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소드 4. 운명 ■
"우리 딸 뭐하고 있니?"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흘끗 보시는 아빠 장창석씨.
"독서하는거야? 어~ 기특하다. 오후에 아빠 가게로 잠깐 와. 알았지?"
방문이 닫히자 만옥은 손에 들고있던 서울시 전화번호부 책을 다시 열라 뒤적거린다.
"이게 모야~~ 암만 봐도 784에 2002 만큼 입에 착착 붙는 번호가 없네. 간만에 거기 함 돌려봐? "
따르르릉~~
<<< 여보세요 >>>
'뜨악~ 또 그사람이다. 목소리가 은근히 내스탈이란 말이지 훗'
"어머~ 한동안 뜸했었죠? 올만예요. 저 아시죠?"
<<< 제가 댁을 알까...요?>>>
"아실껄요? 잘 아실껄요. YOU WILL KNOW MY NAME" (잽싸게 찰카닥)
<<< 이 이 이봐욧!!! >>>
'또 그 여자다. 한번만 더 전화와봐. 지 소원대로 그 이름 알아내고야만다. 근데 목소리가 좀 귀엽단말이지~~ '
그날 오후, 장만옥과 심덕선 그리고 연전미팅에서 만나 친해진 핑클파마 왕조현은 아지트 불타는 떡볶이에서 만나 먹으랴 노가리 까랴 열라 해피 투게더중이다.
"야 나 이제 아빠 가게 가봐야돼. 이 언니가 계산해 놓을테니 김밥이랑 순대도 시켜먹어"
불타는 떡볶이 문을 나선 만옥
'아~ 싱그럽고 기분 좋은 날씨야. 하늘이 저렇게 푸르다니...'
그 말 하자말자 만옥 뺨에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
왠열 하늘은 맑은데 비는 쫙쫙.... 여우비가 내리네, 여우~~~~~
에라 모르겠다. 두 손으로 이마 앞을 가린채 뛰어가는 만옥.
또 왠열
갑자기 뺨이 아닌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남자가 말한다.
"저... 괜찮으시다면 같이 쓰고 가시죠. 어디까지 가세요?"
'뜨악~~ 분홍 남방이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난 핑크 셔츠 입은 남자보면 약해지는데... 목소리는 또 왜 일케 다정다감한 거야'
고개들어 분홍남을 바라보며 살포시 말하는 만옥.
"정류장까지요. 고마워요."
'뜨악~~~~ 이뿌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 똑같이 생겼지??'
"실례지만 저의 여신을 굉장히 많이 닮으셨군요. 아름다우십니다..."
"이뿌단 소린 좀 듣고 살아요. 근데 누굴 닮았단 소린 첨 듣는데... 누구??"
"영화 열혈남아라고 보셨습니까? 거기 덕화 형님의 그녀, 장만옥 여신님이랑 늠흐늠흐 닮으셨습니다."
'뜨아아아악~~~~~ 장만옥이라고라고라~~~~ 이거 신의 장난같은 운명인거야? 도대체 뭐야??'
그러나 전혀 내색않는 만옥.
세상은 이미 사라졌고 오롯이 둘만의 우산속 세상만이 존재한채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어느새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가 왔군요. 전 윤정봉이라고 해요. 실례되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꼬오옥 꼬오옥~ 뵙고싶습니다. 정확히 일주일뒤 토요일 오후 네시,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곳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신촌 '주왕새'로 와주세요. 꼭이요. 꼭이요. 오실때까지 기다릴께요~~"
버스 계단을 오르며 살짝 미소짓는 만옥.
'토욜 네시 신촌 주황새?'
"앗차~~ 이름 물어봐도 될까요?"
착석한 만옥의 유리창 너머에서 소리쳐 묻는 정봉.
만옥, 두손을 입에 모은채 소리친다.
"You will know my name~~~ 훗~ "
(이건 만옥의 진심어린 기약)
"뭐라구요? 윤이씨? 유인나씨??"
성큼 다가온 운명의 날.
그녀를 만났던 날, 이태원에서 어렵사리 찾은 Destruction 형님들의 티셔츠를 빼입고 일찌감치 주왕새 오픈하자마자 들어서는 정봉.
주왕새.
"주다스에 이왕이면 새버스"
80년대 락, 메탈의 척박한 사막지대 대한민국 서울에서 대학로 MTV와 함께 유유히 피어나 락메탈 리스너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준 뮤직바. 먼 미래 뉴밀레니엄 시대에 헤비메탈의 메카가 된 신촌 주혹새의 전신이기도 하다.
"정봉옵, 오늘 군바리룩 쥑인다긔, 메탈티에는 역시 개구리 바지가 갑이다긔. 담엔 거기다 디스코 청바지 갈기갈기 찢어 입고 다녀보라긔. 열 여자 다 넘어온다긔."
엄지척을 해주며 정봉을 맞는 주왕새 알바.
"고마워 로숙아. 심미안이 남다른 니가 칭찬해주니 기분 좋다야. 오늘 진짜 중요한 날이라 신경 좀 썼어."
주말 주왕새는 오후 두시 오픈인데 정봉이처럼 문앞에서 기다렸다 쏜살같이 입장한 인간들이 벌써 한둘 아니다.
"야 윤정봉 이게 얼마만이야."
웃으며 다가오는 그녀는 그시절 드물게 남녀공학을 다녔던 정봉의 고교 동창이다. 졸업후 노량진 3수까지 생사고락을 같이 했으나 결국 정봉을 배신하고 대학에 철퍼덕 붙었다. 그후 4년만의 해후가 여기서 이뤄진거다. 참고로 그녀는 정봉 어머니 라미란 여사의 사촌의 육촌의 당숙의 장손녀로 족벌 파고 들어가면 정봉이와 십일촌쯤 되는 친척관계 성립된다.
"어이 반갑다 라이지. 너 졸업하고 기자 뛴다며? 잘 돼가냐?"
"그게 말이지...사실 나 기자질 때리치고 택시 운전해. 대방동 레인보우 택시회사라고 들어봤냐? 취재차 갔다가 김도기란 기사님한테 조온나 뿅갔단 말이지. 그래서 전업까지 해가며 올인중이야. 울집에서 알면 내 다리몽둥이 작살나니까 일단 비밀로 해주라."
"이지언니 올만이다긔. 간만에 언니 주제가 틀어야겠다긔."
테이블에 오비맥주랑 칠성 사이다 놓고 가는 로숙.
잠시후 영상은 가까운 미래형 라이브, 레닌그라드 라이브에서 기타 돌리기 신공과 함께 한없이 긴 다리를 쫘아악 혹은 하이킥을 펼치는 잉위 맘스틴의 Rising Force로 달구어진다.
"넌 한다면 하고야마는 녀석이지. 잘 해봐 그 기사 양반이랑."
"당근이쥐. 기억나? 나 고딩때 영록이 오빠 팬클럽 임원이었잖아. 근데 너한테 친구 먹자니깐 니가 그랬잖아. ~~ 나 헤비메탈이야. 난 니 친구가 아냐~~
미친 새끼... 그때부터 내가 드럽고 치사해서 헤비메탈 듣기 시작했는데 결국 나도 니 꼴 나고 말았지머. 난~~ 헤비메탈이야"
"야 라이지 Are you dead yet? 너 택시 몰고 오는거 봤는데 영업중에 땡땡이쳐도 되는 거냐?"
"야 파파워(파이어파워) 택시 신경 꺼. 너 여전히 주왕새 출근도장 찍고 다니냐?"
"어머 로인이언니 반갑다긔."
"여전히 활기차보여요, , , "
"저어어기 봐. 흥찬이라고 내가 아는 녀석인데 밴드 멤버 구한대. 졸라 빡센 음악 할려고 갈고 닦는 중이래."
어쩌구 저쩌구~~
그때 또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갑자기 기이한 바람 소리가 들린다
휘이이잉~~
그리고 광채가 난다. 아아 눈이 부시다. 대낮에도 한밤같이 어두운 주왕새의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눈이 부셔 눈을 뜰 수가 없다.
"정우성아냐?"
"정우성이 누구야?"
"미래형 영화 비트에 나오는 정우성 몰라?"
"정우성 아니다긔. 여기 건물주 홀장주시다긔."
"사장님아, 오늘 계약연장일인데 월세 인상 각오되셨나긔?"
초조한 눈빛의 주왕새 사장과 밀어부칠까 말까 망설이는듯한 눈빛의 건물주 홀장주 사이에 암묵적인 기운이 흐른다.
"마실 다니다 들었는데 사장님이 새중에 주황새를 좋아해서 가게 이름을 이렇게 지으셨다더군요ㅋ"
"아이고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새는 따로 있습죠. 사글새라고.."
"사글새...... 바로 그 사글새가 3년째 여기만 요지부동인데....허~~~"
"그렇죠. 그게 다 장주님의 하해와 같은 인락 성품때문이지요."
(로숙아, 큐~)
스피커에선 Child in time이 흐르기 시작한다.
아~아~아~~~ 아~~ 아~~ 아~~~~~ 이언 길런의 피를 한바가지 토하는 초절 샤우팅이 메아리친다.
홀장주의 눈망울이 촉촉해진다.
"사글새는 잡으면 안되죠. 같은 사글새로 몇년 더 훨훨 날아봅시다^^b"
"장주님...ㅜ"
주왕새 사장의 눈망울도 촉촉해진다.
웅성웅성거리는 단골 패거리들.
"건물주 솔차니 주겨블구마이"
"홀장주 멋지다요"
"저기요 사장님, 건물주님한테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비는 오지않아도 토요일엔 빨간 장미를?"
댄싱보이 무룡뇽이 없는 탓에 누구도 추앙 안한다 뿐이지 모두 감동 존나 먹었다.
구석탱이로 가 시바스 리갈 한병까지 주문해 음악 끝날때까지 앉아듣는 홀장주.
'어머니... 무릇 사업가는 모질어야하건만 소생은 번번이 그러질 못하는군요ㅋ......'
음악이 작열하는 가운데 한곡이라도 더 듣고 더 보겠다고 분주히 신청곡들을 날리며 환담에 환담을 나눈다. 그렇다 Show must go on 이다.
벽면에 걸린 에디 클락의 바늘이 네시를 향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여기는 신촌 지하철역.
만옥은 어느 출구로 나가야할지 난감하다.
지나가는 이들의 도움을 빌릴 수 밖에.
"저기... 신촌 주황.... 혹은 주홍.... 새란 곳에 갈려면 어느 출구로 나가야 하죠?"
"주황색 새 가게요? 그런거 본 기억 없는데 혹시 저기 말씀하시는게 아닌지.... 4번 출구 그레이스 백화점 뒷쪽에 주몽새라고 전통찻집이 있어요. 새 파는 곳은 아니지만 왠지 거기 말씀하시는것 같네요."
"아~ 맞을거 같네요. 약속장소라서 새 파는 곳은 아닐거예요. 감사합니다^^"
콩닥콩닥 설레는 가슴을 안고 약간 긴장된 발걸음으로 주몽새를 찾아가는 만옥.
밤 10시.
설마설마 하며 좀 더 기다려보자 좀 더.... 라며 끌어온게 벌써 여섯시간을 넘었다.
주왕새와 주몽새의 바깥은 이미 하나둘씩 켜진 가로등 불빛들로 반짝인다.
밤 11시.
일곱시간을 꼬박 찻집에 앉아 기다리던 만옥은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주몽새를 떠나는 그녀의 마음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실망감과 상처로 얼룩져 버렸다.
'절대 그럴 사람으로 안보였는데... 날 갖고 논 거였어... 도저히 믿기지않아...'
음악 신청하며 단골들과 환소하던 정봉의 얼굴은 갈수록 침통해져갔다.
자정 2분전.
테이블에서 빠로 옮겨갔다. 굳어질대로 굳어져버린 그의 얼굴은 흑빛에 가깝다. 처음으로 마음을 설레게 한 여자에게 한없이 실연에 가까운 퇴짜의 아픈 칼침을 맞고 깊이 베인 정봉.
"사장님... 제가 지금 어떻게 보이세요?"
"이런 말씀 죄송합니다만... 시원하게 차이신것 같습니다."
"역시 사람 볼 줄 아시네요. 단 한번밖에 못본 사람인데도 어떻게 이렇게 마음이 아플 수 있는거죠? 전 지금 아고니에 빠졌어요. 무엇보다도 너무 보고싶은데... 다시는 볼 수 없단게 정말 고통스럽네요. 제마음을 달래줄 제 형님들의 곡 하나 부탁드립니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레코드판을 뽑아 턴테이블에 얹는 사장님.
https://youtu.be/d92XOX1n7Bc?si=g-MGGpb7a_ENzUmn
집에 돌아온 정봉은 책상앞에 우두커니 앉았다.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훔친다.
그리곤 손이 움직이는대로 자신의 마음을,,, 시를,,, 적어 내려간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바랄순없어도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마라.
후회하지마라.
아~~~바보같은 눈물
보이~~지 마라.
사......
흑흑흑....
야심한 시각, 방문 열고 책상앞에 앉아있는 큰아들 등짝을 보며 엄마 라미란 여사 미소를 머금는다.
'이렇게 밤늦게까지 공부하다니 어구구 대견해. 이제 우리 큰아들 8수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스마트폰 아니 PCS폰 아니 삐삐 번호만 알았어도 됐을 일이었건만 그저 얄궂은 운명밖에 탓할 수 없다.
그로부터 이주일후.
88올림픽 피켓걸로 선정된 덕선이 축하해주러 처음으로 덕선 집을 찾아가는 만옥.
같은 시각, 정봉은 대여한 북두신권 몇권을 봉지에 담아 동네 까치 만화방에 반납하러 집을 나설 준비.
대문이 열리며 안팍에서 마주친 두사람
"어...어... 어.... 어떻게 여길..."
"정..정... 정봉씨 설마 여기 사시는 거예요??? 저 덕선이 친구에요."
"어떻게 이런 일이............"
대개 드라마를 보면 오해로 엇갈린 남녀들이 절대 해명을 안한다. 그래서 오해는 더욱 증폭되어 가기만하고 시청자들만 속 터진다. '말을 하라구 말을! 그런 일 있었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될껄 왜 왜 말을 안하는거냐구!'
당근 안하지. 그래야 드라마가 되니까.
이건 드라마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정봉과 만옥은 지난 토욜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서로 다 얘기한다. 주왕새와 주황새 혹은 주홍새 그리하여 주몽새 사연까지 탈탈 털면서.
얼마나 다시 보고 싶었는지, 이미 얼마나 그리웠는지.... 눈물이 맺힌 둘은 뜨거운 포옹을 나눈다.
북두신권 봉지는 이미 집마당에 나가래된지 몇십분.
"이게 다 제 잘못이에요 만옥씨. 하필 호출기가 고장나 한달 정도 삐삐없이 다니고 있었거든요. 그때 시간만 됐어도 만옥씨 번호라도 물었을건데..."
"우선 집 전화번호라도 가르쳐드릴께요. 새 삐삐를 아직 안샀거든요."
만옥이 가방에서 꺼내준 메모지와 펜으로 전화번호 적어 건네는 정봉.
메모지를 받아든 만옥.
순간 눈에 경련이 일어나며 손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린다 부돌부돌부돌...
윤정봉 784-2002
'왠지 목소리가 낯설지 않더라니........ 난 죽어도 죽어도 정봉씨한테 '이 말'만은 안할거야... 영원히......ㅜ"
https://youtu.be/3Y-J7sBT_no?si=1lcWzl8CdARXiy-J
*갈수록 유치함이 심화되고 있지만 그래도 꾸욱 참고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첫댓글 아주 재미집니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도룡뇽이 출연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왠열 추앙합니다.
무룡농 후후
@헤비메탈 하하하
@무명
ㅋㅋㅋㅋ
주왕새 ㅋㅋㅋ
인어아가씨에서 남주 이름이 주왕이었던것 같은데요 후후
아리영.. ㅋㅋㅋ
이주왕~!!
아쉽게도 2016년에 사망하셨죠~!! 🙏
@Bastard 🙏
아 이런 슬픈 일이 🎗️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최고로 재미집니다 후후
개그 작가 하셔도 충분할듯 합니더 우우
GRRRR~!!! ^^ 이클립스님의 초위력적인 하이 스피드 시트콤에 T.K.O...^^ 찐~~~~ 재미집니다!!! GRRRR~!!! ^^
왠열.. ㅋㅋㅋ
으역시 👍👍
왠열~~~*^^
너무 재밌어요!!!
홀장주ㅋ 좋네요^^b
화랑님이 연재하던 무협지 생각나네요~!!
왠열!!
(We Are) The waen-yeol~!!
You Will Know My Name~~~^^;;
장만옥 ㅋㅋㅋㅋ
오늘편 아주 굿이네요 👍👍👍
아주 재미집니다^^
왠열~~~^^*
왠열 주겨블구마이
저 전화번호로 전화하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