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이 도약할 수 있게 된 배경과 국립의료원의 침체 요인을 분석한 연구논문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윤인모 닥터서비스 대표이사는 최근 서울종합과학대학원대학교가 발간한 박사학위 논문총서(의료산업고도화에 따른 연구중심병원의 진화의 단계와 특성)를 통해 성공적인 병원경영을 위해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려야 할지를 제시했다. 윤 대표이사는 최근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의료산업 발전의 원동력인 연구중심병원을 활성화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과 경영진의 기술경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표이사는 '동태적 이중나선 모형'<그림1>을 동원, 미국(휴매나그룹·메사추세츠종합병원)·싱가포르(래플즈병원)·한국(이화여대동대문병원·영동세브란스병원·국립의료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고려병원·차병원) 등 연구대상 병원(기업)의 진화경로를 분석하고, 진화의 방향과 진화를 위해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제시했다.
윤 대표이사의 분석모형은 병원 CEO들에게 성공적인 기술경영을 위해 어떠한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지도 안내했다. 아울러 미래사회 한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맡게 될 의료산업화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해야 하는 정책결정자들에게는 어떻게 적절히 자원을 배분해 진화를 유도해야 하는지를 조언했다.
윤 대표이사는 "연구중심병원이 의료산업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조직통합능력 구축기(2분면)'에 있는 병원에 후한 평가를 내렸다. 2분면에 있는 병원은 '조직능력'과 제품지향적인 '품질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연구실적'을 창출, 상생과 보완을 통해 연구중심병원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나
윤 대표이사는 병원의 진화 방향은 핵심능력을 키워 가치사슬을 통합하는 4분면(통합준비기)에서부터 출발, 조직능력 획득과 우수한 진료의 질을 기반으로 핵심역량을 구축해 우수한 연구결과를 만들어 내고 이는 다시 조직능력과 우수한 진료의 질을 제공하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2분면(조직통합능력 구축기)으로 진화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2분면으로 진화한 이후부터다. 조직의 경직성·내부화 비용 증가 등으로 지속적인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고, 우수한 질의 진료를 제공하기 어렵게 되면 조직의 통합적 능력의 저하로 나타나게 되기 때문. 이 때 병원은 시장유지를 위한 원가 절감단계인 3분면(통합분리기)으로 진화하게 된다.
3분면 단계에서는 기존에 남아 있는 역량 가운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장인 1분면(동적 전환능력 구축기)으로 전략적 이동을 하게 되며, 1분면에서 시장에 대응하는 역량이 감소할 경우에는 다시 원가절감을 통한 4분면으로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는 것이 윤 대표이사의 분석. ■ 의료정책 어떻게 펴야 하나
고부가가치산업인 의료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흐름이 빠르고, 풍부한 인적 자원과 저렴한 물자를 확보할 수 있으며, 지식교환이 용이한 병원 중심의 메디클러스터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
그러나 의료산업의 중심인 병원이 환자진료에 의한 국부 창출·미래 의료인 양성 등 다양한 목적으로 진화하고 있음에도 정책적 지원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윤 대표이사는 진단했다. 윤 대표이사는 병원이 진화할 수 있도록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유명한 연구중심병원도 진료수입만으로는 지속적인 우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국립보건원(NIH)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중심병원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적 지원을 바탕으로 도출된 연구결과는 의료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산업체의 연구비가 연구중심병원으로 유입되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표이사는 원가절감이 아닌 진료의 질을 통해 병원이 경쟁할 수 있도록 틀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원산업의 발전은 환자에게 전달되는 진료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하며, 정부 정책도 제품지향의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정돼 있는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소모적인 제로섬 게임은 3분면에 위치한 병원과 가격경쟁력을 전략으로 하는 1분면에서 진화한 4분면 병원에서 주로 일어나는 만큼 한국의 병원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3, 4분면이 아닌 1, 2분면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표이사는 "원가절감을 위한 노력이 진료의 혁신을 통한 절감이 아닌 원가의 부담을 이전하는 가격경쟁으로 이어질 경우 모두가 소모적인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미국에서도 제로성게임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 원가절감이 지불자에서 환자로, 헬스플랜에서 병원과 의사로, 보험자에서 비보험자로 전가되는 제로섬 게임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는 것.
현재 한국의 병원은 원가절감을 통한 수익극대화에 매달리고 있다고 진단한 윤 대표이사는 정부가 이러한 원가절감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실시하는 의료기관평가도 가치기반 경쟁을 위한 정책을 활성화 하지 않는 한 소모성 모니터링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산업이 발전하고 시장을 확대해야 소모할 자원도 생기게 마련"이라고 지적한 윤 대표이사는 "원가절감 경쟁은 병원이 우수한 자원을 획득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단순한 원가절감이 아니라 가치기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정책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병원의 진화 경로
윤 대표이사가 분석의 틀로 삼은 '동태적 이중나선 진화모형'은 4분면로 구분된다<표 참조>. 윤 대표이사가 '동태적 이중나선 진화모형'을 이용해 분석한 국내 병원 7곳과 싱가포르 래플즈 병원의 진화단계에 따른 특성은 다음과 같다.
환경 변화 극복 못한 채 '매각' 귀결
이화여대 동대문병원=미국 감리교 선교부 여자선교회의 지원으로 1887년 정동에 부인병원을 창설하면서 뿌리를 내린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은 1958년 동대문 부속병원을 준공, 이대 동대문병원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주변의 대형병원과 서울 도심이라는 경영환경에 시달리고, 1993년 목동병원 개원에 따라 중심의 축이 이동하면서 2000년 병상을 축소하고 2차 병원으로 전환, 4분면에서 비용절감을 위한 3분면으로 이동했다. 경영환경 개선을 위한 자구노력도 이어졌다. 전문 클리닉 개설·조직 적합성 검사실 개소·장기이식연구소 개소·피부성형외과센터 개설·인공관절센터 등 새로운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을 통해 보건복지부가 주관한 2005년 의료기관평가에서 400∼500병상 규모에서는 최우수병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적 전환능력 구축기(1분면)로 이동하지 못한 채 매각이라는 냉엄한 경영현실의 벽에 부닥치고 말았다. 전문병원으로 돌파구…개명 통해 제2의 진화
영동세브란스병원(현 강남세브란스병원)=1983년 280여 병상으로 개원한 영동세브란스병원은 대학병원으로서 2분면으로 출발했으나 개원 10년도 안돼 거대 대형병원에 둘러 쌓이면서 재정적인 압박을 경험해야 했다. 3분면으로 이동한 영동세브란스병원은 진화를 위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 2005년 척추와 치과 전문병원을 출범하며 1분면으로 전략적으로 이동, 전문병원으로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영동세브란스병원이 전략적 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핵심역량을 보유한 상황에서 전략적 판단이 뒷받침 됐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영동세브란스병원은 지난 3월 1일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개명,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현재 37개 진료과와 800병상을 갖추고 있으며, 암·척추·치과 등 3개 전문병원과 내분비·당뇨병·심장혈관 등 5개의 전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조우현 신임 원장은 개명과 발맞춰 전 고객 발렛파킹서비스와 정시진료제 등을 선언했으며, 암전문병원 신설·건진센터 확장·JCI인증 획득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당분간 동적 전환능력을 구축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핵심역량 확보하지 않고는 답보 장기화
국립의료원=1958년 스칸디나비아 3국의 지원으로 설립한 국립의료원은 1960년대까지 다른 병원에 10년 이상 앞선 첨단 장비를 보유한 병원으로서 명성이 높았다. 의대는 없었지만 다른 대학과의 공조를 통해 최고의 교육병원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1980년 대에 접어들어 주변 병원의 대형화와 신규 병원 설립 등에 이어 공공기관의 경직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경영이 어려워지고, 조직학습능력이 저하 등의 현상이 나타났다. 윤 대표이사는 조직학습능력 저하의 단적인 예로 2007년 의학한림원이 발표한 피인용 50회 이상 SCI 논문자료에 국립의료원 의료진이 1990년대에 1편의 논문을 발표한 것을 들었다.
윤 대표이사는 국립의료원이 조직능력을 증대하기 위해 연구소나 대학병원과 연계해 지속적인 연구와 조직능력을 키우고, 진료의 질을 높였더라면 1분면으로 이동할 수 있는 핵심역량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으로 관측했다.국립의료원은 매각과 새로운 부지로의 이전을 통해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역량은 확보하지 않고 규모만 키운다면 더이상 진화하지 못한 채 현재의 3분면에서 답보상태가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윤 대표이사는 전망했다.
'연구중심병원' 진화 요소 두루 갖춰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조직통합능력 구축기인 2분면에서 출발한 두 병원은 2분면에 머무르기 위해 경쟁력 향상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조직능력을 증대하기 위해 서울아산병원은 울산의대 설립(1988년)·아산생명과학연구소 개소(1990년)·아산교육연구관 개설 등을, 삼성서울병원은 생명과학연구소 개소(1995년)·성균관의대 설립(1997년)·인성의과학연구재단 설립(1999년) 등을 통해 조직능력을 구축했다.
진료의 질 향상을 위해 서울아산병원은 1993년 국내 최초로 의료 질 관리팀을 가동, 질 향상 노력을 기울인 끝에 1995년 대한민국 기업문화상을 수상했다. 삼성서울병원도 국내 최초로 병상당 1전화 제도, 보호자 없는 병동 등을 통해 국가고객만족도(NCSI) 조사에서 9번 1위에 오르며 벤치마킹 대상병원으로 손꼽혔다.
이러한 조직능력 구축과 진료의 질을 위한 제품지향적 경영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와 세계 최초라는 연구업적이 쏟아졌다. 서울아산병원은 1990년 아시아 최초로 감마나이프를 이용한 뇌혈관 치료에 성공했으며, 국내 최초로 최외순환법을 이용한 뇌동맥수술(1990년)·풍선 확장술 및 관상동맥수술(1991년)·신장 및 췌장 동시이식(1992년)·심장이식(1992년) 등에 성공했다. 1993년에는 세계 최초로 스텐트를 이용해 누관폐색 중재술에 성공하는 등 많은 연구업적을 내놨다. 삼성서울병원은 1996년 위장관용 금속스텐트를 개발하는 등 국내 병원 가운데 최다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동종 췌장소도이식수술(1999년)·자가수혈방식 무수혈 간이식(2001년) 등에 성공한데 이어 2003년 간암고주파 열치료 세계 최다시술을 기록하는 등 연구중심병원으로 가기 위한 요소를 갖춰 나가고 있다. 윤 대표이사는 이들 두 병원의 진화 방향이 미국 MGH와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한계 넘지 못한 채 강북삼성병원 새 도약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1968년 100병상으로 개원한 고려병원은 12개 진료과에 203명의 직원을 확보하고 앞선 경영능력을 보여줬다. 1974년에는 개방의사제도를 도입, 각 임상과장을 계약직 관계로 운영하기도 했으며, 1972년 환자휴게소 설치, 1982년 병원계 최초로 친절 메뉴얼을 발간하는 등 시대를 앞선 경영능력을 선보였다. 고려병원은 1983년 의료계에서는 최초로 종합검진센터 영양상담 실시, 1988년 영양상담 전산프로그램 개발 등 제품력 상승을 이끌어 냈으며, 국내 최초로 만성 변비증 환자 수술(1969년)·인공수정체 삽입술(1979년)을 비롯해 세계에서 2번째로 신경교아세포종 확진(1976년) 등의 연구와 치료성과로 이어졌다. 고려병원은 1985년 미국 굿사마리탄병원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1987년 미국 오하이오주 라이트주립대학과 교육병원 결연을 통해 외연을 넓혀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조직역량에서 대학병원이 확보하고 있는 조직능력보다 우위에 서기 어려웠다는 것이 윤 대표이사의 분석.
1994년 삼성의료원에 합류, 강북삼성병원으로 개명한 이후 당뇨전문센터와 종합건진센터를 개설하는 등 2분면으로 진입하기 위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우수한 연구·경영능력 발판삼아 진화 성공
차병원=1945년 마포에서 시작해 1960년 차산부인과로, 1984년 강남차병원으로 성장을 거듭한 차병원은 국내 최초 나팔관 인공수정아기 출산(1986년)·동양 최초 난소없는 여성 임신 성공(1986년)·세계최초 미성숙난자의 체외배양 임신 성공(1988년)·국내 최초 난자내 정자주입법 임신 분만 성공(1993년)·국내 최초 복강경을 이용한 미세난관복원술(1994년)·세계최초 유리화난자 동결보존법 개발(1998년) 등 우수한 연구결과와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조직능력을 구축했다.
1996년 의대 설립인가를 시작으로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보건대학원 설립(2000년)·보건학부·의학대학원·생명과학대학원 신설(2001년)·임상의학연구소 개소(2001년)·차바이오메드벤처회사 설립(2001년)·인터넷 의료회사 차케어스 설립(2001년)·차바이오 메디컬센터 개소(2004년) 등을 통해 병원을 넘어 산업내의 통합을 위한 안정을 시도하며 2분면으로 진화했다.
싱가포르의 선별 지원 전략 배워야
래플즈병원=1976년 의원으로 출발한 380병상 규모의 기업형 병원인 래플즈병원은 싱가포르와 홍콩에 60여개의 래플즈클리닉과 7개의 치과클리닉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2002년 샴쌍동이 분리 수술을 통해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윤 대표이사는 샴쌍동이 분리수술은 경희대병원이 래플즈병원보다 16년 앞선 1986년에 성공한데 이어 한양대병원·연세대병원·전남대병원 등에서 잇따라 분리수술을 보고할 정도로 한국 병원보다 의료수준이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퍼브 메드(Pub med, 2008년 2월 기준)에 수록된 연구논문도 7편만 검색될 정도로 우수한 학문적 수준을 축적하고 있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현재 4분면에 위치해 있는 래플즈병원은 2분면으로 진입하기 위해 해외 유명 연구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싱가포르국립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
싱가포르 정부는 존스홉킨스병원 연구진들을 위해 국립대병원 병동 하나를 지원하고, 4개 생명과학연구소를 제공했으며, 70억원에 달하는 연구비를 별도로 지급하며 연구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진정한 병원의 고부가가치는 높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판단아래 싱가포르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선 것. 윤 대표이사는 싱가포르 정부처럼 병원의 진화단계를 인식하고, 장점만 선별해 지원하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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