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시학 / 이혜원
1.새로운 서정의 예감
우리 현대시는 전통과 실험이 부단하게 길항하면서 변전을 거듭해왔다. 실험적인 시들은 시의 전통에 충격과 자극을 가하면서 새로운 시의 지평을 넓혀가고 전통적인 시들은 다양한 자극을 체화하며 감수성의 범위를 확장해왔다. 실험성이 왕성했던 시기에 이어지는 서정시들은 신선한 감각으로 이전 서정시의 전통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다. 1980년대 시의 왕성한 실험이 있은 후에 출현한 1990년대의 서정시가 ‘신서정’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새로운 감수성을 드러낸 것은 서로 다른 개성의 시들도 부단한 간섭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개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2000년대 이후 우리시에서 실험성이 강한 일군의 젊은 시인들이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이들은 수적으로도 전례 없이 풍성하고 꾸준한 활동을 펼치면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예외적인 소수의 전위적 행동으로 치부되던 전 시대 실험시들에 비해 한결 뚜렷한 세력을 형성하며 영향력이 증대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젊은 시인들에게 실험성은 대세를 이룰 정도로 확산되어 있다.
박준 시인이 주목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젊은 시인들 중에서 드물게 전통적인 서정시의 느낌이 강한 시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실험성과 개성의 각축장이 된 듯한 젊은 시들 사이에서 그의 시는 너무 익숙해서 낯선 재래의 감성을 드러낸다. 실험성이 강해서 해독이 어려운 시들에 비해 그의 시는 쉽게 읽힌다. 감정 노출을 극도로 자제하는 시들에 비해 그의 시에서는 감정이 여과 없이 흘러넘친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타자와의 소통을 지향한다. 소통보다 개성의 표출에 주력하는 다른 시들에 비해 그의 시에서는 타자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소통의 시도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시에서 표현 이상으로 전달의 측면이 중시되는 이유는 함께 나누고 싶은 감정과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 농후한 서정성은 개인적인 내밀한 감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시에는 동시대인들이 폭넓게 공감할만한 사유와 정서가 자리잡고 있다. 시인은 서정시의 섬세한 정서를 폭넓은 공감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데 있어 남다르다. 그의 시에서는 우리시에서 좀처럼 공유되지 않는 별개의 영역으로 존재해온 개인적 감정의 차원과 사회적 공감의 차원이 자연스럽게 섞여있다. 가장 내밀한 개인적 경험이든 공동체적 관심사이든 그의 시에서는 풍부한 정서적 반응을 유발한다. 대상에 대한 정서적 반응은 서정시의 본질적 특징이지만 낡은 전통으로 치부하여 기피해온 것이기도 하다. 많은 서정시가 감정의 노출을 극구 제어하면서 기교와 정서의 세련을 이루는 반면 공감대의 축소를 감수해야 했다. 박준의 시는 어느새 멀리 떠나온 듯한 서정시 특유의 풍부한 정서와 감성을 되살림으로써 요즘 시에서 만나기 힘든 신선한 감응을 일으킨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시가 낡은 감성으로의 복귀에 그치고 말았다면 철 지난 유행의 남루함을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박준 시의 진정한 새로움은 서정시의 다양한 전통을 수렴하면서 자신만의 미학을 형성해가는 데 있다. 이 글의 관심은 박준 시에서 서정시의 전통이 어떻게 변주되며 개성적 면모를 보여주는지에 있다.
2. 시로 행하는 위로
박준의 시는 사람 사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서정성이 짙은 시들에서 자주 전경화 되는 자연이 그의 시에서는 삶의 비유로서 작동할 뿐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 중에서도 그가 선호하는 방식은 사람과 사람이 밀착해서 주고받는 행동이나 감정이다. 지극히 내밀한 정서에 몰입하기 때문에 얼핏 보아 시적 대상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는 듯하나 전체적으로 볼 때 그의 시의 구성원들은 문제적이다. 그의 시는 아픈 자들, 슬픈 자들, 외로운 자들, 가난한 자들로 가득하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뿐이다. 시의 주체와 타자 모두 그러하다. 구성원으로 보면 사회성이 짙을 것 같지만 실제 시의 느낌은 서정성이 강하다. 시인의 관심은 사회적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시로 행할 수 있는 작은 위로에 있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이백만 불 시대의 가난은 모두가 가난하던 시대의 가난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가난은 어느새 극복하기 힘든 무기력의 원인이 되어가고 있다. 계층의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변화의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극복이 힘들어진 가난과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 시인은 함께 앓는 방식을 택한다. 그의 시에서는 현실을 의지적으로 극복하는 인물을 찾기 힘들다. 대신 아프다는 솔직한 고백이 넘친다. 강한 현실 극복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 미덕이었던 이전 시대의 시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변화의 가능성이 희박한 현실에서는 힘겹고 외로운 자들과 함께 앓는 방식은 가장 친근한 위안이 될 수 있다. 박준의 시에 자주 나타나는 열병은 가장 무력하고 힘든 상태에서 타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절대적인 위안의 계기가 된다.
한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 「꾀병」 부분
미열을 앓는
당신의 머리맡에는
금방 앉았다 간다 하던 사람이
사나흘씩 머물다 가기도 했다
- 「문병-남한강」 부분
그의 시에는 죽을 지경으로 열병을 앓는 자들이 있고 그 곁에는 그들을 극진하게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 「꾀병」의 ‘미인’은 밤이 새도록 환자를 돌보고, 「문병」에서는 금방 앉았다 간다 했던 사람이 사나흘씩 머물며 머리맡을 지키기도 한다. 극도로 무력한 상태에서 지극한 보살핌을 받는 자들의 삶은 충만해 보인다. 「꾀병」의 ‘나’는 밤새워 간호를 한 미인의 얼굴에 비쳐든 햇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며 마냥 행복해한다. “술이 깬다 그래도 당신은 나를 버리지 못한다 술이 깨고 나서 처음 바라본 당신의 얼굴이 온통 내 세상 같다”(「당신이라는 세상」)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은 ‘당신’의 얼굴로 인해 ‘나’의 세상은 존재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나를 버리지 않고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으로 인해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된다.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에서도 나를 버리지 못하는 당신의 얼굴은 내가 다시 일어설 최초의 세상이다. 박준의 시는 이처럼 아프고 지친 자들을 지켜주는 근심어린 얼굴들로 인해 따뜻하다.
박준이 쓰려는 시 역시 이런 얼굴들과 다르지 않다. 시는 비록 밥이 될 수도 없고 돈이 될 수도 없지만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의 편에서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전화를 넣어 하나하나 반찬을 물으면/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눈을 감고」)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을 지켜주는 마음 같은 것이 시이다. 세상이 아무리 삭막해지더라도 시는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편에 끝까지 남아있어야 한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시인에게 글은, 더구나 시는 언제나 아름다워야 할 최고의 가치이다. 끝까지 삶의 논리에 훼손되지 않는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다. 시인이 사랑, 아픔, 슬픔과 같은 감성적 시어들을 서슴없이 쓰는 이유는 감정의 토로가 결코 기피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가치 있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에서처럼 슬픔을 살아있고 열려있는 풍부한 감정으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슬픔과 아픔과 가난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타자의 고통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시의 일로 삼는다.
3. 연하고 무른 마음의 무늬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서정시의 오랜 전통을 이루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시에서 만나기 힘든 장면이 되었다. 감정은 절제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더구나 사랑이라는 과도한 감정의 상태는 되도록 피하고 싶은 부담스러운 영역을 이룬다. 그런데 이 젊은 시인은 아무렇지 않게, 아주 자주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다. 시가 원래 사랑얘기 아니었냐는 듯 거침없이 사랑의 장면들을 그린다. 그의 시에서 내밀하게 드러내는 사랑의 감정들은 오랫동안 서정시의 정수를 이루던 연시의 존재를 새삼 상기시킨다. 극도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정서를 다루어야 하는 연시는 제삼자들에게는 자칫 과장된 감정의 노출로 비치기 십상이다. 박준의 시가 진솔한 감정을 담으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주는 것은 연인들 사이에 오가는 섬세한 마음의 무늬를 감각적으로 그려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줬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 「환절기」 부분
그의 시에서 사랑은 연인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의 흔적으로 드러난다. 가난은 사랑을 더욱 핍진하게 하는 조건이다. 가난한 연인들이 가난한 음식을 나누는 장면의 묘사에서 사랑의 표현은 절정을 이룬다. 시장을 세 바퀴나 돌아서 산 끝물 과일을 탐스럽게 먹는 ‘당신’과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나’의 시간들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한 절기임에 틀림없다. 그의 시에서 가난한 음식들은 가난한 연인들의 마음이 오롯이 마주치게 하는 효과적인 매개체다. “그때.//(작은 냄비에 두 개의 라면을 끓여야 했던 일을 열락(悅樂)이나 가는귀라 불러도 좋았을 때, 동짓날 아침 미안한 마음에 “난 귀신도 아닌데 팥죽이 싫어라” 하거나 “라면국물의 간이 비슷하게 맞는다는 것은 서로 핏속의 염분이 비슷하다는 뜻이야”라는 말이나 해야 했을 때,”(「동지(冬至)」)에서 라면은 가난한 음식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일인용 냄비에 두 개의 라면을 끓이는 일이 ‘열락’인 것은 가난하고 외로운 삶이 연인으로 인해 충만해졌기 때문이다. 서로를 연민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바로 그 순간이 열락이다. 마음에 있어 그들은 누구보다 부유하고 행복하다. 함께 있고 함께 먹는 소소한 행동만으로도 한껏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랑이 영원한 것이라고 시인은 결코 말하지 않는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 「마음 한 철」 부분
사랑의 열락으로 가득한 시들도 자세히 읽어보면 과거의 회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로의 마음이 온전히 오갔던 ‘그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살아서 재현된 것이다. 비록 ‘한철’이어도 그것이 지옥의 경험이 아니라 열락의 경험이라면 아름답지 아니한가. 이 시인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가없는 세계를 무엇보다도 중시한다. 마음의 무늬는 한없이 연하고 무른 것이어서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떠올리는 자에게만 비쳐진다. 박준의 시는 마음과 마음이 그려내는 절정의 순간들을 지울 수 없는 선연한 흔적으로 새겨놓는다. 가난한 연인들이 나누었던 충만한 열락의 순간들을 그의 시보다 더 아름답고 감각적으로 포착한 시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4. 소외된 삶의 풍경
박준의 시는 연시로 표현되는 내밀하고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장된다. 가난한 연인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관심과 연민은 각별하다. 그의 시선은 철저하게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향한다. 그는 “좋지 않은 세상”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그곳에서 고통 받는 약자들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을 자신의 일로 여긴다. 사회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보다는 약자들의 삶에 공감하는 정서적 반응에 주력한다. 그의 시 중에서 가장 첨예한 사회 문제에 해당하는 용산참사를 다룬 경우조차 독특한 서정적 방식을 보여준다.
빛은 적막으로 드나들고 바람도 먼지도 나도 그 길을 따라 걸어나왔다 청파동에서 한 마장 정도 가면 불에 타 죽은 친구가 살던 집이 나오고 선지를 잘하는 식당이 있고 어린 아가씨가 약을 지어준다는 약방도 하나 있다 그러면 나는 친구를 죽인 사람을 찾아가 패(悖)를 좀 부리다 오고 싶기도 하고 잔술을 마실까 하는 마음도 들고 어린 아가씨의 흰 손에 맥이나 한번 잡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 「용산 가는 길-청파동 1」
시인은 ‘나’의 눈에 비친 용산이라는 주관적인 시점을 선택한다. 참사의 현장은 “청파동에서 한 마장 정도 가면 불에 타 죽은 친구가 살던 집이 나오고”라는 한 마디 속에 압축되어 있다. ‘나’는 그를 위해 “패(悖)를 좀 부리다 오고 싶기도 하”다는 마음을 먹을 뿐 실제로는 그러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약자인 ‘나’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병(炳)을 얻”고 아파하는 것뿐이다. 박준의 시에 나오는 그 많은 화자들이 아프고 병들어 있는 것은 이와 같이 시대의 고통과 슬픔 앞에 무기력하게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좋지 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강자들을 찾아가 패악을 부리지는 못하고 약자들의 곁에 남아 함께 아프고 힘들어한다. “남은 청파동 사람들이 막을 떠나가고 있었다 이제 열에 둘은 폐가고 열에 여덟은 폐허였다”(「2:8-청파동 2」)며 끝까지 남아 마지막 모습을 보고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지켜만 보고 있는 자신에 대해 “사실 그때부터 나의 사랑은 죄였습니다”(「관음(觀音)-청파동 3」)라며 부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감정의 밑바탕에는,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에서 불행한 이웃이 있다면 자신 또한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지극한 연민의 정서가 자리잡고 있다. 그의 시에서는 감정을 배제한 담담한 정경묘사에서도 공동체적인 삶의 관계에 대한 섬세한 관조가 엿보인다.
중국 서점이 있던 붉은 벽돌집에는 벽마다 죽죽 그어진 세로균열도 오래되었다 그 집 옥탑에서 내가 살았다 3층에서는 필리핀 사람들이 주말마다 모여 밥을 해먹었다 건물 2층에는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이 모이는 당구장이 있었고 더 오래전에는 중절수술을 값싸게 한다는 산부인과가 있었다 동짓달이 가까워지면 동네 고양이들이 반지하 보일러실에서 몸을 풀었다 먹다 남은 생선전 같은 것을 들고 지하로 내려가면 어미들은 그새 창밖으로 튀어나가고 아비도 없이 자란 울음들이 눈을 막 떠서는 내 발목을 하얗게 할퀴어왔다
- 「발톱」 전문
이 시는 한 건물에 대한 객관적 묘사만으로도 소외된 삶의 절박한 느낌을 실감나게 드러내고 있다. 화자가 살던 다세대 주택은 삶의 변방으로 몰린 자들의 집합소 같다. 이국땅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외국인들,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 값싼 중절수술을 하는 산부인과, 도둑고양이들까지 한결같이 황막한 삶의 풍경을 구성한다. 아비도 없고 어미조차 달아나 최소한의 보호막도 없는 고양이들이 본능적으로 발톱을 세우고 있는 장면과, 이 고양이들과 다를 바 없이 거친 환경에 내몰린 자들이 모여 사는 이 건물의 세로균열이 절묘하게 오버랩 되면서 소외된 삶의 인상을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시인의 섬세한 시선은 소외된 삶의 현장 속에 새겨진 ‘발톱’이나 ‘눈물’을 놓치지 않는다. 「유성고시원 화재기」에서는 열악한 환경의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와 그곳에 사는 소외된 자들의 삶이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누전이나 방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단지 그동안 울먹울먹했던 것들이 캄캄하게 울어버린 것이라 생각됩니다”에서 자연스럽게 틈입한 감정적 진술에는 소외된 삶에 대한 진한 연민의 정서가 내재해 있다.
이처럼 박준의 시에는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 뚜렷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그의 시에서 남다른 진정성이 느껴지는 이유는 자신의 삶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동류의식이 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아프고 병든 화자가, 더 거슬러 올라가 유년시절 가난에 적응해가는 다음과 같은 장면은 무척 인상 깊다.
그때, 수학여행에 못 가고 벤치에서 몸을 김밥처럼 말아넣는 놀이를 하고 있을 때 친구들은 첨성대를 돌아 천마총으로 향하고 있었을 겁니다 뒷산에서부터 저녁이 미끄러져 내려왔습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는 놀이, 혀가 마른 입술을 아리게 만나는 놀이, 시소가 떠난 무게를 기억하는 간단한 놀이, 누가 부르는 것 같아 자꾸 뒤돌아보는 놀이 들을 모래에 섞어 신발에 넣었습니다 네가 돌아오면 ‘경주는 많이 갔다 와봐서, 바다로 가족여행을 다녀왔어’라고 신발을 털며 말하고 싶었지만
- 「천마총 놀이터」 부분
세상에 이보다 더 쓸쓸한 놀이터가 있을까. 수학여행을 못가 혼자 남은 화자가 천마총을 상상하며 행하는 쓸쓸한 놀이는 어찌 보면 시가 탄생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 때문에 소외된 마음의 공허를 상상이 메운다. 가고 싶은 곳을 상상으로 그려보는 이 쓸쓸하고 복잡한 마음속에서 삶에 대한 깊은 고뇌와 이해가 생겨났을 것이다. 철저하게 외롭고 슬픈 이 시간을 경험한 그는 그런 소외의 장면들에 무심하지 못하고 함께 아파하는 공감의 정서에 친숙하다. 그의 시선은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 쓸쓸한 곳에 머물며 그곳에 놓인 불안과 상처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5. 아름다운 만남
박준의 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삶에 집중되어 있으면서도 따뜻한 정서로 가득하다. 가난한 연인들이 나누는 사랑과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이 인상 깊게 펼쳐진다. 그의 시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도 매몰되지 않는 ‘마음’의 움직임을 그린다. 섬세한 감각과 풍부한 감정이 중심을 이루는 시선을 보여주는 그는 전형적인 서정시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세상을 꿈꾼다. 그곳에는 ‘미인’이 산다. 그의 시에서 독특하게 출현하는 미인은 무한한 사랑과 믿음의 산물이다. 열병에 걸린 연인의 곁을 근심스럽게 지키는 미인은 삶에 대한 긍정의 첫 출발점이다. 환영이든 실제이든 미인의 존재로 인해 삶은 아름답게 빛난다.
그에게 사람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 서정시에서 흔한 자연의 예찬을 그의 시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의 시에서 자연은 인간 세상 너머에서 빛나지 않고 인간의 곁에서 함께 한다.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는 별조차 인간의 높이로 내려와 있다. “별들은 날아오른 새들이/들깨씨를 토해놓은 듯/별들도 한창이었습니다”(「별들의 이주(移住)-화포천」)의 “들깨씨”나 “그제야 우리 어머니 잘 하는 짠지 무 같은 별들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쏟아져내렸다”(「별의 평야」)의 “짠지 무” 같이 친숙한 느낌이다. “작은 창으로 바라본 하늘엔 봉제선 같은 별들이 두둘두둘 많다”(「잠들지 않는 숲」)의 별도 “봉제선”을 떠올리게 하며 가난한 삶과 이웃한다. 그의 시에서 별들은 고고하게 초월해 있지 않고 지극히 인간화된다. 인간 세상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의 곁에 있다. “달이 크고/밝은 날이면/별들도 잠시 내려와//인가(人家)의/불빛 앞에서/서성거리다 가는 길”(「입속에서 넘어지는 하루」)에서처럼 인가의 불빛만큼 낮은 곳에서 창밖을 지킨다. 우리시에서 보기 드문 이런 인간화된 별의 이미지는 사람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시인의 관점과 상응한다.
그의 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사랑과 연민의 눈길이 오가는 만남의 순간이다. 절정의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미인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길이 닿는 곳이 아름다움의 끝이다.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으로 인해 세상은 열락의 장소가 된다. 박준의 시는 서정시가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마음의 섬세한 작용과 공감의 능력을 떠올리게 한다.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서정시 특유의 치유력을 돌아보게 한다. 서정시의 다양한 물꼬를 받아들이고 바꾸어가는 그의 시에서 또 한 번의 새로운 서정을 예감하게 된다.
이혜원
1991년《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저서로 『현대시의 욕망과 이미지』『세기말의 꿈과 문학』『현대시 깊이 읽기현대시와 비평의 풍경』『적막의 모험』『생명의 거미줄』『자유를 향한 자유의 시학』등이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