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들
이 남 순
‘잘 자라줘서 참 고맙다!’라는 말을 속으로 뇌며 전화를 끊는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돈다, 그 아이들과 웃고 울던 일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을까? 옥수, 옥선, 이연, 근연이 사 남매 이름을 불러본다.
삼십여 년 전 일이다. 겨울 한기가 가시지 않은 3월 초순 아이들을 만나 육 년 동안 마음과 손을 내어준 아이들이다.
오봉 분교에 업무상 출장을 갔다. 우연히 전 학년이 두 반으로 나누어 수업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또래보다 왜소하면서 유난히 추위에 떠는 아이가 눈에 띄었다. 겨울옷을 입었는데, 몸이 불편한가? 떠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수업 마칠 때를 기다려 교무실로 아이를 불렀다. 겨울 외투를 입고 있었지만, 외투를 살짝 들어보니 낡은 내의는 살이 드러나고 너덜너덜했다. 산골 날씨가 속옷이 변변찮은 아이를 떨게 한 것이다. 맑은 눈망울은 천진해 보이는데, 손은 트고 목, 귀 뒤로 때가 꼬질꼬질 앉았다.
분교장은 아이를 보내고 사정 이야기를 했다. 사 남매로 큰딸은 분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 둘째 여자아이는 5학년, 이연, 근연이는 사내아이로 1, 3학년이란다. 아버지가 건설 막노동으로 생계 꾸리고 있는데, 어머니가 사악한 꾐에 빠져 어리석게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 형을 받아 수감 중이란다.
아이들 집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분교장은 오늘 수요일은 오전 수업을 한다며 곧 수업을 마치니 같이 가자고 한다. 아이들과 집으로 갔다.
바람구멍이 숭숭 난 방문을 열었다. 펴진 이불, 나뒹구는 식기, 담뱃갑, 소주병 등 발 디딜 틈 없이 널려있다. 한편에 싱크대를 놓고 주방 겸 방이다. 방 하나로 산다. ‘이렇게 살고 있구나! 이 일을 어찌할까? 무엇부터 손을 쓸까……,’ 선생님과 이불을 개고, 정 리했다.
아이들을 태우고 나왔다. 자장면으로 점심을 먹이며 목욕하고 이발하러 가자고 했다. 자장면이 참 맛있다며 커서 돈 벌어 자장면을 사주겠단다. ‘어디서 목욕을 시켜야 하나,’ 궁리하다가 우리 집으로 왔다.
거실과 안방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각각 들게 하고 때를 불려 목욕을 시켰다, 윤기 나는 머릿결, 훤해진 얼굴로 웃으며 이런 목욕 처음이라며 좋아한다. 때 묻은 옷, 발바닥 없는 양발을 그냥 입히고 신길 수 없다. 또래 내 아들을 보고 아이 마음이 위축될까 싶어 아들 오기 전에 얼른 목욕시키고 집에서 나가려는 급한 마음에 입히고 신 길 것을 미처 준비 못 했다. 이불을 씌워 거실에 앉혀두고 시장으로 달렸다. 속옷, 신발, 양말, 바지, 잠바를 사 와 갖추어 입혔다. 옥수 몫까지 샀다.
단골 미용실로 가서 아이들 머리를 깎였다. 원장이 고맙게도 봉사해 주기로 했다. 그 후 두 주마다 자장면 먹이고 목욕시키는 일을 했다. 돌아오면서 아이들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하다. 아파트 부녀회에 도움을 청했다. 흔쾌히 돕겠단다.
다음날 회원들은 아이 집으로 갔다. 이곳이 사람 사는 곳이냐며 울먹인다. 그날 회원은 이불이며 장롱을 들어내고, 장판 갈고 벽지 바르고 냉장고, 세탁기, 장롱. TV 세간을 마련해 주고 싱크대를 교체하는 넉넉한 마음을 내주었다. 회원들은 아이들 몸에 알맞은 옷을 깨끗이 모아 우리 집 앞에 놓아두었다. 나는 속옷 양말 신발을 챙기면 되었다.
분교장님께 과찬 전화를 받았다. 사모님을 도우미로 보내주셨다. 제일 큰 힘이 되었다. 사모님은 성당 구역장이다. 다른 성당 구역장 손을 잡고 왔다. 격주로 화요일에 아이들 반찬을 싸 들고 집 정리하시는 일을 해 주었다.
구역장을 모시고 아이들 집으로 간다. 산마루에 오르면 옥수네 집이 저만치 보인다. 벌어질 상황을 짐작하며 힘겨워한다. 아이들을 위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흐뭇해하며 “너희들이 우리를 복 짓게 해 줘서 고마워!” 하며 웃던 구역장들 얼굴이 선하다.
내가 업무를 보는 사무실로 일 마쳤다는 연락이 온다. 점심 대접해서 집으로 모셔다드린다. 어느 날부터 구역장은 일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점심 준비를 해온다. 식사비 내는 나에게 마음 쓰였나 보다.
비 오는 날 추울까 해진 문을 바르고 오는 길에 차가 수렁에 빠져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울기도 한 일, 아이들 생일 전날 캄캄한 밤에 핀잔주는 집 양반에게 미역국 찜통 들려 간 일, 운동회에 엄마가 되어 아이와 달리던 일……. 그때가 새삼스레 떠오른다.
삼 년이 지나는 동안 아이들은 무탈하게 자라났지만, 아직도 어려운 일은 한둘이 아니다. 낡은 집 틈새로 드는 바람을 벽지로 겨우 막아 겨울을 난다. 비바람 치는 날은 무너질까 걱정이다. 아이 아버지는 날 밝으면 일하러 가고 어두워 돌아오니 아이들도 집도 돌볼 겨를이 없는 것 같다.
비 오는 날 아이 아버지를 만나 집을 짓자고 했다. 집 지으려고 적금을 들고 있지만, 조립식 주택을 짓는다고 해도 공사비 절반도 안 된단다. 보증을 서주고 돈을 빌려 집을 짓기로 했다. 추석을 앞두고 따뜻한 새집이 완공되었다. 아이들은 기쁨에 상기되어 손을 끌며 집 구경을 시켜준다. 거실 겸 주방, 방 셋에 욕실 기름보일러 좋다. 보일러에 기름을 가득 넣어주었다. 아이 아버지도 집에 있었다. 빙그레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넉넉하게 준비해 온 가족 겨울 내의, 양말, 옷을 내려놓으며, 옥수에게 집 청소며 동생들 잘 챙기라는 당부를 한다. 옥수는 잘하겠단다.
아이 아버지는 웃으며 “선생님 이제 아이들도 컸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힘드시니 그만 오셔요. 너무 고마워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 이제 술 담배 하지 않습니다.” 한다. 담배와 소주병이 집에 보이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남기고 돌아오는 가을 하늘이 참 곱다.
그해 겨울은 따뜻이 지냈다. 초여름 무렵 퇴근길에 전화가 울린다. 옥수다. 울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 아빠 폐암이래요. 어떻게 해요?”한다. 차를 되돌려 갔다. 옥수는 동생들을 보살피고 학교도 다닐 수 있다며 아버지 치료비와 생계문제를 묻는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해 주었다. 치료비와 생계가 해결되었다. 옥수는 집안일이며 동생들을 챙기면서 학교도 잘 다녔다.
퇴근길 전화를 받았다. 옥수다. “선생님 내 동생이 너무 아파요.” 한다. 어두움이 내리는 길을 정신없이 달려갔다. 옥선, 이연 몸이 불덩이다. 병원 응급실로 갔다. 홍역이란다. 법정 2종 전염병이기 때문에 감염을 우려하여 2인실을 사용해야 했다. 생보 대상자는 치료비는 무료지만 병실 비를 내야 한단다. 입원을 시켰다. 아이 아버지가 입원해있는 병원이다. 대학병원에서 더는 치료할 것이 없다 하여 집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다.
아이 보호자로 구역장께 도움을 청했다. 일주일 후 퇴원 연락이 왔다. 병실비가 많이 나왔다며 구역장이 걱정한다. 병원장을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고 병실비를 탕감받았다. 그때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다. 퇴원하며 아이들을 아버지 입원실로 데려가 만나게 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서로 품어 안고 안기며 반기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밤중에 흐느끼는 옥수의 목소리 “선생님 우리 아빠 돌아가셨어요.” 온몸에 힘이 빠진다. 마을 이장님께 연락했더니 그곳에 와 있단다. 마을 분들의 도움으로 이일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부산 사는 아이 고모가 왔다. 유품을 정리하고 아이들 다독이고 가겠다며 지금까지도 너무 고맙다며 걱정하지 말란다.
고모는 삼우제 지내고, 집 정리도 했고, 아이들은 학교 잘 다닌다면서 집으로 간다는 연락이 왔다. 한시름 놓았다. 아이들이 삶에 한고비를 좀 빨리 넘어 성숙하는 과정이라 믿고 안녕을 빌어본다.
이튿날 새벽같이 옥수는 “선생님 우리 여기서 살 수 없어요! 구해 주세요!” 하며 펑펑 운다. 놀라서 달려갔다. 어제 고모 가고, 옹기종기 한방에서 자는데, 밤중에 괴한이 침입했단다. 험한 일을 당할 뻔했는데 동생들이 일어나 울고불고하는 소동에 괴한은 도망갔단다.
아! 어른 됨이 민망하다. 세상 참 비정하고 야속하다. 그 가엾은 아이들에게……. 오늘 해결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켜 학교를 보냈다.
시청 담당자에게 사정을 전했다. 그런데 영세민 아파트 입주 대기자가 27명이나 있다며 난처하단다. 아이들의 사정을 잘 고려해 달라 했더니 며칠 후 우선 입주자로 입주 승인을 얻었다고 했다. 드디어 아파트가 나왔다. 바로 이사를 했다. 신문에 한 페이지 싣자고 했다.
옥수가 졸업했다. 학교 추천으로 대기업에 취업했다. 옥선이도 고등학생이 되고 이연, 근연이는 중학생이다. 나름 제 일은 한다. 칠 년이 흘렀다. 이제 손을 놓아도 좋을 듯했다.
벚꽃 화사한 봄날 저녁 아이들과 갈빗집에서 만났다. 여느 가족처럼 행복한 외식으로 맛나게 식사를 한다. “옥수야 옥선아 이연아 근연아 너희들 잘 해왔어, 칭찬할게, 고마워! 이제 너희들 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언제나 너희들 옆에 있을 테니 도움이 필요할 땐 지금처럼 연락하기로 하자.”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이들과 헤어졌다.
몇 년 뒤 어느 동사무소 직원이 “소장님, 강옥선이라는 예쁜 아가씨가 안부를 묻습니다. 아시는지요?”한다. “응 내 딸같이 아끼는 아이다. 잘 부탁해!” 했다. 옥선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전산 보조업무로 왔다 한다. 그 후로는 먼 이야기가 되어갔다.
며칠 전 구역장과 넘던 산마루를 넘는데 아이들 생각이 난다. 혹여 살든 곳이라 안부가 궁금했다. 마을도 많이 변했다.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산골은 길도 넓혀지고 번듯한 주택이 들어섰다. 묵은 집으로 갔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그때 선생님 이야기 들었다며 반긴다. 아이들은 이 마을에 살던 친척 할머니가 돌아가기 전만 해도 명절에 왔었는데, 할머니 돌아가신 지 삼 년이 지나 지금은 오지 않고 소식을 모른단다.
허전한 마음으로 집을 나오는데, “혹시 회관에 모인 사람은 아는 사람 있을지 가봅시다.” 하며 길을 안내한다. 회관에 반기는 분이 있다. 그분께 아이들 이야기를 들었다. 그 어머니는 출소했지만, 아이들이 어머니를 피했다고 한다. 얼마 못 살고 세상을 떠났단다. 아이들은 착하게 자라서 열심히 살고 있단다.
모르는 전화라 망설이다 받았다. 나긋하고 맑은 목소리 “선생님, 저 옥선입니다.” 한다. 가슴이 떨리고 뭉클하다. 혁신도시 아파트에서 삼 남매는 같이 살며 모두 직장을 다니고, 이연은 거제에서 회사에 다니는데 가끔 집에 온단다. 다들 결혼은 하지 않았단다. 보고 싶다며 이연이 오는 날 만나자고 한다. 건강 조심하시고 잘 계시란다. 고맙다. 고마워……! 안도의 긴 숨을 쉬며 전화를 놓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연이 오는 날을 기다려본다. 활짝 핀 꽃 같은 웃음 머금은 얼굴을 보고 싶다. 착하게 잘 자라 열심히 일하는 너희들에게 예쁜 꽃다발을 안겨 주리라 고맙다 사랑한다. 아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