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40여년전에 경남산청군단성면에 목화 시배지를 들려 본적이 있다.
ㅡ목화시배지ㅡ
목화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문익점이 붓 뚜껑 속에 숨겨 들여왔다
문익점은 고려말 공민왕때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길에 원나라의 법을 어기고 목화씨 밀반출에 성공을 하고 문익점의 손자 문레가 목화씨를 빼고 실을 뽑는 기구를 만들어 이땅 백성들의 의생활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
목화가 재배되기 전에도 목화 대용으로 재배되고 사용하던 솜이 있었다.
박주가리솜이다.
박주가리는 쪼개어진 박쪼가리 같다고 붙은 이름인데 박쪼가리가 변해서 박주가리가 됐다.
박주가리솜을 옷감으로 사용 하였는지는 알길이 없으나 이불솜으로 사용은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박주가리솜 이불은 아마도 현재의 덕다운 이나 구스다운 못지 않게 가볍고 따듯 했을 것이다.
박주가리솜은 최근까지 도장밥(인주)의 섬유로 사용되었었다.
ㅡ박주가리씨방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