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 영/순천향의대 교수 부천병원 정신과
불과 20여 년 전 컴퓨터는 공학이나 기업을 하는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으나 최근에는 학교, 가정 등 매우 가까이에 컴퓨터가 보급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1위로 이로 인한 영향에 있어 최전방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학자들 사이에는 사회적 삶에 있어 인터넷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인터넷 중독이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소위 '중독(addiction)'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술이나 마약과 같은 물질에 중독되는 것 외에 인간은 특정 행동에도 중독 현상을 나타낸다. 병적 도박, 폭식, 강박적 성 행위 등이 대표적인 행위 중독(behavioral addiction)이다.
'하이테크 강박증', '얼리 어댑터', '높은 IT 엥겔계수'등 컴퓨터가 우리의 삶에 지나친 영향을 미치는 것을 기술하는 새로운 용어들이다. 그러나 이를 질병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인터넷 중독은 소위 행동 또는 정신 질환에 해당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이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만약 인터넷 중독이 진단적으로 타당성이 인정되는 정신 질환으로 분류된다면 의사들은 이를 마땅히 담당하고 치료해야 할 것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 때 유행처럼 번지다 지나가는 사회적 현상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 있겠으나 현재까지의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인터넷 중독은 일종의 신종 행동 장애로 이해된다. 연구자들은 병적 도박(pathological gambling)이 인터넷 중독과 가장 가까운 모델일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일종의 충동 조절 장애(impulse control disorder)에 해당될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에 저자는 인터넷 중독의 임상 양상과 후유증, 진단법, 위험인자와 원인, 그리고 치료법에 대해 현재까지 알려진 것을 중심으로 간단히 요약해 보고자 한다.
1. 임상 양상과 후유증
인터넷 중독은 (1)내성(같은 양의 쾌감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양이 필요) (2)금단(진전, 불안 등) (3)정서적 문제(우울, 짜증) (4)사회적 관계의 단절(질적 혹은 양적)이 동반되는 인터넷 사용에 있어서의 비순응적인 행동유형을 특징으로 하는 일종의 심리생리학적 질환이다.
인터넷 중독에 빠진 학생들이 나타내는 증상은 다음과 같다(Young, 2001): 수면 부족, 과도한 피곤감, 성적 저하, 친구 관계 감소, 사회적 활동의 감소, off-line 동안 무감동증, 안절부절못함, 과민함, 문제의 심각성을 부정, 학교보다 인터넷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합리화, 인터넷에서 무엇을 하는지 얼마나 많이 하는지 거짓말,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인터넷을 끊으려고 하지만 곧바로 다시 시작하는 등. 인터넷 중독과 관련된 후유증은 매우 다양하고 심각하다.
이는 학업 수행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서 성적이 떨어지고 학교에서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탈락하게 만든다. 컴퓨터에 몰입하는 아이들은 또한 현실적인 사회적 관계에 별로 의존하지 않게 된다.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욕구가 컴퓨터를 통해 만족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인터넷 중독에 빠진 아이들은 사람과의 의사소통이 점차 줄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간다. 인터넷 사용이 증가할수록 가족 간에 대화가 줄어든다는 당연한 연구 결과들도 있다. 또한 인터넷 사용이 많을수록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더 많이 경험하고 우울감이 더 컸다는 연구 보고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과도한 인터넷 사용의 결과인지 아니면 원인인지는 아직까지 더 연구가 필요하다.
그밖에 공격적인 매체에 노출되면 공격적인 행동이 증가한다는 사회학습이론(Bandura, 1986)에 따르면 난폭한 게임은 매우 위험한 자극이 될 수 있다.
인터넷 게임에서 특히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 자신이 게임을 조절한다는 점과 게임의 특성상 공격적으로 행동했을 때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인터넷 중독으로 인한 후유증은 심각하여 개인의 학업적, 정서적 및 사회적 삶은 물론,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지속되었을 경우 사회적 고립, 부부 불화 혹은 이혼 및 직업적 또는 경제적 삶에 있어서의 황폐화가 초래될 수가 있다.
2. 진단
다음은 Young(1996)에 의해 개발된 인터넷 중독에 대한 질문서로 8개 항목 중 5개 이상에서 '예'에 해당되면 인터넷 중독을 의심할 수 있다.
1. 인터넷이나 PC 통신에 대해 집착하고 있습니까? (지난번 접속에 대한 생각을 하거나 다음번 접속에 대해 미리 생각을 합니까)? 2. 인터넷이나 PC 통신 시간을 더 늘려야 만족감을 얻으십니까? 3. 인터넷이나 PC 통신을 줄이거나 중단하고자 하는 노력이 반복해서 실패했습니까? 4. 인터넷이나 PC 통신을 줄이거나 중단했을 때 안절부절못하거나, 감정적이거나, 우울 혹은 짜증스럽다고 느끼십니까? 5. 원래 의도했던 것보다 인터넷을 더 오랫동안 하십니까? 6. 중요한 대인관계, 직업, 교육, 경력에 있어서의 기회를 인터넷이나 PC 통신 때문에 잃거나 위협받으셨습니까? 7. 가족, 치료자 혹은 다른 사람에게 인터넷이나 PC 통신 사용 범위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한 적이 있으십니까? 8.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혹은 불쾌한 기분(예, 무기력감, 죄책감, 불안, 우울)을 덜기 위해 인터넷이나 PC 통신을 하십니까?
Internet Addiction Support Group에서 제안한 인터넷 중독의 진단기준은 다음과 같다.
같은 12개월 동안 다음 중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을 만족시키는 인터넷 사용에서의 비순응적인 행동유형을 나타내며 임상적으로 중요한 장해 혹은 고통을 유발하는 경우를 말한다. 1. 내성 (둘 중 하나) (A) 현저히 더 많은 시간을 인터넷에서 소모해야 만족감을 얻는다 (B) 지속적으로 같은 시간을 인터넷에서 소모해도 그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 2. 금단 (다음 중 하나) (A) 특징적인 금단증상 (1) 장기간의 심한 인터넷 사용을 줄이거나 중단하였다 (2) 항목(1) 이후 수일에서 한 달 사이에 다음 중 두 항목 이상에 해당된다 (a) 정신운동성 초조 (b) 불안 (c) 인터넷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강박적으로 생각 (d) 인터넷에 대한 환상 혹은 꿈 (e) 수의적 혹은 불수의적인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 운동 (3) 항목(2)의 증상이 사회적, 직업적, 혹은 다른 중요한 기능에서 고통 혹은 장해를 유발한다 (B) 금단증상을 완화 혹은 피하기 위해 인터넷 혹은 유사 통신서비스를 사용한다
3. 의도했던 것보다 인터넷 사용을 더 자주 혹은 오래한다 4. 인터넷 사용을 줄이거나 중단하고자 지속적으로 원하거나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5. 상당한 시간을 인터넷 관련 행동에 소모한다(예, 인터넷 서적 구입, 새 웹브라우저 사용 시도, 인터넷 관련 상품판매 검색, 다운받은 파일 정리) 6. 인터넷 사용으로 인해 중요한 사회적, 직업적, 혹은 여가 활동을 감소하거나 포기했다 7. 인터넷 사용으로 인해 유발 혹은 악화된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인 신체적, 사회적, 직업적, 혹은 심리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터넷 사용이 지속된다 (수면 박탈, 부부 불화, 지각, 업무 유기, 중요한 사람으로부터 버려졌다는 느낌)
3. 위험인자와 원인
인터넷 중독에 대한 행동학적 가설은 Skinner의 조작적 조건화(operant conditioning) 현상에 기초하고 있다.
일례로 매우 수줍어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가 있을 때, 그 아이는 항상 혼자 놀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된다. 사람을 만나는 것에서부터 오는 불안을 피하는 것 자체가 그 아이한테는 일종의 보상으로 작용하여 아이의 행동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아이는 불안을 피하기 위해 다음에도 이러한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인터넷은 어떤 문제나 현실로부터 회피하게 하거나, 필요한 사랑이나 흥분, 신체적 혹은 감정적 안정을 제공한다. 같은 이치로 이러한 것들이 아이한테는 일종의 보상으로 작용하여 아이가 이러한 보상을 다시 원할 때 인터넷을 찾게 되며 악순환이 되어 중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개인이 특별히 취약한가? 스트레스-소인 가설은 특정 취약성을 가진 개인이 특정 환경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인터넷 중독이 발병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개인의 특정 취약성에 관해 아직까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자기 의존감(self-reliance)이 높고, 감정적인 감수성이나 반응 정도가 높으며, 자기 노출(self-disclosure)이 낮고 비순응적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한다.
다른 연구들에서 우울증, 양극성 장애, 불안증, 그리고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이 인터넷 중독에 빠지기 쉬우며 기존에 음식, 약물 또는 술 등에 중독되었던 사람 또한 이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영상연구에서는 뇌의 배쪽 외피 지역(ventral tegmental area)에서 중격핵(nucleus accumbens)으로 가는 도파민 관련 보상 회로(reward pathway)가 중독에 관련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4. 치료
인터넷 중독의 치료 목적은 인터넷 사용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줄여서 인터넷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있다. 치료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자신이 인터넷 중독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이 인터넷 사용을 어떻게 병적으로 하고 있는지 내성이나 금단 현상과 더불어 이해하여야 한다. 또한 이로 인해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어떠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지, 학업 면에서 얼마나 손해를 보고 있는지, 그 밖의 인생의 여러 면에서 얼마만큼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알아나가야 한다.
이는 상당히 광범위한 영역의 문제를 포괄하는 것이고 자기 조절감이나 책임감이라는 심리학적 과제를 다루는 것이다. 아이의 행동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찰은 진지하고 신뢰로운 의사-환자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 따라서 의사는 환자와 자주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면담을 진행해야 한다.
이에 반해 인터넷 중독에 빠진 환자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Murray(1996)는 의사가 환자를 다음과 같은 단계로 이끌어가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1) 환자가 자신의 과도한 인터넷 사용 패턴을 인식하여야 한다. 자신이 인터넷이나 관련된 활동으로 얼마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것이 핵심이다. (2) 자신의 기저의 문제들을 파악해야 한다. 왜 인터넷 중독이 되었는지, 다시 말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고 싶게 만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3) 환자가 자신의 문제로부터 도망가기보다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계획을 고안하고 수행하도록 한다. 즉, 문제로부터 도망가서 인터넷에 몰입하는 것이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4) 환자가 중독 자체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단계를 밟아나가도록 한다. 인터넷 사용 시간을 점차 줄여서 최종적으로는 합리적인 시간만큼만 하도록 한다.
Ahjoniemi는 이 과정을 보다 명확하게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 있다:
1. 일과를 깨트려라. 즉, 의식적으로 인터넷 사용을 다른 활동으로 대치해라. 2. 사용을 제한하라. 예를 들어, 알람시계를 사용하거나, 끝내야 할 시간을 적어서 모니터에 붙여놓고 하거나, 떠나야 할 한 시간 전에 인터넷을 시작하는 방법을 활용하라. 3. 목표를 설정해라. 인터넷을 짧게 그리고 계획에 따라 사용하도록 해라. 4. 가장 중독에 빠지게 만드는 서비스나 프로그램은 피해라. 5. 금단 증상을 체크하는 카드를 사용해라. 중독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리스트로 만들고, 중독에서 벗어났을 때 생겨나는 이점에 대해 리스트로 만들어서 기록해라. 6. 목록을 작성하라. 인터넷 중독 때문에 포기했던 것이나 시간을 적게 투자했던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라. 7. 네트워크를 활용하라. 사회적 관계, 모임을 형성하고 여가 활동을 즐겨라. 8. 개인치료, 가족치료를 활용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