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모음
44.핍박받는 자의 복
주님은 핍박의 가시밭길을 통하여 우리의 인격을 단련시켜서 주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 앞에 엎드릴 때 주께서 우리를 영원한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열 두 제자의 마지막 최후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에서 십자가를 지고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몸의 가죽을 벗기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순교했습니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도하며 순교했습니다.
마태는 에디오피아에서 창에 찔려 순교를 당했습니다.
안드레는 에데사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습니다.
맛디아는 예루살렘에서 돌팔매질을 맞고 쓰러진 뒤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누가는 헬라에서 감람나무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칼에 목이 떨어지면서도 예수의 이름을 부르다 죽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백 살까지 온갖 시련을 겪다가 죽어간 살아있는 순교자였습니다.
초대 교회의 유명한 교부인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종자가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시련의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 10
45.영광의 주인공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영국 군인들이 사랑하는 고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부터 런던 거리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인들을 환영하기 위하여 수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영국의 상, 하원 의원들과 귀족들이 새벽부터 길 양쪽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고 영국 여왕이 자리에 앉자 마침내 영국 군인들의 개선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행렬의 처음에는 육군이 앞장서고 뒤를 이어 해군과 공군이 따르며 해병대가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작은 부대가 입구에 들어서자 갑자기 영국 여왕을 비롯해 귀족들과 서민들이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그 작은 부대를 향해 한없이 박수를 칩니다. 그 작은 부대는 상이(傷痍) 군인들로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팔과 다리를 잃어버리거나 눈 혹은 몸뚱이 한 부분을 잃어버린 군인들로 이루어진 부대였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개선 행렬의 진정한 스타들이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삶이 끝나고 역사의 주인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에는 앞의 상이 군인들처럼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았던 사람들이 바로 주인공일 것입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4: 13
46.순교의 신앙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침례교회를 맡아 시무하셨던 조셉 톤 목사님은 너무 유명해서 루마니아의 공산정권과 독재자들에게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루마니아 정부는 국제적인 여론 때문에 차마 이 목사님을 죽이지 못하고 추방하였습니다.
그분은 미국으로 오셔서 여러 신학교에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분이 가는 곳마다 많은 신학생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 분은 위대한 목회자였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조셉 톤 목사님은 “당신의 신학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게는 단 하나의 신학밖에는 없습니다. 나의 신학은 순교의 신학입니다. 그리고 나는 단 하나의 신앙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순교의 신앙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그분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있던 학교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쯤에는 공산권이 서서히 무너지고 동구권이 개방되었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에 미국 복음주의 잡지사의 한 기자가 조셉 톤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동구권이 개방되는 것에 대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이 질문에 그 분은 “저는 두렵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기자가 의아한 얼굴로 “아니, 공산권이 무너지고 당신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왜 두려워하십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나의 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은혜로 여기고 사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고 핍박을 받더라도 그것 때문에 더 예수님을 바라보고 더 열심을 낸답니다. 하지만 제가 두려운 것은 동구권이 개방이 되어 나의 조국에 돌아갔을 때, 내 조국의 교회가 주님을 위한 고난을 은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만 채워질 까봐 두렵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립보서 1: 29
47.하나님께로 나오게 하는 고난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John Bunyan)은 인생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깊은 수렁을 지나 마지막 벼랑 끝에 섰을 때에 자기의 삶의 처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만약 예수께서 나를 맞으실 때 칼을 들고 나오실 지라도 나는 그분의 발 아래에 내 몸을 던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나의 최후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고난의 극한 상황이 바로 예수님에 대한 절박한 신뢰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을 당하지 않고도 그 분을 신뢰하고 믿는 것을 더 복되고 귀한 신앙으로 평가하십니다. 그러나 평범한 가운데 사는 사람이나 절망의 깊이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폭풍우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폭풍우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자 은총의 손길입니다.
그래서 C. S. 루이스(C. S. Lewis)는 “고난이란 하나님의 메가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 야고보서 5:13
48.가이사가 주님이시다
로마제국이 세계를 통치할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심한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자신의 주님이 가이사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이유로 때로는 콜로세움 형장에서 야수의 밥이 되기도 하고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반드시 “가이사는 주님이시다”, “그렇습니다. 나의 주님은 가이사입니다”라고 인사를 나누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든지 바로 로마 군인에게 잡혀가야만 했습니다. 가이사는 로마황제의 칭호로서 황제 이외에 그 누구도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황제의 말이 곧 법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주인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결코 가이사가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걸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골로새서 1:23
49.현재에 충실
11세기 독일에 살았던 왕 하인리히 3세는 어느 날 왕궁 생활에 대한 깊은 회의와 허무를 느껴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도원을 찾아가 수도원장에게 수도사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수도원장은 그가 수도사가 되려는 동기가 올바르지 않다며 한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폐하, 수도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할 규율이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수도사가 되려면 폐하도 이 규율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어떠한 명령에도 절대적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렇소!”
“우리 수도원에서 말하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이 수도원 원장인 저와 이 수도원에서 지도하는 모든 스승들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합니다. 거기에도 순종할 수 있습니까?”
“알겠소. 그렇게 하겠소.”
“그러면 이제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폐하는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셔서 백성 다스리는 일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위한 수도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자리에서부터 인내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간다면 장차 우리에게 어떠한 환경이 찾아오더라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18
50.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평생을 동역 하신 조지 베브리 쉐아(George B. Shea)라는 복음 성가 가수의 간증입니다.
1931년 미국의 보험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던 그는 NBC의 라디오 공개방송에서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들려준 저음의 바리톤은 방송을 통해 전 미국 국민에게 울려 퍼졌고 노래에 매료된 사람들이 그에게 끝없는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갑자기 그는 유명 스타가 되어 여러 방송사에서 끊임없는 계약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앞으로의 그의 인생은 출세와 돈이 보장된 스타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에는 왠지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밀려들어와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머리 숙여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기도하던 그 시간에 그의 어머니도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에도 아들의 출세의 길이 눈앞에 보였지만 기쁨은 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의 책상 위에 조그마한 쪽지 하나를 갖다 놓았습니다. 그가 종이를 펼쳐보니 어머니가 자주 애송하던 밀러 부인의 성시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는 그 성시를 조용히 읽다가 감동을 받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멜로디를 종이에 써 내려갔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그는 지금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백발을 휘날리면서 전도와 간증과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1983년 네덜란드의 암스텔담에서 전세계의 전도자들이 모두 모였을 때, 그는 특별 찬양을 했습니다. 찬양이 끝나자 장내의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끝없는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그 박수가 끝난 후 그가 남긴 한마디는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오랫동안 숙연케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주신 박수 갈채와 그리스도를 바꾸지 않겠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한일서 2: 15
51.오직 그리스도뿐
모라비안의 지도자였던 진젠도르프 백작이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인 지위와 조건들을 모두 다 버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맨발로 뛰쳐나갔을 때 그의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자네의 야망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뿐 오직 그 분뿐”
깊은 밤에 성 어거스틴이 성경을 묵상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꿈 속에서 주의 천사가 나타나 주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는 깊은 꿈 속이었지만 그의 의식과 신앙을 지배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아니요. 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밖에는요.”
에쿠아도르 강가에 자기의 젊은 피를 뿌렸던 선교사 엘리옷은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내가 진짜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것, 어차피 놓아버릴 수밖에 없는 것을 붙들려고 애쓰는 것보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거, 그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서 생명을 버린 것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서 우리를 만족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만물이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만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도다.”
우리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태어나 욕망이라는 인생의 행로를 달려갑니다. 그러나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우리의 손을 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빨리 깨닫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나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단 한 가지 있습니다. 주께서 내 안에 계시면 또 내가 주 안에 있으면 내 삶이 참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내 중심에 계시니 주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합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립보서 1:21
52.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진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명작인 최후의 만찬이 어떻게 해서 그려졌을까요? 최후의 만찬은 그의 나이 43세 때에 밀라노의 어떤 백작의 요청에 따라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그림은 예수님이 중앙에 앉아 계시고 제자들이 양옆에 앉아서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는 장면이지요.
그런데 “최후의 만찬” 그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습니다. 본래 처음 그림에는 예수님께서 오른 손에 컵을 들고 계셨다고 합니다. 현재 그림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작품이 완성될 무렵 다빈치는 친구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는데 그 친구가 대뜸 “다빈치, 여기 예수님이 든 컵은 꼭 진짜 같은데”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말일 수 있겠지만 다빈치에게는 예수님보다 더 중요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진짜 같이 보이는 컵을 지워버리고 예수님의 팔이 가만히 탁자 위에 올라가 있는 모양으로 그림을 수정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들 가운데 그리스도보다 더 중요하게 드러나 있는 것은 없는지요. 신앙의 어려움은 삶의 초점이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질 때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한복음 3:30
53.인생의 주인
제가 미국의 디트로이트 시에서 공부할 때, 어떤 목사님께서 그 도시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자동차 공장들이 많이 몰려있는 디트로이트 도시의 어느 겨울날, 시외에 살고 있는 유명한 정비사가 아침에 출근하는 도중 자동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차를 길옆에 세워 놓고 고장의 원인을 찾기 위해 열심히 차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인은 발견할 수 없고 날씨는 점점 추워져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세단(sedan) 하나가 멈춰 서더니 노신사 한 분이 차에서 내려 “도와드릴까요”라고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비사는 속으로 ‘디트로이트에서 가장 유명한 정비사인 내가 못 고치는 차를 자기가 고치겠다니’라고 생각하며 노신사를 보았습니다. 노신사는 차의 몇 군데를 만지더니 시동을 켜 보라고 했습니다. 그 정비사는 별 기대감 없이 시동을 켜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시동이 쉽게 걸린 것입니다.
‘도대체 저 노신사가 누구인가? 나도 고칠 수 없었던 차를 손쉽게 고칠 수 있다니...’ 궁금해하는 그에게 노신사는 명함 한 장 주고 떠나버렸습니다. 그 명함에는 놀랍게도 ‘헨리포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그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주 하나님, 그가 우리 인생의 홀로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디모데후서 2: 21
54.교회의 참된 주인
한국 교회 목사님들이 자주 하는 농담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 한 분이 천국에 도착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이 목사님을 보자마자 너무 열렬히 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주변의 평신도들이 예수님께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세상에서도 목사님들이 제일 대접을 많이 받았는데 천국에서까지도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며 환영하십니까? 너무하십니다.”
이런 항의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너희들이 참으로 오해하였구나. 목사를 차별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가 하도 오지 않다가 아주 오랜만에 왔길래 너무 반가워서 내가 이렇게 환영하는 것이란다”라고 하셨답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목사를 너무 바라보거나 높여서도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향하여 나의 교회라고 주장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참된 주인은 주님 자신이십니다.
56.파인애플의 진짜 주인
정글지역에서 선교하시는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정글에서 사역하면서 인간적인 소원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 소원은 다른 것이 아니라 파인애플을 실컷 먹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주민 형제들과 함께 파인애플 나무를 심었는데 시간이 흘러 파인애플을 먹을 때가 되어 가보니 열매가 하나도 없더랍니다. 왜냐하면 파인애플이 익자마자 바로 원주민 형제들이 따 가지고 갔기 때문이지요. 선교사님은 너무나 황당해서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들이여, 어찌하여 내가 필요해서 나무를 심었는데 말도 없이 열매를 모두 따 갈 수 있소?”
“선교사님, 당연히 우리가 심었으니깐 그 파인애플은 우리들의 소유입니다. 왜냐하면 정글의 법칙은 심은 사람이 주인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선교사님은 “그렇다면 다시 나무를 심되, 심는 대가를 주겠소. 그러니 열매를 반반씩 나누어 가지기로 합시다”라고 말하며 확약을 했습니다.
그 후 추수 때가 되어 가보니 또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화가 난 선교사님은 원주민들에게 그들을 위해서 운영하고 있는 간이병원의 문을 닫겠노라고 위협하기도 하고, 파인애플 주변에 개로 경비를 서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은 애간장이 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파인애플이 누구의 것이냐? 네 거냐? 내 거지.”
선교사님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욕심을 부리다가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를 망각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또 다시 원주민 형제들이 열매를 모두 따갔지만 선교사님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입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원주민 형제들이 선교사님을 찾아와서 묻습니다.
“선교사님, 올해는 왜 우리에게 화를 내지 않으십니까?”
“여태 난 그 나무가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 화가 났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진짜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더러 파인애플을 훔쳐 가는 원주민들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훔쳐간 사람들의 아이가 병이 난다든지 하면 자기들끼리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것을 훔쳐서 아이가 아픈 것 같아.”
이렇게 하다보니 점점 그 정글에서는 도둑이 없어졌고, 선교사님도 자기가 심은 파인애플을 나누어 먹을뿐더러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5
57.겉보기와 다르다
남아프리카의 한 인쇄업체에서 미국 시카고의 유명 회사로부터 인쇄기 한 대를 비싼 값에 지불하고 수입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인쇄기에 문제가 생겼는지 작동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인쇄기 판매업체에 문의해서 나름대로 손을 대보았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미국 시카고 회사에서 현지로 전문가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얼마 후에 한 명의 전문가가 남아프리카 공항에 도착했는데 그를 본 현지인들은 모두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파견되어 나온 전문가가 20대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너무나 젊은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지인들 생각에는 어떻게 저런 애송이가 우리도 해결 못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의아해 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에 다시 이런 내용의 팩스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지금 시간이 없소. 그러니 노련한 전문가를 다시 파견해 주시오.”
이런 내용의 팩스에 대하여 시카고 회사에서는 단 세 줄로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당신들이 겉모습으로만 어리게 판단한 그 젊은이가 바로 그 기계를 설계한 장본인입니다. 그 사람만이 그 기계를 고칠 수 있습니다. 아무 말 말고 그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따르십시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로새서 1:18
58.짧은 인생
한 설교자는 자신의 어떤 글에서 미국 사람들이 평균 75년 정도를 산다고 기준할 때 그 75년을 어떻게 사용하며 사는지 설명했습니다. 그의 글을 보면 사람들은 20년은 잠자는 데, 20년은 일하는데, 7년은 노는데, 6년은 먹는데, 5년은 텔레비전 보는데, 5년은 내가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고민하며 옷을 사는 쇼핑에 시간을 보내고, 3년은 누군가를 만나고 기다리는 일에 소모하고, 2년 반은 화장실에서, 2년 반은 잡념과 잡생각을 위해서 그리고 일생 중 2년은 커피를 마시는 일에, 그리고 1년은 전화 받는 일 등에 75년의 시간을 사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우리의 인생을 아침 6시부터 저녁 12시까지 나눠 생각해 보았습니다. 15살이라면 그 학생은 아침 9시 38분을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20세라면 10시 51분, 25세라면 12시 4분, 30세라면 1시 17분, 45세라면 4시 56분, 50세라면 6시 8분, 55세라면 7시 55분, 60세가 되면 저녁 8시 34분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65세라면 9시 47분, 70세라면 11시, 70세를 넘으셨다면 당신은 12시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의 삶을 결산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요? 이 짧은 인생에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골로새서 4: 5
59하나님이 맡기신 시간
수년 전에 우르바나(URBANA) 세계 선교 대회에서 런던의 세계적인 신학자이고 목회자인 존 스타트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설교 중반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박수 갈채를 보냈는데, 그 때마다 존 스타트 목사님은 시계를 보셨습니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요란한 박수와 함께 자리에 일어나자, 목사님은 앉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제게 할당된 설교 시간은 2분밖에 남지 않았으니 제발 제 시간을 빼앗지 말아 주십시오.”
그 분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앞에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복음의 거룩한 명령을 순종하기 위하여 한 순간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디모데전서 1: 12
60.시간을 잘 사용하는 지혜
교회 역사에서 짧은 생애 동안 엄청나고 극적인 성취를 이룬 모델을 든다면 존 웨슬레(John Wesley)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웨슬레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만약 10시간 후에 오셔서 우리 생애의 종말이 된다면 그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이때 웨슬레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평소처럼 내가 계획한 대로 살 것입니다.”
이 짧은 대답을 통해 그의 삶이 얼마나 철저하게 기도와 계획 속에 이루어졌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웨슬레는 그의 생애 50년 기간에 42,000번의 설교를 하였고, 200권 이상의 책을 썼으며, 약 40만Km의 전도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50년 동안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먼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하는 동안 그의 하루하루를 철저하고 빈틈없이 계획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시작한 감리교 운동과 감리교도들을 가리켜 영어로 ‘메소디스트’(methodist)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본래 방법, 규율, 질서를 뜻하는 ‘메소드’(method)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초기의 감리교도들이 얼마나 철저한 계획과 질서 속에서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서 5:15, 16
61.시간의 청지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은행에서 걸려온 이상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신 앞으로 어떤 사람이 1,440만원을 입금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입금을 하면서 당신에게 꼭 전화를 걸어 이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오늘 안에 반드시 이 돈을 써야 하는데 조건은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유익하게 쓰라고 하더군요.” 이 사람은 어리둥절했지만 기분이 좋아 1,440만원을 어떻게 쓸 것인가 궁리하다가 그 돈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에 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당신 앞으로 1,440만원이 또 입금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입금된 돈은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돈은 주인이 도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말하기를 오늘 그 돈을 찾아서 쓰시면 그 돈은 당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조금 미심쩍어 하면서도 은행에 가서 그 돈을 찾아다가 기분 좋게 다 써버렸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늘 아침에 또 당신 앞으로 1,440만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또 쓰십시오.” 그래서 이 사람은 또 썼습니다. 이런 일이 매일 같이 반복되었는데 그 돈을 쓰면서 기분은 좋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어느 날 갑자기 돈이 입금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불안한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루 24시간을 주셨습니다. 이 시간은 분으로 계산하면 1,440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돈 1,440만원은 주지 않으셨지만, 우리에게 1,440분의 시간은 공평하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24시간을 공평하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할 것은 이것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끝나는 날,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시간을 어떻게 관리했는가에 대해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청지기입니다.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에스겔 7: 4
제2부 요구할 대상이 있는 행복
1.우울한 잔치
어느 날 함께 일하던 선교사님 한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의 표정이 항상 저렇게 울상이지? 특별히 한국 교인들은 예배당 안에만 들어오면 그렇게 짜증스럽고 울상인 분위기가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네.”
그 질문에 저는 한참 생각하다가 별로 신통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아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한국 교인들이 늘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은 웃으시면서 다시 반문했습니다. “아니, 한국 교인들은 그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을 잊어버렸나?”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태복음 9: 15
2.변화의 법칙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생산의 80%는 20%의 사람을 통해서 생산되고 우리가 소비하는 80%의 소비는 20%의 사람들이 소비한다는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을 경영학에서는 80대 20법칙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어느 학자가 근면과 성실의 상징인 개미를 가지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학자가 개미를 자세히 연구해 보니 실제로는 개미 가운데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20%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80%의 대부분의 개미를 열심히 일하는 20%의 개미만이 먹여 살린다는 얘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오늘 한국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 중에 20%를 차지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를 추구하며 주님의 바램처럼 소금과 빛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사회와 역사는 매우 달라질 것입니다. 20%가 아니라 10%만이라도 정말 살아 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의 말씀을 삶의 원리와 지침으로 여기고 살아간다면 우리 나라 사회, 문화, 경제, 역사 모두가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13
3.환상을 좇는 어리석은 자
크롬웰(Cromwell)은 영국의 유명한 장군이자 정치가이며 수상까지 역임한 바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자신에게 있어 가장 인기가 많고 최고의 권력을 가졌을 때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크롬웰이 그의 가장 가까운 부하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내 시골로 돌아가고 싶네. 이제부터는 작은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며 조용히 주님을 섬기고 싶어.” 그의 부하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수상 각하, 각하께서는 아직 충분히 능력이 있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골로 떠나려고 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힘차고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결코 환상을 좇지 않네. 오직 주님의 뜻을 좇고자 하네."
크롬웰에게는 사람들이 갈망하는 권력이나 존경받는 것이 환상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즐겨 보는 동화책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맑은 날에 엄마와 어린 딸이 넓은 들판으로 소풍을 나왔습니다. 아이가 꽃 사이로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고 잡으려고 쫓아가자 어머니는 딸에게 급하게 소리질렀습니다.
“안돼, 거기로 가면 안 된다." 어머니는 아이가 나비를 보느라고 바로 앞에 있는 절벽을 보지 못한 것을 알고 소리지른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바라보는 권력과 성공의 바로 건너편에는 어쩌면 인격의 파멸과 영혼의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환상을 좇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 17
4.적용하기 어려운 말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라는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마크 트웨인이 성경을 읽고 있는데 어떤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청년은 마크 트웨인이 성경을 읽는 모습에 의아하다는 듯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께서 성경을 읽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선생님은 성경의 모든 말씀들을 이해하시나요?”
그러자 마크 트웨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성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제가 마음 아픈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말씀 때문이 아니라 알고 있는 말씀조차 삶에 적용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요한복음 6:63-64
5.1페니의 힘
영국의 어떤 교회에서 5살 먹은 소년이 지정헌금을 했습니다. 그 소년은 1페니를 헌금하면서 이것으로 꼭 신약성경을 사서 인도에 보내달라고 지정을 했던 것입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그냥 우습게 지나칠 수 있는 이 5살 된 소년의 헌금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소년의 뜻대로 돈을 조금 더 보태어 아주 작은 신약성경 한 권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의 사인을 넣어 인도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목사님과 소년은 그 일을 잊었습니다.
20년이 지난 후 목사님은 인도의 어떤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참으로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마을 사람들에게 이런절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 마을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까?”
그 마을 사람들은 말하기를 20년 전 어떤 선교사가 찾아와서 작은 신약 성경 한 권을 건네 주셨는데, 그 성경이 복음화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 떨어지고 남루한 작은 신약 성경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허름한 신약성경의 마지막 표지에는 20년 전 자기 교회의 5살 짜리 소년의 사인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누가복음 21: 2- 3
6.십일조의 축복
시골에 살던 열 여섯 살 된 어떤 소년이 가슴에 큰 꿈을 안고 뉴욕 도시로 올라왔습니다. 그는 뉴욕의 바닷가를 거닐다가 한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소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의미 있게 삶을 사는 방법까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너는 무슨 재주가 있니?”
“저는 시골에서 아버지와 함께 비누나 양초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어요.”
“그러면 비누 만드는 공장에 취직하면 좋겠구나. 그리고 일해서 돈을 벌게 되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복을 주시는 대로 십일조를 드리거라. 만일 하나님이 너에게 계속 더 큰복을 주시거든 십일조만 드리지 말고 십의 이조, 십의 삼조, 십의 사조, 그 이상까지 드려서 하나님을 위해 멋있는 삶을 살아보렴.”
“아저씨, 고맙습니다. 그렇게 해볼게요.” 그 그리스도인은 소년에게 축복 기도를 해 주고 떠났습니다.
그 후 소년은 비누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인의 말대로 꼬박꼬박 하나님께 정성껏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조금씩 잘 풀려나가게 되어 조그만 비누공장을 인수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계속적인 축복으로 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업은 비누 공장뿐 아니라 양초와 치약까지 만드는 공장으로까지 확장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콜게이트 치약’을 만든 윌리암 콜게이트(William Colgate)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
7.하나님 돈은 내 돈, 내 돈은 내 돈
주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주일학교에 다니는 유치부 꼬마 아들에게 헌금을 줍니다.
“우리 예쁜 아들, 엄마가 동전을 몇 개 줬지? 두 개지? 한 개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헌금으로 드리고 나머지 한 개는 네가 사먹고 싶은 것을 사먹는 거야.” 엄마는 아들에게 돈을 주면서 꼭꼭 다짐을 해 둡니다. 엄마가 동전을 두 개 준 이유는 혹시 동전 하나만 주면 교회에 가다가 다른 것에 유혹을 받아서 쓸까봐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신바람이 나서 노래를 부르며 교회로 달려갑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발을 잘못 딛어 넘어지는 바람에 손에 꼭 쥐고 있던 동전 두 개 중 하나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떨어진 동전이 하수구 속으로 쏙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것을 본 꼬마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합니다.
“아이 참, 하나님 동전이 하수구 속으로 들어갔잖아.”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야고보서 1:14
8.하나님께 빚진 자
그리스도인이었던 A. A. 하츠는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여 십만 불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파산하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아침에 그는 말씀을 읽고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 깊은 곳에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감동을 받은 하츠는 그날 저녁에 자기의 재산을 모두 정리하면서 상당한 액수를 교회에 헌금하였습니다. 친구와 친척은 물론 아내까지도 그의 행동에 무척 놀랐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빚을 많이 진 상태에서의 그의 결정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 때 하츠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업을 하면서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업이 조금만 더 잘되면 주님께 모든 것을 바쳐야겠다구요. 저는 마음으로만 헌신하려고 했던 거지요. 그런데 오늘 새벽 우연히 말라기 말씀을 읽는데, 그 말씀 가운데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지만 정작 내가 빚을 지고 있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분의 빚부터 갚기로 결심하여 헌금을 한 것입니다.”
그 후 하츠는 사업을 재기하여 성공하였고 신화적인 백만장자까지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재산으로 복음 사역을 위해 힘쓰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말라기 3:8
9.아빠 마음은 달라
때로 사람들은 운전면허를 따기 전에 운전하는 법을 조금 배우고 나면 너무 재미있어서 자꾸만 차를 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의 아이들도 운전을 배울 때 얼마나 운전하고 싶어하든지 시간만 나면 열쇠를 달라고 해서 운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열쇠만 주고 혼자 내보내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어느 날 둘째 아이가 “아빠, 차 열쇠 주면 멀리 나가지 않고 집 앞에서 조금만 타고 올께”라고 하더군요. 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쳐다봤습니다. 서로 한참을 째려본 후에야 아이는 “아빠, 난 알아”하면서 가더군요.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제가 속으로 “너는 아빠를 몰라”라고 했습니다.
만약 우리 아이가 장성한 성인이 되어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 무척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열쇠를 주고 싶지만 아직 때가 안 되었기 때문에 열쇠를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아빠 마음을 아들은 모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주님이 주시는 경계와 금지의 말씀이 무겁지 만은 않습니다. 그것이 나를 위한 말씀이고 나의 유익과 축복 그리고 인생의 승리를 위해서 주신 말씀이라면 그 말씀을 따르는 것이 큰 감격일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이 시대를 살기를 원한다면 주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말씀을 따라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6; 32
10.존재를 원하시는 하나님
한 선교사가 인디안 부락만을 찾아다니며 선교하다가 어느 날 인디안 추장을 전도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인디안 추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후 그리스도 안에서 삶이 변화되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였습니다.
얼마 지난 후 선교사에게 구원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고자 사슴가죽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그는 선물을 드리면서 “선교사님, 우리들은 은혜를 입었으면 반드시 갚아야 하기 때문에 이 사슴가죽을 하나님께 바치기 원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선교사는 “미안하지만 하나님은 사슴 가죽을 쓸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인디안 추장은 실망하며 돌아가더니 얼마 후에 아주 멋진 백마를 가지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선교사님 이것은 나와 아주 중요한 사람들만 타고 다니는 귀한 말인데 이 말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선교사는 “죄송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말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추장은 더욱 낙심하여 돌아갔고 그 다음에는 뼈로 만든 머리장식을 가지고 다시 왔습니다. 머리장식을 보고 이상이 여긴 선교사가 “왜 이것을 드립니까?”라고 물어보니, “이 장식은 추장의 상징으로서 나의 권위와 명예까지도 다 주님께 바친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분이 나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선교사는 “미안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이 장식이 쓸모 없습니다”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추장은 낙심하면서 “그러면 내가 무엇을 바칠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저의 소중한 모든 것은 다 바쳤고 이제는 제 생명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는 밝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당신의 생명을 원하십니다.” 그리고는 성경을 펼쳐 인디안 추장에게 한 구절을 읽어주었습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
11.다스리지 못한 분노
‘나는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고 말했던 알렉산더 대왕이 자기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함으로 큰 불행을 겪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클레토스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인 알렉산더 대왕의 휘하에서 장군으로 봉사하였습니다. 한번은 이 친구가 술에 잔뜩 취해 알렉산더의 많은 군졸들 앞에서 대왕을 모욕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화가 난 알렉산더 대왕은 순간적으로 옆에 있던 군졸의 창을 빼앗아 클레토스에게 던졌습니다. 죽이려는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불행하게도 그 창이 그 친구의 가슴에 정확히 꽂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순간적인 행동을 후회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친구를 죽였다는 생각에 몹시 괴로워하며 자살하려고 했다가 옆에 사람들의 만류로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전 세계는 정복했지만 자기의 분노를 다스리는 일에는 실패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6:32
12.미지의 신
제가 처음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지 3년 동안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단순히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神)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교회 나간지 얼마 되지 않은 저에게 청년회 총무와 회장이라는 중임을 맡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갑자기 담임 목사님이 저에게 기도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날 따라 매일 가지고 다니던 기도문도 없었기 때문에 저는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기도하나 못해서 자존심을 깎이기는 싫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멋지게 기도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길 원했습니다. 한참 고민하다가 갑자기 영감처럼 떠오른 말이 있어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오! 미지의 신이시여.”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야고보서 3:2
13.연약한 피조물
인류의 역사 속에 나오는 인물 중 최고의 군사적인 천재를 말하라면 단연 나폴레옹일 것입니다. 이 나폴레옹이 군사를 이끌고 러시아를 침략하기로 계획을 세웠을 때, 그와 가까웠던 신복이 그에게 나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번만큼은 러시아 침략을 취소하시면 좋겠습니다. 정복한 나라들도 많은데 이만하면 족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폴레옹은 그의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신하는 마지막으로 간곡히 폐하에게 매달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폐하시여! 모든 일은 사람이 계획하지만 하나님만이 그 일을 성취시키십니다. 이번 러시아 침략은 취소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나는 모든 일을 계획도하고 성취도 한다”고 호언장담하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정복의 계획은 나폴레옹 생애에서 몰락은 알리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나중에서야 나폴레옹은 센트 헬레나의 고독한 섬에서 자신이 그 한계성을 받아들여야 할 연약한 피조물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14
14.여호와는 나의 목자
한 부흥 강사 목사님이 어떤 교회의 집회에 앞서서 그 교회로부터 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교회 사무 직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는데 설교 제목과 본문을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본문이 시편 23편이고 제목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무 직원은 제목이 이상하게 들렸는지 “그것이 전부입니까?”라고 다시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맞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사무직원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가 전부입니까?”라고 되묻는 것입니다. 사무직원의 물음에 목사님이 하도 답답하셔서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면 다 됐지, 뭐가 더 필요합니까?”하고 크게 소리치셨습니다.
이 때 목사님의 말을 듣고 있던 사무직원에게 갑자기 큰 깨달음이 왔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목자가 되신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여호와가 목자시면 족하군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 1
15참된 성별(聖別)
한 사람이 유명한 전도자인 빌리 그래함 목사님께 다가와서는 “목사님! 안식일에 소가 구덩이에 빠진다면 건져내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두고 교회에 가야 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는 “당연히 그 소를 건져내야 하겠지요. 그러나 안식일마다 계속 구덩이에 빠지거든 제발 그 소를 팔아 치우십시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그 사람에게 안식일에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날들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헌신과 성별의 교훈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고리도전서 6:12
16.모방과 진짜의 차이
오래 전 미국과 중국의 사이가 좋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미국에서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던 한 중국 사람이 체포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중국사람이 어찌나 미국 사람과 똑같은지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제스추어에 얼굴 생김새까지 미국 사람과 똑같았습니다. 아마도 중국 정부에서 10억에 가까운 사람들 중에 미국 사람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 한 명을 뽑아서 아주 철저하게 훈련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한 훈련을 받았다할 지라고 그 사람은 미국 사람과 비슷할 뿐이지 진짜 미국 사람은 아닌 중국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미국 사람으로 태어난 사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겉모양만 비슷하게 모방했을 뿐 그 본질이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3
17.뜻이 맞는 자와의 동행
80년대만 해도 골프라는 스포츠는 평범한 사람들의 입에 쉽게 오르내리지 않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만큼 대중화되지 못한 고급 스포츠였지요. 그러나 박세리 선수의 등장으로 골프는 왠지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어울릴 수 있는 친숙한 스포츠가 된 것 같습니다.
골프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프로 골퍼가 미국의 제 38대 대통령인 제럴드 포드(Gerald R. Ford)의 초청으로 함께 골프를 칠 기회가 있었답니다. 이 기회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영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대통령과 함께 필드를 거닐며 자신의 기상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흥분된 일입니까? 골프 회동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친구는 무척 궁금한 듯이 물었습니다.
“자네, 지금 심정이 어떤가? 대통령과 함께 골프를 친 소감 말일세.”
“소감이라고? 말도 말게나 기분이 너무 언짢았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모두가 자네를 부러워했는데.”
“대통령만 나온 게 아니라 빌리 그래함 목사도 함께 나왔거든.”
“빌리 그래함 목사가 자네 기분을 언짢게 만들기라도 했나? 혹시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던가?”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러면 도대체 기분이 왜 나빴는데?”
“자네도 나와 함께 골프를 쳐봐서 잘 알다시피, 다른 때와 달리 골프 칠 때는 내 입버릇이 좀 거칠지 않은가? 더욱이 그린에서 퍼팅 할 때면 약간씩 욕을 내뱉어야 시원스럽게 경기가 풀리는데, 나와 함께 한 대상이 이 나라 정부와 교회에서 가장 높은 분들이니 마음놓고 욕을 할 수가 있어야지. 정말 오늘의 골프 경기는 최악이었네.”
성중의 행순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아모스 3:3
18.진리를 찾는 사람들
‘천로역정’의 저자인 존 번연(John Bunyan)은 인생과 영혼에 대한 의문이 자기 마음에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기 전까지는, 이 진리를 확실히 알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분명히 깨닫기 전까지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리라. 아니 이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구 어디라도 갈 것이며 무엇이라도 할 것이다.”
그의 이러한 결심이 예수님을 만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셔서 깨닫게 해주셨고 진리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는 주님을 찾은 그 놀라운 감격을 기록하여 위대한 저서, ‘천로역정’을 남겼습니다. 그 책에 나타난 기독교도의 모습은 자신의 모습이자 지금도 진리를 찾고 있는 순례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많은 고난과 고통을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며 위대한 주의 진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 ‘천로역정’에서는 크리스천이라는 주인공이 순례의 여정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 ‘신실’과 ‘소망’이라는 이름의 두 사람과 만나 함께 길을 가다가 의미가 없는 헛된 박람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장사꾼들은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물건들을 사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애써 귀를 막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한 장사꾼이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무엇을 사길 원하십니까?”
이때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사기 원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얻어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지는 것이 아닌, 물질이 아닌 내 인생에 대한 대답을 얻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들은 허무하고 불안한 마음에 영광스러운 진리를 얻어서 자신들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야 29:13
19.정글은 내가 곧 길
아프리카에 파송된 선교사 한 분이 선교 대상 지역을 답사하는 도중에 깊은 정글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지역에 사는 원주민 한 사람을 가이드로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그 원주민이 안내하는데 계속 이상한 곳으로만 다니며 정글 속을 헤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선교사는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당신 도대체 길을 아시오?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오?”라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원주민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정글에는 길이 없어요.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 6
21.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제가 진지하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62년부터였지만, 처음 3년 동안은 ‘도대체 이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헤맸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1965년에서야 진정한 복음을 찾았습니다.
그 때까지는 풀리지 않는 인생의 수수께끼를 끌어안고 답답해하면서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여러 교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교회를 다녀보았지만 별 차이가 없고 결국 기독교라는 것이 도덕의 추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다른 종교와는 전혀 다른 기독교의 독특성과 왜 꼭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지에 대해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야간 신학교를 기웃거리면서 그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캐나다의 오스왈드 J. 스미스 목사님이 쓴 ‘구원의 길’이라는 작은 책자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는 구원의 진정한 길이 아닌 것 여러 가지를 열거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종교적인 노력과 도덕적인 선행을 통해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나아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갈라디아서 2장 21절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그 말씀을 읽는 순간, 저는 저의 노력을 통해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죄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분이 십자가에 내 대신 죄 값을 치루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즉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깊이 고백했습니다. “나의 오만했던 지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인정하겠습니다. 내 마음에 들어와 주십시오. 당신은 나의 구주이십니다.”
그날 밤의 깨달음은 저에게 형언할 수 없는 큰 감격을 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복음과 십자가가 참으로 제 눈앞에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껴졌던 성경의 말씀이 한 구절 한구 절 저를 지배하고 감격하게 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성경을 들고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이 영광스러운 구원의 복음을 중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2:21
21.진리를 무시한 군중심리
어떤 심리학자는 군중 심리가 개인의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한 실험을 했습니다. 비슷한 크기의 두 판에 하나는 검은색으로 칠하고 또 다른 하나는 회색으로 칠했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과 50명의 학생 중 40명의 학생들끼리만 미리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은 이러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느 판이 검은색입니까?”라고 물으면 40명의 학생 모두가 회색 판을 가리키기로 한 것입니다. 이때 나머지 10명의 학생들이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는가를 보는 실험이었습니다.
심리학자는 이 실험을 열 번에 걸쳐 실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열 명 모두가 진짜 검은색 판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계속 실험을 반복하자 마지막에 가서는 한 명의 학생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9명이 모두 회색을 검은색이라고 가리켰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진리를 좇기보다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리가 일제히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누가복음 23:18
22.평화의 제물
돈 리처드슨(Don Richardson) 선교사로부터 들은 간증입니다. 인도네시아에 속한 큰 섬인 이리안자야에는 식인종이라고 알려진 사위 족속 부락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워낙 싸움을 즐기고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족속이라 복음을 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배반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보다 가룟 유다를 더 받아들이고 영웅으로 떠받드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선교사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의 전통의식을 바라보다가 아주 멋진 영감을 하나 얻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두 부족이 싸우다가 한 부족이 지면 진 부족의 추장이 자기 아들을 상대 부족에게 제물로 갖다 바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 전통을 치름으로써 전쟁은 끝나고 평화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선교사님은 그 모습을 보고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생각해 냈고 그 의식이 행해질 때 이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여 평화의 아이를 주셨으니 이는 아이가 제물로 바쳐짐으로써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그 평화의 아들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
그때부터 이 사위 족속은 복음을 깨닫게 되었고 점차 싸움을 즐기며 공격적이던 그들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로마서 5:10
23걸인 행세하는 부자 걸인
영국에 사는 줄리안 모리스는 어린 시절 미아가 되어 구걸하며 삶을 유지했던 걸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굉장한 부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져서 졸지에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고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부자가 되었는데도 걸인처럼 행세를 했습니다. 매일 아침 날이 밝으면 걸인의 옷을 다시 입고 면도날이나 비누, 샴푸 같은 것을 집집마다 팔러 다녔습니다. 그러다가도 일년에 한 두 번쯤은 파리를 비롯한 구라파의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기도 하고, 한 달의 한번은 자기의 최고급 리무진을 타고 런던의 초호화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날이 밝으면 다시 비누와 샴푸를 들고 나가 집집마다 돌아다녔습니다. 그의 다 떨어진 남루한 옷차림과 초점 없이 흐릿한 눈동자를 보면 그는 영락없는 거리의 걸인이었습니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 1:18-19
24.신분에 맞는 삶
목사는 목사다워야 하는데 목사답게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어쩌다 사람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시간을 갖게 되면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오래 전에 저희 내외가 하와이로 모처럼 만에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오랜 간만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하와이에 있는 동안만큼은 실컷 편하게 지내고 옷도 야하기 입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들뜬 기분으로 한껏 폼을 잡고 호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어떤 사람이 타면서 저를 위 아래로 훑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대뜸 “이동원 목사님 아니십니까?”하는 것입니다. 당황한 쪽은 나보다도 내 옆에서 아주 야한 옷을 입고 서있는 아내였습니다. 괜히 그 사람에게 소개하지 않으면 오해할 것 같아 아내를 소개하자, 아내는 몸둘 바를 몰라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해변을 향해 가면서 아내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여보, 이 세상에 피할 데가 어디 있겠어요. 당신과 저는 어차피 공인이에요.” 아내의 말을 들으며 이제부터는 해변에 갈 때도 검은 양복은 한 벌씩 가지고 다니기로 결심했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빌립보서 1: 27
25.연약한 심령
아프리카에는 뱀잡이수리라는 아주 특이한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평소에는 잘 날아다니다가도 어느 순간 고통을 감지하거나 위험한 것을 느끼면 갑자기 날 수 있는 능력을 망각하고 맙니다. 날 수 있는 능력을 망각한 새는 땅을 기어다니다가 끝내는 목숨을 잃어버리거나 다치게 되는 특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뱀잡이수리를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상당한 훈련에 의해서 의지적으로라도 날마다 조금씩 기도를 하며 주님을 바라보고 삽니다. 그러나 막상 기도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는 갑자기 기도를 잊어버려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며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 26
26.내가 산 것이 아니요
한국 초대교회 선교사였던 모펫트가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모두 마치고 고국인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위해서 비석을 세우자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우상의 개념이 아니라 기념의 차원에서 비를 세우는 데 동의했습니다.
이때 유명한 최권능 목사님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모펫트 선교사님을 존경합니다. 그는 한국 교회의 은인이자 내 신앙의 선배이십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 분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분의 동상을 세우신다면 나는 도끼로 그 동상을 때려부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세우십시오. 또 다시 나는 부술 것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최권능 목사님의 충정을 이해하신 모펫트 박사의 간절한 만류로 기념관만을 세우기로 결정되었다고 교회사에 남아있습니다. 칼빈도 자신이 죽은 후에 자기의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가리워질까 두려워한 이유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 20
27.우리는 하나님 편
미국 남북전쟁 중 북군이 남군에 비해서 전세가 불리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링컨에게 한 참모가 와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각하, 하나님은 우리 북군 편에 계실까요, 남군 편에 계실까요?”
이 질문에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편에 계신가, 적의 편에 계신가 하는 것을 가지고 고민하지 않네. 오직 나의 고민은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나 하는 것이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바라지만, 진정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만한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여호수아 3:5
28우리가 그대 곁에 있음을 잊지 말라
2차 세계 대전 초기에 영국의 작은 기선 한 척이 중요한 임무를 띠고 미국을 향해서 항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적선들의 공격을 피해 미국까지 항해할 수 있을까 염려하는 선장에게 임무를 지시한 상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이 비밀부호를 사용해서 무전을 치면 당신에게 곧 답신이 갈 것이오.” 선장은 이 말을 믿고 그 험한 바다를 자그마한 배로 헤쳐나갔습니다. 저 멀리서 갑자기 적의 함선이 나타나자 그는 재빨리 지시 받은 비밀부호로 무전을 쳐서 이런 답신을 받았습니다.
“다 알고 있다. 우리도 적을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대 곁에 있음을 잊지 말라.”
선장은 이 답신을 받고 용기 백배하여 무사히 자기 배를 끌고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배가 항구에 들어 올 때, 그는 자신의 배 바로 뒤에 보이지 않던 배 한 척이 갑자기 나타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배는 바로 잠수함으로서 적들로부터 선장의 작은 배를 보이지 않게 지켜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곁에서 계속해서 용기를 불어넣었던 그 답신- “두려워 말라. 우리가 그대 곁에 있음을 잊지 말라.” - 때문에 위대한 작전의 임무를 무사히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29.한 소년의 헌신
스코틀랜드 어느 작은 마을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한 주간동안 계속되는 집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별로 모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예수를 영접하고 헌신할 사람을 계속해서 초청했지만 아무도 앞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흥회 마지막 날, 한 작은 소년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목사님은 부흥회 기간동안 예수를 영접하고 헌신한 사람이 겨우 한 명밖에 없다는 사실에 무척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사람, 예수를 영접하고 헌신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온 이 소년만은 달랐습니다. 그의 눈에 뜨거운 불꽃이 일어났으며, 그 소년은 “오! 하나님, 저의 생명을 주님께 드립니다. 저에게 아프리카를 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리빙스턴입니다. 작은 한 소년의 눈에 일어났던 불꽃이 흑암의 아프리카 대륙에 새벽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단지 먹고사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전부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땅에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마가복음 4: 31- 32
30.더 높으신 분의 부름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는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면서 독학을 했습니다. 독학을 하면서도 그는 여러 나라의 언어를 꾸준히 공부하여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까지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케리의 친척동생이 자신이 들어가기로 한 옥스퍼드의 단과대학에 케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은 단과 대학의 한 유명한 어학교수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 그 교수는 케리의 어학 실력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케리에게 “당신이 이 학교에 들어오면 이 나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오. 그리고 이 나라의 여왕께서도 당신을 기뻐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말에 케리는 이렇게 거절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여왕을 말씀하셨는데, 제게는 이미 저의 전 생애를 건 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저는 여왕보다 더 높으신 분의 부름을 받았고, 그분을 향한 저의 충성은 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케리는 그 교수의 제의를 거절하고 세계 선교를 위해서 인도로 떠났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립보서 3:14
31.하나님께 영광 돌린 무신론 철학자
무신론 철학자인 머들린 머리 오헤어(Maudlin Marey O'Hare)는 미국의 무신론 협회장을 지냈고,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반 크리스천 운동(Anti Christian Movement)의 핵심 리더였습니다. 그가 몇 해전 미국 공립학교에서 기도하면 안 된다고 하는 기도금지 운동을 벌였고, 결국 이 문제를 가지고 법정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그가 법정에서 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카고 법원에서 내린 마지막 판결은 그의 승리였습니다. 승리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는 이기는 순간, 법정에서 손을 들어 “오 마이 갓"(Oh, My God)이라고 외쳤습니다. 그 모습이 기자들 눈에 띄었고, 뉴스에 보도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무신론자가 승리의 축하를 하나님께 돌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칼 융(Carl Jung)이라는 심리학자는 “사람들의 여러 의식 가운데 가장 강렬한 의식은 신(神) 의식이다. 그리고 이것은 무신론자의 마음속에서도 그렇다”는 말을 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온 세월을 보내는 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그러기 위해서 주야로 신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에서 절대로 벗어버릴 수 없는 의식이야말로 신 의식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고 신앙을 떠나서 결코 살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어떤 의미로든지 종교적인 것을 추구하며 사는 데, 이 필요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사도행전 17: 23
32.어떤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하시던 선교사님께서 어떤 원주민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에 감탄하여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이 할머니는 문맹에다가 시각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전도를 기가 막힐 정도로 잘 할 수 있었을까?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은 이러했습니다.
할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선교사님을 찾아와서 대뜸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님, 요한복음 3장 16절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선교사님은 영문도 모른 채 할머니의 요구대로 성경을 찾아 빨간 줄을 그어주었습니다. 선교사님은 글을 읽을 수도 볼 수도 없는 할머니인데 왜 그런 부탁을 할까 의아하기만 했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할머니는 전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날마다 학생들이 수업을 마칠 시간쯤에 동네 학교 정문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에게 “학생, 나 좀 도와줄 수 있겠어?”라며 말을 건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가 도와달라고 하니 학생들은 거절 못하고 “뭘 도와드릴까요?”라며 다가옵니다.
“사실은 이 할미가 좋아하는 책이 있는데 눈이 잘 안보여서 볼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말인데 여기 빨간 줄 쳐 놓은 부분만 좀 읽어주겠어?”
그러면 학생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할머니가 잘 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읽어줍니다.
“정말 고마우이. 그런데 학생은 방금 읽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잘 모르겠어요.”
“내가 가르쳐줄게.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거야. 나와 학생을 사랑하셔서 그분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인 예수님을 주셨다는 거야. 그런데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다 용서함 받고 자녀가 되며 영생을 얻게 된단다.”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은 이러했던 것입니다. 할머니로 인해 많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 가운데는 그 나라의 기독교 지도자로 성장한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골로새서 4:3
33.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미국에서 유명한 바바라 월터는 저널리스트이자 텔레비전에서도 매우 인기가 있는 여자입니다. 그의 남편도 유명한 기자이자 컴퓨터 전문가입니다. 이렇게 완벽한 여자와 남자가 부부가 되었다면 남보다 더 잘 살아야 할텐데 이들은 이혼을 했습니다.
이 여자와 이혼한 남자는 ‘이제는 좀더 새로운 인생을 찾아야겠다. 나에게 가장 잘 맞고 적합한 사람을 찾아봐야겠다’며 컴퓨터 통신에 광고도 내고 사람들의 추천도 받아서 컴퓨터에 많은 여자들의 리스트와 자료들을 입력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그 여자들 가운데 자신과 잘 맞고 어울리는 사람을 순위별로 살펴본 결과 10위까지 리스트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위 중 가장 적합한 결과로 나온 1위의 여인은 바로 자기와 이혼했던 바바라 월터였던 것입니다. 부인을 바꾸면 남보다 더 잘 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결정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방 때문에, 상대방이 바뀌면 좀더 우리 가정이, 직장이, 사회가 바뀌겠지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 변화되고 바뀌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누가복음 6: 42
34.부정적인 삶의 태도
오래 전에 미국에서 방영되었던 스누피(snoopy)라는 만화 중에 한 남편이 매사에 부정적인 자기 부인과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작가였던 부인은 어떤 주제로 글을 쓰든지 항상 글의 첫머리에 “어둡고도 우울한 밤이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런 부인의 글을 보다 못한 남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좋은 글은 그렇게 쓰는 것이 아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써보지 그래?”
“그럼 어떻게 써야 하는 데요?”
“음, ‘옛날 옛적에’라는 말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부인이 남편의 조언을 좋게 받아들여서 큰마음을 먹고 첫 문장을 다시 썼습니다.
“옛날 옛적에 어둡고도 우울한 밤이었습니다.”
이렇듯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에베소서5:4
35.히스토리컬(historical)과 히스테리컬(hysterical)의 차이
나타난다라는 단어에는 역사적(historical)인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히스터리컬(historical)이라는 단어와 연관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남자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마누라는 부부 싸움을 할 때마다 얼마나 히스터리컬(historical)한 지 모르겠어.”
그러자 말을 듣고 있던 친구가 지적하기를 “그럴 때에는 히스터리컬(historical)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히스테리컬(hysterical)이라고 하는 거라네.” 그러자 남자가 다시 말했습니다.
“아, 이 친구가… 내가 영어를 모르는 줄 아나? 나도 잘 아는데 우리 마누라는 너무나 히스터리컬(historical) 하다구.”
친구가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 마누라는 싸울 때마다 늘 과거를 들추기 때문에 히스터리컬(historical)이라고 한 거라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에베소서 4:32
36.장점을 보는 눈
C. S. 루이스(C. S. Lewis)는 성경을 읽다가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보고 다음과 같은 풍자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느 날 푸쉬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루이스는 의기양양하게 런던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고양이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푸쉬야, 너 지금 어디를 갔다오니?”
“예, 저는 영국의 여왕을 만나러 런던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푸쉬야, 그럼 너는 런던에 가서 무엇을 보았니?”
“저는 여왕의 의자 밑에 있는 생쥐를 보았습니다.”
그 고양이는 크고 아름다운 런던의 왕궁에 어렵게 가서는 위대한 엘리자벳 여왕이나 황홀하고 찬란한 궁궐 안을 본 것이 아니라 어처구니없게도 겨우 여왕의 의자 밑을 기어다니는 생쥐를 보고 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과 아름다움은 보지 않고 그 안의 어두움이나 단점들만 캐내어 보기를 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7:1
37.청년과 노인의 차이
시드니 그린 버그(Sydney Greenberg)라는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람들을 믿으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인생을 즐길 줄 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의 전통과 방법에만 의지하고 있다면 우리는 참으로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과거만을 회상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친교와 즐거움을 찾고 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고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행복을 갈망한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회상만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사랑을 줄줄 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으려고만 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꿈을 아직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꿈을 포기하고 오늘만을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에베소서 6:1-3
38.의인은 없다
네 명의 그리스도인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어느 날 야고보서를 공부하던 중에 그들은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약 5:16)라는 말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약점에 대하여 서로 솔직하게 고백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한 사람이 자기의 약점을 고백했습니다. “나는 교회에 다니긴 하지만 줄담배를 끊을 수가 없어서 교회에 갈 때에는 담배 피우고 나서 입을 닦고 간다네.”
두 번째 사람도 어쩔 수 없는 자신을 고백했습니다. “나는 어떤 사실을 말할 때 자꾸만 거짓말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네.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세 번째 사람도 고백했습니다. “나는 교인이면서도 아직 도벽을 버리지 못했어. 남의 물건만 보면 자꾸만 손이 간다네.”
그런데 이야기를 다 듣고 있던 네 번째 사람은 전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야, 너는 약점이 없냐? 너도 자백하라고!”
세 사람이 모두 재촉하니까 한참 후에야 네 번째 사람이 고백을 했습니다.
“실은 난 남의 약점을 알기만 하면 그것을 불고 다니는 것이 내 약점이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10
39.빈손
알렉산더 대왕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이러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으면 들어갈 관의 양쪽 옆에 구멍을 내라. 그리고 내 양손을 관 바깥쪽으로 내 밀어라!”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의 유언대로 관 양쪽으로 난 구멍에 손을 내밀어 그가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아버지 필립이 그의 주변 나라를 모두다 정복할 때, 그는 달을 쳐다보면서 ‘이제 나는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정복할 곳이 없구나’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알렉산더 대왕도 다른 이들처럼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들을 붙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디모데전서 6:7
40.황금의 손
그리스 신화 중에 나오는 황금에 눈이 어두웠던 마이대스 왕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마이대스 왕에게 낯선 신이 찾아와 소원을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주겠다는 제의를 합니다. 그래서 이 왕은 자신의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을 모두 황금으로 만들어 달라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 소원을 말하자마자 왕이 만지는 모든 것은 다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신이 난 왕은 하루종일 황금 만드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다가 마침내 사랑하는 딸도 그의 손이 닿는 순간 황금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만지는 모든 사람들이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황금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해가 지는 황혼 녘에 절망하며 절규했습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나의 딸 메리의 생명을 돌려주십시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한 모금의 물입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지나간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입니다.”
이 어리석은 마이대스 왕의 절규를 통해서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정직한 통찰력 없이 시간을 흘러 보내다가 삶의 의미를 상실해 버린 우리들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누가복음 12:15
41.세상 부요의 허무함
1888년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유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로 당대에 명사가 되었고 수많은 돈을 벌어 사람들의 관심과 촉망을 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일어나자마자 평상시처럼 신문을 읽으려고 펴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어떤 기사의 서두에 자기가 죽었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의 동생이 죽었는데 기자들이 혼돈하여 그가 죽은 것으로 기사를 냈던 것입니다. 작은 실수로 실린 기사였지만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망 기사 앞에서 깊은 침묵과 말할 수 없는 도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서 재물과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제조업자가 드디어 죽다”라고 실린 신문을 찢어 버리면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노벨 평화상이 시작된 이유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 돈을 벌지만 정작 무엇을 위해서 써야 할 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누가복음 12: 21
42.허무한 세상
요즘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유머 중에는 이런 퀴즈가 있습니다.
‘한 버스가 어떤 길을 가다가 큰 교통사고를 내서 그 안에 타고 있던 많은 승객들이 죽었는데 그들 중 가장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가장 억울하게 죽은 첫 번째 사람은 96번 버스를 타려다가 69번 버스를 96번으로 착각하고 탄 사람이고, 두 번째 사람은 결혼식을 하루 앞둔 젊은 총각, 세 번째 사람은 버스가 출발할 때 놓칠까봐 급하게 달려와서 간신히 버스를 탄 사람, 네 번째 사람은 버스 안에서 졸다가 자기가 내려야 할 곳에서 못 내리고 한 정거장 더 가다가 죽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웃기지요. 그런데 이 웃음 뒤에 결코 울어 넘길 수 없는 진리가 그 속에 숨어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이런 비극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시편 103: 15
43부(富)의 허무
미국 역사 중에 모든 미국인들의 생활에 경종을 울렸던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1923년 어느 날 시카고에 있는 에드워드 비치호텔에서 그 당시 미국 최고의 부자라고 불리는 7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어느 정도의 부자냐 하면 그들의 전 재산을 모두 합칠 때 미국 전체의 국고를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신문 기자가 시카고에 모였던 그 날로 시작해서 정확히 25년이 지난 후의 그들의 생애가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하여 발표를 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었던 강철회사 사장, 찰스 슈업은 25년 후 무일푼의 거지가 되어 죽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인 알써 카튼은 밀농사로 거부가 된 사업가였는데 그 역시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쓸쓸하고 고독한 가운데 혼자 임종을 맞이하고 죽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인 리차드 위트니는 뉴욕 은행의 총재였지만 자기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이 잘못되어 감옥에서 고독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인 엘버트 홀은 미국의 재무장관까지 지냈지만 감옥에서 막 풀려 나와 집에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사람인 웰스프리트의 회장이었던 J. C. 리버모아는 인생의 끝을 자살로 마쳤습니다.
여섯 번째 사람인 국제은행 총재였던 리온 프레이져 역시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쳤습니다.
일곱 번째 사람인 이반 크루컬은 부동산 업계의 거부였지만 자살 미수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미국인들에게 부의 허무를 알려주는 커다란 충격과 교훈이 되었습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찌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잠언 23: 4,5
44.영원의 값어치를 아는 법
한 로마의 황제는 인생을 엄숙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 매일 아침 신하가 문안할 때마다 이렇게 인사하도록 명령했습니다.
“폐하시여!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황제는 이 신하의 아침 인사를 통해 죽음을 인식하고 그의 삶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어느 그리스의 철인은 사랑하는 제자가 짧고 허무한 세상에 우리가 태어난 이유를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영원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시간의 허무를 통해서 비로소 영원의 의미를 배울 수 있습니다. 시간의 허무를 깨달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영원의 값어치를 알게 됩니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 -욥기 14:1, 2
45.소망을 이루는 기도
펜실베니아주의 필라델피아 근처에 가면 시골답지 않은 아주 큰 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가 세워진 데에는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본래 이 마을에는 교회가 없어서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먼 도시까지 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 사는 스잔이라는 어린 소녀로 인해 교회가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린 소녀 스잔은 항상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마을에 교회를 세워주셔요. 많은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자유롭게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이 기도는 스잔의 꿈이었고 열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잔은 이름 모를 질병에 걸려 어린 나이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스잔은 세상을 떠났고, 그 소녀가 누었던 자리 밑에는 그녀의 간절한 기도와 열망이 담겨진 편지 한 장과 그 속에 마지막 헌금 5달러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후 스잔의 이야기는 마을 주민들과 미국 전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 소녀의 이야기는 그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어 모두 앞다투어 헌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이 소녀를 기념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마을에 아름다운 예배당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 소녀의 작은 기도와 5달러 짜리 지폐하나가 가져온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시편 37:5
46.기도의 확실한 응답
기도의 성자라고 불리는 조지 뮬러(George muller)는 자기 평생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사건 만해도 무려 50,000가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시간을 많이 들여서 한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삶을 나누었던 다섯 친구의 구원 문제였습니다. 뮬러는 다섯 명의 친구들을 위해 오랜 시간동안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한 두 사람이 믿기 시작해서 3명은 구원받았지만 끝까지 믿지 않는 친구가 두 사람 있었습니다. 뮬러는 이 두 친구를 위해 얼마나 기도를 했는지 무려 52년 동안이나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이제 노년이 되어 병석에 누운 뮬러는 서서히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남은 힘을 가지고 사랑하는 교회에서 마지막으로 설교하기를 간청했습니다. 마지막 설교를 하던 그 날, 그의 안 믿는 친구가 우연히 그곳에 참석했다가 뮬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한 친구의 구원을 보지 못하고 뮬러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그때까지 안 믿고 있었던 친구가 뮬러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뮬러가 자기를 위해서 무려 52년간이나 기도했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뮬러가 죽은 바로 그 해 그 소식을 들은 이 친구는 결국 예수님를 믿게 되었습니다. 믿은 후 그 친구가 전 영국을 순회하면서 이러한 간증을 했습니다.
“뮬러 목사님의 기도는 모두 응답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최후의 응답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기도는 다 응답된다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 7
47.그릇된 적용
제가 맨 처음으로 목회를 시작한 곳은 경기도의 자그마한 어느 시골 교회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처음으로 설교를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저의 설교가 청중들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킬 것인가에 대해 매우 민감했었습니다.
시골 교회에 내려간지 서너 주간이 지난 어느 주일날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생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날 저는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면 반드시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감격스러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결론을 맺고 설교를 끝냈습니다.
예배 후에 문 앞에 서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성도들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하는데 한 청년이 설교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며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도사님의 설교 마지막 부분 중에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고 기도하면 된다는 말씀이 저에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이제 말씀대로 전도사님께서 저희 집에 오셔서 아파서 죽게 된 돼지를 위하여 안수 기도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청년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린다는 말을 안수기도를 받으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처럼 마음에 커다란 허탈감을 느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태복음 7:6
48.나를 변화시키는 기도
교회 안에서 생활하다보면 때때로 인간관계의 위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전에 저의 속을 썩이던 집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아파서 그 분을 위해 30일 작정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새벽 기도를 그렇게 싫어하던 제가 매일 새벽에 나와서 그 집사님을 위해서 30일 동안을 작정하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그 집사님의 마음을 좀 바꾸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매 주일마다 집사님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주시해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 집사님은 험상궂은 얼굴 그대로이고 저를 향한 태도에 조금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한 3주간쯤 지나서 보니 저의 기도 내용이 갑자기 변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기도하다보니 어느새 제 마음에 이런 기도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그 집사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어느 날 새벽 저는 울면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후 주일에 그 분을 보니 그렇게 달라져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달라졌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달려졌습니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해서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 -누가복음 6: 28
49.절망을 극복하는 기도
아멜리아 할트는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여자 비행사였습니다. 그녀는 대서양 횡단을 처음으로 성공시킨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대서양 횡단은 쉽게 이루어 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대서양 횡단 중에 바다 한복판에서 엔진이 고장나는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비행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그 위기를 넘겨 무사히 대서양 횡단 항공을 마쳤습니다.
대서양 횡단을 성공하고 돌아와 보스턴에서 기자회견이 열렸을 때 기자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엔진이 고장났을 때 그 위급하고 어려운 순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습니까?” 그 질문에 그녀는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그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바다 위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기자는 자세한 의미를 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제가 위기에 있었을 때는 이미 대서양의 반을 넘어왔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갈 수가 있었겠습니까? 포기하면 떨어져서 죽을 것이 당연했지요. 그 당시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앞으로 가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앞으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모두 막혀있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길은 열려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의 시입니다.
“한 걸음이 당신을 그리 멀리 데려다 주는 것은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걸어야 합니다.
한 마디 말로 당신 자신을 다 설명하는 것이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말해야 합니다.
한 인치가 당신을 크게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하나의 행동이 모든 것을 이루어 놓는 것은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행해야 합니다.”
이 시에 한 줄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단 한 번의 기도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것은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절망을 극복하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 17
50.기도의 대상
오래 전에 미국의 보스턴에 있는 교회에서 어떤 전도 집회가 열렸습니다. 목사님은 그 도시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훌륭한 학자 한 분에게 대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대표 기도를 부탁 받은 학자는 그 집회에서 모든 수식어를 총동원해 아주 멋지고 아름다운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집회에 참석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기도를 들으면서 그의 기도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어떤 기독교 신문기자가 이 학자의 기도를 평가하는 글을 신문에 냈습니다. “이 위대한 학자의 기도는 아마도 보스턴 시가 창설된 이래로 보스턴 청중에게 바쳐진 가장 웅변적이며 가장 지성적인 기도였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 바쳐진 기도가 아닌 보스턴 청중에게 바쳐진 기도였습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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