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14]‘아름다운 친구’들이 또 다녀가다
그제 오후, 느닷없이 서울에서 친구들 셋이 포항을 거쳐 우리집으로 내달렸다. 거기에서 여기가 어디라고?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얼마 전(6월 5일)에도 비슷한 멤버 넷이 와 그날밤 근사한 만찬을 우리집 마당에서 ‘한 판’ 벌였는데, 한 달도 안돼 온 까닭은 무엇인가? 그만큼 내가 편해서일까? 노부가 계셔도 크게 상관없지만, 100여일 전 끝내 요양원에 가신 덕분에, 솔직히 조금은 신경이 덜 쓰이고 편한 점도 있겠다. 이들은 1년에 대여섯 번 불쑥불쑥 내려와 ‘자기 집’처럼 2,3일 편하게 쉬었다간다. 별장인 셈인데 거리상 250km가 넘으니 자주 오기가 쉽지 않은데도 예정에 없는 내방이어서 더 반갑다. 한 친구는 꼭 자갈마당에 텐트를 쳐 홀로 자고, 다른 친구들은 코골이가 심한 탓에 서재와 사랑방에서 따로따로 잔다. 나는 오면 반갑고, 가면 아쉽다(손자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던데, 그 이상이 아닌가). 게스트룸을 만들어놓은 게 얼마나 잘한 일인가. 심심할래야 심심할 틈이 없다.
아무튼, 오는 길에 남원 인월IC로 빠져나와 ‘K-닥터’로 유명한 명인의 식당에서 삼겹살, 목살 등을 몽땅(15만여원어치) 사가지고 왔다. 당연히 한데(야외) 멋드러진 식탁에서 만찬이 이뤄지고, 한 친구는 굽기에 바쁘고, 한 친구는 손 하나 까딱 안하면서 이것저것 주문과 시키기에 바쁘다. 그런데도 밉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 집주인(나)는 연신 싱글벙글이다. 자리가 무르익자 음치를 무릅쓰고 돼지 멱따는 소리로 장사익이나 정태춘의 노래를 뽑는다. 못말린다. <황토강으로>을 부르다 거의 통곡 수준으로 중동무이한다. 임실 운암에 사는 빙형은 전화를 받자마자 30분도 안돼 상추를 한 박스 싣고 달려왔다. 이것도 고마운 일.
보름 전에는 재경동문회에서 관광버스 두 대를 빌려 남녀(전라고6회와 전라여고1회) 60여명이 전주로 하루 소풍을 왔다. 취향정이 있는 덕진연못을 아시리라. 우리 모두 추억의 장소가 아닌가. 졸업앨범 사진을 그곳에서 찍었다. 첫 데이트를 그곳에서 한 친구들이 태반일 것이다(나도 약혼사진을 그곳에서 찍었다). 여고생 아니면 여대생과 데이트를 하며 보트도 저었다. 어떤 친구는 오랜 짝사랑 친구와 첫 키스를 했단다. 한 여고생은 덕진초교를 나왔다면서 겨울엔 썰매를 탔다고 자랑했다. 지금은 연못 한 가운데 멋진 한옥을 짓고 도서관을 만들어놓았다. 물을 완전히 빼 연꽃이고 뭐고 볼 일이 없어 밋밋했지만, 이것도 추억의 장소인지라 모처럼 재밌었다.
점심을 공설운동장 옆 <한국관>에서 비빔밥 정식을 먹었다. 전북지역 동문친구 10여명도 몰려나와 모처럼 반가운 해후와 악수세례에 바빴다. 그날은 6월 6일(쌍육절)이었고, 점심을 함께 한 친구들이 공교롭게 66명이었다며 신기해 했다. 점심 후 일행은 옥정호 출렁다리 붕어섬으로 향했다. 임실군의 역점사업 <섬진강 르네상스>으로 일환으로 출렁다리를 개방, 제법 관광재미를 보는 모양이다. 붕어섬은 국사봉에서 바라보면 영락없이 금붕어 모양이다. 트래킹코스는 1시간 반이지만, 한옥마을도 한바퀴 둘러봐야 하니,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아무튼, 그렇게 올라간 친구들을 그제 또 보니 반갑다. 한 친구가 우리집 처마에 홍어를 한 마리 매달아놓고 갔다(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전화 한 통 없이 다녀가다니 별나다. 그 친구는 별나서 그런지 별내에 산다). 꾸덕꾸덕해진 홍어를 그제 밤 직화로 구워 쭉쭉 찢어 고추장에 찍어먹으니 이런 별미가 없다. 흑돼지 삼겹살은 또 어떻고? 밤이 깊어지도록 좋은 얘기를 많이 나누는 밤은 아름답다. 내가 뭐라고 이 친구들은 그 먼 길을 시도때도없이 달려오는가? 참 나만큼 복 많은 친구도 흔치 않으리라.
다음날, 오전에 시간이 있다해 두 친구와 성수산 상이암을 다녀오자고 했다(한 친구는 컨디션이 안좋아 고독을 즐기겠다고 함), 상이암을 가다가 부안 출신 친구가 마이산 돌탑을 실제로는 보지 못했다해 방향을 틀었다. 마이산 돌탑하면 나의 ‘전공’이랄 정도로 소싯 적부터 잘 아는 곳이다. 이갑룡 처사라는 분이 30여년에 걸쳐 120여기의 돌탑을 쌓았다는데, 현재는 80여기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음양을 상징하는 천지탑에 대고, 할머니는 50년 동안 총생들의 건강과 행복만을 빈 유서깊은 곳이다. 처음 와본 친구는 못내 신기한 모양. 인증샷 찍기에 바쁘다. 다음에는 식구들과 벚꽃터널이 조성된 입구에서부터 걸어오겠단다(그 다짐이 지켜질까?). 우리는 주지 스님의 전화로 무사통과, 탑사주차장에서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냉천할머니 찬스). 5년 전, 어머니 49재를 탑사에서 주지스님 주재로 지냈다. 40재가 4시간 반이나 진행되니 산 사람이 죽는 줄 알았었다. 하하.
아침을 누룽지를 끓여 바쳤는데도 못끓였다고 투정이다. 참 재밌는 친구들. 폭설이 내리던 어느 겨울엔 졸지에 KTX를 타고 와버렸다. 무릎까지 쌓여 있는 눈 위에 넉장부리를 하며 인생사진을 찍기도 하고, 집을 고칠 때에는 애쓴다며 이것저것 챙겨 달려와주던 친구들이다. 3년동안 같은 반 한번 안했는데도, 10대 후반에 같은 교문을 3년 같이 다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금은 솔직히 형제 피붙이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고 늘 만나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데,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친구들을 배려하는데 일등선수들, 참 아름다운 친구들이다. 점심을 완주 매운탕 맛집에서 하겠다며 3인이 떠나자 허탈하다. 다음주 서울에 가면 번개팅을 해야겠다며, 아내가 만들어놓고 간 오이냉채미역국으로 우걱우걱 점심밥을 밀어넣고, 오후내내 300여평의 뒷밭에 들깨모를 옮겼다. 저녁에는 친구들이 남겨놓고 간 목살을 동네친구들 불러 뒷풀이를 했으니, 친구들 잘 둬 내가 칭찬을 허벌나게 받은 날. 어제도 그렇게 하루가 갔다. 할렐루야. 확실히 나는 ‘황홀한 은퇴자’임에 틀림없는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