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의 미래를 보장해줄, 좋은 일자리를 원하나요. 내 뒤를 든든하게 받쳐줄 누군가를 원하나요. 저라면 노동조합에 가입하겠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5년 노동절 연설에서 미국인들에게 노조 가입을 권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노조는 노동자의 노동조건·복지를 끌어올리고,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기댈 수 있는 ‘일터의 반려’다. 헌법이 노조를 통해 구현되는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올 때 노동자들이 함께 쓸 수 있는 우산’인 노조가 한국사회에서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노조를 개혁대상으로 지목한 뒤 연일 ‘노조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시민들은 기성 노조의 부정적인 측면에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그럼에도 노동인권 보호를 위해 노조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경향신문은 4회에 걸쳐 한국사회에서 노조의 의미와 그 필요성을 짚어본다. 기본으로 돌아가 노조가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다. 노조를 통해 ‘내 삶과 일터’를 바꾼 이들을 만났다. 청년들과 영세·미조직노동자 등 다양한 이들에게 노조 경험과 인식도 물었다.
1965년 이후 노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미국의 변화도 살펴본다. 미국에선 스타벅스, 아마존 등을 중심으로 ‘노조 바람’이 불고 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4.2%이고, 30인 미만 사업장 노조 조직률은 0.2%에 불과하다. 여전히 노조 결성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는 노동자가 대다수인 현실에서, 양대노총을 포함한 노조가 바뀌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도 짚어본다. 관성화된 운동 방식, 노동자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만든 산별노조가 여전히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판을 받는 현실 등은 기존 노동조직이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노조에 대한 여러 목소리를 듣다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왜 헌법은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가?’ 뒤에 나올 기사들은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경향신문은 노동조합을 통해 ‘내 삶과 일터’를 바꾼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왼쪽부터 권승미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신미씨엔에프지회장(촬영 권도현 기자), 용석일 금속노조 신일정밀지회장(촬영 서성일 선임기자), 전민정 공공운수노조 건보공단고객센터지부 경인지회 정책부장(촬영 권도현 기자).
‘아줌마’들, 이름을 찾다
‘아줌마’들은 늘 위축돼 있었다. 2019년 12월12일까지는.
‘아줌마’들은 충남 천안의 식품기업 신미씨앤에프 공장에 다녔다. 신미의 주력 상품인 유부는 유명 식품 대기업들의 유부초밥에도 쓰였다. 그러나 대기업 브랜드 유부초밥에 납품된 OEM(주문자위탁생산) 유부처럼, ‘아줌마’들도 이름이 없었다.
매일 오전 7시쯤 공장에 출근하면서부터 원래 이름은 지워지고 모두 ‘아줌마’가 됐다. “아줌마! 여기 치워!” “이것 좀 옮겨 아줌마!” 기계 소리가 왕왕대는 3층 생산현장에서 관리자들은 소리치곤 했다. 하얀 위생모와 위생복을 입은 100여명의 ‘아줌마’들은 겉으로도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권승미 화섬식품노조 신미씨엔에프지회 지회장이 지난 13일 충남 천안시 신미씨엔에프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천안|권도현 기자
당시 ‘아줌마’들은 하루 10시간씩 주말도 없이 3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이었다. 일회용 위생모나 마스크 같은 소모품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더 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2016년의 어느 날 권승미씨(54)가 화장실에서 본 건 세면대에서 일회용 부직포 마스크를 빨고 있는 동료의 뒷모습이었다.
“언니, 뭐하세요!”
“계속 사서 쓰긴 힘드니까….” 언니는 말했다.
‘아줌마’들은 늘 위축돼 있었다. 의사소통 창구가 없던 시절이었고, 참다 참다 사무실에 말을 하면 찍혔다. 권씨도 2016년 어느 겨울날 곤욕을 치렀다. 규정상 2명이 하도록 돼 있는 작업을 1명에게 시킨다며 사무실에 따지고 다시 작업장에 오니 관리자들이 권씨를 둘러쌌다. “아줌마, 그렇게 안 봤는데 당돌하네?” “감히 사무실에 다녀와?”
대부분 중년 여성인 직원들은 공장을 그만두면 갈 곳이 없어 ‘끽 소리’도 못 했다. “내가 아쉬워 다니는 직장이라 고개를 숙일 수밖에요. 우리 스스로도 기가 죽어 있었어요.” 권씨가 말했다. 화를 삼키면 속이 쓰렸다. 힘든 노동에 예민해져 서로 싸우기도 했다.
권승미 화섬식품노조 신미씨엔에프지회 지회장이 지난 13일 충남 천안시 신미씨엔에프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천안|권도현 기자
2018년, 회사가 마침내 기름을 부었다. 기본급이 최저 수준이라 상여금으로 그나마 숨통이 트였는데 회사가 동의도 없이 상여금을 절반이나 깎은 것이다. 2019년에는 반토막난 상여금을 또 깎으려 했다. 회사는 경영이 어려워졌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이윤은 꾸준히 늘고 있었다.
“아줌마들을 얼마나 무시했으면…. 설명조차 필요없었던 거죠.” 권씨는 한 판 들이받고 퇴사하려 했다. 회사에 ‘부당하다’는 목소리를 더 자주 냈고, 밤마다 노동법을 검색하고 기사들을 읽었다. 그런 권씨에게 ‘언니’들은 말했다. “우리도 싸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 승미 네가 앞장서주면 안될까?” 퇴사하려던 권씨는 포털 사이트에 ‘노동조합 만드는 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세종충남지부를 찾아 상담도 받았다. 권씨와 뜻을 모은 동료들은 알음알음 다른 동료들을 설득했고, 20명이 모였다.
20명이 ‘노조’가 된 건 2019년 12월12일,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였다. 지회장은 권씨가 맡았다. 망설임 없이 가입원서를 낸 ‘언니’들도 직책을 하나씩 맡았다. 평생 ‘누구 엄마’ ‘아줌마’ 소리만 듣고 살아 온 이들이 ‘수석부지회장’ ‘문화부장’으로 자신을 소개하려니 혀가 꼬였다. 푸하하 웃음이 터졌다.
그날 이후 ‘아줌마’들의 위축된 어깨가 조금씩 펴졌다. 조합원은 순식간에 50명으로, 80명으로 늘어갔다. 사장은 “눈에 흙이 들어와도 노조는 안 된다” “노조만 안 하면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회유했지만 ‘아줌마’들의 결속을 뒤집진 못했다.
권승미 화섬식품노조 신미씨엔에프지회 지회장이 지난 13일 충남 천안시 신미씨엔에프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천안|권도현 기자
회사와의 교섭은 의외로 잘 풀렸다. “우리가 회사를 망하게 하거나 이겨먹으려고 노조 하는 게 아니거든요. 회사는 우리가 임금이나 올려받으려고 노조 한다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해 보니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죠.” 노조는 생산직 절반을 차지하던 용역업체 직원들의 불법파견 문제부터 해결했다. 십수년 일하고도 ‘알바’라며 무시당하던 이들이 정규직이 되니 여기저기 울음바다였다.
회사도 직원들을 ‘파트너’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면서 노사관계도 많이 좋아졌다. 노조와 회사는 일터의 크고 작은 문제를 하나씩 함께 바꿔나갔다. 지금은 마스크·장화 등 소모품을 요구하고, 손수레가 고장나면 바로바로 말할 수 있다. 예전이었다면 지레 겁먹거나 체념하고 속앓이만 했을 일들이다. 4분의 1토막이 났던 상여금도 절반으로 복구했다. 노조 가입을 고민하던 직원들도 변화를 경험하니 생각이 바뀌었다. “노조 하면 정부가 주민번호를 모아 빨갱이로 관리한다”던 언니도 가입했다. 정년을 앞두고 건강이 상했던 언니는 노조의 도움으로 요양휴가를 받아 정년을 채웠다.
노동환경만큼 중요한 변화가 또 있다. 스스로 위축되고 ‘내 앞가림’만 생각하던 직원들이 끈끈하게 뭉친 것이다. 불평불만 대신 ‘우리 회사’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일하게 됐다고 권씨는 말했다.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아줌마’가 아니다. 노조 사무실 벽에는 조합원들의 이름이 모두 적혀 있다. “함께 우산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 권씨가 생각하는 노조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신미씨엔에프지회 사무실에 지난 13일 노조원들의 이름이 적힌 팻말이 놓여 있다.천안|권도현 기자
직원 감시하던 CCTV를 뜯어내다
강원 강릉의 베어링 제조업체 신일정밀 작업장에는 지난해 2월까지만 해도 36대의 폐쇄회로(CC)TV가 있었다. 임원들이 직원들의 작업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CCTV였다. 고된 작업 중 잠시 숨을 돌리면, 그 시간에 무얼 했는지 묻는 ‘문답서’가 날아왔다. 초시계를 든 사무직 관리자들이 현장 작업자 뒤에 서서 작업량과 시간을 체크했다.
용석일 금속노조 신일정밀지회 지회장이 지난 24일 강원 강릉시 신일정밀 공장 작업장에 서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믿을 ‘신’에 한 ‘일’. ‘믿음이 제일’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지만 사측은 현장 직원들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노조가 한 달에 2~3건씩 산업재해가 일어나는 위험한 현장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면서부터였다. 직원들은 오래된 기계에서 튕겨져나온 쇳조각에 다치고, 무거운 베어링에 손가락이 끼고, 썩은 절삭유가 튀어 피부에 곰팡이가 슬었다. “냄새가 몸에 배어서, 아이가 아빠~하며 달려오다가도 뒤돌아서서 아빠한테 냄새 난다고….” 이 공장에서 23년째 일하는 용석일씨(52)의 기억이다.
신일정밀의 작업환경은 현장 조사를 나온 근로감독관이 혀를 끌끌 찰 정도였다. 노동청이 시정지시를 내렸지만, 사장은 되레 “(나를 범죄자로 만들어) 경영 철학이 훼손됐다”며 폐업을 공고했다. 사장은 ‘노조 파괴’로 악명 높은 창조컨설팅 출신 노무사를 경영고문으로 위촉했다.
과거 산업안전이 개선되지 않던 시절 신일정밀 작업장 내 작업대가 절삭유로 범벅이 돼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제공
노조 간부들은 강제로 전환배치를 당했다. 2020년 여름, 노조 사무장이던 용씨도 느닷없는 전환배치 통보를 받았다. “신일정밀은 입사할 때 맡은 작업을 퇴사할 때까지 해요. 다른 기계는 몰라요. 사무장부터 발령나는 걸 보니 다른 직원들도 불안해졌죠.” 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느낀 조합원들은 2020년 6월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금속노조는 교섭부터 노동법 교육까지 지원했지만 회사는 그대로였다.
신일정밀 직원들은 결국 2020년 10월 처음으로 파업에 들어갔다. 초반에는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러나 노조가 집회현장마다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시장에서 상인들을 배려해 마이크 볼륨을 낮추자 시민들의 마음이 열렸다. ‘강릉의 삼성’이라 불릴 정도로 잘 나가던 신일정밀의 속사정을 알게 된 시민들은 파업을 응원했다. “행진하면 길이 막히는데 오히려 박수를 쳐주고, 박카스를 사 준 분들도 많았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직원들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사 먹으라”며 돈을 쥐여주는 시민도 있었다.
213일간 계속된 파업이 끝나고도 노조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지방노동위원회가 CCTV 설치 등을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하고 시민사회 압력까지 더해지자 사장은 결국 2022년 2월 회사를 팔고 떠났다.
용석일 금속노조 신일정밀지회 지회장이 지난 24일 강원 강릉시 신일정밀 공장 노조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노조는 회사를 인수한 사모펀드와 새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직원들을 감시하던 CCTV를 모두 철거하고, 더럽고 위험한 공장 바닥에 새로 페인트를 칠했다. 환기용 자동창문도 설치했다. 양도 적고 야채만 나오던 구내식당 싸구려 식단은 이제 푸짐한 육류와 간식으로 바뀌었다. 노사관계가 안정되고 노동환경이 개선되니 물량도 늘었다.
지금은 노조 지회장을 맡고 있는 용씨는 노조를 “더불어 사는 삶”이라고 정의한다. 오랜 싸움을 함께하면서 동료 직원들과의 우애가 깊어졌다. 현 사주가 떠나더라도, 동료들이 있으니 “누가 오더라도 상관 없다”고 한다. “회사가 요구하는 물량을 작업할 수 있으니까, 열심히 일한 우리에게도 성과를 나눠줄 줄 알아야죠. 이제는 자신 있습니다. 우리, 예전처럼은 안 당해요.” 직접 노동환경 개선을 이뤄낸 용씨는 이제 다른 열악한 사업장에도 눈이 간다. “우리 사정이 제일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저기 다녀보니 우리보다 못한 곳이 많아요. ‘도와줄게요, 같이 갑시다’라고 말해주곤 합니다.”
‘생리대 내라’던 직장, 이젠 그런 말 못해요
건강보험공단 경인고객센터(콜센터) 직원 전민정씨(37)에게도 노조는 “나를 넘어 남을 생각하게 되는 일”이다.
2019년 겨울이었다. “너 우리 회사를 얼마나 사랑하니?” 회사 언니가 대뜸 물었다. “회사를 사랑하면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언니는 당시 막 만들어지던 건보공단고객센터 노조에 가입하자고 했다. 센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던 전씨는 노조에 가입했다.
전민정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경인지회 정책부장이 지난 16일 경기 안산시 건강보험공단 안산지사 앞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센터 상담사들은 과도한 콜 수 경쟁에 지쳐 있었다. 상담사들이 속한 용역업체는 기본급을 낮게 주는 대신, 콜 수를 기준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상담사들은 8시간 동안 보통 160콜에서 많게는 230콜 이상씩 처리했다. 자리를 덜 비운 상담사에게 점수를 주는 프로모션도 있었다. 개인뿐 아니라 팀 단위로도 평가가 이루어진 탓에, 몸이 아픈 날 연차라도 썼다간 “대역죄인”이 되는 구조였다. 업체도 성과를 올리려고 상담사들을 쪼았다.
전씨는 콜 수보다는 상담의 질에 집중하고 싶었다. “고객이 즐거운 목소리로 ‘이제 알겠다’고 말하면 뿌듯해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콜을 빨리 쳐내려면 자세한 설명은 사치였다. 짧은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 고객들은 3~4번씩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고객은 자주 화가 났다. 고객의 스트레스를 감당한 상담사는 쉴 틈도 없이 다음 콜을 서둘러 받아야 했다. 전씨의 책상엔 콜 수 하위 20%가 받는 스티커가 붙었다. 연달아 하위 20% 스티커를 받자 “푸쳐 핸썹”이라던 스티커 응원 멘트는 “더 열심히 할 수 없겠니?”로 바뀌었다.
지나친 경쟁에 소진돼 있던 상담사들은 앞다퉈 노조에 가입했다. 노조는 용역업체 직원들이 돈줄을 쥔 ‘진짜 사장’인 공단에 말조차 할 수 없는 간접고용을 문제로 지목했다. 공단과 노조는 용역회사 대신 ‘소속기관’ 형태의 고용으로 전환하는 쪽으로 합의하고 절차를 진행 중이다.
2021년 6월18일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노조원들이 직영화를 촉구하며 서울 마포구 애오개역을 출발해 중구 정동 로터리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완전한 직고용은 아니지만, 노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것이 변했다. “누가 화장실을 덜 가고, 누가 밥을 빨리 먹는지” 경쟁시키던 프로모션은 사라졌다. 전씨도 이제 하루 70~80콜을 소화하며 고객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준다. 생리휴가를 쓰려면 생리대를 제출하라던 회사에서 이젠 연차도 필요할 때 쓸 수 있다.
전씨는 아직 콜 수 압박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노조가 있어 이제는 혼자 억울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노조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회사의 반응이 달라요. 혼자 얘기해서 해결되는 건 없었어요. 이젠 함께 말을 하니까 먹히더라고요.”
전민정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경인지회 정책부장이 지난 16일 경기 안산시 건강보험공단 안산지사 인근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전씨가 노조를 하고 배운 게 또 있다. “내 일이 중요”하던 전씨는 뉴스에 노조 소식이 나오면 “남의 일”이라 생각하곤 했다. 전씨는 이제 다른 사람의 일에도 관심이 많이 간다. 처음 나간 집회에서,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수백 명의 다른 센터 상담사들을 보고나서다.
“다른 곳의 일이 당장 나와 관계없어 보여도, 돌고 돌아 내게 오게 되더라고요. 남일이 아닌 거죠. 노조는 제방이고, 둑이고, 방파제입니다.” 전씨의 건물에는 건보공단 콜센터 3곳이 있다. 노조를 하기 전까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다른 센터 상담사들은 그저 ‘남’이었다. 함께 무언가를 바꿔본 뒤로 전씨는 그들을 마주치면 반갑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대놓고 악수는 못 해도, 속으로는 무지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