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16]전라북도의 ‘표준어’ 단상
며칠 전 임실의 어느 보리밥집에서 밥을 비비는데, 친구가 느닷없이 “거섭을 많이 너야혀(넣어야 해)”하는 말에 빵 터졌다. 대체 얼마 만에 들어본 우리의 사투리(방언?)인가. 물론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는 표제어이니 사투리라 할 수도 없다. “거섭을 마니(많이) 너야(넣어야) 만나다(맛있다)”고 하던 할머니의 말이 들리는 듯했다. 귀향한 지 5년여, 불쑥불쑥 이런 탯말(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듣던 말)을 들으면 40년도 더 넘게 산 서울이라는 곳이 아주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진짜 내가 고향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런 말은 사실 수두룩박박이다. 희한한 것은 많아야 30여가구나 사는 동네마다 꼭‘공공의 적’이 있다는 거다. 예전엔 두레도 있고 품앗이도 하며 수공업적으로 농사를 지었건만, 시방(지금)은 아조(아주) 인심이 썩 많이 나빠져 안타깝다. 그중에서도 마을공동체생활을 할 자격이나 자질이 전혀 안되고, 되레 동네일에 해꼬지를 하는 등 협조를 하지 않는 인간들이 한두 명 있다는 말이다. 술자리에서 동네 형이 어느 사람을 지칭해 “그놈은 폴새(진작에) 어장을 내버리고 추방(덕석말이. 덕석은 멍석)을 시켰어야 헌디”라고 해 ‘어장을 내다’의 뜻을 물었다. ‘결딴을 내다’는 의미일 터이고, 물고기를 넣어 장을 담근다는 게 어원일 듯싶다.
이웃집 형수가 집안에 있는 자두를 따 한 바가지 주면서 “삼촌, 물짜지만 함 먹어보시요”하여 ‘물짜다’(못나다)라는 말도 오랜만에 들었다. “물짜게 생깃네”는 ‘진짜로 못생겼다’는 뜻이다. 그런가하면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선거를 크게 졌는디도 아직 영금을 못본 모양”이라고 해 깜짝 놀랐다. 이때의 ‘영금’은 ‘따끔한 맛’이란 뜻일 터. “영금을 봐야-써” 등으로 쓰인다. 정치 잘하라는 민심을 따르지 않는 정치인들을 힐난하는 말일 것이다. ‘영쌩’이라는 말도 있다. 자기의 입맛이나 취미에 전혀 맞지 않은 것을 강조할 때 쓰는 말이다. “아이고, 나는 그거 영쌩이여”하면 ‘질색팔색’한다는 말이다.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은 이런 단어는 진짜 탯말임에 틀림없다. 이런 단어들은 일상생활에서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너무나 자연스런 말인데도, ‘듣보잡’(듣느니 처음)인 것을 보면, 나도 대처(도회지)의 때가 묻기는 많이 묻은 것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시골, 지방에서 살다보면 천지비까리인 이런 말들이 우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차례차례 돌아가시면 이 땅에서 싸그리(몽땅) 사라질 게 분명하다. 어르신 한 분, 한 분이 돌아갈 때마다 ‘언어박물관’이 하나씩 없어진다는 말이 어찌 빈말이랴. 살려 쓰고, 자주 쓰고 싶은 토박이말들이 그 얼마나 많은데, 우리 주변에서 차차 잊혀져 가고 있다. 멸실 위기라는 제주도 방언을 우리가 어찌 알아듣기 쉽겠는가. 하지만 그런 말이 모두 없어진다면 어찌 제주도라 할 수 있으랴. 동식물을 보전하고 환경만 보호할 일이 아니고, 우리의 언어 보전대책도 시급한 까닭이다.
흔히 ‘조선팔도’라 하는데, 팔도마다 특유의 사투리와 방언이 있다. 그 사투리와 방언은 그 지방의 ‘표준어’에 다름 아닐 터.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특유의 말씨와 억양과 고저장단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온전히 흉내내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은 그 지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몸에 배인 숨은 유전자가 없으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총선과정에서 한 후보가 경상도말로 “쫄았제?”라 해 화제가 됐는데, 팔도버전(쫀겨? 쫄았능가? 쫄아부렸냐잉? 등)이 곧바로 출시돼 한동안 웃은 적이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 그런 말을 예기치 않은 곳에서 들으면, 나는 사는 게 즐거워진다.
얼마 전, 모모한 인사들을 초대한 저녁자리가 있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꾸덕꾸덕 말린 홍어를 직화로 구워 쭉쭉 찢어 고추장을 찍어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라면을 몇 개 끓여 저녁을 대신하는데, 숟가락들이 엇갈리며 내용물이 조금 남았다. 한 분이 연장자에게 들이대며 하는 말씀에 정말 모처럼 빠앙 터졌다. “쬐깨(조금) 남았구먼, 냉기면(남기면) 쓰것소. 아이- 그냥 저녁으로 때와 버리시요” 와아- 때와 버리라니? 이것은 그냥 읽거나 말하면 안된다. 몇 번을 들어도 재밌고 만난(맛있는) 말이다. 전라도 토종 버전으로 해야 죽여주는 것을. 들려줄 수 없어 유감이지만, 그 억양과 말씨, 소리의 고저장단을 어찌 글로 숭내(흉내)나 낼 수 있으랴. 나는, 고창이나 부안, 임실지역에서 주로 쓰는, 자기의 자식이나 손자 등 손아래 피붙이를 뜻하는 '총생'이란 단어도 좋아한다. 하여, 나는 전북 출신이므로, 당연히 ‘전북의 표준어’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