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간에 있어서 양국간에 느끼는 감정의 골이나 경제적 차이는 분명이 존제합니다
어쩌다 보면 감정적으로 치우칠 수도 있는데 이성적으로 행동하라는 충고도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여기서 이성은 현실입니다
즉, 현실을 고려해서 대일관계를 갖고 가라는 것이죠
한국 경제의 변환점이 된 역사적 사건이 한국에서 두번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5.16 군사 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한 후 만주군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서 일본이 만주국에서 사용한 정책을 차용했습니다
경사발전 모델 이라고도 불리는 이 정책은 은행을 국유화 한뒤 중앙 관료들이 한정된 자금을 특정기업에 몰아 주는 방식입니다
경제개발 초기에 이자금을 받는 기업은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에서 실질이자율이 물가에도 못미치는 이자는 특혜 금융의 성격입니다
기업은 자금지원의 댓가로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주었고 정치인들은 이 자금을 통치자금 내지는 운영자금으로 독차지 하였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특혜 금융을 받은 기업들이 수출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서 1960년대에는 섬유,신발 같은 경공업제품 1970년대에는 중화학 제품으로 방향을 바꾸어 철강,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전기 전자 제품을 각 나라에 수출하였습니다
1960년에 3,280만 달러에서 1970년에 10억 달러로 1977년에는 100억 달러로 급증 했습니다
일본이 수출이 1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로 느는데 16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7년 만에 쾌거를 이루어 냈습니다
우리의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이승만 정권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 구도를 이용해 미국의 대규모 원조를 끌어 왔지만 생필품 중심의 원조로는 경제개발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지요
박정희 전대통령은 5.16 정변으로 정권을 잡자마자 같은 만주국 출신으로 일본국 수상을 역임한 기시 노부스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기시는 자신들의 인맥을 총동원해 박정희를 돕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연장선에 탄생한 것이 1965년의 한일국교 정상화였고 한일 청구권 자금이었습니다
한국 식민지 지배에 대한 최종 결론은 합법이냐 불법이냐로 암초에 부딪혔고 한국은1962년 벼농사 대흉작과 1963년 봄보리 흉작까지 이어져 민심은 갈수록 흉흉해지고 쿠데타 정권은 돌파구를 찿다가 박정희는 한국식민지배에 대하여 일본에 고개 숙여서 "우리는 불법이고 일본은 합법"이라고 하는 서로간의 의견 불일치를 인정하는 선 (Agree to disagree)에 타협을 하고 맙니다 경제발전을 위해 굴욕을 참고 고개를 숙이는 길로 가는 것 입니다
당시 일본 수상 관저에서 열린 만찬장에서 한 박정희의 만찬사를 볼까요
" 경험도 없는 우리는 그저 맨주먹으로 조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욕만 왕성합니다 마치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청년 지사와 같은 의욕과 사명감을 품고, 그 분들을 모범으로 삼아 우리나라를 빈곤으로 부터 탈출시키고 부강한 국가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
이렇게 얻어낸 청구권 자금이 무상 3억 달러, 유상 차관 2억 달러로 총 5억 달러였습니다
이것이 첯번째 경제적 변환점이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한일 간의 무역으로 일본은 1965년 이래로 지금까지 한국으로 부터 엄청난 무역 흑자를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한 무역 수지는 매년 적게는 수십억 달러에서 수백억 달러의 무역 흑자는 일본에게는 큰 수확이지요
물론 한국의 일본을 통한 대미 중계 수출 무역이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 입니다
초기 일본의 5억 달러 유무상 원조에는 일본에 유리한 조항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포항종합제철 건립 당시 모든 원자재는 일본에서 구입 해야 만 하는 조건 등으로 일본 현지보다 더 비싼 가격에 일본의 물건을 사야 만 하는 조건은, 결국 일본이 왼쪽 주머니에서 꺼낸 돈을 다시 그들의 오른쪽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딱 좋은 방식입니다
한국의 경제 발전에 두번째 전환점이 된 것은 베트남 전쟁이었습니다
1965년부터 베트남 평화조약으로 외국군이 철수하는 1973년도 까지 8년간 5만명 가량의 전투부대를 파병했었고 그 피해는 5,000명가량의 전사자와 10,000여명의 부상자를 양산한 처참한 전쟁이었지만 피 뭍은 땀과 목숨으로 벌어들인 돈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엄청 났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한국에 직접적으로 준 돈만 약 46억 달러였고 군사 원조나 경제지원 같은 간접적인 지원까지 합치면 총 약 81억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거기다 박정희정권은 군사 쿠데타 정권이라 미국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는데 월남 파병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도 개선되면서 미국이라는 거대한 수출시장도 열리게 되는 겁니다
이때부터 일본으로 부터 원자재나 부품을 수입해서 낮은 저임금으로 가공해서 미국으로 재수출하는 1차 한미일 3각 경제구조가 함께 만들어 지게 됩니다
지금부터는 얕은 지식이지만 일본 경제를 현실적으로 말씀드릴까 합니다
1990년 전까지 세계 경제 순위 2위인 일본이 왜 잃어버린 30년 으로 부르는 추락을 했을까요
1991년 이 후 30여년간 평균 성장율은 0.7%대에 불과 했습니다
일본 경제는 4번의 국가경제 쇼크 때문에 장기 침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첯번째는 1985년도의 플라자합의 때문 입니다
그것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5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이 미국 뉴욕의 프라자호텔에서 달러 약세와 엔화 강세를 유도하기로 한 합의를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1달러당 240원 하던 엔화 환율이 1주일 만에 8% 내려가면서 강세가 되더니 2년에 걸쳐 120원대로 절상됩니다
초기에 엔화의 강세 때문에 일본의 수출이 주춤하자 일본 정부는 내수를 진작시키기 위해 기준금리를 낯추고 시중에 돈을 푸는 조치를 강화하였습니다
거기에 추춤하던 일본 기업들의 원가 절감노력으로 수출이 늘고 내수까지 좋으니 일본내에 돈이 넘쳐나서 주식과 부동산에 쏠렸고 자산버블이 넘쳐서 1990년에는 1985년 보다 닛케이 주식은 4배 이상 올랐고 6대 도시의 땅값은 3배 이상 올랐습니다
버블이 폭발 직전까지 위험 수준으로 급등한 이 후 일본정부는 긴급하게 긴축조치를 시행하여 은행의 부동산 대출을 금지하고 금리를 올렸습니다
주가는 4배로 떨어지고 부동산가격은 급락함으로서 수많은 개인과 기업에 타격을 주어 일본 경제가 휘청이게 됩니다
이것이 초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이라고 불립니다
두번째로, 1997년에 일본은 두번째 쇼크를 경험하게 되는데 버블 붕괴 후 아시아발 외환 위기로 우리나라도 최악의 경제난에 빠지지만 일본 역시도 본격적인 불황에 빠진 일본은 부실기업 뿐 만이 아니라 여기에 대출해준 금융기관도 함께 부실하게 되는 "북합불황" 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일본 정부는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에다가 종전 후 처음으로 청년들의 취업난이 가중돼 실업율이 5%로 급등하기 시작 했습니다
이 때부터 16세에서 65세 까지의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면서 수요도 감소하는 본격적인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접어 들어갑니나
수요가 약하니 기업은 가격을 낮추고 소비자는 가격이 더 떨어질것을 예상하고 구매를 미루고 정부는 경기를 일으키려고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인하 하면서 경기회복을 추구했지만 한번 빠졌던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진 일본은 본격적인 경제 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세번째 쇼크는 2008년 발생한 미국의 금융위기( 우리나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알려진)로, 일본 역시도 자본주의 미국경제에 종속된 하나의 큰 축이므로 2009년 일본경제는 -5.4%의 성장율에 실업율은 5.5%로 급등하게 됩니다
청년들의 취업율은 더 어려워져서 이후 "제2의 취업 빙하기"로 불리게 됩니다
여기서 미국의 금융권을 살리기 위한 자금 살포로 달러 추락 => 엔화강세 => 수출약화 => 수입물가 하락 => 디플레이션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일본경제는 대추락 했고 일본국민은 처음으로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을 교체 합니다
2009년 부터 2012년 말까지 집권한 민주당은 자민당의 경제노선에 반대되는 정책으로 공공사업 중심의 경기 부양대책을 중단했고 규제완화와 노동시장유연화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폐지했습니다
"콘크리트 에서 인간으로" 라는 정책 어젠다를 걸고 환경과 의료, 복지를 내걸고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다소간의 내수 경제를 회복했지만 엔화강세를 막지 못해서 수입 물가 하락으로 디플레이션은 심화 되었습니다
거기다 2011년 3월 동북지방의 대지진으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폭팔 참사는 2012년 선거에서 지면서 다시 자민당 아베 신조에게 정권을 내줍니다
4번째 쇼크, 2012년 12월부터 2020년 9월 까지 최장기 집권한 아베 총리는 일본경제재생본부를 설치하고 민주당의 분배 위주 정책에서 다시 성장 위주 정책으로 자민당 본래의 정책으로 복귀합니다
일본의 미래를 위한 좋은 변화를 놓치고 다시 구시대로 돌아가는 일본의 운명을 보게 됩니다
아베는 일본 경제를 위하여 개혁을 시도 하는데 3개의 화살 이라는 정책을 시도 합니다
3개의 화살이란 과감한 금융완화, 적극적인 재정투입, 감세와 규제완화 였습니다
과감한 금융완화는 그 당시 2년 사이에 통화량을 2배로 늘리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돈을 풀어서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고 엔화의 하락으로 수출을 늘리고 외국인의 관광산업도 활성화시키는 정책으로 주가가 8000엔에서 1만 5천엔 수준으로 회복되었습니다
2015년 생산성혁신, 2016년 4차 산업 혁명을 위한 일본 부흥전략, 2017년 사회 5.0실현을 위한 미래 투자전략등 나름대로 일본 경제를 회복시켜 나가는 듯 했습니다
일본은행은 국채를 사들여서 채권시장의 이자율을 낯추고 회사채로 자금이 흘러 들어가게 만들어 기업들은 아베노믹스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주식시장의 호황은 기업들이 미루어 두고 못했던 구조조정의 기회를 만들고, 부동산시장이 회복 되면서 소비가 일부 개선 되었으며 디플레이션이 미미 하게 인플레이션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아베노믹스는 기업을 중심으로 한 정책으로 공급 측면은 혜택을 받았지만 수요 측면의 가계는 뒷전으로 개선되지 못해 고용은 개선 되었지만 실질 임금은 정체되어 갔습니다
정부는 기업에게 임금 인상을 종용 했지만 기업은 현금을 쌓아 두기 바빠서 국내 시장수요는 살아나지 못 했습니다
이런 시기에 2019년 미중 통상분쟁이 본격화 되면서 세계 경기가 하강되자 일본 경제는 영향을 받고 하락하다가 설상가상으로 두번이나 연기했던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를 인상 하자마자 일본 국내 경기는 급속히 냉각 되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니 이것이 일본의 네번째 쇼크 입니다
일본은 사스나 메르스 같은 감염병 대처 경험이 없기에 방역 메뉴얼도 없거니와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에 국운을 건 일본정부는 올림픽 지연과 운영에 실패한 올림픽이란 오명과 타격으로 일본 경제에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버블 붕괴 뒤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의 실질 경제성장율은 0.8% 였고 아베노믹스 기간에 인플레이션을 의도적으로 유발시켜서 일본 국민들에게 가격이 올라가니 지금 구매를 하라는 신호로서 소비 증진을 만들기 위하여 통화량을 지속적으로 늘렸지만, 실질 경제 성장율은 0.9% 였습니다
목표로 잡은 2% 인플레이션은 달성하지 못했고 환율 약세로 서민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에는 아베 암살 이 후에도 기시다 내각이 아베의 장례를 국장으로 결정하자 많은 국민이 반대하는 일도 벌어지게 됩니다
한 국가의 경제가 판가름 나는 것은 결국 기업과 기업가들의 능력에서 판가름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기업과 일본기업의 비교 연구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시행했는데 결과는 양국기업간에 많은 차이점을 발견 했습니다
방식은 한일 양국 기업가들에게 설문지를 배포하여 분석을 했습니다
한국기업은 해외 지향적이고 일본기업은 국내 지향적이라, 한국기업들은 해외 시장 진출과 해외 영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에 일본은 내수 시장에 관심이 더 컸다는 것입니다
한국기업은 보다 더 경쟁적인데 일본기업은 협조 지향적이라, 한국기업들은 항상 경쟁사를 강하게 의식하고 경쟁사 동향에 관심이 많은 반면에 일본기업들은 거래를 하는 기업들에게 더 강한 연대의식을 하면서 그 기업들의 정보교환이나 협업등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경영전략에 있어서도 한국기업들은 더 공격적이고 단기적인 전략을 고수했는데 일본기업들은 보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에 치중을 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한국기업이 매출이나 시장 점유율 확대에 보다 중점을 두었다면 일본기업은 재무체질 강화나 인재육성에 더 중시 한다는 것 입니다
한국기업들은 가격 지향성이 강해서 부품이나 원자료 구입시 가격에 더 치중하고 판매시에도 판매가격에 더 관심이 많고 일본기업은 기술이나 품질 경쟁을 통해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기업은 브랜드 지향적인데 일본기업은 제품 지향적 이라는 것입니다
한국기업은 디자인이나 마케팅으로. 차별하는데 일본기업은 제품개발과 생산에 더 큰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한일간 기업들의 차이점이 어떤 세계화 경쟁에 어떤 결과들을 산출 했을까요
한국기업들은 생산비가 적게 드는 장소를 찿아 전세계를 찿아 나섰고 영업이 되는 시장에는 적극적으로 달려갔습니다
반면에 일본의 기업들은 대기업도 적극적으로 시장 개척에 나서지 않았고 해외 진출은 종합상사가 알아서 하고 대부분 간접 수출을 하는 형태를 하고 있어서 한국에서는 이미 사라진 종합 상사들이 일본에는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 입니다
한국의 기업의 성공요인은 총수 한 사람이 전체 업무를 간섭하고 책임지는 동시에 과감한 황제 경영식 추진력과 한국 국민의 내면 속에 잠재한 어려운 고난으로 단련된 악착같은 국민정신이 성장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 입니다
반면에 일본은 "리더십 부재" 나 " 전략 없는 경영" 으로 비판 받는데, 일본은 경영자들이 존제만 하고 군림하지 않는 영주(과거 일본의 주군)같다고 해서 "주군 경영" 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최고 경영자들이 이념에 치우쳐 창업이념이나 기업의 역사를 설파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여기다 보니 경기 침체시 위기를 돌파 할 리더십과 경영전략을 추진 할 역량이 축적되지 못했다는 것 입니다
일본기업은 "종업원 자본주의" 기업입니다
종업원 중에서 임원이나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것이 관례다보니 회사는 종업원을 소중히 여기고 외부에서 온 인사가 아니라 평생 업무가 보장된 종업원에게 책임지는 경영을 맞기다 보니 미국이나 한국처럼 엄청난 임금을 받는 경영자가 일본에는 거의 없습니다
좋은 점도 많지만 능력있는 경영자를 영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일본에서 새로 수상이 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어떤 사람일까요
일본은 미국의 신자유적인 정책으로 공급자 위주의 기업위주 정책을 추진하다가 깨닳고 수요측면인 가계를 배려한 정책을 피고 있는데 현제는 유효수요를 증진 하고자 일본의 기시다총리가 근로자들 임금을 올리는 임금주도성장을 노력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사한 문재인정권의 소득주도성장이 알려져 있습니다
임금주도성장 이론은 과거 네오 칼 막시언이었던 폴란드의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츠키'의 이론과, 유효수요의 법칙을 중요시 여기는 케임브리지 케인지언(현 포스트 케인지언) 이론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노동자는 자본가보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 내에서 빈곤한 위치에 속하고, 그러기에 "노동자는 소득을 소비하고 자본가는 소득을 저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질임금으로 대표되는 노동소득이 오르지 않는다면 GDP 성장도 힘들다는 이론입니다.
GDP= 국민소비 + 기업투자+ 정부지출 + 순수출 입니다
그러기에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한다면, 유효수요 증가에 따라 소비가 늘고 경제가 성장하고, 이에 따라 자본가들의 이윤도 오르는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민생을 보면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으며 일본은 장기침체에 빠져들었고 일본인들은 이미 희망을 포기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찾고 있습니다
일본은 "아키라메루"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포기" 라는 뜻입니다
즉 "쇼가나" (어쩔수 없다의 일본어)에서 더 비참해서 포기한다는 것이 일본의 현실 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절망이 심각해 투표율은 점점 낮아지는데 투표장에 가는 사람은 노인네들 입니다
체념이 깊어지면 깊은 깨닮음을 뜻하는 득도의 경지에 이르는데 젊은 세대를 득도세대 "사토리"라고 부릅니다
과거 2010년에 뉴욕 타임스 도쿄 지국장이 "왜 이런 상황에 저항하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어떤 일본의 젊은 이가 대답 하기를 저항과 분노를 말씀하시는데 저희는 절망의 나라에서 오히려 행복 합니다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기 한국도 각자도생하며 희망을 꿈꿀수 없는 나라로 가고 있습니다
일본보다 더 심각한 각자도생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낮은 출생율이 단적인 현상입니다
환원해서,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가 끝나고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 시대가 도래되어 신냉전시대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전략은 대중국 봉쇄전략이나, 국내물가를 고려해서 기존 처럼 모든 물자를 통제하는 것이 아닌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이나 제품을 동맹국들과 힘께 대중국 압박을 하는 것인데 이것을 "프렌드 쇼어링"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은 내몽고에서 독일까지 무역을 위한 육로를 만들고 북경에서 이탈리아까지 해상수송로를 만들어 중국 경제의 발전과 미국을 대체하는 국가가 되겠다는 망상입니다
요즘에는 쌍순환 전략이라고 하는 국가정책을 천명하였습니다 내부순환(내수만으로 경제가 돌아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시스템을 만드는 동시에 첨단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전략)과 국제순환(미국과의 경쟁을 피해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 전략) 정책을 펴는 것입니다
IMF에서 2021년 3월에 [디커플링이 미치는 경제영향 ] 이라는 보고서가 발표 되었습니다
여기서 미국과 중국이 서로 1:1로 경제전쟁을 했을때 양국 모두 10년에 걸쳐서 GDP가 3~4% 감소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만일 현제 바이든대통령이 진행중인 것처럼 미국과 동맹국들이 합세해서 중국과 경제전쟁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중국과 일대일로 트럼프처럼 경쟁한다면 10년동안 -3% 역성장 인대 반해 동맹국과 합세해 경쟁한다면 미국은 -1%로 역성장이 축소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때 중국 경제는 10년동안 -8% 역성장을 한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이든은 전략을 바꾸었고 각종 보조금을 동원해서 동맹국들의 협력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여겨 볼것은 IMF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이 1대1로 경제전쟁에 돌입하면 최대 피해국은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은 한국의 1위 교역국이고 미국은 2위 교역국 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분석시나리오에 따르면 한국이 미국과 중국 경제싸움에 양쪽과 현제처럼 동시에 교역을 한다면 한국 경제는 10년간 +1%의 성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 한국경제는 추락 할 것이니 어느 한쪽도 선택하지 않는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이것을 "전략적 자율성" 이라고 프랑스는 미국의 졸개가 아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자유롭게 선택 하면 된다고 주장 합니다
우리나라도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이 필요하고 중국도 미국진영을 흔들기 위해 한국이 필요하니 우리나라는 국익을 위해 이런 선택을 해야 된다고 생각 합니다
일부 용산 비서실 모차장이 세상이 변해서 가치 외교를 위해 미국을 선택해야 된다고 우기는데 과거 그는 유사시 일본자위대의 한국 참전을 주장하고 2012년 대통령 선거에 댓글 공작으로 벌금을 받았던 사람인데 답답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익이고 충분히 능력도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해야만이 어느 나라도 우리의 국익을 해치는 행동을 못 할것 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이 중요 한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국가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일본의 국가 전략은 기지국가론 이라고 합니다
기지국가론은 한반도를 전쟁이 발생하거나 전쟁이 가능한 상태인 전장국가로 묶어 두고 일본은 그 후방의 기지국가로 남아 통제하고 자리매김 한다는 전략입니다
대만도 일본의 의지아래 둔다는 것 입니다
일본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남북한 평화통일을 절대로 원하지 않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일본의 안보도 확보하고 경제적 이익도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기지국가로 변신한 일본은 수많은 혜택을 누렸습니다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망했을 때만 하더라도 미국은 일본을 비군사화하고 민주국가화 하는 것이 기본이었지만 중국이 공산화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 결과 일본 자위대 전신인 경찰예비대가 창설되고 후에 자위대가 됩니다
일본의 군국주의자 추방령이 해제되고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를 비롯한 전쟁범들 중 많은 전범이 석방되고 군 간부들 중 많은 이들이 경찰예비대에 편입됩니다
미국이 일본을 동북아의 기지국가로 탈바꿈 시키므로서 일본의 역사적 죄악은 잊혀지게 됩니다
일본의 죄악은 특히 한국사람을 에게는 더 악독해서 36년간 조선인 씨앗을 말린다고 온갖 수탈을 일삼고 조선인들을 만주나 한반도 밖으로 이주를 시키고 그 떠난 지역에 일본국민들로 대체해 살게 한다는 장기 계획서가 후에 밝혀졌지요
전쟁 중 남양군도에 징병을 간 조선인 군인들을 식량이 부족하자 약한 조선인들을 죽이고 죽인 사람고기를 고래고기로 속여서 먹이고, 이를 알고 탈출한 조선인 징병 55명을 죽인 사건의 역사적 자료와 그 자료에 남아 있는 조선인들 이름과 주소가 있는 기록물을 갖고 지난 5월 한국에 와서 고백한 양심적인 일본인도 있었습니다
여하튼 일본이 침략국가에서 미국의 기지국가로 전환된 이유는 일본의 전략 때문이지요
일본은 미국의 반공정책을 이용해 미국의 아시아 관리권을 수임받은 것처럼 한국을 그 들의 손아귀에 넣고자 많은 행동을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한국이 북한과 대립각을 세우면 일본은 한국을 가치공유 하는 국가라고 칭찬하는 것이 일본의 기본전략 이지요
2022년 7월 아베 사망시 암살범이 통일교 교도의 자식이라는 사실과 반공이 종교적 사명인 통일교와 자민당의 유착 관계가 밝혀져 큰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과거에 전쟁 패망으로 특히나 원폭 피해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거기다 실업자가 넘쳐났으며 인플레이션이 극에 달한 일본은, 1949년 트루만이 일본에 초긴축정책을 펴서 인플레를 잡으라는 지시로 일본은 죽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당시 6.25 전쟁 발발은 일본에게는 천운이 따라주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일본은 유엔의 보급기지가 되었고 경제는 호항으로 돌아서기 시작 했습니다
이런 경험으로 일본은 본격적으로 반공을 이용해 한국을 자기 수하로 삼으려 계략을 피고 절대로 남북한이 평화공존을 바라지 않는 기지국가론을 강화 합니다
단적인 예로는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대표단과 미국 부통령의 만남을 막기위해 아베수상이 고의적으로 미국 펜스부통령과의 회담을 지연시켜 지각 입장을 하고 개회식 후 바로 퇴장하는 잔칫날 재뿌리기 같은 행위가 있었고, 북미 하노이 트럼프와 김정은이의 만남도 일본이 훼방하기 위해 재뿌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베는 G7정상회담 가는 길에 뜬금없이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에게 "북한은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목숨을 내걸었다 북한 정치인들은 매우 터프하고 교활하다 "라고 강조하면서 북한에게 양보하지 말라고 충고 한 것은 유명합니다
이간질의 달인 일본은 기지국가론으로 미국을 등에 업고 한국과 대만 특히 한국을 자신들의 소모품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기지국가론에 대항에 한국에 맞는 전략이 필요 합니다
요즘 한국사회는 개혁이 아니라 시간이 과거로 꺼꾸로 가는 느낌이 듭니다
과연 한국의 전략은 무엇 일까요
의사하고 의사 숫자 증원 싸움
노동자들 노동시간 69시간 근무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
연구개발비 삭감
학원선생 카르텔 타도
영일만 유전사업
김치찌게 먹기
부자들 세금 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