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다/강희근

[반용산]

가을 바다

비온 뒤

가을 바다는 조선 삼베 삼베올처럼 적당히 거칠다

바다 아랫도리가 도시 앞바다 얼굴을 하고 있다

해수욕장 기인 모래사장도 살갗이 텄다

섬을 보면

까끌까끌한 바람이 지난 철 꿈의 명암을 뜯어내고 있는 중이다

수평선이 중심이다

가을은 여기서부터 쓸쓸함 또는 쓸쓸함의 길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인간은 이 흔들리는 쓸쓸함으로 들어가서

까끌거리는 삼베올로 들어가서

섬과 섬 사이 섬 하나가 된다

노을에 버티다가 노을에 그림이 되는 섬

섬 하나!

* 남강이 흐르는 진주는 아직도 기억 속에 푸르다. 혈기 왕성의 젊은 한 때를 거침없이 비벼대던 억센 근육의 날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모든 게 눈에 차지 않고 그저 시쁘기만 하던 저 60년대의 후미를 강희근 시인과 나는 진주에서 함께 지냈는데 그는 중앙문단에 당당히 등단한 신인으로서 앞날의 장래가 양양함은 일목요연하였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나는 생계를 좇아 떠나왔고 강희근은 지금까지 남아 있으면서 주옥의 명편을 계속 발표하여 한국시단을 대표하고 있다.

 이번에 정년을 맞아 시평들을 모아 기념집을 묶는다고 한다. 시간과 시간을 건너 벌써 그렇게 되었다.

 강희근의 시는 이름을 가리어 놓아도 금방 강희근의 시임을 드러내는 변별적 자질을 가지고 있다. 작품 속에 살아서 반짝거리는 시어를 대할 때마다 그가 빼어난 언어 세공의 장인이란 것을 알게 된다. 잘 조탁된 시어들은 그들 집단 내에서 조화와 질서를 이루면서 한결 더 숙성되고 발효된 정서와 함께 심미적 리듬을 거느리며 유려한 시의 진경으로 나아간다.

 가까이 손닿는 곳에 아무렇게나 펼쳐 읽는 「가을 바다」또한  앞서의 지적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않는다. 여름의 폭양이 썰물 져간 비온 뒤의 가을 바다는 삼베로 적당히 거칠어지면서 살갗이 튼 해수욕장의 모래톱을 덮는다. 그 성긴 숭숭 구멍 뚫린 삼베올 사이로 벌써 가을 바람이 들랑거리고 있는 바다는 일찍이 박재삼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 놓았던 삼천포 앞바다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쯤에서 바다는 한껏 수평선으로 밀려나 앉고 그 자리에 일어서는 쓸쓸함의 길로 접어든 시인은 또 하나의 섬이 되어 무수히 섬과 섬 사이를 내왕하며 끝내 노을로 버티는 풍경으로 박힌다. 지금 그 풍경 속으로 시인 강희근이 걸어가고 있다.

                                                                                                                                               [김석규 시인]

강희근 교수

■  1943년 경남 산청 출생  아호 하정      진주고, 동국대 국문과, 동아대 대학원 수료      (문학박사,한국 가톨릭 시 연구)      1965년<서울신문> 신춘문예 시부 당선      <신춘시>, <흙과 바람>, <진단시>,<화전>동인      공보부 신인예술상(1966),      경남도 문화상(1974),      조연현 문학상(1995),      동국문학상(2003),      시예술상(2003) 수상 ■   국립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장·인문대학장·도서관장       전체교수 회장을 비롯 전국국공립대교수협의회 부회장      ·배달말학회장·경남문인협회 회장 역임       현  경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경남펜클럽회장,  지역문학인회 좌장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공동주간>  ■   시집         < 연기 및 일기>, < 풍경보>, < 산에 가서>,         <사랑제>,< 사랑제 이후> < 화계리>,< 소문리를 지나며>,         <중산리 요즘>> 등        저서        < 시 짓는 법> ,< 우리 시문학 연구>,< 한국카톨릭시 연구>,        < 글예술 이론>, < 오늘 우리시의 표정>, < 시 읽기의 행복>,        <경남문학의 흐름>, <우리문학 맛보기> 등

[김계선]

까끌거리는 삼베올같은 가을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