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소리에 핸드폰을 열어보니 봄내가 집에 조기를 게양한 그림이다.'앗차'하며 태극기를 찾아
국기를 게양한다.창문으로 우리 아파트에 국기가 얼마나 게양되었나 살펴보니 245세대 중 뒷동
한 집에 태극기의 모습을 본다.우리 국민들의 의식이 '현충일'은 단순히 쉬는 날로 인식이 되어
있지않나 싶어 씁쓸함을 느낀다.
오늘의 글은 우리 집안의 이야기다.57년전의 이야기로 나의 바로 아래의 동생이 청룡부대로
자원 입대하여 전사한 내용을 싣고자 한다.아직 우리 가족도 모르는 사실이 있어 우리 카페를
통해 이 글을 남기고자 한다.
1967년 5월 본인 제대를 한 달여 남기고 마지막 휴가를 온다.부모님은 자갈치 시장에서 식당을
하고 있엇다.세살 아래의 동생이 진주 농고 1코스를 졸업하고 자원하여 청룡부대에 입대하여
포항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훈련이 끝나면 바로 월남으로 파병된다는 것이다.
귀대 며칠을 앞두고 포항으로 면회갔다.어머니가 와이샤스 상자에 김밥을 가득 싸준다."어머니
이 많은 김밥을 어찌 다 먹으라구요.'하니 남으면 전우들과 나누어 먹으면 되지않나 한다.포항
훈련소 가족 면회소에는 면회 온 가족들이 너무도 많다.마침 방첩대 빳지를 단 해병을 발견,그
에게 약간의 사례를 하고 면회를 부탁한다.잠시 후 동생이 나타난다.시커먼 얼굴에 허름한 복장,
떨어진 군화,모습에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음을 느낀다.와이샤스 상자의 김밥을 단숨에 다 비운다.
얼마나 배가 고플까 PX에서 빵 10개를 사서 주니 4개를 먹고 6개를 남긴다.'살아서 돌아오라' 는
간절한 부탁을 하고 부모에게 받은 휴가비를 차비만 두고 모두 동생에게 주며 '꼭 돌아오라'기다리마
두 손을 잡고 이별을 한다.동생과의 마지막 이별이다.
67년 7월 30일,본인은 제대 후 의령의 모 학교에서 복직을 하고 여름방학으로 집에 머문다.동해남부선
철길 아래에 삼촌의 제재소가 있었다.그 날 아침에 제재소에 돌덩어리가 마당에 떨어지는 것을 일하는
직원이 줍는다.종이에 싼 돌,편지였다.동생이 오늘 중앙 부두에서 월남으로 간다는 것이다.아버지,어머니,
숙모,고모 등,부산의 온 친척들이 모였다.문종이로 만든 플래카드에 "학태야 우리 가족 왔다."란 글을 들고
부두로 간다.요란한 군악대 소리,많은 학생들이 운집 합창의 소리,많은 인파로 배 가까이 접근 할 수가 없다.
수송선에 탄 장병들의 얼굴은 누군가 분간하기도 힘든다.고함을 질러도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다.붕 - 붕 -
수송선은 부두를 벗어난다.이것이 동생과의 마지막 작별이다.
67년 8월 30일,우체부 배달원이 편지 한 장을 전한다.'동생의 전사 통보다.'온 가족은 눈물의 바다를 이룬다.
소식을 들은 친척들도 찾아와 위로를 하나 이미 동생은 저 세상을 가고 없다.먼 이국 땅에서 어떻게 싸우다가
전사했는지도 모른다.
67년 10월 어느 날,국가보훈처에서 동작동 국군묘지에서 장례식이 있다는 통보를 받고 부모님과 본인 숙모,
고모 등 가족이 서울 동작동 장례식장으로 간다.당시 파월된 청룡부대,맹호부대 등 전투에 직접 참여한
우리 장병들이 매일 싸우다가 전사한 군인들의 장례를 일주일 간격으로 하고 있음을 알았다.장례식장이
잘 차랴져있었다.합동으로 매 주 함으로 군악대 등 식을 바로 할 수 있도록 준비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품 처리의 방송 안내가 있었다."전사자의 유품이 있으니 찾아가든지 필여없으며 화덕에 불태워도 좋다는
방송이다."부모님은 동생의 유품을 보고자 한다.본인은 부모의 요구를 극구 말려 본인만 유품을 보았다.
피묻은 옷과 편지 ,일기 등 자기가 쓰던 물건들이였다.일기를 보니 월남에 온 것을 후회하는 글들이 가슴을
저민다.부모,동생들 등 가족들 이야기.눈물이 쏟아진다.유품은 모두 화덕에 넣고 그의 명복을 빈다.
동작동 파월장병들의 묘소,당시 얼마되지 않았던 묘비는 몇 년 후 오니 그 넓은 비탈에 촘촘이 장병들의
넋이 묻혀있었다.당시 우리 군인들의 희생이 너무 컸음을 알 수 있었다.
파월 당시의 우리나라 경제적 사정은 국가나 개인의 살림이 다 어려웠다.집안의 형들은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하겠다고 생명을 바꾼 가족들이 우리 집안만은 아닐 것이다.내 동생도 가난한 집안의 걱정,7남매의 가족,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자기 헌신의 결과일 것이다.
동생은 월남의 다낭 전투에서 전사했다 몇 년전 산행꾼들과 다낭 여행을 갔다.다낭의 바닷가에 있는 '영흥사'
절의 충혼탑을 미국 등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월남의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금을 하여 탑을 세워 다낭에서
죽은 월남인들을 추모하는 탑이라는 이야기를 가이드를 통해 들었다.수많은 월남인이 다낭 앞 바다를 건너려다
월맹인들에게 죽었다는 것이다.본인도 내자와 함께 참배를 하며 동생의 명복을 빌었다.
지금 베트남은 공산국가이지만 활기차고 발전하는 나라임이 분명했다.좌파들이 단결력이 있다.월맹이 월남을 이겨낸 그 뒷면에는 단결력이다.
우리나라도 현재 좌우의 대립이 심각하다 국회를 장악한 좌파들이 똘똘 뭉쳐 이 나라를 좌지우지 하려고 한다.
나라의 존망은 순식간이다.우리 국민들은 정신을 바짝차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해야 한다.
오늘도 봄내의 미니 강의를 듣는다.양지(귀) 음지 (신)육체의 정신 혼,백, 제사의 향불과 술,혼백,넋,얼 등 우리
인간의 현재와 미래,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현충일,우리는 조상,선배들의 나라 사랑하는 실천 의지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이렇게 존재하고 있으며 세계
6위의 국민 소득으로 미래가 창창한 나라다 국민의 단결된 힘으로 더 튼튼한 나라가 되어야 되겠다고 산행꾼
들은 다짐한다."
★다음 산행 안내 ; 13일 10시 30분 도시철도 장전역 2번 출구에 모입니다.
오늘의 그림을 올린다.. 송학 기상의 작품이다 .수고했다.
첫댓글 대장친구야 일기 쓴다고 수고많았다 아무튼 고맙고 송학 친구도 사진 찍느라 정말 고생했다 자네같은 친구가 있어 우리들은 행복 하단다 이제 날씨도 점점 더워오는데 우리 모두 건강 잘 관리하고 또 다음주에 만나자 파이팅.......
학태가 떠난 자세한 이야기에 눈물이 핑 돈다.
학태야 너의 형은 아직도 먼저 떠난 널 안타까워 한다.
사나이다운 너의 모습이 아련하다.
편히 쉬어라.
친구의 글을 읽고 눈시울이 뜨거워짐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장하다 우리친구 그렇게 훌륭한 동생이있고 멋진 형이었으니
다시 한번 나라를 생각하고 우리의 엿날을 생각하는 오늘이다
오늘 역시 봄내의 명강에 머리숙인다
- 낯선 땅 월남에서 자유 위해 싸우다 꽃다운 나이에 산화(散華)한 동생, 그를 그리며 애절해하는 친구와 가족들
이에서 우리 역사의 어제를 읽는다. 먼저 간 아우여, 그의 이름 조국과 함께 영원하리라.-
/붙임/ 혼백(魂魄)과 귀신(鬼神)
사람의 정신은 '혼(魂)'이고 육체는 '백(魄)'이다. 우리는 몸이 '혼'과 '백'으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는 말을 은연중에 쓴다.
갑자기 멍해진 사람을 보고 "저 친구 혼이 나갔나 봐."라 하지 '백이 나갔어."라고 하지 않는다. 또 놀라서 정신이 멍한 상태를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고 한다. '혼'은 날아가고 '백'은 흩어졌으니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예기(禮記)>란 옛 책에는 사람이 죽으면 "양기인 혼은 하늘로 돌아가고, 음기인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라고 했다. 혼은
승천하여 '신(神)'이 되고, 백은 지계(땅)로 하강하여 '귀(鬼)'가 된다고 보았다. 이 '신'과 '귀'를 합하면 '귀신(鬼神)'이 된다.
제사 때 '향불'을 피우고 '술'을 쓴다. 향은 하늘로 올라가 조상의 '혼'과 연결되고, 술은 땅에다 부어서 조상의 '백'과 연결된다고 믿었다.
( 다른 설명은 뒷 기회로 미룹니다.)
6월은 보훈의달,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영령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우리대장 동생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애틋한 사랑의 표현 구구절절 가슴이 짠해집니다.
봄내님의 유익한 명강의 듣는 재미는 다음주 목요일 을 기다리게됩니다.
산행꾼 여러분! 아자아자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