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2015년 한화 유창식의 시범경기 117구
2015년 유창식은 시범경기에서 117구를 던졌다. 이후 선발 예정일을 앞두고 불펜 등판을 했다가 선발로 나가는 등 종잡을 수 없는 등판 일정을 소화했다. (사진=한화이글스)
2015년 3월 21일, 당시 한화 이글스 선발투수였던 유창식은 시범경기 삼성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유창식은 경기 초반부터 흔들렸다. 연속 볼넷으로 시작해 2루타 2개를 얻어맞고 2점을 먼저 내줬다. 이후에도 매 이닝 볼넷과 집중타를 허용하며 4회까지 8실점했다.
하지만 벤치에서는 유창식을 6회가 끝날 때까지 교체하지 않았다. 유창식은 이날 총 117개의 투구수를 기록했다. 컨디션 점검이 주 목적인 시범경기에서는 이례적으로 많은 투구수다. 다양한 선수를 테스트하고 기회를 주는 시범경기에서, 대량실점한 투수를 굳이 마운드에 방치한 것도 벌투 논란을 키웠다.
경기 후 김성근 감독은 "시범경기라도 던지게 해야 한다"며 "계획된 투구"라고 설명했다. 팔꿈치 통증으로 스프링캠프 기간 투구가 많지 않았던 유창식에 충분히 던질 기회를 줬다는 설명이다.
이후 정규시즌에서 유창식은 예정됐던 선발 등판 대신 불펜으로 등판해 '15구 연속 볼'을 내주는 난조를 보였다. 나흘 뒤에는 선발등판해 5.2이닝 6실점 패전을 기록했고, 그로부터 사흘 뒤 LG전에 또 선발로 나와 3.1이닝 3실점한 뒤 강판됐다. 그로부터 얼마 후 유창식은 KIA로 트레이드 됐다.
4. 1991년 LG 김태원의 12실점 완투패
1991년 8월 3일 잠실야구장. 이날 열린 빙그레 이글스전에서 LG 트윈스의 젊은 투수 김태원은 9이닝 동안 완투했다. 그냥 완투라면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었겠지만, 이날 김태원은 16안타를 맞으며 12점을 내줬고 무려 182개나 되는 많은 공을 던졌다.
김태원은 1년 전인 1990년 18승에 평균자책 2.51을 기록한 팀 에이스였다. 하지만 1991년에는 8월이 되기 전까지 7승(5패)로 '부진'했다. 더블헤더 2차전으로 열린 이날 경기에서 김태원은 1회부터 4회까지 매 이닝 2점씩을 내주며 4회까지 8실점했다. 4회말 팀이 3점을 따라 붙었지만, 6회초에 다시 3점을 실점해 끝내 추격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당시 백인천 LG 감독은 연패에 빠진 팀 분위기를 다잡고, 김태원의 나약한 정신자세를 질책하기 위한 의도에서 12실점 완투를 방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과는 이런 백 감독의 의도와는 반대로 흘러갔다. LG는 8월 한달간 8승 19패로 최악의부진을 보인 끝에 4위 싸움에서 완전히 탈락했다. 백인천 감독은 성적부진과 선수단과 불화 끝에 시즌 뒤 감독직에서 내려왔다. 김태원은 1993년까지 좀처럼 제 모습을 찾지 못하다 1994년이 되어서야 16승 5패 평균자책 2.41로 회복했다.
3. 2008년 SK 조영민의 불펜 120구
120구 벌투. 그 다음 해부터 1군 마운드에서 조영민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사진=SK와이번스)
2008년 4월 12일 히어로즈전에서 SK 우완 조영민은 2회부터 구원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7회까지 6이닝 동안 16안타 4볼넷으로 9실점하며 120개의 많은 공을 던졌다. 이날 경기에서 SK는 히어로즈에 10-12로 패했다. 김성근 감독은 조영민의 많은 투구에 대해 "초반 대량 실점으로 최대한 투수를 아끼려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무리 선배라도 그라운드 안에서는 적"이라는 김 감독의 말이 힌트가 된다. 이날 경기 4회에 조영민은 광주일고 선배 정성훈(당시히어로즈)에 몸에 맞는 볼을 던진 뒤 사과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야구장을 전쟁터로여기는 김 감독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해 53이닝 평균자책 3.74를 기록한 조영민은 시즌이 끝난 뒤 군에 입대했다. 2011년 팀에 복귀했지만 3이닝 2실점에 그쳤고, 이후 더 이상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2. 2011년 SK 김광현의 8이닝 147구
'감독님...'은 무슨 의미였을까. 김광현 본인만이 안다. (사진=SK와이번스)
2011년 6월 23일, SK 김광현이 KIA 타이거즈 상대로 선발 등판했다. 시즌 내내 부진하다 6월 들어 세 차례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던 중이라 이날 경기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기대와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김광현은 3회 김상현에 맞은 3점포를 시작으로, 5회 다시 김상현이 3점포를 맞고 6회에도 김주형에 솔로 홈런을 허용하는 등 이날만 3방의 홈런을 얻어 맞았다. 김주형의 홈런 이후 SK 불펜에서는 모든 투수가철수했다.
김광현은 7회까지 투구수 125개로 이미 한계를 넘긴 상황이었지만, 8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공을 던지고 또 던졌다. 8회가 끝났을 때 김광현의 투구수는 147구. 8이닝 14피안타 2볼넷 8실점의 참혹한 성적표가 남았다.
경기 다음날 김성근 감독은 김광현의 2군행을 지시했다. 김 감독은 147구 투구에 대해 "스스로 던지는 법을 모른다"고 질타했다. 김성근 감독은 147구 논란으로부터 얼마 후 "시즌 뒤 SK 감독직을 사퇴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고, 결국 시즌 중 경질됐다. 김 감독은 그해 시즌 초부터 재계약 문제를 두고 구단과 감정 싸움을 벌였다.
김광현은 김 감독 경질 이후 다시 1군 마운드에 돌아왔다. 하지만 2014년 이전까지는 좀처럼 데뷔 초기의 위력적인 구위와 밝은 미소를 볼 수 없었다. 많은 공을 던지면서 투수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신비한 종교적 체험은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1. 2016년 한화 송창식의 불펜 120구
2016년 4월 14일 두산전. 이날 한화 선발 김용주는 1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어 올라온 송창식은 4.1이닝을 던지며 무려 90개의 많은 공을 던졌다. 4방의 홈런을 맞았고, 점수는 12점(10자책)이나 허용했다.
송창식은 이미 전날 경기 불펜 등판해 15개의 공을 던진 상태였다. 그보다 사흘 전에는 선발로 나와 69구를 던진 상태였다. 9일부터 14일까지 6일 동안 송창식이 3경기에 등판해 던진 공은 총 174구에 이른다. 송창식은 과거 버거씨병으로 선수 생명이 끝날 뻔한 아픔이 있는 선수다.
투구수 80개를 넘긴 시점에서 송창식의 패스트볼 구속은 130km/h를 밑도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올해 송창식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지난해 대비 2km/h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눈을 질끈 감으며 고통스런 표정으로 공을 던지는 송창식의 모습은 차마 보기 힘들 만큼 처절했다.
벌투 논란이 일자 김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감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체를 이용하지 못하고 팔만 쓰고 있었다” “투수들이 감을 찾는 방법 중 하나다” “살도 빼야 하고 하체를 만들어야 한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송창식은 벌투 바로 다음날에도 운동장 20바퀴를 돌았다. 송창식은 1985년생으로 서른 한 살이 된 베테랑이다. 비난받는 김 감독을 진심으로 걱정해서 조언을 건넸던 야구계 인사들은, 벌투를 정당화하는 김 감독의 발언을 듣고 아연실색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