어 온 말장난 굿 라이스
내 안에 들어 있는 너의 공용어
라이스 라이스 캬악 뜨거운 감자를 뱉는다
라이스가 툭 튀었다 서울과 평양으로 잘했어
이-를테면 옆으로 걷는 꽃게잡이 지구가 달이 태양이 한 선상에 있는 것
라이스 라이스 라이스 아이들고 카레라이스를 좋아해
그가 그은 선 한쪽으로 기울 수 없지, 팽팽한 그림자
잇발사이로 오래된 발음이 억울해 자꾸 새는 거야
휘두르는 배팅 대기권이 흔들 부라보
밤이 되자 아이들은 자꾸 밥을 먹고 싶다고 하지
라이스 라이스 라이스 그녀의 그림자
어제는 물위에 금을 긋고 아래로 내리라고 말했지 오늘 북방 남방을 날아서
장벽에 꽃이 피겠어 뿌리를 틀었나 봐
하루 이틀 금식하지 않을래 우리
단단한 꽃 덩어리 튀어 나온다 벽을 뚫고
뒤들리는 허리에 붙어 있는 전복된 사연
열받은 그녀 새끼들, 네가 그은 선 네 손으로 치워라!
라이스 라이스 라이스 굿
이제 와서 웃을 수 있을까 나는 다시 만나고 싶은 걸
그것은 마치 땅의 겨드랑이에서
노래가 될 사연이 깃털이 돋아나는 현재 진행형
[시 감상]
목마와 숙녀 / 박인환
김 현 철
김현철 ceokimhc@hanmail.net ---------------------------
울산 현대중공업. 부산대학교 졸업.『시와비평』등단.
시와 비평 두레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울산)회원.
공저『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나는 이 시조가 우리나라 고시조 중 가장 아름다운 시조가 아닌가 한다.
달빛 가득한 가을밤에 바람은 잔잔히 불고
가볍게 물결치는 강물위로 달빛은 은은히 비치고
무심히 떠 있는 조각배 위에 사공은 낚시를 하는 둥 마는 둥
시조를 읽는 동시에 한 폭의 동양화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야말로 유유자적하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物我一體, 物心一如의 경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멋들어진 시조를 지은 이는 월산대군(1454-1488)이다.
세조의 장손이자 성종의 형인 그는 일찍이 세자로 책봉되어 왕위에 오르기로 되어있던 아버지인 덕종이 일찍 죽으면서 순탄할 것 같은 운명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작은 아버지인 예종마저 일찍 사망하자 한명희의 농간에 의해 동생인 자을산군이 왕위에 오른다. 이가 바로 조선의 9대 왕인 성종이고 한명희는 성종의 장인이었다. 월산대군은 이처럼 동생인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동생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하여 초야에 묻혀 살며 시화를 벗삼아 지내다 젊은 나이인 35세에 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풍월전집이 전한다.
그런데 이처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는 모습에서 나는 낚시와 관련된 또 다른 작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이다. 1952년 발표된 헤밍웨이의 이 짧은 단편으로 인하여 그는 1953년 퓰리처 작품상과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노인이 84일 간이나 고기 한 마리 못 잡다가 어느 날 노인이 탄 조각배보다 더 큰 고기가 낚시에 걸리자 이틀 밤을 사투 끝에 이 거대한 고기를 잡는데 성공하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의 공격을 받아 앙상한 뼈다귀만 싣고 돌아온다는 웬만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렸을 적 읽은 적이 있는 유명한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유명한 “인간은 파멸될 수는 있으나 결코 패배될 수 없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란 구절이 나오는데 평생을 사냥과 낚시, 투우와 전쟁터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투쟁적 삶으로 일관해 온 그의 인생관이 잘 드러나 있다. 이처럼 헤밍웨이에 있어서 인생이란 나(인간)를 굴복시키려는 자연과 세계에 대한 투쟁이다. 여기서 자연이란 나를 실현시키고자 하기 위해 넘어서야 할 극복대상에 불과하다.
물고기는 낚시를 문채 노인을 한없이 끌고 간다. 이윽고 시야에서 육지가 사라지고 밤이 찾아온다. 허기와 갈증은 그보다 앞서 왔다. 낚싯줄을 붙들고 견디는 노인의 손과 어깨에는 살이 패여 피가 흐른다. 그럴수록 노인은 “자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위대한 디마지오 선수처럼, 발뒤꿈치 뼈를 다쳐 몹시 고통스러운데도 모든 플레이를 완벽하게 해 낸 그 훌륭한 선수처럼, 나도 훌륭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며 투지를 북돋운다. 별들이 떠오른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면서 다짐도 한다. “나는 저 물고기에게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인간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보여 주겠다.”라고. 그리고 마침내 승리한다.
나도 한 때는 이러한 승리가 아름답게 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천명을 바라보는 지금은 오히려 고기 한 마리 못 잡고 달랑 달빛만 가득 실고 돌아오는 월산대군의 유유자적한 삶이 더 아름답게 보이고 그 여유가 부럽게만 보인다. 월산대군이라면 자신의 배보다 더 큰 고기가 낚시에 걸렸다면 이내 줄을 풀어 주었으리라. 헤밍웨이에 있어서는 비록 집으로 가져오지 못 하고 상어 밥이 될 지언즉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투쟁이 인생이라면 월산대군에 있어서 삶이란 자연 속에서 제 분수에 벗어나지 않고 그 속에 안주하는 체념과 여유인지도 모른다.
1961년 7월 아프리카 사냥 여행 시 비행기 추락 사고에 의한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었던 헤밍웨이는 사냥총에 의한 자살로 생을 마쳤다. 파시즘과 나치즘이 인류를 위협하고 군국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20세기의 전반기에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로 활약하는 등 죽음을 무릅쓰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투쟁하여 온 헤밍웨이에 비해 월산대군은 혹시 자신의 처세가 잘못되어 동생인 성종에 누가 될까봐 평생을 자연에 묻혀 은거하다시피 살았다. 죽을 때도 그는 자신의 묘를 대궐이 있는 한양 쪽을 바라보지 말고 북쪽을 바라보게 하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성종 또한 이런 형의 마음씨를 매우 애틋하게 여겨 왕이 된 후에도 형을 자주 찾는 등 형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한다.
항상 자연을 극복해야 할 투쟁의 대상으로 삼아온 서구에 비하여 동양에서는 자연 속에 도가 있어 自然의 스스로 그러함을 항상 본받으려 하였다. 즉 인간이 행함이라는 人爲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나 스스로 그러함인 無爲自然을 본받으려 하였다.
세계화 서구화로 전 세계가 미국적 가치관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받아드리고 발전과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지구 곳곳에서 자연에 대한 훼손이 나날이 심각해지는 오늘날 투쟁과 극복, 도전과 응전, 선과 악, 적과 나를 구분하는 이원론, 남성다움과 용기 등이 숭상 받는 서구적 가치관에 비해 체념과 용서, 적응과 합일, 物我一體, 凡我一如등의 일원론적 세계관과 부드러움과 여성성이 강조되는 동양적 가치관이 더 그리워지는 것은 중년의 고개를 넘어선 나의 나이 탓에 따른 연약함인가?
어느 날 신문을 펼치면 온통 테러, 보복, 투쟁, 응징, 납치 등의 싸움만이 가득한 세상을 보면서 불현듯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살고자 했던 월산대군의 유유자적한 풍류의 세계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같은 낚시를 소재로 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며 동서양의 뚜렷한 가치관의 차이를 새삼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제 21세기에는 제발 테러와 투쟁,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되는 투쟁의 역사가 종식되고 자연 속에서 도를 찾고자 했던 동양의 정신이 새롭게 부활하는 그러한 세기가 왔으면 하고 꿈꾸어 본다. *
[시조]
산촌 뻐꾸기
김숙이
음음한 산기운
한숨 칭칭 목을 감다
뻐꾹뻐꾹 휘어진 소리
사랑방 나들다가
엿듣자
문고리 잡고
허리 굽은 메아리
어떤 날
/ 김숙이
하루해가 짧아서
종장을 못거둔다
글맛나게 쓰려다
끝내는 꾸벅꾸벅
펜끝을
살살 녹이는
삼오사삼 절절해
김숙이 ksookiy@hanmail.net
경북 상주 출생. 고양시 거주.
『시조생활』 (2004)등단.
시조동인 삼연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비평 『두레문학』 회원.
비와 숲
박 영 식
귀 열어 봐
비 오는 날 초록숲은
야외 음악당이 되지
또다닥 투두둑
나뭇잎 건반을 두들기는 빗방울
바람은 또
신나는 지휘자가 되지.
눈 떠 봐
비 오는 날 초록숲은
새떼를 청중으로 모시지
아주 고운 음까지 연주하는
보슬비 이슬비 가랑비
가지마다 웅크리고 듣느라
조심조심 숨을 죽이지.
[시작노트]
비가 옵니다. 연일 많은 비가 옵니다. 비 오는 날 큰 우산을 펴 보인 나무 밑에 가 보셨나요? 비를 피하느라 새처럼 잔뜩 웅크리고 앉아 가만 귀 열어 보셔요. 토도독 토도독… 싱싱한 잎사귀를 드럼 삼아 빗방울은 아름다운 연주를 합니다. 더구나 숲은 온갖 악기를 다 갖추었어요. 자연(自然)이 연주해 쏟아내는 감미로운 선율, 이 보다 더 훌륭한 울림을 주는 음악은 없겠지요. 눈으로 듣고 귀로 읽는 악보는 바람이 지휘자가 되지요.
오리모양토기
박영식
꿱 꿱 꾸엑
목에 예쁜 리본까지 두르고
뒤뚱뒤뚱
땅 속에서 걸어 나왔어요.
아마
천 년도 더 넘게
긴 잠을 잤나봐요.
바깥 세상을
처음 본 순간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몹시 아팠어요.
흰 옷 입은
아저씨들이
“어디 다친 데는 없니?”
이곳저곳 진찰도 하고
살살살 붓질로
눈가에 붙은 졸림도 털어내고
흙 묻은 몸 깨끗이 닦아주고
박물관
새 유리집으로
이사를 왔어요
「오리모양토기」라고
이름표도 달아줬지요.
꿱 꿱 꾸엑-.
[시작노트]
혹시, 박물관에서 「오리모양 토기」를 보신 일이 있나요? 아마 천 년도 더 넘게 땅 속에서 잠을 자고 나왔을 거예요. 무엇에 썼냐고요? 아주 오랜 옛날 술잔으로 사용 했겠지요. 보셨잖아요. TV나 영화 사극물에서 왕과 장수들이 건배를 들던…. 그 토기오리가 박물관 유리집에서 꾸엑꾸엑 울어 샀네요.
여성신문[0722]
비상(飛翔)
박희곤
1.
자동차 위로
추락한 꽃받침
생애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내고 놓아버린 기억, 꽃술이 촉수가 되어 말을 걸어온다 꽃술 끝에 매달린 화분(花粉)이 미처 말하지 못한 단어가 되어 흔들린다 그녀에게 건넨 모든 말도 꽃받침만 남아 눈물샘 같이 말라가지는 않았을까?
바람이
일자 날아오르는
무수한 수식어와
생각들
2.
그녀에게 건넨 말이
비상(飛翔)을 꿈꾼다
정물(靜物)의 몸을 버리고 점점이 나비가 되고 구름이 되고, 혹 새가 되어 선회하듯 맴돌다 사라진다 떨어져 나간 대화는 쌓여 있기를 거부한다 그녀와 나눈 모든 언어가 머릿속만 헝클어 놓고, 돌아와 몸뚱이에 박혀버리진 않았을까?
일제히
날아오르며
꽃받침이
건넨 안녕
거미 3
박희곤
1
거미줄 한 가닥을
무심히 자른다
삶의 기둥이 되어주던 한 귀퉁이가 잘려나가고 균형은 깨어진다 순간, 단절된 평화와 팽창하는 긴장, 파형(波形)이 깨어진 리듬은 거미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며 돌기를 곧추세운다
거미는
포만을 잊고
날렵한 엉덩이를
세운다
2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거미를 쫓아본다
어디까지 피할 수 있을까? 당황하는 거미를 보며 쾌재를 부른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겠지 하며 돌아서는 순간, 보란 듯이 거미줄을 버리고 나무로 옮겨 앉는다 사랑한다며, 사랑이라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강요하지는 않았을까?
거미가
피할 곳이 어찌
거미줄
뿐일까?
사르르
물 밖으로 건져놓고 보니
물먹은 꽃별의 가슴처럼
반짝이는 울음
이것으로 하여 생애에
나는 다시
무엇을 빚어낼 수 있을까
연꽃/임수정
맑은 물에 발 담그고
푸른 노래 부른다
불어오는 바람에
하르르 꽃잎 떨며
겨운듯 고개 갸웃이
흔들리며 서있다
하루는
한 분 옥
한분옥 1951년 진영 출생. 부산교육대학교 대학원 졸업. 울산대학교 행정학 박사과정 수료. 시와비평문학회 고문. 샘터시조상.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1987년 『예술계』수필 당선. 제7회 가람이병기 추모시조공모전 장원. 울산광역시문인협회 회장역임. 대한문학상. 탐미문학상. 행자부장관상 등 수상 다수. 부용만향(수필집). 저서/꽃과 여자 그리고 정염. 진홍가슴새.
그리움
현 임
북녘 산 하얀 잔등 노을이 내릴 때면
산새들 보금자리 찾아들기 바쁘고
자욱한 저녁연기에 그리움이 스며든다.
하나, 둘 등불 꺼진 길조차 잠이 들고
애타는 화롯불에 묻어버린 아쉬움
그믐달 허전한 가슴 초록별이 눈물진다.
가을 엽서
현 임
는개 개인 아침은 햇살도 다정하다
누가 보낸 엽서인지 단풍 닮은 노란 잎
구름도
하늘을 쓸며
해말갛게 웃는다.
뜰 위에 가랑잎들 빨간 구두 투덜댄다.
이런 날 바지 걷고 선바람 불어올까?
불현듯
집어든 엽서
거기 내가 젖는다.
프로필;
두레문학 회원
달가람시조 회원
세계한민족작가연합 회원
워싱톤문인회 회원
현 임 graceih2004@hanmail.net -------
서울 출생. 『시조월드』등단. 세계한민족작가연합회원.
두레문학회. 워싱톤열린문학회 회원.워싱톤 문예창작원.
공저『시와비평』『두레문학』
동양정신문화연구회 회원. http://ihc87.kll.co.kr
Fellowship Senior Center Work out exercise teacher
[추천시]
노을(동시)
이 승 민
해님이 하루 종일 힘들었는지
산마루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가
산마루에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꼴까닥 넘어지며 그려보는 꿈
해님이 빨강, 주황 비단이불 펴두고서
바닷물에 손 담그고 세수 하다가
바닷물에 발 담그고 씻고 있다가
풍덩하고 빠지면서 쏟아내는 꿈
해님이 달님의 고운 얼굴 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잠들기 전에
색동옷 갈아입은 저녁바람께
먼저 잔다 알려 달라 보내는 편지
[시작노트]
이 동시는 추석을 맞아 고향인 제주도 삼양 해수욕장에서 아이들과 멋들어진 노을 바라보며 달님 나올 때 까지 바닷가에 신나게 놀고 온 날 적은 것입니다. 하루 종일 힘들었을 해님이 꾸벅꾸벅 졸다가 우리들처럼 손발 씻고 자려고 이부자릴 펴고 혹시나 달님이 보일까 기다리다 잠드는 착한 해님의 편지가 노을이라 시입니다.
여성신문[0703]
이승민 시향 http://cafe.daum.net/perfumepoem
제주도 출생. 계간『시세계』신인상. 한국아동문학평론 신인상. 울산공단문학 시 부문 수상. 울산 공단문학회 회원.<詩마을> 동인. <동시, 시조>란 운영자. 울산문인협회회원. 한국기독교작가협회회원. 한국지저스작가동인. 한국문학도서관<어린이시향메일>담당. 시집[사랑은 혼자여도 외롭지 않습니다]
현 대경기계(주) 기술지원팀 근무.『두레문학』운영위원.
꽃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알았다.
오정순
어린 아기로 왔다가 어린 아기처럼 되어서 돌아간 내 아버지는 남은 내 인생에 가장 좋은 교훈을 남겨두고 한가위 달의 호위를 받으며 이 세상을 떠났다. 좋은 삶을 위해 살면서 수없이 읽은 문자보다 죽어가는 한 생명을 가까이서 섬세하게 지켜보며 보내드리는 일이 가장 힘있는 삶의 지침을 얻는 일이다. 대상을 멀리 두고 남의 손 빌려 보내드리는 일로는 죽음 속에서 삶을 만날 수가 없다. 죽음을 직면하고 있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일이 가장 생명적이다. 죽음은 호적에서 이름을 빼내는 일이거나 집안에 같이 있던 한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현상으로 말하기는 충분하지 않다. 생명의 질서와 사람과의 관계며 삶의 관리까지 속속 공부하게 하는 과정이 죽음에 깃들여져 있다. 한 사람을 전 가족이 나누어 보듬고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으로 인도하는 인생의 터미널에서 삶의 농축 엑기스를 얻으며 그 엑기스를 각자의 삶에 희석하며 삶을 기름지게 가꿀 것이다. 85세 내 아버지는 말기암으로 치료를 멈춘 지 2달 남짓 지났다. 치매로 길을 잃은 큰아버지를 찾느라고 온갖 마음의 고초를 겪더니만 아버지가 병을 얻고 말았다. 다행스럽게 조기 발견을 하여 일찍 수술을 하여 15년도 넘게 건강하게 살았지만, 병을 끝까지 이기지는 못했다. 중간에 노인성 우울증이 아버지를 넘봤는데도 워낙 평소에 말수가 적고 조용한 분이라 가족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평소에 운동을 거의 하지 않은 탓인지 3차 발병으로 이어지며 여기저기 전이된 상태에서 치료는 멈추었다. 다급해진 아버지는 몸에서 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온갖 약과 병원에 의존하기에 이르며 나날이 다르게 몸이 망가지다가 희망을 놓으며 급격히 생명력이 떨어졌다. 이 변화를 지켜보는 가족들은 최선책으로 통증완화에 주력했고 죽음이 두려운 아버지는 병세를 충분히 짐작하고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면서 어린아기처럼 변해갔다.
올 때는 엄마 몸에서 나오느라고 엄마가 진통을 겪지만, 갈 때는 영혼이 갈 길을 내느라고 당신 몸이 진통을 겪는다. 갚고 가지 않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밤에는 초저녁부터 몸부림이 시작되고 마치 시멘트 바닥으로 기어나온 지렁이처럼 간헐적으로 꿈틀거림이 이어졌다. 그래도 번갈아 가며 아버지 곁을 지키는 자식들은 밤새 아버지 옆자리를 지키는 일이 묵주기도보다 나은 기도라고 생각하고 그 시간이 미사나 예배보다 거룩해서 숨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죽음이 두려워 바둥거리는 아버지와 간병하려고 참는 자식들 사이에는 강도의 차이가 있다. 2,3분 간격으로 일으켜야 하고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데도 놀랍게 싫지 않다는 말은 하지만 버티는 데는 한계가 온다. 허리힘이 허물어진 노구는 무겁기가 이를 데 없다. 이를 악물지 않으면 아버지를 홀로 부축하여 일으킬 수가 없다. 심지어 어머니의 팔뚝에는 근육이 뭉쳐 탁구공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 일도 횟수가 거듭되면서 요령이 터득되고 마치 스스로 실력테스트를 하는 기분이 되면 웃음이 나온다. 게다가 눕기도 전에 다시 명령이 떨어지면 “녜 아버지”하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또 웃는다. 따로 다이어트 운동을 하지 않아도 체중이 준다. 일종의 몸기도이고 종교적 수행과도 같다. 조건을 따지지 않고 일단 “예”하는 단계에 온 것이다. 마음먹으면 그다지 괴롭지도 않다. 그러나, 몸이 한계에 이르면 내가 먼저 변화를 겪는다. 일어나는 몸이 굼떠지고 아버지의 다리를 들고 졸다가 몸이 후들거리며 아버지의 다리를 놓치면 그 때부터 둘이 같이 앓는다. 끙끙거리는 소리가 새벽 거실을 채운다. 쇼파에 앉아서 양 다리 사이에 아버지를 끼고 살과 살을 맞댄 채 열감이 느껴지는 몸을 오래도록 음미한다. 그립고 그립던 아버지 등을 이제 내가 보듬고 있다는 사실이 세월의 그림이다. 내 나이 40에 이르러 아버지 등에 한번 업히면 아픈 몸이 나을 것 같은 날이 있었다. 마음이 고갈되어 병이 되었던 그 때, 나는 아버지 등이 그리웠다. 6.25때 내내 아버지 등에 업혀 피란길에 들었다는 증언이 그 열망을 합리화 하도록 도와주었다. 가장 좋은 느낌의 퇴행시점을 그리워 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때 이루지 못한 나의 소망이 20년 후에 거꾸로 이루어지고 있다. 등에 업혔던 시간을 아버지에게 갚고 있다. 내가 평생 잘 보이고 싶어 하던 내 아버지가 새끈새끈 숨소리를 내며 기대고 있을 때의 그 느낌을 나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임종이 임박해서는 한 숨을 내쉬기가 어려운지 늑대울음소리를 닮은 숨소리를 내곤했으니 한 숨 자체가 얼마나 위대한 생명활동인가. 아무 힘이 없는 아버지에게 위엄은 사라지고 너무나 자주 부탁을 하기가 미안한지 ‘미안하지만’이라는 말을 앞세워 말을 한다. 아버지를 마주 대할 세월이 길지 않을 것 같아 아버지의 남은 체온을 오래오래 음미한다. 서서히 꺼져가는 생명에게서 오는 변화는 그렇게 우아하거나 세련되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삶의 의지를 놓아야겠지만 새 삶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조용히 도와주어야 할 것이기에 애상적인 감정은 배제한다. 어린 아기로 돌아가 모든 이에게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는 시간 속에서 추하지 않고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아름다운 세계로 갈 수는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허물을 벗기 위한 몸부림은 훗날의 나도 치러야 할 몫이기에 준엄하게 치를 수 있게 도와야 하므로 진정성을 가지고 간병에 임한다. 잠시 다시 뉘었더니 이번에는 물에 빠졌다고 건져내라고 공중에다 손을 내밀고 허우적거린다. 나는 아버지에게 등을 치며 꿈이라고 깨운다. 새벽이 깊어지면 통증도 태양의 기운을 느끼는지 서서히 누그러져 가고 스르르 잠이 든다. 간신히 무거운 눈꺼풀을 내리누르다보면 어느새 나도 곯아떨어진다. 아침이 되자 당번 교체 시간이 되어 동생이 왔다. 추석이 가깝다고 경비들에게 줄 봉투를 마련하고 외국 나간 며느리 생일 봉투 마련하라는 아버지의 지시가 떨어졌다. 숨 넘어 갈 때까지 인간으로서의 활동을 하고 싶은 인간 아버지, 그 거룩한 행위에 비하면 다리는 장작개비에 가죽을 입힌 듯 여위어져 있다.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는 정신이 안타깝다. 이렇게 밤을 새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전철역에서 내려 골목길로 접어들어 휘적휘적 걷다가 담 위의 나무에 얹혀 피어난 보라색 나팔꽃 수십 송이를 만났다. 눈부시게 피어오르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피어난 나팔꽃은 나를 그 자리에 멈추어 세웠다. “우와~~~ ”나도 모르게 환호를 하였다. 죽음과 직면하고 있던 시간에 비해 산 것이 주는 환희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아주 잠시, 나는 까칠한 아버지의 수염을 잊었다. 지독한 변냄새도 잊었다. 웅얼거려서 해석하며 들어야 하는 음울한 음성도 잊었다. 청명한 하늘과 반짝이며 피어난 보라색 나팔꽃에 취했다. 그날 아침, 보라색 꽃이 없었다면 나는 집에 들어와 습한 가슴을 드라이기로 말리고 싶었을 것이다. 밀린 일을 하려고 거리로 나가서 어제 예약금 걸어 놓은 책꽂이 장사를 만났다. 길거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지나가지 않아서 오늘도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예약금을 준 것도 잊고 얼마 주었는지도 생각나지도 않는다. 돈을 내주면서도 만원을 더 준다고 그 아저씨가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착하다. 이 세상에 꽃이 있어서 그 아저씨도 꽃을 닮았을까.꽃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알았다. 꽃은 세상사람들의 시름을 달래주고 아픔을 대신 표현해주고 희망을 피워내는 몫으로 이 세상에 왔나보다. 조만간에 시들어 꼭지 떨어질 사람꽃을 대하다가 그날 아침 갓 피어난 나팔꽃 무리의 생명활동으로 내가 살아났다. 햇살이 너무나 화사해서 하마터면 슬플 뻔했다. “꽃이여 그대 있음으로 내가 깨어납니다.”우리 아버지도 한 때는 꽃이었기에 꽃 피어남이 삶의 영속성을 알려준다. 씨앗에서 잎 나고 꽃 피고지고 열매 맺으며 땅에 떨어진 씨앗은 죽음이 아니고 죽음이란 이름으로 땅에 묻히는 숨은 생명이다. 잠시 어머니 뱃속에서처럼 땅에 묻혔다가 빛이 있는 세상으로 나와 지상생활을 펼치고 돌아가는 여정처럼 무덤은 하늘로 오르기 전 머무는 영혼의 자궁터이다. 아버지는 이제 이승에서 활동하지 않고 저승에서 활동하며 영원을 살 것이다.고희 때 아버지에게 바친 70송이 장미를 두고 올 때 우리 대신 꽃이라도 오래 오래 보시라고 했더니 “나는 사람꽃이 좋다”하신 아버지 말씀이 오늘 따라 생생하기만 하다. 아직도 물기마르지 않은 아버지의 음성이 내 곁에 맴돈다. 이승도 저승도 마음 안에서는 한 세상이다. 1993년 현대수필로 등단. 편집위원 및 초대 문인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펜문학회, 여성문인회 회원 현대문예동인. (현) 수필시대 편집위원, 청담에세이 강사, 한울타리 문학회 수필강사. (저서) 그림자가 긴 편지, 우리는 언제나 문 앞에 서 있다, 나는 사람꽃이 좋다, 줄의 운명, 지갑속의 쪽지 한 장, 놀며 그리며 생각하기, 태어나서 돌까지, 첫 경험이 인생을 결정한다, 명화와 함께 읽는 여자의 일생.
[수필]
공주의 남편/고영예
병원을 다녀 온 후로는 회복을 위해 집에서도 침대 신세를 져야 하는 시간이 많다.
안방에 홀로 누워 있는 나 에게 식구들이 많은관심을 가져 준다. 특히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특별한 맨트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공주 잘 있었나?”
처음에는 설마 나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의심도 했지만 남편의 시선이 정확히 내 눈과 마주쳤을 때 비켜나 갈 수 없는 닭 살이 돋았다. 왜냐 하면 “공주”는 남편이 대학교 다니는 딸을 부를 때 부르는 호칭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병원을 다녀 온 후로는 내 이름도 어느새 공주로 변해 있었다. 남편은 없던 사람이 돌아와 그 자리를 지켜주니 든든하기도 하고, 일주일 동안 집을 비웠으니 사람 귀한 맛에 붙인 이름 일게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남편은 “꼭 공주 같다.”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경상도 남자인 남편 입에서 사탕발림 같지는 않은 말이다.
몸이 좀 불편 하기는 했지만 회사에 밀린 일들이 많아 급한 업무나 처리해야겠다 싶어서
출근을 했는데 내 차가 도착하자 주차장에 섰던 남편이 또 하는 말이다. “꼭 공주가 온 것 같다.”
남편이 자꾸만 공주 같다고 하길래 진짜인가 싶었다.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았다. 아무리 후한 점수를 주고 싶어도 공주라고 하기에는 무리수가 있었다. 오십을 향하여 달려가는 나이는 이십대 초반의 딸처럼 탐스럽고 예쁜 것도 아니고, 건강미가 넘쳐 자신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병원냄새가 베긴 부기 있는 얼굴과 기운 없어 보이는 모습뿐이었다.
내 모습이 어떠하던지 간에, 남편이 어떠한 이유로 나를 부르든지 간에 공주라는 이름은 나에게 익숙한 이름이 되어 갔고 그 이름과 함께 하루하루 건강이 회복되어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열흘 쯤 지났을까. 이제는 걸을 수 있겠다 싶어서 걸어서 철야예배에 참석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옆에 있던 딸이 함께 갈 형편은 못되고 늦은 밤에 어미 혼자서는 어두운 길은 나서지 말라며 어찌나 다그치는지 어린아이 때처럼 무시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어 직장에서 곧장 교회로 가라했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공주를 태워가야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분후에 남편이 도착했고 거실에는 딸과 내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우리 공주 교회가자.”는 남편의 말과 대답하며 따라나서는 내 모습을 이렇게 저렇게 살핀 후 분위기 파악을 했는지 헛기침을 해대더니, “그 공주가 엄마였어요?”
으응, 얼버무리는 내 대답에 “이제 난 공주 안 할래” 이녀석이질투를 하는 것인가
다음날, 어쩌다가 내가 공주가 됐는지 딸이 물었다. 나도 모르는 일이며 어느 날 공주가 되어 있더라고 별 공신력 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딸이 또 따지고 덤빈다. 아빠가 엄마한테 공주라고 말하는 것은 아빠 마음이니까 이해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엄마 입으로 자신을 어떻게 공주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추궁을 했다.
그 다음 날이다. 딸이 나에게 와서 속삭인다. 궁금한 것이 있단다.
“엄마 기도하셨어요?”
“뭘”
“아빠 눈에 콩깍지 쓰이게 해 달라고...”
딸은 빈정거리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며 어미의 기를 꺾어 놓으려 했다
남편과 내가 한 처사가 딸에게 놀림을 당할 만큼 유치한 일이기는 했다.
아무리 귀하고 좋아도 그렇지 딸에게 사용하던 호칭을 나에게 사용했으니 듣고 있던 딸이 헷갈리고도 남을 일이다. 남편도 민망스러웠던지 한동안은 공주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남편은 나를 들여다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나온 말 인지 “꼭 공주 같다” 말 한다. 우리는 동시에 주변을 살폈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 한 후에 마음 놓고 웃었다.
딸이 말 한데로 남편의 눈에 콩깍지를 쓰이게 해달라고 기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편이 변해 있다는 사실이다. 의식적으로 달라 진 것이 아니라 그의 변화된 내면을 보고 있음이다. 나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달라 진 것이다.
내가 병원을 다녀와서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변화된 그의 열매가 나타났을 뿐이다. 나에게 대하여서만 달라졌다면 나이 먹은 남자들의 특징이라고 마침표를 찍어 버릴 것이다. 분노를 일으키고도 남을 만한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그 상황에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아니하고 온유함으로 자기를 다스릴 수 있음이다.
나와 결혼한 20년 전 그 사람은 다혈질의 성품을 가졌다. 다른 사람을 칭찬 하는 대신에 비판하는 것에 익숙하며 주는 것 보다는 받는 것을 좋아 하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좋아서 다가가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상대하기가 힘든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었으며 아이들에게는 늘 명령적이었고 어쩌다가 대화를 하면 잘못을 추궁하는 아버지였을 뿐이었다.
며칠 전 남편은 회사에서 집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했다. 서쪽 하늘을 한번 보라는 것이다
초승달과 별이 마주보며 유난히 빛나는 아름다운 장관을 감상하라고 했다. 그런 남편은 더욱 아니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감사거리를 먼저 생각사람이 되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은 자신의 옛날 모습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숨이 막히는 순간에도 늘 희망의 선포를 잊지 않는 멋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픔을 가진 사람을 보면 그를 위한 기도를 잊지 않는다. 나누어야 하는 부담감이 그에게 있다
사람들은 남편더러 새사람이 되었다고들 말한다. 그리고 사랑스러워 한다.
내가 업무를 보다가 회사에 엄청난 손해를 끼쳤을 때도, 직원들이 현장에서 수 천만 원짜리 물건을 불량내고 떨고 있을 때도 남편은 필요 이상의 감정을 돌출하지 않았다. 무엇을 잘 한다기 보다는 모든 일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업적인 위기를 안고 살얼음을 걸어가는 듯한 이 시기에도 일생 중에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라 말하므로 듣고 있는 사람마져 행복하게 한다.
초췌한 나를 들여다보고 “공주 같다”는 말이 입에 발린 테크닉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두손 맞잡은 밤 하늘의 달과 별, "꼭 당신과 내 모습 같다"는 대답을 하고나니 깨어나고 싶지 않는 꿈의 강은 이미 깊다.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어떤 실수를 할까 불안한 시절은 이미 아니다.
내가 위로의 말을 잊고 있을 때 그가 대신 말해주는 고마움 , 나도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 되고 싶다. 달처럼 별처럼 어둠속의 빛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귀하게 볼수있는 마음의 눈을 먼저 열어야 할것 같다.
누구든지, 어떤 이에게는 공주가 될 테니까.
가을은 하늘로부터 온다고 했던가. 푸른 물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하늘이 연줄에 걸린 연처럼 높이높이 올라가 있다. 연 이은 두 차례 태풍이, 가을걷이를 시샘하듯 험하게 할퀴고 지나갔어도, 뜨거웠던 여름 태양이 남기고 간 가을은 여전히 관대하다. 다만 , 갈 자리를 알아 가는 낙엽들만이 하나 둘 몸을 사린다.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고운 빛이 날로 눈부시기만 하다. 이런 가을이 있기에 우리는 무더웠던 여름 지쳤던 심신에 기운을 북돋우고 마음은 순연해 지는 것은 아닐런지.
이제 더도 덜도 말라는 한가위도 기울고, 찬바람이 제법 옷깃을 여미고 있다. 낙엽은 제 갈 길을 더욱 재촉할테지. 아픈 몸을 뒤척여 창밖을 내다보다 피아노 위에 있는 故 권정생 선생님이 해 준 싸인이 눈에 들어온다. 들여다보니 2006년 10월 29일이다.
아! 지난 가을 빌뱅이 언덕.
이 싸인을 해 주실 때 선생님께서는
“이런 거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이 하는 건데… .”
하시며 몹시 수줍어 하셨었다.
그러던 분이 돌아가신 다음에야 텔레비전 방송국에 나왔다. 모 방송국에서 이번 한가윗날 특집으로 선생님의 이야기를 1시간여에 걸쳐 방영해 주었다. 비록 그 분은 가고 안 계시지만, 그 분이 남긴 깊고 긴 뜻으로 나는 방송을 보는 내내 참으로 따뜻했다.
지난 가을 빌뱅이 언덕은 그야말로 가을이 무르익을 대로 익은 고운 자리였었다. 들은 들대로 오곡이 무르익어 노랗게, 산은 산대로 울긋불긋. 어느 시인의 말대로 온통 눈이 부신 가을자리였었다. 그뿐이었던가 쾌청한 날씨와 눈부신 햇살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더욱 즐겁게 했다. 이렇듯 날씨가 받쳐 주지 않았을지라도 선생님을 댁을 찾아갈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무한히 기뻤을 텐데, 우리는 마치 횡재라도 한 기분이었다.
선생님과 호형호제 하시는 이현주 목사님과 예배를 하러 안동에 갔었다. 우리 일행 20여 명은 선생님을 뵈려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빌뱅이 언덕은 뭐랄까. 어떤 성스러움이 흘렀다고나 할까. 딱히 예배가 아니었을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질감 좋은 낙엽 카페트 언덕에 빙 둘러 앉았다. 그리고 차례대로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이야기 예배를 했었다. 이끔이 이현주 목사님과 함께하는 드림교회 예배는 기존교회의 예배와 사뭇 다르다. 틀에 짜여진 예배와는 거리가 멀다.
해서 ‘왜 이곳에(빌뱅이) 왔는가’ 가 화두였었다. 이구동성 예수님이 매개체였었다. 대다수 이러한 관성적인 대답에 과연 그러한가. 선생님은 일침을 주셨다. 선생님은 전쟁과 평화와 소외된 어린이들, 특히 이라크의 전쟁과 굶주린 어린이들 이야기를 하셨다. 아니, 전쟁의 참상이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말살하고 있는 가를 이야기 했다. 긴 시간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선생님의 이야기 전부는 평화였다.
한데, 지금. 더도 덜도 말라는 이 아름다운 한가위에 멀리서 총성이 울리고 있다. 바다 건너 나라 미얀마. 독재 군부에 맞서 승려들의 평화로운 시위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평화적이든 비평화적이든 무력이 무엇을 하겠는가. 그예 피를 흘리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오늘이 10여일 째. 인터넷도 끊어지고, 군부의 유혈사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민주화에 발 벗고 나설 처지는 못 된다. 그러나 무력 앞에 어린이와 여성과 노인들은 그 어느 대상보다 처참하지 않는가. 선생님께서 살아계셨더라면 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는가. 언제 끝날지 모를 이 민주화 운동에 이들이 보호되기를, 더 많은 희생자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더불어 故 권정생 선생님의 삶과 유언에 조심스럽게 기대어, 어서 속히 평화가 찾아오기를 마음 깊이 바라는 바이다.
“하나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故 권정생 선생님 유언 중에서*
삼대(三代)/김금희
대학 입학을 앞두고 어른이 되기 싫다던 때가 엊그제 같기만 하다. 기숙사를 들어가다 말고 돌아보던 어린 사슴 같은 맑은 눈망울을 보던 때도 엊그제 같다. 그런데 봄꽃 몇 번 피었다 지고 나니 어느새 졸업반이다.
아이는 대학 4년 내내 가족과 떨어져 있는 외로움을 오직 공부에만 매달려 왔다, 나는 그런 아이의 의지를 지켜보며 가슴 저리고 안타까웠지만, 자칫 잘못될까 두려워 일부러 외면 아닌 외면을 해 왔다. 아이는 조기 졸업을 목표한 탓에 학점관리를 잘 해주어 성적도 우수했다. 해서 4학년은 그런대로 여유가 있게 됐다.
나는 "딸! 공부에만 너무 매달리지 말고, 대학 4학년의 봄을 마음껏 즐기도록." 했다.
아이는 "예?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시간은 한 번 가면 그만이야. 그 좋은 나이에, 한 때 뿐인 대학생활 마지막 봄을 그렇게 사방 벽에 갇혀 꽃향기 어지러운 봄을 외면할 거니?"
했다. 농담 아닌 진담이었다. 아이는 중간고사를 치루고 몇몇 경치 좋은 곳을 마음 맞는 친구와 다녀왔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날씨 좋은 때만 다니지 말고, 비가와도 흐려도 바람이 불어도, 대기의 순환과 함께 자연을 즐겨 보라고 했다. 덕분에 참 특별한 엄마라는 말을 들었다.
어떠랴! 이 얼마나 아름다운 봄인가. 눈에 넣어도 물리지 않고 호흡을 깊이 하면 할수록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는데, 그 고운 나이를 공부에만 매달려 보내기에는 나이가 주는 아름다움이 너무 아깝지 않는가 말이다.
벚꽃잎 하롱하롱 내 아이의 어깨 위로, 빰 위로 그렇게 한 장 한 장 내리던 사월이 갔다. 보랏빛 라일락 향이 온 골목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 오월. 졸업 사진 찍어야 하는데 점잖은 정장 한 벌 사 주었으면 하는 딸아이의 조심스러운 간청이 들어왔다.
나는 무엇인들 못해 주랴 싶었다. 두 말 않고 오라 했다. 나는 모처럼 딸아이와 함께 다니며 맘에 들어 하는 옷을 골라 입혔다. 영화도 한 편 보았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차도 마셨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었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아이는 애초에 맘먹었던 범죄심리보다는 신경심리와 노인심리 치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단다. 원하는 과정의 공부를 다 마치고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면 고아원이나 양로원, 특히 양로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이의 차분한 앞으로의 계획을 듣다 내심 놀라웠다.
내 어머니께서도 한 때 고아원과 양로원을 하고 싶으셨단다. 그러나 외할아버님의 결혼 감행과 결혼하면 규방에 갇혀 사는 대다수의 양갓집 형편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단다. 해서 꿈은 꿈대로 흐르고 젊음은 젊음대로 흐르게 되어 버리셨단다. 이러한 어머니의 꿈 이야기를 들은 것이 불과 이태 전이었다. 어머니의 연세 내일 모레면 여든이신데, 눈에 이슬이 고였다. 아! 어쩌다 시대는 한 여인의 아름다운 꿈을 무수한 삶의 걸림돌에 채이게 하고 돌아서 세월의 뒤안길에서 한 방울 눈물로 회한에 젖게 하는가.
나는 뒤늦게 털어 놓으시는 어머니의 꿈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놀랍던 것은 나 역시 꿈이 어머니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머니처럼 막연히 시간을 기다리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계획을 해 보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계획을 펴 보기도 전에 건강이 나빠졌다. 나는 자신감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좀 더 작은 규모로 나의 건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뭔가 내가 가진 것으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은 없을까. 생각 끝에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공부방이었다. 그러나 그 일도 이것저것 알아보니, 의도와 열정만으로 함부로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10여 년을 내다보고 탄탄하게 이끌어 갈 수 없을 것 같으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좀 더 냉정해졌다. 그리고 거의 반년을 생각하다 결국 이 일도 포기하고 말았다.
이상동몽(?) 어머니와 난 각기 꾼 꿈의 동일성에 놀라워했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 아이가 그러한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내심 놀랍고 공연히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아이에게 나와 제 외할머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참 이상한 일이구나, 외할머니에 이어 엄마가 그리고 네가 같은 꿈을 가지고 있다니… 뭔가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에게 흐르는 것은 아닐까?” 라며 찡긋 웃었다.
오월이라지만 하루가 다르게 여름으로 가는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어느 틈에 라일락꽃 지고 난 자리에 때 이른 아카시아가 골골이 그녀의 체취를 채우고 있다. 아카시아향이 어지럽다. 황량한 가슴도 녹일 것 같다.
아이는 아카시아 향을 주머니에 담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아직 모든 것들이 결정 된 것은 없다. 여러 진로가 아이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좀 더 심사숙고할 일이지만, 어떻든 三代가 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우연치고는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기만 하다.
麗傘 김광련 anfakd1229@hanmail.net 울산출생. 『한비문학』 등단. 한비문학 운영위원. 다울문학 동인. 시인과 사색. 『두레문학』회원. 가장 행복한 여인 외13곡 작사.
주근깨 소녀
김 삼 주
김삼주 ksaju7430@hanmail.net ------
남원 출생. 『문학21』 (2004) 시 등단
문학21.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시와비평』『두레문학』
밤/ 김영기
며칠 비 오더니
후두둑 후두둑
밤나무 숲이 소란하다
다람쥐 청설모
재빨리 나무를 오르내리고
툭 툭
발아래 떨어진 알눈들
처음으로 하늘 쳐다보고 있다
어느 틈에
숲은 선물을 준비했다
배낭 가득 주워담은
가을이 잘 여물었다
양철지붕/ 김영기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갑자기 지붕이 시끄럽다
따닥따닥 따다닥
딱
딱
따따부따 방안의 나에게
참았던 말을 퍼부어댄다
초가지붕 걷어내고
양철지붕 올렸다고
지붕에 세워둔 용마루가
하늘에다 신고라도 하였는지
한꺼번에 몰려와 타작을 한다
방에 있는 내 귀가 아프다
협박처럼 천둥이 울리고
집들이하라고 떼거리로 몰려와
수다를 떤다
빈방에 비의 언어들이 수북 쌓인다
비만 오면 내 귀는
30년 전 그 집에 가서
따따부따 나팔소리 듣는다
등 단 :2004년
거주지 :충주
활 동 :충주 문향회
우산을 접으며
안재동
마른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거센 빗방울
나무가 젖는다
집이며 고층건물도 젖는다
온 대지가 젖는다
나도 젖는다
이럴 땐 정말
애인보다 더 찾게 되는 건 우산
비 그치자, 너나 할 것 없이
우산을 접는다
잘 말리고 고이 접어
있던 자리에 보관하기도 하고
말리지도 않은 채 대충 접어
아무 곳에나 던져버리기도 한다
배고프던 시절 어머니는
손님이 오면 변변찮은 대접 걱정하며
밀가루를 뭉치셨다
한번 밀 때마다 국수가 한 그릇이라고
배고파 칭얼대는 자식 얼굴 떠올리며,
한 번 더 밀곤 하셨다
감자 호박 채 썰어
삭정이 툭툭 분질러 삶은 칼국수를
순서대로 떠놓다보면
호롱불처럼 흐린 멀국만 남았었지
객지 나간 자식이 돌아오면
끓여내던 칼국수
아들놈은 엄마 손맛을 먹어야
마음이 부르다고 하신 어머니
빠른 홍두깨질로 세월너머 계신
어머니의 안부를 듣는다
철거
조성례
포크레인이 쿵 소리를 내자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팔십년 흔적
아버지의 숨결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
수숫대 갈비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남루한 옷이 벗겨진 채 비스듬히 누워
한 집안의 역사 되짚는 듯 굳게 입 다물고
발밑에 땅이 퍼석해지고 있다
할아버지의 가래 끓는 소리도
아버지의 주정 석인 노래 소리도
유년의 웃음소리도 함께 딸려가 눕고
뒤뜰에 섰던 감나무만 이파리 깜빡이고 있다
낮달/조성례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로 문지르면
식탁 위에 하얀 낮달이 덩실 떠오른다
배고프던 시절 어머니는
손님이 오면 변변찮은 대접 걱정하며
밀가루를 뭉치셨다
한번 밀 때마다 국수가 한 그릇이라고
배고파 칭얼대는 자식 얼굴 떠올리며,
한 번 더 밀곤 하셨다
감자 호박 채 썰어 넣고
흐물흐물하도록 삶은 칼국수
순서대로 떠놓다보면
호롱불처럼 흐린 멀국만 남았었지
객지 나갔던 자식 돌아오면
끓여내던 칼국수
아들놈은 엄마 손맛을 먹어야
마음이 부르다고 하신 어머니
홍두깨질에 돌아와
넌즈시 안부를 늘인다
가을날에
조성범
낙산사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속초로 가던 길 강원도 양양 첩첩산중 가을 햇살 속 천 년 세월을 똬리 틀어 해와 달을 이고 합장한 삼층석탑에 들뜬 벽지 틈을 숨어들던 민달팽이 한 마리 올려놓고해탈하라 해탈하라 속삭이다 갖가지 풀꽃들이 풀어놓은 푸른 향에 여름내 채곡 채곡 쌓인 바람들을 토해내 솔가지에 풍경소리를 울려 보려 했으나 목어도 보지 못하고 풍경소리도 듣지 못했다물소리 맑았으나 민달팽이는 꼼짝하지 않고 독오른 뱀 모가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바람들을 토해낸 자리 햇살이나 몇 모금 채웠으려나 투명한 가을날에 비라도 쏟아질까 나는 두 눈 가득 가을을 구겨 넣고만 있었다
그대 소록도에 가면
키를 낮추고 귀를 크게 열어놓게
솔밭 사이로 흐르는 바람결 타고
보리피리 소리가 하늘빗장 열면
무수한 별꽃이 섬으로 내려와 피리를 불지
피-ㄹ 닐니리 피-ㄹ 닐니리
나는 문둥이
초목도 싫다 하는 벌레 먹는 꽃
그대 그 섬에 가면
까치발로 걸어가 눈을 맑게 열어놓게
솔숲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초장을 베고 누운 시비 위에
파랑새 한 마리 앉아 지지 배배 지지배배
나는 문둥이 살아서 마음 놓고 못 다닌 세상
죽어지니 더 큰 세상 갈 수 있다고
훤한 대낮에도 고향 가서
어머니 무덤가에 꽃씨를 심고
고향 뒷산 참꽃 잎도 물고 온다고
살아서 잃어버린 이름도 찾아
바위에 깊이깊이 새겨놓고는
지지배배 지지배배
내 이름은 한태영 詩人 한하운
청풍에 이는 바람
曉烱/최순자
하늘을 담아 하늘 닮은
내륙의 바다 충주호
충주 나루터를 떠나
청풍 단양 장회나루까지
뱃길 130리에 목선을 띄우면
산허리 휘감은 장엄한 물줄기
적막한 절의 풍경 흔들고
굽이굽이 펼쳐진
옥순봉, 구담봉, 만학천봉, 제비봉
호수를 에워싼 기암괴석 산자락을
붉게 물들이는 일몰
그 붉은 옷자락 휘감고
달천(강)으로 가다가
폭포수위 오롯한 정자에 누어 옷섶을 여니
거침없이 이내 속살을 애무하는 바람
기다림에 주린 임의 손길이 이러할까
그리운 이여
청풍의 바람처럼
저 붉은 물결 찰방찰방 밟고 내게 오시면
그대 손길 닿기 전 하르르 벗고
말간 맨몸으로 맞이하리
활활 태워 재가 되리
고향 잃은 수몰민의 서러움도
까맣게 잊으리
曉烱 최순자(崔順子) csj4602@hanmail,net -------
강원도 평창출생. 『한맥문학』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맥문학 이사. 경의선문학회 이사. 세계시인대회 서울집행위원. 한맥문학가협회상(2006)수상. 리틀 노벨 어린이집 대표. 시집 『그대 스치는 바람이라 해도』
연락처 - 서울 도봉구 방학1동 718-7 명품ESA 아파트 A동 104동 501호 (우편번호 132-691)
핸드폰 -011-252-2133
E-mail csj4602@hanmail,net
어둠에 완전히 숙성되어가는
삐쩍 마른 샛바람의 숨소리
견딘 만큼 찬 눈물과 슬픔 사이에서
막 비워 낸 가슴에 한 그루 나무를 심는다
집도의의 냉랭한 두 눈은
햇살에 살빛을 버무리고
저마다 퍼런 잎새의 갈기 사이
비로소 안 밖 없는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공기 중 작은 소리도 들릴 즈음
한 가닥 정신 잃지 않는 내 안의 뼈들
해돋이 하늘에 가지를 대며
핏물 돋아 부르트도록 땅을 구른다
[시작노트]
Op.69의 제 3번 첼로 소나타는
교향곡 <운명>(op.67), <전원>(op.68)등이작곡되었을 무렵
그가 갖가지 고통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예술적으로 크게 성장하였던 중기에 쓰여진 곡이다
격정과 깊은 명상이 얽혀 솟아오르는가 하면 어느새 명상속으로
침잠하는 절묘한 구성력을 보여주고 있다
피아노가 황홀하게 손을 내밀면 첼로가 가만히 그 손을
잡듯이 대위법적 처리로 서정성이 넘치는 아다지오 칸타빌레 서주를 가진 3악장이
참으로 아리도록 아름답다
1. 들어가는 말
요즈음 TV 오락프로를 보면 연예인끼리의 삼행시 대결이 자주 보인다. 그뿐 아니라 얼마 전에는 모 정당의 대선후보들이 토론을 하다말고 자신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사실 삼행시만큼 그 시대를 잘 대변하는 장르도 드물다. 삼행시에는 삼행시가 지어지는 순간의 시대성이 잘 반영된다는 뜻이다. 우리 “두레문학” 카페의 삼행시 코너가 신설되면서 많은 회원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인기 코너자리를 단번에 꿰차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삼행시 특집이 문학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과제를 던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 행시의 정의
삼행시는 3줄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행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행시에는 문장의 줄에 따라 일본의 하이쿠 같은 1행시, 2행시, 3행시...등등 많지만 일단 맨 앞의 글자가 고정되어 있고 그 글자를 꼬투리로 싯적 또는 풍자적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라고 정의하면 될 듯하다.
분명한 것은 자유롭게 쓰는 시가 아니고 첫 자리 또는 마지막 자리가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는 바이므로 일본의 하이쿠는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행시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고정된 글자를 이용하여 문장을 만드는 것만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3. 고전적 행시
고전적 행시는 주로 선비들의 글재간을 서로 다투던 놀이 문화로써의 기능이 더 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글제를 주는 쪽에서 “운(韻)”을 부르면 문장의 마지막에 그 “운(韻)”이 들어가야 하는 방식이다. 이는 예전부터 행시를 통하여 문학의 가장 큰 요소인 창조성을 기르는 사회적인 교육방식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한문시는 운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글자 수까지 제약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풍속시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김삿갓(병연)의 시를 예로 들어보자.
어느 고을을 지나다가 출출해진 김삿갓이 시를 잘 한다는 선비와 막걸리 내기를 하였는데 선비가 운자로 '銅' '態'.'蚣'을 부르자
主人呼韻太環銅 (주인호운태환동)/我不以音以鳥態(아불이음이조태)/濁酒一盆速速來(탁주일분속속래)/今番來期尺四蚣(금번래기척사공) 라는 시를 지었다. “주인이 부르는 운자가 너무 '고리'고 '구리'니/나는 음으로 하지 않고 '새김'으로 해야겠다./막걸리 한 동이를 재빨리 가져오게/이번 '내기'에는 '자네'가 진 것이네”
한시 짓기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도 이런 놀이를 즐기곤 했는데 순 우리말로 시를 행시 짓은 것을 『언문풍월』이라고 했다. 역시 김삿갓의 시를 예를 들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천하를 방랑하던 김삿갓이 금강산에 이르게 되었다. 마침 절을 발견한 김삿갓은 잠시 쉴 겸 절에 들어갔는데 마침 스님과 선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삿갓이 기척을 내었으나 이들이 무시하자 김삿갓과 시비가 붙었고 선비는 김삿갓을 쫓아낼 요량으로 글짓기 내기를 제안한다. 스님은 한시를 짓자고 했으나 선비가 행색이 옹졸한 김삿갓을 얕보아 “언문풍월”로 시를 지으라고 한다. ‘운’은 스님이 불렀다. 첫 번째 운은 ‘타’였다.
김삿갓은 잠시도 망설임 없이 “사면기둥 붉게 타!” 로 받았다. 두 번째 운도 ‘타’였다. “석양 행객 시장타!”, “또 타!”, “네 절 인심 고약타!”
김삿갓이 살았던 조선조 후기 사회는 지배적이고 규범적인 가치관과 현실 적이고 실제적인 가치관 사이에 괴리와 갈등이 매우 심각했던 시기로서 봉건 말기적 붕괴현상이 팽배하여 사회의 기강이 크게 흔들리던 시기였다. 게다가 자신이 본 향시에서 자신의 할아버지를 욕하는 글을 써 급제를 하게 되는 모순을 직접 경험하고 세상을 방랑하는 방랑시인이 되었다. 대부분 그가 풍자시나 읊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의 남아 전하는 시를 보면 서정적인 시도 꽤 된다.
위와 같이 전통적으로 우리말로 만드는 행시는 운이 뒤에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형태의 기층적 문학 활동이 서민층을 대상으로 전해지다가 1900년대에 들어와 잡지의 문예란을 차지하면서 독자적인 시 형식으로 부상하였다. 내용도 진지해져서 과거의 단순한 말장난과는 달랐으며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당시 책들의 뒷표지에는 언문풍월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게재되기도 했는데, 1917년에 간행된 《언문풍월》은 그렇게 해서 응모된 작품을 뽑아 편집한 책이다. 거기 수록된 《누에[蠶]》라는 작품을 예로 들어본다. 운자는 오, 고, 소이다.
"옷 없다는 말 마오/뽕만 많이 심고/나를 힘써 기르면/추운 사람 있겠소."
4.현대의 행시에 대하여
인터넷이 보편화 되면서 많은 문학의 장르들이 온라인으로 들어왔고 디카詩와 디카수필, 하이퍼텍스트 소설 등 다양한 부분으로 새로운 진화를 하고 있는데 온라인의 특성상 긴 글보다 시의성이 강조된 삼행시가 가장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현대의 행시를 분류해보자면 정통적 삼행시, 에세이 삼행시, 에세이 삼행시, 유머시사 삼행시, 즉석삼행시, 종교삼행시, 영어삼행시까지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
4-1. 정통 삼행시
현대의 행시 중 유일하게 문학으로 승화가 가능한 장르로 보인다. 지금처럼 운이 앞에 고정되는 방식이 언제부터 정착이 되어 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옛 선조들이 사용했던 뜻이 있는 시조의 구조를 선택하고 있다. 단순히 시대적인 변화에 의해 그냥 일과성 유행이 아니라 고정된 기본틀을 변용하여 작가의 창작성이 겸비된 문학의 한 장르로써 발 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밤바다, 언제나 그렇듯이/박세영
밤새 숨이 가쁘다
바다가 고향이라는 안흥댁
다달이 불어나는 빚 걱정에 잠 못 이루고
밤물결 출렁이며 마음 풀어내는 소리
바지랑대 키만큼이나 높이 걸린
다므사리 설움 하얀 거품으로 달무리 졌는데
밤바다, 언제나 그렇듯이
바닷바람 날름대는 혀 놀림에
다섯무날 나고 드는 썰물과 밀물
밤새워 철퍼덕거리는 지노귀굿 소리
바리공주(公主)는
다그쳐 묻는 말에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란다
박세영 시인의 밤바다라는 삼행시이다.‘밤바다’라는 고정된 운을 가지고 이토록 아름다운 연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삼행시가 가진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행시를 창작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해진 단어를 가지고 연결된 문장을 만들고 생명을 부여한 다는 것이 그리 녹녹한 작업이 아닌 것이다.
강물 이야기/ 이상태
육자배기 걸죽하게 막걸리 들어 마신 강물에
이슬 먹고 자란 샛별이 얼굴 붉히며 웃고 있다
오다가 품은 연정은 노을 자락 덮어 줘
육이오라는 운을 가지고 전혀 다른 아름 시를 걸러내고 있다. 삼행시를 쓰다가 보면 글제가 주는 이미지의 압박을 벗기 어렵다. 가령 ‘육이오’하면 으레 민족적 비극인 한국전쟁과 관련한 민족의 비감에 천착할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전혀 이미지가 다른 시를 한편 걸러 내고야 말았다.
멸치대작전/고영예
소금 단지 옆 엄청 큰 항아리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나 몰래 숨겨둔 향기로운 멸치. 신나는 일이다
기대서니 키보다 큰 항아리지만 골인은 일단 성공
소고기 보다 맛있어 냠냠 몰래 먹는 메꼬기(멸치)
나 혼자 못 먹지, 주머니에 볼록 채워 넣고
기대하시라 친구여 멸치가 나가신다
소문 없이 한건해볼까 무던히도 애썼는데, 오호통제라
나갈 방법 못 찾으니 종일토록 독안에든 쥐일세
기운 빠져 울다든 잠 깨어보니 별 열두 개 반들반들 으악-.
고영예 시인의 ‘소나기’를 글제로 풀어간 삼행연시도 이미지의 전환에 완전히 성공한 수작이다. 마지막 연의 처음이 정통적 시조 형식에서 벗어나 있지만 꼭 삼행시의 형식이 시조를 닮아야 한다는 관념만 벗어나면 참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
요즈음 어디를 가거나 축제가 넘치고 차다 보니 축제의 내용이라는 것이 대부분 비슷하고 이벤트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가운데 몇몇 지방자치 단체 등에서는 삼행시를 이벤트로 참여자들의 축제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는 전략을 쓰는 곳도 있다. 가령 그 축제의 가장 포인트가 되는 낱말을 삼행시 주제로 정해 삼행시를 지으며 다시 한 번 주제를 생각하게 하는 것인데 가령 부여 궁남지 연꽃축제의 경우는 가장 포인트 되는 단어가 백제의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이 얽힌 ‘서동요’이다.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동요라는 주제를 무왕과 선화공주의 애틋하면서도 해피엔딩인 사랑과 연관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적으로 삼행시를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도 많이 있다. 특히 초,중학교에서는 삼행시를 통한 작문교육이나 특정한 주제에 대한 교육을 하는 교사가 많다고 한다. 종교단체 역시 삼행시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교회의 홈페이지 등에는 삼행시 코너가 만들어진 곳이 제법 되며 호응도도 좋다고 한다. 주로 성경에서 뽑아낸 주제를 출제하는데 자연스럽게 성경공부를 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한국불교의 중심 종단인 조계종에서도 역시 불교를 주제로 한 삼행시를 공모했고 주기적으로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는데 이 역시 종교적 관념의 삼행시들이 주로 응모되고 있어서 이 역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삼행시로만 쓴 시집이나 책도 여러 권 출판되었는데 역시 정통 삼행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김상옥 시인이 ‘三行詩六十五篇 : 詩集 /金相沃 著 (亞字房, 1973)’ 의 시집이 유일한 정도이다. 그 외에는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다양한 부분의 삼행시들을 모은 ‘삼행시|
편집부 | 베이비북스 | 2000년 07월 01일‘ 와 ’웃음천국 최신 n세대 유머 삼행시 시리즈 |
조동림 | 백양출판사 | 2000년 05월 01일‘ 등이 있고, 특이하게 '행시'를 감상하면서 숫자기억에 활용하는 실용서로 ’삼행시 숫자 기억법| 유제완 | 무한 | 2001년 12월 03일‘ 가 있다.
4-2. 유머 삼행시와 시사 삼행시
삼행시가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곳이 인터넷이고 그 중에서 유머 삼행시만큼 폭발적 관심을 모으는 장르도 없을 것이다. 기발한 삼행시는 또 다른 아류의 삼행시를 만들고 끊임없이 자신을 다르게 변형시키며 복제해 나가는 특징이 있다. 이런 종류의 유머 삼행시는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현재 문학으로 정의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것도 세상의 모든 사물을 대상으로 표현하는 작가, 그것에서 효용가치를 느끼는 독자가 있는 이상 넓은 의미에서 문학의 범주에 포함시켜도 될 것이다.
유머 삼행시는 마지막 행의 극적인 반전이 돋보인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상당한 인기를 구가 했던 초등학교 5학년이 작품을 보자.
소:소방차가 불난집 불을 끈다
나:나는 신나게 구경을 했다.
기:기절했다. 우리집이 였다.
기가 막힌 반전으로 한때 인터넷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으며 수많은 아류작을 만들게 하기도 했다. 특히 요즈음은 인터넷에서 많이 사용되는 약자들인 ㅋㅋ,ㅎㅎ 등이 많이 사용되는 경향이 보이며 연상문자 ^----^ (웃는 모습), @----- (장미꽃) 등도 사용빈도가 높아져 가고 있다. 특이 눈에 뜨인 글다가 ‘돗’이라는 글자인데 이 글자가 진돗개를 닮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역시 초등학생이 지었다는 삼행시를 보고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여러 개의 ‘돗’을 붙여 써놓으니 그때서야 빠르게 지나가는 개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세대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인가 싶기도 하다. 언어는 그 사회의 존재와 더불어 새로 생기고 사멸하기도 하므로 지금 기성세대가 아무리 좋다고 부여잡고 있어도 새롭게 생겨서 유행하는 낱말이나 이미지 언어, 약자 등에 밀려 사라지는 것들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중국에서는 ‘장강(長江)의 물은 뒷물에 밀려~’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某당의 대선후보들을 모아 토론회를 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서로를 헐뜯느라 후끈해진 분위기로 추스르기 위해 사회자가 각자의 이름을 운으로 하는 삼행시를 짓자고 제안 했다. 그 중 한 후보의 번뜩이는 재치 있는 삼행시는 며칠간 인터넷으로 퍼졌고 젊은 인터넷 세대들로부터 인기를 받기도 했다. 방송국의 연애프로 등에서도 출연자들끼리 삼행시 대결을 펼치는 일은 이미 일상화 되어 마치 놀이문화의 하나로 정착했던 조선시대의 『언문풍월』을 오늘날 보는 듯하다. 삼행시는 오래전에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정착한 듯 보인다. 인터넷에는 이미 행시만을 대상으로 하여 활동하는 문학카페도 생겨서 활동 중에 있는데 과연 어떻게 삼행시가 문학으로 정착하는지 그 과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언론 쪽에서는 한국일보가 최초로 [이 주일의 세태풍자 삼행시]를 운영하고 있다. 주로 일주일간의 시사문제를 간단히 줄여서 풍자를 담아내고 있으나 삼행시의 가장 중요한 운의 고정이라는 면에서 다소 멀어져 있다. 차라리 3줄짜리 자유시에 가까워 보인다.
4-3. 영어 삼행시
우리의 행시(첫 음이 고정되어 있는 현대 삼행시의 형태)를 영어에 접목한 최초의 시도가 영어강사인 박용수씨가 시도하고 있는데 삼행시의 개념을 확대하여 행시로 발달되고 있다.
그의 이 시도는 매우 뜻 깊은 시도라고 생각된다. 영어의 교육적 측면에서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인데 그의 새로운 도전이 성공하기를 빌어본다.
그의 작품 중에 “Him”을 소재로 한 작품을 예로 들어 본다.
H/e loves me very much
I/ love him,too
M/any years have passed since we were married
4-4. 에세이 삼행시
우리 정통 시조를 삼행시라고 하겠지만 마지막 행의 맨 앞을 3음절로 고정한다는 것만 빼면 비교적 자유롭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에서 삼행시와 시조는 엄격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현대적 의미의 삼행시란 행의 수와는 관계없이 각 행의 맨 앞글자가 고정된 운의 역할을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행의 운을 고정시킨 짧은 글들도 새로운 창작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인데 시보다는 다소 긴 이런 것을 감히 에세이 삼행시로 이름 붙여 보고자 한다.
별당[別堂]에서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요하게 지내시는 어진 보살님.
문풍지가 흔들리는 겨울밤
속가[俗家]의 젊은 내외가 방문하였다.
무슨 사연이 그렇게 많은지
밤이 이슥하도록 촛불이 밝혀져 있었다.
문 밖엔 함박눈이 내렸다.
공양시간도 스님들과 따로 하였다.
리기다소나무로 울타리를 만든
법당 뒤에서, 설목화[雪木花]가 피어났다.
사나흘이 지나간 아침.
별당은 인기척이 없었다.
‘별무리’라는 글제에 대한 조라가망님의 글이다. 조라가망님은 모든 삼행시에 이런 수필요소를 가미하고 있다. 나는 에세이 삼행시로서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이분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정형시보다는 훨씬 사고의 폭이 자유스럽겠지만 정해진 운을 가지고 수필과 시의 중간쯤 되는 에세이 삼행시도 상당한 문학적 가능성이 보인다.
5. 결론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삼행시들에 대하여 나름대로 살펴보았다. 문학의 가장 보편적 정의인 모방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방으로서의 대상이 분명하고 표현으로서의 작가가 있으며 또한 효용가치로서의 독자도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 삼행시라는 결론이다. 문학의 효용가치로 언급되는 두 가지, 교훈적이거나 쾌락적인 부분도 품고 있으므로 삼행시 역시 문학의 한 범주로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하층문화로 인식하고 문학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백안시 하는 많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독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TEXT에 머물러 있는 많은 기성문학이 삼행시에 대한 독자들의 참여와 관심을 분석하여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삼행시는 문학으로 승천할 가능성을 가장 많이 가진 이무기다. 지금의 독자들은 어려운 현대의 문학들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으며 그 책임은 결국 그길을 고집한 문학인들에게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문학이 문학인이 살았던 그 시점의 사회현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좋은 문학일 수 있을까라는 화두앞에서 고민한다면 스쳐가는 순간의 시류성이 가장 뛰어난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삼행시에 한번쯤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리라 생각된다. 삼행시에서의 반전과 재미, 적당한 금제, 금제를 풀고 나와 반짝이는 시어들, 또는 유머들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삼행시가 문학의 한 장르로 인정받으며 승천의 날개를 달게 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나는 가능성 많음에 무게를 두고 싶다.*
[시평]
소통부재가 소통인 시대의 시 읽기 3
-이동호 [조용한 가족]
권기만
현대시는 가볍다. 가볍다는 것은 변용에 능통하다는 것이다. 능통할 뿐 아니라 전지전능을 꿈꾼다. 그러나 능통과 전지전능은 그만의 몸짓이 통용되는 공간에서만 일어난다. 그만의 방을 만들어놓고 거기서 은밀한 작업을 수행한다. 바람 한 스푼 콩나물 한 시루 키우면서 별과 달을 불러다 놓고 주문을 건다. 이동호의 시를 읽다보면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연금술사가 비밀리에 숨겨둔 작업 공간이란 생각을 가지게 한다. 때로는 공간을 가르고 들어가고 때로는 거미처럼 허공에 매달려 있기도 하다. 어떤 자세를 취하던 그곳은 가볍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다. 그가 부리는 언어들은 주변의 것들과 신경망처럼 연결되어 있다. 허공의 근력들을 통째로 뜯어내어서 피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박제시키기도 한다. 그의 언어가 입고 있는 것은 살아있는 공간이다. 죽음조차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공간이다. 총포사에 박제되어 있는 늑대를 보면서 시인은 살기를 경험한다. 그의 촉수가 어느새 공간을 찢고 들어가 늑대가 살았던 공간의 충격음을 도려내어 박제된 늑대에게 입혀 놓고 있다. 공간이동이 순간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어들은 공간으로 몸을 바꾸고 이동하는데 탁월한 기동성을 보인다. ‘콩나물국, 끓이기’에서는 공중부양을 시도하고 있다. 콩나물들은 자신도 모르게 공중부양을 경험한다. 끓었을 뿐인데 그들은 모두 음이 되어 허공에 떠오른다. 그의 언어는 지휘봉이고 지휘자다. 그가 후-불면 언어들은 나뭇잎처럼 공중부양을 경험해야한다. 이동호가 만나고 경험하는 사물들은 뿌리가 없다. ‘폐가’에서는 풀들조차 죽은 자의 발자국으로 돋아난다. 형상들은 뿌리를 잃고 길 위의 길로 포개져 있거나 중심에서 밀려난 곳에서 몸짓을 드러낸다. 그것을 붙잡기 위해 시인은 객관적 거리와 냉철함을 잃지 않는다. ‘만선’에서 사람들은 생선비린내를 풍기는 어족으로 둔갑하고 사람들을 나눠가진 가로등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역사는 거대한 공동 어시장이 된다. 그곳은 그가 만들어낸 곳이 아니라 공간 속에 오랫동안 섞여 있던 것을 포착한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어긋난 곳에서 사물들은 위치가 바뀐다.
그러한 여행을 통해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괴리되고 비틀린 소통 부재의 고립된 시대를 살아가는 몸짓, 공중부양과 공간이동으로 이루어진 언어의 번뜩이는 몸짓은 소외된 만큼 비현실적인 공간을 거느린다. 그러나 그에게 그곳은 숨바꼭질할 때 숨었던 공간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다. 술래가 쉽게 찾을 수 없는 그만의 공간에서 밖의 동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예민한 촉수를 최대한 웅크린다. 그러한 웅크림은 먹잇감을 사냥하기직전 최대한 낮은 자세로 공격대상물 가까이 접근하는 표범의 포즈에 가깝다. 풀잎들의 속삭임조차 놓치지 않는다. 그리하여 기꺼이 숨통을 끊어 놓는다. 그가 내딛는 곳은 공간이고 배경은 비틀린 시간이다. ‘신발 한 켤레’에서 아스팔트는 도시의 근력으로 이완되어서 강으로 공간이동 한다. 덤프트럭은 상어로 이완되고 신발은 죽음의 부표로 이완되어서 삶의 난파선으로 돌아온다. 규격화로 단절된 세계에서 그가 선택한 숨통은 긴장이완을 통해 기존의 사고와 시공을 해체하는 것이다. 소통부재를 해소하는 그의 전략은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제3의 공간으로 공간이동해서 이루어진다. 그가 입은 공간은 화해이고 넓이이자 해방구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허물고 삶뿐만 아니라 죽음도 함께 변주되는 공간이다. 그러한 해방구를 향한 몸짓은 ‘포구’에 잘 나타나 있다. 수평선의 포장마차가 어서 오라 “손짓 하얀 갈매기 난다”고 저 광활한 술잔 속으로 몸을 던지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그곳은 그의 몸짓을 받아줄 수 있는 제3의 공간이다. 그는 늘 그런 공간으로 밀항하기를 꿈꾼다. “한 사내가 부두에 묶어둔 그림자를 풀고 있다”고 토로한다. 우리가 지상에 묶여 있는 것은 그림자 때문이라는 인식은 충격적이다. 그림자를 풀어버리지 못해 우리는 지상에 붙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거꾸로 짚어보면 그의 시에는 그림자가 없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끊임없는 이동을 시도한다는 것은 이완으로 생긴 틈(공간)으로 몸 구부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포구’에서 화자는 몸 던지려는 모습에 취해 있다. 그것은 삶 밖으로의 여행과 죽음 이후의 세계를 향해 여행을 떠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티나토노트]를 연상 시킨다. [티나토노트]에서 죽음의 세계로 영계 탐사를 떠나는 것은 혼이지만 이동호의 시에서는 모든 사물이 다 영매가 된다. “일엽편주가 되어 떠나려는 자여/ 나는 또 그대 뒷모습에 취해/ 이 밤을 밝힌다 등대라도 뽑아가서/ 그대 어두워진 등에,/ 불빛을 붓고 싶다”는 배웅은 그가 가려는 길이 얼마나 험한 여행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이제 그가 밀항한 세계를 여행해보자.
지하철 계단을 오른다
계단 중턱 뽀오얗게 구름 아득한데노인들은 지팡이를 한 손에 움켜쥐고
남은 근력으로 계단을 힘껏 밀어 내린다
이승에서는 좀체 추진력이 생기지 않는다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이 두어 평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노인들은 지팡이를 난간에 세워놓고
이마의 능선들을 손질 한다
이마 위에 한 줄 능선을 더 새기며
다시 계단을 오른다
지팡이를 손에 쥐고 두어 칸 위 계단을 짚으면
산맥의 척추를 지탱하던 힘으로 지팡이는
계단을 이승으로 주욱 밀어 내린다
땅 속에서는 전동차가 계단을 어디론가 실어 나른다
-노인과 계단/ 부분
노인은 계단을 오르다가 허공의 계단을 만난다. “하늘이 두어 평 출입문을 열어놓고 있”는 허공의 계단으로 공간이동하는 순간 “지팡이는 계단을 이승으로 주욱 밀어 내린다.” 그가 들어선 공간은 어긋난 공간이다. 그것은 아무 때나 열리는 공간이 아니다. 칠십 계단을 올라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그가 발견한 계단과 계단 사이 제3의 공간은 경험이 아니라 칼날 같은 직감이 도려낸 틈이다. 천상과 지상이 만나는 곳이며 전생과 후생이 소통되는 곳이기도 하다. 몸을 가볍게 띄워서 생각의 키를 넘어 상상의 어깨를 훌쩍 뛰어넘는 공간이동은 아무런 표시 없이 이미 일어나 있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갑자기 낯선 곳에서 유령처럼 배회하게 된다.
감나무 가지에 홍시처럼 매달려 있는 그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우체부였다
감나무에는 우표가 무성했으므로 그의 혼은
무사히 하늘로 잘 배달되었으리라
집은 끝내 함구했다
그가 가꾸다만 황폐해진 가을 속으로
참새들이 하나둘 몰려들어 혀를 찼다
그가 신고 다닌 마당의 발자국 속으로
밤새 서리 내리고, ...
그해 겨울
답장처럼 눈이 내렸고
지붕은 상복을 입었다
상주처럼 쓸쓸하게 서 있던 감나무의 가지가
툭 꺾이고, 최후로 그가 벗어둔 장화 속으로
침묵이 고여들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그의 발자국이 하나 둘 새로
돋아났다
-폐가/ 부분
홍시는 조등이고 소포다. 그러나 다시 답장처럼 눈이 내리고 상복을 지붕으로 입고 상주처럼 쓸쓸하게 감나무로 서 있다. 그의 말은 장화 속 침묵으로 발음되고 그의 발자국은 풀로 돋아난다. 물론 유령의 실체는 쓸쓸함이다. 박목월의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의 쓸쓸함이 아니라 “침묵은 끝내 함구했다”와 같은 쓸쓸함이다. 그는 서성거리고 배회한다. 그러한 풍경은 매일신문 등단작품이자 표지제목이기도한 ‘조용한 가족’에서도 허공의 복도를 배회하는 소외로 나타난다.
무상임대 아파트 8층 복도
한 덩이 어둠을 치우고 걸어 들어간다
복도가 골목 같다
이 골목은 일체의 벗어남을 허용하지 않는다
복도에게 사표를 낸다는 것은
극빈極貧의 뜻이고
담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일층으로라는 의미를 지닌다
저승은 일층에 국한되어 있었으므로
작년, 두 사람이 일층으로 순간이동 했다
올해는 벌써 두 명분의 숟가락이
고층에서 주인을 퍼다버렸다
사람들은 아파트 속에 조의금처럼 들어 앉아있다
이곳에서는 침묵도 하나의 종파宗派가 된다
사람들은 침묵을 광신도처럼
따른다
-조용한 가족/ 부분
유령은 말을 하지 않는다. 복도 밖의 삶은 저승이고 그곳은 일층으로 지칭되고 있지만 일층은 도달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소외 되고 갇힌 공간에서 유령처럼 배회한다. 그가 서성이는 그곳은 침묵으로 구금당한 곳이다. 소통을 위해 담을 넘는 것은 구제가 아니라 부제가 되는 곳을 우리는 서성거린다고 고백한다. 아니 그것을 구제해 달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그에겐 말이 없으므로 그것을 ‘수화’로 할 수 밖에 없다.
그는 나무다 상록수다 그의 입은 가지이고
그의 언어는 푸른 잎이다
그가 나이테에 가둔 말을 풀어낸다
그는 가지 가득 말을 올려놓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눈으로 듣지 못한다
사람들은 잎사귀를 이해하려 애써보지만
푸른빛이 시끄러울 뿐이다
대문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가 잎을 오물거린다
잎이 점점 심록색深綠色이라는 것은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극에 달한 증거
사람들도 나무다 단풍나무다
방언이 깊어 사람들은 늘 가을이다
불필요한 상징을 없애고 나면
늘 그와의 앙상한 거리를 드러낸다
그와 사람들이 일정한 거리에 서 있는 것이
서로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삶이다
그러나 그는 아픈 나무다
자신의 말에 늘 찔리는 상록 침엽수다
오늘도 대문 밖에서 그가 푸른 잎을 떨군다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서도
귀를 막는다
-수화/ 부분
제3의 공간은 소통부재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그는 수화에 몰두한다. 그가 해석하는 공간은 “방언이 깊어 사람들은 늘 가을인” 곳이며, 혼자의 몸짓에 스스로 찔리는 그래서 아픈 나무가 사는 곳이다. 앙상한 거리가 삶이고 멀찍이 떨어져서도 귀를 막는 것은 시끄러운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는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서 서로를 염탐하면서 소통의 다리가 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그의 위치는 천상과 지상의 중간에서 포착된다. 영매처럼 소통을 위한 몸짓을 푸른 잎으로 떨구지만 그것을 그들은 눈으로 듣지 못하는 곳이다. 그러나 그의 언어가 소속된 공간을 알아보는 순간 소통부재는 해소된다. 왜냐하면 그가 거처로 삼은 곳은 갇혀 있지만 또한 해방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거미처럼 허공에 신경망을 펼쳐놓고 세상을 읽는다. 그러한 거리 때문에 그의 언어는 공감각을 건드리면서도 매우 시각적이다.
그에게 있어서 이쪽과 저쪽은 거울의 이쪽과 저쪽처럼 몸짓을 공유하는 곳이다. 그 때문에 ‘지느러미’에서 낚시를 하다가 물속 세상에 되레 낚이기도 하고, ‘공룡 발자국 화석’에서는 허공이 공룡발자국을 신고 공룡처럼 몸집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한 침투와 이완으로 벌어진 틈으로 읽게 되면 모기에 물려 볼록 튀어나온 둥근 살집 무덤처럼 뭉툭 튀어나온 지금의 이 몸도 무덤인(‘모기’) 것이다. 그러한 공간이동은 “그녀는 내 생각 밖으로 걸어 나가고”(‘애플 주스’) 나무들은 빨대처럼 꽂혀 빗물을 빠는 것으로 변주 된다. 그러한 연주법은 ‘Cafe 통기타’에서 차들을 ‘고고’ 주법으로 공명시키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C, DM, G7, F ... 코드를 밟으며 걸어가게 한다. 가볍고 경쾌하고 발랄한 이면에는 변주하고 이완해서라도 지켜내야 하는 가슴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둥근달이 뜬 달동네 우리집, 우리 어매 살아생전 둥근 궁댕이 같은 좁은 부엌, 졸졸졸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오더니, 오늘 가을하늘보다 더 파랗게, 이끼가 피어나 백촉 전등에 반짝입니다 하수구 물 흐르는 곳에서 울 할매 밥짓다가 신기한 듯 영희랑 철희랑 불러 ‘드물게 이런 달동네 오두막집에서도 달 아닌 새 생명 방문하듯 자라 순박한 이야기가 되다니'하고, 우리들 그 서럽게 굳은 표정 속으로 오랜만에 웃음이 파랗게 돋았습니다
-우산이끼/ 부분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달 속으로 귀가하고(‘보름달 동네’) “진짜 사람들이 가짜 사람처럼 사는” 곳이 그가 딛고 선 땅이다. 그가 의탁한 그곳은 운신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그것을 끌어안고 함께 비상하려는 몸짓을 읽는 것은 치명적인 고통이다. ‘누이의 지갑’에서는 지갑을 잃고 파랗게 질려 귀가하고, 잃는 것은 지갑뿐이 아니라고 일러준다. 소시민의 삶은 강탈당한 체념으로 공허하다. 그러함은 ‘아우슈비츠’에서 “희망은 농담”인 세상으로 나타난다. 불빛(오촉 전구)조차 절망이 켜진 공포의 눈이 된다. 담장 밖으로 나가는 것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걸치고 있는 것은 모조리 벗고,” “오직 굴뚝으로만 세상을 나갈 수 있는 곳”으로 어두워진다. 그것들이 그를 떠다밀어 밀려난 쪽방촌 달동네에서 그는 세상을 읽는다. ‘독서-긴 직유로 읽는 풍경’에서 관 뚜껑을 열듯 창문을 쬐끔 열고 창 밖 세상을 읽는다. 가벼움은 연기처럼 허공을 떠돌며 낯선 풍경들과 조우한다. “낙엽들은 공중을 뚜벅뚜벅” 걷기 시작하고, 거미처럼 공간에 집을 짓고 ‘비오는 날 저수지 풍경’을 바라본다. 그는 공간의 일부가 되어 차츰 더 가벼워져 간다. 무게감이 없어 보이고 더러 장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공간 감각이 칼날처럼 벼려져 있다. 그가 공간을 가르고 들어가야만 했던 필연적인 호흡이 도사리고 있다. 동물적인 감각이 번뜩이는 것은 살아남아 따뜻함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무거움에 사로잡히는 순간 주저앉아야 된다. 그것은 고통보다 더 치명적이다. 아니 죽음이다. 가벼움은 신앙이며 구원이다. 날개가 아니고 반성이고 깊이다. 그는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끝없이 변주하고 침투한다. 변용 가능한 공간과 혼숙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밤중의 창세기’에서 시대와 비애가 시공을 초월해 비의 방주를 타고 아내의 배로 정박하고 끝나지 않은 심판의 빗줄기가 그어진다. 새로운 세상을 아내의 배로 꿈꾸는 동안 아라라트 산으로 “약속된 아침을 찾아” 비둘기가 날아간다. 물론 그 비둘기는 그가 읽으려는 희망의 메시지다. “서럽게 굳은 표정 속으로 오랜만에 웃음이 파랗게 돋는” 것을 보고 싶어서 배회한다. 시간과 공간을 페이지처럼 넘기면서 그가 읽어보고 싶은 페이지에 정박할 날은 언제일까. 나는 그것을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달에서 본다.
“어두운 시대 밝은 명치가 되어 뜰 보름달”(‘저녁의 문’)은 우리의 친구이자 희망의 상징이다. ‘조용한 가족’에서는 조등弔燈으로 ‘순신이 형’에서는 화포로 변용되고, ‘지느러미’에서는 떡밥으로 ‘수상한 골목’에서는 지문으로 찍히는 달로 이완된다. 동아줄 같은 달빛을 붙잡고 귀가 하는 ‘보름달 동네’에 살지만 이미 그곳은 변용과 이완으로 지은 새로운 거주지로 공간이동 되어 있다. 그러나 그곳은 여전히 중간지대다. 그가 이주하고 싶은 제3의 지대는 아니다. 이주할 곳을 찾아 이쪽과 저쪽을 부지런히 넘나들면서 때로 길을 잃기도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영도대교를 지나다가 바다 속으로 첨벙첨벙 뛰어드는 새들을 보았네 하늘을 집삼아 살던 새들이 바다 속으로 이사를 간 것이네 멈춰 서서 내려다보는 수면에는 주름주름 무늬 진 창이 놓여있었네 그 창문은 열려 있었는데, 나는 잠시 그 틈을 타서 바다 속 세상을 훔쳐볼 수 있었네 바다 속에는 바다 밖의 세상과 다른 뒤틀린 하늘이 있네 하늘 위로 비뚤비뚤 구름이 흐르고, 낮인데도 무수히 별들이 반짝였네 바다 밖 세상은 바다 밖 하늘 아래 지어 졌는데, 바다 안 세상은 바다 속 하늘 위에 지어 졌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여 수면 위(...중략...) 파도와 파도의 틈바구니에 숨어, 내 쪽을 신기한 듯 올려다보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네 누굴까 궁금하여 손 흔드는데, 그는 서둘러 수면 위의 창문을 닫아 버리네 영도대교를 지나다가 바다 위에서 이리저리 날고 있는 새들을 보았네 집으로 돌아가는 수문을 찾지 못한 듯 새들은, 당황하고 있었네
-영도대교/ 부분
집으로 돌아가는 수문을 찾지 못해 길을 잃었다고 말해지는 곳은 저쪽이 아니라 이쪽이다. 저쪽은 낮인데도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는 바다 속 하늘 위에 지어져 있으며, 창문 같은 틈으로 엿보고 무심코 들어서기도 하는 곳이다. 그에게 이곳은 “행복은 늘 결혼 액자 속에서만 웃고 있는”(‘A4용지’) 곳이며, “빗소리에 취조 당”(‘장마에 갇히다’)하는 곳이다. 그의 길 찾기가 비틀리고 주름지고 비뚤비뚤 첨벙거리면서도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가 귀가하고 싶은 제3의 공간은 희망이고 가능성이며 신천지다. 그가 발굴한 동물적 공간감각으로 찾아낸 길은 “액정을 번쩍 뜨”게(‘발굴’)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러한 선구적인 작업은 필경 수많은 비판과 뼈를 분지르는 고통을 선물 할 것이 분명하다. 어떤 고초가 따르더라도 제3의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날이 올 것을 고대해 보는 것, 독자로서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다.
끝으로 그가 앞으로 보여줄 치열한 길트기에 대한 격려의 박수를 공중부양으로 끓고 있는 ‘콩나물국, 끓이기’로 보낸다.
사내는 뚝배기 속으로
지휘봉을 가져간다
도에서 끓기 시작한 뚝배기 속의 음표들을
사내는 지휘하듯 휘휘 내젓는다
음계는 금세 높은 음자리로 음역을 높인다
이 음악은 너무 뜨거워 맛보기 힘들다
사내는 입을 오므려 솔,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이 뚝배기 속으로 뛰어든다
음악소리가 완전히 익기까지는
시간을 조금 더 끓여야 한다
사내는 잠시 식욕을 닫고
기다리는 동안 창 밖을 바라본다
창 밖 나뭇가지가 세상을 휘젓는다
공중 부양하는 수많은 손바닥들
손대기에도 너무 뜨거운 세상 때문이다
땅의 뚝배기 속에 떨어지기도 전에
나뭇잎이 몸을 굴린다
사내가 삶의 안쪽으로 몸을 돌린다
뚝배기가 심장처럼 펄펄 끓어오른다
뚝배기를 식탁 쪽으로 옮긴다
사내는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에 숟가락을 끼운다
뜨겁게 김이 오르는 음표들을 입으로 분다
음표들은 낮은 음계에 도달한다
뒷모습이 콩나물인 사내가
음악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다
한 소절의 생이 고스란히 입안에서 씹힌다
창 밖 저녁노을이,
얼큰하다
-콩나물국, 끊이기/ 전문*
문태준에게서 응시는 시적정서의 출발선이다. ‘응시’란 눈길을 한 곳으로 모아 가만히 바라보는 행위에 대한 지시어이다. 응시의 행위에는 ‘무엇을’이라는 목적어를 동반한다. 시에서, 응시하고 있는 ‘그 무엇’을 찾아내고 ‘그 무엇’이 표시하는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시를 해석해 내는 중요한 작업이 된다. 시인이 ‘그 무엇’을 응시하기 위해서는 잠시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멈춤은 고요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고요는 정지의 시간이 아니라 사유의 움직임이 있는 진행의 시간이다. 사유의 풀어짐 속에 문태준의 시가 있다.
1990년대 이후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현대시는, 번잡한 현실과 세속적 욕망의 암호들로 읽는 이와의 교신을 힘겹게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젊은 시인 문태준은 고요한 울림을 주며 읽는 이의 마음에 사유의 시간을 준다.
문순태의 세 번째 시집『가재미』는 고요하다.『가재미』의 첫 장 대문시에서 시인은
바퀴가 굴러간다고 할 수밖에
어디로든 갈 것 같은 물렁물렁한 바퀴
-시「思慕-물의 안쪽」일부
물이 흘러서 어디로든 가고 있는 상태를 문태준은 물렁물렁한 바퀴가 굴러간다는 기발한 상상을 한다. 물이 흐르는 것은 물에 바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의 흐름과 바퀴는 ‘간다’라는 공통적 속성을 지닌다. 두 요소는 서로의 공통적 속성을 상대에게 침투시키면서 일종의 동일화 내지는 일체화를 이룬다. 이러한 과정에서 응시는 현재 진행형이다.
골똘히 들여다보니
커다란 바퀴가 물 위를 굴러가네
-시 「수련」일부
골똘히 들여다보고 나서 시인이 깨달은 것은 물 위에 누워 가만히 움직이고 있는 수련이 커다란 바퀴같다고 하는 감각적 실체로의 발견이다. 문태준은 늘 ‘무엇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발견을 한다. 다음의 시를 보면
나를 이 세상으로 처음 데려온 그는 입가 사방에 골짜기가 몰려들었다
오물오물 밥을 씹을 때 그 입가는 골짜기는 참 아름답다
그는 골짜기에 사는 산새 소리와 꽃과 나물을 다 받아먹는다
- 시「노모」일부
노모의 입가에 진 주름은 일상적 사실이지만 시인은 ‘골짜기’라는 구체적 실체로 노모의 입가에 진 주름의 이미지를 시각화시키고 다시 아릅답다고 내면화한다.
문태준은 추상적 이미지를 회화체의 사변어로 변화시키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럴 때 응시는 의식의 경계를 벗어나 상상의 세계로 간다. 상상은 의식 위에 무의식의 경험을 들어앉히는 것이다. 그러한 사유의 깊이는 고요한 시간들이 만들어낸 수확이다. 시「바깥」을 보면
너무 빠른 것은 슬프다
갈 곳이 멀리
마음이 멀리에 있기 때문이다
- 시「바깥」일부
문태준에게서 슬픔은 ‘여기에’ 있어야 할 마음이 ‘저기에’ 가 있는 것이다. 문태준은 미당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수상 소식을 듣고 하루 이틀 가만히 숨소리만 이어지도록 가만히 있었습니다. 무논에 써레 지나가고 흙탕물이 제 몸을 가라앉히듯 가만히 내려앉는 것을 지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천천히 일어나 멀리까지 발소리를 들으며 걸어 나깠다 돌아 왔습니다.”
흙탕물이 일어나도록 기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숨소리만 이어지도록 고요하게 하는 것. 그런 응시라야만 발소리가 보이고 마음이 가라앉는 소리가 보인다.
문태준의 시「빛깔에 놀라다」의 응시를 보자.
죽은 나무를
덩굴이 휘돌아
끝엘 벼랑까지 올라갔다
그 나뭇가지 아래에
저만치
작은 소가 있다.
물빛 아래
버들치 몇 마리
벗은 발로
불은 쌀 같은 살찐
그림자 끌고
물때 낀 돌의
푸른 이마를
천천히 짚으며
무심하다
고요하고 한가하다
한가하다 화들짝
그림자들이 도망쳤다
물 위에
작은 잎 하나
내려앉았다
단풍이었다
- 시「빛깔에 놀라다」전문
응시는 고요하지만 시선은 섬세하고 바쁘다. 죽은 나무를 휘감은 덩굴에서 작은 소, 그 속에 천천히 유영하는 버들치, 그 물 위에 떨어지는 작은 단풍잎, 화들짝 놀라 도망치는 버들치. 시인은 마음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을 한 장의 수채화로 곱게 담아낸다. 물때 낀 돌의 초록색과 맑은 물, 버들치와 작은 단풍잎의 붉은 색이 고요함에 색깔을 입힌다. 짤막한 행길이는 행간에 시간성과 공간성을 부여해 천천히 시선을 움직이게 한다. 이토록 몰두를 하며 응시를 하고 있을 때 시인의 마음은 안에 있을까, 바깥에 있을까.
응시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관심에서 우러나오고, 그것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철학적 사유는 생의 깊이에 무게를 더한다. 그렇다면 문태준은 이 고요한 응시를 통해 어떤 철학적 깨달음을 얻을까. 시 「가재미3」을 보자.
가재미3
-아궁이의 재를 끌어내다.
그녀의 함석집 귀퉁배기에는 늙은 고욤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방고래에 불 들어가듯 고욤나무 한 그루에 눈보라가 며칠째
밀리어 밀리어 몰아치는 오후
그녀는 없다, 나는 그녀의 빈 집에 홀로 들어선다
물은 얼어 끊어지고, 숯검댕이 아궁이는 휑하다
저 먼 나라에는 춥지 않은 그녀의 방이 있는지 모른다
이제 그녀를 위해 나는 그녀의 집 아궁이에 재를 끌어낸다
이 세상 저물 때 그녀는 바람벽처럼 추웠으므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식은 재를 끌어내 그녀가 불의
감각을 잊도록 하는 것
저 먼 나라에는 눈보라조차 메밀꽃처럼 따뜻한 그녀의 방이
있는지 모른다
저 먼 나라에서 그녀는 오늘처럼 밖이 추운 날 방으로 들어서며
맨 처음 맨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쓸어볼지 모르지만, 습관처럼
그럴 줄 모르지만
이제 그녀를 위해 나는 그녀의 아궁이의 재를 모두 끌어낸다
그녀는 나로부터도 자유로이 빈집이 되었다
-시 「가재미3」전문
「가재미3」는 「가재미」연작시 중의 하나로 김천의료원에서 암투병 중이던 그녀의 임종 전 모습과 「가재미2」임종 후 장사지내는 장면, 「가재미3」은 그녀의 빈집에 가서의 재를 끌어내는 행위와 사유의 시간을 서사적 연시로 풀어내고 있다. 인용시는 특이하게도 한 행이 한 연을 형성하고 있다. 시에서 연은 소설에서의 플롯과 같고 산문의 단락과 같다. 한 연에서 다른 연으로의 변화란 그래서 한 의미를 끝내고 다음 의미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글자의 배열상의 의미도 있지만 내용상의 의미가 더 중요하게 연의 이동을 좌우한다. 그래서 한 연에서 다른 연으로의 이동에는 시간적 공간성인 쉼과 의미의 전달에 따른 분절성, 리듬적 요소 등으로 연의 구분은 시적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기도 한다. 만약 연 구분이 없다면 한 행 한행의 의미전달이 빨라지게 된다. 따라서 인용시의 한 행이 한 연의 기능을 하게 하는 시인의 의도는 재를 끌어내는 행위를 통해 그녀에게 추웠던 ‘이곳’에서의 생을 완전하게 마감하고, 있을지도 모를 메밀꽃처럼 따뜻한 ‘저 먼 나라’ 로 보내려는 시인의 경건한 제의의 의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를 세 장면으로 나눠본다.
1. 눈보라가 밀리는 오후, 시인은 그녀의 빈집에 홀로 들어서서 아궁이 앞에 선다.
2. 그녀가 살았던 이 곳은 바람벽처럼 추웠으므로 이 곳의 삶의 감각을 잊게 하기 위해 시인은 아궁이의 재를 끌어내고 있다.
3.아궁이의 재를 모두 끌어냈다.
그녀가 살았던 ‘이곳’은 서럽도록 추운 곳으로 바람벽 같은 것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재를 모두 끌어내 그녀의 집을 빈집으로 만드는 것, 그래서 그녀로부터 ‘이곳’의 감각을 완전하게 잊게 하는 것이다. ‘이 곳’의 흔적을 없애는 일은 완전히 자유로운 그 곳의 영혼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녀의 빈집은 그녀가 살던 집이다. 시인은 그녀를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재를 끌어내고 있다. 현실적으로 시인의 행위는 이해할 수 없다. 굳이 재를 끌어내지 않아도 그 집은 사람이 살지 않기에 이미 빈집인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재를 모두 끌어내고 나서야 이제 그녀는 자유로운 빈 집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 그녀만 자유로운 빈 집이 된 것이 아니라 시인 역시도 자유로운 빈집이 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재를 끌어내는 행위’는 지시적 의미 이상의 새로운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시인이 재를 끌어내는 목적은 이곳의 고통을 완전히 잊고 눈보라조차 메밀꽃처럼 따뜻한 그 곳에 그녀의 방을 만드는 것. 결국 시인의 행위는 그녀가 살았던 바람벽같은 이곳의 기억을 지워주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그녀를 완전히 자유롭게 하는 것은 그녀가 살았던 아궁이의 재를 끌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시인이 그녀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는 일이다. 생각을 하면 고통을 만들고 고통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마음을 벗어 던져야 하고 생각에 대한 집착을 끊어야 한다. 결국 재를 끌어내는 행위는 ‘마음’을 끌어 밖으로 내 보내는 일이고, 빈집이란 마음을 ‘무’의 상태로 만들어 ‘마음 없는 마음’을 만드는 일이다. 그래야 모든 것이 마음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시「빈집의 약속」은 문태준이 말하고자 하는 빈집의 상징성을 이해하게 만든다.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별이 보고 싶은 날에는 개심사 심검당 볕 내리는
고운 마루가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어느 날에는 늦눈보라가 몰아쳐 마음이 서럽기도 하였다
겨울 방이 방 한 켠에 묵은 메주를 매달아 두듯
마음에 봄가을 없이 풍경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하릴없이 전나무 숲이 들어와 머무르는 때가
나에게는 행복하였다
수십 년 혹은 백 년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 천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
뭉긋이 앉은 그 나무들의 울울창창한 고요를 나는
미륵들의 미소라 불렀다
한 걸음의 말도 내 놓지 않고 오롯하게 큰 침묵인
그 미륵들이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하였다
그러나 전나무 숲이 들어앉았다 나가면 그뿐, 마음은
늘 빈집이어서
마음 안의 그 둥그런 고요가 다른 것으로 메워졌다
대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듯 마음이란 그냥 풍경을
들어앉히는 착한 사진사 같은 것
그것이 빈집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시「빈집의 약속」전문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기도, 심검당 마루가 들어와 살기도 하고, 사계절 풍경들이 들어와 살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울울창창한 전나무 숲이 들어와 고요하게 있을 때 이다. 그 고요를 시인은 ‘미륵의 미소’라 불렀다. 그러나 행복은 그 반대인 불행도 함께 만든다. 어떤 대상에 집착하면 언제나 불행이 오게 마련이다. 아무리 좋은 감정이라도 언제 변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집착의 대상을 간직하지 못하게 되면 행복한 감정을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시인은 마음에서 이는 어떤 생각도 붙잡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즉 대나무가 열매에 집착하지 않듯 마음도 그냥 들어왔다 나가면 그뿐 마음은 늘 빈집이고 빈집을 만드는 것, 그것이 빈집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빈집이란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마음이다. ‘마음이 없는 마음’을 만들 때 시인은 맑은 마음을 얻게 된다.
마음 가득 아집과 욕망을 소유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속물성을 순화시켜, 마음을 들여다 보게 하는 것, 그것이 문태준의 시가 주는 묘미이다.*
[계간시평]
두레문학 작품에 나타난 어머니
박봉준
흔히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한다.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 강할 것이다. 특히 한국의 어머니가 더 강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내 주변이나 내가 속한 사회에서 직접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 강한 어머니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인류가 모계사회였던 적이 있었다. 형태는 다르지만, 최근에 다시 모계사회로 바뀌는 과정에 있거나 이미 신 모계사회가 시작 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는 것 같다.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자식들은 늘 가슴 한구석이 아리다. 악한 사람이든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든 예외 없이 인간은 모두 어머니의 자궁에서 자라고 태어난다.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강의 냄새를 기억하고 그 먼 태평양을 건너 회귀하듯이 어머니에 대한 모성 또한,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그리움이며, 정신적인 고향이다. 그러므로 삶의 힘든 고비 때나 긴 여정에서 어머니가 그립고 그 고향으로 향한 회귀성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발생이라 할 수 있겠다. 가부장제도의 사회에서 어머니의 역할이란 것이 가정에서 자식의 양육이나 교육에 치중하다 보니, 어머니의 존재란 늘 고단하고 여린 모습으로 각인된다. 생전에 알면서도 못하는 효도를 사후에 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를 회고하는 것뿐이다.
한국의 현대시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아픔, 기억 등을 소재로 한 詩는 무수히 많으며 그 형태나 상징도 시대에 따라 또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나 배경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날 것이다. 2007년 상반기 두레문학의 詩에서 그 어머니를 찾아보기로 한다.
모처럼 친정어머니 모시고 백화점 가서
빛깔 고운 블라우스 한 벌 사드리고
딸아이 브래지어도 하나 샀다.
얘야 나도 브래지어 하나 사다오!
요즘은 할머니들도 다 하더라.
(줄임)
친절한 점원이 어머니 가슴에 날개를 달자
처음 입어본 브래지어가 어색한지
수줍게 웃으시는 어머니 뺨 위로
연분홍 나비 한 마리 날아오른다.
(줄임)
[나비]부분 / 김광련
김광련 시인은 이 시에서 꽃을 향한 여자의 본성을 [나비]라는 상징으로 나타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자식들을 키우느라 그 본성을 잊고 살았으나 같은 여자인 딸도 그러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세월이 개방되고 어머니도 그 영향을 받다 보니 백화점에서 딸에게 용기를 낸 것이다. 처음 착용해 보는 어색함과 부끄러움으로 홍조를 띤 어머니의 뺨에서 시인은 [연분홍 나비]로 날아오르는 어머니의 마음을 본다. 어쩌면 그것이 시인이기 전에 같은 여자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이 詩에서는 친정어머니에 대한 애틋함과 효를 읽을 수 있다.
외출에서 돌아 온 딸아이가 피아노를 친다
Let it be Let it be
비틀즈가 연신 딸꾹질을 해 댄다
분명 더듬거릴 실력은 아닌데
되돌이표 부딪고 올 때마다 더욱 출렁이는 악보
가는 허리가 위태롭다
하루를 조금씩 당겨오던 오선지의 발걸음 빨라진다
되돌이표 붙들고 제각각 다른 박자의 연주를 시작한다
건반 위에서 길 잃은 손가락
급기야 어깨 들썩인다
이쯤에서 붉은 치마라도 덮어줘야 하나
점점 박자는 속도의 옷을 입고 또 입고
숨가쁜 악보는 오르가즘을 향해 질주한다
Let it be Let it be
한 때는 시간을 넘나드는 연결어미였던 비틀즈가
모서리 거친 배를 내민다
미완의 문장이 뜨거운 눈시울로 두리번거린다
너도 나중에 네 자식 키워 봐라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어머니의 눈물이
칼날 되어 와르르 쏟아진다
(줄임)
[육아일기 1 ] 부분 / 김정숙
피아노를 배우는 딸아이의 연습 과정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심정을 그린 글이다. 그 애처로운 모습에 피아노 교습을 중단해야 할지 어떨지 어머니의 눈시울도 뜨겁다. 자식을 출산해 보아야 어미의 심정을 알 거라던 그 어머니의 눈물이 이제 칼날이 되어 자신에게 쏟아진다. 비틀즈는 Let it be Let it be라고 목청을 돋우지만, 순리대로 맡겨둘 수만 없는 어미의 심정, 어릴 적 시인의 어머니께서 흘리던 눈물이 이제 비수로 박히는 순간이다. 어미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앞서는 마음. 그러나 또, 어찌하랴. 역시 자식 농사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김정숙 시인은 가사처럼 Let it be Let it be라고 이미 순리에 순응하는 암시를 주는 것 같다. 이 시대 자식들 교육에 대한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몇 번 휘저으면
달보다 커 보이던 당신 손
새끼 닮은 하얀 새 알 뚝뚝 떨어뜨리며
강물에 어떤 소망 담금질하셨을까
고시네고시네
언 병아리 같은 내 새끼들
가시 같은 액일랑
어미 정성 봐서 그냥 지나치소
옹가지 푹푹 퍼 담은 죽 한 사발
겨우내 더디게 가더니
세월의 강 몇 번 지난 동짓날
단돈 삼천오백 원에 내 유년을 샀다
재래시장 노파가 건네준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일회용 동지
하얀 달이 떠오르다
낌새도 없이 사라진다
다시 건널 수 없는
저
붉은 강
[동짓날] 전문 / 박명남
비록 재래시장 노파가 건네준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팥죽이지만, 박명남 시인은 유년의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동짓날 옹가지에 팥죽을 담아 언 병아리 같던 어린 자식들의 안위를 빌던 내 어머니. 그 어머니가 살던 강을 다시 건널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회한이 동짓날 팥죽 한 그릇에 오롯이 담겨있다. 여느 어머니가 다 그렇겠지만, 특히 우리 어머니들의 희생적인 자식 사랑이 어머니를 더욱 그리워하게 하는 것이리라. 박명남 시인도 예외일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앓는다. 어쩌면 어머니와 관련지으려고 생각하면 그 소재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어머니가 자식의 근원적인 정신적 고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이 떠나던 날
들몰 쪽으로 멀어져가던
상여 꽃자락 여울진 감나무 밭.
(줄임)
텅 빈 감나무 밭 사이
가을 낮볕에 그을린 당신의 웃음살
낯익은 환청으로 가만히 밀려오고
그리움은 먼 가을 언저리를 넘는다.
[감나무 밭에 서면] 부분 / 임정택
이 詩에서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꽃상여를 타고 떠나신 분이 어머니나 아버지일 수도 있다. 임정택 시인은 아직도 감나무 밭 사이에 서면 그날 꽃상여를 타고 들몰 쪽으로 사라지던 당신의 환청이나 그리움에 가슴을 적신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리움이면서도 이처럼 차분하게 그려내는 시인의 역량이 부럽다. 햇살이 잔잔하게 내리는 가을, 시인의 성격처럼 부드럽고 여운이 짙은 시 한 편을 감상한다.
엄마 나, 어디서 태어났어요?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뱀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삼월 삼짇날 다리 밑에서 주워왔나요 그 해 산이나 들에 나가 나비를 맞아 처음 본 나비 색깔로 그 해가 좋은지 나쁜지 내다보는, 다리 밑에서 의례 나는 흰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 나비점을 보고 싶어요 진달래꽃 찹쌀 반죽에 봄을 지져 먹은 엄마 젖을 빨고 싶어요 엄마 나, 주워 오는 날 능선에 걸린 노을처럼 환희로 물들었나요 엄마의 다리 밑으로 얼마나 많은 강물이 물살을 높이며 흘러갔는지 알아요 ( 줄임) 엄마는 이제 쪼글쪼글한 할머니가 되어 태아처럼 다시 둥글게 휘어지고 있는데 엄마, 다시 다리를 부여잡고 차곡차곡 올라가고 싶어요 탯줄을 다시 잡고 올라가요 엄마가 다시 내 딸이 되고 나는 다시 엄마의 엄마가 되어 동글동글한 우주로 돌아가요 (줄임)
[꼭꼭 숨어라, 삼짇날 머리카락 보일라] 부분 / 황말남
어릴 적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어머니는 아이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놀렸다. 아이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서 고민을 하게 된다. 정말 자신을 다리 밑에서 주워온 것일까? 그러고 보면 의심이 가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 의구심을 안은 채 아이는 성장하고 철이 들 나이가 되면, 그 [다리 밑]이라는 것의 의미에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황말남 시인도 그런 착상에 황말남 시인 특유의 상상력을 배가하여 詩의 재미를 더했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거세게 흘러간 어머니의 고달픈 생을 안타깝게 그려내고 있다. 이제는 등이 휘어지고 쪼글쪼글 시들어가는 어머니를 젊은 시절로 되돌릴 수는 없다. 자신이 엄마가 되고 어머니가 시인의 딸로 환생하는 윤회 적인 회귀를 바라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늙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딸의 소망일뿐이다.
내 어릴 적.
째깡이네 집 앞 골목길에서는
무시로 부지깽이가 춤을 추었지.
돈 달라고 떼쓰는 잰 걸음 좇아
달래다 지친 젖은 손, 헛 매질 바쁘고
동구 밖 돌아 서는 쓰린 가슴엔
종일토록 소쩍새 울고 있었지.
장대 끝, 쌀 잠자리 젖은 날개 마를 즈음.
봉자네 집 앞 신작로에서는
희한한 왕복달리기 벌어졌었지.
육성회비 내 놓으라고 악을 쓰는 잰 걸음 좇아
거친 입, 늙은 걸음 아침을 흔들고
지아비 잃은 설움 토해낸 봉당에는
동전 몇 잎 찡그려 나부라졌었지.
울다 지친 어린 손
꼬-옥 안아주던 할머니 치마 속엔
꼬깃꼬깃 묵은 돈 눈물 훔치고
언덕 위 우뚝 선 초등학교는
늦은 걸음 종소리로 마중 나왔지.
[등굣길] 전문 / 이용일
아궁이가 없어진 요즘은 부지깽이도 필요 없게 되었다. 예전에 어머니들이 즐겨 사용하시던 매가 부지깽이다.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어머니에게는 당연한 도구이기도 하다. 불장난하다가도, 칭얼거리거나 떼를 쓰다가 종래는 부지깽이를 피해 달아나던 기억이 어제 일 같다. 육성회비나 교납금을 제때에 내지 못하여,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거나,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일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그때, 엄격한 가부장 제도에서 아버지에게는 말을 못하고 어머니에게 떼를 쓰다가 결국은 부지깽이로 얻어맞던, 그 기억들이 지금 詩의 소재로 등장한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픈 추억은 시의 좋은 소재이기도 하지만, 늘 그 중심에는 어머니가 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늘 아리고 그립다.
과거에는 서구의 여성이 한국의 여성만큼 문학에서 두드러지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귀족사회에서 여성을 경시하는 풍토에서 비롯되었으며 예술이나 문학을 하는 사람들도 이성보다는 동성을 그리워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앞에서도 말을 하였지만, 우리나라의 가부장 제도에서는 바깥에서 일을 하여 늦게 귀가하는 아버지보다는 가정에서 가사와 자식들의 양육에 비중을 두는 어머니에 대한 정과 모성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이 문학 작품이나 詩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겠다.
오후를 보낸 낮달 스뭇 기운다
큰 언니 집 담장 밑 봉선화 꽃 무리
낭자한 핏빛 되어 아우성 내지르다
여대생 조카는 봉선화 꼭꼭 찧어 열 손가락
물들이자고, 난 형님의 창백한 얼굴만 그려지니
일전, 그녀가 건네 준
생리대 두 봉지가 자꾸 아롱거리고
살래살래 "난, 시방 필요 없다네,"
미소 짓는 입가에 스쳐가던 산노을
지금, 흐드러진 봉선화를 보며
그녀의 달거리가 떠오른다
바람 한줌에
후드득 잎 떨어지자
검붉은 피가 쏟아진다
닿지 않는 달을 찾아 헤매다가
체면 없이 찾아들던 별빛 잔영들
마지막 한 잎마저 털면
봉선화도 열여섯의 몽정을 기억할까
부치지 못한 편지 붉게 타오르던 치맛자락
봉선화도 첫사랑이 있었느냐고요,
봉인된 기억들이
꽃잎 속에서 일어선다
고구마를 씻다가 / 박명남
허 참, 고 녀석들
어머니 고구마 캘 때마다
빨간 손자놈 생각했네
가을걷이 끝나 인편으로
보내주신 당신의 고구마
쪄 먹으려 수세미로 씻다 보니
씻을수록 빨개져 금시 태어난 핏덩이 같네
큰놈 작은놈 길쭉한 놈 짤따란 놈
암팡진 놈 세상사 인연처럼
골고루 섞여있네
팔십 평생 한 해 거르지 않고
손바닥만 한 땅에 물 주고 거름 주고
고구마 줄기 꽂으며 겨우 수고한 대가
빨간 놈들 거친 손바닥으로
골고루 어루만지며
요놈은 친손자 닮은 놈
조놈은 아비 닮은 놈
이놈은 외손자 고추 닮았네
허리 굽혀 밭고랑마다 호미자루 긁어대며
빨간 덩어리 쑥쑥
건져 올릴 때마다 뿌듯한 마음
곳곳에 뿌린 자식놈 떠올리며
앞앞이 돌려줄 때
노인네 그 속내
이제야 알겠네
허 참, 고 녀석들
당신 까만 속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 했네!
봄이 가네 봄은 가네 봄 강 따라 세월 흐르네 붉은 꽃잎
똑똑 따 먹으며 가는 봄 그래, 가거라하네 햇살 피는 그리
움 저며 입술 퍼렇게 부르터 오는 잎, 잎마다 봄날은 피네
허방 같은 내 청춘도 피네 상처들의 잔치가 벌겋네 가슴에
맺힌 피 토하느라 봄이 아프네 아파서 봄이가네 서러워서
가네 머리풀고 가네 살고파서 피 그만 흘리자고 봄은 가네
봄이 가네 남모래 우는 사연 모르고도 봄은 가네
TV를 보다가
박순영
화석에 갇힌 동물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굳어가는 뼛속에서 울음소리가 들려
그 소리에 세뇌 당한 내가 화석에 갇히고 벗어난 그들이
활보하는 모습을 난 물끄러미 보고 있어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이를테면,
거대한 소금덩이 안에 갇혀 마르지 않은 바닷물에서
수세기 전의 미생물을 깨우듯
한 점 뉴클레오티드로 수세기 후에 나를 다시 깨울 수 있다면
그때,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태양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어
아마 땅 속에 사는 환형동물이거나
피부가 딱딱한 갑각류일지도, 그때에도
지금의 내 모습으로 깨어난다면
아마 어떤 미생물의 숙주로 연구 대상이 돼 있을지도 몰라
ET를 연구하듯
이런 상상을 하다 잠드는 날엔
죽어도 땅에 내리지 않는다는 새를 찾아
날개 없이도 막 날아다녀, 그런
아침이면 겨드랑이가 자꾸 무러워 푸드덕거리다
우듬지에 뾰족이 앉아 있어도
한참동안 내 몸은 자꾸만 하늘로 미끄러져
바쁘다는 것은
손갑식
성가시다
머릿속에 잘 짜맞춘 큐브가 한가득이다
비몽사몽 정신이 산란할 때
마구 흩어 놓은 큐브가 맞추어져야 하듯
안간힘으로 일상의 시간표를 짜야 할 때
무척 성가시다
바쁘다는 것만으로도
깊은 강 물흐름을 피해 설 수 있었는데
웬만큼 가장자리서 물풀이나 뜯고 있어도
강 건너 손사래질 아득히 외면도 할 수 있었는데
속쓰리게 성가시다
반 홉도 못 미치는 밥술을 밀어 넣고
더디게 더디게 시위하는 위(胃)를 탓하는 것이
속을 비울수록 정신이 맑아오는 시간에도
서둘러 내일 하루의 큐브를 또 맞추어야 하는 것이
숙면에 지쳐 보겠다고
머리맡에 놓은 양파 두 덩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시각
세속에 흠뻑 젖어 묵직한 뇌와
쉼없이 위산(胃酸)을 뿜어내며 시위하는 뱃속에서
아작아작 큐브가 돌고 있다
바쁘다는 것은 성가신 일이다
베란다 숲에 물을 주다
손갑식
베란다 너머 스모그 세상에는 비를 내리고 베란다 안 청정 숲에는 물을 뿌린다
아이비가 베란다 숲 바닥을 기어다니는 동안 스파티필름이 부처님 얼굴처럼 원광을 드리우고 하얗게 웃는다 새하얀 미소에 반한 남천 두 그루 베란다 양 끝에 장승처럼 서서 천장을 향해 발꿈치를 들고 훔쳐 본다 점잖지 못함을 나무라듯 테이블야자는 의젓한 선비의 자세로 뒷짐지고 여유롭다 아이비 숲의 중간중간에 페페가 뚱뚱한 몸놀림으로 고개 내밀어 두리번거리면 교태롭게 몸을 꼰 산세베리아가 허리를 비틀며 내외한다 가끔씩 삐에로 같은 치장을 등에 업은 무당벌레 두세 마리 아이비 줄기 타고 그네를 뛴다
손갑식 nadonse@hanmail.net 울산/교육자.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학 석사.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 『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쓰레기 비우기/ 이소현
싱크대의 수채통엔 찌꺼기가
늘 끼어 있다
음식 먹다 남은 아랫배
닦아도 뒤돌아서면 또 끼어있는 물때
물이 흐르는 배수관에선
때때로 곰팡내가 나고
눈썹 사이로 하루살이들이
짝짓기를 하기도 한다
헛기침하는 복통에 사랑의 종말은
비워도 자꾸 되살아나는 멀미
허리에 힘이 빠지곤 한다
종량제 봉투 안에 꽉꽉 눌러 담아
오늘도 전봇대 옆에 내어 놓았다
발자국 비끼며 되돌아오는데
말없는 가로등 안타까운 약손으로
어둠의 명치를 쓰다듬고 있다
연습 1
-- 독서실에서 -- 이희규
독서실에 머리 센 사람 있으랴
머쓱함을 밀고 들어 선 날 밤
뒷자리엔 웬 영감이 정좌해 있었다.
공인중개사를 밑돌아
주택관리사라도 잡아야 노후가 편할까,
생각는데, 건너편에는 수도승처럼 굳은 40대가
수능 입시생마냥
공인 회계사 책을 경전삼아 달달이고 있었다.
창밖은 어둠,
번개 같은 경적이 흩어지는 거리는
날과 밤이 뒤섞인 채 흔들리는데
독서실,
마음 속 에 핀 하이얀 꽃은
눈물일까, 사랑일까.
에어콘이 뜨거워 숨막히는 순간,
이제 시작이라는
진정한 사회생활은 이제부터라는
퇴직한 선배의 털털거리는 웃음이
막내딸 귓볼 솜털 속에 묻혀서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올라 왔다.
새벽 1시
-- 푸코와 이근삼--/이희규
프랑스에서 동성연애자로 살던 현대의 지성 미셀 푸코가
드디어 지상의 감금시대를 넘어 파아란 하늘에 에이즈 무지개꽃으로 치장된 후에도
한국의 희곡작가 이근삼은 너털웃음 잃지 않고 극작만 했다.
도대체가 알 수 없는 변설로 풀어 쓴 광기가 무슨 뜻인가를 잘 모르겠다고 아우성일 때,
극동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투덜대던 늙은이의 얘기 속에 광인들이 축제를 열고 있었는데,
어허 그거 참, 푸코가 말한 '미쳐 있는' 정상인이 '미쳐가는' 그 이야기가 아닌가.
서로 존재를 몰랐던 시절의 생각을 그들은 어떻게 알아 나누었을까.
뒤늦게 평안히 눈감은 이근삼을 두고, 기다렸던 푸코는 오늘도 자꾸 보채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근삼이 푸코의 민둥머리의 상투자락을 자꾸 밀어부치는 것일까,
별은 말없이 오늘도 눈만 끔벅이며 새벽 한시를 지키고 있었다.
느지막이 11시가 다되어 출근하여 내 책상이라고 정해진 자리에 터억 앉아
녹차를 한 잔 할까 주스를 마실까 하는데,
이쁜 우리 예약실 막내가 애교스럽게 ‘편지 왔어요!’하며 봉투를 놓고 갑니다.
당장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며
밝은 웃음과 함께 소탈한 이야기를 걸쭉하게 할 줄 아는
시골 아낙네의 얼굴이 떠오르며 기분이 활짝 좋아집니다.
자기 이름을 목적지로 어떤 시간과 공간을 넘어오는 편지란 놈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내 살아있음의 증표가 되기도 합니다.
죽은 자에게 배달되는 편지가 사별의 슬픔을 배가시키는 까닭이 그런 데 있겠지요.
이제 다시는 이 사람의 이름으로 이런 우편물이 배달되어 오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죽은 이의 부재가 좀 더 절실히 다가서는 것이지요.
내 살아있음의 증거로 편지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데,
그것이 더욱 기다리던 편지라면 감칠맛이 나겠지요.
살아가는 어떤 부분의 생각과 바라는 바에 공감하는,
뜻이 비슷한 사람의 편지라면 더더욱 반갑고 흐뭇하며 기대가 됩니다.
자연스럽게 그 얼굴이 떠오르면서요.
그런데 여직원이 놓고 간 봉투는 2개였습니다.
내가 접하고 있는 두 세계의 극명한 대비를 눈앞에 들이댄 것처럼 희비가 엇갈렸지요.
하나는 짐작한 대로 내 이름 앞으로 ‘황간’에서 온 반가운 것이었는데,
다른 하나는 회사 이름 앞으로 ‘강남구 보건소 보건위생과’에서 온 [고지서, 행정처분 알림]이었습니다.
하나는 열일을 제쳐놓고 흠뻑 빠져들고픈 정이 흐르는 사람의 편지이고,
하나는 일이 하나도 없어도 쳐다보고 싶지 않은 일방, 고압, 군림, 위세의 냄새가 나는
관의 거역치 못할 명령서이니, 이런 기가 막힐 양면의 가운데에 이 몸이 끼어있는 형국입니다.
내가 언젠가 끼적인 짧은 글에서 말했던 붙들린 ‘표면의 삶’과 바라는 ‘이면의 삶’이
현실에서 드러나는 양상의 한 모습입니다.
양 갈래 길이 아닌 두 세계의 공존이 언젠가부터 내 앞에 대두되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듯 묘한 느낌의 이 오락가락 또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온갖 쓸데 없는 식견들을 받아들인 결과로 나타나는 욕심의 갈등이겠지요.
연분홍 꽃잎과 가녀린 풀잎이 고루 배인 한지를
잇대어 풀로 붙여 두루마리 편지처럼 세로로 써내려간
정성과 정감이 손끝에서 눈과 마음으로 스미는 고마운 편지를 거푸 세 번을 읽고
잠시 눈을 감고 어떤 정경을 그리며 생각에 빠져듭니다.
내 기억 속에도 그림처럼 들어있는 시골집과 들판과 나무들과
그 속에 자기 자리와 역할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있겠지요.
도시에 사는 나로서 어릴 적 뛰놀던 자연의 풍광을 생각한다는 것은,
소중히 여기지만 마땅히 걸어 둘 곳이 없어 서가 뒤편에 세워두었던 그림을
모처럼 꺼내어 먼지를 훅훅 불어가며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런 심정입니다.
세로로 쓰인 글씨를 실로 오랜만에 대합니다.
내 손으로 친구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빼면 한 삼십년의 세월을 거슬러야 할 것 같습니다.
중학교 때 읽은 ‘부활’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삼성전기’ ‘나폴레옹 전기’ 등과
‘테스’ ‘제인 에어’ ‘이수일과 심순애’ ‘의적 일지매’ ‘얄개’ 등등
많은 책들이 다 깨알 같은 글씨의 이단 세로줄이었지요.
그 때 읽은 책들 중 내용이 생각나는 것은 거의 없지만,
기차 통학을 하면서 닥치는 대로 참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편지를 읽으며, 읽고 나서도 연상되는 생각에 잠기다 보니,
눈앞에 펼쳐져 있는 현실의 일로 들어가고픈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공문서 따위는 뜯지도 않고 팽개쳐 놓고는
요 며칠 출퇴근 시간에 읽던 톨스토이의 ‘유년 시절’을 마저 읽었습니다.
톨스토이가 24살에 자기를 밝히지 않고 유명 잡지사에 맡긴 것이 크게 호평을 받아
그를 유명하게 만든 처녀작으로 아주 맑고 순수한 동심으로 바라 본 어린 날의 모습이 회상되지요.
이후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과 함께 그의 자서전적인 작품이 되어 그의 연구에 큰 역할을 한답니다.
얼마 전에 저를 생각해 주시는 분에게서 나스메 소세끼의 소설집 ‘도련님’을 선물로 받아 읽었는데,
일본의 현대 문학을 일으켰다는 그의 작품을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영국 유학 출신이라 그런지 세익스피어의 향기도 약간 묻어나는 듯 했습니다.
그 전에 중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루쉰의 소설집
‘아Q정전, 광인일기 외’를 의도적으로 세밀히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시대 상황을 잘 몰라 그런지, 굉장한 소설이라더라 하는 선입견 때문인지
그 내용이나 어법이 내게 크게 와 닿지 않아 나의 무지함이 서글펐던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대략 100년에서 150년 전의 그들, 깨어서 뭔가를 대중에게 전하고 사회나 문화를 바꾸려했거나
또는 나름의 노력이 나중에 그런 결과로 나타난 사람들을 연이어 생각해 봅니다.
레흐 톨스토이, 마하트마 간디, 헨리 데이빗 소로우,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루쉰, 나스메 소세끼, 우리나라에는 유영모, 함석헌 같은 분들을 들 수 있겠지요.
나의 단편적인 지식으로 그런 분들의 사상이나 철학 또는 삶의 관점에 대해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들이 그저 주어진 ‘표면의 삶’에만 안주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깊은 사고로 숙성된 ‘이상적인 삶’만 좇아 생활하지도 않았겠지요.
조화를 이루려 했을 것입니다.
사는 일의 중심이 한 곳에 있지 않음은 나이와 환경과 생각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그런 분들의 영향도 점점 강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인간의 양면성을 부인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다양하겠지만
누구나 ‘표면의 삶’과 ‘이면의 삶’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입되거나 배우고 익힌 것을 토대로 현실적 출세나 성공을 이루어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모양 있게 해내면서 스스로도 위락과 만족을 향유하려는 ‘보이는 삶’과,
현실과 엇나간 어릴 적의 꿈이나 뒤늦게 알게 된 자아의 성취, 물질 가치와는 다른 정신의 추구,
우주의 섭리에 따른 자기 존재의 재인식, 참사랑의 갈구, 자기 느낌이나 발로를 공유하고픈 욕구 등등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삶’이 각자의 인생길에 놓여져 있습니다.
먹고 살만하여 정신의 사치를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부대끼며 힘들게 살아오는 동안에도 쉬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 내면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표면의 삶에 밀리어 구체화되지 못한 꿈이 거기에 있습니다.
다 방면에서 존경받는 선인들 중에는 남다른 용기로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인 사람이 많습니다.
귀하의 향기로운 편지를 받고, 자연과 함께 사는 모습을 그리다 이어지는 생각 끝으로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해보며... 오늘 편지를 닫습니다.
고맙습니다.
노강웅 yesgo204@hanmail.net
남양주 거주. 숭실대학교 영문과. 동 교육대학원 교육행정과.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공저『좋은문학』『두레문학』
[특집]
2007년도 [전국충의백일장] 보도자료
비영리민간단체 제133호 등록단체인 시와비평문학회는 울산광역시교육과학연구원의 문학교과연구회와 함께 7월 15일 일요일 울산대공원에서 [전국충의백일장]을 열었다. 또한 문학 행사의 활성화와 시민의 문학 사랑과 볼거리를 제공하고 시민정서 함양을 위하여 [두레문학시화전]도 겸하여 더욱 뜻 깊은 행사가 되었다.
겨레의 숨결인 문학의 보급발전과 문학창작을 통하여 참신하고 역량 있는 문인을 발굴하고자 개최되었다.
[2007 전국충의백일장] 전경사진
[일반부 장원]
여행을 나서며
김정수[중산동]
어제는 온종일 창문이 흔들리고 도로가의 가로수도 이리저리 휘몰아쳤던 하루였다.
으레, 칠월이면 태풍이라는 녀석이 매해 아리따운 이름표를 달고 우리네 삶에 노크를 하기에. 올해는 ‘마니’란 녀석이 짧은 여행길의 종착지를 우리들 곁으로 정했나보다
그런 연유로 어제의 나는 창문지기의 하루 소일하였다. 오래 된 창틀틈새 방충망의 요동이 어찌나 두려웠던지, 오전 내내 마음이 쓰여 베란다로 오갔다.
그러던 중, 또르르 굴러 미끄러지는 빗방울에 묻혀 온 외할머니의 승천길이 영롱하게 오버랩 되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그 날도 어제처럼 태풍이 매서운 칠월의 하루였다.
하늘은 점점 잿빛이 짙어가고 시야를 분별할 수 없으며 연신 천둥과 번개가 번갈아가며 분출하기에 몹시도 두려운 하루를 지내고 있던 터에 외할머니께서 생을 달리 했다는 전갈이 왔다. 방학을 맞은 두 녀석과 우리 부부는 물놀이며 멋진 추억거리를 찾아 헤매던 중이었는데, 당연히 외갓집이 있는 그곳, 고즈넉한 산촌으로 이정표가 바뀌었다
네 식구를 실은 차는 천둥 번개 속을 무작정 달렸다
세찬 비바람을 가르며 산비탈을 올라 외가에 도착하니 울음(곡)소리는 되려 잔잔하고 마당에는 천막이 오락가락 춤을 추며 주인을 대신 하여 손님을 맞이하였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도 우리가족을 반겨주는 이는 분명 존재했다.
“날이 이리 궂은데 궂은데 온다꼬 고생 많았제. 참으로 오랜 만 이구나 니 어릴 적에 잠시 예서 클 제 외할매가 니 손목을 잡고 장날마다 장 바람 쐬 준다고 동구 밖으로 나서던 게 눈에 선하고 마는......” 백발이 듬성듬성, 들은 휠대로 휜 숙이 할매는 그렇게 나를 반기며 그 시절을 회고했다.
어린시절 두 살 위인 오빠의 잦은 질병으로 외갓집을 오가며 자랐으니 내 가슴속에는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잔잔하게 녹아있다.
장날이면 외할머니는 분홍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으시고, 나의 머리는 양 갈래로 깜찍하게 묶인 토끼가 되어 설레 이며 폴짝대는 여행길의 일상이었다. 잔치 국수 한 사발에 땡땡이 무늬 원피스로 한 여름의 멋진 추억을 안고 나는 다시 집으로 보내져 오곤 했다.
생각하면 세월을 초월하는 아련한 꿈속여행이다.
결혼을 하여 두 아이의 어미가 되어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여행길 인 것을 콩알만한 눈물이 콧등을 스치며 외할머니가 더욱 그립다 그렇게 3일장으로 외할머니의 꽃상여가 한길을 메우는 동안에도 추적추적 비는 계속 내렸고 바람만 잦아들 뿐, 하늘은 여전히 잿빛으로 애도 하였다.
그 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꿈속에서 노랑나비를 만났다 외할머니의 손에서 내 손아귀로 날아오는 노랑나비를 그제서야 나는 인생의 참 여행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생과 사는 두 얼굴의 여행길인 것을
‘할머니 계신 그곳으로 이승여행 끝나면 찾아들게요. 그 때 까지 어릴 적 장난 나들이처럼만 즐겁게 지내고 계세요?’
오늘은 하늘이 쨍하니 열렸지만 아직도 가슴속의 언저리에는 외할머니와의 아련했던 추억의 나들이가 되살아나고 있다
누가 뭐래도 내 인생의 여행 중 최상의 여행길이 아닐까 생각하며 곧 다가올 방학, 두 녀석과의 멋진 추억 만들이 여행길을 떠올리며 추억의 보석함,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의 아련했던 여행길) 이제 뚜껑을 닫으련다.
[고등부 장원
여름의 소리
최수진(화암고1-2)
해살 푸지게 쏟아지는 소리
마당에서 게으르게 뒤척거리는 내 소리
상추 따러 가신 엄마가 나 찾는 소리
허공에 살랑
자기들끼리 부딪히고 떨어져서 다시
이어졌다가 비비적대는 풀잎 소리
메뚜긴지 여친지 길게 떨며 내는 소리에
개구린지 두꺼빈지 큰 합창으로 화답하는 소리
아주 자그마한 벌레
내 손톱 위를 기어가는 소리
파도가 꽃처럼 피어나는 소리
안방 할머니께서 틀어놓은 연속극 소리
돌담 구멍으로 들어오던 고양이 멈칫하는 발소리
씨 오종종 박힌 수박 와싹 깨물리는 소리
동생이 끌고 나간 자전거가
석양에 그림자 길게 늘어뜨리며 돌아오는 소리
시간이 길고 긴 여름 낮
잘 익었다가 빗방울처럼 툭 스며드는 바람에
우리들 야물딱지게 커 가는 소리
[중학부 장원]
지구촌 이야기
이해인( 신정중학교 1-10)
“지구촌” 우리 귀에 참 익숙한 단어이다. 매일 우리가 듣는 단어이고, 이제는 습관적으로 우리, 입에서 튀어나오는 단어이지만, 이 단어는 굉장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지구촌”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만큼 좁아졌다는 걸 나타낼뿐더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세상의 전부가 아닌, 그저 조그마한 한 부분이라는 걸 나타내기도 한다.
그만큼 지구는 자그마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무려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리던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도, 이젠 3시간이면 충분하다. 예전에는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기도 했던 여러 가지 소식들도 이젠 단 몇 십초 만에 인터넷으로 전송이 가능하다. 예전에는 그림속의 떡이었던 해외여행도 이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갈수 있는 것이 되어 버렸다. 각 나라의 문화들이 많이 혼합되었고, 그만큼 혼혈 인구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지구가 점점 좁은 곳이 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과학 기술 때문이다. 고속 열차로 인해 3시간 만에 서울에 갈수 있게 되었고,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빠른 정보 전달이 가능하게 되었다. 비행기의 발달 때문에 해외여행 각 나라 간의 교류가 가능하게 되었고, 또 우주선의 발달로 깊고 넓은 우주를 탐사하고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만큼 세상은 편리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 사실에 만족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과학 기술들이 마냥 편리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과학 기술이 계속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 사이의 인정은 점점 사라지며, 사회는 철저한 개인주의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다. 날이 갈수록 파괴되는 대자연은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오며, 생태계의 아름다운 조화를 망가뜨리고 있다. 어린이들의 체력은 날이 갈수록 저하되며, 비만아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점점 더 무서운 무기가 개발되고 있으며, 정부는 백성들을 보살펴야 할 세금을 무기로 자신의 나라를 무장하고, 다른 나라 시민의 생명을 빼앗는데 들이고 있다 이처럼 지구촌이 점점 살기 힘든 곳이 되어가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이 문제를 그리 심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지구촌” 이라는 단어를 내세우며 좋은 점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만 할까? 무엇보다도 한 사람 한사람의 만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도 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런 문제들이 있다는 걸 지각하고 있으면서도 합성 세제를 쓰고,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며, 가까운 거리에도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이 문제 때문에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우리 국민도 어떻게든 도울 방법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또, 각 나라가 단합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하고 있다. 사람들을 죽이고 하나의 지방을 폐허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여 무기를 점점 더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무기들이 우리 지구를 폭파시킬 수 있는 지경까지 오고 말았다. 만약 각 나라가 화합한다면, 사람들 간의 안정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일도,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지구촌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기술의 발달로 지구가 좁아졌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이 단어는 우리에게 자칫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나타내며, 우리에게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급급함을 나타내고 있다. 마침내 온 세계가 단결할 때, 이 단어는 우리에게 듣기 편한 단어가 될 것이라 믿는다.
[초등 운문부 장원]
선생님의 음성
김난영(격동초등학교 1-4)
수업시간이다
점심을 먹은 뒤다
잠이 온다
하품이 나온다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만 웃어 버렸다
“나도 잠이 와”
그리고 웃어주신다
우리엄마 목소리 같다.
[초등 산문부 장원]
선생님의 음성
엄다현(녹수초등학교 6-3)
자글자글한 주름살, 축 쳐진 눈, 그 눈과 같이 쳐진 입
왠지 험상궂은 목소리를 낼 것 같은 그런 얼굴을 가지고 계신 우리 선생님!
하지만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얼굴과 안 어울리는 인자한 목소리를 가지고 계시는 도깨비 같은 선생님이시다
어쩔 땐 아주 느끼하고, 어쩔 땐 아주 편안하고, 어쩔 땐 아주 특이한 목소리를 내셔서 6학년에서 인기 짱! 우리 반 선생님이 다른 반에 한 번 갔다하면 멀리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이곳까지 들릴 정도의 인기가 많으시다.
그러나 때때로 약간의 고음을 내시며 머릿속의 화를 토해내시기도 한다.
목소리만큼이나 특이하시기 때문이다.
그 특이함은 때릴 때도 마찬가지! “토실토실한 엉덩이 자랑하냐?” “선생님은 사람 머리는 때리지 않고, 동물 대가리만 때려요~”하며 말이다.
이때의 목소리는 완전 만화족 캐릭터 목소리에 다가 영화 “마스크”에 나오는 주인공의 얼굴 표정이다. 아마도 우리선생님은 표정연기 대회에 나가도 대상쯤은 단숨에 낚아채올 것이다.
정말 신기하고도 특이한 우리 선생님이시다.
그러나 난 이런 우리 선생님이 정말 고마웠다
왜냐? 그 목소리로 우리가 우울할 때나 슬플 때에는 기쁨을 주시고,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해도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우리의 잘못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우리 에게 알맞은 가르침과 교훈을 주시며 마음으로 보살펴 주시는 우리 반 선생님이야 말로 이 시대 최고의 멋쟁이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다.
얼굴이 착하게 생겼다고 마음씨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얼굴이 무섭게 생겼다고 마음씨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얼굴로써는 절대로 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면 안 된다.
다만, 목소리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그 사람을 판단하여야 한다.
우리 선생님이야 말로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진정한 목소리의 소유자이시다.
우리 선생님 그 목소리와 마음씨를 오래도록 쭈욱 간직하셨으면 좋겠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_^
2007[전국충의백일장] 심사평
올해도 예년과 같이 초등학교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였다.
<선생님의 음성>이라는 글제에 맞게 선생님의 자애로운 모습이나 화를 내는 모습 등의 흔히 볼 수 있는 주변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다채로운 선생님의 목소리를 읽는 재미로 심사장은 즐거웠으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좋은 작품을 두고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하였다.
어머니를 선생님으로 표현한 라소현 어린이(옥성초 4)의 작품은 발상과 표현 그리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좋은 글이었다. 그리고 운문부 장원을 차지한 김난영 어린이(격동초 1)의 작품은 1학년다운 시각으로 바라본 관찰력이 돋보이는 글이었다. 하품을 하다 선생님과 눈 마주침으로 인한 상황설정이 매우 풋풋하고 선생님과 마주친 눈에서의 교감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에 가점을 주었다. 엄다현 어린이(녹수초 6)의 글은 선생님의 음성을 다양한 비유로 잘 포착하였는데 외모보다는 선생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눈이 따뜻하고 대견하다. 이밖에도 김소정 어린이(우정초 5)는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넣은 형식이 독특했으며 김정민 어린이(격동초 1)는 선생님의 첫인상에 얽힌 일화를 시작으로 하여 자신의 바램까지 넣은 글이 차분하여 눈길을 끌었다.
전반적으로 초등부 참여작 대다수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이어서 자연스런 내용 전개와 진솔한 정서가 잘 표현된 작품들이 많아 감동과 웃음을 주었다. 특히 운문부 장원이 1학년 학생에게서 나오게 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중학부는 다른 부문에 비해 참가자가 다소 적었고 글의 수준도 대체적으로 조금 낮았다.
<지구촌 이야기>라는 글제가 조금 난해했던 탓인지 주제의 핵심에서 벗어난 글들이 많았다. 또, 주어진 시제를 무시하고 새로운 시제를 정하여 쓴 글들도 더러 눈에 띄었는데 안타깝게도 모두 감점의 요인이 되었다. 시제와 연계한 상상력을 기대하고 요구하였으나 대부분의 글이 거기에는 미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그리고 논술 교육을 중시하는 분위기 탓인지 논술식으로 글을 풀어가는 학생들이 많았고 따라서 운문보다는 산문에서 좋은 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장원을 차지한 이혜인 학생(신정중 1) 학생의 글은 글제인<지구촌 이야기>를 논리적인 구성방식에 따라 자신의 주장을 잘 드러낸 작품이었다. 글 처음 부분에서는 먼저 지구촌 이야기에 대한 의미규정을 하고 이로 인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지적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지구촌화됨으로써 오는 부정적인 면에 대한 언급과 극복방안도 제시함으로써 논리적인 주장을 잘 펼쳤다.
고등부에서는 예년에 비해 월등히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였고 수준이 뛰어난 작품들이 많았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글제는 <여름의 소리>였는데 계절에 잘 맞는 글제여서 그런지 다양한 서정과 풍부한 상상력이 드러난 글이 많았다.
장원을 차지한 최수진 학생(화암고 1)의 작품은 시적인 기교와 완성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대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과 감정의 형상화가 뛰어난 글이었다. 특히 대상에 대한 시적 사유방식이 자신의 일상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생동감 있게 잘 표현하였다. 앞으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가능성과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대학 일반부의 글제는 <여행을 나서며>였다. 제목이 오랜 삶과 추억의 다양함을 풀어쓰기에 비교적 쉬운 탓이었는지 운문 보다는 산문이 좋았다. 막연한 생각을 엮어내는 관념적인 글 보다는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에 점수를 더 주었다. 운문 작품들은 주제가 모호하거나 이미지의 형상화가 부족한 글들이 많았다.
장원을 차지한 김정수(울산 중산동)씨는 <여행을 나서며>라는 글제를 잔잔한 여운을 주는 수필로 형상화하였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외할머니의 죽음을 과거회상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어릴 적 자신과 할머니가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할머니가 남기고 간 사랑을 은은한 필치로 풀어내었다. 그리고 물 속에 나타난 노랑나비를 통해 돌아가신 할머니와 자신의 끊어지지 않는 인연을 표현하려 한 것도 깊은 사랑과 사유를 엿볼 수 있었다.
이번 백일장에서 심사의 기준이 되었던 것은 먼저 주어진 시제에 잘 맞는가 하는 것이다. 응모한 작품의 내용과 제목이 주어진 시제에 부합하는가, 불필요한 부제는 달지 않았는가 등 시제와의 적합성을 먼저 보았다. 또 우선하여 심사한 것은 독창적인 시안, 즉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가 이다. 같은 시제를 두고도 접근하는 방식이 얼마나 신선하고 창의적인가를 보았다. 다음으로 표현법을 보았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어떠한 언어의 옷을 입혔는가 하는 것이다. 이미지의 형상화와 맛깔스런 글 솜씨를 살펴보고 운문의 경우는 함축미와 운율을, 산문의 경우는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일관성 있게 이야기를 잘 이끌어 갔는가 등을 보았다.
아울러 주제의식과 철학의 접목 그리고 문장구조와 어법도 함께 심사의 대상이 되었다.
백일장에 참가했던 모든 분들의 정진을 빌며 수상자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김금희.김정숙.박봉준.박희곤.이민화.이승민.임성화.임정택.추창호]
*심사방법은 작품과 학령 자료만으로 각각 5단위 점수로 평가한 다음 합산하여 수상자를 선정함*
『두레문학』문예대학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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