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수 명상여행 <사단법인 도나누리 대표 김 종 업>
바이칼 호수는 세계 민물의 20%를 담고 있는 삼천만년 전부터 형성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이며 빙하기 이래 현재까지의 지구 인류에 대한 모든 영혼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호수이다. 러시아 적군과 백군이 싸울 때 백군의 도망자 25만 명이 얼어붙은 바이칼에서 전멸하여 호수 밑 1800미터 지점에는 아직도 그들의 영혼이 울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리는 곳, 한반도에 버금가는 면적의 전 세계 담수호 중 가장 큰 곳, 수질이 세계 최고로 물맛이 으뜸인 곳, 바다인지 호수인지 구분이 안 가는 곳이다. 단순히 물에 들어 갔다가만 나와도 수명이 열흘 길어진다는 그 곳을 다녀온 기록을 명상가의 안목으로 남긴다.
아름다운 풍광, 생물의 다양성, 지질학적 외형, 이런 저런 설명들이 수없이 붙지만 우리 같은 구도자들에게나 종교인, 무속인들에게 가장 큰 매력은 영적구도의 장소로서 이 바이칼만한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구촌 구석구석 기운이 강하다는 장소는 여러 곳 있으나, 실제 영적 에너지가 존재하거나 우주와 통한다는 샤머니즘적 주술의 영역을 벗어나 진정한 존재와 하나 되는 체험적 수련장소로는 바이칼이 으뜸이다. 짧게 다녀간 경험은 있었으나 제대로 된 수련장소로서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 반, 수련목적 반으로 바이칼을 다시 찾았다. 미국의 세도나, 몽골의 홉스골 호수에서 터의 기운이 인간과 어떤 교감을 나누는지에 대한 기 체험이 있었는지라, 초보수련자와 중급, 그리고 고급 수련자들에게 넌지시 동행을 권유해 보았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뜻을 같이 해 나를 포함, 14명의 명상 탐사 팀이 구성되어 존재의 시원을 탐구한다는 거창한 명분으로 열흘간의 구도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기획한 바이칼 호수 여행은 관광이 목적이 아니었다. 자연의 에너지를 느끼고 자연 앞에 숭고하고 겸손하며 내면으로의 여행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함께한 도반들이 무언가 한 소식 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6월 23일 러시아 이르쿠츠크로 가는 대한항공에 몸을 실었다. 참고로 한국 국적기는 3월부터 9월까지만 한시적으로 운항한다. 그것도 밤 비행기가 전부인 관계로 도착시간이 자정이었다. 이르쿠츠크에서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바이칼 호수의 불칸 바위까지 가려면 약 네 시간의 버스 이동 후 다시 배를 타고 알혼 섬까지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불칸 바위까지 또 다시 버스로 한 시간 가량 더 이동해야 한다. 그러니까 비행기, 버스, 배 등 육해공의 모든 운송 수단을 다 맛볼 수 있는 여행길인 것이다.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 미리 연락해 둔 여행사에서 18인승 버스를 공항에 보내 왔다. 알혼 섬 입구 선착장에서 첫 배 뜨는 시간은 아침 8시. 시간의 여유가 있어 슈퍼에 들러 장을 보고 느긋하게 갔음에도 네 시 반 쯤 알혼 섬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막 해가 뜨려고 하기에 일출광경을 보려고 선착장 옆 동산으로 올라갔다. 배를 기다리는 사이에 태양 명상을 하기로 한 것이다. 북쪽 지방이라 해가 짧은 줄 알았더니, 일출은 네 시 좀 지나서이고 일몰은 저녁 10시쯤이라고 했다.
사전에 아침 태양 명상을 하다보면 대자연이 만들어 내는 장관에 내 자신의 존재가 어떤 것이란 것을 알 수 있다는 설명을 곁들였더니 모두들 경이로운 순간을 맞이하였다. ‘아아~~바이칼, 아아~~떠오르는 태양.’ 숨이 멎고 나와 천지가 하나 되는 체험, 첫날 첫 명상부터 예사롭지 아니하였다.
떠오르는 태양이 잔잔한 호수위로 붉은 몸체를 드러내며 진한 홍시 같은 색깔로 구름을 물들이고 태양의 꼬리가 일직선으로 호수 밑까지 거대한 붉은 기둥을 세우고 있었다. 왜 이 호수가 붉고 큰 이름을 가졌는지 한 순간에 이해가 되었다. 불칸, 바이칼로 변화되는 음운법칙에 따라 거대한 붉음과 환함이 합쳐서 내는 발음인 것이다! 여기가 왜 세계 264개의 종교 발생지인지, 여기가 왜 우리 민족의 시원지인지 모든 것이 환하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바로 이 느낌으로, 영적 체험의 순간으로.......이번 명상수련 여행을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프로그램이 순식간에 세워졌다. 아침과 저녁 명상, 그리고 밤 시간은 도담을 나누며 내면의 의식을 업그레이드 시키자는 계획을 배 타기 전에 준비해 간 컵 라면을 아침으로 먹으며 설명하였다. 모두들 환영하였다. “좋~습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러시아의 수송선은 무료였다. 차까지 큰 배에 공짜로 실어 준다. 15분가량 호수를 가로 질러 이동하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한 명당 배 삯이 만 원 쯤 할 거고 차는 10만 원 쯤 할 텐데. 하루만 계산해도 엄청난 돈벌이인데, 이를 공짜로 해 주다니?” 원래 러시아라는 국가 명칭이 루스에서 나왔고, 루스는 쥬스, 즉 조선의 초원 이름이란 것이 맞다면 우리 선조들의 환인 정신이 여기만큼 보존된 곳이 없다 싶었다. ‘그래, 너희와 우린 원래 한 뿌리였고, 우리는 정으로 사는 민족이 아니었던가......’
알혼 섬에 도착해 다시 한 시간 정도 비포장 도로를 달려 불칸 바위 뒤쪽 숙소에 짐을 풀었다. 알혼 섬, 또는 아르혼 섬이라 불리는 그 명칭마저 정겹게 느껴진다. 러시아 어가 아니라, 우리말 알과 혼이 합해진 이름이란 느낌이었다. 모든 것을 잉태한 알, 그 속에 각 개성이 드러나는 뿌리가 혼, 즉 지구의 생명 기원이면서 각 생명체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뿌리가 바로 이 섬이란 뜻이겠거니 추측해 보았다.
국수주의적 자기위안을 가지고 여장을 풀고 나니, 모두들 불칸 바위부터 가 보자고 했다. 바이칼 여행자의 종착지, 불칸 바위를 먼저 보지 않으면 시작부터 아니겠거니 하고 도복으로 갈아입고 가자고 했다. 영험한 지상의 상징에게 인사드리는데, 의관은 정제하고 가야지 않겠나.
불칸 바위는 이름 그대로 붉고 흰 색을 띠고 있다. 그것도 보는 방향에 따라 붉은 색을 띠거나 흰색으로 보인다. 러시아어이지만 우리 말이기도 하다. 붉고 환하다는 뜻의 ‘불’과 거대하다는 뜻의 우리 말 한, 이것은 칸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징기스칸의 칸이나, 신라 왕 이름의 거서간도 크고 거대하다는 뜻의 칸이다. 붉은 색은 황소요, 흰색은 백조라는 동물로 이름붙인 전설도 여기서 나왔다.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가 우리 전래설화인줄 알지만 사실은 불칸 바위의 전설이다. 그것도 여기서 살던 우리 민족의 시원, 현재는 부리야트 족이라 이름 붙인 같은 조상의 후손들이 가지고 있는 전설인 것이다.
세계 샤먼의 발상지라고 이름 붙여진 불칸이지만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세계 모든 종교의 발상지이라 해야 맞는 말이다. 힌두교, 배화교, 기독교와 불교, 아프리카 부두교까지 불칸이 바로 그 시원지이다. 이건 나중에 기회를 찾아 다시 말하기로 하고 우선 불칸을 다녀온 이야기부터 해보자.
불칸 바위 언덕에는 13개의 샤먼 기둥이 서 있다. 모든 기둥에는 오색 천이 둘둘 말려 있는데 천지의 기운이 오행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상징하고, 그 기운의 중심지가 여기라는 오만함이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정통 종교인들에게는 섬뜩함이 느껴지겠지만 우리같은 시골출신 중년들에게는 어릴 때 보았던 서낭당 모습 그대로 일 뿐이다. 나무에 오색천을 둘둘 감아 돌렸던 그 모습 그대로.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오방기를 돌리고 찢고 하는 것의 고향이 여기다.
오색 기둥들 밑에는 소원을 빌며 제물로 받친 동전들이 깔려있다. 어디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영성 탐구자들이 던진 모든 동전들이 다 모여 있다. 결국 인류는 하나에서 나오고 의식의 뿌리도 하나 됨이 그 원리다. 무당들을 천대하지 말라. 그들은 인류 문화유산의 뿌리를 간직한 원천이거늘.
불칸 바위 밑으로 내려갔다. 멀리서 볼 땐 호수물이 푸르다 못해 검게 비쳤지만 가까이 다가가 본 호수는 정말 푸르렀고 보는 이의 눈마저 시려웠다. 이 물에 한 번만 담가도 열흘의 수명이 는다는 말에 너도나도 손과 발을 담갔다. 겨우 40살 밖에 안 된 일행 중 막내는 아예 팬티만 입고 온 몸으로 호수에 뛰어들었다. 찬바람이 불고 으스스한 날씨에도 호수의 경건함을 몸으로 체험해야 한소식 한다고 믿고서는 멱을 감았다. 내가 물었다. “태청아, 너 쪼그라 들었재?” “뭐가요?” “불칸과 알혼이 합쳐진 말이 불알이다!”
같이 간 여 도반들이 재미있어 깔깔 거리고 웃는 사이 신기한 현상이 벌어졌다. 바위 밑의 언덕진 공간에 여러 사람이 좌선 할 수 있는 터가 있어 ‘내일 부터는 아침 수련을 여기서 합니다.’ 하고 말하자마자, 어디선가 개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예닐곱 마리 되었는데 그 중 두목같이 보이는 큰 수컷 한 마리가 우리들 사이에 들어와 앉았다. 나머지 개들은 우리 주위를 빙 둘러 앉아 마치 우리를 보호하듯 원진을 펼친 것이다.
“햐. 그거 신기하네, 기왕 왔으니 이곳 기운을 한번 체크하고 갑시다.”라는 제안에 모두들 좌선형태로 앉았다. 일 단계 호흡으로부터 운기조식을 겸한 단계별 수련을 진행하는데, 놀랍게도 큰 개는 아예 내 앞에 앉은 도반의 등 뒤에 턱 버티고 앉아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였다. 마치 옛 그림에 나오는 신선의 등 뒤에 호위하는 호랑이 모양을 한 채로. 이 개 무리는 매일 아침 우리들이 아침 수련 때 마다 와서 함께 수련을 했는데, 사흘 후 곰 할머니와 만난 뒤부터는 오지 않았다. 호랑이 대신 개라니 좀 거시기 하긴 하지만 상징으로서는 다들 좋아하였다.
첫날부터 상서로운 기운과 조짐들이 보여 이번 바이칼 명상은 결말이 좋을 예감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와 준비해 간 햇반과 밑반찬으로 저녁을 해결하였다. 이곳 숙소와 음식은 정말이지 일반 여행객의 눈으로 보면 추천할 만한 것이 못된다. 러시아 경제 사정으로 보면 꽤 비싼 편인데, 두 사람이 한 방에 자는 방갈로 형태의 방 하나에 일박이 약 5만 원 정도다. 우리나라 모텔 값과 비슷하지만 수준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침 식사가 제공 된다는 정도다. 아침 식사는 빵과 우유, 죽 한 그릇인데 먹을만 하다. 원래 명상여행이란 게 험하게 먹고 자면서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가는 것이므로 모두들 불평은 없었다. 다만 일행이 정확하게 남녀 반반이었으므로 여자 도반들이 먹거리 장만과 준비로 고생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점심과 저녁은 자체로 해결해야 되서 매번 햇반과 라면, 고추장과 김 등 한국형 끼니로 때워가며 해결하였다.
참고로 여행 경비는 일인당 130만 원 정도 들었다. 왕복 항공료, 대절 두 번, 가이드 일일, 외식 일곱 번, 알혼 섬 북부 투어 등 일정을 다 소화했다. 물론 사전 준비를 석 달 정도의 기간을 두고 하였기에 상당히 싸고 저렴하게 다녀온 편이다. 항공권은 6개월 전 예매 하였기에 일인당 55만원으로 끝낸 것이 결정적 효자 노릇을 하였다. 도착 다음 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일정으로 들어갔다. 아침 명상은 오전 6시, 저녁 명상은 오후 6시, 개인 수련과 산책을 위한 행선은 낮과 저녁에, 예습과 복습 그리고 서로 간에 느낌을 공유하는 도담은 밤에 한다는 원칙하에 치열하게 수련에 몰입하였다.
여기서 잠깐 명상에 대해 상식적인 부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명상개념은 그냥 고요히 생각을 정리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편안한 마음가짐을 위한 행위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진정한 명상 수련은 생각이 에너지임을 확인하고 온 몸으로 체험하여 자기 스스로가 생각의 주인임을 확실히 깨닫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의 움직임에 대한 근본에너지를 경험하는 것이 일 단계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의식의 힘을 스스로 돌려 보아 내가 만물을 창조한 주인임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어 의식 그 자체의 근본을 내면 깊숙한 곳으로 파고 들어가 존재와 하나 되는 빛의 각성을 체험하는 것이 소위 말하는 명상의 길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 방법을 잘 몰라 그냥 대 자연과 하나 되어 몸의 편안함이 있으면 명상한다고 하는데, 이곳 바이칼에서도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명상 장소가 중요한 이유는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이 동시에 작동하는 에너지 흐름의 통로가 맺히는 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이에 몸의 체험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장소에서는 몸의 감각이 훨씬 잘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이칼을 찾았고 체험을 더 빠르게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침 명상은 야지에서 하는 관계로 각자 깔판과 방석을 지참하고 20여 분간 천천히 걸으며 불칸 바위 아래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에 개떼들이 합류하여 우리를 호위하고, 자리를 잡으면 두목개가 느긋하게 옆으로 누워 우리와 함께 하였다. 더하여 언덕 위에는 소위 말하는 많은 명상객들이 호수를 보는지 우리를 보는지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몸 털기부터 시작하여 기체조, 호흡법, 운기법 등을 실습하며 최종적으로는 두뇌의 환함을 체험하기 위한 각종 의식의 집중법을 달리해가며 에너지 흐름도를 직접 체험하곤 했다.
소위 말하는 기 체험이란 것은 감정의 흐름과 생각의 정화되는 느낌을 고감도로 알아가는 것인데, 많이 울고 털어내고 하는 저마다의 느낌이 있어 수련을 마치고 나면 그만큼 황홀해 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곤 하였다. 즉, 불칸 바위의 붉음과 환함의 기운, 호수의 맑고 청령한 기운이 느낌으로 작용하여 의식의 무화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매번 아침 명상할 때마다 우리끼리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이 같이 하자고 조르는 통에 할 수 없이 동참 시켰다. 프랑스인, 러시아인, 그리고 한국에서 온 단독 명상객까지. 중동에서 온 어느 동참자는 우리 수련을 동영상으로 다 찍었고 나중에 한국으로 와 직접 배우겠다고 하였다.
아침명상 4일째 되던 날, 재미있는 일이 하나 발생하였다. 이날도 명상장소에 제 시간에 맞춰 왔는데, 러시아 할머닌지 나이를 분간하기 어려운 중년 무당 하나가 우리 수련 장소에서 아침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헌데 이날따라 우리를 호위하는 개떼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수련을 진행하였다. 열심히 기체조를 마치고 막 좌선에 들어가자마자, 이 무당 할머니가 이상한 소리를 질러 대는데, 꼭 곰 울음 소리였다. “우오오~~괵! 괵!” 그리고는 연신 트림을 해 대는 것이 곰이 울부짖는 소리와 너무나 흡사하였다. 하도 방해가 되어 결국 내가 기운을 발출하였다. 할머니를 향해 양 손으로 기운을 발경 하고 이어 뇌의 기운을 같이 모아 방사하자, 소리를 멈추고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도반들이 수련을 마치고 나한테 물었다. “어떤 종류의 사람입니까?” “추측컨대 아마 코리족 주술사 같다. 이곳에 살던 우리 조상의 세 부족이 코리족과 부리야트족, 예맥족이다. 다 같은 민족인데 사는 환경에 따라 그냥 이름을 바꾸어 불렀던 것 같다. 이들이 초기 숭상한 동물이 곰이었던 관계로 단군의 어머니가 곰이 아니었겠나. 저 할머니가 영적 매개체로 곰을 선택한 것이 소리 자체로 자기가 곰이라는 의식을 투영한 무당인 것 같다.”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그런 느낌이 온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수련 터로 오는 도중의 위쪽 바위는 지금도 전통무당이 관광객을 상대로 굿판을 벌리고 있다. 북을 두드리고 살풀이춤을 추어 영혼을 부른 다음, 물을 뿌리고 술로서 공양하는가 하면 영혼을 위로하는 갖가지 소리를 내어 상품으로서의 굿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우리가 산책할 때마다 한 두 명씩 굿을 언제나 하고 있었으니까.
또 다른 아침, 명상 동참자 중에 홍콩에서 온 한국인 처녀도 있었다. 혼자서 몽골의 홉스골 호수에 갔다가 이어 바이칼로 찾아 온 32살의 처녀인데. 영혼의 짝을 찾아 여기까지 왔노라고 고백 후 스스럼없이 우리와 동참하길 원했다. 따라하라고 허락 한 후에 몇 번 수련을 같이 했더니, 아예 진드기같이 달라붙어 버린다. 이쁘장하게 생겼는지라, 총무역할을 하는 태청이는 좋아라 하고 같이 다닌다. 나중에는 아예 숙소까지 찾아와서 호흡법 가르쳐 달라고 졸라기도 했다. 나는 고수만 지도하니, 기초는 저 사람한테 가라고 하면 다른 도반은 다시 저 사람에게, 이리저리 미루기만 하니까 다시 나한테 와서 왜 안 가르쳐 주느냐고 불만 섞인 목소리로 항의했다. 정색을 하고 답했다. “아가야, 오다가다 만난 뜨내기들한테 수련법을 자랑하듯 가르치는 게 절대 아니다. 이건 평생 안고 가야 할 호랑이 등인데, 어찌 맛만 좀 보라고 한단 말이냐.......” 투덜거리면서 돌아갔다. 이 뿐만 아니라, 바이칼 불칸 바위 주변에는 전 세계 명상가들이 소리 소문 없이 구석구석에 똬리를 틀 듯 앉아 있었다. 인도에서 온 요가 수행자는 태양이 떠 오르는 아침에는 온 몸을 뒤틀고 중국 기공을 연상시키는 요란한 기체조로부터 시작해서 소리로 우주의 파동과 연결시킨다며 주문수행을 하염없이 하고 앉아 있었다. “옴 마니 반메홈~~~~.” 하여간 불칸 바위는 신령스럽다.
저녁 수련은 오후 4시부터 시작되었다. 점심에 식당을 찾아 헤매는 날은 여섯시부터 시작이고 대부분 이 때 쯤 했다. 장소는 불칸 바위가 흰색을 띄며 보이는 장소였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불칸 바위는 붉은 색과 흰색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보는 방향에 따라 그 색을 달리 한다. 멀리서 바라보는 바위가 희게 보이는 장소가 있다. 사진작가들이 모여 들어 카메라만 해도 수 십대는 되는 언덕, 헬기가 매일 뜨고 앉는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자리다. 사람들을 피해 약간 낮은 언덕에 자리 잡고 바위를 바라보며 흰색을 잔상에 남기는 훈련, 말 그대로 상(想)을 머리에 새기는 수련을 했다. 하얀 바위 상을 초 집중으로 바라보면 바위의 외곽에 아우라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아우라를 또 집중하면 흰 빛이 바위와 동화되어 내 눈 안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이 빛, 우주의 빅뱅이 내 두뇌에 자리 잡는 걸 도와주는 빛이다.
마음이라 불리는 존재의 근원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빛의 형상으로 환상들을 조합해 내느니, 그 근원을 찾는 훈련이 바로 이 빛 명상이다. 땅의 황소가 하늘의 백조 신부를 맞이하여 11명의 자녀를 두었다는 불칸 바위의 전설은 이 빛의 조합이 만들어 낸 천지 창조의 신화인 것이다. 몽골 건국신화가 바로 이것이며, 징기스칸이 말년에 자신의 영혼을 불칸 바위에 안치시켜 달라는 유언을 하였다는 이야기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코리족과 부리야트 족의 염원을 담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가끔 존재하는 빛이 원래의 자리로 가지 못하고 자신을 형상화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 걸 감지한다. 쉽게 말해 영혼이 빛으로 가지 못하고 지구의 다른 에너지와 동화하여 어슬렁거리는 걸 감지해 내는 것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집중을 통해 천지가 하나 될 때 접속하는 경우가 있다. 홉스골 호수에 갔을 때 그랬으며 제주도에서 그런 경험을 한 경우도 있다. 내가 무당이라거나 해서가 아니라 깊은 수행을 통해 가끔 그런 경험을 한다. 이번에도 징기스칸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는 불칸 바위 정상에서 진짜 그렇다면 접속이 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시도해 보았다.
바위 정상으로 가는 길은 별다른 통제가 없다. 다만 조심스럽게 올라가지 않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천기를 체험하러 온 우리에게 하늘이 낳은 땅이 고춧가루 뿌리랴 싶어 여자들을 제외한 일곱 명 모두가 씩씩하게 올라갔다. 한 시간 여 바위와 하나 되고 이어 하늘과 하나 되는 과정을 거친 후, 바위의 기운에 녹아있는 자그마한 빛의 씨앗이라도 접속이 되는지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 것도 감지되는 것이 없었다. 이런 자리에는 하도 많은 인간들이 다녀가니까 아마 징기스칸 영혼도 견디다 못해 도망가 버렸나 보다. 가볍게 선언했다. “없네, 지어낸 얘기로구만.” 불칸 바위 정상. 오르긴 힘들었으나 이 위에서의 수련은 온 몸이 단전으로 변하는 느낌을 받았다.
바이칼 호수의 전경은 아침 동트는 해에 그 비경이 있으며 저녁노을 역시 정말 장관이다. 석양의 시간이 길 뿐만 아니라, 붉은 노을이 하늘 절반을 뒤덮어 한 시간 정도 빛의 향연을 펼친다. 10시 넘어서야 겨우 호수 속으로 빛이 사라지는데, 그 시간 동안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내가 빛인지 빛이 나인지 구분이 되지 않고 하나 되는 느낌이 온다.
일반인들이 그러할 진대 수련자들이야 말해 무엇 하랴. 다만, 그냥 맨 땅에 앉아 감상하는 것보다 좀 더 운치를 즐기려면 러시아 카페가 바로 위에 있어 진한 커피 한잔을 곁들이면 행복감에 도취되어 온 세상이 내 속에 있음을 느낀다. 우리 일행은 저녁 수련을 마치고 나면 얼른 라면과 햇반으로 저녁을 때우고 매일 카페에 들러 노을빛의 향연을 즐겼다. 수련이 아니어도 좋았다. 마음 맞는 도반들과 편안히 앉아 무언의 느낌을 서로 나누는 행복감이란. 찌든 일상의 행동이 나에게 무엇을 남겼느냐 하는 인생 전반의 자각이 그냥 깃드는 것이다.
함께한 도반들 중 어느 누구 하나 인생이나 몸에 결함이 없는 사람이 없었다. 어차피 인간이란 결핍이 있어야 삶의 원동력이 생기니까 누구의 짐이 더 무거운지 논할 자리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존재하라. 이 비경을 보고 자연의 웅대함과 신비함을 그냥 즐겨라. 나는 무엇을 하려고 이 땅에 몸을 받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 없었다면 태어남도 없었거니와,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 그 죽음은 다시 태어남을 약속한 것이니, 저 석양이 그렇듯 오늘 죽어도 내일 아침에는 더 웅대하고 찬란한 모습으로 떠오를 것을....... 존재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 내 삶의 가치다. 그렇게 8일간 아침, 저녁 수련을 하며 자신을 성장시켜 나갔다.
여기까지 와서 우리의 뿌리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말이 아니다. 한민족의 뿌리, 과거 우리네 조상들과 한 핏줄인 부리야트 족과 어울리지 못한다면 재미가 없다. 선발대를 꾸려 섬 안의 마을을 뒤져 보라고 했더니, 걸어서 두 시간 정도의 거리에 마을이 있다고 하였다. 옳거니, 그리로 가 보자.
유튜브를 뒤져 사전 공부를 하고 온 태영 도반이 슬쩍 귀뜸을 한다. “여기 부리야트 족 마을 어느 곳에 과거 선인들이 수련한 동굴이 있다는데, 찾으면 그 속에서 기운 받아 보시지요.” “엥? 그런 곳이 있단 말이요?” “유튜브에 소개만 되어 있고 장소가 어딘지는 안 아르켜 주던데요?” 그래서 걸어서 답사하기로 했다.
대부분 나이가 있는 중 노년들이라,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가는 길이 드넓게 펼쳐진 초원이라, 그 웅대함의 비경에 넋이 빠진 도반들이 정말 신나게 걸어갔다. 노래 부르고 바람을 온 몸으로 받으며 춤을 추며 걸어갔다. 왼쪽으로 호수를 끼고, 오른 쪽으로는 드넓은 초원이며 소와 말, 양떼들이 드문드문 노니는 광경에 빨간 티를 입은 선남 선녀들의 휘날림이라. 그 자체로 우리들은 과거와 현재가 하나 되고 하늘과 땅이 하나 되고 구름과 태양이 하나 되는 재미를 맛보았다. 끈질기게 따라붙은 홍콩 아가씨 역시 영혼의 짝 대신 나무와 교감한답시고 두 팔 벌려 나무를 껴안았고 하늘 향해 두 팔 벌렸다.
마을에 도착하여 선발대가 보아둔 식당으로 들어가 늦은 점심을 해결하였는데, 음식이야 그렇다 쳐도 도대체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마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이야 어느 집으로 들어가 과거 조상들의 삶이 현재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 보고 싶었으나 러시아 혈통만 보이고 몽골계는 아무리 다녀도 보이질 않았다. 결국 마을을 다 둘러보고서 관광객 상대하는 외지인만 산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음을 기약하였다.
홍콩 아가씨가 사준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입에 물고 마을 둘러보던 중 개 두 마리가 엄청나게 짖으며 내 쪽으로 달려 왔다. 손으로 스톱 사인을 보내며 정면으로 마주서자, 갑자기 맹렬한 기세를 멈추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더니 뒤돌아 조용히 물러난다. “와! 박사님, 초능력 발휘하셨네요. 동남아 승려가 코브라를 잠재웠다고 신문에 나더니. 이거, 약간의 살만 보태면 박사님 교주 만드는 거 일도 아니겠네.” 우리 경험 중 개를 곰으로 둔갑시키고 지금 상황을 조금 부풀려 묘사하면 카더라 통신이 알아서 부풀려 그리 되지 않겠나. 하기야 부처의 탄생과 죽음도 이런 상황에 살이 좀 보태졌다고 생각 한다. 모두들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며 신화를 만들어 나가지 않았던가. 바이칼 이무기가 개로 화하였다가 공중에 떠서 용으로 변하여 원래로 돌아갔다는 둥. 그래. 우리가 잃어버린 것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이 상상력이다. 일곱 살 적의 내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은 무한한 상상력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리로 돌아가 보자.......
돌아오는 길에 이곳 사람들이 말하는 택시를 불렀다. 8인승 장갑 버스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데 최적화 되어 있었고, 많은 손님을 태울 수 있으며 낡아도 낡은 것 같지 않은 러시아 국민차이다. 처음으로 명상 아닌 관광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알혼 섬 북부 관광에 나섰다. 역시 장갑차 같이 생긴 러시아 택시를 두 대 불러 나눠 탔는데, 운전사 녀석이 자리가 두 개 남는다고 다른 팀 연인을 태웠다. 젊은 러시아 남녀인데, 남자 녀석이 마주보는 자리에서 쩍 벌려 앉는 바람에 여자 도반 하나가 민망한 사태로 쩔쩔 매었단다. 우리도 다른 자리에 앉았던 노련한 여자 도반이 씩씩하게 지적하였다. “헤이, 쫙!” 양 손바닥으로 박수를 치며 무릎을 오므리는 시늉을 하자, 즉각 알아듣고 다소곳이 무릎을 모으더라는 것이다. 역시. 한국 아줌마의 힘은 세계 어디서든 통한다.
운전기사가 부리야트 족이었다. 관광지에서 내려 해안을 구경하는 도중, 녀석의 목에 매달려 있는 징 같이 생긴 동그라미가 눈에 띈다, 무어냐고 손짓으로 묻자, 딩그리 신의 보호문장이란다. ‘아하~딩그리!’ 단군의 여기 이름이 아니던가. 카자흐스탄에서는 탱그리, 중국 위그리 족들도 탱그리 신으로 부르며 중앙아시아 모든 민족들이 섬기는 단군 신.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 강 이름이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딩그리 강으로 불리는 등 단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단군의 원산지가 바로 여기이다. 우리가 환단고기의 국수주의적 자부심을 가지는 이유가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모든 문화의 원류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내면의 자기 합리화가 그 원인일 것이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대학에서 음운학적 역사를 연구한 김정민 박사가 주장하는 민족의 원류 탐구 결과, 환인 환웅 단군의 삼성은 지구 전체에 걸쳐 그 흔적을 드러내고 있더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고 한다. 단군의 이름으로 흩어진 종족들은 북 유럽의 신들, 그리스 신화의 신들, 남북 아메리카에 흩어져 살던 인디안의 문화유적과 언어에 고스란히 남아 있더라는 결과를 보면 우리는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바로 바이칼 알혼 섬에서.
17세기 러시아 장군이 정복한 땅 이르쿠츠크. 그 이전에는 우리의 조상들이 수렵과 목축으로 살아가며 인간의 삶을 영적으로 승화 시켰던 곳. 마지막 날 도시를 관광하며 다시 현실계로 돌아왔다. 문명의 총아체인 비행기를 타고 내 삶으로 돌아와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인생이란 다만 몸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혼이라는 도화지에 기록을 하는 여정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가지고서.......
* 위 글은 단황 김종업 박사님의 2017년 7월에 다녀온 러시아 바이칼 호수 명상여행기로 인터넷 언론 팩트올에 <그곳엔 정말 영혼이 살고 있을까?… 바이칼 호수, 불칸 바위 ‘명상 기행’>으로 편집되기 전 원고이다. 파일의 용량이 큰 관계로 사진은 제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