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묵호 노인회관 노래교실에서 ’곡예사의 첫사랑‘을 불렀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조세희가 쓴 중편소설. 광주대단지사건을 소재로 했고, 상대원공단도 배경으로 나온다.
이러한 사회 비판적 요소 때문에 당시 대한민국 제5공화국 정권에서는 금서로 지정했다. 문학과지성 76년 겨울호에 수록되었고 1979년 제1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연작소설 전체가 아니라 그중에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만 상을 받았다. 동인문학상은 원래 단편작품에 수상된다.
70년대 도시 재개발로 밀려난 서민 가정의 고통을 그려낸 작품이다.
구성은 총 3장으로 나뉘어 있다. 이 소설은 각각 큰 아들, 작은 아들, 그리고 막내딸의 시점에서 자신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명장면으로는 영호의 꿈속에서 막내딸 영희가 팬지꽃을 공장 폐수에 던져버리는 장면,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형 영수에게 동생 영호가 '형은 이상주의자야'라고 쏘아붙이는 장면 등이 있다.
전반적으로 문장의 호흡이 짧고 묘사도 간결하다. 원고 집필 당시에 작가의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손바닥만한 수첩에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형성된 간결체가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문학 교육에서 이 작품은 간결체의 대표적인 예시로 제시된다. 짧고 간결한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 자주 참고하거나 필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다가 수위 높은 내용 때문에 당황하는 사람들도 많다. 영희가 입주권을 되찾아오기 위해 부동산 업자를 따라가서 동침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나의 몸에서는 그의 정액 냄새가 났다’
라는 직설적 표현까지 등장한다. 아직 17살인 영희가 젊은 부동산 업자 청년의 잠자리 상대로 생활하는 스토리도 수위가 상당히 높다. 게다가 이 청년은 영희의 순결을 뺏기 위해 클로로포름까지 써서 영희를 기절시킨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수록된 동명의 연작소설집 연작에는 부유층 자제들의 문란한 성문화가 묘사된다.
‘줄을타며 행복했지 춤을 추면 신이났지
손풍금을 울리면서 사랑노래 불렀었지
공 굴리며 좋아했지 노래하면 즐거웠지
흰 분칠에 빨간코로 사랑얘기 들려줬지
영원히 사랑하자 맹세했었지
죽어도 변치말자 언약했었지.............’
위 가사는 ‘곡예사의 첫사랑’의 가사 일부다.
나는, ‘곡예사의 첫사랑’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한다.
우리 시대는 일 년에 몇 번씩 공연하는 써커스와 악극단이 유일한 오락이었다.
그래서, 써커스와 유랑 극단은 일반 서민들의 오락을 대표했었다.
조세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쓰고 나서 2000년도에 한 번 인터뷰를 했는데 그 때 어떤 질문에서 '그 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다시 써보라고 한다면 다시는 못 쓸 것 같다'고 말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알 수 있듯이 진보 성향이다.
1990년대 후반 진보적 사회평론계간지 당대비평의 창간 주간으로 활동했고, 21세기에도 용산 참사 관련에 참석해 연설한다든지 하면서 활동했다. 2005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200쇄를 찍는 기록을 세우자 '이 책이 200쇄를 넘겼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라고 발언하였고, 2008년 출간 30주년을 기념하는 인터뷰에선 '아직도 청년들이 이 책의 내용에 공감 한다는 게 괴롭다'라고 말했다. 즉, 작가는 200쇄가 넘는 30여년이란 그 긴 시간 동안 책에서 주장하는 담론이 여전히 유효한 현실을 비판했다.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직전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관련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시험에 나와도 나는 빵점을 맞을 것이다'라는 취지의 인터뷰를 했는데, 시험 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일부가 그대로 언어영역 지문에 나왔다.
박경애는 1978년 MBC 국제가요제 금상 수상곡인 '곡예사의 첫사랑'이 히트하면서 인기 가수 반열에 올랐고, 이후 '나 여기 있어요', '오 그대여', 사랑의 종말', '상처', '이럴 줄 알았어요', '도시의 꽃사슴' 등 여러 노래들을 히트시키며 1980년대 초까지 전성기를 누렸고, 이 시기에 결혼하면서 가요계에서 은퇴하였고, 이후로는 전업주부로써의 삶을 살았다.
1970년대 ~ 1980년대 한국의 포크음악을 주도한 여성 통기타 가수 10명이 결성한 '우리들'의 회원으로도 활동해 왔으며, 2003년에는 회원들과 함께 콘서트 '보고싶다 친구야'를 열기도 했다.
2004년 초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해 왔다가 병세 악화로 당해 7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조세희와 박경애는 소설가와 가수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고,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달랐지만, 나는 조세희의 소설과 박경애의 노래를 같은 시각에서 보고 있었다.
오늘 문득, ’곡예사의 첫사랑‘을 불렀고, 까맣게 잊어 버린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