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의 모든 협주곡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 중에 하나인 이 곡은 베토벤의 창작력이 가장 활발하던 1809년에 작곡되었다. 베토벤의 영웅적 시기의 정점을 찍는 작품으로, 오케스트라가 제시하는 주제와 함께 피아노 독주를 시작하던 전통적인 교향곡 형식에서 벗어나, 세 번에 걸친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울림 사이에 트릴, 아르페지오 등 화려한 장식을 넣어 분수의 물줄기가 뻗어나가는 듯한 움직임을 형상화한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혁신은 2악장과 3악장을 이어주는 연결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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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혼란함 중에
오늘날 이 곡의 초연이라고 알려진 것은 1811년 11월 28일 프리드리히 슈나이더의 피아노와 필립 크리스티안 슐츠가 지휘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계속되는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혼란의 상태에 빠져있었던 시기였다. 베토벤은 1809년 7월 26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자신의 출판업자에게 이렇게 쓴다. “여기에는 북, 대포, 불행만이 있다네.” 사실 이 작품의 부제인 ‘황제’는 베토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게다가 독일어권이 아닌, 영어권에서만 알려진 제목이었다. 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하던 1809년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와 전쟁 중으로, 18년 동안 벌써 네 번째 일어난 두 나라 간의 전쟁이었다. 그해 5월 프랑스와의 불화가 조성된 지 1달 만에 나폴레옹은 빈의 근교에 있었다. 프랑스 군대의 대포 공격이 시작되었고, 이 공격이 극에 달했던 5월 11일 베토벤은 자신의 친구이자 시인이었던 카스텔리의 집으로 피신을 간다. 거기에서도 베토벤은 자신의 머리를 베개로 감싸면서 약간 남아있었던 자신의 청력을 보호하려 했다고 알려진다.
베토벤의 ‘영웅적인 10년’
그해 늦은 여름, 베토벤은 다시 작곡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게 된다. 1809년 말쯤에 베토벤은 〈황제 협주곡〉뿐만 아니라, 현악4중주와 〈고별 소나타〉, 그리고 두 곡의 소규모의 소나타를 완성한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서 그의 창작력은 양적인 면에서 훨씬 줄어든 것이었다. 사실 그 이후에도 베토벤은 다시 1802년에서 1808년 사이에 보여주었던 왕성한 창작력을 회복하지 못하게 된다. 저명한 베토벤 전기학자이자 음악학자인 메이나드 솔로몬은 이 시기를 두고, 베토벤의 “영웅적인 10년”(heroic decade)이라고 부른다. 아마 이 10년의 시기를 분명하게 정의하기 시작한 곡은 1803년의 〈영웅 교향곡〉이었고, 〈황제 협주곡〉은 이 시기의 정점을 이루는 곡이었다.
어떻게 곡을 시작할 것인가를 고민한 베토벤
〈황제 협주곡〉은 여러 면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베토벤의 ‘영웅’적인 방식의 정점을 대표하는 곡이다. 이 곡보다 이전에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 4번〉이 지금까지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곡을 시작하고, 솔로 주자의 서정적인 도입 이후에 ‘정상적’인 제시부를 시작하는 방식으로 곡을 풀어갔는데, 베토벤이 남긴 〈황제 협주곡〉의 스케치를 보면 그는 다시 이 작품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도 그는 이 협주곡의 오프닝이 어떻게 하면 충격적이면서도 독창적인 것일까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황제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사운드와 함께 솔리스트의 화려한 장식들로 시작한다. 그것은 당시의 청중들이 협주곡의 오프닝에서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협주곡은 당연히 오케스트라에 의해 제시되는 주제와 함께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 협주곡〉은 세 차례의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울림이 있고, 그 사이를 솔리스트가 오케스트라에 의해 제시된 화음을 트릴, 아르페지오, 스케일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함으로써 마치 분수의 물줄기가 뿌리부터 뻗어나가듯이 진행한다. 이 악장이 〈황제 협주곡〉 전체에서 차지하는 길이는 절반이 넘어갈 정도로 길며, 그 내용도 매우 참신하여 1악장은 ‘황제’라는 이름에 걸맞은 장대함과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다.
형식적인 혁신을 보여주는 2악장과 3악장의 연결구
2악장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코랄’이다. 현악기의 감동적인 선율이 흐른 다음, 피아노는 조용히 자신의 노래를 시작한다. 이 선율을 주제로 베토벤은 우리에게 두 개의 변주를 들려준다. 첫 번째 변주는 피아노에게 주어지고, 두 번째 변주는 피아노의 반주에 맞춰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나간다. 2악장의 사색적인 순간이 끝나갈 때쯤, 베토벤은 이 곡의 형식적인 혁신을 더하는 부분을 첨가한다. 그것은 바로 2악장과 3악장을 연결하는 아이디어인데, 이 부분에 베토벤은 새로운 악장에서 등장하게 될 주제를 미리 선보이기 시작한다. 피아니시모로 시작했던 이 주제는 갑자기 한 순간 새로운 템포와 포르티시모로 자신의 모습을 완전하게 드러냄으로써 3악장이 시작되게 된다. 이 연결구는 베토벤의 놀라운 ‘음악적 공간’의 창조력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