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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청춘(靑春)……
1
사라라랑……!
남해 바다 그 풋풋한 살결 위로 바람이 불고 있다.
바다는 바람[風]으로부터 생명(生命)을 얻는다.
미풍(微風)에 생명을 얻어 잉태하고, 폭풍(暴風)으로 생명을 토해내는 바다이기 때문이다.
미풍으로 살랑대다가 폭풍으로 휘몰아쳐 세상을 새롭게 뒤바꿔 버리는 대해(大海)에서는 대륙의 권위와 질서는 거부되고, 오로지 바람[風]의 율법, 바다[海]의 율법만이 있을 뿐이다.
그곳에는 대륙을 뒤엎을 대폭풍(大暴風)의 거력(巨力)을 지닌 하나의 세력(勢力)과 바람 같은 한 사나이의 전설이 출렁이고 있다.
―대해제일세(大海第一勢) 해왕맹(海王盟).
―대해무적풍(大海無敵風) 무적해룡(無敵海龍).
해왕맹.
동해와 남해 사백여 개 섬들의 종주(宗主)로 휘하 무사 이십만(二十萬)을 거느린 그들의 권역(權域)은 장장 오만리(五萬里)였다.
그 누구도 해왕맹을 침범하지 않는다.
한 번 일어나면 대지(大地)를 뒤흔드는 대폭풍의 힘을 그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전통적으로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중원으로서는 엄청난 홍복(洪福)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대륙의 세력들이 항시 그들을 주시하는 것은 감히 경시할 수 없는 그들의 가공할 힘 때문이다.
무적해룡.
그는 대해제일인(大海第一人)이다.
잔인 흉폭함으로 바다와 대륙을 공포로 물들였던 마(魔)의 세력 남해혈련(南海血聯)을 홀로 괴멸시킨 절대자.
한 마리의 대창룡(大蒼龍)이 모습을 드러내고 바다를 어지럽히는 자들은 무적해룡의 대창룡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
한 줄기 바람처럼 그의 행적은 묘연했으나 바다 사람들은 안다.
무적해룡이 언제나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지켜 준다는 사실을.
십 년 전부터 그래 왔기에……
2
콰르르릉…… 콰르릉……!
천지를 멸할 굉음들이 바다를 떨어 울리고 있었다.
굉음의 소재지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소용돌이들이었다.
반경(半徑) 일장(一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용돌이에서부터 그 반경이 무려 수백 장이 넘는 거대한 소용돌이들도 허다했다.
황금해(黃金海).
그렇게 불리는 곳이다.
망망대해(茫茫大海)에 기다란 뱀 모양으로 늘어선 와선해류군(渦旋海流群). 그것은 장장 팔십해리(八十海里)에 이르고 있었다.
황금해라는 이름과 달리 이곳은 남해에서 유명한 죽음의 이대 해역(二大海域) 중 하나였다.
수천 수백의 소용돌이가 휘돌고 있어 태고적부터 사람의 발길을 거부해 왔다.
휘류류륭……!
수많은 소용돌이 중에서 돌연 무언가 하나의 물체가 솟구쳐 올랐다.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온 물체는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이내 바닷물로 처박혔다.
무수한 소용돌이 사이에는 촘촘하기는 하지만 무수한 틈이 있어 폭풍의 눈처럼 그곳의 바다만은 조용했다.
그 조용한 곳에는 집채만한 암초들이 또한 무수히 많았는데 그 중 하나로 소용돌이에서 솟구친 물체가 떨어져 내리며 부딪친 것이다.
쾅!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으며, 집채같았던 크기의 암초가 산산조각나 버렸다.
암초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암초를 부숴 버린 물체도 물 속으로 깊이 가라앉았다.
부숴진 암초 근처.
온통 검은 색 뿐인 삼장(三丈)크기의 작은 소선(小船)이 소용돌이 틈 사이로 일렁이는 파도의 흐름에 따라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윤기 도는 오광(烏光)을 은은히 발산하는 배는 앞부분이 들려 있고, 뒷부분이 물에 잠긴 형상으로 기이한 형태의 모습이었다.
뽀그륵! 뽀그르륵!
돌연 소선 옆 바닷물 위로 기포가 떠올랐다.
이어 시퍼런 바닷물 속에서 수면 위로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빠른 속도로 커지기 시작한 흑영(黑影)은 이내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푸화악!
물줄기가 치솟아 오르며 검은 그림자는 반 장 높이로 솟아올랐다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흑영, 그것은 사람이었다.
이십여 세 정도의 청년으로, 멋대로 흘러넘친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뚜렷한 이목구비와 굵은 얼굴 선이 호방함을 주는 시원스런 얼굴이었다.
허리까지 치렁하게 내려오는 흑색 머리카락과 햇살에 그을린 하얀 피부는 구릿빛으로 빛났다.
투명하리 만치 하얀 백옥(白玉)에 연한 청자(靑瓷) 빛이 어우러졌다고 해야 할까? 실로 신비하고 은은한 광채를 뿌리고 있다.
용해린.
그는 바로 용해린이었다.
십여 년이 지난 그는 아주 건장한 청년으로 자랐으며, 여전히 어딘지 모를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헉헉……!"
털썩!
그는 팔을 뻗어 뱃전에 얹었다.
혼신의 체력을 다 소모한 사람처럼 그의 팔놀림은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다. 남은 한 팔마저 걸고 나자 그는 힘겹게 배 위에 몸을 걸쳤다.
배가 한쪽으로 기울 듯 할 때 그는 던지듯 배 위에 몸을 실었다.
"후우……!"
숨을 몰아쉬며 이내 용해린은 큰대자로 뻗어 버렸다.
찡그린 아미가 몹시도 힘들어 보였다.
"오늘도 허탕이군. 내공이 탈진돼서 또 소용돌이에 휘말려 퉁겨져 버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용해린이다.
소용돌이 속에서 튀어나와 암초를 부숴 버린 물체는 바로 용해린의 몸뚱이였다. 놀라운 내공이 아닐 수 없었다.
거친 황금해의 암초들은 쇠의 단단함을 능가하는데 그런 암초를 단지 부딪쳐 부숴 버림은 용해린의 신체가 이미 금강불괴(金剛不壞)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우…… 벌써 이 년째 황금해를 이 잡듯 뒤져 보았지만 선조(先祖)님의 유물은 나타날 생각도 하지 않으니……."
용해린은 어찌해 죽음의 바다라 불리는 이 거친 황금해에 있는 것일까?
제 삼십대 천패문주 용해린. 이미 그의 무공은 석년 자신 아버지의 무공 성취에 다다라 있었다. 그런 그가 이 년에 걸쳐 찾는 것이라면 보통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문득 용해린의 시선이 자신의 우수(右手)로 향했다. 그의 오른손에는 철(鐵)로 만든 노(櫓)가 쥐어져 있었다.
보통의 노보다 훨씬 가늘고 곧은 철노는 면(面)에 한 마리 용(龍)이 새겨져 있어 신비감을 주었다.
그 형태는 십팔반병기 중 하나인 극(戟)을 닮았으나, 날[刃]이 전혀 없고 뭉툭한 데다 바닷물에 절어 녹이 슬었는지 곳곳이 붉은 기운까지 보이고 있어 노라고 해야 함이 옳을 것이다.
철노를 바라보던 그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맺혔다.
깨끗하고 싱그러운 미소이나 어딘지 모를 쓸쓸함과 우수(憂愁)가 배어 있는 미소였다.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철노가 그의 눈에 아릿하게 들어왔다.
"창룡노(蒼龍櫓)만은 언제나 함께군."
창룡노라 불리는 철노를 바라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가슴 저리는 단어(單語) 하나!
"아버지……!"
태산같이 무거워 보이는 용해린의 눈꺼풀이 가늘게 경련했다.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란 존재는 너무도 희미했다.
그가 열살 때 아버지는 그의 곁을 떠났고, 그 이전의 기억이라고는 혹독하게 무공수련(武功修鍊)을 시키는 모습뿐이었다.
매일 계속되는 혹독한 수련.
피투성이의 몸에 채 피가 마르기 전 다시 수련이 시작되었고, 열 살의 어린 날은 그것만을 모두 채워 버리고 훌쩍 지나 버렸다.
어린 새끼를 훈련시키는 대호(大虎)!
아버지는 그것을 수련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단지 살아남기 위한 생존력(生存力)을 키우는 것이라고 했을 뿐!
그는 그런 혹독한 수련을 끝내자마자 말없이 떠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대호가 다 자란 새끼를 인정하고 멀리 떠나보내듯 열 살이 된 그를 아버지가 인정하고 떠났다고 생각했기에…….
창룡노를 바라보는 용해린의 눈빛이 아련하게 젖어 들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벌써 구년(九年)하고도 반(半)이 더 지났다. 당연히 아버지와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런 그의 손에서 자나깨나 창룡노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버지와의 끈을 이어 주고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두 눈이 빛을 발했다.
"앞으로 반년(半年)! 아버지와의 십년지약(十年之約)이 반 년 남았다. 그 안에 아버지가 주신 과제들을 풀어야만 한다. 천패문의 영원한 숙제를……."
제 삼십대 천패문주인 용해린.
그는 아버지와의 약속과 천패문의 영원한 숙제를 풀기 위해 이 년 전부터 이곳 황금해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 거친 황금해에는 천패문주 된 자가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 이 년이라는 시간 동안 황금해를 헤맸지만 그는 아직 그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
황금해는 너무 넓었으며 또한 죽음의 해역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험했다. 그가 아니면 죽음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황금해를 들어간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이제 아버지와의 십년지약은 반년이 남았을 뿐이었다.
용해린이 조금은 우울한 표정으로 하늘의 태양을 주시했다.
하나 뿐인 하늘.
바다 건너 저 중원의 하늘 아래 그가 그리는 아버지가 머물고 있었다. 그리움이 물밀 듯이 그의 한쪽 가슴을 쓸어왔다.
우우웅……!
돌연 그의 우수에서 낮은 소리가 울려왔다. 그것은 창룡노에서 울리는 것이었다.
"미안하구나. 네가 있는데 또 괜히 울적해서 말이야."
용해린이 창룡노를 쓰다듬으며 달랬다.
창룡노,
이놈은 영성(靈性)을 지니고 있어 주인의 감정에 반응했다.
비록 말석(末席)이나마 이 창룡노는 고금십병에 드는 신병(神兵)이었으며 마치 살아 있는 영물과도 같았다.
살기(殺氣)에 반응하고 주인의 감정에 따라 울음을 토한다.
창룡노를 쓰다듬던 그의 눈꺼풀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종일 황금해를 뒤지느라 피곤함이 밀려왔다.
창룡노를 쥔 그의 손에 한 차례 힘이 들어갔다.
"창룡노…… 오늘도 날 지켜 주겠지……."
우우웅……!
알았다는 듯 창룡노는 낮게 울었다.
언제나처럼 창룡노는 무방비 상태의 용해린을 지켜 주는 훌륭한 수호신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용해린은 발로 배를 한 번 굴렀다. 그러자 배는 한 곳으로 움직여 갔다. 황금해의 소용돌이 사이를 가로지르는 해류(海流)에 배를 맡긴 것이다.
해류를 따라가면 황금해 외곽으로 빠져나간다.
이내 용해린은 서서히 잠에 빠져들어 갔다.
아가들의 요람(搖籃)같이 흔들리는 배의 출렁임과 창룡노가 주는 안락함이 그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그의 어깨에 실린 피곤과 가문의 숙제가 무겁게 그의 눈꺼풀을 찍어 눌렀다.
어느 새 그는 나락 같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3
뇌주반도(雷州半島)에서 가장 큰 포구인 창랑포구(滄浪浦口).
십여 척의 거선(巨船)들이 물살을 가르며 포구를 떠나고 있었다.
중앙 돛대에 나부끼는 창랑기(滄浪旗)는 대해 제일의 무역 단체인 창랑상회(滄浪商會)에 속한 배임을 알게 해 준다.
맨 앞 거선의 갑판 위에 두 명의 일노일소(一老一少)가 서 있었다.
육십 줄의 노인(老人)과 이제 열여덟 가량 된 아름다운 소녀(少女)였다.
가슴까지 이어지는 허연 수염이 멋들어진 홍안(紅顔)의 노인.
그의 전신에서는 심신을 맑게 만드는 청량한 약향(藥香)이 진하게 풍겨지며 주위를 감싸는 듯했다.
창해약선 담대우였다.
십 년이 지났는데도 그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선 소녀는 그의 손녀 담황아였다.
십 년의 세월이 지난 그녀는 실로 아름다운 숙녀로 변해 있었다.
마늘쪽을 얹은 듯 오똑 솟은 귀여운 코, 꽃잎을 베문 듯 빨갛고 작은 입은 지금 반쯤 열려 박 속 같은 치아를 드러냈다.
특히 설묘(雪猫)의 눈을 닮은 듯한 크고 맑은 두 눈에는 순수함과 야성(野性)의 미(美)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한 이삼 년 만 더 지난다면 그 미명(美名)이 천하를 울릴 것이다.
헌데 담황아의 모습은 아주 요상했다.
그녀는 전신이 착 달라붙는 까만 옷을 걸치고 있었다. 옷이 얇은지 그녀의 굴곡이 시원하게 드러나 있었다.
완숙해져 가는 아담한 유방 위에 자그마한 유실이 도드라져 있고, 풍만함이 느껴지는 둔부 위로 숱 많고 탐스러운 흑발이 치렁하게 흘러내려 있었다.
문득 그녀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풍덩―!
곧이어 그녀는 물을 박차고 인어처럼 솟아오르며 담대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할아버지! 나 먼저 린(麟)가가에게 갈래."
"녀석도, 뭐가 그리 급하누?"
"호홋……! 난 빨리 린가가를 보고 싶은 걸."
그녀는 내리쬐는 햇살만큼이나 화려하게 웃었다.
"잠보 린가가는 분명히 자고 있을 거야. 할아버지, 황아가 먼저 가서 린가가를 깨워 놓을게."
미소를 짓던 그녀는 이내 바다를 헤치고 나아갔다.
그녀는 순식간에 배와 십여 장의 거리로 멀어졌다.
그녀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던 담대우는 문득 얼굴 색을 굳히며 선원들에게 소리쳤다.
"서둘러라! 반각(半刻) 안에 용공자에게 가야 한다."
"예이!"
"어서 어서 노들을 저어라!"
선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하며 거대한 노들을 젓기 시작했다.
세 개의 커다란 돛에 걸린 바람이 배를 밀고, 거기에 우람한 근육질의 선원들이 노를 젓자 대궐 같은 거선들이 물찬 제비처럼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정면을 바라보는 담대우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바다의 난폭자들인 마룡방(魔龍幇)이 창랑선단을 공격하려 한다. 그 배에는 절대 죽어서는 안될 인물들이 타고 있다.'
담대우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다지문성(多智文聖)도 그렇지만 소소선화(素笑仙花) 소저는 더욱더 죽으면 안 된다. 그녀는 다음 대(代) 천패문주를 낳는데 꼭 필요한 절대신체(絶代神體)를 지닌 여인이다. 음, 용공자만이 죽음의 황금해를 가로 질러가 그들을 구할 수 있다.'
담대우가 탄 거선은 빠르게 포구를 벗어나고 있었다.
* * *
섬들이 수포(水泡)처럼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마라군도(瑪羅群島).
수십 개의 섬들이 모여 팔(八) 자 모양을 이룬 이 군도는 대해 한 복판에 자리해 있었다.
대해제일의 세력 해왕맹(海王盟)의 이대거점(二大據點)의 하나다.
마라군도의 주도(主島)인 마라도 앞 바다.
지금 그곳에는 무수한 선박들이 정박하고 있었는데, 무장을 한 무사들이 가득했다.
해왕맹의 표기(標旗)인 은빛 용(龍)이 웅비하는 형상이 새겨진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며 웅자를 드러내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배들의 중앙,
거대한 선박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길이가 오십장(五十丈)이 넘었고, 넓이 또한 이십장(二十丈)을 넘는 엄청난 거선(巨船)이었다.
해왕대선(海王大船).
해왕맹에서도 몇 개 되지 않는 거선이었다.
"으라차!"
"아라차차차!"
해왕대선의 갑판 위.
웃통을 벗은 다섯 명의 장한들이 팔뚝만한 굵기의 쇠닻줄을 부여잡고 용을 쓰고 있었다.
쇠고리로 된 쇠닻줄을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용쓰는 소리만 드높을 뿐 닻은 망부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실없이 땀만 쏟고 애꿎은 돛대만 걷어찼다.
"대웅(大熊), 이 자식 때문에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허리 다 망가지겠네."
원래 닻을 올리는 담당은 따로 정해져 있었다.
대웅이라는 이름의 천생역사(天生力士)가 담당이었으나 그는 지금 없었다.
이로써 세 번째 시도를 마친 장한들은 이제 닻이 귀신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일어섰다.
"야! 이러다간 이박 삼일이다. 다시 한 번 해보자."
이제 짜증이 날 지경인 그들은 나오느니 투정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젯밤 한 번만 하는 건데. 제길!"
그들 중 한 명이 거칠게 침을 뱉으며 쇠닻줄을 잡았다.
"젠장! 이래 뵈도 바닷물만 십여 년 먹은 나다. 이런 건 일도 아니야!"
투지를 불태우며 그들은 다시 팔뚝만한 쇠줄을 잡았다.
그러나 닻은 그들을 비웃듯 밑에서 까딱거리기만 할뿐이었다.
그때였다.
철썩! 찰싹!
엉덩이에 물매 치는 소리와 함께 장한들의 입에서 거친 소리들이 튀어나왔다.
"아얏! 웬 놈이야!"
"어떤 잡것이 감히 어르신네의 엉덩이를……."
불시에 엉덩이를 얻어맞은 장한들이 뒤를 돌아보다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들 중 한 명이 나타난 한 명의 인물을 확인하며 신음 같은 소리를 흘렸다.
"소… 소맹주(小盟主)님……!"
나타난 인물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쇠로 만든 깃대에 일 장이나 되는 깃발이 펄럭이는, 적어도 수백 근은 나가는 무거운 깃발들을 등에 진 여인이다.
바닷바람에 시달린 듯 거칠어진 삼베로 된 바지에 소매 없는 가죽 상의 때문에 도발적으로 솟아오른 앞가슴이 햇살을 받아 눈부셨다.
소매 밖으로 나와 있는 구릿빛 팔뚝은 가늘었지만 강인해 보였다.
구릿빛 피부였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킬 수는 없었다. 오히려 생기 넘치는 모습에서 더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소금기에 절은 영웅건으로 질끈 묶여진 뒷머리는 표표히 바람에 흩날려 해초보다 부드러워
보였다.
닳고닳은 바닷사람의 강인함과 돌 속에 박힌 보석의 분위기를 함께 지닌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런데 고작 갓 스물이 되었을 싶은 이 여인에게 소맹주라며 굽신대는 것이다.
대해천봉(大海天鳳) 해옥랑(海玉浪).
이것이 그녀의 신분이었다.
해왕맹주 해왕천사(海王天師)의 외동딸로 대해제일의 꽃이었다.
대해제일세력 해왕맹의 소맹주(小盟主)라는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해옥랑. 그녀의 털털한 성격은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어 수하들과 아무런 격의 없이 지내왔다.
그런 자연스런 유대감으로 인해 해옥랑은 바다 사나이들의 절대적인 충성과 신임을 받았다.
또한 그녀의 지도력은 다음 대 해왕맹주로서 손색이 없었다.
혀를 차던 해옥랑이 등에 멘 두 개의 깃발들을 바닥에 꽂아 놓고는 장한들을 밀쳤다.
"비켜 봐!"
그녀의 말에 장한들은 일제히 쇠닻줄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그런 그들을 조금은 한심한 눈길로 쳐다보던 그녀는 혀를 찼다.
"사내들이 돼 가지고 그깟 닻 하나 못 올려서 낑낑대다니…… 쯧쯧, 마누라한테 소박맞기 딱이야!"
혀를 차는 그녀의 입가에는 싱그러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녀는 이내 쇠줄을 한 손에 움켜잡았다.
"으싸!"
그녀가 쇠닻줄을 잡고 힘을 주자 아름답지만 근육이 불룩한 팔근육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기기기깅…….
쇠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쇠로 된 닻이 마치 비명을 지르듯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와……!"
장한들은 입을 떡 벌린 채 멍하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내 닻을 올린 해옥랑은 쇠로 만든 기둥에 닻줄을 묶었다. 그녀는 장한들을 돌아보고는 물었다.
"대웅이 녀석은 어딜 가고 그대들이 닻을 올리고 있지?"
장한들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저……."
장한들이 말한 대웅의 사정은 그랬다.
대웅은 한 여인을 사랑했으나 덩치에 맞지 않는 쑥맥이었던지라 말은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옥랑은 대웅이를 찾아 나섰다.
해옥랑은 장한들이 말한 곳으로 왔다. 과연 암초들이 솟아 있는 바닷가에 그가 있었다.
산만한 덩치가 암초 위에 쪼그리고 앉아 술병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내 해옥랑은 그에게 다가갔다.
퍽!
"어이쿠!"
대웅은 순간 눈 앞에 불똥이 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해옥랑이 그에게 가자마자 냅다 뒤통수를 후려친 것이었다.
그녀가 대뜸 물었다.
"뭐야?"
영문을 알 수 없는 대웅은 되물었다.
"네……?"
"뭣 때문에 제 할 일도 내팽개치고 이러고 있는 거냐고?"
대웅은 순간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게…… 저…… 웁!"
대웅은 순간 두 눈을 부릅뜨며 뒤이어 척추를 타고 오르는 고통에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해옥랑이 느닷없이 그의 사추리를 움켜쥔 것이었다.
그녀는 사추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떼―!"
하복부에서 끝없이 솟아나는 고통에 대웅은 그녀의 손을 부여잡으며 애원했다.
"소… 소맹주님, 죽겠어요. 그, 그만…… 억!"
대웅은 죽을상을 지으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그런 대웅을 보며 해옥랑은 한 번 더 힘을 주고는 손을 풀었다.
이어 그녀는 아미를 모으며 말했다.
하나 그런 그녀의 모습은 제삼자가 본다면 지극히 아름답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그런 아름다운 여인이 남자의 사추리를 잡고 있는 모습은 실로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산만한 녀석이 지 팔뚝만한 여자도 휘어잡지 못해 쫌스럽게 질질 짜고 있냐?"
그녀의 행동은 거리낌이 없었다. 대웅이란 청년은 그녀가 어릴 때 해왕연무관(海王鍊武關)이란 곳에서 무공을 같이 익힌 자라 남녀 간의 벽이 없었다.
대웅은 그런 그녀 앞에 고양이 앞의 쥐 꼴로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해옥랑이 말했다.
"여자는 이렇게 잡는 거야!"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녀는 한 손으로 느닷없이 대웅의 목덜미를 휘어잡아 자신의 얼굴 쪽으로 잡아당겼다.
"어……!"
그리고 거칠게 입을 맞췄다.
실로 벼락같이 일어난 일이었다.
대웅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아주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해옥랑이 그의 엉덩이를 불같이 후려친 것이었다.
"배웠으면 빨리 가서 휘어 잡어!"
그러자 대웅은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부리나케 달려갔다.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호탕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녀석! 덩치 값을 해야지! 덩치 값을!“
4
콰르르릉……!
저 멀리 거칠게 휘몰아치는 황금해의 소용돌이들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황금해의 외곽.
황금해가 바라보이는 이 외곽의 물살은 아주 조용했다.
용해린의 작은 배가 잔잔한 파도에 출렁이고 있었다.
샤라라랑……!
검은 배 뒷전에 누운 용해린의 검은 머리카락이 바닷물에 잠겨 흐늘거리고 있었다.
잠꾸러기처럼 마냥 낮잠을 자고 있는 그였다.
따가운 햇살만이 그의 얼굴에 내려앉을 뿐 사위는 조용했다.
그때였다.
촤아아아……!
돌연 배 옆에서 물보라가 일어나며 무언가 하나의 물체가 물속에서 떠올랐다.
"푸우우……!"
긴 숨을 내쉬며 머리를 흔드는 소녀, 한 마리 인어(人魚)련가?
물기 젖은 삼단 같은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그 끝에 매달린 물방울들이 보석이 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물방울들은 햇빛을 받아 더욱 영롱하게 반짝이며 빛을 발했다.
머리카락 사이로 아름다운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담황아였다.
창랑포구에서부터 바닷길을 내달려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녀의 얼굴 위로도 보석 같은 물방울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뱃전에 기댄 그녀의 얼굴은 생생하게 살아나 있어 마치 전설에 나오는 인어(人魚)를 연상케 했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 담황아, 그녀는 뱃전에 누워 자고 있는 용해린을 주시했다.
용해린은 그녀의 등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뱃전에 턱을 괴고 용해린을 주시하는 담황아의 눈은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함이 가득했다.
용해린을 알고 지낸 지 십여 년.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숙해져 갈수록 그에 대한 생각이 부쩍 많아졌고,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끼는 그녀였다.
"역시 잠보 린가가야! 매일 그 지옥 같은 황금해 밑바닥을 뒤지고 다니니 잠독에 빠져 살지.“
한동안 용해린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녀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고정됐다.
용해린의 허리, 가볍게 두른 천을 뚫을 듯이 하나의 물건이 치솟아 있었다. 그의 상징이었다. 잠자고 있을 때 남자의 물건은 자주 발기(勃起)를 한다. 얄궂게도 담황아는 바로 그때 나타난 것이다.
바람 때문인지 그의 상징을 가린 천이 조금 위로 올라가 있는 상태라 천 끝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상징물에 걸려 있었다.
담황아는 호기심이 일었다. 과연 저 속에 있는 물건이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십여 년 전 우연히 한 번 보았던 물건이었다.
당당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물을 뿌려 대었던 용해린의 상징, 허나 그때는 취한 상태에서 보았던지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녀의 호기심을 채워 줄 그의 상징물 위에 작은 무명천이 덮여 있었다.
그녀의 순수하고 초롱한 눈빛에 개구쟁이 같은 웃음이 어렸다.
"후우……."
그녀가 입을 오므리며 살짝 입김을 불었다.
그러자 아슬하게 걸려 있던 천이 입김에 날려 뒤로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찰나의 순간이 담황아에게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마치 햇살이 떠오르듯 그렇게 용해린의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
두근!
용해린의 물건이 드러나자 담황아의 심장이 심하게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연한 붉은 빛을 띤 그의 상징은 길이가 한 뼘이 넘었고, 두께 또한 한 손으로 말아 쥐기가 힘들 정도로 굵었다. 어릴 때보다도 더 확연하고 당당한 모습이 그녀의 두 눈에 각인(刻印)됐다.
그녀의 두 볼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으며 온몸이 확확 달아올랐다.
사내의 상징물이 전해 주는 관능(官能)의 비밀이 바로 눈앞에 있음이었다.
그의 것은 살아 있었다.
그가 숨을 내쉴 때마다 그 끝 부분이 미묘하게 움직이며 담황아의 눈을 어지럽혔다.
'눈부셔……!'
그녀는 눈이 부심을 느끼며 눈을 가늘게 떴다.
햇살이 용해린의 상징 끝 부분에 내려앉아 산산이 부숴져 내렸기 때문이다.
용해린은 여전히 낮잠에 빠져 있었다.
그의 물건을 찬찬히 뜯어보듯 주시하던 담황아는 문득 그것을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의 분신인 상징물에 완전히 매료된 그녀에게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담황아의 행동은 즉시 이어졌다. 생각보다 손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자석에 끌리듯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상징물을 건드렸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콕!하고 그의 것을 건드렸다.
그녀의 손가락에 잠시 밀리던 그의 물건이 반발하듯 그녀의 손가락을 강하게 밀어냈다.
"아!"
그녀의 초롱한 두 눈이 크게 떠지며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새로운 발견에서 오는 감탄이었다.
손가락을 대본 결과 그녀는 이 알 수 없는 물건이 무척 단단하고 탄력이 넘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뜬 채 또 다시 손을 가져갔다.
담황아는 그의 물건을 쥐고 싶은 생각이 강렬하게 일었다.
손가락으로 톡톡 그의 물건을 건드리던 담황아가 손바닥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살짝 그것을 쥐었다.
"……!"
담황아의 손이 그의 상징을 쥔 순간 그녀의 전신이 묘한 전율에 휘감겼다.
손바닥을 타고 느껴지는 뜨거움과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맥박치는 고동(鼓動)이 그녀에게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호흡이 가빠지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에 가슴이 울렁거리고 심하게 두근거렸다.
담황아의 전신을 때리는 듯한 가슴 벅찬 감동.
묘하게도 용해린의 상징을 손에 쥠으로 해서 담황아는 마치 천하를 손에 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가슴 벅찬 감동에 그녀는 무의식 중에 손에 힘이 들어가며 그의 물건을 꽈악 쥐었다.
그때였다.
"으음, 뭐야……?"
잠에 빠져 있던 용해린이 깨어난 것이었다.
'이크 깼다…….'
담황아는 도둑질하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깜짝 놀라 그만 물속으로 몸을 숨기고 말았다.
'누구지?'
용해린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누군가의 기척이 있었는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공을 끌어올리지는 않았다. 낯선 이가 다가서면 그를 깨웠던 창룡노였으나 아무런 울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의아하게 생각할 때였다.
푸확!
돌연 물속에서 담황아가 솟구치더니 그대로 배 위에 올라섰다.
"황아……!"
용해린은 그녀를 확인하는 순간 반갑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는 아직 두 눈에 걸려 있던 잠이 싹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물에 젖어 담황아의 몸매가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몇 년 사이 그녀의 몸에는 지각변동이 있었다.
그저 어리다고 여기던 예전의 담황아가 아니었다.
봉곳하게 흔적만 이루었던 가슴은 한 손에 쥐어질까 의심이 들 정도로 풍염해졌고, 밋밋했던 허리는 아슬아슬할 정도로 안쪽을 향해 급하게 휘어져 들어가 있었다.
용해린의 가슴이 한순간 두근거렸다.
허나 그는 자신의 감정을 급히 추스르며 미소를 지었다.
"황아야, 오랜만이다!"
이렇게 말하던 용해린은 담황아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고정되어 있음을 느꼈다.
"으악!"
그녀의 시선 끝을 쫓던 용해린은 기겁하고 말았다.
그곳에는 자신의 물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용해린은 황급히 뒤돌아 서 얼른 바지를 주워 입었다.
그러나 그의 그것은 바지 속에서도 아주 당당했다.
담황아는 그런 그의 모습이 즐거운지 웃음을 지었다.
"호호, 뭘 그래, 이미 다 봐 버린 걸. 호호호호!"
담황아는 꺄르르 하며 싱그럽게 웃었다.
용해린은 멍한 표정으로 그런 담황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창해약선의 배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5
"뭣이라? 마룡방이 황금해를 장악했다고……!“
해옥랑이 눈을 번쩍였다.
해왕대선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수하들이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예, 벌써 많은 상선(商船)들이 마룡방 놈들에게 피해를 입었다 합니다."
"이놈들이……!"
해옥랑의 고운 아미(蛾眉)가 찡그려지더니 이내 분노가 어렸다.
그런 그녀의 전신에서는 일대종사(一代宗師)에게서 느껴지는 위엄이 흐르고 있었다. 이것이 그녀의 진면목이었다.
해왕대선에 탄 용사들은 그런 해옥랑에게 무한한 존경과 두려움을 보내며 시립하고 있었다.
마룡방.
온갖 악행을 저질러 온 그들은 동해 제일의 마도세력으로 해왕맹과 오랫동안 분쟁을 벌여 왔었다.
그러다 보름 전 해왕맹과 마룡방은 일대 접전을 벌였었다. 갈 때까지 간 그들의 악행을 보다못해 해왕맹이 그들을 징계한 것이다. 그때 마룡방은 총 전력의 반(半)이 무너졌고 쫓기듯 물러났었다.
한데 그런 마룡방이 황금해를 장악해 거길 오가는 많은 배들을 약탈하며 무수한 인명들을 살상하고 있다 한다.
황금해는 남해에서 최고로 중요한 무역로(貿易路)로 해왕맹의 외곽 경계에 걸친 곳이라 해왕맹으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룡방 놈들! 아예 씨를 말리리라."
그는 옆에 선 무사 하나를 돌아봤다.
"너는 즉시 전서구(傳書鳩)를 날려 맹의 아버님과 숙부께 이 일을 보고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명을 받은 무사는 즉시 배를 내려갔다.
이어 해옥랑이 해왕 무사들을 돌아보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황금의 바다로 출전이다!"
"존명!"
"북을 울려라!"
둥둥둥둥……!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마라도에 정박한 해왕선단들의 닻들이 끌어올려지고, 하얀 돛들이 일제히 하늘로 치솟았다.
이어 해왕대선을 필두로 오십여 척의 해왕선단이 출진했다.
목표는 황금해의 마룡방이었다.
* * *
"용공자! 급한 일이 있어 찾아왔네."
어느 새 용해린에게 다가온 담대우가 입을 열었다.
항상 온화한 미소를 짓던 담대우의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용해린은 창해약선 담대우에게 심각한 일이 발생했음을 짐작했다.
"무슨 일입니까?"
"동방으로 무역을 떠났던 선단이 내일이면 이곳에 도착하게 되어 있네."
용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방무역을 하고 돌아오는 창랑선단을 이끄는 자는 태인검(太刃劍) 장소(張燒)란 인물로 용해린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검에 대한 조예가 깊어 그를 꺽을 인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장소단주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담대우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네만…… 보름 전, 마룡방이 해왕맹에 패퇴해 본거지에서 쫓겨났네."
"마룡방!"
용해린의 눈빛이 번뜩였다. 마룡방은 그도 잘 아는 문파였다.
온갖 악행으로 바닷사람들의 지탄을 받아 온 방파였다. 그런 그들이 해왕맹에 패퇴했다는 것이다.
"해왕맹에 쫓기던 그들은 황금해 근방에 새로이 자리를 잡았다고 하네."
용해린의 미간이 좁아졌다.
"황금해―! 그곳은 창랑선단이나 다른 무역선들의 무역로가 아닙니까……?"
"바로 그게 문제이네. 장소단주의 창랑선단도 그 길로 해서 돌아오는데 그로서는 마룡방을 감당할 수 없지 않은가? 게다가 마침 그 배에는 금릉에서 돌아오는 자하장(紫霞莊)의 장주(莊主) 남매가 타고 있어 더욱 변을 당해서는 안 된다네."
"다지문성과 소소선화를 말씀하시는군요."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그도 그들 남매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다.
오라비는 천하제일의 현자(賢者)였고, 누이동생은 그 아름다움이 천하를 울린다는 천하오미(天下五美)의 일인이 아닌가?
장소가 강해도 마룡방이 공격한다면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무공을 모르는 두 사람을 보호하며 싸운다면 더욱 그렇다.
용해린은 사태가 심각함을 깨달았다.
"장단주의 창랑선단이 언제쯤 황금해를 지날 예정이랍니까?"
"예정대로라면 오늘 미시(未時) 경에 황금해 외곽에 접어들 것이네."
"미시라면…… 조금 급박하군요."
용해린은 나직하게 뇌까렸다.
'지금이 오시(午時)를 조금 넘은 시각이니, 황금의 바다를 뚫고 반 시진 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인데…… 빠듯하군.'
담대우도 용해린의 마음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지금 보고 받은지라 달리 자네에게 도움을 부탁할 수밖에 없었네. 자네만이 황금해를 가로질러 갈 수 있지 않은가."
그 누구도 험악한 황금해를 가로질러 갈 수 없다. 목숨이 백 개라도 그 가공할 소용돌이에 걸리면 남아나지 않는다.
오직 용해린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맡겨 주십시오."
용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 각이라도 지체할 수 없으니 지금 곧 출발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해린의 신형이 일어나 자신의 배에 두 다리를 잡고 섰다.
"황아야, 이따가 보자꾸나."
담황아에게 눈인사를 보낸 그는 곧 오른발로 쿵 하고 배의 바닥을 찼다.
츠르르르…….
노를 젓지도 않았는데 배가 곧장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배 아래의 바닷물이 저절로 움직여 배를 몰았다. 내공으로 물을 형상화해 배를 조종하는 고도의 공력(功力)이었다.
"신성한 바다를 어지럽히는 자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그는 한소리 웅후한 외침을 발했다.
"하앗―!"
츄아아…… 촤아아……!
엄청나게 빨라진 배가 뒷부분만이 물에 살짝 닿은 상태로 마치 비어(飛魚)가 물 위를 날 듯이 날아갔다.
노도 젓지 않고, 격공장력(隔空掌力)을 시전하지 않았는데 이리도 빨리 배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보고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용해린의 배는 그렇게 바다 너머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나자 담황아가 용해린이 사라진 곳을 주시했다.
아련한 빛이 두 눈망울에 가득했다.
"소소선화 양홍균언니는 천하오미에 드는 절세미인이라 했는데."
담황아는 묘한 불안감에 젖어 들었다.
용해린이 만나러 가는 여인이 아주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에, 혹여 용해린이 양홍균에게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허나 담황아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흥! 어림없어. 해린 가가는 내가 벌써 오래 전에 점찍었단 말야. 절대 양보 못해!"
콧김을 뿜으며 단단한 의지를 보이는 그녀. 그 모습에서 기득권에 대해 지키려는 의지가 단단히 보였다.
담대우는 그런 손녀의 행동에 웃음을 지었다.
'천하의 천패문주라면 손녀 사윗감으로 더없이 좋지. 정실(正室)자리는 몰라도 두 번째 정도는 되겠지.'
잠시 미소를 짓던 담대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내심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다지문성 양장주는 정파의 연합비밀세력 정천맹(正天盟)의 군사가 되기로 내정된 인물, 그가 죽으면 중원의 힘을 하나로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담대우는 불안해 했다.
'용공자가 제시간에 도착만 한다면 마룡방이라 해도 아무 일 없으련만……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담대우는 용해린이 사라진 바다 쪽으로 배를 몰아갔다.
'마룡방이 우연히 창랑선단을 건드렸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다지문성을 노린 것이라면……?'
그의 눈이 번쩍였다.
'아무래도 본 맹의 태상장로(太上長老)께 급히 보고를 올려야겠다. 여기에 어쩌면 혈마천의 입김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본맹……?
천하 이대신의로 불리는 창해약선 담대우가 어딘가 속해 있다는 말인데. 더구나 그의 입에서는 혈마천이 거론됐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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