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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잡담 하나.
요즘 읽고 있는 책들 중 하나는, '아르토 파실린나'라는 핀란드 작가의 [기발한 자살여행].
1990년 가량 출판된 책인데 무려 20년 가까이 지나 한국 독자들에게 새로이 회자되고 있는 것 같다. [기발한 자살여행]은 자살을 꿈꾸는 각양각색 멤버들이, 단체자살에 적합한 장소를 물색해 이동하는 여정중의 에피소드를 해학적으로 다룬 소설. 헬싱키에서 출발한 이 절망자들은 저 멀리 북유럽의 끝, 차가운 바다와 신화가 서린 땅, 노르카프로 향한다... 아직은 반도 독파하지 못했기에 결말은 모르지만, 대충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식의 음울함과 여타 교훈적/종교적 색채의 자살론들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 분명하다. 냉소와 해학, 그리고 긍정(결국엔!)이 아스라히 묻어나겠지.
자살처럼 그 결론이 명징하고(자살은 절대 안 돼!) 동시에 그 속성에 논란(자살은 인간만의 특권이다, 최고의 자유의지의 실현이다,,,)이 이는 주제가 또 있을까. 자살을 키워드로 한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나름 리서치를 해 봐도, 그중 8할은 사후세계와 남겨진 자들의 고통, 겁쟁이와 패배자란 비난을 빙자한-_- 위협투들로 가득하다. 뭔가 아쉬운 노릇이다.
중국 동남부, 광시 자치구의 [양수오].
기묘한 카르스트 지형과 솟아오른 기암괴석으로 중국 산수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 마을에,
이름모를 어느 네티즌은 *Heaven(또는 Utopia)*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 곳에서 보낸 몇 주는 절대 잊지 못 할 것 같다...
(google image)
어쨌든, [자살여행]을 읽으며 내가 일찍이 구상했던 소설 테마와 비슷한 데 놀랐고,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자살여행에 적합한 장소'라면 어디일까, 상상의 나래를 펴 보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면, 장소도 드라마틱한 게 이왕이면 낫잖아 ㅋㅋ)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차디찬 북해(North Sea)와 신화의 나라 북유럽도 좋지만, 그보다는 잠시만이라도 릴랙스하고 열대과일을 원없이 먹을 수 있는 인도양이나 남태평양의 이국적 해변이 나에겐 더 알맞지 않을까.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까지 북유럽의 칼바람을 맞으며, 후덜덜한 물가에 벌벌 떨며 자괴감을 느끼고 싶진 않으니깐. 그러나 치명적인 딜레마라면,
1) 정말 죽겠다는 마음이면 열대과일이고 쌔끈한 서핑보이들이고 눈에 들어올까,
2) 망망대해와 터키옥석 바다, 반짝이는 밀가루삘 모래들과 현란한 산호를 보면, 자살의지가 한층 약화되지 않을까-란 점.
최근에 친척의 출산소식을 접한 마당에, 아무리 픽션용이라곤 하지만 이런 상상을 하고 있자니 솔직히 묘한 죄책감도 든다. 하지만 탄생과 삶, 인간의 자유의지, 터부에 대한 회의가 부쩍 강해지는 요즈음, 설령 그것이 극히 원초적이고 위화감 풍기는 주제라 할지라도 -자살이나 살인같은- 애초에 논의나 의심, 사유 자체를 가로막는 것이야말로 무언의 폭력과 역겨운 교조주의적 발상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발리의 한적한 방갈로나 저렴한 홈스테이에 한 두달 쯤 쳐박혀서 글도 쓰고 음악도 듣고,
낮에는 해수욕이나 서핑을, 밤이면 르기안의 클럽에서 빈땅맥주를 마시며 춤추는 사람들을 곁눈질하고 싶다.
태국북부의 빠이, 라오스의 므앙씬와 함께 나의 R&R(릴랙스 & 레스트 ㅋ) 로망의 그 곳들.
(google image)
[(중국영토에 속한) 실크로드]
잡설이 길어졌다.
실크로드는 수 세기에 걸쳐 죽음과 피의 냄새가 아로새겨진 곳임에도, 자살여행과는 전혀 코드가 안 맞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 곳에 가면 왠지 그런 픽션적 상상조차 불온한 느낌이 든다. 무수한 병사들과 고고학 탐사대, 대상(캐러반)들의 피가 스미고 뼈가 묻힌 황폐한 사막들임에도 (그 유명한 '타클라마칸' 사막은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란 뜻), 그 척박함 속에서 동서양의 교역루트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한 고대문명들이 처연할 정도로 화려하게 피어난 곳이니까. 살인적인 더위를 자랑하는 투르판의 지하수로 '카라즈'와, 숨막히는 더위 속에서도 묵묵히 관광객을 위한 수레를 끄는 자그맣고 말없는 당나귀, 그리고 둔황의 거친 사막과 모래동굴 속에서 쏟아져나온 고대의 진귀한 벽화와 조각들, 바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중국 서부 우루무치의 현대적인 외양과 야경을 바라보노라면- 생명의 본능과 삶의 의지가 가슴 아플 정도로 절절하게 온몸 세포에 알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조건적인 절대성이 가끔은 더 아프다...)
고대 동서양을 잇는 교역로, 실크로드.
장건에 의해 개척됐다는 이 역사적인 루트를 따라, 각종 교역품들이 중국 사막과 중앙아시아 고대도시들, 중동을 거쳐,
터키 안타키아에서 실제적인 육로상 이동을 마치고 그리스, 로마 등지로 운반됐다고 한다. (그 반대도 비슷)
유라시아 대륙 아시아 횡단을 얼추 마치고 안타키야 부근에 도착했을 때의 감회란... ㅎㅎ
어릴 땐 실크로드 하면 막연하게 *중국 쪽* 루트(서안-란저우-둔황-투르판-(호탄)-카슈카르 등지를 잇는)만 떠올렸는데,
정작 중앙아시아의 생소한 도시들과 이란, 터키 등에서 실크로드의 흔적들을 접할 때의 놀라움과 반가움이란- :)
이번 포스팅에서 다루려고 하는 *중국 쪽* 실크로드.
통칭 시안에서 시작해, 란저우, 둔황, 투르판(가끔 호탄, 우루무치도 포함)를 거쳐 카슈카르에서 마무리된다.
나의 오랜 열망이었던 유라시아 대륙 육로횡단에 기폭제가 되었던 것은, 시베리아 횡단열차(TSR)과 함께 바로 이, 실크로드 횡단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까마득히 어려서부터, 내가 모르는 미지의 저 곳 너머로, 서쪽으로, 험한 사막과 산맥을 넘어 떠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동경이자 꿈이 되었고, 나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 물론 거기에 일조한 역사, 문학, 그 외 온갖 미디어(이를테면 그 극찬받는 NHK의 특집 다큐멘터리, 실크로드 등)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실크로드를 향한 동경은, 아마도 유전자 속에 각인된 역마살같은 운명적인 게 아닐 듯 싶다. 이를테면 전생같은- ㅎㅎ
그리고 오랜 여행을 돌아보는 지금도, 덕분에 실크로드 여행은 유난히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실크로드'하면 떠오르는, 사막의 캐러반들과 낙타 실루엣.
이것도 엄밀히 따지면 모호한 이미지화 & 신비화의 일종이지만.
(덕분에 그래도 관광객은 끊임없이 꼬인다)
진시황의 병마총으로 유명한 당나라의 수도 '시안' 은 아쉽게도 내 루트에서 제외돼, 엄밀한 내 실크로드 여행은 '란저우' 에서 시작됐다. 밤 늦게 도착해 하룻밤만 신세진 후 곧장 둔황 행 기차를 탔기에 별로 란저우에 대해 쓸거리는 없다. 단지, 나중에 사진으로 보니 도시 전체가 불그스름한 황사에 잠긴 것처럼 묘한 분위기이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도 토사가 풍부한 듯 유독 비옥한(ㅎ) 빛깔이라는 점. 관련지식도 부족하고 그렇다고 디테일의 철두철미한 묘사에 급급하고 싶지 않아 이쯤에서 넘어가지만, 란저우 유학생들 말로는 우육면이 맛있다니 한번쯤은 시도해 보길... (맛집을 찾아야 할 듯. 내가 먹은 곳은 영... -_-)
# 딱딱한 기차좌석(잉쭤-한마디로 중국 기차 좌석등급 중 최하)에 장시간 시달린 끝에, 드디어 꿈꿔왔던 도시, 금빛 사막(?)과 줄지은 캐러반들, 고대 유적들이 무더기로 발굴됐던 고대 오아시스 '둔황'에 도착했다. 실크로드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익히 알겠지만, 둔황은 명사산이라고 불리는 사막과 그 안에 자리잡은 초승달 모양의 호수, 월아천, 그리고 대량의 진귀한 고대 필사본, 역사서, 유물들이 발견됐던 동굴사원(?)인 막고굴 등으로 단숨에 관광지로 떠오른 곳이다. 명사산과 막고굴을 제외하고 둔황 시 자체에서 볼 것은 별로 없다. 다만 약간 이슬람풍이 섞인, 여느 아담하고 심심한 도시일 뿐이다. 그래도 밤에 활기를 띠는 야시장에선 후이족 -무슬림을 믿고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 중 하나를 차지하는- 들이 양고기와 각종 꼬치를 기다란 꼬챙이에 꿰어 케밥을 팔고, 중국상인들은 엽서와 자잘한 기념품들을 비롯해 온갖 신기한 물품들을 펼쳐놓는다. 늦은 시각까지 양고기를 굽고 생선을 요리하느라 공기엔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고, 가라오케 반주에 맞춰 고함지르듯 노래를 부르는 취한 관광객들의 고성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수북히 쌓아놓은 신장 건포도 더미들은 향긋하고 (맛좋기로 유명한 투르판의 청포도를 제철-8월-에 맛보지 못한다면, 건포도라도 꼭!), 아기자기한 기념품 사이로 노골적인 성행위를 묘사한 조악한 조각들은 실소를 자아낸다. 구경하던 우리 도미토리 메이트들은 죄다 얼마나 골때리던 표정을 지었는지- 예쁘장한 다카코의 그 뜨악한 표정 ㅋ
급격한 관광화, 상업화가 진행돼 가는 둔황. 새벽사막과 초승달.
그에 더해 입장료도 천정부지로 상승해서(게다가 위안화 한율 ㅠㅠ), 명사산 입장료는 10,000원이 훌쩍 넘었다.
(최근엔 더 올랐을 지도)
중국 다른 곳에선 가능한 (외국)학생증 할인도 안 됐기에, 가난한 여행자들은 각종 계책을 시도한다.
개구멍을 이용하거나(현재의 명사산은 일종의 국립공원 뻘이어서, 명사산 사막 입구를 철책과 나무 울타리가 빙~ 길게 둘러싸고 있다), 밤에 경비 없을 때 담 타 넘는 등, 각종 방법을 다 쓰는데, 나는 아직 매표소가 문 안 열고 경비원도 없는 새벽에 입장(?)하는 방법을 택했다. 덕분에 개고생은 했으나 돈은 아낀... -_-
(혹자는 어글리 백팩커니 뭐니 하겠지만, 중국 관광요금은 지나치게 상향부과된 감이 없지 않다. 그래도 학생할인은 보통 재깍 이루어지는 편이고, 인도나 이집트(?)에서와 같은 내외국인 입장료 차별은 없으니 그나마 양심적이라고 해야 하나 -_-)
# 이쯤에서 실질적인 관광 정보.
1) 명사산
명사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사막에서 이따금 부는 거대한 모래폭풍에 기인한다. 일설에 의하면 옛날에 사막에서 전쟁이 벌어졌는데, 느닷없이 거대한 모래폭풍이 불어와 순식간에 두 나라의 군대를 모조리 흔적도 없이 사막에 파묻어버렸다고 한다. 특히 밤에 모래사구가 바람에 휩쓸려 자리를 바꾸며 내는 괴괴한 소리는, 과거에 모래속에 묻혀버린 유령병사들의 울음소리라나, 뭐라나... -_- 실크로드다운 낭만적 전설이다.
입장료가 비싸다 보니 젊은 배낭여행자들은 간혹 잔머리를 굴리기도 한다. 어글리 코리안만이 아닌 것이다! 간혹 보면 서양애들이 더 빠삭하고 훨씬 용의주도하다. 그리고 호텔이나 배낭여행자 식당 정보북(방명록) 등에 보면, 항상 *유효한 개구멍* 위치와 명사산 공짜 입장 노하우 정보가, 부지런한 선배 여행자들로부터 수시로 업데이트된다. 그러니, 어떻게든 돈을 아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배낭여행자 식당등의 방명록을 참조할 것.
아, 과거에는 새벽과 늦은 밤에는 명사산 공짜입장(정문으로 당당히 @_@)이 가능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명사산을 여러 번 가 볼 기회를 얻었던 나의 판단으로는, 이 방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한 번은 자정이 넘어 밤사막에 가려 했더니, 그새 정보를 입수했는지 이젠 야간 당번조로 경비가 선다고 한다. ㅠ_ㅠ
명사산의 사구. 고운 잔 모래물결
드디어 일출. 닫힌 정문을 피해 담넘어 들어와서 월아천에 닿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ㅠ_ㅠ
2) 막고굴
막고굴은 막대한 고고학적 가치 때문에도(이미 도굴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명사산보다도 비싼 입장료가 책정되는데, 아쉽게도 막고굴에 무임승차할 가능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Z.E.R.O.다. 각각의 호실(방)으로 구성돼 있는 막고굴 유적관람은, 훼손과 도난 방지를 위해 관광객들이 각각 소규모 그룹을 이뤄, 해당 방문 열쇠를 지닌 가이드를 따라서 들어갔다가 시간제한 안에 나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쉽기도 했지만, 다녀온 사람들이 유적의 어마어마함과는 대비되는 허접한 가이드들과 쫓기는 듯한 시간 배정에 불만을 표시했기에 막고굴은 과감히 스킵해 버렸다.
막고굴 입구
여기서 잠깐 도미토리에서 나와 같이 어울린, 어느 게이 커플의 농담 반 진담 반 대화내용.
통칭 게이 1, 2로 부르는데, 1은 막고굴(동굴)에 관광을 갔고, 2는 그냥 숙소에서 노닥거리기로 했다.
1과 2는 모두 핸드폰이 있었기에 실시간으로 서로의 안부를 업데이팅하느라 열심.
게이 1: 지금 뭐해? 난 이제 막 막고굴 관광이 거의 끝났어. 축축하고 음침하긴 하지만 멋진데! @0@
너도 꼭 같이 와야 하는 건데 ㅠㅠ
게이 2: 그 정도야? 굉장했나 보네. 흥미있게 들리는 걸ㅎㅎ
게이 1: 물론 멋지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난 네 *동굴*에 더 흥미가 있어. ㅋㅋ
게이 2: 내 동굴?
게이 1: 그래, 막고굴처럼 축축하고 음침하긴 해도 ㅋㅋㅋ
게이 2: 아하핳 ㅡㅂㅡ
명사산의 모래사구는 상당한 규모다.
능선을 따라 걸으면 한결 수월하겠지만, 편법을 시도한 나로서는 자나깨나 불시에 상주 검문원이 나타나
티켓을 보여달라 할까 봐 구석으로만 피해 다녔더니 금방 기진맥진해졌다.
발목이 푹푹 빠지는 모래를 헤치며 몇 걸음 걷다보면, 사막에서 죽어나간 수많은 사람, 동물들의 얘기가 실감난다.
다행히도 명사산엔 이렇게 사다리 계단을 임시로 만들어, 오르내리기가 한결 편하게 조치해 놓았다.
3) 명사산과 막고굴 외에, 둔황에서는 각종 투어상품들이 있다.
일단, 둔황에서 좀 떨어진, 주위의 옥문관 등의 사막 유적등을 알선하는 투어가 있다. 여행사에 신청하거나, 사람을 모아 택시를 대절하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 다녀올 수 있는데, 실크로드에 유별난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고선 굳이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말 그대로 쨍쨍한 사막 한 가운데 유적만 덩그마니 남아 있는 데다, 게다가 성수기인 여름의 햇볕은 참기 힘들 정도다.
그보다는, 명사산이 아닌 정말 제대로 된 사막, 타클라마칸 외곽지역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투어를 추천.
솔직히 말은 투어지만 프로그램이나 제공사항은 정말 초초기본적이다. 즉, 침낭 갖고가서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하룻밤 야영할 수 있도록 왕복 교통편을 제공해 주는 것. 가이드고 식량 따위고 없고, 느지막한 시각에 데려다 주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와 둔황까지 픽업해 준다. 거리가 꽤 되는데 대중교통편이 없어서, 보통 택시기사들이 많이 호객행위에 나선다.
나는 별다른 매력을 못 느껴 참여하지 않았는데, (진짜 타클라마칸 사막도 아니고, 사막 외곽이 뭐야? 허참... 완전 이름값 때문에 하룻밤 사막에서 고생하며 자고 오는 거잖어 -_-) 지금은 좀 후회한다. 이름값이라고 해도 타클라마칸은 타클라마칸이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고 만족감은 무궁무진하다. -_- 인도 라자스탄과 이집트 시와, 요르단의 와디럼이나 모로코, 남미의 유우니 등 숱한 사막이 있지만 내게 실크로드가 지니는 의미를 생각하면 타클라마칸 사막 투어에 참여했어야 했던 듯도.
(선덕여왕 아역시절의 사막 촬영지가 바로 둔황이란다. 그리고 영화 '놈놈놈'의 로케이션 역시 둔황.
그나저나 선덕여왕이 어린 시절을 타클라마칸에서 캐러밴들과 보내고 하는 얘기는 그야말로 코메디이고 -말 그대로 선덕여왕은 히스토리 *팩션*이지만- 추격자에게 쫓겨 낙타 한 마리 이끌고 식량이고 물 한 방울 없이 타클라마칸 사막에 들어간다는 것 또한 후덜덜한 설정이다. 허구와 과장도 정도껏이어야지... 그래도 미실은 멋있고, 이제 미실없는 선덕여왕은 나와 안녕이다 ㅠ_ㅠ)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 죽음의 사막으로 단칼에... -_-
드디어 저 아래로 초승달 모양의 월아천이 신기루처럼모습을 드러낸다!
(급속한 사막화로 물이 줄어, 그나마 관개수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단다)
한창 사막에서 헤매며 광년이짓 하다가 아래에 저 모습이 나타났을 때는 탄성이 절로 터져나왔다.
구원받았다,드디어 ㅠ_ㅠ 그리고 월아천 옆 절에 살고 있을 듯한 도사는, 서유기와 손오공 얘기를 떠올리지 않느냐 ㅎ
명사산의 사구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금빛 듄(dune)과는 거리가 먼 듯 하다.
하지만 여러 군데 사막을 둘러본 결과, 명사산은 그 역사적 의미 때문에라도 외양으로만 평가절하되기는 아까운 곳이다.
# 타클라마칸 사막 투어 외에도, 명사산 오버나잇 투어도 있다. 다른 신청자들과 팀을 이뤄, 1박 2일로 느지막히 저녁에 둔황을 출발한다. 명사산 뒷문(이게 포인트! 명사산 사막은 전체면적이 상당하고, 전방은 울타리와 매표소로 경비가 철통같지만(ㅎ) , 저~ 먼 후방 부분은 거의 *버려진*자연적인* 사막의 분위기가 강하다. 따라서 물론 담도 없어 입장료 따위 없이 들어갈 수 있고, 밤에 출몰하는 야생동물 등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캠프파이어 용 도구들과 베이직한 텐트, 침낭등이 제공되고 역시 다음날 동이 트면 데리러 오므로, 와일드한 체험을 원하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 게다가 가격도 적정한 선이다.
이 말인즉슨, 커플여행을 하는 분들은 수많은 별들이 수놓인 (때로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역사적인 사막에서, 단 둘이 오붓한 캠프파이어와 야영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당신들이 뭘하든 자유이다, 자유, 완벽한 자유!! ^0^
(아, 물론 신청일에 다른 신청자가 없어야 하겠지만 일행에게 별도로 양해를 구하고 다른 곳에서 야영하면 되니까. 사막은 넓다 ㅎㅎ) 내가 만난 독일여자애는 겁도 없이 달랑 혼자 이 투어에 참가해 사막에서 자고 오기도 했다. 마침 보름달밤이라 달빛에 가려 별은 없었지만, 혼자 달밤에 광년이처럼 온 사막을 뛰어다녔다고 한다. 거대한 모래언덕에서 포대자루 깔고 썰매타며 용도 쓰다가, 휴대용 스피커로 음악도 틀어놓고 춤도 추고, 분위기 잡고 달빛 부서지는 사막을 걷기도 하고- (응, 알만하다... 정녕 그것 뿐이었니??? 도마뱀은 안 잡아 꿔먹었으이?? ㅡㅂㅡ;;) 말 그대로 Life Experience 였단다. ㅎ
그도 그럴 것이 그룹투어는 많지만, 저렴한 1인, 2인 참여 독립투어는 적으니... ㅎㅎㅎ
그러나 한 가지, 찬물을 끼얹는다면, 이 투어를 비공식적으로 주관했던 둔황 내 일본/한국인 식당 겸 여행사가, 이후 이 투어에서 발생한 사고와 연루돼 문을 닫았다는 점. 그 후 경과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 사건 이후로는 안 좋은 소문도 도는 게 정사인 만큼, 마냥 낭만적인 아이디어라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달갑지 않은 사고라는 게, 내가 다녀간 한참 후 둔황을 방문한 일본인 여행자에게 전해 들은 얘기라 100% 근거없는 소문은 아닐 듯하다. 성수기도 끝나가는 가을 무렵, 여행사 운영자는 그 날 투어를 신청한 젊은 일본 남성(하필이면 한 명이었단다)을 평소처럼 느지막히 명사산에 데려다 줬단다. 하필이면 또 그날 드물게 많은 비가 내렸는데, 다음 날 해가 뜬 후 픽업하러 그 남성을 찾으러 가 봤더니, 어디에도 그의 흔적은 없었다는 말씀. 후엔 경찰까지 동원돼 샅샅이 뒤져봤는데,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 했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 크나큰 사구들을 오르내리다가 기진맥진해 쓰러진 걸까. 자유를 만끽한답시고 너무 멀리까지 가서 길을 잃어버린 걸까. (그렇다고 해도 명사산이 사하라도 아니고 시체가 있다면야 충분히 찾지 -_-) 아니면, 사막은 살아있고, 사막의 모래는 모든 흔적을 지운다-그 고대 전설처럼, 정말 국지적으로 발생한 모래바람에 휩쓸려 갔거나 묻혀버린 걸까.
이런 얘기가 정말 가능할까... 결국 그 남성의 실종은 미궁에 빠져버렸고, 주최 여행사는 문을 닫았다.
도시괴담처럼 신빙성 떨어지는 왜곡된 소문 아닐까 의구심도 품어봤지만, 정황상 전혀 일리없는 얘기는 아니다.
뒤이어, 가장 두려운 건 역시 사람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현실적으로 유력한 가설이라곤, 계획된 살해와 그 외 범죄외에 뭐가 있겠는가. 급속히 상업화돼 가는 둔황은 아울러 돈을 찾아 흘러들어온 각종 외지인들로 팽창하고 있는 곳이다. 비공식 야간 사막투어에 소수의 멋모르는 외국인들이 참여해 겁없이 야영하고 하는 걸(간혹은 혼자!) 응큼한 맘을 현지인이 몰랐을 리가 없다. 적당한 날을 점찍어 뒀다가 몰래 뒤따라가서, 운영자가 돌아간 후 범죄를 저지른 후 은폐했을 수도 있고, 가능성이야 얼마든지 있다. ㅠ_ㅠ
단지, 사막에 비가 온 게 범죄은닉에 더 유리한 건지 긴가민가하고, 단기투어에 나선 배낭여행자의 경우는 보통 귀중품은 호텔 카운터나 투어 운영 여행사에 위탁해 놓는다는 점(중국에선 값싼 호텔 카운터를 못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또 배낭여행자가 얼마나 돈이 있겠느냐는 헛된 반론도 제기해 보지만... 결국, 배낭여행자든 트렁크족이든 현지인들 눈에는 '돈덩이'일 뿐이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ㅠ_ㅠ
명사산의 미니 도마뱀. 자세히 보면 나름 귀엽다. ㅎ
자연의 신기함. 사막의 모래와 동화된 보호색. 언뜻 보면 찾기 힘들다.
그래도 잡았다, ㅎㅎㅎ
새벽사막에 가서 정말 별짓 다했다. 헥헥거리는 와중에도 도마뱀 쫓고 아이구... ㅡㅂ ㅡ;;;
(근데 이 추한 짓의 당사자가 나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 -_-
나중에 페이티엔 빈관(비천빈관) 도미토리에서 만난 일본 친구들 카메라에서도 똑같은 사진 발견.
이러다가 나중에 명사산의 도마뱀으로 환생해서, 관광객들에게 하루에 한 번씩 꼬리잡히는 건 아닌지 몰러 ㅠ_ㅠ)
누구는 내게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는데, 절대 죽이지 않았다 -_-
나름 도마뱀 애호가이다.
그리고 여건만 되면 유리병에 넣든지 해서 동행으로까지 삼고 싶었다.
(많이도 외로웠구나 ㅡㅂㅡ;;
어떤 이는 테디베어 열쇠고리를 동행으로 여긴다;;;)
폴짝폴짝 뛰어내빼는 게 어찌나 귀여운지... ^-^
매표소가 문을 열고, 서서히 단체관광객들이 입장해 대기하고 있던 낙타에 타고 명사산을 유람한다.
드디어 밤, 새벽사막의 고요와 적막, 운치는 사라지고, 본격적인 관광지 분위기로 탈바꿈한다.
요르단의 페트라에서 본 낙타들은 때깔이라도 고왔지,
둔황의 이 낙타는 가뜩이나 늙어서 여위고 힘이 없는 게 금방 태가 난다. ㅠ_ㅠ
낙타의 코믹한 얼굴 생김새나 행동(걷는 모양, 가스방출 작렬)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지만,
이렇게 혹사당하고 늙고 병들어서까지 학대당하다 죽어가는 낙타들의 삶은, 결코 유쾌하지도 코믹하지도 않다.
# 개인적인 사정상 시간차를 두고 여러 번 둔황과 명사산을 찾은 나로서, 둔황은 그 곳에서 만났던 다른 여행자들과의 유쾌한 추억들로 유난히 의미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크로드의 한 포인트를 당당히 차지했던 아름답고 잔인한 사막, 명사산을, 청명한 새벽에도, 고요하고 신비로운 밤에도,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도 모두 관조하고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행운이다. (지금은 실크로드 시절의 멋이나 마력, 운치는 온데간데 없고, 관광객들의 사진배경으로 전락했다 해도)
고대 번창했던 오아시스 마을은 실크로드와 명사산, 막고굴의 명성덕에 다시금 생명력을 되찾고 있다. 물론 천정부지로 오른 입장료와 물가, 관광객을 상대로 한 바가지와 속임수, 파리처럼 꾀이는 크고 작은 범죄들도 그와 걸음을 같이 하지만.
이제는 투르판으로 향한다. 서유기의 손오공 일행에게 장애물로 등장한 불타는 화염산, 분지지형으로 중국에서 가장 기온이 높은 곳, 허물어져 모래로 화해버린 고대 영화와 왕국의 흔적들 -교하고성, 고창교성-, 탐스러운 청포도와 당나귀가 이끄는 수레들이 있는- 이 모든 신화와 역사와 정겨운 일상과 현재가 공존하는 곳. 이제는 지역명조차, '둔황'처럼 중국스런 곳이 더 이상 아니다. 진정한 중국 서부로, 이국적인 사막으로, 소수민족들의 근거지로,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부와 중앙아시아를 향해 서쪽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 ㅠ_ㅠ(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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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를 여행할 사람은 필수로, 그 외 문화재 약탈과 고고학 탐사란 주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도 '피터 홉커크'의 [실크로드의 악마들] 추천!! 풍부한 설명과 자료, 도해, 그래픽한 묘사로 술술 읽히는 데다, 재미에 더해 깊이도 떨어지지 않는다.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의 초라한 한국관 코너나, 무법천지의 제국주의 시절 각국에서 유럽과 미국 열강 등으로 흘러들어간 진귀한 유물등을 보고 분통 터뜨리거나 or 모호한 이해심을 보이는 분들에게도 유쾌한 독서가 될 것이다. 할 말은 많지만, 그 후에 가치판단은 각자에게 맡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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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실크로즈 저두 다녀왔어요...아주 좋답니다...
다녀왔어도 로망으로 남는 그 곳 @0@
실감나는 여행기..잘 읽고있어요
감사합니다. ㅎㅎ
초승달 모양의 원아천을 보니 얼마 전 신인상을 받은 '달의 이빨'이 생각나는 군요. 사진으로 보니 정말 신비한 것 같아요. 넓은 세상을 보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만큼 자신의 세계가 크다는 거겠죠..잘 읽고 보고 갑니다. 쪼잔맨은
월아천 정말 멋지긴 하지만 사막화로 겨우 구색만 유지하고 있다눈 슬픈 현실 ㅠㅠ 근데 넓은 세상을 보고 다니는 사람들이 꼭 그만큼 자신의 세계가 크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이 접해서 말이지요. (저도 간혹 이 부류에 속하는 것 같고 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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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한테도 제가 느꼈던 전율이 전달됐다니 너무 신기하고 기쁩니다. 공감이란...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