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나’를 탐색하는 성찰의 미학
-청허 박영수 제10시집 『연꽃 보고 온 날』
김 송 배
(시인 .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1. ‘나를 돌아 봐’에서 성찰의 인식
현대시를 감상하거나 분석할 때 필수 조건이 그 시인의 시점(視點)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디에서 머물고 있는가가 작품의 발상에서부터 이미지의 창출 그리고 주제의 투영까지 시적 전개의 한 방식으로 보는 속성에서 그 작품을 읽게 된다.
이는 그 시인의 정서와 사유(思惟)의 향방에서도 좌우되는데 이러한 과정은 대체로 기억의 작용, 회상(回想-recollection)에서 생성하는 자아 회복을 중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들의 삶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개인적인 인식으로 상상되는 것이다.
이 자아의 회복은 바로 인식된 자기의 회복을 위한 체험의 기억이 재생하는 것으로써 시적인 발상과 이미지의 생성에 중요한 단계이므로 모든 시인들이 이 체험의 근원에 대해서 자신의 생애와 상관하는 많은 상상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청허 박영수 시인이 상재하는 제10시집 『연꽃 보고 온 날』에서도 그가 체험한 일상을 통해서 정서와 사유의 큰 줄기가 바로 그의 의식의 흐름에서 형상화하는 경향을 명징(明澄)하게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박영수 시인은 『세월의 강』을 비롯해서 이미 9권의 시집을 상재한 중진 시인으로서 제1회 문학저널 창작문학상과 이육사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고 현재에도 한국아파트신문에 ‘시와 문화유산답사기’를 연재하는 등 그의 필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까지 와서 바랄 건 무엇일까 이대로 좋겠다 아픈 데 한 두 곳 있으면 대순가 삼식이가 되어서도 가끔 소주잔 기울이며 공초를 즐기기도 하니 정말로 자주 비틀거리기는 하나 나보다 더 나 같은 사람 아직은 옆에 있고 시나브로 뿌린 씨앗들 그런대로 반듯한 나무로 자라 제법 푸른 가지도치고 그리 곡진할 것도 더욱 안타까울 것도 감당 못할 설움에 겨워 눈물조차 흘릴 일 없으니 여기까지 와서 바랄 건 무엇일까 더도 덜도 말고 그냥 이대로 좋겠다
그는 이렇게 ‘시인의 말’에서 피력한 바와 같이 이제 노년기를 접어들면서 ‘여기까지 와서 바랄 건 무엇일까’라는 어조로 관조(觀照)와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상념에서 그는 심경을 정리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가 분사(噴射)하는 ‘그냥 이대로 좋겠다’는 무위(無爲)의 사념(思念)이 그의 내면에 침잠한 자아의 성찰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필자가 그의 제8시집『21세기 장식론』해설에서도 언급한 ‘자문(自問)의 시학’ 도 자아의 탐구에서 ‘어디서 와서 / 어디로 가고 있는지 / 도무지 알 수 없는 나’라는 어조가 자아를 인식하는 통과의례의 개념을 시적으로 흡인(吸引)하는 점을 살펴본 바가 있다.
박영수 시인은 우선 작품 「바람의 길」에서 ‘내가 나에게 또 한 번 / 묻고 싶어지는’ 어조와 ‘감히 살아간다는 뭐, / 사랑과 죽음 같은 것들조차도’ 다시금 확인하고 싶은 그는 이제 노년에 와서 자아를 인식하는 심저(心底)의 진실을 이해하게 한다.
나를 돌아봐그 참 좋은 말
누구나 사람이라면 나를 돌아보며 살아야지
성찰省察
그야말로 좋은 말이지
참 삶이라 할 수 있겠지
네가 나를 돌아봐안 될 말
내가 너를 돌아봐더 안 될 말
살피고 돌아본다는 말
쉽게들 하지만,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 없이는
참으로 어렵다네
보라,
금동반가사유상도 모처럼
고향을 찾아간다는데
대자대비 부처님도 아닌
우리 중생들이야
그저 어렵도 또 어려울 뿐,
--「나를 돌아봐」 전문
이 작품에서는 그의 자아 인식을 명민(明敏)하게 심화(深化)시키고 있다. 이것이 박영수 시학의 원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사람이라면 나를 돌아보며 살아야지’라는 어조로 ‘성찰’과 ‘참 삶’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어서 진정한 ‘나’는 어디서 어떻게 인식해야 할 지를 넋두리처럼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살피고 돌아본다는 말 / 쉽게들 하지만, /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 없이는 / 참으로 어렵다네’라는 어조로 진실한 ‘나’를 찾거나 확인하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님을 인지(認知)하고 있다.
또한 그는 작품「아직은」전문에서 ‘턱도 없지 / 네 심금心琴 울리기에는 / 아직 멀었지 // 내 가슴 / 쇳물처럼 녹아내리고 // 내 그리움 / 다 부서지고 // 내 눈물 그만 / 다 흩어지고 말겠네 // 아직은 멀었지 / 네 영혼 울리기엔’라는 ‘영혼’과의 교감에는 아직도 미흡한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완숙되지 못한 자괴감을 토로(吐露)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2. 존재 이유의 탐색과 기원 의식
박영수 시인이 몰입한 시적 소재(material)는 '나'에 대한 진실을 구명(究明)하는 동시에 존재의 이유를 탐색하는 일이다. 거기에서 파생하는 그의 사유의 지향점은 바로 자신에게 반문(反問)하면서 긍정과 부정 등의 해법을 찾고 있다.
너 자신을 찾아보라는 듯
꼭 다문 입술에 백지장 같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말하네
차라리 가면이 되라 나처럼
황홀하게 어쩌면 축제마다
우리들 환영을 보는 것이지
존재이유가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 것이지
울긋불긋 화려하지도 않은
너를 바라보며 영혼이 뒹구는
이 가을날 내가 나에게 물어보았네
사구砂丘를 넘어가는 낙타처럼
검은 독수리 한 마리 창공을 맴돌듯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가면」중에서
박영수 시인은 그의 존재이유를 구명하는 과정에서 ‘가면’이 자신에게 훈계(訓戒)하는 소리 ‘차라리 가면이 되라 나처럼’이라는 묵시적인 언어를 접하게 된다. 이는 하나의 황홀한 환영(幻影)이지만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 현상에서 그는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준엄(峻嚴)한 메시지를 접수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울긋불긋 화려하지도 않은 / 너를 바라보며 영혼이 뒹구는 / 이 가을날 내가 나에게 물어보’고 있는 형상은 자신의 영혼과의 접맥(接脈)에 아직까지도 미치지 못하는 진실이 내재되어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 영역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각박한 현실적인 삶에서 정신의 황폐화를 예감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치료하지 못하는 인생의 애환을 이 ‘가면’은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박영수 시인이 구현하려는 사유의 지향점이며 시적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양다리 사이에 너를 끼고 앉아
흐느끼고 싶다
황홀하게
내가 나를
거머리 뒤집듯 뒤집어 보니
이 넓고
넓은 세상에
오직,
너 하나 만나러 온 것
같다
--「연꽃보고 온 날」전문
여기 이 시집의 주제시가 되는 작품을 보라. ‘연꽃보고 온 날’의 감회(感懷)는 ‘내가 나를 / 거머리 뒤집듯 뒤집어 보니’ 청순한 연꽃 이미지는 모두 낡아 있고 새롭고 진정한 ‘나’는 만나지 못하고 있어서 너무나 삭막한 삶의 연속을 개탄하는 속성을 현현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부족한 삶의 편린을 해소하기 위해서 ‘양다리 사이에 너를 끼고 앉아 / 흐느끼고 싶다 / 황홀하게’라는 어조로 기원의 의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 것이 그에게는 ‘이 넓고 / 넓은 세상에 / 오직, // 너 하나 만나러 온 것 / 같다’는 결론을 창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연화(蓮花)는 어느 글에 보면 ‘순백(純白), 담홍(淡紅)의 색이 흔하다. 불경에는 왕왕 청련(靑蓮)이 나타났으나 옛날에 있던 것이 오늘날 전멸되었는지 인도 본토에서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는 말로 짐작해 보면 연꽃은 불교와의 상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박영수 시인은 아마도 어떤 사찰에서거나 연지(蓮池)에서 ‘연꽃’을 보고 와서 자신의 심신이 정갈하지 못한 부분을 스스로 성찰하면서 ‘이 넓고 / 넓은 세상에’서 미물(微物)에 불과한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극명(克明)하게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작품「그런 그대」중에서 ‘괜히 세상을 욕하고 / 마구 돌을 던지고 나락하고 /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다’는 어조와 같이 현실적인 고뇌를 벗어나려는 심정도 동행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나도 모르게 / 하늘을 치어다보는 / 날이기도 하다’는 체념의 언어로 갈등 의식을 치유하려는 그의 시적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3. ‘나의 시’와 삶의 편린들
박영수 시인이 일생동안 추구하는 시업(詩業)에 대한 집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지금까지 열 권의 시집을 상재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그의 갈증(渴症)을 토해내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비평가 I. A. 리처즈가 말했듯이 우리의 일상생활의 정서생활과 시의 소재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고 했다. 이러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의 기교를 사용하게 되어 있어서 우리 현실적인 일상에서 탐색하는 시의 모습은 평범한 범주(範疇)에서 창작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의 시만 보면
소름이 싹 스치네
다시 보는 내 시는
비루먹은 말장난에 불과했고
그들의 시는 언제나
펄펄 살아 핑글핑글
나의 주변을 맴돌고
--중략--
달짝지근한 말들이
절로 톡톡 튀어나오는 그런
시인의 시만 보면
나는 정말 앞이 칵 막히네
아, 무서운 나의 단애
어눌한 나의 통어력에
아슬아슬 현기증을 느끼기도 하지만,
야들야들한 시 한줄기
후려치지 못하지만
다 어쩔 수 없네
더듬거리는 채찍 휘두르며
나의 시에 매달려 또 한밤을 달려보네
--「나의 시」중에서
그렇다. 이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으로서의 자성(自省)과 시적인 감응(感應)을 위한 상호 대칭적인 비교에서 절감(切感)하는 시의 구성이나 의미성에서의 미흡함 등을 항상 염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영수 시인은 그의 말대로 ‘다시 보는 내 시는 / 비루먹은 말장난에 불과했고 // 그들의 시는 언제나 / 펄펄 살아 핑글핑글 / 나의 주변을 맴돌고’라는 어조와 ‘달짝지근한 말들이 / 절로 톡톡 튀어나오는 그런 / 시인의 시만 보면 / 나는 정말 앞이 칵 막히네’라는 어조가 스스로의 자책(自責)을 적시하고 있어서 예리한 감응을 통해서 좀더 좋은 시 창작을 위한 고뇌가 잘 현현되고 있다.
그는 다시 이러한 시의 해법을 찾기 위해 ‘다 어쩔 수 없네 / 더듬거리는 채찍 휘두르며 / 나의 시에 매달려 또 한밤을 달려보네’라는 결론으로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시창작을 하면서 절실함을 상기시키는 일은 바로 ‘아, 무서운 나의 단애 / 어눌한 나의 통어력에 / 아슬아슬 현기증’ 등이 그의 내적인 관념의 작용으로 항상 두렵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인 부담이나 압박은 누구에게서나 발견할 수 있는 실제 과정임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비우기는커녕 뭐 하나라도 잃을까
안달복달하고 안절부절 못한
우리들 삶이 옳게 가고 있다는
환영에 사로잡힐 때 그 얼마나 많았으랴!
어렵다 싶다가도 눈 녹듯 절로 풀리고
잘되나 싶다가도 도로 얽히고 마는
무엇하나 버릴 것 없다는 생각에 파묻히다
눈 떠보면 신기루처럼 싹 사라지고 마는 삶의 파편들
--「초롱불」중에서
여기에서는 시인으로서의 ‘삶의 파편들’이 작품으로 승화하는 ‘환영’과 ‘생각’으로 항상 그와 동행하고 있다. 이러한 지고(至高)한 그의 상념(想念)은 실제상황과는 괴리(乖離)가 있어서 접근과 적응이 쉽지 않음을 자탄(自嘆)하는 ‘착시현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박영수 시인은 이 ‘초롱불’에서 ‘자명등처럼 꺼졌다 켜졌다 하며 / 빛의 향방에 따라 내 영혼을 반추하듯 / 밤하늘의 별처럼 한들한들 춤을 추고 있네’라는 어조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그는 그의 영혼의 지향점을 탐색하고 있으나 ‘이런 착각들 / 허접 쓰레기 쓸듯 몽땅 쓸어버리고 / 열기구처럼 가볍게 하늘을 오를 수는 없을까’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휩싸여 있다.
이 밖에도 ‘산다는 것이 뭐 별거 있어 / 그런 生이 더 감칠맛 나는 건 아닐까싶은 / 멍청한 생각도 좀 하다가(「생식」중에서)’라거나 ‘그리움 탄다 // 눈물도 탄다 // 그 속에 내가 활활 타 오른다(「노을」전문)’ 혹은 ‘춘하추동 밥만 축내고 / 세월만 죽이는 구더기가 / 나의 참모습인지도 모르겠다(「똥구덩이 낙원」중에서)’ 그리고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고 / 스스로 눈을 뜨기도 할 것이다(「그런 그대」중에서)’라는 등의 어조로 그의 삶과 시의 화해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4. 고향 ‘청도’에 대한 그리움
박영수 시인은 이제 추억어린 고향 ‘청도’에서 회상의 거물을 걷어올리고 있다. 스스로 자신을 ‘청도 촌놈’이라고 명명하면서 지난 세월과의 교감으로 회억(回憶)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지만, 애틋한 고향의 정경(情景)과 함께 오버랩(overlap)되는 그의 심중에는 만감(萬感)이 교차하고 있다.
마음이 절로 따른다는 나이를 훌쩍 넘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디아스포라처럼 떠돌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마네
학교 뒤 산동네에서 자취를 하면서 보냈던 철없던 시절
지금 와서 생각하면 한 폭의 그리움으로 남아 온갖 것들 호명해 내고
--중략--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세월이 더 진한 청도 촌놈 두엇 만나 마음 글썽이며
추억이란 자양분마저 없었더라면 우짤라캤노! 시공을 초월한 웃음소리
이월 초이틀 밤하늘처럼 노오랗게 부서져 내리네
--「청도 촌놈-친구 박홍진에게」중에서
우선 그가 지칭하는 ‘청도 촌놈’의 회포(懷抱)를 들어보자. 그는 ‘학교 뒤 산동네에서 자취를 하면서 보냈던 철없던 시절 / 지금 와서 생각하면 한 폭의 그리움으로 남아 온갖 것들 호명해 내’는 추억만이 생성하는 시적 원류를 더듬고 있다.
누구에게서나 지나온 고향의 진한 상상력의 재생이 있다. 박영수 시인은 화자(話者) ‘친구 박흥진’을 내세워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세월이 더 진한 청도 촌놈 두엇 만나 마음 글썽이’는 우정이 그에게는 불망(不忘)의 고향 그리움으로 형상화하고 잇다.
그는 다시 작품 「청도 감」전문에서 ‘감 두 상자가 / 택배로 배달되어 왔다 // 올해는 해거리를 해서 도통 / 아이구 머할라꼬 또... // 이거 다 인정노름 아잉기요 / 하머, 그렇고말고 // 그 정情 참으로 엄청구마 / 고마 들어가이소 // 아삭아삭 씹는 그 맛처럼 / 감칠맛 나는 시詩 한 구절 / 어디서 찾을까 // 서산에 붉은 노을이 / 주춤거리며 서 있다’는 정감 넘치는 고향 스토리가 그의 애향과 거기에서 형성된 추억들이 이젠 좋은 시적 질료(質料)로서 그의 시향(詩香)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것이다.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
오락가락 숨바꼭질하는
오로라 한 토막
손짓한다고 올 리도 없는
마음 한 타래
--「그리움」전문
이렇게 ‘그리움’을 응축시키고 있어서 그에게 내재된 이미지가 바로 그리움으로 승화하는 시법(詩法)을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박영수 시인은 이 고향의 향수(鄕愁) 말고도 가족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 특히 손자와 손녀들에게 다정다감하게 교감하는 그의 가족애는 남다르다.
내가 어찌 너를 꾸짖으랴
참으로 내가 나를 꾸짖어야지
내가 어찌 매를 들 수 있으랴
내가 내 종아리를 걷어야지
너를 보고 살가운 마음 사리지지 않으니
너는 역시 좋은 손녀로다
참,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손예원에게」전문
박영수 시인의 외손녀 손예원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이다. ‘너는 역시 좋은 손녀로다’라는 어조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는 외손자와 외손녀를 더욱 사랑하고 있다. 이렇게 사랑의 정표는 작품 「성장통」「네가 우리 곁에 오던 날」등이 손예원에게, 「엄마」가 김도윤에게, 「바람이 웃는다」가 손경우에게, 「참 좋은 인사법」이 정우와 채원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그리고 외손녀 손예원(답동초등학교 5학년)의 작품「꿈」「시계」「엄마와 라면」을 함께 발표해서 장래가 촉망되는 시인의 길로 나아가는 역량을 보여주고 있어서 조손(祖孫)간의 애정이 더욱 돈독해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박영수 시인의 제10시집 『연꽃 보고 온 날』에는 대체로 ‘나’를 화자로 해서 아직도 완전하게 숙지하지 못한 자아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하는 동안 성찰하거나 반성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관의 모색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종심(從心)의 정점에서 관조하고 자적하는 시법을 지금도 창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찍이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의 말대로 시의 의미의 주된 효용은 독자의 습성을 만족시키면서 시가 그의 마음에 작용하는 동안 정신에 대해서 위안과 만족감을 주는 것이라는 명언을 상기해야 하는 것도 시의 위의(威儀)나 본령(本領)에 충실하게 흡인하는 시인으로서의 숙명(宿命)을 완성해야 하는 과제가 달성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