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이상국후집 제9권
●고율시(古律詩) 58수
목차
詠春雪得二絶
奉和王太子元日令製
雪花吟示空空上人。
上人見和。復次韻。
次韻李侍郞需見和
次韻李侍郞需以廻文和長句雪詩三十韻
末有餘紙。又以一絶寄之。
復次韻李侍郞重和雪詩廻文
又次絶句廻文韻
次韻空空上人。贈朴少年五十韻。
辛丑三月三日。送長子涵以洪州守之任有作。
明日獨坐書懷
梳頭自嘆
眼病久不理。人云瞳邊有白膜。因嘆之有題。
三月八日與族人蔡郞中大醉歌唱
明日又作
又傷目病
謝晉陽公送龍腦及醫官理目病
又謝晉陽公送白粲
三月十四日。大雨雹。
又五言
舊燕來
夢與美人戲。覺而題之。
明日夢。又與美人戲。寤而又作。
次韻李侍郞需餞庾濟州 廻文
謝任相國見訪
得本省所送鶴翎扇分人
病眼未看花有嘆
寄朴學士
次韻朴學士見和
紙有餘地。又作一絶。破南行之意。
登家園望海有作
鬱懷有作
丁學士 送酒酌飮有作
次韻朴學士又和失看花詩
和絶句
次韻朴學士復和
和絶句
四月六日。松廣山道者無可。因事到洛師。還山次乞詩。
無可伴行卓然道者乞詩。
復次韻李侍郞 聞予送男赴洪州詩。以廻文見和一首。
渴雨。 四月十一日。
四月日聞鸎
偶吟
病中獨坐鬱懷。得長短句一首。無處寄示。因贈李侍郞。
次韻李侍郞赴省試座主慶筵。明日以廻文謝之。
○봄눈을 읊는 두 절(絶)
봄이 겁나 살금살금 내리는 모양이나 / 似怯陽和落細微
굳이 봄을 겁낼 필요야 없지 않은가 / 我言何必怯春爲
아직 봄 일러 꽃 피기 늦었으니 / 春光尙早花開晩
그대가 대신 이 공간 메워주는 것도 좋아 / 未害將花補此時
매화 늦어 봄이 잔뜩 원망스럽던 차에 / 梅發遲遲已罪春
그대 먼저 옥 같은 꽃 뿌려 주니 반가워 / 喜渠先放玉花新
매화 핀 뒤엔 응당 양보하려니와 / 梅花開後方交代
동산의 꽃이 빈 때가 없도록 하소 / 莫遣園英有曠辰
○삼가 왕태자의 원일(元日) 영제(令製)에 화답하다 병서(幷序)
규보는 물러난 지 이미 오래되어, 원일에 영제가 있었음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원일 이후에 비로소 사람을 통하여 영제를 보고 나서, 저하(邸下)의 학문이 날로 새롭고 문장이 크게 뛰어나신 것은 참으로 사직(社稷)의 그지없는 복이라고 못내 축하하였습니다. 아무리 늙고 혼미한 처지이지만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찬송하는 음조가 자신도 모르게 입시울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삼가 원운(原韻)대로 네 수를 화답하여 사인(舍人) 측근에 올립니다. 운운(云云).
성상(聖上)의 수(壽)를 축하한 두 수
시각이 다섯 점을 지나니 봄이 왔다 아뢰고 / 更籌五點報王春
술에 산초의 향내 풍기니 축배가 새로워 / 酒泛椒香上壽新
조관의 축하 반열에는 춤추는 소매 나부끼고 / 庭鷺賀班旋舞袖
궁녀의 경사 자리에는 노래하는 입술 움직이네 / 宮鸎慶席弄歌脣
만물의 생겨남은 비록 하늘의 조화이나 / 物生雖自天機密
그 발육은 전혀 성상의 균등한 은덕일세 / 乳育全歸聖澤均
사해가 다 태평함은 우리 세대에 시작되니 / 四海同歡由我代
예나 지금이 같다고 이르지 마소 / 勿言今古一般人
하늘이 정녕 만년의 성수(聖壽)를 내렸으니 / 天錫皇齡的萬春
올해부터 다시 원년(元年)으로 했으면 하네 / 請從今歲始稱新
스며드는 선향은 춤추는 옷소매를 재촉하고 / 仙香入杏催紅纇
진동하는 갈고는 노래하는 입술 격려하누나 / 羯鼓驚雷督絳脣
풀과 나무야 무심하니 무엇을 알랴마는 / 草木無心何自識
하늘과 땅은 만물을 내는 데 본래 평등하다네 / 乾坤化物本來均
이 노물(老物)이 비록 늙었으나 정은 남아 있어 / 老人雖老情猶在
저 남산을 두고 우리 성상의 수를 빈다오 / 直把南山壽一人
태자의 수를 축하한 두 수
이게 화산의 몇 번째 맞이한 봄이런가 / 此是花山第幾春
봄바람이 맨 먼저 동궁(東宮)에 불어 왔다오 / 東風首入震闈新
궁정(宮庭)의 닭은 아직 새벽 알리는 혀를 굴리지 않았는데 / 宮鷄未鼓司晨舌
금원(禁苑)의 학은 먼저 성수(聖壽)를 축하하는 입술을 열었네 / 禁鶴先呀祝壽脣
이는 오로지 백성이 편안하고 화기가 충만한 때문이지 / 都爲民安和氣洽
집집마다 권유해서 웃음소리가 들뜬 게 아니라네 / 不須戶勤笑聲均
지금 누가 장생 경축을 올리는가 / 眼前誰表長生慶
바로 상안의 네 분 백발일레 / 四箇商顔白髮人
봄이란 본시 동궁을 상징한 것 / 春是東宮本分春
언제고 봄이니 어찌 새삼 맞이할 나위 있으랴 / 長春何必更迎新
충만한 상운은 닭머리를 둘렀고 / 祥雲繞戟籠鷄首
수주는 잔에 가득 봉 입술을 적시네 / 壽酒盈巵蘸鳳脣
꽃 소식 은연히 전해 오니 향기가 비로소 동하고 / 花信暗傳香始動
새 소리 혼연히 들려 오니 난기(暖氣)가 골고루 퍼졌어라 / 鳥聲渾入暖初均
예전에는 나도 하나의 관료에 참여하였었으니 / 昔年我亦參寮屬
경축하는 마음 남보다 만 배나 더하다오 / 拜賀情深萬倍人
[주C-001]영제(令製) : 태자가 지은 글을 말한다.
[주D-001]갈고(羯鼓) : 만족(蠻族)이 사용하던 북의 일종으로, 대(坮) 위에 놓고 북채로 양면을 친다.
[주D-002]상안(商顔)의……백발일레 : 상안은 상산(商山)의 남쪽이라는 뜻이며 네 분이란 곧 상산 사호(商山四皓)를 말한다.《漢書 張良傳》
[주D-003]봄이란……상징한 것 : 사시(四時)에 봄은 동쪽에 해당하는데, 《주역(周易)》의 진괘(震卦)는 장남괘(長男卦)로서 방위로는 동쪽이므로 동궁이라 한 것이다.
奉和王太子元日令製 幷序
某退居已久。未聞元日有令製。元日已後。方憑人得覩盛製。因大慶聖學日新。藻翰秀發。實社稷無疆之福也。雖在老耄。不勝抃舞。顧讚頌之音。不覺出吻。謹依韻和成四首。呈于舍人左右云云。
祝聖壽 二首
更籌五點報王春。酒泛椒香上壽新。庭鷺賀班旋舞袖。宮鸎慶席弄歌唇。物生雖自天機密。乳育全歸聖澤均。四海同歡由我代。勿言今古一般人。
天錫皇齡的萬春。請從今歲始稱新。仙香入杏催紅纇。羯鼓驚雷督絳唇。草木無心何自識。乾坤化物本來均。老人雖老情猶在。直把南山壽一人。
祝令壽 二首
此是花山第幾春。東風首入震闈新。宮鷄未鼓司晨舌。禁鶴先呀祝壽唇。都爲民安和氣洽。不須戶勸笑聲均。眼前誰表長生慶。四箇商顔白髮人。
春是東宮本分春。長春何必更迎新。祥雲繞戟籠鷄首。壽酒盈巵蘸鳳唇。花信暗傳香始動。鳥聲渾入暖初均。昔年我亦參寮屬。拜賀情深萬倍人。
○설화(雪花)를 읊어 공공 상인(空空上人)에게 보이다
온갖 꽃은 다섯 몬데 눈송이는 여섯 모 / 百花五出雪花六
조물주의 조각에 많고 적은 차별이 있구려 / 天工剪刻有多寡
많은 것엔 공력이 깊을 것이요 / 多者費應深
적은 것엔 공력이 얕을 것인데 / 寡者功應乍
어찌해서 참꽃과 눈꽃은 / 胡奈眞花與雪花
그 피고 짐이 하늘의 조화와 같지 않은가 / 生滅不如天造化
꽃은 오래가나 눈은 쉬 녹으니 / 花能經久雪易消
이 이치 너무도 막연하여 끝내 측정할 수 없어라 / 此理茫茫終莫課
만약 눈을 꽃이 아니라 한다면 / 若言雪非花
이 어찌 거짓말이 아니겠는가 / 此豈非詐者
거짓은 본시 진실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므로 / 詐則不及眞
하늘도 진실에 박하고 거짓에 후하지 않았어야 할 텐데 / 天不應薄於眞兮厚於詐
현묘한 이 이치 측정할 수 없어라 / 玄機不可測
측정하러 든다면 도리어 나를 비웃으리 / 欲測飜笑我
○상인의 화답에 다시 차운하다
내가 읊은 설화에 그대가 화답했는데 / 我吟雪花子輒和
사가 붙인 방운이다.(師所押旁韻)
사의가 정미로워 드물게 보는 바일세 / 詞信精微取見寡
하늘은 만물에 있어 / 但是天於物
반드시 곧 쓸어지지는 않는데 / 未必付之乍
꽃은 바람으로 눈은 햇빛으로 소멸되니 / 花因風滅雪因日
물건에 따라 변화하는 이치엔 어쩔 수 없다오 / 無奈未逃隨物化
두 물건의 이치가 본시 이러한데 / 二物之理本如此
그대들은 어찌 여기서 측정하지 않는가 / 子輩於玆何不課
만약 바람과 햇빛만 없다면 / 若無風與日
다 각기 생명을 보존하게 되리 / 皆各保性者
인생 또한 그러한 것이므로 / 人生迺亦然
나는 진실을 보호하고 거짓을 파괴하겠다 말하겠네 / 我則言保爲實兮橫(音去聲)爲詐
물아를 일체 무(無)로 보아야 한다 했는데 / 物我視同冥
그 말은 참으로 나를 흥기시켜 주었오 / 此語唯起我
상인의 시에 있는 구절이다.(來詩有云)
○시랑 이수의 화답에 차운하다
만물 가운데 가장 큰 건 사람으로 / 物之巨者黑頭蟲
천명대로 사는 사람 언제나 적은데 / 閱了天年生或寡
하물며 풀이나 나무 같은 따위야 / 況於草木中
뭣이 오래고 뭣이 잠깐이라 하겠는가 / 誰久復誰乍
다만 눈과 온갖 꽃들은 / 但疑雪與百般花
일체 하늘의 조화에 의한 것으로 / 同是天工之所化
춥고 따스함이 다르고 생과 멸이 다른데도 / 寒溫時異生滅殊
다같이 꽃이라 칭하는 뜻 헤아리기 어려웠는데 / 均號爲花意難課
지금 그대의 사의를 보니 / 今觀子之辭
참으로 조물주와 같구려 / 眞似造化者
조물주인들 무엇을 알겠는가 / 造物亦何知
그대는 동이점을 분석하고 사람들의 거짓을 막으려 하였네 / 君所評析異同兮杜人詐
그의 시에 있는 구절이다.(君詩云 )
그대의 의논이 비록 뛰어나지만 / 子論雖絶高
대체는 자못 나와 비슷하구려 / 大抵頗類我
○시랑 이수가 회문체(廻文體)로 화답한 장구(長句) 설시(雪詩) 삼십 운에 차하다. 병서(幷序)
어제 다시 직금체(織錦體 회문시와 같다)로 된 전번 설시의 화답을 받았으니, 회문시는 아무리 단편으로 엮으려 해도 매우 어려운 때문에, 옛사람이 회문시를 좋아하면서도 이십이나 삼십의 운자를 단 것이 없었는데, 하물며 남의 것을 화답한 장편인 데다 회문체로까지 엮었음이겠는가. 지금 자네가 보인 시는 그 변화가 매우 사랑스러워 화답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원운(原韻)에 의거하여 한번 흉내를 내보는 바일세.(昨蒙復以織錦體和前雪詩。夫廻文也。雖於短章。難莫甚焉。故古之人。雖喜爲廻文。未有至於二十三十韻者。況又和人所作鉅篇。復以廻文者乎。今子之所示。琬轉可愛。不可不答。依韻效嚬耳。)
바삐 화롯불 헤치니 새벽 추위 쌀쌀하고 / 忙撥火來寒帶曉
급히 등잔불 돋우니 밤 빛이 캄캄하네 / 急挑燈後瞑侵宵
봉의 붉은 볏 묻혔으니 온 산에 뒤덮였고 / 鳳冠赤沒渾山滿
꿩의 고운 머리 묻혔으니 온 계곡에 나부끼며 / 雉䯻紅埋亘谷飄
담장에 하얀 가루 깔렸으니 공교한 장식임을 알겠고 / 墻粉白添知巧飾
산봉우리 파란 기운 드러나니 약간 뿌렸음을 알겠네 / 峀鬟靑露覺微瀌
쓸쓸한 숲에는 늦게 자는 원숭이 궁하기도 하고 / 荒林晩宿窮猿縮
텅 빈 들판엔 일찍 나는 송골매 교만 부리네 / 逈野晨飛快鶻驕
미친 태도는 다니는 사람의 발길에 밟히고 / 狂態卷遭行客踐
하얀 모습은 이름난 화공(畫工)의 솜씨에 묘사되며 / 皓形移自善工描
길바닥을 감췄으니 땅이 가라앉은 듯하고 / 藏深路面平沉地
꽃뿌리를 묶었으니 싹이 지금껏 감감하네 / 鏁久花根密噤苗
우산(雨傘)을 받친 어가엔 걸음이 느려지고 / 張傘御街行緩緩
도롱이 걸친 어장(漁場)은 멀게만 여겨지며 / 拂簑漁浦去遙遙
반사된 하얀 빛은 밤에 읽는 글 비추고 / 煌螢映字書窓夜
《문선(文選)》에는 “황황형형(煌煌熒熒)이다.”고 하였다.(文選煌煌熒熒 )
싸늘한 기운은 새벽에 잠든 혼을 깨우네 / 肅爽醒魂睡榻朝
나무를 장식했으니 가지와 줄기 몽땅 봉쇄되고 / 粧樹大封枝及幹
바위를 뒤덮었으니 이마와 허리 푹 빠졌으며 / 冒巖危陷頂兼腰
채소 갈기 잊었으니 씨앗에는 떡잎이 돋아나고 / 忘移圃菜新抽甲
파심기 늦어지니 뿌리에는 가지가 뻗어났네 / 緩種畦葱好挺條
황충이 소멸되었으니 보리농사 잘될 것을 알겠고 / 蝗滅已諳田秀麥
해오리 놀라니 바다에 조수 들었나 의심하며 / 鷺驚偏訝海增潮
봄 기운이 돌아오매 점점 휘날리는 것이 잠잘 것이고 / 陽廻漸寢華奔放
햇빛 비치면 아리따운 빛깔 거두어지리 / 日耀當收色姹嬌
지붕에 깔렸으니 찬 기운이 침투하고 / 鴦瓦壓嗟端射冷
붓이 얼었으니 시가(詩歌) 짓기가 뜸해지며 / 兎毫凝歎曠裁謠
배가 고프니 솥이 비었음을 알겠고 / 腸飢認已空鐺鼎
걸음 절뚝거리니 잔교를 건너는 것 같네 / 足蹇競將踏棧橋
싸늘한 이불이 얇으니 선뜻 눕기가 꺼려지고 / 凉被薄知方憚臥
깜박이던 불이 꺼지니 다시 피우기 어려우며 / 淡灰枯恨却難燒
곳집에 뿌려지니 곡식인가 착각하고 / 倉囷洒滿爭糧糒
창고에도 쌓이니 비단인가 의심하네 / 府庫堆多較縠綃
타는 향불에 부딪혔을 땐 몰래 녹는 것을 싫어하고 / 香案觸嫌方暗息
밥짓는 부엌에 침투했을 땐 쉬 녹는 것을 후회하며 / 㸑廚侵悔自輕消
산이 덮일까 몽땅 녹을까 두렵고 / 襄懷恐或多融釋
농사가 감소될세라 마냥 퍼부울까 염려일세 / 歛減知應罷蕩搖
문장을 날릴 때는 반드시 그대가 방문함을 기다릴 것이고 / 章騁必宜須爾訪
술이 취하는 것은 남의 초청을 바라네 / 酒醺還欲得他招
서리나 얼음과 비슷하니 쌓이는 데 어찌 경중을 따지며 / 霜氷肖豈重輕積
비나 이슬과 같으니 흐르는 데 어찌 선후가 있을까 / 雨露同何先後澆
힘센 종 맡길 만하니 비질하기에 거침없고 / 强僕倚堪常泛篲
병든 종 나무하기에 게으른 것을 용서하네 / 病奴寬許已慵樵
양을 기르는 곳에는 겉 털이 헝클어졌고 / 羊驅牧處毛輕散
학이 나는 앞에는 솜털이 시들었으며 / 鶴放看時毳細凋
관리의 기마에는 백옥 고깔이 젖었고 / 郞騎躍歸霑玉弁
객인의 수레에는 은빛 초구가 뒤섞였네 / 客軒騰去混銀貂
자루로 살포된 옥을 줍고 싶고 / 囊儲投拾瓊分擲
전대로 소담한 쌀을 담고 싶으며 / 橐實謀收米峙饒
꽃다운 풀 싹은 거센 위세에 움츠러들고 / 芳草茁妨威烈猛
더러운 먼지는 녹은 물에 씻겨 가네 / 穢塵閑泛汁流漂
긴 둑길이 머니 삿갓이 삐뚤어질까 겁나고 / 長堤遠怯欹籉笠
조용한 방이 차가우니 퉁소도 불기 어려워 / 靜閤寒知澁管簫
황도는 범하기 어려운지 슬쩍 피해 가고 / 黃道犯難應避去
허공은 깔보기 쉬운지 멋대로 나부끼네 / 碧天凌易忽飛超
넘치는 잔 들이키니 심사가 후련하고 / 觴深倒快心開豁
좋은 경치 읊조리니 흥이 길어지고 / 景勝吟酣興引邀
상서와 재앙을 평등하게 보니 마음이 담담하고 / 祥祲等觀恬入湛
기쁨과 슬픔을 동일하게 보니 도량이 탁 트이네 / 喜悲同視廓成寥
편안한 몸에 태평 세대 만났으니 / 康身得幸時平泰
마음껏 기뻐하며 여생을 보내려네 / 適意歡欣我復聊
[주C-001]회문체(廻文體) : 바로ㆍ거꾸로ㆍ세로ㆍ가로로 읽어도 모두 뜻이 성립되는 시(詩). 진(晉) 나라의 소백옥(蘇伯玉)의 아내가 지은 반중시(盤中詩)가 그 시초이다.
[주D-001]반사된……비추고 : 진(晉)의 손강(孫康)이 등유(燈油)가 없어 눈[雪]빛을 이용하여 글을 읽었던 고사를 인용하였다.
[주D-002]황도(黃道) : 태양이 운행하는 궤도.
○끝에 남은 종이가 있기에 또 한 절을 지어 보내다
보통의 시인들은 나와 시를 겨룰 때 / 多少詞人和我詩
몇 편을 짓고는 으레 항기를 꽂았는데 / 數篇成了竪降旗
그대는 칼날을 날카롭게 갈고 갈아 / 嘉君痛礪鋒鋩銳
여러 번 전쟁 중에 기이한 솜씨 보였구려 / 百戰場中輒出奇
기이한 솜씨란 장편의 회문시를 말한다.(奇謂長篇廻文)
○이 시랑이 거듭 화답한 회문 설시에 다시 차운하다
분망한 기세는 거센 바람에 수반되고 / 忙忩勢忽隨驚吹
아득한 음향은 조용한 밤에 스치누나 / 杳遠聲宜洒靜宵
봉이 단산(丹山)에 피하니 붉은 깃이 더욱 또렷하고 / 鳳穴避全丹羽煥
학이 구고(九皐)에 날으니 하얀 털이 함께 나부끼며 / 鶴皐飛混白毫飄
담장 위가 배로 보충되니 높은 계단 우뚝하고 / 墻垣補倍高層聳
밭두둑이 온통 덮였으니 하얀 색채 흩날리네 / 陌畛鋪匂皓彩瀌
쓸쓸한 길이 동결되니 발길이 빨라지고 / 荒路凍妨行足捷
침침한 방이 차가우니 취흥이 감소되며 / 晩堂寒減醉情驕
짓궂은 아이들 장난은 덩이를 뭉쳐 쥐고 / 狂童戲衷拳貪掬
신묘한 화공의 솜씨는 진상을 묘사하네 / 妙匠心中手宛描
감춰졌다 다시 드러난 것은 외로운 봉우리요 / 藏更出尖孤峙峀
움츠렸다 바로 돋아난 것은 이른 새싹일세 / 縮尋成茁早生苗
가늘게 펼쳐진 하얀 실은 얼마나 되는지 / 張絲細細來多少
가볍게 날리는 버들개지는 곳곳이 같네 / 裊絮輕輕去邇遙
밝은 반사는 밤마다 감상할 만하고 / 煌影要應看夜夜
고운 자태는 아침마다 구경할 만하며 / 婉姿憐欲見朝朝
지면을 장식했으니 모습이 신선하고 / 粧塗土出鮮容態
숲들을 압도했으니 등허리가 굽었네 / 壓倒林成曲背腰
골목에 나가기를 잊으니 길이 희미해졌다 / 忘出巷門迷塞徑
동산에 나무를 심방하니 가지가 장식됐으며 / 好尋園樹滿裝條
황충(蝗蟲)이 묻히니 땅이 부풀어 오른 듯하고 / 蝗埋施覺曾淪壤
고니가 빠졌으니 처음엔 조수가 들었나 의심하네 / 鵠沒渾疑始漲潮
양이 성장해 가니 거센 기세가 가리우고 / 陽長正宜收掩苒
날이 어두워지니 고운 모습이 침체되며 / 暝侵將漸寢姸嬌
산사의 승방에는 중이 문을 닫았고 / 鴦廬梵室僧關閉
토원의 연석에는 손이 노래를 부르네 / 兎苑梁筵客詠謠
뱃속에 따뜻한 술이 들어가니 좋은 차를 달이고 / 腸納暖漿煎茗椀
발 밑에 녹은 물기가 스며드니 모래 다리를 밟누나 / 脚沉融汁履沙橋
오래 소외(疏外)된 어설픈 적삼은 한가히 걸렸는데 / 凉衫拂曠仍閑掛
새로 넣은 새까만 숯은 맹렬히 타오르며 / 熾炭添新認猛燒
곳집에는 쌀알 줄어드는 게 놀라운데 / 倉欠自驚空積粒
땅 위에는 비단 쌓이는 모습이 기쁘네 / 地盈方喜正堆綃
오랫동안 봉쇄된 나뭇가지는 피어나기 얼마나 지루했으며 / 香梢鏁久何遲秀
양지든 언덕은 많이 쌓였어도 속히 녹으리 / 暖岸侵多想急消
먼지는 녹아 흐르는 물에 의해 씻겨 가고 / 襄遣穢歸融渙渙
바람맞은 키가 펄펄 날리네 / 簸迎風付弄搖搖
장편을 완성했으니 그대의 재주 드날렸고 / 章成快却君才騁
경치가 아름다우니 나의 벗 부르고 싶어라 / 賞好䂓將我友招
서리나 우박과 짝하니 매우 차갑고 / 霜雹儷渠知互凜
불이나 연기에 녹으니 잘도 흐르네 / 火煙銷汝反深澆
젊은 장정에겐 사냥을 연속시킬 수 있고 / 强丁選可因連獵
늙은 하인에겐 땔감 당부 번거롭네 / 老僕煩令屢續樵
양떼는 이 때문에 동일한 색깔이 선명하고 / 羊卽是兮均色粲
나비는 누구를 위해 꽃지는 걸 한하는가 / 蝶爲誰也恨英凋
활발한 어린이는 손에 새매를 받쳐들고 / 郞兒壯合擎鷹鷂
쇠약한 늙은이는 몸에 갖옷을 껴입었네 / 老叟衰便厚狢貂
자루가 비었으니 술 굶을 것이 걱정되고 / 囊罄已愁方酒斷
자식이 짜증내니 바둑만 두는 게 부끄러워 / 子呵頻愧尙棊饒
화심(花心)이 움츠렸으니 꽃 피기가 늦었고 / 芳心斂到花開晩
한기(寒氣)가 풀리니 녹은 물이 흐르네 / 冽氣收敎水作漂
혼자 읊조리다가 우연히 새 가사를 얻고 / 長嘯偶裁新譜曲
음조를 구사하다가 으레 피리와 퉁소를 불며 / 穩調宜奏好笳簫
꺾여진 노란 갈대는 깊숙이 빠져 있고 / 黃蘆折伏還深溺
휘어진 파란 전나무는 뛰어넘을 수 있네 / 翠檜低蒙更躐超
잔을 들어 마시는 데는 꼭 그대 만나기 기대하고 / 觴酌與同期爾覿
붓을 들어 맞서는 데도 새삼 누구를 다시 초청하랴 / 筆騰相敵又誰邀
상서로운 해를 맞으니 환락을 마음껏 할 수 있고 / 祥年喜可紛歡謔
유쾌한 날을 보내니 적막을 깨뜨리게 되었네 / 笑日圖將破寂寥
건강하고도 오래 살아 때때로 풍류를 일삼으니 / 康且壽時方事樂
노경에 한가로운 생애 이만하면 족하다오 / 老中閑適足生聊
[주D-001]토원(兔園) : 곧 한(漢) 나라 양 효왕(梁孝王)의 동원(東苑)으로, 매승(枚乘)이 토원부(兔園賦)를 지었다.
○다시 회문 절구(絶句)에 차운하다. 이 시도 내가 회문체로 화답하였다. (此詩子以廻文和之)
뛰어난 재기로 끝내 시를 완성하니 / 多才負氣欻成詩
웅건한 필력에 깃발도 장쾌하네 / 戰筆雄豪壯旆旗
진정 감탄하노니 성정(星精)을 받은 그대는 / 嘉歎信君鍾宿曜
고금에 뛰어난 기인일세 / 古今超出一人奇
○공공상인(空空上人)이 박 소년(朴少年)에게 준 오십 운(韻)에 차하다
하늘과 땅이 개벽하매 음과 양이 생기고 / 二儀剖判有陰陽
웅이 자를 부르매 여가 남을 따르네 / 雄或呼雌女逐郞
돌아온 봉이 황을 찾으니 애정이 은근하고 / 歸鳳求凰眞眷戀
외로운 난새가 짝을 잃으니 그 모습 쓸쓸하며 / 孤鸞失偶却徊徨
나무에는 연리지(連理枝)가 있어 여러 꽃과 다르고 / 木聞連理殊群卉
꽃에는 동심화(同心花)가 있어 여러 풀과 다르네 / 花見同心異衆芳
닭들은 부부가 없어도 제 짝을 얻고 / 不有婦夫鷄得匹
기러기는 형제가 없어도 나란히 난다 / 亦無兄弟鴈聯行
처를 맞으면 으레 함께 늙기를 도모하고 / 取妻例欲圖偕老
첩을 두면 모두 잊지 않겠다 맹세하네 / 遇妾多皆誓不忘
더욱이 풍류가 본성에 잠재해 있고 / 若復風流鍾雅性
또한 가무를 하니 환락장일세 / 又邀歌舞得歡場
보드라운 손가락으로 비파를 타고 / 已煩柔指彈瑤瑟
요염한 맵시로 잔을 드린다면 / 更要驕姿奉玉觴
어느 누가 이 꽃 같은 태도를 만나 / 孰有相逢花態度
끝내 철석 같은 심장을 보존하랴 / 終然得固鐵肝腸
번거로울사 꽃 찾는 벌을 배우고 / 紛哉競學蜂探蘂
우스울사 향기 좇는 나비를 흉내내네 / 笑矣眞同蝶趁香
꿩들이 의좋게 나니 목독자(牧犢子)가 슬퍼하였고 / 䂓並啄飛悲牧犢
짐승이 자유로이 번식함은 양앙에게 위임했네 / 獸相孶尾寄梁鴦
아무리 절색(絶色)이 방안에 가득 차고 / 縱將絶艶充閭閫
미녀 또한 월랑에 줄지어 있어도 / 亦欲諸姬列廡廊
다만 고인은 이를 단호히 끊고 / 唯有高人能豁斷
세속에서 벗어나 자취를 감춰 / 直超流俗樂深藏
맘이 해탈되니 세연(世緣)의 허망함을 깨닫고 / 冥心自悟根塵幻
도를 즐기니 기미의 그지없음을 아네 / 嗜道深諳氣味長
횡진을 모두 보내어 밀을 씹는 듯 / 都遣橫陳歸嚼蠟
정욕을 혐의하여 끓는 물 피하듯 하니 / 因嫌大慾避探湯
아양 떠는 여우가 어찌 유혹할 수 있겠으며 / 野狐雖媚那窺側
아름다운 선녀도 접근하기 어려워 / 天女難干謾在傍
일찍이 구름처럼 떠서 태산(泰山)과 화산(華山)을 찾고 / 早己雲浮尋岱華
또한 마름처럼 떠돌아 원수(沅水)와 상수(湘水)를 누비며 / 又將萍泛歷沅湘
외로이 거처하는 곳에 거적자리 깔고 / 孤栖室處莞鋪簟
혼자 산으로 향할 때 갈옷을 입으며 / 獨向山時葛緝裳
여의목이 등을 긁는 물건이 되고 / 如意木爲爬背物
죽부인이 신변에 따르는 행장이 되었네 / 竹夫人是伴身裝
고요한 암굴(巖窟)의 문이 참다운 낙이거니 / 巖扉寂寞眞堪樂
세상의 번화로움이 어찌 그 소망이겠는가 / 世路繁華豈所望
아무리 망상의 유혹이 있었어도 / 縱有妄緣幾惑見
아마 꿋꿋이 서서 꼼짝도 않았으리 / 想應介立不離方
박씨 소년이 대체 어떠한 근기(根器)이기에 / 未知朴子形何似
상인(上人)을 미치게 했나 / 坐使空師意反狂
순양을 지녔으니 어찌하여 감응하리 / 自說純陽何感應
다만 청기(淸奇)하게 생긴 그 의표(儀表) 가장 귀여워 / 但憐奇表最淸揚
만약 들판을 달리는 바람난 소가 아니면 / 亮非走野風牛突
바로 샘을 찾는 목마른 사슴과 같으리 / 又豈奔泉渴鹿忙
여문 이삭에는 몹쓸 곡식이 나오지 않으며 / 穎不復能生槁穀
새로운 잎이 어찌 마른 버들에서 생길쏜가 / 稊何固必出枯楊
오직 친밀한 벗 되기를 기대하거니 / 但將款密期爲友
어찌 잠시인들 떠나 있으려 하겠는가 / 何忍須臾不共堂
떠나갔을 때의 아쉬움은 딴 지역과 같다가도 / 別去尋思如融地
찾아오면 춤출 것인데 하물며 담밖으로 쫓아내겠는가 / 訪來方抃況麾墻
날개를 펼쳐 천리를 날다가도 / 及當軒翥翔千里
조용히 한 방에 자는 때가 있으리 / 得可從容宿一房
복숭아는 본시 말이 없지만 정원에 심겨지기 즐겨하는데 / 桃木無言甘種苑
연꽃은 무슨 뜻이 있어서 못에 심겨지기를 기뻐하는가 / 蓮何有意喜栽塘
강가의 따오기 새끼도 하얀 것을 그리워하고 / 江邊鵠子猶憐白
가지 위의 꾀꼬리 새끼도 노란 것을 사랑한다네 / 枝上鸎雛亦愛黃
더욱이 이 소년은 총명한 천성에다 / 矧此少年生早慧
해박한 학식까지 마냥 간직하여 / 尤於博學飽曾嘗
마치 봄철의 윤택한 숲 같고 / 宛如濯濯春林色
또한 둥근 보름달과도 같네 / 正似團團望月光
침실에 이불을 함께 하니 정의가 진실로 도탑고 / 寢底同衾情苟篤
궁중의 대식을 본받은들 뭐가 해로우랴 / 宮中對食效奚妨
《한서(漢書)》에 보인다.(見漢書)
선풍은 멀리로는 주 한 때에도 들을 수 없었고 / 仙風舊莫聞周漢
또한 가까이는 당 송 때에도 보지 못했는데 / 近古猶難覩宋唐
이 나라에는 사랑이 진정 옥과도 같아 / 國有四郞眞似玉
만고에 전하는 명성 생황처럼 울렸어라 / 聲傳萬古動如簧
진경(眞境)을 구하는 데 수레를 함께 하니 푸른 양산이 펄럭이고 / 採眞同乘飛靑盖
승지 찾아 안장 나란히 붉은 고삐를 잡았으며 / 尋勝聯鞍控紫韁
문하의 천 명의 도제(徒弟)는 친절한 가르침 받았고 / 門下千徒貪被眄
우리나라에는 사선(四仙)을 모실 만한 사람으로 도제를 삼았는데, 사선에게 각기 천 명의 도제가 있었다.(我國以偶仙郞者爲徒。四仙各有一千徒。)
불가에 두 명의 노사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네 / 釋中二老昵爲常
안 상(安常) 등 두 스님에 대해 상인의 시에 언급되었다.(安常等二僧師詩已言)
산에 올라 물을 굽어보니 시야가 얼마나 풍부하며 / 登山臨水觀何富
술 마시며 꽃을 감상하니 그 낙이 황망(荒亡)하지 않구려 / 飮酒看花樂不荒
마침 영특한 재주까지 만나 서로가 부합되니 / 適遇英姿猶吻合
지난 일을 생각지 마오 괜히 마음만 막연하니 / 休追往迹但心茫
명사와 경포를 왜 섭섭해 할 나위 있으며 / 鳴沙鏡浦何須悵
총석과 송정도 상심해 할 필요가 없다 / 叢石松亭不用傷
상인의 시에 언급된 구절이다.(來詩云)
조그만 암자를 넓히려 수축(修築)을 더하고 / 欲闢小庵增締構
조용한 산사에 거처해 세월을 보내니 / 並居精舍度炎凉
나는 그대의 계교가 진정 잘 되었다고 여기오 / 我言子計試爲得
어진 인재 옹호하려 하니 어찌 좋은 일이 아닌가 / 意護賢才不曰良
생각건대 노부가 비록 혼미한 존재이나 / 但念老夫雖已耄
평소 존숙을 높이는 데 매우 신중을 기해 왔다오 / 素高尊宿若爲量
계합(契合)을 맹세했으니 사귐이 깊었고 / 同盟契券如交預
시단에 어울렸으니 기세가 대등하네 / 與戰詩壇尙可當
상인이 평소 박 소년과 시를 지어 서로 주고받았다 한다.(聞師常與朴子酬唱)
은근한 뜻 표하기 위해 전의를 마련하고 / 爲報慇懃邀鈿勒
나 같은 폐인까지 불러 좋은 술 권하며 / 幷呼尫蹇酌瑤漿
또한 운각의 글 잘하는 이도 겸했으니 / 亦兼芸閣能文老
그대는 바로 불문의 유일한 부처일세 / 是卽桑門大法王
깨끗한 마음은 비로소 전생의 묵은 빚 갚았고 / 淸淨始須償宿債
온유한 것은 이미 우리 고향을 싫어했네 / 溫柔久已厭吾鄕
이 좋은 계절에 나다닐 기회 왔는데 / 芳菲嘉節行當逼
병들고 시들은 몸 조금씩 나아지오 / 病憊殘骸漸少康
이 오십 운으로는 이루 다 술회하기 어려워 / 五十韻中難縷悉
낙운인들 앞으로의 화답을 어찌 아끼겠소 / 樂雲寧肯曠來章
운각 이수 낙운(李需樂雲)이 먼저 그 시를 화답했는데, 그 끝 구절이 나에 대해 언급되었으므로 나도 이같이 말한다.(芸閣李需樂雲先和此詩。末句有及於予。故予亦如之。)
[주D-001]연리지(連理枝) : 두 나무의 가지가 붙어 하나가 된 것. 부부의 애정에 비유하기도 한다.
[주D-002]동심화(同心花) : 다른 두 나무의 꽃이 서로 맞붙어 한 꽃을 이룬 것이라 한다.
[주D-003]목독자(牧犢子) : 전국 시대 제(齊) 나라 사람. 나이 50에 아내가 없었는데, 나무하러 들에 나갔다가 장끼와 까투리가 함께 나는 것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치조비조(稚朝飛操)를 지었다. 목독자는 독목자(犢沐子)라고도 한다.
[주D-004]양앙(梁鴦) : 주 선왕(周宣王) 때 목정(牧正). 야생 동물을 잘 길렀으므로 왕이 신임하였으며, 동물들이 잘 따랐다.
[주D-005]횡진(橫陳)을……씹는 듯 : 여색에 마음이 없다는 뜻.《능엄경(楞嚴經)》에 “횡진을 당하면 밀을 씹듯 하라.[當橫陳時 味如嚼蠟]” 한 말에서 온 것인데, 횡진은 미색이 옆으로 눕는다는 뜻이며, 밀은 꿀에 비하여 아무런 맛도 없으므로 무미(無味)한 것을 가리킨다.
[주D-006]여의목(如意木) : 도사가 소지하는 도구의 한 가지로 긁는 데 씀. 옥(玉)과 철(鐵)로도 만든다.
[주D-007]죽부인(竹夫人) : 대오리로 길고 둥글게 만든 것. 여름에 더위를 덜기 위하여 끼고 잔다.
[주D-008]순양(純陽) : 여자와의 관계가 없는 총각의 양기. 도가에서는 순양을 보유하여야 도를 이룬다고 한다.
[주D-009]새로운……생길쏜가 : 《주역》대과괘(大過卦)에 “마른 버드나무에서 움이 돋는다.”라고 한 말을 빗대어 인용한 것이다.
[주D-010]궁중의 대식(對食) : 《한서(漢書)》조후전(趙后傳) 주에 “궁인(宮人)들이 서로 뜻이 맞는 상대끼리 부부가 되는 것을 대식이라 한다.”는 말을 빗대어 인용하였는데, 여기서는 그와 같이 정다운 친구가 되었다는 뜻으로 쓰였다.
[주D-011]사랑(四郞) : 사선(四仙). 신라 때의 네 사람의 국선(國仙)으로 영랑(永郞)ㆍ술랑(述郞)ㆍ안상(安詳)ㆍ남석행(南石行)을 말한다.
[주D-012]존숙(尊宿) : 《관경(觀經)》에 “덕이 높은 것을 존, 나이가 많은 것을 숙이라 한다.” 하였다.
[주D-013]전의(鈿椅) : 자개를 박아서 만든 의자.
[주D-014]온유한 것 : 따뜻하고 부드러운 여체(女體)를 말한 것으로 미인을 온유향(溫柔鄕)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신축년 삼월 삼일에 홍주 태수(洪州太守)로 부임하는 큰아들 함(涵)을 보내며
죽음이 임박한 이 나이에 / 桑楡景云迫
울며 아들 함을 작별하네 / 泣別阿兒涵
묻노라 너의 가는 곳 어디메냐 / 問汝向何處
아득한 남쪽 지방이라네 / 杳杳天之南
전성이 된 너는 무한한 영광이지만 / 專城雖汝榮
작별을 만난 나의 심정 어떠하랴 / 此別吾何堪
칠십이 넘은 이 늙은이가 / 安有大耄翁
어찌 삼년의 기한까지 살아 있겠나 / 留待期年三
이는 분명 영원한 이별이야 / 懸知是永訣
아픈 마음 무어라 표현하랴 / 痛絶那容談
잘 갔다 잘 돌아와서 / 好去好還朝
나라의 중신(重臣)이 되어 / 公府坐潭潭
부디 가문의 명예 떨어뜨리지 말고 / 毋或墮家聲
아무개 아들답다는 칭찬 들어야 하느니 / 人許某家男
생전에는 만날 수 없을지 모르지만 / 眼前雖未見
사후에야 어찌 알아 보지 못할쏘냐 / 地下豈不諳
청백이 제일의 신조가 되고 / 淸白是第一
그 다음은 근신과 겸손뿐이야 / 其次愼而謙
[주D-001]전성(專城) : 한 성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주목(州牧)이나 태수(太守) 등을 일컫는다.
○그 이튿날 혼자 앉아 회포를 서술하다
어제 새벽엔 아들을 보냈는데 / 昨晨送阿兒
오늘엔 찾아 오는 손도 없구나 / 今日無來客
빈 방에 혼자 쓸쓸히 앉았으니 / 空房坐蕭然
술이 있은들 누구와 대작하랴 / 有酒誰與酌
이상하다 이 인생이여 / 咄咄是浮生
죽지 못한 게 유감일 뿐일세 / 未死飜自責
이런 때 누가 옆에 있다면 / 此時若有人
찌푸려진 나의 이마 펴지련만 / 令我解嚬額
한번의 웃음에도 시름이 해소되는 것 / 一笑足銷憂
굳이 풍악 소리가 긴요하지 않네 / 絲竹非所憶
○머리를 빗으며 스스로 개탄하다
모지라진 머리 빗을 나위도 없어 / 頭禿不須梳
짧은 머리가 겨우 한 치 남짓하네 / 短髮僅寸寸
그러나 가끔 억지로 빗는 것은 / 强自容其櫛
잠시나마 가려움증 달래기 위함일세 / 聊以止癢悶
검었던 머리 희뜩거리는 것도 / 紺髮變星星
옛사람은 한스레 여겼는데 / 古人猶或恨
하물며 빗을 머리조차 없음에랴 / 況無髮可梳
지금껏 죽지 못한 게 너무 늦었네 / 不死猶爲晩
썩은 나무 잠시 쓰러지지 않는 건 / 枯木暫不僵
아직 바람이 없었기 때문일세 / 幸無風必偃
○눈병이 오래도록 치료되지 못하였는데 남들이 동자(瞳子) 안에 흰 막(膜)이 끼었다고 하므로 이를 개탄하며
눈 밝은 건 달 밝은 것과 같은데 / 眼朗若明月
나같이 조그만 사람이 / 大抵如我小
동자 안에 백막까지 끼어 / 瞳中反有膜
하찮은 장애가 마치 구름 덮인 듯하네 / 微礙如雲繞
의원의 말에 용뇌가 아니면 / 醫云非龍腦
끝내 치료될 수 없다 하므로 / 此病終莫療
여기저기 구해 봤으나 얻지 못하고 / 處處求未得
며칠 동안 심란히 걱정만 하다가 / 數日憂悄悄
의외에 귀문에서 얻게 되어 / 忽從貴門得
처음에는 매우 기뻐했는데 / 得之初喜笑
의원의 말에 이는 진짜가 아니고 / 醫言此非眞
그 모양만 진짜를 닮았다고 하네 / 其形但相肖
그럼 끝내 치료될 수 없단 말인가 / 畢竟難理歟
저 달은 먹혔다가도 다시 밝아지는데 / 月蝕猶復皎
하기야 달은 본시 신물인데 / 月者是神物
어찌 나와 비교가 되겠는가 / 而我亦何較
이러다간 마치 습 주부와 같이 / 殆成習注簿
죽을 때까지 이 모양 되고 말으리 / 臨死作斯貌
하늘이 끝내 버리지만 않는다면 / 天若不終棄
혹 옛 눈을 찾을지도 모르지 / 儻復舊睛瞭
다만 부르짖으며 하늘에 기원할 뿐 / 哀號但祈天
약석으론 가망이 없는 일이야 / 藥石非所要
[주D-001]습 주부(習注簿) : 진(晉) 나라의 습착치(習鑿齒)를 말한다.
○삼월 팔일에 족인(族人) 채 중랑(蔡中郞)과 크게 취하여 노래까지 부르다
나같이 눈병 앓는 사람이 / 如予病眼者
눈감고 누웠으면 뭐가 어째서 / 閉目臥如何
도리어 자네와 어울려 / 迺反與吾子
잔뜩 취해 노래까지 불렀단 말가 / 大醉放長歌
두 눈이 더욱 아찔하여 / 更益眩雙目
어지러이 현화(玄花)가 나타나누나 / 掩乳見玄花
술을 끊지 않으면 / 飮酒若不已
으레 병이 더치게 되는데 / 是必病所加
알고도 끝내 끊지 못하니 / 知之竟未斷
병이 더친들 뉘를 원망하랴 / 雖病又何嗟
○그 이튿날 또 짓다
앓을 적에도 술을 사절 못하니 / 病時猶未剛辭酒
죽고 나야 비로소 잔을 놓으리 / 死日方知始放觴
맑은 정신으로 살아 있은들 무슨 재미랴 / 醒在人間何有味
아예 취하다 가는 게 도리어 좋다네 / 醉歸天上信爲良
○또 눈병을 슬퍼하다
나는 죽는 것도 두렵지 않으니 / 我尙不畏死
병이야 될 대로 되려므나 / 此病堪任置
아픔을 끝내 이기기 어려운 건 / 其通竟難堪
이 몸뚱이가 있는 때문일세 / 爲有此身耳
육신이 본시 허깨비인 줄 아는 건 / 四大本非眞
어느 정도 이치를 깨달은 경지인데 / 頗亦悟斯理
나는 지금 아픔을 느끼고 있으니 / 如今覺痛覺
《능엄경(楞嚴經)》필릉가바차(畢陵伽婆蹉) 조에 있는 말. 필릉가바차는 부처님 때의 비구(比丘)로, 거만한 습성이 남아 있었다.(楞嚴畢陵伽婆蹉所云 )
삼매의 경지에 이르지 못함일세 / 未入三摩地
○진양공(晉陽公)이 용뇌(龍腦)와 의관(醫官)을 보내어 눈병을 치료하게 한 것을 사례하다 병서(幷序)
제가 눈동자에 막(膜)이 꼈는데 의원의 말에, 용뇌가 아니면 치료하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용뇌란 세상에서 손쉽게 얻어지는 약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황송하기 이를 데 없으나 하는 수 없이 감히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저하(邸下)께서 천금으로도 구할 수 없는 약을 주시고 또 명의(名醫) 구 낭중(仇郎中)까지 보내어 치료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천지와 부모 같은 은덕입니다. 어찌 말로 다 이르겠습니까. 너무도 감격하여 눈물을 뿌리며 감사하는 시(詩) 3수를 지어 좌우(左右)에 올립니다. 운운.(某値目瞳有膜。醫云非龍腦難理。此藥非人間所常得也。以是雖甚惶懼。不得已仰黷令鑑。伏蒙邸下旣賜以千金難覓之藥。又特遣名醫仇郞中來理。此實天地父母之恩也。曷勝道哉。感至揮淚。因成謝詩三首。奉呈左右云云。)
용뇌는 진정 백약의 왕으로 / 龍腦眞爲百藥王
세상에서 손쉽게 얻기 어려운데 / 人間處處覔難輕
별안간 천금 같은 은혜를 받으니 / 一朝得受千金賜
봉투를 떼기도 전 눈이 벌써 환해졌네 / 未啓緘封眼已明
의원이 막 가난한 집 문 앞에 당도하자 / 醫王纔到篳門前
옷차림 갖추지 못한 채 허겁지겁 맞았네 / 不覺衣裳倒且顚
겨우 한 마디 말에 고명한 의술 알겠어라 / 方接一言知術妙
창공과 편작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네 / 倉公扁鵲肯同肩
체면 불고하고 약을 빈 것은 나의 딱한 사정인데 / 冒顔乞藥出吾情
특별히 명의까지 보냈으니 의외의 영광이네 / 特遣名醫意外榮
다행히 좋은 방문 있어 저의 눈 밝아진다면 / 若借良方淸我眼
일생 동안 축수할 것을 신명에 맹세하려네 / 一生祝壽質神明
[주D-001]창공(倉公)과 편작(扁鵲) : 창공은 한(漢) 나라의 명의(名醫)인 순우의(淳于意)이고, 편작은 춘추 시대의 명의 진월인(秦越人)이다.
○또 진양공이 쌀을 보내준 것에 사례하다 병서(幷序)
저는 본시 궁박한 사람입니다. 명색은 비록 재관(宰官)이었지만 빈한하기 이를 데 없는 지아비로, 녹봉을 받은 적이 뜸하여 끼니조차 거른 지 오래였다가 의외에 영공(令公)께서 백미(白米) 10곡(斛)을 보내 주시니, 온 집안이 기뻐 손뼉을 치면서 함께 만년의 수(壽)를 빌었습니다. 이 은혜는 참으로 한량이 없습니다. 감격스런 마음을 어찌 새삼 말하겠습니까. 눈물은 밖으로 흐르고 정(情)은 속에서 감동된 나머지 감사하는 시 1수를 지었습니다. 운운.(某本窮薄人也。名爲宰官。貧甚匹夫。受祿亦疏。在陳日久。忽蒙令慈惠送白粲十斛。一家喜抃。同祝令壽萬年。恩固不貲。感何更詰。涕流于外。情動於中。因課成謝詩一首云云。)
생계에도 옹졸한데 하물며 건강이랴 / 拙於生事況謀身
병에 끙끙거리는 데다 끼니조차 어려워 / 被病呻吟又在陳
흉년이 들었으니 국고의 옹색함을 알겠고 / 歲儉已諳邦廩乏
녹봉이 뜸하니 나의 집 가난함을 깨닫겠네 / 俸疎尤覺我家貧
의외에 한 서찰이 귀문에서 날아오니 / 一牋飛出朱門邃
送牌江庫使送
열 곡의 쌓인 쌀이 알알이 새로워라 / 十斛來堆白粒新
이같은 은혜 어찌 오늘뿐이던가 / 此賜豈惟今日始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전부터였네 / 緬思元自昔年頻
벼슬 시켜주었으니 은혜 바다와 같고 / 靑雲蹴送恩如海
거듭 쌀을 보냈으니 덕택이 봄날과 같아라 / 粲玉投連澤似春
얼굴이 누렇던 하인은 저마다 손뼉을 치고 / 菜色僮奴同手抃
창자 비었던 처자는 웃음이 활짝 폈네 / 蔬腸妻子解顔嚬
기뻐서 마구 몰려든 이는 친족들이요 / 欣來滿室皆親屬
축하하러 문을 메운 이는 이웃들일세 / 賀到塡門是近隣
수를 비는 정성에 하늘도 감동하리 / 祝壽丹誠天亦感
향 피우며 저 대년의 춘나무를 가리키오 / 焚香遙指大年椿
[주D-001]대년(大年)의 춘(椿)나무 : 대년은 고년(高年)이나 장수(長壽)를 가리킨다.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에 “상고에 큰 춘나무가 있었는데, 8천 년을 봄으로 하고 8천 년을 가을로 한다.” 하였으므로 부모나 노인의 장수를 빌 때에 춘수(椿壽)ㆍ춘령(椿齡)이란 말을 쓴다.
○삼월 십사일에 큰 우박이 떨어진 데 대하여.[三月十四日。大雨雹。二首○雙韻 ]
우박은 음이 양을 위협한 데서 생기는데 / 雹者由來陰脅陽
혹은 치가 우를 충동한 까닭이라고도 하네 / 人云亦自徵動羽
다행히 새들이 맞아 죽은 일이 없으니 / 幸無飛鳥中輒殭
하평 때의 도끼보다 큰 것을 면하였네 / 免似河平大於斧
크기가 말머리나 계란만하다손 치더라도 / 大如馬首如鷄子
성인만 위에 있으면 괴변이 안 된다고 하는데 / 上有聖人不爲異
《춘추좌전(春秋左傳)》에 “성인이 위에 있으면 아무리 우박이 떨어져도 재앙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左傳云。聖人在上。雖有雹。不爲災也。)
하물며 이번엔 겨우 매실(梅實)만하니 / 況此僅同梅子耳
다만 아이들의 장난감에 불과하네 / 團團但作兒童戲
[주D-001]치(徵)가……까닭 : 오성(五聲) 중에 치는 화(火)로서 맹하(孟夏), 우(羽)는 수(水)로서 맹동(孟冬)에 속한다. 즉 이것은 화(火)가 수(水)를 충동한다는 뜻이다.
[주D-002]하평(河平) : 한 성제(漢成帝)의 연호이다.
○또 오언(五言)으로. 쌍운(雙韻)
어그러진 양과 울결된 음에서 생기는 것을 / 愆伏所自化
오행지(五行志)에 “우박은 모두 양이 어그러지고 음이 울결된 소치이다.”고 하였다.(五行志。凡雹。皆愆陽伏陰。)
이름하여 우빙이라 하는데 / 名之曰雨氷
《설문(說文)》에 “우박은 우빙이다.”고 하였다.(說文。雹雨氷也。)
맹렬한 타격 기왓장을 던지는 것 같아 / 打猛如擲瓦
丸當作瓦
모퉁이로 피하느라 모두들 야단일세 / 隈屋避奔騰
○옛 제비가 찾아온 데 대하여 2수
날아오는 한 쌍의 저 제비 / 翩翩一雙鷰
옛 집을 잊지 않고 있었구나 / 知有舊巢在
애써 나의 집 찾아 주니 / 勤尋我宅來
의당 친구로 대우하리 / 當以故人待
번질번질한 꼬리는 예와 같고 / 涎涎尾猶存
조잘대는 부리는 변함 없네 / 喃喃舌不改
춤추는 맵시는 초 나라 궁녀의 허리인데 / 舞轉楚宮腰
산뜻한 그 모습이 참으로 귀여워라 / 便嬛眞可愛
앞으로 몇 해나 더 구경하려나 / 能復幾年看
늙은 나는 다시 못 볼까 하노라 / 吾老恐不再
턱은 반 장군과 같고 / 頷似班將軍
허리는 조 황후와 같은데 / 腰如趙皇后
너는 비록 하찮은 미물이지만 / 多渠尙微禽
언제나 옛 집을 못 잊어 하누나 / 眷眷不忘舊
[주D-001]턱은……같고 : 부귀(富貴)의 상(相)을 말한다. 반 장군(班將軍)은 동한(東漢) 때의 명신인 반초(班超). 그는 일찍이 상자(相者)에게 상을 보았더니 상자는 “당신은 제비의 턱에 범의 목이니 만리후(萬里侯)에 봉해질 것이다.” 하였는데, 그는 그 후 과연 서역(西域)을 평정한 공로로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後漢書 班超列傳》
[주D-002]허리는……같은데 : 몸매가 날씬하여 나는 제비처럼 춤을 잘 추는 미인을 말한다. 조 황후(趙皇后)는 한 성제(漢成帝)의 비(妃)인 조비연(趙飛燕). 그녀는 나는 제비와 같다 하여 비연이란 칭호를 얻었다 한다.
○미인과 희롱하는 꿈을 깨고 나서 3월 15일에 지었다.
내 나이 지금 칠십 넷이라 / 我年七十四
방사(房事)를 끊은 지 오래인데 / 久斷衾中事
어찌해 꿈속에서 / 云何夢魂中
우연히 미인과 희롱했을까 / 偶與美人戲
숱 많은 머리는 까만 구름 같고 / 鬒髮嚲烏雲
맑은 눈동자는 가을 물 같았네 / 明瞳注秋水
어찌 은근히 집적거리다 뿐인가 / 豈惟以心挑
소매 속의 팔까지 비벼대며 / 摩撫袖中臂
옥 같은 뺨 슬며시 드러내고 / 佯若露頩頰
이어 살며시 웃어 보이더니 / 未幾開笑齒
선뜻 나에게 접근하여 / 迺反邀我愛
온갖 교태 다 부렸어라 / 解作百般媚
평소 꿈이나 생시가 같다 하여 / 嘗謂夢覺同
이로써 생과 사를 비례하였네 / 以此例生死
나는 이미 색욕을 끊었는데 / 我今已斷慾
꿈속에선 왜 그렇지 못하였나 / 夢裏何未爾
이러다가 연이어 훈습(熏習)되어 / 因恐比所熏
깨끗한 마음 자리가 / 淸凈一心地
- 원문 2자(字) 빠짐 - 지금만도 못할 거라고 / □□不如今
괜히 스스로 의심되네 / 妄意自疑耳
돌이켜 생각하면 이 세계는 / 飜思是器界
일체가 다 꿈속일세 / 一切皆夢寐
마등가 또한 이 꿈인데 / 摩登伽亦夢
너를 유혹한 자 누구란 말가 / 留汝者誰是
다만 경계(境界)를 해탈하면 / 但得境解脫
한 바탕 꿈에서 깬 것 같거든 / 如寤一場睡
하물며 꿈속의 꿈을 가지고 / 況以夢中夢
무슨 진위를 의심할 나위가 있으랴 / 而疑眞與僞
이 마음을 참이라 이르지 말라 / 毋謂此眞心
생사가 다를지도 모르네 / 生死或有異
[주D-001]마등가……누구란 말가 : 《능엄경(楞嚴經)》에 “아난(阿難)이 밥을 빌러 나갔다가 음녀(淫女)인 마등가(摩登伽)의 유혹에 빠졌을 때, 부처가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보내어 음녀의 마술을 깨뜨리고 구출했다.”는 데서 인용한 말이다.
[주D-002]경계(境界) : 인식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을 말한다.
夢與美人戲。覺而題之。三月十五日也
我年七十四。久斷衾中事。云何夢魂中。偶與美人戲。鬒髮嚲烏雲。明瞳注秋水。豈惟以心挑。摩撫袖中臂。佯若露頩頰。未幾開笑齒。迺反邀我愛。解作百般媚。嘗謂夢覺同。以此例生死。我今已斷慾。夢裏何未爾。因恐比所熏。淸淨一心地난001。▣▣不如今。妄意自疑耳。飜思是器界。一切皆夢寐。摩登伽亦夢。留汝者誰是。見楞嚴 但得境解脫。境解脫則皆如夢事 如寤一場睡。況以夢中夢。而疑眞與僞。毋謂此眞心。生死或有異。
[난-001]地 : 地下二字缺
○그 이튿날 또 미인과 희롱하는 꿈을 깨고 나서
나는 지금 아내와 / 我今與家婦
침실을 달리한 지 벌써 오랜데 / 異寢已幾年
네가 고독한 나의 잠자리에 / 汝幸我孤宿
자주 와 교태를 부리누나 / 頻來媚嬌姸
인간의 이런 관계는 / 人間遮箇事
전편에 이미 다 말했는데 / 已悉於前篇
어찌 받아들이지 않고 / 胡不信受之
자꾸 꿈속에 나타나는가 / 入夢踵相連
육체는 비록 작동할 수 있지만 / 革囊雖見試
불꺼진 이 마음 어찌 다시 살아나랴 / 灰心寧復燃
들으니 도의 경지에 이른 이에게는 / 吾聞入道者
으레 마군(魔軍)이 먼저 방해한다는데 / 魔必先妨旃
네가 곧 그런 유인지도 모르니 / 汝豈此類歟
지체 말고 어서 떠나려므나 / 去矣勿稽延
○시랑 이수가 유 제주(庾濟州) 홍개(弘盖) 를 전별한 회문시를 차운한 두 수 (次韻李侍郞需餞庾濟州 弘蓋 廻文 二首 )
지평선 저 너머 머나먼 길 전송할 때 / 漫長路垠送遐征
눈물 어린 깊은 정감 스스로 알겠네 / 淚墮方知自感情
시랑이 태수를 전별하는 정감을 말한다.(代君送州之意 )
파도 잔잔하니 무사히 바다를 지날 것이요 / 瀾涉穩堪尋過海
술이 얼근하니 자꾸 잔을 권하곤 하네 / 酒傾醺好更斟觥
천성이 옹졸한 나는 그저 시골에 묻혀 있어야 하고 / 酸儒拙合栖幽巷
기량이 넓은 그대는 어려운 성을 진압할 만하며 / 曠度宏宜鎭劇城
환희에 찬 춤이 온 고을에 충만하니 명성이 상등(上等)에 오르고 / 歡舞遍州名必最
평화스런 풍류 한 나라에 퍼지니 예부터 그곳을 부러워하였지 / 管絃專國古稱榮
그곳은 옛날 탐라국(耽羅國)이었기 때문이다.
바다에 뜬 하늘 좁게만 보이니 바위길로 오가고 / 團天仰狹廻巖峽
지대가 낮고 길이 끊기니 귤 고장에 들어가네 / 沮地行窮入橘橙
나는 관서(官署)에서 영존(令尊)과 함께 있던 친구인데 / 官省共參叨父友
나는 그의 부친과 두 차례나 같은 관서에 함께 있어, 친절한 사이였다.
그대가 지금 가문을 잘 계승한 게 반가워 / 喜君於世繼門成
위는 태수에게 준다는 뜻으로 지은 것인데, 부쳐 줄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끝없는 세월은 빨리도 흘러가는데 / 漫漫遣景迅徂征
다행히 한가한 몸으로 자유로이 지내네 / 幸得偸閑退縱情
의욕이 사라지니 마음이 안정됐음을 알겠고 / 瀾息已知心止水
나이는 많았어도 술잔 다루는 손길은 빠르며 / 羽騰猶快手飛觥
말이 너무 지루하니 시자(侍者)를 연속 교체하게 되고 / 酸辛話可連更僕
내키는 대로 노니니 온 성안을 두루 쏘다니네 / 放逸遊期遍匝城
담소를 나누는데 오직 그대와 뜻이 부합되는데 / 歡笑與君唯合意
예까지 찾아 주니 나에게는 더없는 영광일세 / 訪來欣我覺生榮
함께 뛰어가서 살구를 맛보고 싶고 / 團跳弄欲同嘗杏
또한 입맛을 위해 귤도 나눠 먹어 보세나 / 迸滑枯將共剖橙
좋은 관직에 문장까지 풍부해 / 官職美多兼藻贍
천만금 같은 시를 지어 보였구려 / 萬千金敵一篇成
위는 회포를 서술하여 시랑에게 준 것이다.
[주D-001]말이……교체하게 되고 : 《예기》유행(儒行)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 것인데, 주인의 하는 말이 너무도 많아 옆에 있는 시자가 먼저 피로하게 되므로 시자를 자꾸 교체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次韻李侍郞需餞庾濟州 弘蓋 廻文 二首
漫長路垠送遐征。淚墮方知自感情。代君送州之意 瀾涉穩堪尋過海。酒傾醺好更斟觥。酸儒拙合棲幽巷。曠度宏宜鎭劇城。歡舞遍州名必最。理最 管絃專國古稱榮。古耽羅國 團天仰狹廻巖峽。沮地行窮入橘橙。官省共參叨父友。子與嚴君再同省官。因相親。喜君於世繼門成。
右一擬贈太守。可因風寄之。
漫漫遣景迅徂征。幸得偸閑退縱情。瀾息已知心止水。羽騰猶快手飛觥。酸辛話可連更僕。放逸遊期遍帀城。歡笑與君唯合意。訪來欣我覺生榮。團跳弄欲同嘗杏。逬滑枯將共剖橙。官職美多兼藻贍。萬千金敵一篇成。
右二敍懷贈君
○임 상국(任相國)의 방문을 사례하다 병서(幷序)
어제 구차한 나의 집에 상국께서 왕림하셨으나 그만 총총히 떠나시고 말았소. 조용히 담화를 나누지 못하여 마음에 매우 섭섭하므로, 시 3수를 지어 드리는 바이오. 운운.(昨蒙相國枉顧蓬門。以悤悤廻轡。未得從容攀話。不無遺恨。因得詩三首奉寄云。從來宰相是天星。過我閑門分外榮。但恨怱怱廻玉轡。未容片刻話平生。)
예부터 재상은 별의 정령(精靈)에 응한 신분인데 / 從來宰相是天星
보잘것없는 날 찾아 주니 과분한 영광일세 / 過我閑門分外榮
그런데 총총히 옥 고삐를 돌림으로써 / 但恨怱怱廻玉轡
잠시나마 깊은 정담 나누지 못한 게 섭섭하오 / 未容片刻話平生
병중에 또 눈까지 어두워져 / 病中加又眼昏昏
감히 평복 차림에 상국을 맞이했네 / 燕服輕迎相國尊
아무리 빈궁한 안항일망정 술은 남아 있는데 / 顔巷雖窮猶有酒
바쁜 걸음으로 잔 나눌 기회를 주지 않았구려 / 廻車不許與開樽
나는 본시 영존의 문하 사람으로 / 先公門下玷門人
사사로운 은정도 남달리 받았었네 / 更荷恩私異等倫
그의 부친은 나를 특별히 대우하였다.(先公別待我 )
그때 스물아홉 사람은 다 세상을 떠났는데 / 二十九人皆鬼錄
상국은 아직 남은 이 몸을 불쌍히 여겨 주오 / 願公憐我尙存身
[주D-001]안항(顔巷) : 안자 누항(顔子陋巷)의 준말. 공자(孔子)의 제자인 안연(顔淵)은 벼슬하지 않고 시골에 있어 집이 매우 가난했으므로 빈궁한 것을 가리킨다.
○본성(本省)에서 보낸 학령선(鶴翎扇)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눈빛 종이는 학이 날개를 편 듯하고 / 雪紙鶴飜翎
금빛 고리는 쥐가 눈을 굴리는 듯하네 / 金環鼠開目
세상에서는 금빛 고리를 쥐 눈에 비유한다.(世以金環爲鼠目)
펴지고 겹쳐지는 건 대쪽 때문인데 / 張翕因筠籤
맑은 바람이 솔솔 이누나 / 翩翩得風足
여름철에 손에 들고 흔들면 / 六月手中搖
모진 더위 어디로 사라지는지 몰라 / 炎光何處伏
이는 의당 여러 사람에게 나눠 주어야 해 / 宜哉分與人
청량한 맛을 어찌 차마 혼자만 차지하랴 / 引凉那忍獨
○눈병으로 꽃구경은 못하고 개탄만 하다
나의 병은 하늘이 내린 것인데 / 病是天之爲
꽃구경 누가 못하게 하였으랴 / 看花誰所破
하늘이 날 불쌍히 여기지 않으니 / 天旣不吾憐
봄도 따라서 나를 저버리누나 / 春亦孤負我
하늘이여 꽃 피우는 권한은 있으면서 / 已有開花權
어찌 나의 눈은 환하게 하지 못하는가 / 開目何未可
○박 학사(朴學士) 인저(仁著) 에게 보내다 병서 (寄朴學士 仁著○幷序 )
나는 눈병으로 꽃구경을 하지 못하므로 어제도 시를 지어 개탄하였는데, 이달 25일에 학사가 신정(新亭)에서 제공(諸公)들을 초대하여 백엽도화(百葉桃花)를 구경하려 할 뿐 아니라 나까지 초대하러 왔구려. 나는 왼쪽 눈병 때문에 참여할 수는 없으나 그 정의를 잊을 수 없어 시를 지어 보내오. 이는 이 모임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싶지 않은 때문이오.(予以病目失看花。昨方作詩有嘆。今月二十五日。學士於新亭。欲邀諸公賞百葉桃花。亦親來邀予。予以左目患未赴。然不能忘情。因得詩寄呈左右。蓋不欲虛負此會耳。)
조금 전에 살구꽃이 피었다던데 / 俄聞緋杏開
또 붉은 복숭아꽃이 피었다는구려 / 又報紅桃綻
더욱이 군후의 집 백엽도화야 / 何況君侯家
얼마나 보기 좋은 꽃이던가 / 百葉最堪翫
초대에 선뜻 가지 못하는 건 / 邀之未敢赴
어찌 이 눈병 때문만이겠는가 / 豈以目爲患
대체 누가 나와 원한이 있다고 / 不知誰作讎
이 눈을 방해하는지 모를레라 / 妨我看花眼
멀리 상상해 보면 신정 위에는 / 遙想新亭中
손들의 의관이 찬란한 가운데 / 坐客文彩煥
좋은 술 느긋이 들이켜고 / 輭斟霞液醇
고운 꽃 마음껏 구경할뿐더러 / 快賞霞葩爛
미녀도 정녕 있을 테니 / 必定有倡姬
어찌 풍악인들 없을쏜가 / 亦豈無簫管
섭섭히 바라보노라 고개 아픈 줄 모르니 / 悵望費翹頸
세정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나 보구려 / 世情猶未斷
꼭 술만을 마시고 싶어선 아니지만 / 非爲要飮酒
나의 눈병이 정말 안타깝기만 하오 / 我病眞可嘆
아뭏든 이 좋은 초대받고도 / 亦恨被嘉招
못가는 게 무척 부끄럽구려 / 未參深愧赧
병 나으면 다시 달려갈 수는 있지만 / 病復尙可趨
꽃 저버린 뒤에야 무슨 소용인가 / 其奈花飄散
○박 학사의 화답에 차운하다
그대의 집에 옛 친구를 맞아 / 君家邀舊伴
함께 이름난 꽃구경했다니 / 共賞名花綻
아 나 역시 마음은 끌렸으나 / 嗟我亦情鍾
병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였네 / 緣病失同翫
늘그막에 자유로이 거닐려 했는데 / 老境期逍遙
어째서 이런 병을 만나게 되었을까 / 胡奈逢此患
스스로 봄이 원망스럽기만 하오 / 亦自㤪東君
내 눈부터 틔워 주지 않으니 말일세 / 不先明我眼
나는 좋은 꽃철 헛되이 보냈지만 / 虛遣好花開
그 곳엔 화려한 보장(步障) 죽 늘어졌겠지 / 誇張紅錦煥
이어 소년 시절이 그리워져 / 因戀少年時
바위 밑에서도 전광처럼 빛났다오 / 巖下電爛爛
눈은 병들었으나 손은 병들지 않아 / 目病手不病
이처럼 붓을 놀려 한 편을 적어 보오 / 一篇聊弄管
그대의 귀중한 화답받고 나니 / 煩公枉來章
나의 울적한 심정 싹 가시어 / 使我鬱情斷
그 뜻 고맙고 말 또한 간곡해 / 意厚語還眞
세 번 읊고 세 번 감탄하였네 / 三復又三歎
남쪽으로 놀러 가자는 말에는 / 但見南遊辭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만 하오 / 而我得不赧
더욱이 이 퇴물(退物)이 추천할 길 없어 / 退相無由達
그대를 놀고 있도록 만들었구려 / 令君此冗散
그는 오랫동안 실직되어 있었다.(父久失官)
[주D-001]보장(步障) : 먼지를 막기 위해서 대나무를 세워 간살을 만들고 붉은 비단을 드리워 길 양쪽에 치는 막이다.
[주D-002]바위……빛났다오 : 진(晉)의 왕융(王戎)의 안광이 워낙 번쩍거리므로 배해(裵楷)가 그를 보고 “마치 어두운 바위 밑에서 번쩍이는 전광(電光)과 같다.”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종이가 남았기에 또 한 절구를 지어 남쪽으로 놀러 가자는 뜻을 거절하다
달은 먹혔다가 다시 밝아지고 / 月食行當復
줄은 끊겼어도 다시 이을 수 있지만 / 絃絶亦可續
남쪽 놀이는 그만두는게 좋겠구려 / 南遊幸勿卜
그가 화답한 장편시에 “다음해에 남쪽으로 놀러가자.”고 하였다.(所和長篇云。他年卜南遊。)
나는 끝내 천록을 피하지 못할 것 같아서일세 / 意莫逃天祿
[주D-001]천록(天祿)을……같아서일세 : 천록은 술을 가리킨다. 즉 이 말은 몸이 아파 술을 먹을 수 없는데 남쪽으로 놀러가면 술잔을 피할 수가 없으므로 못 가겠다는 뜻이다.
○뒷동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끝없이 망망한 창파에 / 滄海杳茫茫
저 외로운 배 어디로 가는지 / 孤舟何處適
제발 나도 함께 가고파 / 我願與之歸
혹 봉래도에 닿을지 뉘 아나 / 儻向蓬萊碧
아예 바라보지 않는 게 좋아 / 不如不望之
괜히 내 마음만 서글퍼지니까 / 空使吾心惻
하늘에라도 훌쩍 오르고 싶은데 / 焉知天上升
바다와 산이 꽉 막혔을 줄이야 / 反恨海山隔
아 나는 끝내 진세에 속박되어 / 嗟予猶滯凡
여기도 저기도 오가지 못하누나 / 彼此迷所卽
○심사가 울적하여. 쌍운[鬱懷有作 雙韻 ]
조그만 집안에 엎드려 있으니 / 矮屋身隈隱
한낱 보잘것없는 늙은이일세 / 一箇霜鬚翁
가끔 술 한 모금씩 마시곤 하지만 / 有時一滴酒霑吻
가슴을 꽉 메운 온갖 시름 씻을 길 전혀 없어 / 猶未寫千愁萬慮塡胸中
어찌해야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와 마주앉아 술 마시며 붓 휘둘러 / 安得與太白子美對醉橫筆陣
울적한 심사 털어내어 긴 무지개처럼 뻗쳐 볼까 / 吐出鬱氣和長虹
○정 학사 이안(而安) 가 보낸 술을 들며
정군이 나를 생각해 / 丁君顧我厚
한 병의 술 보냈네 / 送此一壺酒
꾹 참고 맛보지 않으려 했으나 / 能忍不之嘗
그 고마운 뜻 저버리기 어려워 / 此意良難負
왼눈은 비록 막(膜)이 끼었으나 / 左目雖被翳
입술과 혀는 다행히 탈이 없고 / 脣舌幸無憊
두 손 또한 움직일 수 있으니 / 兩手亦得存
마신들 뭐가 나쁠쏜가 / 特飮庸何害
○박 학사가 또 꽃구경 못한 것에 화답한 시를 차운하다
남아가 어찌 홀아비로 지낼쏜가 / 男兒豈可鱞
여자란 터진 옷 꿰매어 주게 마련인데 / 女必縫衣綻
그대는 어찌 기첩을 거절하여 / 君胡黜妓妾
꽃구경에 참여시키지 않았던가 / 不趐拚所翫
더욱이 놀고 있은 지 오래건만 / 況復投閑久
조금도 걱정하는 기색 없고 / 傲然不自患
돌돌하며 서공하는 여가에 / 咄咄書空餘
손과 벗들의 기쁨을 도모하기 위해 / 圖悅賓朋眼
정자를 깨끗이 소제하고 / 引掃一茅亭
함께 복숭아꽃 감상하니 / 共賞紅桃煥
푸짐한 술잔은 연신 횟수가 거듭되고 / 想倒酒波濃
진귀한 시축(詩軸)은 서로 앞을 다투었건만 / 爭鋪詩錦爛
나는 병으로 참여할 수 없어 / 予以病未參
노래와 풍악 소리 듣지 못하였네 / 莫預聞歌管
여수는 나라 남단(南端)에 위치한 곳으로 / 麗水國之南
하늘이 멀어 꿈도 꾸어지지 않는구려 / 天遠夢猶斷
나도 꼭 한 번 다녀오고 싶은 터에 / 予欲歸去來
어찌 한숨인들 나오지 않을쏜가 / 能忍不興歎
이제 남쪽 놀이를 그만두었다고 하니 / 今將弭歸意
그의 시에 “남쪽으로 놀러 가려는 마음이 없어졌다.”고 하였다.(來詩云卜南心已斷 )
나의 부끄럽던 얼굴이 조금 펴지는 듯하네 / 頗解吾顔赧
나야 어찌 얼굴만 부끄러울 뿐이겠는가 / 吾何獨赧顔
산인이 제 버릇을 버리지 못한 탓일세 / 散人難救散
[주D-001]산인(散人) : 벼슬에 얽매이지 않고 한가히 자적하는 사람.
○다시 화답한 절구(絶句) 쌍운(雙韻)
그대는 반드시 복직될 줄 아오 / 知君必牽復
어찌 끊겼다가 이어지는 이치 없겠는가 / 理豈無斷續
금년에는 기쁜 일 점칠 수 있으니 / 今年喜可卜
하늘과 사람이 도와 녹을 누리게 되리 / 天人申立祿
운명으로 말하였다.(以命家言之)
○박 학사의 재차 화답에 차운하다
경서는 책상 위에 가득 놓였고 / 經卷橫在案
파초잎은 아직 싹트지 않았네 / 芭蕉心未綻
경서도 미처 보지 못하거든 / 經猶莫披看
하물며 다른 것을 구경하랴 / 何況多般翫
백양이 말하지 않았던가 / 伯陽不言乎
이 육신이 있는 게 병통이라고 / 有身爲之患
만약 이 육신만 없다면 / 如無此一身
어찌 어둡고 밝은 눈이 있겠는가 / 安有昏明眼
그대는 진정 시백으로 / 夫子眞詩伯
재화가 세상에 빛나 / 映世才華煥
붓 끝에는 풍뢰가 일고 / 筆下風雷騰
뱃속에는 금수가 찬란하네 / 腸中錦繡爛
사문에 만약 그대가 없다면 / 斯文若無君
마치 관음(管音)이 없는 것과 같아 / 譬之於微管
음률을 아는 이 그 누구란 말가 / 知音復有誰
유수곡(流水曲)이 바야흐로 끊어질 것인데 / 流水絃方斷
호연히 물러날 뜻 두었으니 / 浩然有歸心
나로 하여금 긴 한숨 짓게 하네 / 令我起長歎
큰 그릇이 이처럼 파묻혀 있으니 / 大器屈如此
조관(朝官)들이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 在列能不赧
국공이 인재를 사랑하고 있으니 / 國公愛人材
어찌 끝내 이대로 버려둘 리 있겠는가 / 畢竟寧敎散
[주D-001]백양(伯陽) : 노자(老子)의 자(字).
[주D-002]유수곡(流水曲) : 훌륭한 곡조를 말한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백아(伯牙)가 비파를 타면 종자기(鍾子期)가 그것을 감상하였는데, 백아가 산을 두고 타거나 유수를 두고 타거나 하면, 그것을 금방 알고 감탄하였다.” 한 데서 온 말로, 후세에서는 훌륭한 악곡(樂曲)을 이렇게 불렀다.
○다시 화답한 절구
주역을 점쳐 복괘(復卦)를 얻었으니 / 連山得卦復
그대는 반드시 복직될 것인데 / 知子官必續
어찌 다시 점칠 필요 있겠는가 / 爾後更何卜
점차 나아가 은총을 얻게 되리 / 駸駸逼寵祿
○사월 육일에 송광산(松廣山)의 도자(道者) 무가(無可)가 볼일로 서울에 왔다가 산으로 돌아가면서 청한 시
그대는 일찍이 깊은 산에 은거했으니 / 子曾深遁碧山崖
불문(佛門)의 인연으로 옛집을 하직함일세 / 有底因緣別舊栖
시세에만 따르는 세상을 싫어하거니 / 自說滔滔一天地
어찌 동북이며 서남을 따지겠는가 / 何東何北又何西
올 땐 그처럼 쉬웠는데 갈 땐 어찌 이처럼 빠른가 / 來何容易去何忙
작별에 임하니 마음이 괜히 서글퍼지는구려 / 臨別無端暗斷腸
만약 연사의 주인이 나를 묻거든 / 蓮社主人如問我
그 절의 주지(住持)인 대선사(大禪師)를 말한다.(指社主大禪師)
깊이 숭배하고 있다고 대답해 주오 / 爲言深仰法中王
[주D-001]연사(蓮社)의 주인 : 진(晉) 나라 때의 백련사(白蓮社)의 중심 인물이었던 혜원 선사(慧遠禪師)를 가리킨다. 그는 일찍이 석(釋)ㆍ도(道)ㆍ유(儒)의 명인들을 여산(廬山)의 호계(虎溪) 동림사(東林寺)에 모아 백련사를 결성했다.
○무가(無可)를 수반(隨伴)한 탁연(卓然) 도자(道者)가 청한 시[無可伴行卓然道者乞詩]
그대는 본디 재상의 집 아들로 / 子是相門子
젊은 나이에 금궐(金闕)을 드나들며 / 早通金閏籍
그는 고(故) 평장사(平章事) 최정분(崔正份)의 아들로 일찍부터 내시가 되어 녹봉을 받다가, 갑자기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故平章崔正份子也。早屬內侍累食祿。忽出家歸山。)
후한 녹봉을 받았으니 / 申之霑俸祿
큰 부귀를 보장할 터인데 / 富貴行可畫
어찌해 검은 머리 깍아 버리고 / 胡爲剃玄髮
훌쩍 산속으로 들어갔던가 / 嘯向雲山碧
도모(道貌)가 이미 고고하니 / 道貌已高古
이는 전생에 불연(佛緣)이 있음일세 / 宿世應參釋
조정의 부름에 잠시 달려왔다가 / 暫赴朝廷徵
하소연하는 뜻 너무 간곡하므로 / 告訴意可惜
그를 몽고(蒙古)에 보내려고 불렀으나, 그가 굳이 사양하였다.(欲送蒙古徵之。師固辭。)
다시 옛 산으로 돌려 보내는데 / 放歸還舊山
작별에 임해 매우 섭섭하오 / 臨別良悽惻
잘 가서 수진에 더욱 정진하여 / 好去勗修眞
그 혜택 온 나라에 미치도록 하오 / 餘澤及一國
○이 시랑 수 이 내가 아들을 홍주로 보내며 지은 시를 듣고 화답한 회문시에 차운한 한 수
잣나무는 절개가 높은 때문에 우뚝하고 / 栢作高節抗
하수는 도량이 넓은 때문에 깊었는데 / 河爲曠懷涵
그대의 맘은 조금도 막힘이 없어 / 陌畛蔑心中
서로도 남으로도 널리 통하네 / 恢廓豁西南
하얀 비단에 청신한 시 씌었으니 / 白繭寫詩淸
그 깊은 의의 매우 고맙고 / 意重荷可堪
번지르한 바탕에 글씨 뚜렷하니 / 澤面施鉛粉
위아래로 서너 번씩 읽었으며 / 環廻讀四三
금석성(金石聲)을 내는 문장이 고아(高雅)하니 / 擲成金韻雅
탈속한 어구(語句)가 그지없어라 / 浩浩騁逸談
마치 바다에 신기(蜃氣)가 성루(城樓)를 이루고 / 赤蜃浮架海
못 속에 규룡(虯龍)이 서려 있는 듯하니 / 班虬臥噓潭
백만 전 값어치의 이 시는 / 百萬錢直篇
그 기쁨 자식과도 같을 것이며 / 喜同予與男
쌓인 시름 잊게 하는 묘한 말은 / 積愁開妙語
그 호의 그대에만 있음을 알았소 / 厚我於公諳
나의 익우는 오직 그대뿐이며 / 益友是其君
자식에겐 겸손이 으뜸이라 일렀다오 / 癡兒喩以謙
[주D-001]금석성(金石聲) : 진(晉)의 손작(孫綽)이 천태산부(天台山賦)를 지었는데 범영기(范榮期)가 보고 “땅에 던지면 반드시 금석의 소리가 날 것이다.”고 칭찬하였다. 《晉書 孫綽列傳》
[주D-002]신기(蜃氣) : 이무기가 토해 낸 기운. 《본초(本草)》에 “이무기는 뱀 같으면서도 더 크고 뿔이 있어 용과 같으며, 갈기와 허리 이하에는 비늘이 거꾸로 되었고 제비를 즐겨 먹으며, 비가 오려면 기운을 토해 내어 누대(樓臺)와 성곽(城廓)의 모양을 형성한다.”고 하였다.
○가뭄에 쌍운(雙韻) 4월 11일 밤이었다.
목마를 때 물은 얻을 수 있고 / 渴水猶或得
목마를 때 술도 구할 수 있지만 / 渴酒儻能覔
비의 가물 이처럼 극심하니 / 渴雨於斯劇
사람의 힘으론 매우 어려워 / 致之難以力
하늘을 쳐다보면 안력만 소모될 뿐 / 望天費目役
구름 한 점 없이 더욱 푸르기만 하니 / 雲斷天更碧
어떻게 큰 풍년 바라겠는가 / 何問大農殖
시들은 채소만 봐도 알 수 있네 / 先觀畦菜色
하늘이여 우리 백성 버리지 말고 / 天不棄我民
다행히 한 방울의 비라도 내려주오 / 庶賜膏一滴
○사월 어느 날 꾀꼬리 소리를 듣고
중국에는 봄철을 앵춘이라 하여 / 中土噵鸎春
꾀꼬리가 꼭 봄철에 나오는데 / 鸎必當春出
우리나라에는 사월을 / 我邦以孟夏
앵월이라 지목하니 / 目之爲鸎月
이는 지리가 서로 달라 / 豈以地性殊
나오는 시기가 같지 않음인지 / 其來迺不一
그 더디고 이른 건 따질 나위없고 / 遲早更何問
귀에 들릴 적마다 그 소리 싫지 않아 / 入耳聲不拂
가끔 나뭇가지에 올라 / 時時到樹頭
고운 노래 불러 주니 / 好弄歌喉滑
새들 가운데 그 소리 가장 아름다워 / 鳥中聲最佳
울적한 나의 심사 조금씩 트이곤 하네 / 稍豁中心鬱
○우연히 읊다
술이 없으면 시도 무미하고 / 無酒詩可停
시가 없으면 술도 시들해 / 無詩酒可斥
시와 술은 다 즐기는 바이라 / 詩酒皆所嗜
서로 걸맞고 서로 있어야 하네 / 相値兩相得
손 내키는 대로 한 구의 시를 쓰고 / 信手書一句
입 내키는 대로 한 잔의 술을 마시니 / 信口傾一酌
어쩌다가 딱한 이 늙은이가 / 奈何遮老子
시벽과 주벽을 함께 가졌네 / 俱得詩酒癖
그러나 술은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어서 / 酒亦飮未多
천백 수를 짓는 시의 비례는 안 되지만 / 未似詩千百
마주 대하면 흥이 그저 발발하니 / 相逢迺發興
이 까닭 끝내 헤아리기 어려워 / 是意終莫測
이로 인해 병마저 더욱 깊었으니 / 由此病亦深
죽은 뒤에야 이 벽도 없어지리 / 方死始可息
이는 나 자신만 상심하는 바 아니라 / 不唯我自傷
남들도 모두 이를 나무라곤 한다네 / 人亦以之責
○병중에 혼자 앉아 심사가 울적하던 차에 장단구(長短句) 한 수를 얻었으나 보낼 곳이 마땅치 않기에 이 시랑에게 주다
다리가 연화(軟化)되어 다니지도 못하고 / 脚軟行未得
오랫동안 심사만 울적해 왔으며 / 久積心中鬱
게다가 눈조차 어두웠으니 / 申之目又昏
이제는 쓸모있는 노물일세 / 已矣遮老物
오늘 아침에는 별안간 생각나기를 / 今朝瞥起念
몸에 두 날개가 돋아 천지 사방을 훌훌 날아 다니면서 / 擬欲身生兩翮橫出六合飛奮逸
아래로는 강과 바다를 뛰어넘고 / 下則超江海
위로는 해와 달을 만졌으면 했는데 / 上焉摩日月
어쩐지 이것 또한 좁게만 여겨져 / 此亦一何狹
남도 북도 아니고 여기도 저기도 없는 것이 곧 도의 실다운 경지라 느꼈네 / 不南不北無彼無此是迺道之實
그대는 일찍이 나의 마음 잘 알 것인데 / 子曾知我心
어째서 이런 좌절 겪게 되는지 모르겠네 / 胡爲反得此嶊屈
○이 시랑이 성시(省試)의 좌주(座主)로 나갔을 때 경축(慶祝)한 시를 차운하였다가 그 이튿날에 사례한 회문시
오랫동안 문닫고 시골에 움츠리니 / 潭鱗縮作久閑門
정신이 혼미한 나 글 폐한 지 오래일세 / 耄暗吾慚已廢文
옥 같은 인재 두루 보니 식견이 뛰어나고 / 探遍玉應懸鑑識
많은 도리(桃李) 심었으니 꽃향기가 풍기리 / 植齊桃想放香熏
동남의 진수 성찬 귀빈들 참석이요 / 東南卷膳羅賓會
좌우의 잔치 자리 기녀들 옹위했네 / 左右排筵簇妓群
옥비녀 떨어뜨리고 관과 띠도 내버리며 / 簪墮復遺冠及帶
술이 얼근하니 고기와 채소 갈아드네 / 酒酣仍遞血兼葷
세 순배 돌고 나니 좋은 술이 바다를 능가하고 / 三杯倒了醑添海
한 곡조 끝나니 노랫 소리에 구름이 멈추었네 / 一闋聞來歌遏雲
늙고 병든 나는 부끄럽기만 하오 / 慙却老多侵病憊
참여했던들 마음껏 취했으련만 / 參榮得可到霑醺
[주D-001]많은……심었으니 : 도리(桃李)는 훌륭한 문생이나 천거한 현재(賢才)를 말한다. 당(唐)의 적인걸(狄人傑)은 일찍이 요원숭(姚元崇)ㆍ환언범(桓彦範) 등의 많은 인재를 천거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천하의 도리가 모두 공(公)의 문하에 있다.” 한 말에서 온 것이다.《資治通鑑 唐紀》
[주D-002]한 곡조……멈추었네 : 곡조의 묘(妙)를 체득한 노랫 소리는 떠나가던 구름도 멈추게 한다는 뜻이다. 《列子 湯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