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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체험 7교시-프로그램 개발
농촌체험의 지평을 넓힌 역발상 아이템,
잡초의 재발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충남 홍성에 사는 귀농 16년차 농부입니다. 재작년에 교육농장으로 지정받아 여러가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 농장의 이름이 농부이반의 교육농장입니다. 조금은 특이하게 여기실 농장 이름에는 저희 부부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배어있습니다.
농장명의 유래는 톨스토이의 바보이반
농장 이름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바보이반(Ivan the Fool)에서 따왔습니다. 바보라 불리울 만큼 우직한 주인공 이반의 직업이 바로 농부입니다. 거짓이나 부정과 담을 쌓아 악마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이반의 힘은 오로지 정직과 이타심, 농부 특유의 은근과 끈기에서 비롯됩니다. 러시아판 흥부와 놀부로 부를 수 있는 이 책에서 이반은 말년의 놀부처럼 곤경에 처한 형들을 구하고 공주와 결혼할 뿐더러 왕이 되어 나라를 잘 다스립니다.
참 재미있고 행복한 결말이지만 이야기의 배경이 된 당시 러시아의 농촌이나 지금 우리가 직면한 농업의 현실은 장미빛 해피엔드로 끝내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우화(寓話)라는 형식을 빌려 당시 러시아의 사회상을 통렬히 고발했지요. 어린이들에게는 명작동화로 소개되지만 사실은 이반의 형들로 대표되는 부조리 계층과 대비되는 농부 이반의 철학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때문에 저도 ‘농부이반의 교육농장’이라 붙였습니다. 톨스토이와 이반이 추구하는 가치와 신념을 우리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농장 이름앞에 붙는 일종의 브랜드 슬로건(Brand Slogan)으로 톨스토이이 이름을 조금 매만져서 ‘톨스토리(tall story), 생각의 크기가 한 뼘 더 자라나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어떤가요, 이만하면 괜찮은 발상인가요?
어떤 체험들을 하나요
작년과 올해 저희 농장에서 진행한 체험들은 여타의 체험 농장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주로 숲체험과 신재생에너지, 선사시대와 유기농 관련된 체험들을 운영하였습니다. 숲체험은 숲에서 하는 자연놀이 위주로 프로그램을 준비했고, 신재생에너지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분야에서 앞으로도 이쪽은 확대할 생각입니다.
선사시대 체험은 축제 프로그램으로 기획하였는데 반응이 좋아 학교 등으로 출장체험을 나가고 있습니다. ‘박물관은 살아있다’ 라는 부제하에 움집만들기, 부메랑 꾸미기, 빗살무늬 토기 만들기와 복원(토기 조각 퍼즐맞추기), 원시시대 불피우기, 갈돌과 갈판 사용 등을 진행합니다.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재현하는 것이지요. 단순체험이 아닌 일련의 복합체험이어서 지루하지 않아 아이들이 재미있어 합니다. 앞으로도 아이들의 눈높이와 트렌드를 반영하여 시리즈로 만들어 갈 계획도 있습니다.
예를들어 ‘빙하에서 살아남기’라는 체험을 진행하면서 이글루 조립, 눈썰매 타기와 제작, 얼음(눈)과 소금으로 아이스크림 만들기 등을 진행할 수 있겠지요.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아이들에게 생태적인 관점에서 극지의 중요성과 에스키모의 생활, 과학의 원리(빙점) 등을 깨닫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날씨가 좋다면 얼음 돋보기를 만들어 불을 피워보는 실험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과학적 탐구심이 묻어나는 프로그램에 흥미
지난 9월에 열린 홍성내포문화축제때 저희 농장은 ‘생활속의 도르래’라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다 아시는 것처럼 도르래는 생활을 편리하게 만든 도구로 아이들에게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려주고 싶어서였습니다. 고정도르래와 움직도르래가 적용된 체인블럭을 준비해 3백kg이 넘는 소먹이용 원형 베일을 직접 들어보고 비교할 수 있게 하였지요. 특히 고정도르래를 이용하여 베일을 드는 사람에게는 선물을 주겠다고 공지하여 참가의욕을 고취시켰습니다. 물론 장미란 선수가 와도 안되는 일이지요. 두 개의 도르래를 비교하며 아이들은 체인블럭을 당기면서 마냥 신기해합니다. 그때 움직도르래의 원리를 설명해주면 스펀지처럼 지식을 빨아들입니다. 이게 바로 제가 의도하는 현장교육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도르래의 원리를 배우지만 사진이나 PPT 화면에 그치기 쉽습니다. 더 나아가 실험실에서 용수철 저울이나 분동을 사용한다해도 실제 생활과는 거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결국 도르래의 원리는 대뇌 피질의 어느 한 부분에 기억으로만 남아있게 됩니다. 이걸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시 손발로 내려오게 하는 게 현장교육이고 교육농장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교육의 빈 곳, 부족한 곳을 채우는 것이지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익힌 교육, 눈이 아니라 손발로 체험하면 뇌세포가 아니라 온 몸이 기억하게 됩니다. 한 예로 열 살 때 자전거 타는 걸 익히면 환갑이 넘어도 연습없이 곧바로 탈 수 있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두 손과 발, 어깨와 허리 등 온 몸이 균형을 잡으면서 조작하기 때문입니다. 몸 전부가 온전히 기억하는 까닭에서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은 현장에서 너무나 멀어졌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체인과 스프라킷의 관계, 크랭크 기구의 원리와 작동법을 가르치려 합니다. 그러니 기억만 남아있지 울림이 부족합니다. 농업 농촌의 소중함과 가치를 아이들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울림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특히 땀이 요구되는 체험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그저 놀이에 다름 아닙니다. 흔한 예로 집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못생긴 고구마나 감자를 직접 수확한 후에 맛있게 먹는 것은 적당한 움직임 뒤의 허기와 ‘내 손으로 직접 캤다’는 가치부여가 맞물린 결과입니다. 이렇듯 무언가 맞물려야 돌아가는 것은 자전거의 체인과 스프라킷도, 학교와 교육농장의 조합도 똑 같습니다.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잡자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농업, 농촌의 가치를 거부감없이 안겨줄 수 있을까? 농촌체험을 진행하는 모든 교육농장과 체험마을의 고민이지요. 저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잡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과정에서 농부 선생님들의 무한한 변신이 요구되지요. 만약 아이들에게 도르래의 원리를 물리에서의 힘과 거리, 일의 공식(W=F*S)으로 가르친다면 그야말로 하품만 쏟아지는 지겨운 학습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제가 축제에서 했던 것처럼 시골에서 흔히 보는 고래통 안에 원형 베일을 넣어두고 고정도르래를 설치한 뒤에 “자, 이 고래통이 옛날 우물이야. 베일은 물동이가 되겠지. 예전에는 이렇게 물을 길었어. 여러분의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고생이 많으셨지. 빨래라도 할라치면 열 번도 넘게 물을 길러야 했으니까···. 자, 한 번씩 당겨봐!” 라고 한다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당겨보고 고정도르래의 원리와 불편한 점을 금방 알아차리겠지요. 그리고나서 체인블럭을 당겨보고···. 체인블럭 옆에는 ‘헤라클레스 체험’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될 겁니다. 체인만 부지런히 돌리면 10톤이라도 들어올릴 수 있으니 얼마나 재미있겠습니까?
모두가 지나치는 잡초를 소재로
그 재미있는 예로 올해 저희 농장에서 진행한 <잡초의 재발견>이란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하고 싶습니다. 논밭 농사를 주로 하는 농장에서 겪는 어려움중의 하나가 논밭에 작물이 없을 때입니다. 위에 소개한 프로그램을 돌려도 되지만 그래도 명색이 농장이니만큼 농사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있어야겠지요. 농사체험이 계절이나 작물의 자람세와 상관이 없다면 더 할 나위 없을 겁니다. 저도 고민고민하다가 마침내 잡초를 주제로 한 체험프로그램을 짜냈습니다. 이름하여 ‘잡초의 재발견’.
잡초하면 농부들, 특별히 저희같은 유기 농부들에게는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적(敵)이겠으나 생각을 조금 달리해보면 체험 소재로는 이만한 것도 다시 없습니다. 일년내내 사방에 널려있는데다 따로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종류도 무궁무진하거든요. 이름그대로 잡초의 재발견입니다. 지난 5월에 인근 금당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하였지요.
잡초의 재발견
☸ 만남과 첫인사, 체험 프로그램 안내, 모둠나누기(잡초이름별)
☸ 유기농부 되어보기(잡초 뽑기와 뽑은 잡초로 도감만들기)
☸ 잡초의 (좋은)역할 알아보기→간식(쑥개떡 제공)
☸ 예쁜 잡초로 슬라이드 마운트 만들기→자연모빌 꾸미기
☸ 잡초의 재발견을 주제로 역할극 하기(모둠별 주제를 달리 함)
☸ 교육활동 정리(소감문 작성과 발표, 마무리 인사와 배웅)
당시 체험을 진행하면서 저희 부부의 예상과 기대를 뛰어넘는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유기농부 되어보기’(잡초를 제거하면서 농부에 대한 고마움과 수고로움 느껴보기)때 세 모둠의 아이들에게 키가 10cm쯤 자란 옥수수 밭을 매게 했는데 아이들이 전혀 지겨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중 두 모둠은 얼마나 밭을 열심히 매는지 정해진 15분이 지나도 “더 매게 해달라”고 요청해서 두 번이나 연장할 정도였습니다. 밭에서 뽑은 잡초로 도감도 만들고 소와 당나귀에게 먹이로도 주며 얼마나 즐거워하던지요.
다른 하나는 역할극을 너무나 맛깔나게 잘 하더란 겁니다. 세 가지 주제를 정해 모둠장에게 뽑게 한 후 각기 대본을 써서 연습한 뒤에 발표하는데 순서가 거의 마지막이기도 했지만 그날 체험한 모든 것이 대본에 녹아 있었습니다. 한 번 상상해보세요. 밭과 둑을 경계로 잡초와 작물과의 대화를···. 또 내가 잡초라면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끝으로 세상에서 잡초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생각만해도 흥미롭지 않으세요?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세잌스피어 못지 않게 멋진 대사로 좌중을 사로잡았지요. 그도 그럴 것이 잡초에게는 밭둑과 논둑이 베를린 장벽이나 휴전선처럼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일 테니까요. 정말 감동이었고 아이들에게 한 수 크게 배웠습니다. 월리암 워즈워드가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이라고 한 말이 빈 말이 아니더군요.
아이들에게 더 많이 배운다
그래도 저는 그날만은 선생님인지라 아이들에게 질 수 없어 멋진 말로 마무리했습니다. 뭐라고 했는지 궁금하시죠? 대략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 재미있었지? 선생님도 여러분을 만나 함께 잡초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참 즐거웠어. 선생님이 잡초에 대해 찾아보니까 학자들이 ‘아직 가치가 발견되지 않은 식물’이라고 했대. 여기 농업기술센터에서 오신 선생님도 계시지만 오늘 역할극에서 본 것처럼 잡초와 작물의 구분이란 건 딱히 없어. 과거에 잡초라고 불리던 쑥, 머위, 냉이, 흰민들레 같은 것들을 이제 농부들이 밭에서 기르고 있으니까.
오늘 옥수수 밭을 매봤지만 옥수수밭에 난 들깨도 잡초 취급을 받아서 선생님이 뽑아줬잖아? 잡초도 작물도 모두 같은 풀이야. 그저 둑이 경계가 될 뿐이지. 또 사람이 기르는 작물보다 소리쟁이나 쇠비름처럼 생명력이 강한 풀들이 영양가가 더 많아. 약으로도 쓰이고. 이렇게 많은 풀들, 잡초들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게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이지. 모두 그럴거지? ”
나름 멋진 멘트 맞지요? 그밖에도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최초의 사람이 되어 만나는 잡초의 이름을 붙여보라 하니 한 아이는 피를 닮은 외떡잎 식물에 보라색 줄무늬가 있는 잡초에게 ‘보라보라 줄무늬’라 붙였더라고요. 제게는 세상에 어떤 식물학자가 붙인 학명(學名)보다 멋진 이름입니다. 운율과 특징을 잘 살린 최고의 작명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제가 아닌 이 친구가 잡았네요.
그래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좋은 체험프로그램은 생각의 크기를 한 뼘 더 키운다고요. 이렇게 맑고 투명한 영혼이 깃든 아이들과 함께하는 체험 농장의 하루하루···. 가슴 설레이는 날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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