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무과 관직에 대해
1. 무과시험에서 갑과 수석을 한 사람은 초임 품계가 종6품, 갑과 나머지 두명은 정7품, 을과 합격자 5~7명은 정8품, 병과 합격자는 9품이 수여되었다고 합니다.
2. 합격 순위에 따라 관직이 달라집니다.
종6품 - 절제도위(節制都尉), 종사관(從事官), 부장(部將), 부사과(副司果), 수문장(守門將=종九품까지 있음) 등
정7품 - 참군(參軍), 좌부솔(左副率), 우부솔(右副率), 수문장(守門將) 등
종7품 - 좌종사(左從史), 우종사(右從史), 부사정(副司正) 등
정8품 - 좌시직(左侍直), 우시직(右侍直), 별검(別檢=종八품까지 있음) 등종8품 - 별검(別檢), 부사맹(副司猛) 등
정9품 - 좌세마(左洗馬), 우세마(右洗馬), 사용(司勇) 등
종9품 - 권관(權管), 부사용(副司勇), 초관(哨官) 등
이순신 장군은 병과 4등으로 전체 합격자 29명 중 12등으로 첫 벼슬은 권관이었습니다.
3. 내금위는 임금을 호위하는 부대인데 무과시험에 합격한 후 바로 들어갈수도 있겠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닐겁니다.
4. 내금위의 장교 중 하나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5. 조선의 경우 무보다 문을 숭상하는 나라인데 음서에 해당하는 공신 또는 고위관리의 자제가 무관직을 원하지는 않았겠죠. 또한 음서에 해당하는 이는 바로 고위직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음서로 벼슬을 시작하는 시기가 대부분 15세 무렵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