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백도(二河白道)는 전수나무아미타불 칭명염불하여 극락왕생한 후에 참선 등 성도문 수행으로 일생보처보살로서 속초성불하는 수행법이고,
무문관 수행은 참선이라는 성스러운 성도문 수행을 3대 아승지겁이라는 무량한 세월동안 닦아 성불하는 난행도의 수행법입니다.
선종 무문관 영화가 개봉되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하백도(二河白道) 이야기
‘이하백도’의 이야기는 중국 당나라 때의 선도화상께서 설하신 것으로, 중생들이 어떠한 괴로움과 고통을 당하더라도 결정신심을 일으켜, 조금도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해탈을 향하여 오직 일념 정진하면, 기필코 우리들의 이상향인 극락세계(영원한 안락세계)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이하백도’로써 비유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법이 우리 중생들에게 너무도 적실하여 깊은 감동을 받았던 이야기이므로 여기에 실어 봅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멀고 먼 길을 떠나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여 가다가 서로 연결된 두 개의 강(이하二河)을 만났습니다.
왼쪽 강은 사나운 불길이 뒤덮인 강이고, 오른쪽 강은 거센 물결이 범람하는 강인데, 양쪽 강이 서로 연결된 한가운데는 폭이 약4~5치 정도밖에 안 되는 외나무다리 같은 좁은 길이 나 있는데, 이것이 백도(白道)입니다.
백도란 물들지 않는 청정한 길이란 뜻으로 이 길로 나아가면 영원한 안락의 세계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 두 개의 강과 백도를 ‘이하백도(二河白道)’라 합니다.
나그네는 ‘이하백도’에 당도하여 앞을 바라보니, 왼쪽 강의 불길이 백도 위를 한 번 휩쓸어 가면 바로 오른쪽 강의 거센 물결이 백도 위를 한 번 휩쓸어 가고 하여, 이렇게 번갈아 잠시도 쉬지 않고 물과 불이 백도 위를 침노하여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이 기세가 사나워 이 나그네는 도저히 백도를 지나갈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가려고 하니 수십 명의 도적떼가 고함을 지르며 죽일 듯이 무서운 기세로 쫓아오고 있으며, 옆으로 비키려 하나 무서운 맹수가 으르릉 거리며 한입에 집어삼킬 듯이 위협해 오니, 이 나그네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래야 해볼 수 없는 참으로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요, 진퇴유곡에 빠진 나그네는 순간 생각하기를 내가 앞으로 나아가도 죽고, 뒤로 되돌아가도 죽고, 그냥 머물러 있어도 죽을 터이니 이왕 죽을 바에야 죽든지 살든지 이 백도를 뚫고 나가야 하겠다고 단호한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외줄기 백도로 뛰어들어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나아가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도 위험하고 무섭게만 보이던 길이, 막상 죽을 결심을 하고 뛰어들고 보니 뜻밖에도 안전지대였습니다.
불길에도 휩쓸리지 아니하고 거센 물결에도 휩쓸리지 아니하고 꿋꿋하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도적떼들은 네가 죽으려고 그 길로 가느냐고 어서 돌아오라고 하며 소리치고 있었지만, 나그네는 전혀 들은 척도 아니하고 묵묵히 앞만 보고 나아가자, 동쪽 언덕에서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돌아보니 너무도 훌륭하고 점잖은 사람이 “네가 그 길로 잘 들어섰으니 뒤로 돌아보지 말고, 오른쪽 왼쪽도 돌아보지 말고서 곧장 앞으로만 조심스럽게 나아가거라. 그리하면 네가 목적하는 안락한 곳에 이르게 되리라.”하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자 서쪽에서도 어떤 거룩한 모습을 한 사람이 서서 말하되,
“인자(仁者)여, 너는 이 길을 놓치지 말고 오너라. 한 눈도 팔지 말고 물과 불을 두려워하지도 말며 오직 일심전력으로 똑 바로만 걸어오너라. 그러면 내가 너를 구하여 줄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나그네는 여기에서 큰 힘을 얻어 일심으로 앞만 보고 나아가서 무사히 서쪽 언덕에 도달하게 되었고, 어진 이를 만나서 항상 그리던 이상향인 안락세계에 도달하여 무궁한 복락을 누리며 즐겁게 살았다고 합니다.
위의 이하백도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의미가 참으로 깊다고 하겠습니다.
사람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세상을 살다가 늙어 죽게 되는 것에 비유한 것입니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올라(生) 서쪽으로 기울듯이(死) 아침 해가 밝아오는 동쪽은 인생의 출발점이요, 해가 기울어 가는 서쪽은 인생의 종점이 됩니다.
또한, 거센 물결이 휩쓸어가는 오른쪽의 강은 우리가 일으키는 탐·진·치 삼독심 중에 탐심, 즉 우리의 탐욕에 비유하였습니다. 이 탐욕 때문에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욕심을 채우려고 갖은 죄를 짓게 됩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일으킨 탐욕의 쇠사슬에 얽매여, 탐욕의 강물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다가 결국은 죽게 됩니다.
그리고 거센 불길이 휩쓸어 가는 왼쪽의 강은 진심(瞋心: 화내는 마음)에 비유하였습니다.
우리는 내 뜻에 맞지 않으면 싫어하고 미워하며 화를 내기 쉽습니다.
일이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된다고 짜증을 부리며,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성내며 고함을 지르고, 그러다가 큰 손해라도 보게 되면 크게 화를 내어 분한 마음을 어찌할 줄 모릅니다.
또 누구에게 모함을 당하여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면 그 원통하고 분통한 마음은 뼛속 깊이 사무치게 됩니다.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 분노하는 마음, 이러한 진심(瞋心)은 타오르는 불길이 되어 왼쪽의 화염〔불꽃〕의 강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평생을 사는 동안 탐심을 버리는 공부, 진심(瞋心)을 버리는 공부는 하지 못한 채 차곡차곡 탐욕을 쌓고 진심(瞋心)을 쌓아가며, 결국 내가 빠져 죽을 탐욕의 물 강, 진심(瞋心)의 불 강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하백도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요, 바로 우리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일 뿐입니다.
가늘고 곧게 이어진 외줄기 백도(白道)는 바로 성불을 향하여 나아가는 정진의 길이요, 영원한 안락의 세계, 극락세계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동쪽에서 일러주신 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시고,
서쪽에서 격려하여 주신 분은 바로 아미타 부처님이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무량겁 동안을 난행 고행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수행하셨으며, 성불하신 후 그 위대한 가르침으로 중생들이 탐·진·치 삼독심을 여의고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해탈의 세계에 안주하여 길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성불의 길을 열어 보이시고, 모두가 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고 아미타 부처님께서는 오 겁 동안의 오랜 세월을 두고 깊은 선정에 드시어, 48대원을 세워 극락국토를 건설하시고 장엄하시기 위한 청정한 수행에 온 마음을 다 기울이셨습니다.
끝내는 48대원을 성취하시고 성불하셔서 그 원력으로 중생들이 영원히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극락세계로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가 조금도 흔들림 없는 신심으로 오로지 백도로만 나아가면, 이렇게 두 부처님께서 끌어주시고 밀어주시니 어찌 해탈의 세계, 극락세계에 도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좌우에 있는 사나운 맹수들은 각각 번뇌와 망상이며, 뒤에서 쫓아오는 도적떼들은 육적(六賊: 여섯 가지 도적)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말합니다. 육적이란 여섯 가지 도적이란 뜻인데 육식(六識)이라고도 합니다.
[사바에서 극락까지]에서 / 도중스님
●선종 무문관
《무문관(無門關, The Gateless Gate)》은 선종5가(禪宗五家)의 일파인 임제종(臨濟宗)에 속하는 남송(南宋)의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가 1228년(紹定 1) 46세 때의 여름에 푸저우(福州) 영가(永嘉)의 용상사(龍翔寺)에서 수행자를 위해 고칙 48칙(古則四八則)을 염제(拈提: 고칙을 제시하여 이를 평창함)하고, 평창(評唱)과 송(頌)을 가해서 《무문관》이란 제목을 붙이고, 자신의 찬술이유(撰述理由)를 말한 자서(自序)를 가하여 그해 겨울에 간행하였다.[1]
《벽암록》·《종용록》과 함께 옛날부터 선림(禪林)에서 존중되었으며, 이 두 서적보다 공안(公案)의 수가 적고 내용도 간단명료하며 더욱이 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사상적으로도 일관성(一貫性)이 있기 때문에 일반에게 널리 애용되었다.[1]
특히 제1칙 아래의 조주구자(趙州狗子)의 공안은 유명하며, 여기서 염제(拈提)되는 무자(無字)야말로 종문(宗門)의 일관(一關)이며, 이 일관을 이름지어 "무문관(無門關)"이라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1]
승(僧)이 조주(趙州)에게 묻기를, "구자(狗子)로 다시 태어나도 불성(佛性)이 있겠는가 없겠는가."주가 가로되, "있도다."또 다른 승이 묻기를, "구자로 환생(還生)되어 불성이 있겠는가 없겠는가."주가 대답하되, "없도다."
위의 조주구자의 공안에서 조주가 말한 유무대립(有無對立)의 두 가지 대답에 대하여 본서는 무(無)로써 대답하고 있는바, 이 무야말로 유무의 대립을 초월한 절대무(絶對無), 즉 무자(無字)를 단적으로 설시(說示)한 것이다.[1]
●무문관 영화 이야기
각지에서 모여든 승려들이 숨 막히도록 치열한 방행과 수행을, 깨달음을 얻어 가는 수행 일기를 담은 "선종 무문관"이 개봉했어요.
제25회 불교언론 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하며 이목을 집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주제를 색다른 시선으로 풀어내는 윤용진 감독이 "할"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불교 수행 드라마예요.
다양한 고뇌에 직면하는 현대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감독의 질문에서 출발한 "선종 무문관"은 다양한 조사 어록 중 무문관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스토리를 완성시켰다고 해요.
윤용진 감독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무문관에 대해 공부하고 또 연구했다.
제가 얻어 간 깨달음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영화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었다'라며 이번 작품에 대한 포부를 밝혔어요.
또한 불교의 교리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함과 동시에 종교의 보편적인 의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감독의 메시지는 "선종 무문관"에 오롯이 담겨 있어요.
영화 "선종 무문관"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한 사찰로 모인 수행승들이 함께 고뇌하고 갈등을 빚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통해 잔잔한 웃음을 선사하고 있어요.
속세를 벗어나 각자의 얻고자 하는 무언가를 위해 모인 이들의 스님 '화상'을 통해 가르침을 받는 과정은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화두를 던짐과 동시에,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인물로 하여금 유머스럽게 풀어내고 있어요.
부처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수행승, 혹독한 수행 과정에 지쳐 삐딱하게 나가는 수행승, 그리고 어린 수행승까지 각자 다른 이야기와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한계를 깨나가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숭고함을 느끼게 할 거예요.
줄거리 - 선가에서는 불심으로 근본을 삼고 무문으로 법문을 삼는다.
그렇다면 이 문이 없는 문은 과연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한 깨달음을 얻으려 각지에서 모인 수행승들이 오대산 무문화상을 찾아가 예로부터 해탈의 문이라고도 불리는 이 무문을 통과하기 위해 화상의 가르침과 숨 막히도록 치열한 방행과 수행을 통하여 공안을 깨친다.
첫댓글 이하백도의 수행과 선종 무문관 수행법 모두 가슴 뛰게 하는 위대한 수행법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관세음보살 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신심명에 지도무난이라고 일갈하고 있습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가장 쉽고 성취도 불가사의한 법이 나무아미타불 염불법입니다.
그러니 가장 불가사의한 법입니다.
그냥 전일하게 놓치지않고 임종시까지 나무아미타불 염불하기만 하면 되니 반드시 집지명호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성불도
되세요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