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장 마성(魔性)의 시험
광무군은 무영기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아주 무심해 보였다. 한데, 감히 항거할 수 없는 무
상의 기도가 거기 배어 있었다.
무영기녀는 눈빛을 마주하는 것이 불경인 듯, 고개를 떨구었다.
"나를… 무엇으로 보느냐?"
"군… 군림마종이십니다!"
"그것을 어찌 믿느냐?"
"스스로 밝히시지 않으셨습니까?"
무영기녀가 고개를 들자…….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중원인이고, 백도의 호
법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 그럴 수 없으십니다. 피의 내력대로 행하셔야 합니다!"
"훗훗… 내가 하고픈 대로 할 뿐이다. 봐라!"
광무군은 아비타마경을 쳐들었다.
"……!"
무영기녀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광무군은 그것을 펴 보이며 말했다.
"이… 이것을 익히리라!"
"그러셔야죠!"
"훗훗… 나의 뜻을 오해하지 마라!"
"예?"
"훗훗… 나는 아비타마경 따위가… 천하제일이 아님을 밝히려 하
는 것뿐이다!"
"예?"
"나는 이것을 완벽히 익힐 것이다. 이 안의 마공이 나를 마성(魔
性)에 빠뜨릴 것인가를 시험할 것이다. 만에 하나, 마성에 빠진다
면… 네가 바라는 대로 군림마종이 되겠다!"
"오오……!"
"그러나 마성에 빠지지 않는다면… 아비타국에서부터 비롯된 천년
저주(千年詛呪)는 헛것으로 밝혀지는 것이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흥! 나는 마도인들의 환상을 깨어 보일 것이다. 이것을 익히되,
절대 마성에 빠지지 않는 것으로!"
"마성에 빠지실 것입니다!"
"훗훗… 내기하자. 너와 나만의 비밀로……."
광무군은 전과 달라 보였다.
오백 년 내력의 주인공에 무림일품부주, 거기에다가 군림마종이라
는 신분이 더해졌기에 그러할까?
이제는 아무도 그의 내심을 알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마공보다 더 강한 백도신공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
으로 모든 마의 물건들을 부술 것이다!"
"……."
"너는 그것을 쭈욱 지켜봐야 한다. 알겠느냐?"
"무, 무엇이건 명대로 하겠습니다만… 절대 아비타마경의 마성을
거역하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무영기녀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피에 젖은 머리카락, 그리고 베어진 옷자락 사이로 삐죽 튀어 나
온 풍만한 젖가슴.
이제 그 모든 것이 광무군의 소유가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격동의 순간은 지나갔다.
광무군은 본래의 차분한 표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부… 부소홍(扶昭紅)입니다!"
"좋은 이름이다."
"감사합니다, 존야(尊爺)!"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라."
"그럼… 어떻게?"
"부주(府主)라고 불러라."
"부주요?"
"그렇다. 그리고 너는 임시로 무림일품부주의 좌검비(左劍婢)가
될 것이다."
"무림일품부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요."
"훗훗… 그 곳에는 네가 아는 사람이 많단다!"
"예?"
"혹, 이 얼굴을 알겠느냐?"
광무군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일순, 그의 얼굴이 사라지고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으으, 이럴 수가?"
부소홍의 얼굴은 까맣게 질리고 말았다.
멍하게 생긴 황면청년, 그 얼굴은 무영기녀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
하던 얼굴이었다.
"핫핫… 겁먹지 마라. 과거의 일로 너를 모욕 주지는 않을 테니
까!"
"존야! 아니, 부주시여! 오오, 그러면… 부주께서 바로… 소야가
죽는 것을 막은 장본인이십니까?"
"그렇다!"
광무군은 본래의 얼굴로 환원했다.
"어이해, 소야를 살리셨습니까?"
"소야는 소야일 뿐이다."
"예?"
"가장 무서운 자는 소야가 아니다. 훗훗, 너는 타초경사(打草驚
蛇)라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풀…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지
요. 하나는 소란을 일으켜, 혹 매복해 있을지 모르는 적병을 쫓는
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뱀을 잡기 위해서는 풀숲을 흩트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바로 그렇다."
"……."
"소야는… 사실 있으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
"훗훗… 그녀는 사실, 유람 나온 사람이나 같다. 만에 하나, 그녀
가 암살당했다면 천마지존전은 아주 좋은 명분(名分)을 얻게 될
것이다!"
"그, 글쎄요. 소녀 생각으로는 만에 하나, 그녀를 죽인다면… 천
마지존전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리라 여겨집니다만……."
"그럴 수도 있지."
광무군은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뇌옥 어귀를 향해 다가갔다.
제 23장 마성(魔性)의 시험 -2
뇌옥은 삥 둘러 포위되어 있었다.
수많은 고수들이 갑노(匣노)와 독도(毒刀)를 들고, 뇌옥 어귀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막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광무군은 걷다가 전음으로 물었다.
"네게 한 가지 물을 것이 있다!"
"……."
"비도홍(飛刀紅)의 누이에 대한 것이다!"
"으으… 음!"
"솔직히 말해 다오. 그의 누이가 어찌 되었는지를!"
"천염환(天艶幻)은… 실종되었습니다!"
"실종?"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사형(師兄) 혈천수사(血天秀士)는
천염환을 미인계의 수단으로 내세워 군림전의 세력을 확대시킬 작
정이었는데, 천염환은 비도홍 천웅을 그리워하며 울다가 칠 년 전
도망쳐 나갔습니다."
"그 후 소식은?"
"모릅니다. 아마… 죽었을 것입니다!"
"죽다니?"
"그녀는 만성독약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사
흘에 한 번씩 해약을 먹어야 되는 독약을 먹였던 것이지요."
"쯧쯧, 그럼… 너는 비도홍에게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비… 비도홍은 어디에 있는지요?"
"보고 싶으냐?"
"사… 사죄하고 싶습니다!"
"일 각 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광무군은 말한 다음, 부소홍을 끌어안았다.
'부주께서 갑자기 왜?'
부소홍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자신의 앞가슴이 광무군의 가슴에
꼭 끌어안겨졌기 때문이었다.
광무군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휘감았다.
한순간, 광무군의 입술이 벌어지며 창룡신후(蒼龍神吼)가 토해졌
다.
"우… 우……!"
초적기인이 창안한 음공절기, 그것은 초적기인의 상상을 십 배 능
가하는 가공할 절학이 되어 있었다.
"우……!"
후성이 커지며, 뇌옥을 포위하고 있던 자들이 몸을 휘청였다.
"어이쿠우! 심맥(心脈)이 끊어졌다!"
"캐애- 액!"
"으아… 악!"
"으아… 악……!"
칠공(七孔)으로 피를 뿌리고 쓰러지는 자, 휘청거리다가 제 곁에
있는 자가 들고 있던 독도에 살갗이 스쳐 찰나적으로 혈수(血水)
로 녹아 버리는 자.
꽈꽝- 꽝-!
뇌옥이 뒤흔들렸고 패천전이 통째로 뒤흔들리는데, 후성에 응답하
듯 장소성이 울려 퍼지며 동쪽에서 이십여 명이 신형을 폭사시키
며 다가왔다.
"우… 우……!"
죽립을 쓰고 선두로 치달려 오는 자, 그의 손에는 파천황검(破天
荒劍)이 들려 있었다.
"일품검대(一品劍隊)의 영웅들아, 부주가 부르신다! 으하하! 패천
전을 힘으로 무찌르자!"
그는 일품검대의 대장이었다.
그는 신검합일(身劍合一)해 패천전 안으로 날아들며 수천 줄기의
도강(刀 )을 폭우처럼 쏟아 냈다.
그와 더불어 담을 넘는 사람들은 과거 광인검대(狂人劍隊)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거의 같은 순간, 단독으로 서쪽의 담을 넘는 금의녀(金衣女) 하나
가 있었다.
그녀가 몸을 날리자, 바닥의 돌길이 거북이 등가죽처럼 갈라졌다.
일잔월(一殘月), 그녀는 한 줄기의 폭풍이었다.
그녀의 몸뚱이를 가로막는 것은 없었다. 스치는 순간, 무엇이든
모래로 부서져 내렸다.
폭풍광마녀(暴風狂魔女).
그녀는 최근 들어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일잔월이 파죽지세로 들이닥칠 때, 남쪽에서도 돌파자들이 있었
다.
천세이십팔숙(千歲二十八宿).
그들은 모두 고동색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패천전의 천라지망은 그들에 의해 완전히 제거당한 상태였다.
"쳐라!"
"으하하… 무림일품부를 알게 해 줘라!"
휘휙- 휙-!
천세이십팔숙은 일품검대에게 선봉을 빼앗길 수 없다는 듯, 갖가
지 절기를 모두 발휘해 날아들었다.
북쪽, 그 곳에서 들이닥치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다.
바로 초적기인(草笛奇人)이었는데, 그는 현재 광풍당주(狂風堂主)
에 임명된 상태였다.
"으하하… 이 녀석들아! 노부가 지금은 단신이나… 한 달만 기다
려라. 노부가 이끌 광풍검대(狂風劍隊)는 일품검대나 천세이십팔
숙보다도 막강한 세력이 될 테니까!"
초적기인은 옥적(玉笛)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 끝에서 유백색 강기가 뻗어 나오는데, 바로 마라백옥강살(魔羅
白玉 煞)이라는 절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