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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석 칼럼 스크랩 다리우스1세
필유니버최남석 추천 0 조회 1,620 11.02.12 12:56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다리우스 1세 [Darius I] 별칭은 다리우스 대왕(Darius the Great). BC 550~486.

 

다리우스 1세

 

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위대한 왕(BC 522~486 재위).

 

다리우스 1세는 파르티아의 총독이었던 히스타스페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어서 그는 키루스 2세에게 반란 의혹을 받았고 이집트에서 황실의 근위대로 복무했다.

기원전 522년 키루스 2세의 아들로 황제('샤안샤', '왕 중 왕'이란 뜻)였던 캄비세스 2세가 죽자, 다리우스는 이집트에서 메디아로 갔고 캄비세스 2세의 뒤를 이어 황제를 자처한 바르디야를 제거하고 샤(왕)위에 올랐다.

제위 초기 그는 끈임없이 키루스 2세의 정식 후계자를 자처하는 많은 역모자들의 반란에 시달려야 했다.

바빌로니아에서 2번, 수시아나에서 3번에 걸친 반란이 일어났고 다른 곳에서도 키루스 2세의 후계자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그는 단호하게 반란을 진압하면서 왕권을 강화해갔고 힘겨운 투쟁을 벌여야 했다.

이들 반란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그는 징병제를 실시하고, 군대에 봉급을 지급하는등 군대를 개혁했고 효과적으로 군대를 지휘할 수 있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병사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중장기병

 

수시아나에서 일어난 3번째 반란을 진압하고 그는 비로소 키루스 2세의 진정한 후계자로 권력을 장악했다.

국내의 정권이 안정되자 그는 외부로 눈을 돌려 제국의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기원전 519년 카스피 해 동쪽의 스키타이족을 공격하고 몇 년 뒤에는 인더스 강 유역까지 진출했다.

 

다리우스 1세 통치하의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최대 영토

 

기원전 512년에는 대군을 이끌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동부 트라키아 마케도니아 왕국을 굴복시킨 뒤 도나우 강을 건너갔다.

이 원정은 이들 유목민들의 변경 침입에 대해 제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돈 강 유역의 흑해까지 진출한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실패했다. 소아시아에서는 에게 해에 있는 렘노스 섬과 임브로스 섬을 손에 넣고 그리스 본토 바로 앞까지 진출하여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경제에 중대한 타격을 입혔다.

기원전 499년 다리우스 1세의 지배에 대항해 아테네 에레트리아의 지원을 받은 이오니아인이 반란을 일으키자 다리우스는 이들 반란을 진압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그리스 원정을 준비한다.

기원전 492년 다리우스 1세는 사위인 장군 마르도니우스에게 그리스 원정을 맡겼으나 그의 함대가 아토스 산 근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파괴되어 실패했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기원전 490년에는 다티스의 페르시아 군대가 에레트리아를 점령하고 아테네로 침공해 들어가는 중에 마라톤에서 아테네 군에게 패배하여 퇴각했다.

 

마라톤 전투

 

다리우스는 다시 3번째로 그리스 원정 준비를 했으나 때마침 기원전 486년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듬해 10월에 죽었다.

 

Naqsh-e Rustam에 있는 다리우스 1세의 왕릉

 

 

다리우스 1세는 정력적으로 대규모 건축사업을 추진했는데 그의 페르시아 건축양식은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기원전 521년 수사를 새로운 행정도시로 삼아 요새와 궁전을 재건했다.

이전까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이던 파사르가다에가 예전의 왕들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단절하고 그의 고향에 페르세폴리스를 새로이 건설하고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이 도시의 성벽은 거의 18m에 달했고 두께는 9m 정도 되었다. 새로운 수도의 건설은 대규모의 공사였다.

비록 그의 생전에 대규모의 궁전과 보물창고 등이 건설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가 뒤를 이어 완공했다.

 

페르세폴리스

 

 

 

 

 

 

그는 이집트 나일 강과 수에즈를 연결하는 운하도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그의 배들은 나일강에서 홍해를 거쳐 페르시아까지 다녔다고 한다.

또한 다리우스 1세는 영토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도로망을 건설하였고 수사에서 페르세폴리스, 사르디스에 이르는 넓은 도로를 만들었는데 훌륭한 휴게시설과 경비부대, 역참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는 키루스 2세가 시작한 사트라프(총독)제도를 완성하여 전 제국을 20개의 속주로 나누고 각 속주의 세금을 확정해 공평히 부과했다.

 

다리우스 1세와 신하들

 

다리우스 1세는 공평한 정책으로 제국의 수많은 민족들을 지배하는데 성공했는데 각 민족의 고유한 종교, 관습, 문화를 존중해 주었다.

각 지역의 총독(사트라프)들에게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 피지배 민족들에게 맞는 법률을 정해 법전으로 만들도록 하였다.

또한 독립적인 재정과 어느 정도 군사적 자율권도 보장해 주었는데 이렇게각 지방간의 권력을 분산함으로 인해 반란의 가능성을 낮추었다.

기원전 519년에는 바빌로니아의 포로로 잡혀 온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기도 했다.

또한 상업을 장려하고 화폐, 도량형을 통일했다.

그의 치세동안에 페르시아는 인구가 늘었고 각종 상업과 산물이 융성했다.

다리우스 1세는 비록 자신은 일신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고 아후라 마즈다를 유일한 신이라고 선포했으나 다른 민족들의 종교에는 관용을 베풀었는데 이것은 제국의 통치하에 있는 피지배 민족들의 대부분이 다신교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페르시아에는 노예가 없다고 하며 건축물을 건설할 때 인부나 노동자에게 일정한 임금을 주고 일을 시켰는데 이것은 당시 고대의 관습에서는 획기적인 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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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1.02.13 18:08

    첫댓글 현대불교는 신중탱화에서 제석천을 주존자리에서 내리고 위태천신을 주존으로 올렸는데그 이유는 현대불교의 모티브가 파르티아의 공사상이기 때문입니다 달마도 파르티아(안식국 향지국<안식향>) 사람입니다 공불교는 스키타이의 사카무니 와 구별 됩니다
    / 깃털모자를 쓴 다리우스(위태천신)를 찾으려다 이것 을 퍼왔습니다 원저자에게 감사드립니다

  • 11.02.12 17:25

    불교의 수행과 향료요법을 통한 호흡법이 관련이 있는지 알고 싶네요....

  • 작성자 11.02.13 08:41

    안식향을 중동지역 사람들이 정신치료 목적으로 흡입 했습니다 달마가 여기서 안심이라는 모티브를 얻어 지나로 가지고 와 허무주의 를 포교했는데 그것도 불교라고 합니다 -- 이입사행론 안심 참조--

  • 11.02.13 17:18

    호흡과 수련을 위해서 과거로부터 약물요법 또는 향료요법을 병행한 듯 합니다. 사실, 그것이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 진정한 명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외부요인이 완벽히 제거되어야 하지 않는지? 자연스러운 명상과 강제적으로 외부적 요인을 동원하여 명상에 이르게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봅니다. 때때로 그것이 도움을 줄 수도 있으나, 상대적인 역작용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 11.02.13 17:20

    계속 그렇게 하다보면, 수련을 통한 자기 완성보다는 외부적 요소인 약물과 향료등에 의존하게 되는 수동적 형태의 수련방법에 취하게되며 결과적으로 능동적 형태보다는 수동적 형태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생각되는 군요...

  • 11.02.13 17:21

    그것은 인간능력의 진화를 목표로 시작된 최초의 동기가 외부적 요인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으로 귀결되는 퇴화로 해석이 되기도 합니다.

  • 작성자 11.02.13 18:15

    달마는 밗으로 모든 반연(끄달림) 을 그치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 마음이 담벽 같을 때 도에 들어 갈 수 있다 고 했으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지 에 관하여서는 일언반구의 설명이 없습니다 아마 약물에 힘을 빌렸는지도''' ??? 그에 비해 단전호흡은 호흡을 길게하고 미세하게 하는 수련을 통해 무념무상 에 도달합니다 호흡선은 그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해줍니다

  • 작성자 11.02.13 20:37

    달마선(허무주의) 가 불교 안으로 들어오면서 위태천신 도 따라 들어와 왔는데 위태천신은 인디언 추장이 쓰는모자 와 비슷한 모자를 입었습니다 그런 사진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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