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길’과 존재의 지향점 그 화해시학 --김태홍 시집 『그 길을 지나왔네』 김 송 배 (시인.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인생 길’에서 탐색하는 성찰의 방식 현대시의 이미지의 추출과 주제의 투영은 대체로 실생활(real life)의 체험에서 창출하는 것이 통상적인 시법(詩法)으로 탐색하게 되는데 이는 그 시인이 살아온 인생 체험이 어떤 정서와 사유(思惟)를 삶과 연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인생문제가 중점적으로 상상력의 대상이 되는 점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현대시들이 하나의 주제를 창조하기 위해서 다양한 이미지의 재생을 위한 노력은 바로 그 시인의 생애에서 어떤 정감(情感-sentiment emotion)이 불망(不忘)의 기억으로 남아 있느냐 하는 문제에서도 시적발상이나 상황 설정 그리고 시적 전개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면서 시적 의미성을 독자들에게 지적인 메시지로 전해주는 경향을 많이 볼 수 있게 한다. 김태홍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그 길을 지나왔네』의 원고를 일별하면서 먼저 이러한 ‘인생 길’과의 융합하는 시적 진실은 바로 우리의 생존방식에서 ‘길’의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그는 심도(深度) 있게 탐색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되는데 독시법 (讀詩法)의 초점을 맞추는 약간 편향된 필자의 소견이 반영된 것이다. 우선 김태홍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길을 걸었다 / 앞 사람을 따라서 / 옆 사람과 손을 잡고 / 나란히 또는 홀로 걸었다 / 평지를 지나 오르막길도 오르고 / 가라른 내리막길도 있었고 / 바람부는 날도 있었고 / 비 오는 날도 있었고 / 줄장미 넝쿨 진 오솔길도 지났고 / 커다란 호박이 곧 떨어질 듯 매달려 있는 / 시골 담장길도 지났고 / 빨갛게 익은 홍시가 눈길을 유혹하는 / 낮은 흙 담장의 초가집 앞마당도 지났다 / 코스모스 휘날리는 가을 길도 지났고 / 철새들 북쪽으로 날아가는 커다란 저수지 둑길도 지났다 / 이제 남은 길은 어디인지....... / 갈 곳이 안 보이는 길을 그래도 가야하겠지’라는 비장한 ‘그 길’에 대한 향방이 적시되어 잇다. 그에게서 지나온 ‘길’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오솔길’, ‘담장길’, ‘눈길’, ‘가을 길’, ‘저수지 둑길’ 등 다양한 길을 ‘나란히 또는 홀로 걸’어 왔다. 이러한 길이 던져주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이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획득한 다변적인 인생의 상황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남은 길은 어디인지....... / 갈 곳이 안 보이는 길을 그래도 가야하겠지’라는 어조로 예측이 불가능한 미지의 남은 길을 지금도 가야하는 숙명적인 인생의 길에 대한 지향점을 분사(噴射)하고 있다. 뒤돌아보면 아득한 길 꾸불꾸불 많이도 돌았네 이별의 눈물 참회의 눈물 환희의 눈물 다시 올 수 없는 길 가고 싶지 않은 길 그 길을 아들 손자 걸어가고 있네. --「인생 길」전문 이 작품에서 그가 단정하는 ‘인생 길’이 무엇인가를 구명(究明)하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존재(혹은 자아)에 대한 성찰이다. 그 ‘아득한 길’을 회상해 보니 ‘이별’과 ‘참회’와 ‘환희의 눈물’이라는 결론으로 인생길을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형인 그 길은 ‘다시 올 수 없는 길 / 가고 싶지 않은 길’이라는 어조로 미감(未勘)의 행로(行路)를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생행로는 생사고락(生死苦樂)이 동행하는 삶에서 ‘눈물’과 함께 영위하는 ‘인생 길’일 수밖에 없다. ‘그 길을 / 아들 손자 걸어가고 있네.’라거나 ‘아들 딸 재롱에 젊은 날은 / 후딱 지나가버리고 / 대학 입시 수능시험에 목숨을 걸고 중년을 다 바쳤다 / 그 아들 결혼시켜 손자 손녀 나오니 / 육십 한 살에 제자리로 회갑이로구나(「허허, 그 인생 한 번」중에서)’라는 경탄(敬歎)조의 어조가 바로 김태홍 시인의 인생론인지도 모른다. 인간세상 모든 것 다 보았다 또 다 들었다 서산 뒤 쉬면서 모두 잊어버리자 열나서 얼굴 닳아 오른다 찬물에 세수하고 산 넘어 이부자리 펴야겠다 꿈으로 몽땅 지워버리자 --「저녁노을」전문 여기에서도 김태홍 시인의 인생성찰의 방식이 현현되고 있다. 그는 살아오면서 ‘인간세상 모든 것’을 모두 보고 듣고 살아왔다. 그는 이런 잡다한 것들(우리 인간사)을 ‘모두 잊어버리자’거나 ‘꿈으로 몽땅 지워버리자’는 수용의 어조로 현실적인 갈등을 화해하려는 그의 시적 진실(혹은 현실적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그에게 다시 ‘지나간 자신의 시간들 앞에 죄송하고 부끄럽다 / 정의대로 행동하고 / 양심의 명령대로 살아가고 / 순리대로 왜 살아가지 못했던가 / 내년 새해가 오면 달라질까 / 긍정의 답을 찾기 힘든 자아가 서글퍼진다(「마지막 달」중에서)’거나 ‘이제는 저 멀리 희미하게 종착역이 보인다 / 우리도 웃으면서 이별을 연습해야지(「함께 걸어온 길」중에서)’라는 자아의 인식과 성찰이 동시에 발현하고 있어서 우리의 공감을 흡인(吸引)하고 있다. 2. 삶과 깊게 화해하는 시(詩)의 표정 김태홍 시인에게서 감명 깊게 읽을 수 있는 시적 테마는 ‘삶’이다. 결국 앞에서 언급한 ‘길’의 이미지가 바로 인생이며 진정한 삶이라고 한다면 그 삶의 애환에서 창출해낸 것이 바로 그의 심연(深淵)에서 용암으로 뜨겁게 분출한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삶이라는 생존의 거룩한 시간에서 칠정(七情-희노애락애오욕)의 수긍(首肯)이라는 덕목들은 이해하는 과정을 정리하고 있다. 쉴새 없이 들어오고 빠져나가고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 오늘도 역 대합실은 분주하다 어디서 살며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 아무리 봐도 똑같은 얼굴은 없다 똑같은 표정도 없다 똑같은 옷차림도 아니다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물음표를 던져보고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을 때 바로 우리 기차가 들어온다 잠깐의 만남이, 생각이 아쉬웠고 이별하는 그들에게 행복을 빌어본다 --「삶이 바쁜 사람들」전문 그렇다. 모든 사람들이 바쁘게 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김태홍 시인이 감응(感應)하는 시야에는 ‘어디서 살며 / 어떤 일을 하는지 /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라는 의문이 가득하다. 그리고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라고 다시 ‘물음표를 던져보’지만, ‘잠깐의 만남이, 생각이 아쉬웠고 / 이별하는 그들에게 / 행복을 빌어’보는 그의 ‘기차’를 타게 된다. 이러한 시적 상황 설정이나 전개는 삶이 하나의 인생 정거장으로써 언젠가는 ‘이별’이라는 섭리를 거역하지 못하는 생의 애환이 적절하게 발현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작품 「봄비」에서도 ‘떠나면서 잊지 말자고 다짐하고 / 다짐하면서 떠나야 하네 / 찬란한 내일의 만남을 기약하면서 / 오늘은 떠나야 하네’라는 처연한 어조로 떠남에 대한 소회(所懷)를 현현하고 있다. 특히 김태홍 시인의 시법 중에서 삶이나 인생문제에 대한 심각한 상념(想念)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대체로 살펴보면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조차 잊어버린 듯 / 삶이 그를 이토록 괴롭혔을까(「순종」중에서)’라는 자문(自問)에서부터 ‘촛불이 끄질 때 어김없이 일 년의 삶이 연기처럼 사라지고(「타인」중에서)’, ‘삶의 껍질이 한 겹씩 / 인생의 나이테 밖으로 밀려난다(「내 이름은 할머니」중에서)’는 소외의식이 팽배해 있음을 토로(吐露)하고 있다. 또한 그는 ‘그대가 떠난 후 기다렸던 눈물이 말라버렸습니다(「변하지 않습니다」중에서)’라거나 ‘이미 생을 일찍 마무리하고 / 밤하늘 저 별들 속에서 / / 잠들고 있는 친구들도 상당수 있고 / 즐겁고 순수했던 그때의 많은 추억이 / 새롭게 영화 필름처럼 지나간다(「행복한 기다림」중에서)’는 ‘기다림’이라는 기대의 여백을 궁극적인 인생관으로 정립시키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정서의 지향은 아마도 그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병원을 개업하여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그 환우(患友)들의 애환과 고통에서 추출해낸 이미지들이 자신의 시적인 발상과 상당한 연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추론(推論)이 성립되는 대목이다. 파노라마 같은 삶의 흔적이고 삶의 애환이요 삶의 눈물이다 뒤돌아보면 아득했던 삶 천 개의 마음 천 개의 얼굴 삶의 몸부림이고 영혼의 노래요 꿈들의 합창이다 짧은 만남이요 긴 이별이었고 기쁨이요 눈물이었다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 삶의 분신이다 --「시詩」전문 김태홍 시인에게서 다시 특이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이 ‘삶은 애환이요’ 그리고 ‘눈물이다’라는 어조가 분명하게 적시하듯이 ‘삶=시’라는 등식을 확고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인생 자체를 응축(凝縮)시키고 있어서 그의 ‘시’는 바로 그의 인생론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시 음미해보면 시는 ‘삶의 몸부림이고 / 영혼의 노래요 / 꿈들의 합창이다’ 그리고 ‘짧은 만남’, ‘긴 이별’, ‘기쁨이요 눈물’이라는 명징(明澄)한 자아의 인식과 동일한 인생철학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어서 우리들은 공감하면서 시적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 / 삶의 분신’으로까지 포괄하는 그의 시는 다양한 분신의 모습으로 현현되고 있는데 ‘인생. 팔십 고개를 눈앞에 두고 / 뒤돌아보니 // 지나온 자국마다 / 시[詩]가 고였다 // 늘그막에 좋은 친구 하나 얻으니 / 발걸음이 가볍다.(「팔부 능선」전문)’는 존재의 인식은 시와 더불어 살아가는 현실을 소중한 생활의 방식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백발이 무성한 어느 날 / 불현 듯 시가 찾아왔다--중략--시간은 구름 되어 흘러가고 / 텔로미어는 점점 짧아지는데 / 미완성 시는 더 길게만 보인다(「때늦은 기다림」중에서)’는 시와의 인연이 바로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전환하는 삶의 진면목을 이해하게 된다. 3. 사모곡과 그리움 그 이중주 김태홍 시인이 탐색하는 시적 테마는 그가 많은 정서를 투여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 시인들은 이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가 넘칠 정도롤 무궁무진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생명을 탄생시킨 근원이며 생존의 원천이어서 존재에 대한 인식은 바로 ‘어머니’에서 출발하는 신성하고 준엄(峻嚴)한 영역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김태홍 시인도 이처럼 모정(母情)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 등의 심리상태에서 아직까지도 완전히 일탈(逸脫)하지 못하고 있음을 그의 시적 상황이나 소재와 주제에서 그 형상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어머니! 그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저리고 눈물의 파도가 몰려옵니다 추억은 옛날이 되어 자꾸자꾸 그리움을 만듭니다 얼굴 한번 보고 싶습니다 손 한번 잡아 보고 싶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어제 같은 그날들이었습니다 손을 차마 놓고 쏜살같이 돌아서시던 어여쁜 어머니의 모습으로 마음은 틈이 없습니다 --「어머니」전문 김태홍 시인의 사모곡(思母曲)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도 이제 ‘부모의 금혼식이라고 각지에서 / 하나씩 둘씩 찾아든다’거나 ‘며느리 셋이 모이니 참새가 나무를 통차지한 것 같다(「남 아닌 남」중에서)’는 어조로 보아서 자신도 상당한 인생 연륜을 맞이했는데도 이처럼 ‘얼굴 한번 보고 싶습니다 / 손 한번 잡아 보고 싶습니다 /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전해드리고 싶습니다’라든가 ‘눈물의 파도가 몰려’오고 그에게는 ‘자꾸자꾸 그리움을 만’드는 불망의 모정이 기원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연을 띄워 엄마를 찾으려고 했던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연줄을 끊어준다」중에서)’ 또는 ‘어머니의 짧은 삶은 먼지처럼 사라지고(「토끼잠」중에서)’, ‘어느 날 엄마는 가버렸고 우리는 셋이 남았다’거나 ‘엄마는 잘 살고 있을까 비는 맞지 않을까 / 봄비가 더 세게 내렸으면 좋겠다(이상「봄비는 아스팔트 위로」중에서)‘ 등의 어조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어머니와의 별리(別離)가 그에게서는 한(恨)스러운 회억으로 남아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따금 알맞은 바람이 불어오는 새해 정월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나지막한 뒷동산에 올라 소년은 가오리연을 날린다 높이높이 더 높이 멀리멀리 더 멀리 엄마 있는 곳까지 날아가 다오 --「하늘이시여」중에서 그의 사모곡은 종결(終結)이 없다.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 ‘소년은 가오리연을 날’려서 ‘엄마 있는 곳까지 날아가’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기원은 ‘하얀 솜털 손에 잡고 곱게곱게 편질 써서 / 엄마 있는 곳으로 날려 보낼까’, ‘동산 위 쟁반 같은 보름달에 / 커다란 붓으로 엄마광고 그려볼까’ 그리고 ‘별 하나하나에 엄마 이름 새겨 놓고 / 한 줌 쓸어 담아 / 엄마 있는 하늘 위에 뿌려줄까’라는 간절한 심원(心願)이 내재되어 있다. 아쉬움이고 보고픔이고 그리움이다 결국 사랑만 남고 눈감아도 사라지지 않고 길을 걸어도 비워지지 않는 애잔한 아픔으로 돌아오는 너 동짓달 초삼일 오늘은 어머니 기일 --「정」중에서 김태홍 시인의 심연에서 ‘어머니’는 바로 ‘아쉬움이고 / 보고픔이고 / 그리움이’라는 단정적인 결론을 적시하고 있다. 이것은 ‘동짓달 초삼일 / 오늘은 어머니 기일’에 또다시 정리되는 모정이며 사모곡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찍이 원로 김남조 시인은 말했다.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지체없이 격렬한 전류가 온다. 아픈 전기이다. 아프고 뜨겁고 견딜 수 없는 전기이다’라는 언지처럼 그는 영육(靈肉)이 동시에 ‘그리움’의 사모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가지런한 산들을 병풍으로 둘러치고 / 수정 같은 초록 바다 한쪽 끝을 / 어머니 품처럼 꼭 안고 있는 몽돌 해변(「까만 해변」중에서)’이라거나 ‘어머니! / 더 이상 이별이 없는 곳 / 우리 그곳에서 오래오래 살아요(「그 동네 사람들」중에서)’라는 그의 진실이 발현하는 것도 그의 모정의 심오한 은혜를 갈구(渴求)하는 시적 원류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4. 서정적 자아의 긍정적 융합 김태홍 시인은 서정시인이다. 그 시정신의 향방(向方)이 진솔한 그의 내면 의식과 일치하는 외형적으로 응시하면서 착목(着目)하는 자연 사물들이 다양하게 그의 시적 정황(situation)을 제공하고 있어서 그는 이를 원류로 해서 서정시를 창작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쌀쌀한 겨울바람이 스쳐오는 등산로 길가에 샛노란 색깔로 잎보다 먼저 꽃잎으로 봄을 부르는 산수유 꽃 손과 손을 꼭 잡고 거니는 연인에게 영원한 사랑이란 꽃말을 전한다 진달래꽃으로 봄 동산이 수놓일 때 진눈깨비 내리는 등산로 끝자락으로 멈출 줄 모르고 따라가고 있는 안개 낀 시선 우산도 없이 홀로 점점 작아지는 모습 웃으며 보내려는 맘에 산수유 꽃이 지고 있다. --「산수유꽃 피고 지고」전문 김태홍 시인의 서정적 원류는 자연에서 찾는 통상적인 관념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우리 주변에 지천(至賤)으로 널려있는 자연은 모두가 훌륭한 시적 상황이 되고 우리 시인들에게 많은 시심(詩心)을 발현하게 하는 좋은 시적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는 이러한 순수한 정감이 흐르는 시흥(詩興)을 ‘산수유꽃’을 통해서 개화(開花)와 낙화(落花)에 대한 이미지를 다르게 현현하는 시법이 돋보이는데 이는 ‘손과 손을 꼭 잡고 거니는 연인에게 / 영원한 사랑이란 꽃말을 전’해 주다가 ‘우산도 없이 홀로 점점 작아지는 모습 / 웃으며 보내려는 맘’이 바로 ‘피고 지고’의 자연 섭리에 순응하는 인간의 순정(純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낮 실바람에도 힘없이 지는 곡선의 낙하 비에 젖은 어제의 낙엽 위에 오늘의 낙엽이 또 떨어져 내리고 쌓이고 노랗게 노오랗게 펼쳐진 은행잎 융단 위를 살랑살랑 밟고 가는 한줄기 바람을 보았어요 파란 하늘에 걸린 우듬지에 매달려 떠나려는 햇빛을 잡으려고 온몸으로 막아서며 달래려고 투명할 대로 투명해진 속살까지 드러낸 홍시를 보았어요 촘촘한 가시를 비집고 기지개 한 방으로 허공을 가르며 툭 터진 용수철이 되어 튕겨 나온 알밤 삼 형제가 도란도란 얘기에 정신을 팔 때 치켜세운 꽁지로 달려오는 다람쥐의 빤짝이는 눈빛을 보았어요 --「만추」전문 그는 다시 ‘만추’라는 시간성에서 착목된 ‘비에 젖은 어제의 낙엽’과 ‘은행잎 융단’, ‘한 줄기 바람’, ‘파란 하늘에 걸린 우듬지’, ‘떠나려는 햇빛’, ‘투명해진 속살까지 드러낸 / 홍시’, ‘ 알밤 삼 형제’ 그리고 ‘다람쥐의 빤짝이는 눈빛’ 등이 이 늦은 가을을 작품으로 장식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만추’의 정경(情景)을 통해서 무엇을 우리들에게 메시지로 전해주고 있는가. 서정시의 정점이 자연과 인간과의 자아융합을 탐색하면서 한 폭의 풍경화를 채색(彩色)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법은 자연과의 동화(同化)와 투사(投射)라는 감상적 오류(affective fallacy)인 자연의 인격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연이 인간의 정서나 사회 현상에 좋은 혜택을 준다는 낙관적인 해석이 가능해 진다. 모든 자연을 그 시인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으로 인격화 한다든지 아니면 반대로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원리가 자연서정시의 맥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김태홍 시인은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로 창출하는 자연 서정이 다음과 같은 형태로 형상화하고 있다. - 풀벌레소리 사방에 깔리고 / 둥근 달 휘영청 뜬 밤이면 / 명시가 달빛을 희롱하는 / 이태백 술상 옆 시중드는 나무 되어 볼까(「분재의 꿈」중에서) - 지붕 위 까치도 침묵하고 / 기둥 옆 검둥이도 실눈으로 / 기다림의 세월 되고 / 한숨의 긴긴 날 되니 / 대문 앞 기다리는 맘만 / 아직도 빨간 카네이션(「카케이션」중에서) - 산의 중간 중간을 불태우고 있는 진달래꽃 / 그 불빛에 놀라 허리도 한 번 못 펴보고 / 아래 아래로 줄도망을 친 할미꽃(「하늘로 날다」중에서) - 푸른 청춘을 높다란 나무 위에서 / 청풍과 구름을 벗하며 놀았다 / 낮에는 따뜻한 태양에 마음을 녹이고 / 밤에는 둥근 달과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었다(「갈색낙엽」중에서) - 군데군데 세월의 각질이 벗겨지고 / 지표에 닿을듯 말듯 등 굽은 고목은 / 꽃망울의 떨림으로 긴 잠의 기지개를 켠다(「사과꽃 필 때」중에서) - 침엽수 녹색 그늘 사이사이를 뚫고 / 바늘 숨구멍으로 꽉 차게 들어오는 / 영롱한 오색의 햇빛 한 가닥에 생명을 걸고 / 울려 퍼지는 메아리로 살아남는다(「머나먼 고향」중에서) -설령 / 꽃잎이 비에 젖는다고 한들 / 저 작은 잎들의 합창을 막을 수 있으랴(「봄맞이」중에서) 이렇게 자연이 전하는 메시지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감응에서 부드럽게 혹은 강렬하게 분사되는 서정의 맥박이다. 안온하고 정감이 넘치는 김태홍 시인의 호흡을 느낄 수가 있게 한다. - 화려한 거짓말쟁이, 매일 매일 거짓말쟁이 (「화장품」전문) - 해는 술래다, 달도 숨고 별도 숨는다「(숨바꼭질」전문) - 겨울아 기다려라, 아직 만추가 놀고 있다(「다음 손님」전문) - 바람아 불지 마라, 내 삶 다 날아간다(「뱀 허물」전문) - 나뭇잎 하나 퐁당, 금붕어 이부자리 한 채(「포근한 낮잠」전문) - 여름과 겨울 사이에 끼여 누런 갈색으로 변한다 (「가을」전문) 또한 김태홍 시인의 긍정적 융합과의 서정성은 위의 작품들과 같이 그가 즐겨 애용하는 일행시(一行詩)의 창작시법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한 행으로써 시적 의미를 토로한다는 것은 그만큼 시적 경륜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그는 일행시법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의 시법에서 언어의 함축과 의미의 축약(縮約)을 이해할 수 있어서 더욱 감미(甘美)로움을 만끽(滿喫)하게 된다. 지금까지 김태홍 시집『그 길을 지나왔네』의 작품들을 살피면서 그가 대체로 추구하거나 탐색하는 시적 범주(範疇)는 정서의 지향점이 바로 서정이라는 근본을 중심축에 형성하고 ‘인생 길’이라는 대명제의 수용에서 성찰이라는 인생론을 구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생관이 삶이라는 거대한 실재(實在)에서 시적 사유와 화해를 구상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시적 승화를 짚어보지 않는다면 그에게 내재된 인생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그의 감성과 감응력 등은 시적 주제의 정점인 진선미(眞善美)의 실현을 위한 서정성에서 인생과 인간을 긍정적으로 융합하는 위의(威儀)와 본령(本領)을 잘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해설의 말미에 첨언해서 시인들이 참고하란 한 마디는 일찍이 영국의 비평가 I. A. 리처즈가 우리 일상생활의 정서와 시의 소재 사이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의 기교를 사용하는데 이러한 차이 밖에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러 점이 바로 김태홍 시인이 지금까지 응용하면서 가장 중시하는 체험에서 뽑아낸 진실임을 부인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
댓글0추천해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