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173F03174CE3838925)
전북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하오동 산촌마을. 워낙 무주군 전체가 소백산맥 서쪽 사면의 산악지역이기도 하지만 하오동은 백두대간 보호지역인 덕유산 국립공원과 인접한 만큼 자연경관이 뛰어난 마을이다. 그러면서도 대전과 통영간 중부고속도로의 덕유산 IC가 가까워 접근이 어렵지 않다. 귀농 10여 가구는 계곡 초입에서 봉화산 중턱까지 이르는 이 마을의 유일한 길을 따라 드문드문 보금자리를 틀고 있었다. 주민들이 수년에 걸쳐 직접 지었다는 집들인지라 소박하면서도 개성이 빛났다.
![](https://t1.daumcdn.net/cfile/134B75164CE383AC2A)
![](https://t1.daumcdn.net/cfile/184430164CE383BE31)
중턱까지 올라가는데 들리는 건 바람과 새 소리 뿐. 허병섭씨댁은 너른 마당에 옥수수며 오이, 토마토 등 채소류가 들풀과 마냥 어우러져 키재기를 하고 있었다. 일체 농약이나 제초제를 쓰지 않는 까닭이다. 허씨와 부인 이정진씨는 12년전 이 마을에 들어와 친환경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의 빈민운동가 ‘공목사’의 실제 모델. 땅을 사회환원 하자는 장인어른의 뜻을 받들어 최근 집 뒷편 임야 2만여평을 환경부산하 기관인 특수법인 자연환경국민신탁에게 맡겼다. 봉화산 일대 진도리는 환경부 자연생태도상 자연경관 1등급에 해당되는 지역인지라 소유권을 국민에게 넘겨 이 아름다운 환경이 훼손되지 않고 미래세대에게 물려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같은 취지를 알릴 겸한 주민 회동이 허씨댁에서 열렸고 필자도 함께 자리하게 된 것.
![](https://t1.daumcdn.net/cfile/1740E2174CE383D726)
주민들은 허씨네만 60대 일뿐, 대부분이 30~40대 부부였고 초등생들인 이들의 자녀 10여명은 가무잡잡하니 그을린 얼굴에 해맑은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건강함이 넘쳐 보였다. 이들 가정의 공통적인 특징을 꼽는다면 기존의 안주인ㆍ바깥주인 개념이 바뀌어 있다는 점이랄까. 남편들은 농사일로 집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아내들은 집 밖에서 나름대로 특색 있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이정진씨 말마따나 “귀농 전엔 실존적인 고민을 하다가 귀농 후엔 생존의 문제를 고민”하게 됐기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주민 모두 의식수준이 높고 개성이 뚜렷하다는 점도 특징이었다. 귀농 결심이나 실천을 아무나 하는 건 아닌 듯 싶었다.
![](https://t1.daumcdn.net/cfile/204E74174CE383F60E)
이 마을 어르신인 허씨는 농사 뿐 아니라 경남 함양에 있는 녹색대학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아내 이씨는 보건복지부 파견 무주 지역아동센터 아동생활지도교사로 일한다.
귀농학교 선후배 관계로 시작했다는 박창호ㆍ 박경미씨는 40대를 코 앞에 둔 귀농 11년차 부부. 경미씨는 이 지역내 다문화가족 방문지도사로도 일하고 있는데 두 아이를 홈스쿨링으로 교육하는 게 쉽지 않단다. 초기에 품었던 이상 대신 이제는 자꾸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고 했다. 자녀교육 문제는 물론이고, 돈 걱정이며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렇게 만든다고.
![](https://t1.daumcdn.net/cfile/11569A194CE3846343)
자녀가 셋이라는 40대의 안병서ㆍ김영경씨 부부는 각자 귀농을 했다가 만나 결혼하게 됐고 이 마을에 온지 9년째라는데 처음 3년간은 농사로 전혀 수익을 얻지 못하다가 4년째부터서야 조금 나아지더라면서 전업농으로만 살아가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고 토로했다. 영경씨는 무주의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글쓰기 지도교사로 일한다.
50대인 차성씨는 농촌이 좋아서 온 귀농이 아니라, 도시가 싫어서 탈출한 ‘탈경’을 한지 11년째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논농사는 아예 포기하고 텃밭만 가꾼다면서 아내는 한살림운동을 한단다.
손길수씨는 9년전 이 마을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 귀농 처녀와 결혼에 골인, 아들과 딸을 키우며 살고 있는데 아내 하윤희씨는 1주일에 두번 전주에서 약사로 일한다고.
![](https://t1.daumcdn.net/cfile/136FF5184CE385D12A)
![](https://t1.daumcdn.net/cfile/2049D6154CE385E32D)
이들 부부들은 허씨의 임야 신탁을 계기로 먼저 마을 공동체가 복원되고, 차후엔 마을 자체를 신탁해 생태체험마을화 함으로써 소득도 늘어나는 변화의 가능성을 조심스레들 짚어봤다. 마을 전체가 신탁돼 신비로운 중세풍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오면서 영화 해리포터의 배경 마을로 유명해진 영국의 라콕마을 처럼 되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물론 앞으로 많은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일이지만 하오동 사람들의 변화에 대한 갈망 또한 커보였다. 그러나 허씨의‘공수래 공수거’의식을 주민 모두가 진정 공유하게만 된다면, 환경을 지키되 발전적인 변화를 통해 보다 만족스런 귀농의 삶을 실현 한다는 게 아주 먼 일만도 아닐 듯 싶었다.
'텅 비어 있으면
남에게 아름답고
내게 고요합니다'
허씨댁 거실 벽에 붙어 있는 이 세줄의 글귀야말로 귀농 마을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원하는 바, 아름다우면서도 발전적인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