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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와인 감상기 스크랩 눈 엄청 오던날의 화이트 보르도
권종상 추천 0 조회 153 08.12.31 10:41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눈이 언제 내렸는가 싶게 녹았지만, 그래도 캐피틀 힐의 음지나 우리 집 근처의 그늘 많이 진 곳엔 아직도 눈이 다 녹지 않은 채 쌓여 있어서, 십 수년만의 대설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눈으로 인해 시애틀을 비롯한 워싱턴 주는 물론, 오리건,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럼비아 등 서북미 지역 전역이 받은 경제적 타격도 상당합니다. 그러잖아도 경제공황으로 인해 소비가 위축되어 있던데다가, 눈이 집중적으로 내렸던 때가 소매업체로서는 성탄 직전의 대목이어서, 울상들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흔히 영어로 더블 왜미 Double Whammie 라고 표현하는데, 우리 속담의 '엎친 데 덮친다'라는 말이 여기에 딱 어울릴까요. 지금의 경제상황에서 갑자기 이 지역을 덮친 대설은 문자 그대로 설상가상이었고, 대형 샤핑몰이나 소형 선물가게나 모두 이 불황의 타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눈이 계속 내리던 며칠, 저는 일을 빼먹을 처지가 못되어 도로 상황 때문에 지각은 했어도 계속 출근을 해야만 했고, 아내는 아예 이틀은 일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앞 언덕길을 차가 오르내리지 못할 정도로 눈이 쌓여 얼기까지 한 탓에,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모처럼 엄마와 함께 온 종일 집에 있는 경험을 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두 주 동안 성당도 제대로 못 나갔고, 저도 두 주전의 일요일 하루는 집에 꼼짝 않고 들이박히는 경험도 했습니다. 눈이 와도 와도 이렇게 오는 경우는 별로 못 봤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눈사람도 만들고, 눈밭에서 엄청 굴렀습니다. 아내의 표현이 확실하더군요.

"곰 같애. 눈밭에서 구르는."

 

아무튼, 경제활동과는 상관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활동'도 나름으로 재밌었습니다. 저도 일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애들과 놀아주기보다는 컴퓨터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지라 마음에 걸리던 차였는데, 이번 눈은 불편함을 준 대신, 모처럼 아이들과 아내와 오손도손 집에서 지내는 시간을 늘려주는 데는 일조했던 것입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날씨 때문에 더 깊이 실감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깨달음이었습니다. 결국, 내가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든지, 이들은 나와 함께 있을 거라는 것. 특히 아내와 이렇게 오붓한 시간들을 가져본다는 것도, 그렇게 어떤 '낭만' 들을 함께 되새길 수 있다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이번 폭설이 가져다 준 선물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아내는 그렇게 집에 갇혀 있을 동안, 아이들과 저를 위한 특식을 계속 만들어 내었습니다. 어차피 나가봤자 집 앞에서 애들과 썰매 타고 눈싸움 하며 노는 거고, 그렇게 애들과 놀면 지쳐나가떨어지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집에 들어오면 뭔가 훈기가 가득했고, 아내의 웃음 속에서 저는 그녀가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와인을 땄습니다.

 

아, 이번에 아주 재밌는 프랑스 와인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제 직장이 있는 캐피틀 힐 인근의 와인샵, Vino Verite 의 주인인 데이브가 소개해 준 화이트 보르도 와인인데, 소비뇽 블랑의 날카로움과 세미용의 부드러움이 잘 조화된 저렴한 와인입니다. 가격이 병당 8달러인데, 이 가격에 이 정도의 맛을 보여주는 '화이트 보르도 와인'이라면 당연 매력있다 할 만 할 것입니다. 샤토 물랭 드 페랑이라는 앙트르 뒤 메르 지역의 화이트인데, 메독이나 뽀므롤, 생떼밀리옹 등의 익숙한 지역이 아니라, 평소 잘 만나보지 않는 지역인데다 이름도 없는 와인이지만, 그집 주인장 데이브라면 충분히 신뢰할 만한 입맛을 가지고 있는 친구여서 별 부담감 없이 집었습니다.

 

하항, 재밌는 와인입니다. 마시기에 참 부드럽다는 아내의 평도 마음에 와 닿지만, 일단 음식을 잘 선택한 듯 합니다. 아내가 일전에 만들어주었던 월남 춘권튀김을 또 해준데다가, 폭찹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늘 맛나게 먹는 음식들이지만, 이렇게 바꾸어 매칭시키는 것은 또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솔직히 신세계의 스트레이트한 맛에 길들여진 저에게 조금 싱겁다는 느낌이 드는 건 오히려 솔직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시고 난 후 여운의 우아함은 또 신세계 와인과는 다른 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 피어오르는 향은 구세계 와인의 덕목이기도 합니다. 소비뇽 블랑의 날카로움을 사랑하는 제겐 조금 아쉬움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격에 이 정도의 기쁨을 줄 수 있는 화이트 보르도라면... 당근 추천 카테고리 들어갈 만 합니다. 상당히 라운딩 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화이트입니다. 그러나 풀내음과 꽃내음의 적절한 조화는 이 와인을 음식과 매우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만들어 준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보통 '콰퍼블'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쉽게 넘어가는... 뭐, 이정도로 생각해도 좋을 듯 합니다. "어머, 이건 정말 '부담없는 소비뇽 블랑' 이예요. 난 넘 좋아!" 부드러운 쪽을 선호하는 아내의 탄성도 제가 이 와인을 '추천' 카테고리로 넣는 데 당연 한 몫 합니다.

 

사실, 이 와인은 폭찹을 먹을 때 자기 진가를 제대로 발휘해 주었습니다. 신세계 소비뇽 블랑이 해산물이나 혹은 샐러드와 매우 좋은 궁합을 보이는 데 비해 솔직히 돼지고기와 어울려주기가 조금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화이트 보르도는, 그 지역에서 뭘 놓고 이 와인을 먹는지가 그려질 정도였습니다. 당연 치즈와도 잘 어울릴 듯 한데, 약간 짭조름한 콩티나 리브와드와, 혹은 부드러운 브리나 까망베르와도 전체적으로 잘 어울릴 듯 합니다. 저같은 경우엔 염소젖 치즈와도 매치시켜보려 할 것은 같습니다만, 아마 그 경우엔 샐러드도 함께 해야 할 듯. 아내의 폭찹과는 그 질감과 맛의 매치가 훌륭했고, "역시 허니밖에 없다"는 아부성 발언이 매우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의 기분좋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자... 아무튼, 시애틀에서 보기 드문 이런 폭설은 저에게도 흔치 않은 경험들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서 꼼짝 않고 붙어있었던 적도 별로 없었던 터라, 이 먹고 자고의 연속은 당연 저에게 약간의 살로 남았을 듯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눈밭에서 구른 까닭에 에너지 소모는 꽤 됐던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아무튼...  뭐, 밤까지 아내와 집에서 눈 마주치고 있으니, 아무튼 눈 때문에 흥분한 아이들 재우는 게 좀 힘들긴 했습니다만. 하하.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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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1.01 20:30

    첫댓글 와 눈이 하얀세상이네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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