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업무차 광주를 방문하는 약속이 생기게 되었다.
서울에서 광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관계로 광주의 업무 약속 시간에 맞추어 출발시간을 잡을 것인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일찍 출발하여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교당을 방문하는 것이 어떨지 하는 갈등이 일어났다.
일단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광주에 도착하여 방문하고자 하는 교당 사정에 따라 해결하여 보자는 심정으로 출발을 했다.
광주역에 도착해 보니 11시를 가르친다.
업무 약속시간은 오후 3시라 11시부터 2시까지 약 3시간 정도의 시간여유가 있어 교당을 방문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끼어있어 교당을 방문하기에는 조금은 애매한 시간이고, 특히 월요일이라 전날 일요일 법회 등의 바쁜 일정을 보내고 쉬고 있는 교무님의 시간을 뺏는 것 같아 얼른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 멀리까지 다시 시간을 내어 방문을 하는 것 보다는 일단 광주역에서 가장 가까운 교당을 방문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교구에 연락을 하여 물어보니 중흥교당이라고 한다.
중흥교당의 연락처를 확인하여 전화를 하고 교당을 방문해도 좋을 것인지를 이야기하니 교무님께서 방문을 허락하신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55AE0F4B619CAC75)
![](https://t1.daumcdn.net/cfile/cafe/1855AE0F4B619CAF76)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는 교당 모습)
초행길이라 택시를 타고 가르쳐준 방향으로 교당을 찾아가니 길가에 중흥교당의 푯말이 세워져 있다.
골목길내의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는 교당은 외부적으로는 신축한지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는 건물처럼 보인다.
건물 입구에 여러개의 원내로 處處佛像 事事佛供 이라고 새겨 놓은 것이 이채롭다.
교무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어 미안한 마음으로 외부로 식사를 함께 하실 것을 말씀 드리니 간단한 찬이라도 교당에서 함께 식사를 할 것을 권유하여 염치없이 교무님과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본 교당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어머님의 신심에 의하여 교당의 설립을 염원하였고, 교도회장이었던 아버님과 아들의 협동심에 의하여 교당을 이루게 되었으며, 이후 다시 손자가 교도 회장을 역임하면서 한 교당에서 일원가족으로 삼대를 이어가는 주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75910B4B619D26A1)
![](https://t1.daumcdn.net/cfile/cafe/1575910B4B619D27A2)
![](https://t1.daumcdn.net/cfile/cafe/1775910B4B619D28A3)
(2층의 대법당 모습)
아버님인 김광천 교도회장의 부인인 기여천 주무는 원기 38년 입교하여 공무원의 아내로 남편의 잦은 전근에 의하여 안착된 생활을 하지 못하다가 원기 59년 부군이 영암군수로 발령이 되면서 초창기 영암교당의 주인이 되어 정진을 계속 하던 중 다시 광주로 생활터를 옮기면서 광주교당으로 법회를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거주하는 가까운 지역에 교당을 설립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4년간의 기도를 통하여 모은 돈으로 전셋집을 얻어 원기 66년 2월에 신설봉불식을 하며 창립주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셋집으로는 여기 저기 이사를 다녀야 하는 관계로 어떻게든 내 교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특별한 서원과 노력에 따라 부군과 아들이 이에 적극 참여하여 교도들과 합심해서 일반 가옥을 매입하고 법당으로 개축을 하였다고 한다.
창립주였던 기여천 법사는 원기 80년(1985년) 65세로 숙환에 의하여 열반을 하였다.
그 당시 대산 종법사는 “항하수 맑은 물에 천수 만수하고, 하늘같이 큰 도 땅같이 큰 덕을 세세생생 성취하오리, 그 서원 진리는 감응하리.”라는 법문을 내려 주셨다고 한다.
이후 현 건물은 원기 83년(1998년)에 신축 공사에 의하여 지어지게 되었는데 이때에도 기여천 법사의 손자인 현재의 김현제 교도회장이 주축이 되어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축 당시에는 교도수도 많지 않았고 이에 반하여 너무 교당을 크게 짓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과 함께 신축자금을 마련하는데 많은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대지 면적에 맞추어 여유 공간 없이 1층으로는 소법당과 생활관을 만들고, 2층으로 대법당을 만들었으나 시간의 지남에 따라 현재는 많은 교도님들이 회의하는 장소나 청소년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없어 이를 어떻게 해결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2C13054B619D9528)
(1층의 소법당 모습)
본 교당의 두 번째 특징으로는 광주에서 본 교당이 전남대 학생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전남대학생회(이하 전원회)는 중흥교당이 전남대와 가까운 관계로 원기 79년부터 이도기 교무가 전원회의 담임교무를 맡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원회원들을 위하여 교당에 모임방을 마련하고 회원들이 언제든지 사용하도록 배려를 하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핌에 따라 대학생들이 교당 청소년 들을 대상으로 다시 공부방을 개설하고 과외지도를 하면서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후배들에게 보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원회는 지속적으로 중흥교당의 교무님 지도를 통하여 대학생 종교 동아리의 활동을 하고 있는데 바람직하게는 좀 더 많은 대학생들이 전원회에 가입을 하여 교당과의 연계를 통하여 대학생 교화의 활성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이다.
원기 100년의 비전과 같이 본 교당이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거나 증축을 통하여 더 넓은 교화의 터전을 마련하여 대학생교화와 함께 오백명 이상의 교도들이 함께 하는 교화의 현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중흥교당의 일원가족 사랑이 대를 이어가면서 많은 가족들이 함께 하는 교당으로 발전하였으면 한다.
아무 준비 없이 불쑥 찾아온 교도를 위하여 소중한 시간을 배려하여 주신 교무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
방문일자 : 2010년 1월 25일(월)
작성일자 : 2010년 1월 28일(목)
교당주소 :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2동 349-16 (전화 : 062-529-4016)
대담 : 김선영 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