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계동 72

[고정현]

소설 인계동 72

진철은 그 손님이 보너스를 탔던지 아니면 연말이라 기분을 내느라 그랬는지 그도 아니면 대리기사가 수고했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만원씩이나 더 받은 것에 기분이 좋았다. 담배를 피워 물고 콜 완료 버튼을 누른 후 천천히 걸어서 큰 도로로 나오자 길 건너에 대리기사 두 명이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진철은 건너가서 인사를 나누고 묻는다.

-여기도 콜이 뜹니까?

-아니요. 이런 곳에서 콜이 뜰리 없지요.

-그런데 왜 여기 계십니까?

-셔틀 기다리는 중입니다.

-아니! 여기도 지나갑니까?

-그럼요. 자주는 아니지만 범계로 해서 중동까지 가는 차가옵니다.

그 날 진철은 복귀 비 오천 원을 쓰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저녁 일을 시작할 때 흐렸던 하늘에서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휴! 눈이 제법 내리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서 명자는 어깨를 툭툭 턴다. 머리에는 물기가 촉촉하게 묻어있었다.

-많이 오니?

진우는 그렇지 않아도 눈이 올 것 같더니 정말 온다는 생각을 하면서 수건을 꺼내어 명자에게 건네주고 명자의 손에 들려있는 담배 보루를 받아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 한 갑을 꺼내어 입구를 뜯은 후 밑을 톡 쳐서 두 가피가 위로 올라오도록 한 다음 룸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룸에는 두 명의 남자가 술을 마시고 있다가 진우가 들어서는 것을 보며.

-어! 그 아가씨는? 다른 데로 돌린 거야?

하는데 술에 취한 눈동자가 벌겋게 물들어 풀려가고 있었다.

-아닙니다. 지금 밖에 눈이 많이 와서 머리가 눈에 젖어서 닦고 들어 올 겁니다.

-눈이 온다고?

-예! 많이 온 다네요.

-어! 그럼 눈이 쌓이기 전에 가야지. 길 미끄러우면 고생하는데.

-대리 불러드릴까요?

-그래! 대리 불러줘.

사내가 대리기사를 불러 달라는데 문득 명보원이 떠오른다. 자신과의 관계가 카페의 만남이 아니고 직업적으로 만났더라면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보통 콜 센터를 통해서 부르는 손님들의 대리기사 요금 보다는 업소 콜이 더 비싸다. 그것은 업소에서 대리를 부르고 그 요금을 술값과 함께 계산을 하거나 아니면 손님을 더 잘 모시기 위한 그들 나름대로의 영업 전략으로 업소에서 계산하는 것이기도 했다.

더구나 콜센터를 통하지 않고 직접 명보원을 불러준다면 그들이 말하는 수수료조차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요금 자체가 수입이 되어버리니 한결 좋은 것이다. 언젠가 어느 대리기사 두 사람을 부른 적이 있는데 그들은 수수료를 내지 않고 길에서 만나서 손님을 모시는 것을 길 빵이라고들 했었다. 그런 길 빵은 대리기사들에게는 투자 없는 이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명보원을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직업을 알려주는 것과 마찬 가지었기 때문이다. 진우는 전화를 들어 콜 센터에 전화를 넣는다.

현관 앞에 들어선 진철은 눈을 맞은 머리를 털고 어깨와 가슴을 손으로 털어 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적지 않은 눈이 올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날씨가 포근하니 낮이면 눈은 다 녹을 것이다. 현관 옆의 쪽문을 열려다말고 출출하다는 생각이 든다. 진철은 되돌아 골목을 빠져 나가 큰길가에 있는 해장국 집으로 들어가서 선지 해장국과 소주 한 병을 시키고 방석을 당겨 그 위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두 자리 건너에 두 남녀가 뼈다귀 해장국을 시켜놓고 열심히 뼈 속을 뒤지며 먹고 있는데 소주병이 세 병이나 비어있다. 등만 보이는 여자의 먹는 모습을 보니 여자는 이미 반 이상 취한 모습으로 보이는데 한 손으로 뼈를 들고 한 손으로 소주잔을 들어 마시더니 뼈를 입으로 가져가 쪽쪽 빨고 나서 잔을 내려놓은 손으로 입을 훔치더니

-그 개새끼, 어디 잘 되나 보자.

하며 건너편 사내 앞에 있는 담뱃갑에 손을 뻗치자 사내가 얼른 담뱃갑에서 한 가피 꺼내어 여자에게 건네준 후 라이터의 불을 켜서 여자가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네가 참아라. 그래도 너나 그 사람이나 우리 단골이잖아

-단골이면 단골이지! 그 개새끼. 그런 새끼 같은 놈 단골 집어 치우라 그래!

하며 목청이 높아지자

-좀 조용조용히 말해라. 창피하게

-창피! 뭐가 창피야? 술을 개좆같이 먹는 새끼가 창피한 거지 그런 말을 하는 내가 창피한 거야? 새끼가 술을 배워도 더럽게 배워가지곤

여자가 화가 나도 단단히 난 것을 보니 남자는 술집 주인 정도 되는 것 같았고 여자는 그 집에 자주 드나들며 술을 마시다 보니 단골이면서 주인과 친해진 것 같았고 여자가 욕을 하는 사내도 그 집의 단골인데 오늘 어쩌다가 합석을 하게 되었고 일은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진철이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뚝배기에 펄펄 끓는 해장국과 깍두기, 겉절이 배추김치를 쟁반에 담아 내오더니 진철의 상에 진열을 한다. 진철은 국물을 보자 한 수저 떠서 입으로 후후 불면서 마신 후 소주병을 딴다.

술기운이 몸을 추위 속에서 훈훈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해장국을 거의 다 먹었을 무렵 남자 셋이 식당 문을 열고 ‘어이 그놈의 눈!’ 하면서 들어서는데 어께 쪽에는 제법 많은 눈이 쌓여 있었고 진철이 계산을 하고 식당 문을 열었을 때 바람에 눈보라가 식당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는 잠바 깃을 귀 밑으로 세우면서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바람이 깃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귀가 조금 시리기도 했지만 해장국에 마신 술이 속을 든든하게 해 주어서 그런지 별로 춥다는 느낌도 없었다.

자인리의 겨울. 참 그곳은 눈도 많이 왔던 곳이다. 겨울만 되면 눈이 녹을 날이 없었던 곳이었다.

눈이 내리면 보육원 아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눈을 치워야 했다. 처음 자인리의 겨울. 눈이 소복하게 쌓인 보육원의 운동장은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리 넓은 운동장은 아니었지만 보육원 아이들에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넓은 장소였다. 공을 차고 비석치기를 하고 자치기를 했으며 씨름을 하는 곳이었다.

처음 진철이 만난 눈은 그야말로 온 천지를 하얀 색으로 칠 해놓은 눈부신 광경이었다. 어느 한 곳에 검은 점 하나 없는 그야말로 하얀 색이었다. 운동장도 논도 밭도 시골 초가집의 지붕도 모든 것이 하얗기만 했다. 하지만 눈을 치우는 것은 그야말로 노동이었다. 작은 아이들이 손에 비와 삽과 밀대를 하나씩 들고 운동장 이편에서부터 저편까지 치운다는 것은 어쩌면 일 년 중 가장 혹독한 노동을 하는 계절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늦닢]

하얀 순백의 숨결을 느낄 틈 조차 없이
눈을 쓸어야했던 보육원 시절...
모든 것이 상처로 추억되는 그곳에서
한 점 떠오르는 추상화 같은 알 수 없는 추억하나,
그리움 하나가 어쩜 진철의 자산인지도 모를 일....

[고정현]

그 그리움이 지금 진철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