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이에게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그가 한세대학교 졸업반이었던 2014 시즌에 벌어졌던 '청원생명쌀배' 현대파워텍과의 결승전부터였다. 이전에도 '현역 최고의 좌수비'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으나 이 경기를 보고 '이래서 최고의 좌수비라고 하는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3세트 초중반 상대 공격수 강만규의 뛰어차기 공격이 큰 바운드와 함께 날아가고 있었다. A킥을 대비한 우수비 박성호가 이를 받아내기 위해 돌아갔으나 공은 이미 박성호의 머리 위를 넘어갔다. 누가 봐도 무조건 득점이라고 생각했던 상황, 그런데 박성호의 뒤를 돌아 신진이가 이 공을 받아내었다. 그동안 내 머릿속에서 나름 정리되어 있었던 좌수비의 수비 영역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순간이었다. 넓은 수비 범위와 공을 받을 때, 마치 양발 모두가 자기 발인 것처럼 사용하는 안정감까지 그야말로 무결점의 좌수비의 모습이었다. 비록 경기는 패했지만 이 경기는 나에게 신진이라는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경기였다. ☞관련영상보기
2014 시즌 한세대학교의 라인업은 신진이와 함께 공격수 이태호, 세터 박정철, 우수비 박성호로 꾸려졌다. 시즌 전 이들에 대한 평가는 이랬다. '역대 한세대학교 팀 중 가장 전력이 약한 라인업 중 하나다.' 게다가 2013년 학교 내부 사정으로 감독 교체 등으로 여론이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 맞이했던 시즌이었기에 한세대학교는 시즌 시작 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세간의 평가를 비웃듯이 당시 우승 3회, 준우승 4회의 성적으로 당당히 시즌 랭킹 1위를 차지했다. 한세대학교의 황금기에는 항상 안정된 수비라인이 뒷받침되었었는데 이 당시 한세대학교가 혹평을 받았음에도 랭킹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신진이를 중심으로 한 막강한 수비라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임종일, 김동휘 그리고 신진이...
일반 동호회에서 족구를 처음으로 시작하는 이들에게 맡기는 포지션은-팀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대부분 좌수비이다. 일반 동호회에서 좌수비에게 강공을 찰 수 있는 공격수가 많지 않다 보니 초보자들에게 맡기기 가장 좋은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인들에게 좌수비는 세터와 함께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포지션이다. 공격수의 화려함도 우수비의 허슬플레이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좌수비에는 기억에 남는 스타플레이어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눈에 띄는 대형 좌수비는 있었다. 과거 여상수와 함께 현대자동차 족구단의 최강 수비라인을 구축했던 임종일, 한세대학교가 창단 후 처음으로 랭킹 1위에 올랐을 때, 좌측 라인을 든든히 지켜내었고, 현대파워텍의 제2의 전성기의 주축이었던 김동휘 그리고 이번 칼럼에서 소개할 신진이가 그렇다. 이들이 대형 좌수비로 기억에 남는다는 것은 이들이 바로 '최고의 좌수비 계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포지션일지는 모르나 사실 좌수비의 능력이 그 팀의 수비 능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좌수비의 능력은 정말 중요하다. A킥을 대비한 우수비가 돌아간 빈자리를 채워주어야 하는 역할, 공격수의 수비를 커버해 주는 역할은 물론 전위에서 잡을 수 없는 긴 연타 혹은 페인트와 각 깊은 비껴차기 공격까지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네트를 기준으로 4명의 선수 중 가장 뒤에 서있는 포지션이기에 팀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의정부의 소년, 족구계에 발을 들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렇지만 신진이 역시 얼떨결에 족구를 시작했다. 고교시절(의정부공고) 졸업생 동문들이 학교에 족구동아리를 창단했는데 모집 공고에 '가입 시 족구화는 무료증정'이라는 문구에 혹해서 지원을 했다.
사실 족구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래 친구들과 공 차고 노는 것을 좋아했는데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부모님께 축구화를 사달라고 말씀드리기는 죄송스러워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족구화를 무료로 준다는 문구를 보고 족구화를 검색해보니 족구화가 풋살화랑 비슷하게 생겼더라고요. 그래서 '이것만 받으면 축구할 때 신을 수 있겠다' 싶어 지원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다르게 가입 즉시 족구화를 주지는 않았고 족구를 조금 더 해야 준다는 말에 조금 실망하기는 했지만 '공짜 족구화를 반드시 받고야 말겠어'라는 일념 하나로 족구를 시작했는데 그 과정 중에 좋은 분들도 만나고 대학 진학의 기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족구에 빠진 것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수비수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족구의 꽃은 공격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공격수를 하려고 했는데 다리가 네트 위로 올라가지 않아 과감히 포기하고 세터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못하기도 했고 오다리가 심해 제기차기가 잘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웃음) 마침 함께 운동을 한 친구가 수비에 자신이 없어해서 자연스럽게 우수비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냅다 뛰는 건 자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대의 리시브한 공이 네트에 붙으면 무조건 뛰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좌수비와 우수비 사이의 공간은 항상 하이패스였습니다.(웃음) 그렇게 놓치는 공들이 많아지다 보니 승부욕이 생겼고, 하나하나 보완될 때마다 희열을 느낀 부분들이 지금까지 계속 수비수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세대학교 NO. 17
그렇게 족구를 시작한 신진이는 2008년 전국생활체육대축전에 경기도 청소년부 선수로 착출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타 부서의 경기도 대표로 참가한 한세대학교 선수들을 직접 만나게 되었다.
영상에서만 보았던 선수들을 실제로 보았을 때의 느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그날 느꼈던 그 감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강승호 감독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이광재 선배의 화려한 넘어차기, 강성준 선배의 흔들림 없는 일정한 토스, 정인재 선배의 안정된 터치, 권혁진 선배의 다이내믹한 수비를 보면서 저도 저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족구를 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신진이는 한세대학교에 지원을 했다.
한세대학교 족구특기생 전형은 학생부(성적) 20%, 면접 30%, 족구 실기 50%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부 20%는 그냥 말아먹었다고 생각했고, 나머지 면접과 실기에서 이를 만회해보려고 했습니다. 학교가 기독교 재단이었고, 족구선수들은 신학부 소속의 스포츠선교학과로 입학하기 때문에 면접은 종교 및 교회에 관련된 질문들이었습니다.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기 때문에 면접은 막힘없이 대답해서 '이 정도면 합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족구 실기를 완전히 말아먹었습니다. 야구배트로 공중볼을 10번씩 쳐서 받는 테스트에서는 공을 모두 바닥에 떨어뜨렸고, 이후 제기차기 및 안축받기는 원하는 대로 볼 컨트롤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 기능 점검에서 우수비와 좌수비를 번갈아가면서 봤는데 서브 리시브를 빼고는 모든 공격을 받지 못했습니다. '합격은 물 건너갔구나'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정말 의외로 합격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감독님께서 가능성을 보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후 후배들이 선발되는 방식을 보면서 알게 되었지만 한세대학교는 입학 기준은 있지만 실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입학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고, 감독님도 항상 이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보면 감독님이 보시기에 제가 그나마 깨끗한 스케치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웃음)
신진이가 입학했을 당시 한세대학교의 라인업은 최강부 이광재, 이승호, 권혁진, 정인재 / 일반부 박수훈, 강성준, 김도현, 신진이였다. 선수단이 정확히 8명이었기에 신진이는 1학년부터 주전으로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교시절 크게 이름을 떨치지 못했던 신진이는 냉정하게 말해 한세대학교의 유니폼이 어울릴 정도의 기량을 갖춘 상태는 아니었다.
한세대학교는 방학때, 공을 가지고 훈련하지 않습니다. 오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에는 기초체력 및 단체훈련을 진행했기 때문에 저녁이 되어야 그나마 공을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이었던 저로서는 어떻게 팀에 녹아들어야 하나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덧 시즌 개막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일반부 주장이었던 (강)성준 선배는 졸업반이었고 취업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시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과 함께 팀이 이루어져 조바심이 났는지 저를 불러 다른 선배들이 모두 보는 상황에서 제기차기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한 번 차고 공을 떨어뜨렸습니다. 당시 선배들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날이 저에게는 아마도 터닝포인트와 같았던 날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아침부터 저녁까지 족구 생각만 하고 실력 향상을 위해 애썼습니다. 선배들에게 들었던 질책들과 가르침들이 마음을 울릴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서러워 혼자 있을 때 울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냥 그 자리에서 계속 버티고 버텼습니다. 그때 느꼈던 서러움, 아픔, 희열, 성취감들이 하나하나 모여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조이킥스포츠의 이광재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진이는 제가 4학년으로 복학했을 때 신입생이었습니다. 왜소한 체격에 실력도 그저 그래서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신입생이었습니다. 운동보다는 선배들의 뒤치다꺼리만 하는 후배 선수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러다 학교를 그만두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웃음) 그런데 정말 엄청난 반전이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실력이 일취월장하더니 졸업 후 제가 삼성전자 소속 선수로 상대하는데 제 머릿속에 있었던 약한 모습의 신입생이 아닌 정상급 수비수로 성장해 있어서 정말 놀랐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던 신입생, 하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며 2009년 논산병영체험기 전국초청 족구대회 일반부 우승을 시작으로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졸업할 때는 당당히 팀의 주장으로서 한세대학교의 마지막 황금기를 보내며 화려하게 활동을 마무리했다.
하이트진로음료 입단
대학 졸업 후 신인드래프트가 있었다면 수비수로서는 단연 최대어였던 신진이에게 하이트진로음료에서 손을 내밀었다. 당시 회사 내부에서 조직 개편 등으로 T/O가 생겨 신진이를 비롯해 당시 세신버팔로의 장한빈과 박성진까지 영입하며 초호화 라인업을 구축했다. 무엇보다도 당대 최고의 공격수 장한빈과 최고의 좌수비 신진이의 조합이 어떠한 시너지 효과가 나올지 상당히 기대되었다.
그렇게 맞이한 2015시즌, 비록 첫 대회에서는 새로운 라인업의 조직력이 갖춰지지 않아 고전했지만 시즌 두 번째 대회였던 '문체부장관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하이트진로음료의 독주가 시작되었다. 2015 시즌 벌어졌던 총 11개 대회에서 5개 대회의 우승컵을 가져가며 시즌 랭킹 1위에 올랐고, 2016 시즌 대부분의 대회를 우승하며 하이트진로음료의 전성시대를 맞이하였다.
조이킥스포츠와 연합
하지만 이 전성시대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장한빈의 이적과 회사의 근무형태가 탄력적으로 변해 예전처럼 집중도 있는 팀 운영이 쉽지 않았고 선수단을 구성하기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이에 하이트진로음료의 신동민 감독은 조이킥스포츠와 연합하여 팀을 꾸려보는 것이 어떤지 제안을 했다.
처음엔 그저 가벼운 이야기로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미 조이킥스포츠와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성적에 부담을 가지고 뛰는 회사 팀보다는 대학 동문 선배들과 함께 부담 없이 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고, 마침 조이킥스포츠에서도 선수 구성에 T/O가 생겨 (임)상욱 선배와 함께 조이킥스포츠의 멤버가 되었습니다.
이후 조이킥스포츠에서 이광재, 임상욱, 김광훈과 한 팀에서 뛰기 시작했다. 김광훈과 포지션이 겹치며 조금은 다른 옷을 입은 것 같은 우수비 신진이의 모습을 보게 되었지만 우수비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고 각종 대회 입상 및 트로피를 가져오며 강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임상욱과 김광훈이 각자 가정사로 인해 더 이상 족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며, 이들의 빈자리는 강성준과 권혁진이 메우게 되었다. 이때 신진이는 족구를 그만두려고 결심하고 있었다.
조이킥스포츠에서 성적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예상보다 좋은 성적도 거두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이제 그만두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계속된 소속팀 그리고 구성원들의 변경과 혼자만 청주에 떨어져 있다 보니 연습도 안되고 대회장에 혼자 다니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 마음 한구석 이제 그만 내려놓아도 된다는 건방진(?)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심신이 지쳐 그냥 쉬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상욱 선배와 진지하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선배는 건방져진 제 마음을 많이 질책하였고, 선배 시선에서 잘못된 부분을 많이 지적해 주었는데 그것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세대학교 카페에 들어가 예전 사진들을 둘러보았는데 카페 게시판에 2008년 경기도 대축전 당시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 사진에는 현재 조이킥 팀원들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본 순간 08년 한세대 진학 준비를 할 당시 그 선배들은 저의 목표이자 선망의 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제 모습을 돌아보니 초심을 잃고 건방져 있는 제 모습을 느끼며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였습니다. 그 후 '조이킥 팀의 일원으로서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감사함을 느끼자'라고 생각하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흔들릴 때마다 속에서 되새김질하며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조이킥스포츠는 현 최강부 팀 중 평균 연령이 가장 높은 팀이다. 하지만 여전히 최강부에서 강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신진이 역시 팀의 최후의 보루 좌수비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그도 어느덧 30줄에 접어들었다. 작은 키였지만 코트 위에서 재빠르게 영리하게 상대 공격수들과 수싸움을 하며 최고의 수비수로 성장한 그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기상천외한 수로 '톰'을 골탕 먹였던 '제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언젠가 그도 최강부에서 내려오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앞으로 그의 앞날을 알 수는 없지만 되도록 조금은 더 오랫동안 지금처럼 좌측 라인을 든든하게 지켜내는 '제리' 신진이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신진이와 1문 1답
Q. 본인 소개?
A. 현재 하이트진로음료의 품질 업무팀에 근무하고 있는 신진이입니다. 1990년 4월 14일 생이고, 가족으로는 어머니, 누나, 쌍둥이 형이 있습니다.
Q. 한세대학교 시절 재미있는 에피소드? 혹은 불화가 있었다면?
A. 선배들과 불화는 없었습니다. 원래 질서가 잘 잡혀 있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대들면 맞을 것 같았습니다.(웃음) 재미있는 에피소드라면, 당시에는 정말 심각했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당시 제가 3학년이었는데 신입생이었던 (김)태환이랑 (심)강국이가 가출을 했습니다. 그날이 학교에 예비군 훈련이 있어서 군필 선배들은 거기에 참석했고, 나머지 선수들은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그날 감독님께 전화가 와서 '애들 어디 있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당연히 수업 중이라고 생각해서 '수업 중일 것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는데 애들이 가출한 것 같으니 숙소에 가서 짐을 확인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예비군 훈련에 참가한 선배들도 계속 저한테 전화해서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가보니 둘 다 각자 필요한 짐만 꾸려서 숙소를 뛰쳐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 뛰쳐나갔지만 나가보니 막상 할 건 없고, 겁은 나고 그랬다고 합니다. 나중에 부모님들이 잘 설득하여 돌아왔는데 후배들도 반성하며 감독님과 선배들에게 죄송하다고 인사하고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도 가끔 마음속으로만 꿈꿔왔던 행동이었는데 먼저 행동으로 보여준 후배들이 대단하다고 느끼긴 했습니다. 아무튼 그 후 큰 탈 없이 다시 적응하였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좀 황당하고 어이없었지만 지금은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태환아! 강국아! 미안하다!(웃음)
Q. 한세대학교를 졸업했을 때 기분은?
A. 시원섭섭했습니다. 한세대에 입학하고 열심히 해서 졸업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성인이 되어 6년간 몸담았던 곳을 떠나는 순간 기대, 설렘, 긴장 등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족구가 행정적으로 좀 더 발전되었거나 학교 측에서 조금만 더 족구단에 관심을 가져주어 후배들이 진학을 하고 동문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했지만 (이)태호 이후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했고, 재학 당시 한세대에 지원하려고 했었던 후배들의 입학을 도와주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립니다. 주장으로서 부담감과 책임감, 그리고 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꾸기 위해 후배들에게 너무 몰아치지는 않았나라는 생각도 들면서 아무튼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Q. 새로운 둥지 하이트진로음료에 입사했는데 마음이 어땠는지?
A. 일단 경제적인 활동을 하면서 족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속으로 든든함이 생겼습니다.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팀에 제가 들어가서 무언가 활약할 수 있다는 것에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었습니다. 솔직히 면접 몇 주전까지만 해도 저 혼자 입사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장)한빈이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박)성진이랑 같이 면접을 보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항상 상대팀에서만 만났던 선수들과 같은 회사, 같은 팀에서 함께 한다는 사실이 기대가 되었습니다.
Q.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A. 기억에 남는 경기 많습니다. 먼저 한세대학교 시절 '2014년 문체부장관기', 2013년 한세대 내부 사정으로 감독님이 교체되었고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세대학교는 여전히 굳건하다'는 이미지를 다시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타이트함을 주문했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감독님께 꼭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겨드리고 싶었는데 서로 마음이 통해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이트진로음료 시절에는 '2017년 향수옥천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2016년 마지막 대회에서 당시 쌍둥이 형제가 뛰고 있었던 유영산업에 발목을 잡혀 준우승을 했는데 이후 2017년 대회에서도 계속해서 졌습니다. 같은 팀에 계속된 패배가 이어지다 보니 팀 분위기도 좋지 않았고 선수들 간에 내심 불만도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대회에서 처음으로 그들에게 이기고 우승을 차지하며 서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이킥스포츠로 활동하고 있을 당시 2019년 청양에서 개최되었던 대한민국족구협회장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솔직히 제가 우수비를 하는 것은 도저히 민폐인 것 같아서 우수비를 빨리 구하자고 선배들에게 요청을 하였고, 정말 마지막으로 우수비로 출전을 하려던 대회였습니다. 우승후보와 예선에서 같은 조였고, 본선 토너먼트에서 다시 그들을 만났습니다. 8강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시는 분이 '이제 짐 싸서 집에 가야지'라고 농담 삼아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 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습니다. 8강, 4강, 결승까지 서로의 간절함이 잘 맞아떨어져 우리의 간절함을 이루어 준 대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Q.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
A. 한세대학교 재학 시절 2010년, 2011년 방송대회에 출전하였습니다. 2010년에 출전한 대회는 제3회 소양강배였는데 기라성 같았던 1기 선배들이 졸업한 이후 첫 번째 방송 대회였습니다. 당시 선배들이 취업한 광주 삼성전자와 한빈이가 있었던 창신대학과 같은 조에 편성되었는데 2전 전패로 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이듬해 벌어진 sbs족구최강전에서는 본선 토너먼트에서 넥센타이어에 패하며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이후 졸업할 때까지 방송대회의 기회가 없었고, 재직 중에도 방송대회의 편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쉽게 오지 않는 기회였는데 준비도 소홀했고 결과물도 얻어오지 못해 지금까지 가장 아쉽고 후회되는 대회로 기억납니다.
Q. 같은 포지션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선수는?
A. 김광훈 선수입니다. 동갑이고 포지션도 같고 더구나 취업 시기까지 겹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친구보다 더 부각되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먼저 삼성전자에 취업해 주어서 개인적으로 정말 고마웠습니다.(웃음) 경기하는 것을 볼 때마다 항상 느끼지만 기복이 없고, 꾸준하게 일정하게 단단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러 부분에서 좋은 자극제가 되어준 선수입니다. 그런데 아마 광훈이는 저를 라이벌로 생각조차 안 했을 것 같습니다.(웃음)
Q. 롤모델로 꼽는 선수가 있다면?
A. 타 채널 인터뷰에서 이분들을 언급하지 못해서 내심 아쉬웠습니다. 바로 현대자동차의 여상수, 임종일 선배님입니다. 두 분을 보며 자극을 많이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낮은 볼임에도 불구하고 헤딩을 자주 하십니다. 경기 중 다리는 절대 쉬지 않으시고 파이팅도 꾸준하시고 본인들이 어렵고 힘들게 경기에 임하시면서 팀원들을 최고로 만들어 주시려는 그 모습이 항상 귀감이 되었습니다. 노장 수비수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는데 연세가 있으심에도 아들뻘 되는 선수들과 최강부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에 정말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Q.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공격수는?
A. 부산 일등가의 장한빈 선수입니다. 일단 잘합니다. 그리고 여우 같고 이상하게 저를 너무 잘 압니다. 아니면 제가 너무 잘 속았던 것일 수도 있고요. 공격수와 수비수는 서로에게 상성이 있는데 한빈이와 저는 제가 상성상 불리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짜증 나는 선수였습니다.(웃음) 나중에 하이트진로음료에서 한솥밥을 먹게 되었는데 솔직히 한빈이랑 상대할 일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조이킥스포츠에 오고 나서 또 붙었는데 여기서도 상대전적이 조금 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웃음)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A. 족구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 항상 감사한 마음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미래 '족구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제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항상 생각합니다. 그 첫 단계가 스포츠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여 족구 훈련 코치의 역할을 해보고 싶습니다. 강습이 기술 습득 부분의 향상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면 코치는 팀원들의 개인 기량이나 팀의 전술, 실전 경기 대비 등에 맞추어 필요한 부분을 세분화하여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도하고 연구하여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선수 및 팀 운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확실한 목표는 아니지만 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하나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Q. 족구 이외의 또 다른 취미가 있다면?
A. 경제적인 수입이 생기고 수영을 접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못한 지 2년이 넘었는데 잘하진 못해도 엄청난 운동량과 상쾌함이 주는 쾌감을 잊지 못해 시간이 되면 수영장을 찾습니다. 가끔 온라인게임도 합니다. 온라인 게임을 하다 보면 요즘 세대의 트렌드를 조금은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젊어지고 싶어서 그런가 봅니다.(웃음) 그 외에는 금융상품 및 재테크에 관심이 생겨 관련 서적을 읽거나 영상들을 자주 시청하고 있습니다.
Q.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인지?
A. 제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 결혼을 했습니다. 이제 슬슬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급하게 진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결혼을 해야 하니깐 하는 것은 싫습니다.
Q. 족구를 하면서 감사했던 분들이 계시다면?
A. 감사한 분들 너무 많습니다. 한세대학교 입학 전 족구를 하게 도와주셨던 동문 선배님들 그리고 당시 의정부 족구 생활체육연합회 임원 분들 이하 회원님들, 소속 동호회(청호, 천보 등) 분들께 너무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와 친구들을 위해 밥 사주시고, 족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금전적인 지원까지 아끼지 않아 주신 그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취업 후 안정이 되면 자주 찾아가 받은 은혜를 갚겠노라 마음먹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이 자리를 빌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외에도 가족과도 같은 한세대 동문들 모두와 항상 응원의 메시지를 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많은 분들, 마지막으로 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찾아가는 동호회나 타 지역에서 대단하게 대접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한 분 한 분 모두 성함을 불러드리고 싶지만 혹시나 빼먹는 분들이 있을까 봐 한 번에 말씀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Q. 한세대 동문 중 특히 임상욱 선수와는 아내 분께서 질투(?)를 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인 것 같은데 어떤 사이인지?
A. 제가 처음으로 입사를 하면서 자취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너무나 감사하게 상욱 선배가 방이 하나 남으니 경제적 기반이 될 때까지 같이 지내자고 먼저 제의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하필이면 지금의 형수님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눈빛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그런 시기였는데 전 혼자였습니다.(웃음) 형수님이 데이트하러 놀러 왔을 때 제가 늘 있었는데도 불편한 티 하나 없이 오히려 저도 잘 챙겨주셨습니다. 질투(?)한 부분은 형수님보다 제가 상욱 선배랑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질투(?)를 하셨다면 하셨을까요? 딱히 질투를 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웃음) 생색내는 건 아닌데 상욱 선배 결혼식 때 적은 금액이기는 했지만 선배보다 형수님한테 축의금을 더 많이 했습니다.(웃음)
Q. 제2, 제3의 신진이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A. 본인이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족구를 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들을 해놓고 족구를 하는 것은 권합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하기 싫은 것은 공부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엇인가가 될 수도 있겠죠. 본인이 학생이라면 학생의 본분을 다 하고 족구를 해야 하고, 직장인이라면 직장에서의 역할을 다 하고 족구를 해야 합니다. 족구 선수로서는 본인만의 특색 있는 색깔을 부각할 수 있는, 남들이 보았을 때, 저 선수는 저 선수만의 색깔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가꾸어 나간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Q. 실력 향상에 애를 먹고 있는 동호인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A. 한세대 재학 시절 대회에 나갔다 오면 항상 피드백을 작성하였습니다. 뚜렷한 형식은 없이 자신이 부족한 부분, 패배한 원인, 승리한 원인에 대해 각자의 시선에서 서술하고 감독님과 동료 선수들과 공유하고 보관했습니다. 본인이 깨달은 것이나 느낀 것들은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간단히 서술하고 나중에 계속 되새겨 보는 과정들을 되풀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영상시스템도 잘 되어 있으니 본인의 모습을 직접 촬영하여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본인의 부족한 부분과 보완해야 하는 부분들을 찾아내어 다듬어 가면 실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Q. 신진이에게 '족구'란?
A. 저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매개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학창 시절 신진이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뭐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요. 족구를 접하고 보이는 길과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왔을 뿐인데 제게 너무 많은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신진이를 말하는 사람들...
이광재(조이킥스포츠) 졸업 후 진이가 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언제 진이와 같은 수비수와 같이 뛸 수 있을까' 했는데 지금은 현실이 되어서 너무 좋고 저의 선수생명을 연장시켜 준 너무 고마운 후배입니다. 진이는 저희 조이킥 팀 전력의 70%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랑 혁진이 성준이가 각각 10%씩 담당하고 있죠.
강성준(조이킥스포츠) 덥수룩한 머리에 담요 하나 들고 왔던 모습이 진이의 첫인상이었습니다. 왜소한 체격에 족구 실력도 그저 그랬던 후배였지만 누구보다 악바리였고 힘들다고 내색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최고의 좌수비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말 대견하고 뿌듯합니다.
권혁진(조이킥스포츠) 제 기억 속에는 항상 막내였지만 지금은 본받아야 할 선수라고 정의하고 싶은 선수입니다. 제가 졸업반이었을 때 진이가 신입생으로 입학했기 때문에 졸업한 이후에도 진이는 마냥 어린 막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전국 최고의 좌수비가 되었으니까요. 현재 같은 팀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함께 뛰어보니 이 선수가 왜 전국 최고의 좌수비인지 더욱 실감할 수 있습니다. 상대 공격수의 모션, 패턴, 경기 흐름을 빠르게 읽고 적응합니다. 거기에 순발력까지 좋고, 공에 대한 근성, 집착이 대단해서 못 잡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발이라도 갖다 대니 상대 공격수 입장에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상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 나이 든 선배들이랑 시합 나가느라 많이 힘들 텐데 묵묵히 팀을 위해 뛰어주는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팀의 막내이지만 우리 팀의 정신적인 지주입니다. 광재, 성준이, 승호가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진이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선수들의 눈빛과 마음가짐이 달라진다고 할 만큼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고맙다 진이야! 다치지 말고 오랫동안 같이 뛰자!
박수훈(여주시민족구단) 진이는 책임감이 정말 강한 후배입니다. 그러한 성격 덕분에 경기장에서도 단연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막내 같았던 진이가 지금은 인정받는 수비수가 되어 있어서 정말 뿌듯합니다.
임상욱(일등가) 진이는 제가 군대 갈 때 즈음에 신입생으로 들어왔습니다. 의정부공고 전교 1등 출신이 기본기도 안 되어있는 정말 못 하는 신입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제대해보니 엄청난 성장을 했습니다. 전 제대하고 몸을 잘 만들어 놓았던 상태였으니 체력은 자신 있어서 진이를 일부러 끌고 가서 함께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 해에는 정말 저랑 진이 둘이서만 운동하는 것 같았죠. 그러면서 공감대도 많이 쌓고 엄청 친해졌습니다. 이후 진이를 우리 회사로 취업시키기 위해 진이에게 전화로 정말 자주 연락했습니다. 진이가 들어온 이후에는 함께 동거하고 취미생활도 같이하며 정말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주저리 얘기했지만 그만큼 진이와는 개인적인 추억이 너무 많습니다. 제게는 가족 같은 동생이고, 동생이지만 때로는 형처럼 의지할 수 있는 그런 후배입니다. 항상 고마운 마음 가지고 있고, 어딜 가든 말하지만 저의 가장 사랑하는 후배입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말이죠.
정지상(수원매탄) 대한민국 NO.1 수비수라고 누구나 인정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진이는 리시브하는 포인트에 대해 같은 팀 세터가 어떤 공을 좋아하는지 매번 체크 후 머리면 머리, 발이면 발 세터가 좋아하는 곳으로 주려고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포지션이 세터이다 보니 수비수들에게 요구는 하지만 상대방의 입맛에 맞춰 준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이는 동료들을 생각하고 희생하며 족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단 실력도 된다는 의미이고, 마인드도 정말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진(신한라이프) 예전에 대회에서 상대 선수로 만났을 때, 이미 '벽'이라는 별명이 있어서 다른 팀과 상대할 때보다 더 긴장하고 경기에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경기를 해보니 왜 벽이라고 불리는지 잘 알겠더라고요. 저도 공격수로서 몇 수 앞을 보고 경기 운영을 하는데 신진이 선수는 저보다 더 많은 수를 내다보고 경기를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신진이 선수를 뚫어보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고 그 노력이 제 실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정말 고맙기도 합니다.
박성호(여주시민) 진이 선배는 발이 빠르고 운동 두뇌가 정말 좋은 선수입니다. 본인이 부족한 부분을 금방 찾아내 개인 운동하며 보완했던 선수입니다. 그런 선배의 노력이 최고의 좌수비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대학시절 2년 동안 저와 함께 호흡을 맞추었는데 부족한 저를 커버하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책임감도 강했고 리더십도 좋았고, 자기중심이 아닌 팀원들을 더 생각해주는 마인드를 갖춘 그야말로 무결점의 선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장한빈(일등가) 족구계의 유재석이라고 할까요? 아마 족구계에서 안티팬이 없는 거의 유일한 선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항상 공부도 많이 하고 매너 좋고 본받을 점이 많은 형인 것 같습니다. 학업 성적도 아주 우수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력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죠. 그래도 한세대학교 선수이기 때문에 제게는 좀 약했던 것 같습니다.(웃음)
이효광(수원매탄) 진이 형은 족구를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형입니다. 선배들에게는 항상 깍듯한 모습을 보이고 동생들에게는 정말 한 없이 착한 선배입니다. 우리 팀 소개 칼럼을 보고 '뭉클했다'라고 연락했는데 '정말 족구에 대해 진심이구나'라는 것이 절로 느껴진 최고의 족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태호(강서족구단) 진이 선배는 언제나 책임감도 강하고 똘똘하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입니다. 족구는 물론 무슨 일이든 똑소리 나게 했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이제 슬슬 장가가셨으면 합니다.
이준석(이천시민) 신진이 선수는 수비수 전성시대의 선두주자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학창 시절 신진이 선수의 영상을 보면서 상당히 많이 배웠습니다. 겉으로는 상당히 순해 보이지만 내면으로는 상당히 강한 선수라는 것이 경기를 하다 보면 느껴집니다. 인성 또한 얼마나 훌륭한지, 제가 정말 닮고 싶은 롤모델입니다.
정석희(건양대학교) 어린 시절, 최강부 경기를 보러 다녔을 때, 김종환 대표님께서 신진이 선수를 데리고 와주셔서 저의 안축받기 기본기를 봐주시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던 기억이 납이다. 연예인과 같았던 선수에게 강습을 받았던 그 떨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그런 분을 상대로 경기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영광입니다. 신진이 선수는 이름만으로 상대를 긴장시키게 만드는 수비수인 것 같습니다. 안정적인 리시브는 기본이고, 수비 예측능력이 뛰어난 데다 발까지 빠르니 정말 상대하기 힘든 선수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이 전성기가 지난 모습이라니 만약 전성기 시절의 신진이 선수와 맞붙는다는 것은 공격수로서 상상만으로도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취재에 응해주시고 칼럼 쓰는 것을 허락해주신 신진이 선수와 많은 도움 주신 여러 선수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