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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광장 】 스크랩 굿바이 송진우 영원한 회장님
사람 추천 0 조회 45 09.09.23 23:58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송진우 선수가 오늘 자신의 등번호와 같은 21년의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필자가 야구에 미치도록 만든 장본인이 바로 송진우였기에 오늘 은퇴식은 장종훈이나 정민철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비록  더이상 그가 마운드에서 예리한 투구는 보지 못하겠지만 그가 있어 행복했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그를 보내는 시점에서 그에 대한 추억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마운드이 전설 그가 마지막 마운드에 섰다-사진 뉴시스>

 

-송진우와의 첫 만남

 

필자가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송진우를 알기 전까지는 그냥 TV를 보면서 승패만 따지는 야구팬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였다,. 더욱이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낸지라 도시아이들처럼 어린이 회원가입이나 야구장 가는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대전으로 진학을 하고 2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야구장을 처음 갔었다. 그 당시 대전 야구장은 지금과는 달리 외야에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그라운드는 내야는 맨 땅에 외야는 천연잔디인데 외야수 자리에는 잔디가 자라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시설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선발투수가 송진우였다.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는 마무리 투수였는데 여건이 아주 좋지 않은 8회에 조기 등판 했다. 8회 2사 만루. 안타 하나면 역전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던진 공 3개가 모두 볼이 되었다.관중석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4번째 던진 공 역시 원바운드로 떨어지는 변화구인데 타자가 헛스윙을 한다.

다섯번째 공역시 볼인데 헛스윙이다. 마지막 6번째 공이 압권이었는데 그냥 가운데로 들어오는 평범한 직구였다. 타자는 스탠딩 삼진~

 

송진우를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운이 좋았던거지~라고 말할 수 있으나 송진우가 어떤 투수인지 아는 팬이라면 역시~라는 탄성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기막힌 수싸움이었던 것이다.

그 후 필자는 야구를 보는데 있어 승패보다는 수싸움을 즐기는 고독한 팬이 된 것이다. 그 정점은 바로 송진우였던 것이다.

 

-송진우와 힘께 ?던 행복한 추억

 

그 후 사회 생활을 대전에서 시작하면서 필자는 1년에 30번 정도는 야구장을 찾았고 야구장에 가지 못하는 날이면 TV중계만 눈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송진우는 이 시기에 선수 생활을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는다. 어깨 부상으로 구위가 현저하게 떨어진 것이다. 상대하는 타자들이 속된말로 송진우가 던진 공은 실밥이 보일 정도라고 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송진우는 타자의 수싸움과 절묘한 제구력을 바탕으로 완벽하게 재기하고 99년 한화 창단 후 첫 우승에 일조를 한다.

그리고 현재 투수들이 적어도 5년내에는 깨지 못할 최다승,최다이닝,최다탈삼진등 한국야구의 전설로 남는다.

이는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를 이제 팬으로서가 아닌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선수협 사태때문이었다.

 

당시 송진우는 FA도입 원년의 첫 수혜자였다.당시로서는 엄청난 액수인 7억인가에 계약을 했다. 그 시점에서 선수협사태가 일어났다. 송진우는 굳이 선수협 활동울 하지 않더라도 안정된 처우가 보장 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후배들이 보다 나은 선수 생활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사비를 들여 선수협 사무실을 마련 해 주고 초대회장으로서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후배들을 지켜 주었다.

그로 말미암아 야구선수로서는 치명적인 동계훈련을 하지 않고 후반기에 복귀 해 FA로 보상 받은 댓가를 완벽하게 해 내 프로로서 지신이 받은 연봉에 부끄럽지 않게 팀과 팬들에게 보답을 한다.

 

그는 기록상으로는 화려했다. 그러나 어느 해 반짝했던 것이 아니라 꾸준한 기록이 누적돼 화려함을 발한 것이다. 그만큼 자기 관리가 뛰어난 선수이다. 왼손 투수이기에 그는 왼쪽 어깨에 절대 가방을 메지 않는다.

실생활에서도 왼손이 편하지만 불편하더라도 오른손을 주로 쓴다고 한다. 그러하기에 한순간 반짝한 것이 아니라 또다른 별명인 늘푸른 소나무 그 자체가 바로 송진우였던 것이다.

 

 

<마운드에 있어 그는 행복했고 그가 있어 우리는 행복했습니다-사진 OSEN> 

 

 

한번은 야구장을 찾았는데 팬서비스중의 하나가 바로 타격왕 선발대회 이벤트가 있었다. 관중중에 신청을 받아 실제 타석에서 공을 멀리 치는 게임이었다. 당시  시범을 보인 선수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송지만 선수였는데 쑥쓰러웠던지 친 것이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관중석에서 조롱아닌 조롱이 들렸다.

그러자 송진우 선수가 방망이를 들고 공을 때렸는데 그만 펜스를 넘기고 말았다. 잘못하면 부상이 올 수도 있는데 그는 자기 관리에는 철저하지만 팬을 위해서라면 솔선하는 선수였다.

 

청주 경기에서 그는 내 야구 인생에 가장 짜릿한 감동을 선사한다. 당시 중계가 되지 않아 자료가 없지만 그는 연장 끝내기 대타 안타의 주인공이 된다. 게임이 연장까지 우열을 가리지 못하기에 양팀의 가용인력을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 또 꼬인것이 지명타자에 투수가 들어섰기 때문에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았다, 그 때 방망이를 들고 타자로 자원한 선수 역시 송진우 였다.당시 상대 투수는 그 해 엄청난 활약을 한 미륵 신윤호 선수였다.

신윤호의 공을 두번 헛스윙을 한 송진우는 3구째를 잡아당겨 통렬한 우익수 앞 끝내기 안타를 치고 만다.

야구에서 가장 짜리한 것이 끝내기 안타나 홈런인데 그것을 내 눈앞에 본다는 것, 그리고 그 당사자가 타자가 아닌 투수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송진우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평생 못 잊을 첫번째 게임으로 자리잡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 송진우

 

몇년 전 당시 현대유니콘스(현 히어로즈)와 경기 때 팀 후배인 안영명선수와 상대팀인 김동수선수와 빈볼시비 때문에 시비가 생긴 적이 있다. 김동수 선수는 송진우 다음 프로야구 최고참이고 안영명 선수는 압단 5년차 선수로 나이차만 15년이 넘는다. 당시 김동수 선수가 마운드로 달려가 안영명 선수의 따귀를 때린다. 그때 가장 먼저 달려나온 선수가 송진우 였고 나오자 마자 김동수 선수에게 하이킥을 날린다.

이로 인해 그간 송진우의 이미지에 먹칠했다는 비난도 그는 들었다. 필자 역시 왜 그랬지? 벤치클리어닝은 어찌 보면 민방위훈련 같은 요식행위인데 말이다.

그러나 그 오해는 며칠 지나서 플리고 말았다.한 인터뷰에서 그는 나선 이유는 첫번째는 후배가 맞는데 참지 못했던 것이고 두번째는 이럴땐 고참이 나서야 사태가 일찍 종결이 된다. 내가 욕 머고 안먹고는 그 다음의 문제다. 이렇게 대답했다.  이렇듯 그는 사랑과 희생정신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잘 알다시피 송진우는 귀가 잘 들지지 않는 장애우 야구팀인 충주 성심학교의 실질적인 구단주(?) 이다. 매년 2천만원씩 지원을 한다. 그리고 틈만 나면 달려가 선수들을 지도한다고 한다. 그러하기에 오늘 은퇴식에 21명은 지인 중에 성심학교 교장수녀님이 오신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는 성심학교 후원하는 것을 언론에 노출되기를 극도로 피했는데 후원한 지 한참 지나서야 언론에서 본의 아니게 보도가 되었다.송진우가 후원금을 내려고 학교를 방문하던 날 기자가 들이닥친 모양이다,기자가 교장수녀님과 인터뷰 한 후 송진우 선수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송진우 선수가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창밖으로 보니 아이들과 어울려 야구를 가르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터뷰와 사진찍기는 극구거부했다고 한다.

 

유명인 중에 연말에 라면 몇 박스 들고 복지시설 방문 해 사진 찍고 오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송진우의 이런 모습은 팬들로 부터 받은 사랑을 보이지 않게 베푸는 진정한 노블리스오블리주의 실천인 것이다.

 

 

- 아! 영원한 회장님

 

야구를 잘 하는 선수는 많다. 그러나 그처럼 꾸준하게 선수활동을 한 선수는 드물다. 무엇보다 실력을 뛰어넘은 그의 됨됨이에 나와 많은 팬들이 감동했다.

흔이 야구팬들이 선수를 가장 높이 부르는 단어가 바로 OO신 이라는 것이다.

현재 그렇게 불리는 선수는 삼성의 양준혁,기아의 이종범 롯데의 손민한 한화의 구대성 정도이다.

그러나 송진우는 그 존칭도 부족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공교롭게도 그를 진우신이라고 부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경외의 대상이다. 어떠한 호칭도 그를 담기에는 부족하다.

 

이제 그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와 함게 했던 행복했던 시간은 영원히 내 추억의 한페이지로 잡고 있을 것이다. 오늘 그는 자신의 인생을 야구로 비유하자면 5이닝 끝나고 클리닝타임 시점에 서있다고 했다.

야구는 매 이닝 재미있지만 클리닝 타임 끝나고 또다른 승부가 펼쳐진다.

우리는 그에게 새로운 6.7.8.9.회를 기대한다.

야구에서 투수 마운드는 일반 그라운드보다 조금 높다. 그러나 그곳은 누구의 도움도 따르지 않는 고독한 공간이다. 그는 그곳에서 무려 35년,프로에서만 21년을 더군다나 한팀에서 우뚝 서 있었다.

 

그가 떠난 마운드가 웬지 허전해 보인다. 그렇지만 지도자로서 그 허전함을 채워 줄 좋은 선수를 그의 손으로 키워서 채워 줄 거라는 믿음이 강하기에 그를 웃으면서 보내려 한다.

 

 

 

                            <굿바이 송진우-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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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9.24 02:26

    첫댓글 야구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사람님 글을 보니 송진우라는 선수를 이제라도 새겨두겠습니다. 좋은 사람 같네요. 우리 사회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기에 부정부패와 이기심에 가득한 사람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더라도 자정되며 지탱해 나가고 있겠지요. 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09.09.24 22:19

    제 주변사람들도 많이들 아쉬워하던데 ㅎㅎㅎ 공 하나에 어떤 속내가 있는지,다음 수는 어떻게 될것인지.... 감독과 타자,포수,투수의 경험과 두뇌의 싸움이죠.. 그라운드에서 실제로 뛰는 선수 못지않게.. 야구는 보는 관중들 역시 감정이입과 집중을 시키는 종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정치보다..더욱...

  • 09.09.24 11:41

    송진우선수....역시 박재홍이나 이병규와는 품격이 다른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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