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인간과문학 신인추천 소설부문 당선작] 김은호
바늘털이
국도변 한쪽에 차를 세우고 멀리 흐르는 기화강을 바라봤다. 흔들리는 물결 위로 햇살이 잔잔하게 튀어오르고 있었다. 떼를 지어 이동하는 물고기들의 은빛 비늘 같았다. 바람이 강을 건너 불어오는가. 내려다보이는 갈대숲이 일제히 금빛으로 일렁거렸다. 차에서 내려 도로가의 펜스를 훌쩍 뛰어넘었다. 두 손으로 갈대를 헤치며 강변을 향해 걸었다. 서걱 서걱 서걱. 메마른 갈대들의 함성이 부서졌다. 자갈밭에 선 채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밀려나는 잔 물결에 물비린내가 연하게 묻어 있었다.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겨울을 견디지 못할 녀석들은 갈대가 금빛으로 변하기 전, 이미 멀리 떠났을 것이다. 오랫동안 전해내려오는 조상들의 습성으로 이곳에서 모진 시간을 견뎌내야 할 녀석들도 지금쯤은 모두 깊은 강바닥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그것은 이 강에 안겨 살아가는 물고기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랜 낚시 경험으로 나만이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이맘때 쯤 이곳에 오면 아직도 남아 춤추는 녀석들이 몇은 있다는 것을. 모두가 떠난 차가운 강속에서 홀로 춤출 수 있는 녀석이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딱 한 녀석만이라도 만나 볼 수 있다면, 단 몇 분만이라도 겨뤄볼 수 있다면, 이토록 들끓고 있는 마음을 조금은 식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젠 내 안에서 그녀를 순순히, 어쩌면 완전히 놓아 줄 수 있을것도 같았다.
점심 식사 후,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음성메시지 알람이 울려 핸드폰을 열었다. 그녀의 이름이 떠 있었다. 어쩐지 불안한 느낌에 빠르게 버튼을 눌러나갔다. 삐, 소리가 나고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연희. 여기는 인천공항이야. 한 시간 후에 떠날 미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어.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길게 숨을 내 쉬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마웠어. 모든 것이 다 말라버린 내 속에 따뜻하게 채워준 것을 결코 잊지는 않을께. 이해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이곳에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어. 많이 그리울 거야. 온 몸의 힘이 스르르 빠져 나가면서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시내의 음식점에서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실 수 있는 근처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를 위해 달콤한 과일향 피어나는 시라즈 와인을 주문했다. 주문한 와인이 나오자 나는 바이올렛 빛이 도는 고운 그것을 그녀의 잔에 따르며 말했다.
“다음 주말에 기화강 어때요?”
“기화강?”
“네. 한번쯤은 더 가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 맞아. 한 번쯤은 더 가보고 싶기도 했는데…….”
그러나 그녀는 뭔가 망설이는 듯 말끝을 흐렸다. 기화강은 그녀의 아버지가 민물고기를 잡아 그녀를 키웠다던 정선의 강이었다. 생계를 위해 낚시하는 아버지를 따라 다니던 어린 시절의 그녀,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다시는 가보지 못했다는 그 얘기를 나는 오래 전 그녀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언젠가 그녀와 함께 꼭 그 강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서 너무 빨리 떠나버렸으므로 우리에겐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생활에 제법 여유도 생기게 되면서 나는 강낚시를 하게 됐다. 전국의 강이란 강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돌아다녔다. 강을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는 나도 잘 모를 일이었다.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것이 그냥 좋았다. 송어낚시를 전문으로 하게 되면서부터는 송어가 많이 사는 강원도 중부내륙의 강들을 찾아 다녔다. 가끔은 정선의 기화강에도 갔다. 그곳에 갈 때면 항상 그녀가 생각났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다 잊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강에 홀로 들어가 견지대를 흔들며 챔질을 하고 있으면, 그녀와 이곳에 함께 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가요. 그곳에서 함께 송어낚시를 해 보고 싶어요.”
나는 조르듯 말했다.
“며칠만 더 있으면 12월인데, 시기상으로 너무 늦은 거 아닐까. 은호?”
그녀는 말끝에 내 이름을 붙이며 물었다. 어쩐지 미국식 느낌이 나면서 순식간에 그녀가 내게서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송어는 냉수성 어종이라 12월 중순까지는 괜찮아요.”
갑자기 그녀를 꼭 데리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솟아올랐다. 이상한 조바심이 함께 몰려왔다.
“사실, 낚시를 가서 고기를 잡고 못 잡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낚시란 고기를 만나게 될 때까지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나는 되도록 조심스럽게 말했다.
“준비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 만나서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
무언가 미진한 것 같아서 언젠가 강변에서 만난 은빛 머리의 노조사가 들려 준 말을 덧붙였다.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이라…….”
내내 듣기만 하던 그녀는 내 말을 가만히 되뇌었다. 뭔가 불안한 느낌에 나는 그녀의 옆얼굴을 흘깃 훔쳐봤다. 오렌지 빛과 핑크빛 조명등 불빛이 보랏빛 와인이 반쯤 담긴 크리스탈 와인잔을 투과하며 그녀의 얼굴 위로 연한 무지갯빛을 그려내고 있었다. 무지개빛을 머금은 그녀의 하얀 얼굴과 내가 어렴풋 알고있는 그녀의 삶의 궤적이 언뜻 무지개 송어의 그것과 닮은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개 송어는 일반 송어와 모양은 비슷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은은한 은빛에 연한 무지개빛을 머금고 있어서 일반 송어보다는 더 아름다웠다. 자라면 자랄수록 빛은 선명해졌고 산란기에 이르면 그 화려함이 절정에 달했다. 대부분 종류의 송어들은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가 자랐고 다시 강으로 돌아와 죽었다. 하지만 무지개송어는 다른 송어들처럼 바다로 나가지 못했다. 자신들이 태어난 강에서만 살았다. 오래전, 미국 태평양 면역의 강과 바다에서 살던 무지개 송어들이 양식을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대량 수입되었다. 녀석들은 중부내륙의 강 일부를 막아서 만든 가두리 양식장에 갇혀 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들이 더 이상 바다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되자 녀석들은 몸속에 필요치 않는 기능들을 하나 하나 지워버렸다. 현재의 생존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녀석들에게도 다른 세상으로 나갈 기회는 주어졌다. 어느 해 여름, 몇 십 년 만의 큰 홍수가 나면서 가두리 양식장 한 귀퉁이가 터지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많은 녀석들이 그 길을 통해 양식장과 면한 강과 계곡으로 탈출했다. 그때부터 녀석들은 거친 야생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스스로 산란하고 부화하는 자연의 능력을 회복하면서 점점 번식해 갔다. 그리고 한국의 야생무지개 송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무지개 송어들은 지구상의 모든 송어들이 가지고 있다는, 바다를 찾아가는 능력을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송어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말했다. 녀석들의 몸 속에 새겨진 바다를 찾아가는 길의 회로가 완전히 지워졌기 때문이라고. 그들이 너무 오랫동안 자신들이 가야 할 그 길을 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참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서 있던 나는 갈대밭을 거슬러 올라 차를 세워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트렁크를 열어 평소 넣어 가지고 다니던 낚시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강심으로 직접 들어가야만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를 어떤 녀석에게 어설픈 손짓이라도 해봐야 지금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방 속에 있던 두터운 보온용 스타킹을 꺼내 신고 가슴 위까지 올라오는 겨울용 고어텍스 바지장화를 입었다. 탄력 좋은 텐트 폴대로 만든 견지대 두 개를 등 뒤에 꽂고 자박거리는 자갈길을 걸어 다시 강변으로 나왔다. 유속이 완만하여 여울이 형성되는 한 지점을 포인트로 잡았다. 그 위쪽으로 설 자리를 찾아 미끄러운 돌멩이들을 두 발로 더듬으며 앞으로 나갔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나가다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곳에 멈춰 섰다. 한 곳으로 흐르던 물줄기가 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갈라졌다. 물줄기는 곧 다시 맞물려 하나가 됐다. 밖에서 보던 것보다는 훨씬 유속이 빨랐다. 낮아진 수온 때문인지 허리께로 유난히 수압이 강하게 느껴졌다. 물살이 함께 춤을 추자는 듯 리듬을 타며 온 몸으로 밀려들었다. 하체에 무게 중심을 잡고 온 힘을 다하여 버티지 않으면 자칫 물살에 밀릴 것 같았다. 수장대를 강심 깊숙이 박고 그 옆에 섰다. 등에 꽂은 견지대를 하나 빼어 바늘 끝에 미끼를 뀄다. 목에 건 미끼통에서 깻묵가루를 꺼내 흐르는 물에 천천히 흘렸다. 물 흐름에 맞춰 챔질을 시작하자 헝클어졌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수장대 하나를 의지 삼아 넓은 강 속에 홀로 선 나는 아득한 강 끝을 바라봤다. 오후 들어 강심 곳곳에 다시 피어오르는 물안개들을 초겨울의 여린 햇살이 안간힘을 쓰며 밀어내고 있었다.
오래 전이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대학을 포기한 나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다. 사정 얘기를 들은 먼 친척 아저씨가 자동차 기술 배우면 밥은 먹고 산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소가 있는 강릉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기술을 배우며 2년을 지냈다. 정비소 바로 옆에 오래된 삼층 건물이 있었다. 일층은 정비소 사무실로 쓰고 있었지만 이층은 워낙 낡은 건물이라 세입자가 인근의 새 건물로 빠져나가 텅텅 비어있었다. 삼층 꼭대기에 있는 미술교습소는 몇 개월이나 영업을 하지 않는 상태였지만 시설은 그대로 두고 있었다. 원장이 건강문제로 교습활동은 중단했지만 작업실로 쓸 생각에 세를 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오랫동안 사람이 드나들지 않던 그곳에 한 여자가 들어 왔다. 원장의 미대 후배라는 그 여자는 그곳을 임시 거처 겸, 작업실로 쓴다고 했다.
그녀는 오후만 되면 정비소 마당으로 내려왔다. 해바라기 꽃이 핀 화단 돌 바위 위에 앉아 기름때 묻은 작업복차림의 내가 일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올라가곤 했다. 하루는 그녀가 내게 자동차 수리하는 모습을 스케치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부끄럽기는 했지만 안 된다고 할 일도, 못하겠다고 할 일도 아니었다. 타이어 교체하는 장면, 정비기계에 차를 올리고 밑에 들어가 분해 작업하는 장면, 엔진오일 교체하는 장면, 도색용 페인트 분사하는 장면. 기름때에 절은 작업복의 내 모습은 그녀의 스케치북에 날마다 채워졌다. 그녀는 언제나 붉은 체크무늬 남방과 물 빠진 청바지만을 입고 있었다. 소매 자락을 몇 번이나 접어 올려 팔이 항상 노출돼 있었는데 살결이 유난히도 희다고 나는 생각했다. 초가을 햇살이 정비소 마당 가득히 떨어질 때, 돌 바위 위에 올라앉아 스케치에 몰두하는 그녀의 모습은 햇살보다 더 빛나 보였다. 나는 일을 하면서 간간히 그녀를 훔쳐봤고 가끔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말없이 서로에게 씩 웃어주는 게 고작이었다. 어느 저녁이었다. 스케치를 마친 그녀가 내게 말했다.
“3층의 작업실로 올라가 차를 한잔 하지 않겠어요?”
2년이나 일했지만 3층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내게 작업대 앞 의자에 앉으라고 하더니 한쪽 구석에 가려놓은 비닐커튼을 옆으로 밀쳤다. 조그만 싱크대 세트가 나왔다. 찻잔을 두 개 꺼내 쟁반에 올려놓고 커피포트에 물을 따르던 그녀가 갑자기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차 말고 술로 한 잔 하실래요?”
그것이 시작이었다. 술이 조금 들어가자 나는 용기가 생겼다.
“화가인가요?”
여자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더니 씩 웃었다.
“아, 항상 그림을 그리고 계시니 화가인줄 알고.”
내가 너무 조심스럽게 말해서일까?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의 얘기를 잠깐 들려줬다. 미대 2학년까지 다녔는데 더 이상 다닐 여건이 못 되어 지금은 휴학중이라고 했다.
“3년 전, 아버지가 지병 끝에 돌아가셨어요. 혼자 남게 됐지요.”
“다른 가족들은 없나요?”
“혼자예요. 이 세상에 혼자. 말하자면 고아지요.”
그녀는 작업대 한쪽 귀퉁이에 놓여있던 담뱃갑을 집더니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더듬더니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후. 깊게 빨아들인 숨을 내뱉었다. 그녀의 하얀 얼굴이 흩어지는 연기 속에 어른거렸다.
“사실은 미국에 엄마가 계신데, 저에게는 뭐, 죽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녀가 여섯 살 때, 그녀의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린 그녀를 데리고 당신의 고향인 정선으로 돌아왔다. 기화강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강변 인근의 매운탕 집에 그것들을 대주는 일을 하며 그녀를 키웠다. 아버지는 그녀의 엄마가 그녀와 연락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중학교에 입학하자 돌연 마음을 바꿔 엄마에게 가서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원하는 화가의 꿈도 키울 수 있고 좋은 기회가 많을텐데 미래를 위해서는 이곳보다 그곳이 낫지 않겠느냐고. 자신은 이곳에서 그녀의 꿈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그렇게 아버지의 설득으로 그녀는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가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중에야 알게됐다. 이미 그때 아버지의 몸에서는 고치지 못할 병이 퍼져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면 한국에는 언제 들어왔어요?”
“고등학교 2학년. 4년 만에 다시 돌아왔지요.”
“왜요? 고2면 한참 중요한 시기였을 텐데.”
그녀는 옛 생각으로 돌아간 듯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는 작업대 위에 놓여있는 라이터를 집어 재빠르게 불을 켠 다음 담배 끝에 붙여줬다.
“내가 그곳에서 살던 4년 동안 엄마에게는 세 번이나 남자가 바뀌었어요. 그리고 세 번 째 남자랑 살던 어느 날,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 내게 일어났죠.”
말을 끊고 잠시 나를 쳐다봤다.
“아니, 그 얘기는 그만해요. 그날 이후로 내겐 엄마란 존재는 없는 것으로.”
그녀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 이쯤에서 친구해도 될 것 같은데. 몇 살이죠? 나는 스물 셋.”
그녀는 내 나이를 물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스물 하나요.”
“그럼 군대는 아직 안 갔다 왔겠네.”
피우던 담배를 접시에 비벼 끄더니 갑자기 말을 내렸다.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고 앞에 놓인 술잔만 들이켰다. 그녀도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술을 마셨다. 병에 남아있던 마지막 술을 따라 입에 털어 넣은 그녀가 맞은 편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리 길지 않은 작업대를 돌아 내가 앉아있는 곳으로 왔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그녀는 작업대 위에 한쪽 엉덩이를 걸치고 서서 내게 상체를 구부리더더니 고양이 같은 눈으로 내 눈을 들여다봤다.
“오늘밤 나와 함께 있지 않을래? 사실은 내 몸에 배터리가 다 떨어져 버렸거든. 당장 무언가로 채워넣지 않으면 난 죽을지도 몰라. 어쩌면 곧.”
아무도 없는 한여름의 숲속, 나뭇가지에 쳐 놓은 거미줄에 걸려버린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하얀 두 손이 내 머리를 살며시 잡았다. 가느다란 열 개의 손가락이 아직도 머신오일로 끈적이는것 같은 내 머리칼 속을 부드럽게 헤집고 들어왔다. 어느새 내 입술에 와 닿은 그녀의 입술이 태양빛에 달아오른 조약돌처럼 뜨거웠다. 거미가 계속 자아내고 있는 하얀 줄에 칭칭 감긴 나비가 된 것 같았다. 파닥이면 파닥일수록 줄은 점점 더 출렁거렸다. 현기증이 나 눈을 감았다. 나도 몰래 그녀를 꽉 부둥켜 안았다. 그리고 알수 없는 힘으로 그녀를 작업대 위에 힘껏 쓰러뜨리고 말았다.
좁은 강릉바닥에 소문은 금방 퍼졌다. 내가 일하는 정비소와 그녀가 사는 교습소가 같은 건물에 있다는 것이 알려지며 두 사람이 동거한다는 소문이 났다. 화가 지망생과 연하의 자동차 정비공의 사랑. 그녀의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녀가 학교를 그만 둔 뒤 우울증을 앓다가 살짝 미쳐버렸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어쩌면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즈음 나는 일주일에 여섯 번은 그녀를 찾아 도둑고양이처럼 3층으로 올라갔다. 둘을 제외한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 없는 시간이었다. 오직 둘 만이 살아서 꿈틀대는 생명체였다.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그곳 3층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러나 그리 길게 가지는 못했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이제는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리고 그녀는 그곳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첫눈이 흩날리던 오후였다. 오전 일을 마친 나는 단골 기사식당으로 점심 먹으러 가고 있었다. 식당 마당으로 막 들어서고 있는데 얼마 전 다른 정비소로 옮겨갔던 친구가 식당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함께 일할 때 서로의 속사정을 훤히 꿰고 지내던 친구였다. 그는 내게 다가오더니 그녀가 결혼 하는 것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러게 왜 애초부터 되지도 않을 사람하고 시작을 했어?”
그는 힐난하듯 말했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미술교습소 원장과 누나, 동생 하며 지내던 그 친구는 여자의 신랑 될 사람이 서울사람이어서 결혼식을 서울에서 올릴 것이라는 것과 그 날짜가 12월 23일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녀의 결혼식 날은 그 해 들어 두 번째로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커다란 눈송이가 쏟아지더니 거센 바람과 함께 앞이 안보이게 눈이 퍼부어 댔다. 이 결혼식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전날 밤 내내 고민 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한 번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은 결국 나를 서울 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게 했다. 강남 터미널 4번 출구 쪽에 위치한다는 예식장을 찾아 들어섰다.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그렇게 마음을 다독거렸건만 가슴이 두근대고 초조해져 견딜 수 없었다. 어느 구석진 곳에서 담배라도 한 대 피워야만 마음이 진정 될 듯싶었다. 건물 안을 이리저리 헤매던 나는 비상계단 팻말을 보고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담배 한 대 피우는 것이라면 그곳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미는 순간, 그곳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던 한 남자와 나는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는 아이보리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턱시도를 입고 셔츠와 같은 색깔의 넥타이를 매고 있어 이곳 예식장에서 열리는 결혼식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야윈 몸이었지만 큰 키에 깨끗한 피부, 귀티 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뭔가에 쫓기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담배를 막 빨아들이던 순간이었는데, 그의 입술 끝에서 빨갛게 타들어가던 작은 불빛은 마치 궤도를 이탈한 떠돌이별 같았다. 그 느낌이 너무 섬뜩해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버렸다. 갑자기 멈추어선 나를 보고 그는 당황하더니 이내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내가 자신의 결혼식 하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보지 말아야 할 비밀을 엿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얼른 그에게 고개를 숙여 미안함의 표시를 하고 몸을 돌려 그곳을 빠져 나왔다. 신부 대기실을 찾아서 걸어 들어갈 때, 문 밖으로 젊은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열려진 문으로 보이는 그녀는 잔잔한 진주들이 가득 달린 아이보리빛 웨딩드레스를 입고 친구들에게 둘러 싸여 웃고 있었다. 더 이상 그 방으로 발을 들일 수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당황스러웠다. 누구에게 그 모습을 들킬까 급히 발걸음을 돌려 예식장을 빠져나왔다. 그것이 내가 본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녀의 소식을 처음으로 들은 것은 군대를 제대하고 유명 자동차 회사에 기술 정규직으로 입사하여 회사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서울근교의 공장으로 발령이 나서 어머니가 사시는 서울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연말에 수도권에 살고 있는 강릉의 옛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게 됐는데 그때 그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한 잔, 두 잔 들어가던 술이 세 병, 네 병으로 늘어나고, 기분 좋게 취한 상태가 되었을 즈음에 그녀의 결혼 소식을 전해줬던 녀석이 그녀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가 결혼한 지 이 년 만에 사별했다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야?”
“결혼하고 미국으로 갔는데 이 년 만에 남편이 암으로 죽었대. 신랑 집에서 둘 다 미국 유학을 시켜준다는 조건이 있어 덜컥 결혼한 것 같던데 그렇게 되어버렸지 뭐야. 나도 얼마 전에야 강릉의 원장누나에게 얘기 들었어.”
눈보라가 퍼붓던 그녀의 결혼식 날, 비상계단에서 초조하게 담배를 피우던 그 남자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녀의 불행은 결혼식 날 이미 예고됐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도 몇 년에 걸쳐 나는 간간이 그녀의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사별 후 대학에서 다시 그림 공부를 한다는 것, 졸업하고 만난 미국인 사업가와 재혼했으나 얼마 못살고 이혼했다는 것, 지금은 뉴욕의 한 화랑을 인수하여 그 계통에서는 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 등이었다. 가장 최근에 들은 것은 안타깝게도 몹시 가슴 아픈 소식이었다. 근래 미국에 불어 닥친 불황의 여파를 이기지 못해 힘들어 하다가 사업을 모두 정리했는데 지인들과도 연락을 끊어버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항상 한국을 그리워했다고 했으니 어쩌면 아무도 몰래 이곳에 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말했다.
왼손으로 깻묵가루와 미끼를 살살 흘리며 오른손으로는 연속적으로 챔질을 했다. 잠시 후, 30센티가 조금 넘는 누치가 견지대에 달려 올라왔다. 누치들은 일반적으로 수온이 조금만 떨어져도 강바닥에 바싹 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번씩 숨을 내 쉴 때마다 뿌연 입김이 확확 나오는 이 날씨에 아직도 돌아다니는 녀석이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녀석아. 너를 만나려고 이 추운 날, 이곳까지 달려온 것이 아니란다. 멀리, 멀리 가라.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나는 누치의 주둥이를 열어 바늘을 떼어 내고 강심 멀리 던져버렸다. 지속적으로 내려 보내는 미끼 탓인지, 노련한 챔질 탓인지, 전방 20미터 너머로 흘려보내던 바늘 끝에 무언가 묵직한 걸림이 느껴졌다. 앞에서 낚았던 누치와는 확실히 다른, 무거우면서도 날렵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하면서도 긴가. 민가 머뭇거리는데 그 순간, 탄력 좋은 텐트폴 견지대가 사정없이 타타타타 소리를 내며 튀었다. 등줄기에서부터 목 뒤로, 머리끝으로 뭔가 찌르르 뻗쳐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송어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느낌이 분명히 송어였다. 가지런하게 감아 놓은 낚싯줄이 사정없이 풀리면서 튕겨 나오는 소리와, 그 줄을 끌고 내달리는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50 센티는 족히 넘어갈 대물이었다. 그간의 모든 번민을 한 순간에 잊고 주체 못하게 뻗쳐오르는 흥분, 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의 전화를 받은 것은 결혼식장에서 마지막으로 본지 17년도 더 지난 올해 봄이었다. 오랫동안 단 한 번의 통화도 한 적 없었지만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들었다. 그녀는 내가 서울로 올라와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도 누군가를 통해 내 근황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옛날보다는 살이 조금 쪘고 여유 있고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친구로부터 들었던 소식을 바탕으로 그려본다면, 많이 힘들고 지친 모습이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추운 겨울에 대비해 몸 곳곳에 지방을 저장하는 물고기처럼 기름지고 윤택한 모습이었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대뜸 내게 결혼은 했느냐고 물었다.
“그럼요. 내 나이가 지금 몇인데요.”
“세월이 이렇게 가 버린 것을 잊고 있었네. 아이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둘 다 중학생들이예요.”
“행복하겠네.”
“그냥 그럭저럭 사는 거지요 뭐.”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아이가 없어.”
“왜요?”
“글쎄, 하나님께서 내게는 안 주시네.”
그녀의 얼굴에 잠시 쓸쓸함이 어렸다. 언제 들어왔냐고 물었더니 이제 한달 남짓 되었다고, 언제 들어가느냐 하니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어쩌면 안 돌아갈 수도 있고.”
그녀는 대답 끝에 남의 일인 양 무심한 어투로 덧붙였다. 웃음이 났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녀만의 화법이었다.
“왜 웃어?”
“아니요.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나는 웃음을 거두며 말했다.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은 마음에 교외로 나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선뜻 그러자고 했다. 어디든지 데려다 줄 테니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말해 보라고 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강가라도 가보고 싶은데 너무 늦은 것은 아니냐고 했다. 순간적인 느낌에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보내던 기화강을 그리워 하는 것 같았다. 그리 먼 곳은 아니었다. 예전보다는 도로가 좋아져서 세 시간 정도면 충분히 그곳에 닿을 수 있었다. 그곳을 목적지로 정하고 주차장에서 차를 빼 왔다. 옆 좌석에 그녀를 태우고 네비게이션을 찍은 다음 서울을 빠져나왔다. 주중 오후라 그런지 영동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120킬로의 속도를 유지하며 달렸다. 2시간 30분 정도 달리자 굽이굽이 흐르는 푸른 강줄기가 차창 밖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정선을 감고 도는 조양강이었다. 그 강을 끼고 뻗어있는 국도를 계속해서 달려 올라갔다. 그렇게 20분 정도 더 달리자 드디어 기화강 줄기가 나타났다. 강 건너 서편 하늘에 선홍색 석양이 뉘엿뉘엿 잠기고 있었다. 강을 끼고 펼쳐진 강변 자갈밭으로 들어섰다.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전진했다. 구르는 바퀴 아래로 잘그락거리는 자갈소리가 계속 따라왔다. 잔물결들이 밀려나는 강변 바로 앞에 차를 멈추고 엔진을 껐다.
“아, 진짜 이곳에 왔네. 그리웠는데…….”
그녀가 밀려오는 어둠으로 어슴푸레해 지는 기화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그녀와 이곳에 오는 꿈을 꾸었던가. 내 가슴은 17년 전, 그때의 청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마구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녀석이 가고 싶은 곳까지 달려가도록 빨리빨리 줄을 풀어 내렸다. 얼마나 내려 달렸을까? 70미터쯤 감아 놓은 줄이 거의 50미터쯤 풀렸을 때야 녀석이 잠시 멈췄다. 이때다. 더 이상 틈을 주면 안 된다. 다시 급하게 줄을 감으며 견지 대를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팽팽한 탄력을 유지한 채 설장을 마구 돌리자 아까 풀린 줄이 사정없이 감겨왔다. 그러나 20미터쯤 줄이 남았을 때, 녀석이 다시 한 번 크게 힘을 쓰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네 녀석이 그렇게 쉽게 끌려 올 녀석이 아닌 것 쯤 은 내가 안다. 기다리마. 나는 줄 감는 것을 잠시 멈췄다. 그 자리에 멈춘 채 온 힘을 쓰며 버티던 녀석은 작정한 듯 물속을 사정없이 휘돌아 쳤다. 아무래도 녀석을 달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자를 조금 늦추고 줄을 당기던 힘을 살짝 풀어봤다. 가만히 기다리니 녀석이 잠시 조용해졌다. 이때다 싶어 다시 줄을 살살 감아 붙였다. 그러나 녀석은 딱 아까만큼 와서는 또 버텼다. 애간장이 다 타는 것 같았다. 아무리 탄력 좋은 텐트폴대라 하지만 녀석의 버티는 힘에는 못 견디겠는지 거의 45도 각도로 구부러져 있었다. 부러질지, 뜯어질지, 어느 순간에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견지 대를 중간까지 움켜잡았다. 위험한 각도는 펴졌지만 그 때문에 줄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팽팽해졌다. 바늘 묶은 건 괜찮을까? 줄은 끝까지 버텨줄까? 불안한 마음속에서도 잡아야 한다는 집념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 뿐, 곧바로 피융피융 하면서 또 줄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30미터 쯤 풀리자 녀석이 힘을 빼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래, 아까보다 힘이 떨어졌을 테니 당연하지. 그럼 이제 내 차례다. 우리 다시 한 번 해 보자꾸나. 나는 다시 줄을 감아 붙이며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었으면 싶다고 생각했다.
한참동안 말없이 강을 응시하던 그녀가 고개를 돌리더니 내게로 살며시 몸을 기대왔다. 마치 감전된 것처럼 나는 꼼짝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이른 봄 강변에 가득 피어나는 개망초 꽃향기가 피어났다. 내가 경직된 몸을 그대로 세우고 꼿꼿하게 앉아 있자 그녀가 자신의 오른손을 들더니 내 왼편 가슴에 대고 지그시 눌렀다. 그녀의 손바닥 온기가 따뜻하게 전해왔다.
“이 가슴도 참 그리웠는데.”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양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꼭 감쌌다. 내 두 손 안에는 다 차지 않는 작은 얼굴이었다. 그녀의 두 팔이 내 목을 끌어안으며 온 몸을 붙여왔다. 홀로 강심에 서 있을 때 거침없이 내게로 밀려들던 물살 같았다. 뭉클한 그녀의 가슴이 방망이질 치는 내 심장을 부드럽게 감쌌다. 나도 몰래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야 말았다. 뜨거운 혀가 순식간에 내 입술을 열고 들어왔다. 한 손을 등 뒤로 돌려 쉬폰 원피스 지퍼를 끌러 내렸다. 어깨부분이 스르르 흘러내리다 붕긋하게 솟아오른 가슴에서 멈추었다. 날렵한 어깨와 풍성한 가슴이 옅은 어둠속에서 흐릿하게 빛났다. 그녀의 좌석 아래 손을 넣어 밸브를 눌렀다. 등받이가 점점 젖혀지며 그녀의 몸도 함께 젖혀졌다. 의자 밑으로 흘러내린 원피스 자락을 들어 올리자 미끈한 허벅지가 드러났다. 물살에 흔들리며 내려가는 낚시줄처럼 내 손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흘러 들어갔다. 강 깊은 곳을 흐르는 물소리가 아득했다. 줄이 손인지, 손이 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한 순간, 내 손끝엔 촉촉하고 뜨거운 것이 와 닿았고 그와함께 그녀의 몸이 거칠게 뒤틀리며 요동쳤다. 막 채어 올린 물고기의 파닥거림이 그대로 손끝으로 전해왔다. 습기 때문인지, 바람 때문인지, 물소리 때문인지 몰랐다. 그녀의 몸에서 민물고기의 비늘냄새 같은 아릿한 내음이 났다. 끊임없이 흐르는 물소리를 헤치고 어디선가 물새 한 마리 푸드득, 날아 오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순순히 끌려오는 것을 보니 녀석도 이제 많이 지친 듯했다. 이제 10미터, 바로 눈앞이었다. 바로 그때, 녀석의 윤곽이 튀어 오르는 물보라 사이에서 살짝 드러났다. 몸길이는 55센티가 족히 되는 듯, 머리 부분과 양 옆구리가 무지갯빛이 선명하게 배어있는 은색이었다. 무지개 송어다. 무지개 송어! 숨이 턱 막히며 온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녀석은 그토록 기다리던 무지개 송어였다. 마른 입술을 꼭 깨물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견지대에 줬다. 바로 그 순간, 녀석은 날아가듯 수면 위로 몸을 솟구쳐 올렸다. 그리고 연속 2회전 공중 돌기를 하고 떨어지다가 수면 바로 위에서 몸통을 비틀어 세우고 다시 한 번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헉! 그 말로만 듣던 대물 무지개송어의 바늘털이였다. 그것을 한 무지개 송어는 그 어느 바다로도 다 나갈 수 있다는 바로 그 바늘털이. 물보라가 파바박, 일어나며 햇빛을 반사하자 일순간 일곱 빛깔 무지개가 찬연히 떠올랐다. 그러나 신기루를 본 듯, 꿈을 꾼 듯, 이내 자취도 없이 스러져 버렸다. 그와 함께 녀석은 곧 바로 물속으로 치고 들어갔고 있는 힘을 다해 유지했던 줄의 팽팽함은 한 순간에 탁 끊어져 버렸다. 아, 그리고는 그만이었다. 녀석은 모든 것을 바쳤던 내 마음을 뒤로하고 물결을 뒤흔들며 강물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망연한 눈으로 바라보는 푸른 물결 위에는 초겨울의 여린 햇살만 안타깝게 흔들리고 있었다. (200X80)
*주
바늘털이: 대물 송어의 속성으로 낚싯줄에 끌려와서 마지막에 하늘로 날아올라 공중돌기를 하면서 온 힘을 다하여 바늘을 떼어내고 도망가는 것.
견지낚시: 한국전통낚시. 조그마한 얼레에 줄을 감아 그 줄을 풀어내려 고기를 잡는 것. 얼레의 탄성을 이용해 가느다란 줄로 큰 고기를 잡을 수 있다.
챔질: 견지낚시를 할 때 줄을 풀어 내렸다 올렸다 하며 고기를 유인하는 동작
수장대: 물속에 낚시질을 할 때, 살림망도 걸어놓고 몸도 의지를 하는 쇠 지팡이.
설장: 얼레의 빗살 면
첫댓글 김은호작가님(윈드) 인간과문학 신인추천 소설 당선 축하드립니다.
'바늘털이'라는 소설 제목이 예사롭지 않네요...
이 작품은 제가 오래 전 실제로 송어낚시를 할 때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습작 초기에 쓴 것입니다.
소재는 신선하고 좋았으나 실력이 일천하여 무지개송어를 제대로 형상화 시키지 못한 채 노트붘 속에 잠재우다가 시간이 점점 흐르고 작품 쓰는 실력도 조금씩 늘어가자 다시 꺼내서 매만진 것입니다.
서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야 이 맛난 소재를 조금 회 뜰 줄 아는 아는 칼잡이가 되었다고나 할까요?ㅎㅎ
잘 읽었습니다. '바늘털이'라는 용어도 소설을 통해서 처음 알았네요.
글 속의 대물 무지개 송어처럼 앞으로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시길요.
고맙습니다.
울랄라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따라가고 시포요~ㅎㅎ
김은호 작가님 (윈드 님) 소설 잘 읽었습니다.
긴장감도 있고 그녀와 무지개 송어에 빗댄 이야기가 참 좋으네요.
사랑도 있고 낚시도 있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송어와 잡힐 듯 말듯한 여자..튕겨나간 그녀ㅋ
특히 대화 속에 '은호' 이름이 들어가니 약간 남성적 이름 같아 더 좋네요.
끝까지 다 읽었어요 재미있게..
긴 글 열심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서로가 좋은 문우, 서로에게 영원한 애독자가 됩시다요~.
네. 김은호 작가님.
좋은 글 써 주셔서 고마워요. 모처럼 좋은 소설 읽어서 마음이 흡족합니다.
서로에게 좋은 문우, 영원한 애독자 되어요. ^^
이 긴장감과 속도감, 숨 한번 돌렸는데 어느새 소설이 끝났네요.
과거 회상이 많으면 소설이 느슨해지는데 윈드님 당선작은 전개 방식이 수준급입니다.
주인공 캐릭터도 매력적이고요. 문장도 거침이 없이 유려하시고요. 시적 감각이 돋보이는 치밀하면서도 섬세한 문장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늘털이를 보고 갑자기 편혜영 작가의 이슬털기가 생각나서 찾아서 읽어보는 보너스까지 득템했습니다.
김은호 작가님, 무지개 송어처럼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비상하시길 바랍니다.
일전에 마당쇠님 행간읽기에서 댓글로
한때 소설을 기웃거리기도 했던 제게 성은 극복해야 할 문제였고
선을 넘지 못한 글들이 대부분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는데
조금은 저의 영역을 넓혀 주셨어요.
울타리를 다시 가다듬어야겠습니다.
추신
질문 있습니다. 낚시를 잘 하시나요? 생동감 있는 묘사에 놀랐습니다.
정성스럽게 써 주신 댓글에 답이 너무 늦었습니다. 어디 좀 다녀 오느라고요. ^^*
어찌어찌 등단은 하였으나 제가 아직은 모든 면에서 서투르고 다다르지 못했습니다.
특히 구성이 허약하여 계속 신경 쓰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목련님께서 전개방식이 수준급이라 말씀해 주시니 소 뒷걸음치다가 개구리 잡은 게 아닌가? 하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칭찬을 받으면 자신감 뿜뿜, 의기양양 해 지는 스타일과 어떻게든 그 칭찬에 부응하고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스타일이 있는데 저는 아마도 후자인 듯 싶습니다. 이거 클났다. 하는 마음에 앞으로는 밤잠도 제대로 못자고 글을 써야 할 듯 싶습니다. ㅋㅋㅋㅋ
일전에 마당쇠님 행간읽기에서 댓글로 주고 받은 이야기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사실 그 부분은 너무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미친척 하고 그 부분을 넘어가 보았습니다. 무척이나 낯이 뜨거웠으나 철판 깔고 썼습니다. 그 확인을 위해 마당쇠님께 그 부분을 메일로 보내 피드백을 부탁드렸는데 낚시를 하는 부분에 비해 성적묘사 부분이 너무 평면적이다는 평가가 돌아왔습니다. 정말 자신이 없어졌고, 고민 고민 하다 다른 쪽으로 다시 표현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치고 빠진다고나 할까요? 슬쩍 던져 두고 독자들에게 상상을 유도하는 방법을 써 봤습니다. 작품을 완성하고 보니 그것도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목련님께도 처음에는 이런 방법을 권유해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쓰다보면 그 부분에 고수가 될 날도 오겠죠?
추신
저는 낚시를 꽤 오래 하였습니다. 동호회 활동도 오래 했고 전국의 강들도 많이 찾아 다녔습니다. 신인추천에 작품을 세 편 보냈는데 견지낚시에 대한 작품이 그동안 없어서 그런지 이 작품이 뽑혔네요. 제 조그만 욕심이라면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처럼 이 작품이 영상으로 표현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6.13 15:1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6.14 00:18
목련님 댓글을 읽고서 침묵하기란 어려웠습니다.
세 번을 읽었습니다.
처음 읽을 땐 제게 보낸 작품이랑 다른 줄 알았습니다.
슬쩍 얘기해 드린 게 이렇게 변모할 줄은 미처 몰랐던 거죠.
묘사가 곤란한 지점에서 은근슬쩍 눙치고 지나치는 술책?은 과히 수준급입니다.
단편소설이라면 세세한 묘사보다는 은근하게 감추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닌가 싶은 걸요.
제가 오히려 한 수 배웁니다.
문하생들에게 텍스트 삼아 가르치기엔 꼭 맞는 작품이라 여깁니다.
널리 홍보할 생각입니다.
김은호 선생님의 앞날이 창창하기를 빕니다.
한 없이 고맙고, 거듭 축하드립니다~~
세 번이나 읽으셨다니 황송스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때 마당쇠님이 주신 피드백이 성적묘사가 평면적이라고 한 것 외에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것은 낚시할 때의 역동성만큼 성적묘사는 거기에 못미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작품을 씀에 있어 씨줄 날줄이 균형을 이루어야 작품의 전체적 구성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또 다른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사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론적으로 이것을 알고 있으나 실제 작품을 쓸 때는 간과하기가 쉽지요.
초보들이란 대게 작품을 써 내려가는 데만 급급하기 마련이어서 자기 작품은 밖에서 보기가 힘드니까요.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바늘털이 이미지가 선명한 아주 인상 깊은 소설이네요.
막 채어올린 물고기의 파닥거림 같은 사랑이 고통스러운 바늘털이를 하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에 가슴이 아려옵니다.
매력 넘치는 소설입니다.
축하드려요...
니체님. 고맙습니다. 이야기 사이 사이 삽화들은 제 주변의 실제의 이야기가 많이 포함되었습니다.
바늘털이 소설
원드 372 김은호 작가님
고운 글 몇 번 읽어 보고 옥고 문장
글 실력에
그 얼마나 글을 사랑하고
긴 밤 지새워 쓰시며 눈물을 삼키셨나?
앞으로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고운 글로 독자 펜을 사로잡고 유명 소설가 되세요.
김상문 선생님. 덕담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20대 시절 소설 소재를 찾아, 가던 길을 잠시 벗어났다가 인생의 전환점에 서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시를 쓰고 있습니다.
김은호 작가님의 독자로서 다음 작품을 기다리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콘라트 로렌츠님. 반갑습니다. 가끔 덧글에서 뵌 느낌으로는 소설을 쓰시는 분 같았는데 시를 쓰시게 되셨군요.
독자라고 말씀해 주시니 너무 황송합니다. 축하인사 감사드리고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목련님의 댓글이 아주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좋으네요.^^
마당쇠님의 댓글 정리도 물론 좋구요.
조금 전에 자유게시판에 윈드 님의 당선작 <바늘털이> 심사평을 올렸습니다.
당선소감도 함께요. 참고삼아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긴장감있게 집중하며 읽은 소설!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작품 같아 좋습니다.
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읽어주시니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축하 축하 드립니다
샛별님~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