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댄서의 純情 / 朴信子>
1956년 영화 ' 自由夫人' 주제가
바른 말이지만, 우리나라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이 노예와 같은 삶을 살던 왕정 봉건사회였습니다. 결코 먼 옛날이 아닙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이 되고 미 군정에 이어 이승만 정권에 의한 민주주의가 실시됨으로써, 전쟁을 거친 가난과 기아 속에서도 자유의 물결이 전국을 휩쓰는 듯 하였습니다. 그러한 자유의 물결 속에 등장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댄스라 일컬어지던 사교춤이었습니다.
사교춤은 정말 매력이 만점이었습니다. 안 추어본 분은 정녕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황홀한 네온 속에서 느리고 빠른 음악에 맞추어 블루스, 탱고, 지르박, 트롯트... 슬로우 퀵~, 리버스 턴, 체인지... 남성은 이끌고 여성은 품에 안기어 돌아갈 때면 꿈속 같은 기분에 날이 새는 줄 알 수가 없고 카바레 안은 내일 지구가 무너져도 영원이 행복할 것만 같은 유토피아였습니다.
어느 날 발행부수 최저를 기록하던 서울신문은 댄스를 소재로 한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연재함으로서 국내 최고의 발행부수로 올라서게 되었고, 국군 헌병대위 박인수는 근무지를 이탈하여 댄스홀로 달려가 정신 나간 일백 수십 명의 여대생들을 사교춤으로 꼬여 처먹었습니다.
고발되어 붙들려온 박인수는 검사의 신문에
“한 사람도 처녀가 없었습니다.”
라며 자신만만하고도 뻔뻔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당시 말로만 허울 좋은 자유이고 민주주의였지 전통적인 봉건사상의 사고방식은 국민들 생각에서 좀체로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그토록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박인수 사건>의 재판결과는 더욱 놀랍기만 했습니다.
1955년 7월 22일. 서울지방법원 권순영 판사는
“국가는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에 대하여 보호한다.”
라고 전제한 뒤,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을 밝혀두는 바이다."
라며, 결혼을 빙자하여 수많은 미혼 여성을 농락한 혐의로 기소됐던 박인수(당시 26세)에 대하여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정의감에 불탔던 나는 정말로 분개했습니다. 하지만 국민학교 1학년에 불과했던 나는 나이가 너무 어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여전히 자유대한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변화는 찾아오는 법, 드디어 5.16이 터졌습니다. 이때부터 곰팡내 나는 봉건적 사고방식은 무너지기 시작 했으며, 우리 생활은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하는 혁명의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도덕도 사고방식도 변했으며, 여성도 집에서 살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산업의 일꾼이어야 한다는 남녀평등의 조짐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재건의 깃발이 펄럭이던 당시, 사회적으로 결코 용인될 수 없었던 종로의 어느 카바레에 노래하는 한 여성이 살며시 등장했으니, 그 이름은 다름 아닌 박신자였습니다.
얼굴 없는 무명의 가수 박신자!
그녀는 어둠침침한 댄스홀 무대 위에서 <댄서의 순정>이란 노래를 부르다가 뭇 남녀들의 가슴 속에 흔적만 남겨놓고는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연약할 것만 같은 순정의 힘은 마치 자갈밭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잡초들처럼 끈질기게 노래를 전파시켰습니다. 음지에서 음지로, 입에서 입을 타고 날개 없는 노랫소리는 전국으로 퍼져나가며 세월은 또다시 흘러만 갔습니다.
1980년대 중반, 느닷없이 한 대학가에서 사라진 것만 같았던 그 박신자의 <댄서의 순정>이 잠시나마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얼굴 없는 가수 박신자는 결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 모습은 다시 볼 수 없고 소리만 남은 노래 <댄서의 순정>.
오늘 밤은 그 박신자의 생생한 육성을 다시 들으며 긴 잠으로 빠져들어 볼까 합니다.
~이상은 재미꺼리로 모처에서 가만히 한 주걱 퍼왔슴다.~
출처 <돌, 이종섭 문학공간>
1950년대 여가수 박신자는 부드러운 인상의 예쁜 얼굴로 사랑받았다.
그녀의 대표곡 댄서의 순정이 수록된 음반 재킷에는 단발머리에 블라우스를 입은 세련된 모습이 실려 있다.
짙은 눈썹에 갸름한 얼굴은 지금의 대중에게도 어필할 만한 외모다.
가수 주현미의 큰어머니이기도 한 박신자는 23살이란 너무 젊은 나이에 요절해 안타까움을 샀다.
주현미의 큰 엄마 두분이 한국인이고 어머니도 한국인이다.
댄서의 순정은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을 영화한 1956년영화 '자유부인'의 주제곡'이다.
춤바람난 당시 사회를 풍자한 가사로 금지곡이 된 노래이지만
수많은 가수가 리바이벌한 노래로 더욱 사랑을 받는 노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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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자 / 이채연 - 댄서의 순정
1959
김영일 작사 / 김부해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aMBFCz8OtdM
박신자 ( 00: 00 ~ 03:15 ) / 이채연( *03:15~ )
영화 자유부인의 한장면(1956년), '자유부인' 김정림(金靜林)
김정림의 본명은 김복순, 당시 26세였다.
신인배우 김정림은 술집 여급이였는데 감독의 제의를 받아들여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최은희씨에게 주연 제의를 했으나 당시에는 어림도 없는 키스씬 때문에 거절하였고 기존 배우들은 아무도 역을 맡으려 하지 않았기에 비어홀 여급중에서 고르기로 했다는 비화가 전해진다.
검열로 상당한 분량을 삭제를 당하고도 1956년 당시 10만 관객을 돌파한 어마어마한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한 성공을 거둔 여배우였지만 다른 영화에서는 흥행성공을 이루지 못하였고 성적인 호기심만 가득한 사람들이 그녀의 사생활까지 캐고 들었고 정상적인 생활을 이루기 어려워 언니가 운영하는 술집 마담으로 다시 전락하여 불운한 삶을 살아야 했다고..
첫댓글 옛날을회상하며 엄청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ㅎ
엄청이나요 ㅋ~
참 재미난 말씀 듣습니다.
아는 이바구도 재탕 삼탕 또 그 맛은 그 맛으로 다르죠.
잠시나마 즐거우시고
회상의 시절에 행복하셨기를 바랍니다.
곡조도 따라 목 운동도 하시고요.
부디 건강하시고 모쪼록 덜 더우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국가는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에 대하여 보호한다
ㅎㅎㅎ
국가가 왜?
개인의 정조를 관리 감독 하죠?
서울지방법원 권순영 판사
그 당시는 가히
획기적인 판결문이었겠네요!
창녀가 파출소에 붙잡혀가서는
언제 나라가 내 거시기를 관리했대요?
라고 했답니다.
제가 5살적 이야기를 이리 술술 하시니
좋아요님은 적어도 90세는 되신 듯합니다.
죄송합니다.
단군 조선 얘기하면
4356세 ?
불필요한 계산이고 ㅎ그건 아니지요
그려려니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