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주자 지위 굳힌 이재명…한동훈 정치 운명은 안갯속
입력2024.04.10. 오후 9:21 수정2024.04.10. 오후 9:25
野 주도권 휘어잡은 李
비명횡사 공천 파동에도 압승
'혁신공천' 주장, 정당성 확보
13兆 '국민 민생회복지원금' 등
포퓰리즘 정책 더 밀어붙일 듯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총선 개표 상황실 앞에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본 뒤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최혁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4·10 총선 압승이 예상되면서 이재명 대표는 야권 유력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확고하게
다지게 됐다. 200석에 가까운 의석을 거느린 거대 야당 당수로서 국내 정치권에서 갖는 영향력은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막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10일 오후 발표된 방송 3사(KBS MBC SBS) 공동 출구조사에서 민주당은 최대 197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대표는 출구조사 결과 발표 직후 국회 개표상황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 선택을
겸허한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지켜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계양으로
이동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총선 압승으로 거머쥔 입법 권력을 등에 업고 차기 대권을 노린 행보에 나설 것
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총선 과정에서 주장한 13조원 규모의 전 국민 민생회복지원금(1인당 25만원) 지급
등 포퓰리즘 색채의 정책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대선 간판 공약이던 ‘기본사회’
논의를 전면에 띄울 가능성도 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대표는 집권 여당에
더욱 날을 세우고 존재감을 부각하면서 대권가도로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불과 6개월여 전까지만 해도 당 안팎에서 사퇴 압박을 받았다. 민주당 주류 세력인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중심의 친문(친문재인)·비명(비이재명)계로부터 대표직에서 물러나라는 요구를
받았다. 비명계는 “사법 리스크를 짊어진 채 재판을 다니면서 총선을 지휘할 순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끝까지 버텼고, 그런 비명계를 향해 매서운 공천 칼날을 휘둘렀다. 대신 ‘대장동 사건’
변호인단과 경기도·성남시 인맥의 원외 친명 인사들을 텃밭 곳곳에 배치했다.
정치권에서는 비명횡사 공천 파동을 놓고 “이 대표가 정치적 명운을 걸고 승부수를 던졌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비명횡사 공천이 총선 패배로 이어지면 이 대표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위축되겠지만,
반대 결과가 나오면 이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사당화를 완성할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결과는 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된다. 비명횡사 공천 파동에도 민주당이 압도적 의석을 가져가면서
이 대표는 ‘혁신 공천’으로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는 당위성을 확보하게 됐다. 야권 관계자는 “이 대표의
공천이 총선 승리를 위한 ‘혁신 공천’이었다는 정당성이 선거 결과로 인정받게 됐다”며 “명실상부한
‘이재명당’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배임 등의 혐의를 받는 대장동 사건 등을 놓고도 ‘정치검찰의 정적 탄압’이라는 프레임을
더 강하게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표 등을 변호해 온 변호사들이 배지를 달게 된 만큼 이들이
‘스피커’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이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10석 이상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는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 등 야권 잠룡에 대한 견제 움직임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적 입지 쪼그라든 韓
'마지노선' 120~130석 붕괴…사실상 '퇴장' 가능성 높아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제22대 총선 개표 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한 뒤 발언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하면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사실상 정치권에서 퇴장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당 안팎에선 총선 사령탑인 한 위원장이 선거 이후에도 정치 행보를 이어가려면
국민의힘이 120~130석 정도는 얻어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다. 의석수가 이 같은 ‘마지노선’에 크게 미치지
못하면서 한 위원장은 ‘패장’으로 남을 위기에 처했다. 그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 국민의힘은
곧바로 새 지도부 구성에 나서야 한다.
한 위원장 취임 초기만 해도 보수 진영에서는 ‘한동훈 효과’가 나타났다. 그는 정치 신인으로서 사심 없이
선거 승리를 진두지휘하겠다며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다. 여당 지지율이 급격히 오르며 한때 국민의힘이
제1당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면
한 위원장은 단숨에 차기 대권 후보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 위원장이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은 ‘정부 심판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국정 지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검찰 출신이라는 점도 민심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기대 이하 성적표를 받아든 한 위원장의 정치적 입지는 급격히 쪼그라들게 됐다.
국민의힘은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체제로 선거를 이끈 더불어민주당과 달리 ‘원톱 체제’로 선거를 치렀다.
지도체제 구조상 당내에선 선거 패배의 책임을 한 위원장이 오롯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선 한 위원장이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은 것도 향후 정치 행보가 쉽지 않은 이유로 꼽는다.
그는 ‘사천(私薦)’ 논란을 봉쇄하기 위해 초기부터 시스템 공천을 강조해 왔다. 일부 비대위원이 당선권
비례대표 후보로 이름을 올렸지만 ‘한동훈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인연이 깊지 않다.
여당 관계자는 “많은 정치 리더가 비난을 무릅쓰고 유리한 지역구를 택하거나 비례 앞번호를 받아내는
것도 결국 원내에 진입해야 정치 생명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며 “사심 없는 공천을 강조하려
한 일이지만 정치인으로서의 기회를 놓치는 결과로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에 재출마하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자신을 비례 2번(남자 1번)에 배치해 원내 입성에 성공했다. 배수진을 친 한 위원장은 원내
진입에도 실패해 재도약할 기회마저 놓쳤다는 평가다.
한 위원장이 선거 승패와 관계없이 유학을 떠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총선 후 유학설’엔
수차례 선을 그은 바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사실상 조기 레임덕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진 점을 고려하면 운신의 폭은 제한적”이라며 “재기 기회가 찾아올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국 대표는 이날 국회 입성 후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재차 밝혔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