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면 개발 대신 역사·문화 보존 한옥 개조한 수제 맥줏집.. 거리 자체가 살아있는 박물관 - 전국 438곳 도시재생 대상 조사 文대통령 "매년 100곳씩 재생", "예산 어떻게.." 우려 목소리도
조선비즈|장상진 기자|입력2017.05.18 03:02|수정2017.05.18 10:16
17일 오전 서울 지하철 동묘앞역에서 동대문역으로 걸어가다가 오른쪽 골목길로 접어들자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이란 LED 간판이 걸린 한옥이 나타났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기념관으로 바깥마당에선 방문객들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가 있었다. 동네 주민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5분여를 더 걸어가자 '창신동 봉제거리 박물관' 팻말이 걸린 거리가 나타났다. 골목 곳곳에 '의류 생산 공정 4단계' '봉제공장의 24시간' 같은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데이트하던 대학생 남녀 커플은 "인터넷을 보고 왔는데, 거리 자체가 살아있는 박물관 같다"고 했다. 한옥을 개조한 수제 맥줏집 등 세련된 가게도 눈에 띄었다.
달동네에 등장한 ‘백남준 한옥’ - 봉제산업 쇠퇴로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꼽혔던 창신동 일대는 현재 도시 재생 사업이 한창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이 살았던 집터는 감각적인 디자인의 ‘이색 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이곳은 한때 '숭인·창신 지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오래된 주택을 모두 헐어내고 대규모 아파트를 짓는 '뉴타운' 사업이 추진됐다. 그러나 뉴타운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지정 6년 만인 2013년 뉴타운 지구에서 해제됐고, 당시에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동네였다"는 게 주민들 회고다. 주민 문형화(67)씨는 "가옥들은 다 쓰러져가지, 골목 지저분하지, 가로등 거의 없지, 밤에 다니기 무서울 정도였다"면서 "도시 재생을 거치면서 젊은이들도 찾아오고 살 만한 동네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도시 재생이란 '싹 밀고 새로 짓는' 전면 개발 대신, 동네 본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도로를 넓히거나 주차장·놀이터 같은 공동 시설 등을 만들어 거주 여건을 개선하는 사업을 뜻한다.
국토교통부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50조원대 도시 재생 뉴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전국 438개 지역에 대한 분석 작업에 착수했다. 기존 '선별적 지원'에서 정책 방향을 선회, 개별 시·도가 희망하는 지역 전체에 국비를 투입해 고유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되살려내겠다는 것이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 공약 이행을 위해 개별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도시 재생 사업지 전체를 대상으로, 필요 예산과 사업 방식 등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최근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국 438곳 도시 재생 전면 분석 착수
현재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도시 재생 사업지는 전국 46곳. 지금까지 도시 재생은 시·도가 사업지를 정하면, 중앙정부는 이 가운데 일부만 선별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각 시·도가 자체적으로 정해놓은 도시 재생 사업지는 총 438곳이다. 국토부는 이 438곳 전체를 대상으로 중앙정부 예산 투입 검토에 나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연간 10조원씩을 투입해 매년 100곳씩 임기 내 500곳에 대해 도시 재생 사업을 펼치겠다"고 공약했다. 도시재생과 등 담당 부서에는 '공약을 최대한 이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계획을 짜라'는 지시도 내려간 상태다.
새 정부 도시 재생은 '서울시 모델'이 중심이 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서울시 도시 재생 기획자였던 김수현 전 서울연구원장을 최근 청와대 사회수석에 임명하고, 그 산하에 '주택도시비서관' 자리를 신설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부지 계획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비용 조달은 HUG(주택도시보증공사), 실행 계획은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각각 담당하는 '3축 구조'로 공약 실현 계획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공약에서 "정부가 매년 2조원 예산을 지원하고 주택도시기금에서 5조원을 융자·투자·출자 등 방식으로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예산 2조원을 추가로 마련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고 우려를 표했다.
◇"고령화 지방도시엔 별도 모델 필요"
도시 외곽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대신 구(舊)도심을 되살리는 도시 재생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뉴욕시는 2009년 맨해튼 서남쪽의 폐(廢)고가 철로를 ‘하이라인(High Line)’이라는 녹지 공원으로 바꾸면서 연간 4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관광 명소로 만들었고, 인근 경제도 활성시켰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특정 지역에 재정을 투입해 투자가 이뤄지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원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등이 일어날 수 있다”며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할 섬세한 사업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정이 취약한 지방 도시는 서울과 다른 방식의 모델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특히 인구가 줄고 고령화로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는 지방도시는 집·병원·일터를 모은 ‘압축 도시(compact city)’ 구조로 재생 사업을 벌여 초고령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갑성 연세대 교수는 “정부가 ‘1년에 100곳’이라는 공약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차근차근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