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이 가족
/ 신건자
아침 등교시간에 영재가 가슴을 쫙 펴고 교문으로 들어오고 있어요.
옷 입은 겉모습이 예사롭지가 않아요.
먼저 온 아이들이 한쪽으로 비켜섰어요.
그런 아이들 앞으로 영재가 으쓱대며 다가오네요.
“쟤 왜 우리들 앞으로 오냐?”
“글쎄, 왜 우리들 앞으로 오지?”
비켜선 아이들이 소곤댔어요..
아이들 앞으로 온 영재가 한 쪽 발을 번쩍 치켜들었어요.
아이들이 일제히 영재의 발을 쳐다봤어요.
영재가 신은 운동화에서 번쩍번쩍 빛이나요.
그때서야 아이들은 알았어요.
새 운동화를 자랑하는 것이란 걸.
“에이 씨, 뭐야. 뭐야….”
아이들이 입을 비쭉거리며 교실로 가고 있어요.
영재가 아이들 뒤를 따라가며 소리쳐요.
“너희들 이런 운동화 못 신어봤지? 우리 아빠가 외국 가서 사온 거야!
내가 입은 옷도 우리 엄마가 백화점에 가서 사온 비싼 옷이야!”
아이들이 얼굴을 찌푸리고 툴툴댔어요.
“아우, 기분 나쁜 자식. 만날 자랑 질이야!”
비켜선 채 바라보던 경준이는 교실로 가지 않고 화장실로 갔어요.
누렇게 빛바랜 헌 운동화를 벗어서 수돗물로 닦았어요.
물에 젖은 운동화는 색깔이 진해져서 헌 것처럼 보이지 않네요.
경준이는 젖은 운동화를 뒤로 감추고 교실로 들어갔어요.
당장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가 없어요.
폐휴지를 주워 팔며 경준이를 키우는 할머니한테 새 운동화를 사 달랄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할머니한테 들었어요.
‘너 두 살 때 네 엄마가 하늘나라로 갔다. 그래 술만 마시던 네 아빠는 돈 많이 벌어 온다며 외국으로 갔단다.’
그래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게 된 경준이는 엄마아빠 얼굴을 몰라요. 하지만 오늘은 외국에 갔다는 아빠가 보고 싶어요.
‘우리아빠도 영재아빠처럼 새 운동화를 사갖고 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느라 학교공부시간이 끝난 줄도 모른 경준이는 아이들이 학원차를 타고 모두 떠난 후 혼자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어요.
할머니가 먼저 와 계셨어요. 폐휴지를 많이 주우신 모양이에요.
“우리 강아지 배고프지? 얼른 손 씻고 와서 할미가 만든 떡볶이 먹자.”
“울 할머니 최고!”
경준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팔짝팔짝 뛰었어요.
그런 경준이를 보고 할머니가 활짝 웃으시네요.
그 때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경준할머니 계세요?”
멋진 옷을 입은 영재 할머니가 접시에 떡을 담아 들고 오신 거예요.
“아이구, 영재 할머니께서 웬일로 이런 누추한 집엘….”
경준할머니는 헌옷자락으로 거친 손을 감추며 말끝을 흐렸어요.
“우리 손녀가 서울대학에 합격을 해서 축하 떡을 해가지고 왔어요.”
“아이구, 축하합니다. 손녀가 공부를 잘해서 참 좋으시겠어요. 잘 먹겠습니다.”
고개도 못 들고 굽실굽실하는 할머니가 경준이는 싫어요.
‘뭐야, 자랑하러 온 거잖아! 기분 나빠.’
경준이는 영재할머니가 가져온 떡을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영재할머니가 간 후 옆집 희영이가 박스를 한 아름 안고 왔어요.
“할머니 드리려고요,”
“아이구, 우리 마을에선 희영이가 최고다.”
할머니가 희영이를 칭찬하니까 경준이 기분이 좋아졌어요.
희영이는 아빠가 돌아가셔서 엄마와 동생과 셋이서 살아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경준이네와 비슷한 게 많아요. 그래서인지 희영이랑 놀면 마음이 편하고 좋아요.
경준이도 할머니처럼 희영이를 칭찬하고 싶은데 희영이가 먼저 입을 열었어요.
“저는 최고가 아녜요. 공부 잘해서 서울대학에 합격한 영재누나가 최고예요.”
희영이 말을 듣고 경준이가 벌컥 소리를 질렀어요.
“야, 공부만 잘하면 최고냐? 서울대학만 합격하면 최고냐?”
“그럼, 최고지. 우리 학교 생긴 후 영재누나가 처음으로 서울대학에 합격한 거래잖아.”
“우씨, 너까지.”
그렇잖아도 영재하고 영재할머니 때문에 기분이 나빴는데 희영이까지 영재누나가 최고라고 추키니 화가 났어요. 미웠어요.
경준이는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와 골목길을 뛰어가다가 앞에 오는 사람과 부딪혔어요.
“어머, 얘, 조심해서 다녀야지. 하마터면 골프채 부러질 뻔 했잖니.”
힐끗 쳐다보니 영재 엄마였어요.
경준이는 영재엄마를 본체만체 골목길을 달렸어요.
“어머, 쟤 좀 봐. 참 버릇없네!”
영재 엄마의 말이 경준이 뒤통수에 꽂혔어요.
“씨이~ 내가 버릇이 없다고? 그럼 영재는?”
경준이 속이 부글부글 끓었어요.
며칠 전에도 영재엄마가 골프채를 들고 걸어가는 걸 보았어요.
앞산 골프장엘 가는 모양이에요.
마침 읍내병원 청소 일을 마치고 지쳐 돌아오는 희영엄마가 영재엄마와 마주쳤어요.
영재엄마가 먼저 아는 체를 했어요.
“청소일 하고 오시나 봐요.” “예. 골프 치러 가시나 봐요.”
“맞아요. 며칠 후 필리핀에서 부부동반 시합이 있거든요. 그래서 연습하러 가요.”
“참 좋으시겠어요.”
“예, 다음에 또 봐요,”
영재엄마는 뒤따라온 영재아빠와 손을 잡고 웃으며 희영엄마 곁을 지나갔어요.
우두커니 서서 그들 뒷모습을 바라보는 희영엄마 모습이 무척 쓸쓸해 보였어요.
경준이 마음도 쓸쓸했어요. 슬펐어요.
‘부자인 영재네는 왜 우리 마을로 와서 사람들 마음을 아프게 하지?’
희영이한테 들은 말이 생각났어요.
‘영재아빠는 서울에서 큰 회사에 다니다가 이곳 골프장 사장이 되어 왔대. 마을 건너편에 큰 상가도 세웠대. 마을 사람들 중에는 영재아빠가 사장인 골프장과 상가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대. 그래서 영재네가 최고라고 말한대.’
그러니까 가난한 경준이네와 희영이네는 저절로 꼴찌가 된 셈입니다.
‘나는 엄마아빠도 없고 공부도 못하니까 꼴찌라고 놀림 받아도 좋아. 하지만 우리할머니는 꼴찌 아냐. 제일 최고야.’
경준이가 팔소매로 눈물을 쓱쓱 닦으며 소리쳐보지만 폐휴지를 주워 팔며 부모 없는 손자를 키우는 할머니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영재네 때문이야. 아냐, 나 때문이야. 미안해 할머니. 엉엉엉….”
드디어 경준이가 소리 내어 웁니다.
그 때 웬 할아버지가 눈을 크게 뜨고 다가왔어요.
“너 경준이 아니냐? 왜 울고 있는 거야?”
할아버지는 읍내에 사시는 할머니 동생이에요. 가끔씩 할머니를 보러 오셔요.
“울지 말고 집에 가자.”
“싫어요.”
“왜 싫어? 할머니한테 혼났냐?”
“아니요.”
“근데 왜 울어?”
할아버지는 경준이를 억지로 달래서 집으로 데리고 왔어요.
그때까지 할머니를 돕고 있던 희영이가 눈물범벅이 되어 온 경준이를 보고
“으앙~~”
울음을 터뜨렸어요.
“얘는 또 왜 울어? 누님, 얘들이 왜 이래요?”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물었어요.
“나도 모르겠다.”
그러자 희영이가 울먹이며 말했어요.
“영재가 만날 아빠 엄마 자랑을 해서 속상해서 그래요. 부자라고 잘난 척하며 우리들을 깔봐서 그래요. 엉엉~~”
희영이 말을 듣고 할머니도 한 마디 했어요.
“사실은 나도 영재 할머니가 손녀딸 자랑을 해서 속상했다.”
“영재엄마아빠도 청소일 하고 오는 우리 엄마 앞에서 골프 치러 해외 간다고 자랑했대요. 그래서 우리 엄마가 아빠생각하며 울었어요. 엉엉~”
입을 꾹 다물고 코만 훌쩍이던 경준이도 입을 열었어요.
“할머니, 외국에 간 아빠는 왜 안 와요? 언제 와요?”
할머니는 대답도 못하고 코를 훌쩍이셨어요.
모든 걸 알아챈 할아버지가 혀를 끌끌 찼어요.
“쯔쯔, 영재네 집엔 불출이 들만 사는가 보다. 그런 불출이들 때문에 울면 쓰겠냐?”
“불출이가 뭐예요?”
경준이와 희영이가 울음을 그치고 물었어요.
“잘난 척하며 자랑 질하는 못난 사람들이지. 옛날부터 자랑은 병 자랑만 하랬는데…, 더 알고 싶으면 인터넷이나 사전을 보렴.”
“그런 거 우리 집에 없는데요.”
경준이와 희영이가 똑같이 대답했어요.
며칠 후, 할아버지는 중고 컴퓨터와 국어대사전을 들고 오셨어요.
“너희들 이거 갖고 공부 많이들 해라.”
컴퓨터 작동방법과 사전 찾는 법을 모르는 경준이와 희영이는 학교 컴퓨터 반에 가서 열심히 배웠어요. 결국 불출이라는 말은 할아버지가 팔불출에서 팔자를 떼고 말한 것임을 알았어요.
“하하 호호 재밌다. 다른 것도 찾아보자.”
경준이와 희영이는 날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터넷 검색에 푹 빠졌어요.
모르고 있던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무척 재미가 났어요.
그렇게 이년이 흘렀어요.
3학년까지 성적 꼴찌를 다투던 경준이가 반장이 되고 희영이는 부반장이 됐어요.
“야, 경준이는 박사다, 우리 반에서 최고다.”
아이들 말에 잘난 척, 자랑 질 하던 영재는 기가 푹 꺾였어요.
그날 어깨를 으쓱거리며 학교에서 돌아온 경준이를 낯선 아저씨가 팔 벌려 안았어요.
“경준아. 미안하다. 아빠가 이제 와서.”
아저씨 눈에서 눈물이 흘렀어요.
곁에서 바라보는 할머니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어요.
“아빠가 사장님 되어 왔다. 읍내에 상점도 차리고 집도 샀단다. 우리 읍내로 이사 간단다.”
할머니 말을 들은 경준이는 제일 먼저 희영이에게 달려가 자랑을 했어요.
학교친구들에게도 자랑을 했어요.
얼마 후, 경준이네가 읍내로 이사 가는 날이에요.
이사를 도우러 온 할아버지가 물었어요.
“불출이가 뭔지 알아봤냐?”
“예, 성은 팔이고 이름은 불출이, 그러니까 합쳐서 팔불출인거잖아요.”
“히야, 진짜 박사가 됐네. 근데 너희 집엔 불출이 없냐?”
“있어요. 내가 불출이에요. 히히.”
“하하, 솔직해서 좋다. 근데 네 아빠도 불출이더라. 희영이네와 한 가족이 된다고 자랑했거든.”
“으잉? 정말요? 와아 신난다.”
경준이가 방방 뛰었어요. 희영이네와 한 가족이 된다는 건 새엄마와 동생들이 생기는 거잖아요.
경준이를 바라보는 할머니와 아빠의 웃음소리가 폭죽처럼 터졌어요.
이제 경준이네도 영재네 처럼 불출이 가족이 된 것 같아요.
ㅡ PEN문학 2023. 5~6월호에 수록 ㅡ
첫댓글 재밌는 글 올려주신 회장님, 감사합니다.^^
영재는학년이 오를수록 쳐져서 기가 팍 꺾였나 봐요. ㅎㅎㅎ
근데 언제 아빠와 희영이엄마는 사귀어서 새 가족이 되었대요?^^
잘 읽었습니다, 명예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