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롬 3:1-8
성경본문| 롬3: 1~8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2.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신4:7, 신4:8, 시147:19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딤후2:13, 히4:2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기록된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시116:11, 시51:4, 시62:9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롬7:7, 롬8:31, 롬6:19, 갈3:15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롬3:4, 롬9:19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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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는 이방인들의 죄를 지적하였고, 2장에서는 유대인들의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라고 2:1절에서 말하고 있습니 다. 남을 판단할 만큼 거룩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2:5-11절에서 는 "행한 대로 보응 하시되" 라고 하였고, 12절에서 16절에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2장에서 얻은 결론은 드렌 W. 위어스비의 말대로
1)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 의 견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 그 사람은 반 드시 구원받고 상급 받을 것이라 하였는데 하나님의 진리에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2) 심판은 인간의 지위나 신분이 아니라 그 행위에 따 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지위나 신분과는 관계 없이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분이나 경력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롬 2:6-16)
3) 심판은 인간의 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종 교, 어느 교파에서 신앙생활 하였는가?
그것이 아니라 복음대로 믿고 살았느냐에 따 른다는 것입니다. 냉정하게 유대인들을 비판하였던 바울이 이제 변호하는 말을 하 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나음이 무엇인가?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전파하는 바울은 아주 논리적이며 분명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죄를 지적한 그는 이제 그들에게 자존심을 갖게 하여 줍니다.
유대인은 나은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첫째, 선민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백성들 중에서 유대인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입니다.
그들은 왜 선민으로 삼으셨을까?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그의 뜻대로 그분이 원하심에 의하여 받은 것입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입니다. 왜 선택하여 주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택은 은혜라고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선택받은 영적인 선민이라는 것을 알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도 그러하지만 우리는 선민이기에 절대로 망하지 아니합니다.
2차 대전 때에 히틀러가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하는 큰 죄를 범하였는데 거기에 숨은 일화가 있습니다.
2차 대전을 시작하기 전에 히틀러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먼저 유대인들을 예비 구속하였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갇혀있는 곳에 히틀러가 나타났습니다. 유대인을 죽인다는 소문에 의하여 모두 공포에 쌓여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큰소리로 고함을 치며 웃었습니다.
히틀러가 "너 왜 그렇게 웃느냐?" 물으니까,
나이 많은 랍비 노인은 대답하기를
"역사적으로 유대인을 죽이려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을 멸절하려던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애굽의 바로가 그러하였고, 70년에 디도 장군이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히틀러는 이 말을 듣지 않고 유대인을 죽였으며 전쟁을 개시하였습니다. 그 랍비 노인이 말한 대로 히틀러도 그 뒤로 꼭 만 5년 만에 베를린의 포위망 속에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은 다 죽지 아니하고 살아남아 있다가 1948년에 독립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은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둘째, 유대인들은 할례 받은 사람들입니다.
선민이라는 표식이 바로 할례였습니다. 이는 유대인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거치는 의식이 할례였습니다. 선민이라는 흔적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자기 자신 을 자랑하면서 자존심을 표현할 때에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중에 이스라엘이고 베냐민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니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 요, 율법의 의로는 흠 없는 자라" 하였습니다.(빌 3:5-6)
이같이 할례는 그들의 자존심이요, 자랑거리였습니다.
셋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라 하였습니다.(롬 3:2)
말씀은 율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말씀하셨고, 출애굽기 19:1-2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이 주어졌을 뿐 아니라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이 전달된 것입니다. 이같이 말씀을 맡았다는 것 그들에게는 자랑 할만한 것이었습니 다. 말씀을 맡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의 계시를 받은 자이기에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책임도 있습니다.
R. 와트슨이라는 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 게 맡겨진 것은
1) 이 말씀이 읽히거나 이해되도록 해야 하고
2) 정직하게 해석되어 져야 한다.
지난해에 성경 배포수가 42%가 증가되었다고 성서 공회가 발표하였습니다. 성경이 많이 팔리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보아집니다.
그러나 많이 읽혀져 야 합니다. 어느 가정에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비참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웃집에 사는 어떤 분이 그 아내에게 성경을 한 권 주었습니다. 여인이 열심히 성 경을 읽다가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위로를 받고 보물처럼 귀 하게 여겼습니다. 남편은 교회에서 열심 하는 아내에게 핍박을 합니다. 하루는 남 편이 만취되어 집에 돌아와 아내가 읽던 성경을 빼앗아 난로 속에 집어 넣어버렸습 니다.
다음 날 아침 난로를 청소하던 남편이 이게 뭐야 보자 타다 남은 성경 몇 쪽 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나의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고 하는 말씀이 마음에 큰 감동을 가져 왔습니다. 성령께서 역사 하신 것입니다. 그는 예수를 믿게 되고 새 사람이 되어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복된 삶 을 살게 되었답니다.
3) 이 말씀을 맡은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장식품으로 알고 서재에다가 장식해 놓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촬스 피니는 28세에 변호사가 된 수재였습니다. 그의 서재에 많은 책이 꽂혀 있었습니 다.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던 그도 남이 볼 때 그래도 성경 한 권쯤은 있어야 될 것 같아서 큼직한 성경을 사다가 꽂아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몸이 아파 누워 있던 어느 날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성경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고, 그의 인생에 대전환점이 생긴 것입니다. 그는 법관의 길을 버리고 뉴욕의 브로드웨이의 태버나클 교회를 창립하였고, 오벌린 대학의 제2대 총장으로 교육에 공헌했습 니다. 성경을 장식용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자꾸 읽고 묵상하면 삶에 안내자가 되 며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주는 능력의 책입니다.
4) 실제적 목적들에 사용되어지도록 맡겨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받은 우리는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이 말씀을 전하고 이 말씀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합니까?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하냐 하는 것입니다. 이방인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유대인 보다 더 나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 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무엇이 죄입니까? 교만이 죄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남을 수용할 줄 모릅니다. 자기 만 옳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라고 하는 선입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 에 수용하지 아니 합니다.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특권을 얻는데 왜 거절하나요? 교만해서 그럽니다. 그러므로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것이 죄라는 말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그러면 거절합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려고 그렇게 사정하는데 듣지 아니 합니다. 거절합니다. 죄란 바로 거절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줄줄도 알아야 하지만 받아들일 수 있어야 사랑입니다. 부부간에도 상대방을 거절하고 수용하지 못 할 때에 문제가 생깁니다. 환영하지 못 하겠다는 데 평화와 행복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사랑이라 하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에 비할 데가 어디 있습니까?
자녀 들은 언제 부모가 나를 사랑했느냐? 라고 항의하는 자식이 있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자식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을 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줄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때 자녀가 됩니다.
미국의 어느 지방에 알코올 중독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들이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의 파산한 술값으로 파산하여 집을 떠나서 각자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자들이 알콜중독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분석하였습니다.
이후 에 두 아들을 인터뷰하는데 심리학자들은 이들이 형제라는 데 놀랐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형은 자신의 일에 성실하고 능력을 인정받는 금주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동생은 아버지가 한대로 행하여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심리학자는 형제를 따로 불러 당신 지금의 모습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그런데 이들의 대답은 같았습니다.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라고 생각한 아들은 이후에 훌륭하게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아버지 하는 대로 남이 하는 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 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그리고 나의 주 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후로 우리에 게는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무엇으로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자격이 없음에도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표현하였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남편인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시고 인도하여 주시고 필요를 따라 채워주시는 하나님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습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랄 때에 가장 행복한 것이며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갑니다. 어떻게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부모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때는 효자 효녀입니다. 이렇듯이 우리가 영적으로 어리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선택하시고 필요를 따라 은혜로 도우시는 아버지의 사랑이십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절대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사랑입니다.
부부 가 관계는 나빠졌다 하면 이혼을 합니다. 그러면 남이 됩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혹 못된 부모가 있어서 자식을 버렸다고 하나 그래도 아버지이고 자식입니다. 즉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 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이방인들보다 나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진실됩니다.
본문 로마서 3장 4절을 보면 "사람은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사랑은 거짓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만 사랑하는 것 같이 합니다. 사람 자체가 거짓됩니다. 마음도 거짓됩니다. 죄로 인하여 부패하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진실하신 아버지로서의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거짓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진실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헌신적이며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진실하고 거룩하고 불변의 사랑이랍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이방인과 전혀 다른 점입니다.
2. 이방인과 우리는 소망이 다릅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요?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소망 이 있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자가 되는 것이 소망일 것이며,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출세하는 것이 소망일 것입니다. 병든 사람에게는 건강이 소망일 것이 며, 장애자는 마음껏 걷고 뛰는 것이 소망입니다. 삼중고로 고생하던 헬렌켈러 같 은 사람은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꼭 삼일동안만 눈 을 뜨고 보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는 그 순 간 손끝으로만 만져도 알던 나를 이 만큼 가르쳐주신 셜리번 선생님의 인자한 얼굴 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면서 마음속에 간직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친구들을 찾아보고 들로 산으로 나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잎사귀를 들에 피어있는 꽃과 나무들 그 리고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도 보고 싶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는 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과 오전에는 오페라 하우스 오후에는 미술관 저녁에는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하루를 보내겠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생동감 넘치는 얼굴을 보고 낮에는 영화관에 가고 밤에는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거리에 나가 진열 된 상품을 구경한 다음에 집에 돌아와 삼일 동안만이라도 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소망은 현실적인 것이 며 유한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이라는 것이 올 때에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다릅니다. 영원한 소망입니다. 죽음이 와도 없어지지 않는 소망입니다. 예수 안에 사는 이들의 소망은 하늘나라입니다. 죽음이 오면 오히려 부활의 소망 때문에 슬퍼하지 아니합니다. 많은 사람을 태우고 바다를 건너던 배가 갑자기 불어오는 거센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배는 뒤집히려는 듯이 요동하기 시작합니다.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그런데 노인 한 분은 아주 평화로운 얼굴로 기도를 드리고 있더랍니다. 그 노인 에게 한 사람이 가서 묻습니다. 두렵지 않으세요. 노인은 아니요. 나는 소망가운 데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귀여운 딸이 둘 있었습니다. 큰딸은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작은 딸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만약에 배가 뒤집혀 죽게 되면 천국에 있는 큰딸을 먼저 만나게 될 것이고, 이 배가 무사히 도착하면 작은 딸을 만나게 될 것이니 감사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소망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다릅니다. 소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 합니다.(아멘)
3. 이방인과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가는 곳이 다릅니다.
즉,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 노래 중에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것이 있습 니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그 런 노래도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힘들게 살던 시대에는 삶에 철학이 있었습니다. 사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란 길지 않다. 가는 고향이 있다라는 막연하지 만 그런 대로 생각은 했던 것입니다. 그런 생각들이 유행하는 노래로 불려진 것입니 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어차피 나그네 길이라면 고향은 어디냐 라고 묻고 싶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느냐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두 곳입니다. 하나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지옥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천국에 가는 것이고,
믿지 아니하는 자는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교도소에는 누가 가던가요?
죄인이 가는 곳 아니던가요?
예수를 믿으면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사함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믿지 아니함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도 심판이 있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심판입니다.
로마서 3:5절을 보세요.
"사람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낸다" 고 하더라도 심판입니다. 예를 들면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게 됨으로 인류 구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룟 유다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여도 심판이라 하였습니다. 즉 가난한 사람들 도와주기 위하여 부자 집의 물건을 훔쳤다고 하더라도 심판이라는 말입니다. 그 심판 중에 복음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었느냐? 믿지 아니하였느냐? 믿었으면 천국이요, 믿지 아니하였으면 지옥입니다. 누구에게라도 물어보세요. 지옥 가고 싶으냐? 다 싫어합니다. 지옥이 싫으면 예수 믿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살면서 온갖 잘못된 죄를 범하였다고 하더라도 예수 믿으면 구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나요?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믿고 예수 안에 있으면 심판과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3:18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5:24절에는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 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5:12절에는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믿음을 갖고 있다가 버리면 심판이라 하였으니 믿음을 되찾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과 믿지 않는 이방인과는 엄청나게 다릅니다.
1) 신분이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대신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자녀답게 살면서 자녀의 특권을 누리시 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소망도 다릅니다.
하늘의 영원한 소망이 있습니다.
3) 그리스도인들은 가는 곳이 다릅니다.
저 천국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할렐루야)
성령 안에서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갑시다. 힘있게 삽시다. 오늘도 처음으로 교회에 오신 분들이 계십니까? 예수 믿고 삽시다. 이방인과 다르게 복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예수 영접하고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의 특권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 아 멘 ∼
출 처| 백장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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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