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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과 배달에 무너지는 식탁문화
이덕환 (과학자 서강대 명예교수)
먹방과 배달(配達)의 열기가 뜨겁다. 세검정 아래 주택가 골목의 포방터라는 작은 시장에서 젊은 부부가 양심적으로 운영하던 소박한 돈가스집이 명성을 얻게 된 것도 요란한 먹방 덕분이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관심으로 불편해진 이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주도로 터를 옮겼지만 다행히 뜨거운 열기는 여전한 모양이다. 점심 한 끼를 위해 새벽부터 17시간을 기다리는 열성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착한식당과 골목식당을 찾아 방방곡곡을 떠도는 외식(外食) 노마드들에게는 그런 기다림이 일상인 모양이다.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은 독일 기업에게 엄청난 값에 팔려버린 배달 앱으로 만족한다.
어린 시절에는 때마다 안동 본가에서 중앙선 소화물로 부쳐준 쌀과 부식으로 만든 집밥이 대세였다. 밥상이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김치와 콩조림으로 채워진 ‘그린필드’로 만족해야 했다. 달걀후라이나 푸줏간에서 덤으로 얻은 쇠기름을 넣은 된장찌개는 어쩌다 맛보는 특식이었다. 그래도 집밥에는 집안의 전통을 이어받으신 어머니의 손맛이 확실하게 담겨있었다. 지금도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어주시던 ‘안동식’ 콩나물국과 떡국의 맛을 잊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팍팍했던 시절에 외식과 야식(夜食)은 대단한 호사(豪奢)였다. 그나마도 8시간이나 걸리는 야간열차로 안동을 오갈 때 제천역 플랫폼에 서서 허겁지겁 먹어치웠던 가락국수나 안동역전의 벌건 국밥이 별미였다. 대학 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내식당의 뚝배기는 형편이 없었고, 중국집 뒷방에서 짬뽕 국물과 함께 즐기던 싸구려 고량주나 빈대떡에 막걸리가 고작이었다. 그나마도 카바이드로 발효시킨 막걸리 소식에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먹음직한 통닭이나 오장동 냉면은 형편이 넉넉한 미식가들이나 즐기던 특식이었다. 추운 겨울밤 통행금지 사이렌의 전주곡처럼 들려오던 ‘찹쌀떡, 메밀묵’도 그림의 떡이었다. 중학교 입학시험 전날 할아버지가 식구들 몰래 데리고 나가 보문동 어귀 동네 중국집에서 사주셨던 군만두와 자장면의 달콤한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경제가 나아진 1980년대부터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기가 듬뿍 들어간 화려한 외식 메뉴들이 쏟아져 나왔다. 멀건 국물을 삶은 국수로 채우던 설렁탕이 물 반, 고기 반으로 변했다. 큼지막한 활어(活魚)를 통째로 잡아서 뜬 한국식 회가 유행했다. 심지어 삼계탕에도 닭 한 마리가 온전하게 들어앉았다. 삼계탕이나 양념치킨 탓에 이 땅에서 태어난 수탉들은 대부분 두 달 남짓한 기간에 이승에서의 짧은 생을 마쳐야 하는 불쌍한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덩어리째 숯불에 직접 구워먹는 직화(直火)구이가 등장했다. 하얀 마블링이 눈꽃처럼 피어있는 선홍빛의 두툼하고 넓적한 ‘꽃등심’이 최고의 외식 메뉴로 자리를 잡았다. 그냥 구워먹기에 너무 질긴 쇠고기 부위는 큼지막한 덩어리로 자른 후에 과일즙으로 만든 연육제(軟肉劑)로 숙성시킨 ‘주물럭’으로 먹었다. 무쇠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삼겹살과 큼지막한 족발도 인기였다. 1960년 하루 2.1그램의 육류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는 천지가 개벽한 풍경이었다.
레트로 열풍도 등장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가짜 양은(洋銀) 냄비를 애써 찌그러뜨려 찌개를 끓인다.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鄕愁)를 달래는 묘책이다. 물론 냄비 속에는 쇠고기나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다. 멀건 된장찌개와 함께 허겁지겁 먹어치우던 시커먼 꽁보리밥이 이제는 푸짐한 쌈과 기름진 고기가 가득한 쌈밥집 메뉴의 당당한 주역(主役)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이 푸짐하고 화려한 외식에 열광하면서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집밥의 기억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가성비(價性比)를 강조하는 식당 주인의 획일적인 손맛이 온 국민의 입맛을 지배하는 세상이 시작된 것이다. 먹방과 배달이 그 결과다.
탐욕스러운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들던 우리에게 ‘과학’을 앞세워 의미심장한 경종을 울려준 사람이 바로 1988년 KBS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재미교포 ‘엔돌핀 박사’ 이상구였다. 건강한 삶을 위해 채식(菜食)을 하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상구 박사의 말 한 마디에 서양의 전통 식품인 소시지, 페퍼로니, 살라미는 한순간에 절대 입에 넣어서는 안 되는 ‘쓰레기 식품’으로 전락해버렸다. 잡고기로 만든 소시지는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확고한 소신이었다.
결국 육식(肉食)은 건강을 해치는 나쁜 ‘서구식’ 음식문화로 우리에게 각인이 돼버렸다. 특히 의사와 영양학자들이 그렇게 믿었다. 물론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가짜 뉴스’다. 우리보다 일찍 육식을 즐기기 시작한 서구 사람들도 우리만큼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 거친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육식을 하는 유목민의 건강이 우리보다 나쁘다는 객관적인 근거도 없다.
우리가 진심으로 채식을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고깃국’과 함께 먹는 하얀 이밥이 우리 모두의 오랜 소망이었다. 콩을 발효시킨 된장과 배추를 절인 김장은 척박한 환경에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마지못해 개발한 대안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육식성인 곰(熊)의 자손을 자처한다. 웅녀(熊女)가 초식동물도 마다하는 쑥과 마늘의 매운 맛을 힘겹게 견뎌냈던 것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꿈을 펼쳐줄 단군을 잉태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서구식’ 식생활은 우리가 5천 년 동안이나 마음 속 깊이 감춰두었던 본성에서 비롯된 우리의 진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지극히 일방적인 요설(妖說)이다!)
어쨌든 오늘날의 먹방은 고작 40여 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우리의 부실한 외식 문화의 일그러진 단면이다. 먹방에서 대단한 조리비법을 자랑한다고 요란하게 소개하는 맛집은 사실 가성비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대중식당’이다. 그런 대중 맛집에서는 주인이 일방적으로 만들어주는 음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먹어야만 한다. 손님의 식성(食性)과 입맛과 취향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전화와 인터넷 덕분에 빠르게 발달한 배달 앱으로 주문하는 음식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혹시라도 원하는 재료와 양념과 조리방식을 요구하는 손님은 영업을 방해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진상’이 돼버린다. 오히려 획일화된 음식을 가능하면 빨리 먹어치우고 조용히 자리를 비켜줘야만 맛집의 진정한 ‘왕’이 된다.
한류(韓流)의 한 자락으로 전 세계 유튜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mukbang’의 추태(醜態)도 낯 뜨겁다. 뜨거운 칼국수 5킬로그램을 20분 안에 먹어치우는 모습은 언제 보더라도 역겨운 것이다. 많은 음식을 빨리 먹어치우는 어리석은 내기는 보기에도 흉하고, 건강에도 좋을 수가 없다.
먹방과 배달 음식의 홍수가 음식문화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밥상머리 교육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 성인 중 60%가 젓가락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21세기의 정보화 사회는 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이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엘빈 토플러의 말이 아니더라도 숟가락과 젓가락 문화는 우리가 함부로 버릴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제라도 어머니의 손맛이 가득 담긴 음식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즐기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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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먹방과 배달은 이 시대의 상징입니다.
이런 시대에 오히려 집밥같은 밥을 파는 곳이 앞으로의 트렌드가 아닐지요.
하여튼삼시세끼 식사를 만드는 것은 무척 힘들어,
탈출구를 위해 외식을 하기도 합니다.
_((()))_ _((()))_ _((()))_
먹방으로 유명해진 유튜버들의 먹방은 가히 놀라움을 넘어 안타깝습니다.
1인 가족이 늘어 나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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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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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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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