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송구영신 2023. 12. 31
빛의 자녀로 삽시다
엡5:8-9
2024년 새날을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올 한 해 동안, 성도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예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은혜와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새해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많이 받으세요!”
2024년도 새해를 맞이하면서, ‘빛의 자녀로 삽시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잠시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빛의 자녀’라고 지칭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어둠’은 죄와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전에 우리가 처했던 현실이었습니다.
바울은 앞서 엡 2장에서 우리의 옛사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였습니다(엡2:1). 그때 우리는 죄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단을 따라 살았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엡 2:2-3).
그랬던 우리가 어두움에서 해방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비춰주셨기 때문입니다.
요1:9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라고 했습니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 의해 우리를 얽어매고 있던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된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어둠이 무슨 특별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단지 빛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울은‘선물’이라고 표현합니다(공로가 아닌 은혜로 주어진 것).
엡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물론 빛을 받아들이는 영접(믿음)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본질상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요3:19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왜 어둠을 더 사랑할까요? 그 사람들 속에 어둠의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죄의 쓴뿌리). 그래서 자꾸 어둠에 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영접하면), 어둠 속에서 즐기던 불의와 죄악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영접하는 것은 위대한 결단입니다. 어둠이 빛을 받아들이는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8절을 자세히 보면, 바울은 ‘너희가 전에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빛 가운데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었지만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다’라고 말합니다. ‘어둠’이나 ‘빛’은 주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신의 존재(being)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 받은 우리 자신의 영적 신분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가진 빛은 ‘스스로 내는 빛’이 아니라 ‘반사하는 빛’입니다.
달이 밝은 것은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이 아니라 태양 빛을 반사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거울이 빛을 받으면 반사하듯이 우리도 빛을 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를 통해 반사되어 세상을 밝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존재(being)의 변화’가 먼저라는 사실입니다. ‘빛의 자녀가 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행위(doing)의 변화’나‘삶(living)의 변화’는 그다음입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는 것’은 ‘빛의 자녀가 되는 것’ 다음에 오는 일입니다. 아직도 그 존재가 어둠의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빛의 자녀처럼 살라고 아무리 요구해보아야 소용없습니다. 잠시 억지로 흉내를 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머지않아 본질이 드러나고 맙니다.
<빛의 열매>
그러면 우리가 진정 “빛의 자녀들”인 것을 어떻게 세상에 드러낼 수 있습니까?
9절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예, 열매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를 알 수 있듯이, 그 열매를 보고 우리가 빛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입니다.
‘착함’은 하나님의 관용, 자비, 인내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죄인된 우리를 향해 심판과 징계와 진노 대신 자비와 긍휼과 오래 참음으로 대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 이러한 것들이 특징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익두 목사는 깡패가 회개하고 목사가 된 사람입니다. 예수 믿고 회개한 후에는 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는데 어떤 술 취한 사람이 그 앞을 가로막고 시비를 하다가 주먹으로 막 때리더랍니다. 말없이 다 맞고 난 후에 "형님 다 때렸소?"하고 물었더니 술 취한 사람이 "그래 다 때렸다"하며 거칠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김 목사님이 "예수는 내가 믿고 덕은 당신이 보네"라고 말하면서 "내가 김익두요"라고 자신을 밝히니 이 사람이 깜짝 놀라 술이 깨어 "형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하고 빌었다고 합니다. "형님 지금부터 제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할 때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나를 따라와야지"해서 용서해주고 부흥회 데리고 가서 예수 믿게 되었답니다.
성도는 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 믿고 착해졌다는 소리를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빛의 열매는 ‘의로움’입니다.
‘의로움’은 전혀 그릇 행하심이 없으신 하나님의 공의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르고 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일에 분명하고 공명정대하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롬 6:13에서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빌2:13-14에서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빛 된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일에 의롭게, 공명정대하게, 원망과 시비가 없이 행해야 합니다.
셋째, 빛의 열매는 ‘진실함’입니다.
‘진실함’은 거짓과 가식, 위선이 없으신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본질은 ‘진실함’에 있습니다. ‘진실함’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양심적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당장 그 말이 진실인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 압니다.
어떤 신학교 교장 목사님이 신학생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교육 많이 받지 못한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 잘 못 하고, 찬송을 잘못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권면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목회는 기술로 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일에 바르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분이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것 세 가지가 있는데, 얻어먹기 좋아하는 것, 놀고먹기 좋아하는 것, 속여먹기 좋아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 가운데서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7)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허황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선한 양심을 회복하고, 언제든지 신용 있고 진실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듣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이러한 빛의 열매는, 갈5:22-23절에서 열거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속성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우리가 애쓰고 노력한다고 해서 그런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빛의 열매는 오직 빛 되신 주님의 다스림과 인도하심 속에서 살아갈 때만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당장에 맺히는 열매는 없습니다. 열매가 맺히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 년에 한 차례 송구영신예배를 드렸다고 해서 빛의 자녀가 되어 빛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 년 내내 빛 되신 주님 안에서 살아갈 때 이러한 열매들이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때 어두움에 거하는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기 위하여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웃을 대할 때 착함으로, 모든 일을 할 때 의로움으로, 자기 자신에게 항상 진실함으로 ‘빛의 열매’를 맺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온 천하에 드러내는 성도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